최근 수정 시각 : 2019-05-16 02:30:27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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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anwha Corporation_RGB_43_EH.jpg

한화그룹 회장
초대
김종희
2대
김승연
현직
파일:external/blogfiles16.naver.net/B1E8BDC2BFACC8B8C0E54.jpg
성명 김승연(金昇淵)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생일 1952년 2월 7일 ([age(1952-02-07)]세)
출생지 충청남도 천안시
본관 순천 김씨
형제·자매 누나 김영혜(1948년생)
남동생 김호연(1955년생)
배우자 서영민 (1982년 결혼)
자녀 장남 김동관(1983년생)
차남 김동원(1985년생)
삼남 김동선(1989년생)
현직 한화그룹 회장
직업 기업인(한화그룹 회장)
종교 개신교(성공회)[1]
전직 한화그룹(구 한국화약그룹)회장
주한그리스공화국 명예 총영사
한화이글스 구단주
한미친선회이사
경향신문사 회장
헝가리 한화은행 회장
성공회대학교 이사장
대한사격연맹 총재
대한사격연맹 명예회장
대한생명보험 대표이사 회장
(주)한화 대표이사 회장
한국경영사학회 제16회 창업대상
유엔한국협회회장 재선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1. 개요2. 평가
2.1. 긍정적인 면
2.1.1. 으리 넘치는 회장님2.1.2. 스포츠 기여
2.1.2.1. 한화 이글스
2.1.3. 일가의 깨끗한 병역사항
2.2. 부정적인 면
2.2.1. 자식들의 이미지2.2.2. 1993년 횡령혐의2.2.3. 동생과의 재산권분쟁2.2.4. 2007년 보복 폭행 사건
2.2.4.1. 외신 반응
2.2.5. 배임 사건
3. 여담

1. 개요

한화그룹의 회장. 별명은 의리왕 혹은 의리회장. 청계산 파퀴아오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다이너마이트 주니어이라고도 불린다. 기업의 태생이 화약 제조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다이너마이트 김은 김승연 회장의 부친인 현암 다이너마이트 김 시니어 김종희 전 회장의 별명이기도 하다. 미군이 붙여줬다고….

1952년 2월 7일 한화그룹의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종희 회장은 생전에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 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라며 “어차피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 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호연지기를 키울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1981년 김종희 회장이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즉위해서 한화그룹을 이끌게 되었다. 남동생 김호연과 10여 년간 상속 다툼을 벌인 끝에, 김호연이 빙그레를 가지고 독립했다. 빙그레 이글스[2]한화 이글스로 바뀐 것이 바로 이 때문. 사업 규모가 작은 빙그레로 넘어갔다면 존속 위기가….

장인은 내무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서정화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큰아버지 김종철도 1980년대 한국국민당 총재를 지낸 정치인이다.

꽤 독실한 모태 성공회 신자다. 부친과 작은 아버지들, 어머니와 아내도 독실한 신자이다. 국내에는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보다 인지도가 다소 밀리는 성공회에서 가장 유명한 신자일 듯. 소년 시절엔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활동을 했으며, 1997년에는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었고, 성공회대에 일부 대금을 면제해 주는 형태로 대학본부 건물을 지어주어서, 건물 이름이 승연관[3]이 되었다.

2. 평가

2.1. 긍정적인 면

2.1.1. 으리 넘치는 회장님

언론에서 의리 있는 남자라는 이미지로 많이 묘사된다. 실제로도 화통한 성격으로 유명해서 고객에 대한 신용과 의리를 강조한다. 한화그룹의 가족적인(?) 분위기나 그에 따른 회장님의 여러 일화를 특히 아래의 흑역사 봐도 그렇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서울 프라자 호텔 전면 리모델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텔 문을 3개월 동안 닫아야 하자, 개장공사가 끝날 때까지 쿨하게 모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줬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한화에너지가 현대정유로 넘어갈 때 돈을 20~30억 덜 받더라도 100% 고용승계를 반드시 지키라는 조건으로 매각협상을 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자금 지원도 하고, 근데 경향신문은 예전에 한화그룹 소속이었잖아 진보적인 학회를 후원하기도 했고, 진보지(예를 들어 월간 말)에도 꾸준히 한화그룹 광고를 내기도 했다. 애당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세가 강한 대학인 성공회대를 후원하고 있고[4] 이사장까지 했다. 아무리 성공회 신자라지만 재벌총수가 진보성향이 강한 대학에 그런 지원을 하는게 보통일은 아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른 재벌에 비해서는 그다지 디스를 받지 않는 편에 속한다.

지금은 대전의 자랑이 된 대덕테크노밸리가 세워진 것도 김승연 회장의 선택이었다. 1999년 한화이글스의 우승해에 축하 파티에서 홍선기 전 대전시장으로부터 산업단지로 개발하려는데 한화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다. 사업성이 낮다며 기업 내부에선 난색을 표했지만, 김승연 회장은 대전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업분석과 시행을 지시했다. 그 결과 2009년 기준 연매출 10조 원, 5만 명의 대성공사례가 되었다.

2003년 6월 30일 전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던 진정필 선수가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등지자 그동안 치료비와 장례비까지 모두 지원했다고 한다.

또한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후 1년 지난 2011년 3월 20일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할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오오 회장님 오오 이에 46명의 천안함 희생자 중 36명의 유족이 한화에 취업을 희망했으며, 이중 2010년도에 취업을 희망한 가족 5명 전원이 입사해 다니고 있으며, 2012년 현재 7명이 (주)한화와 한화테크엠에 근무하고 있다. 2015년 2월 현재 총 12명이 각 계열사에서 근무중이며, 2월 초에 2명을 추가로 더 채용하였다. 즉 5년 동안 꾸준히 채용 중이라는 것.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개념 꽉찬 행보인데, 한화 이글스 경기에 천안함 유가족을 초청하여 시구,시타 행사도 진행하고 의리의 한화, 천안함 유가족 초청 행사 실시 한화, 현충일 홈경기에서 천안함 유가족 특별 시구·시타 실시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천안함 견학도 하고 한화그룹, 대전 초ㆍ중등 학생과 '천안함' 견학 임직원들이 천안함 묘역을 찾아가기도 한다. 천안함 묘역 찾은 한화임직원[5]역시나 유가족들을 초대해 격려했다. 천안함을 잊지 않고, 그 유족들을 확실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 해군 정보국에 근무하던 로버트 김이 대한민국에 정보를 넘긴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자, 김승연 회장이 어려워진 로버트 김 집안에 생활비를 대주었다고 한다. 또한 징역 기간이 끝나자 그 동안 심려끼쳐 죄송하다며 한화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얹어주기도 했다.[6]

2014년 한화건설의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광어600인분을 떠 가지고 비행기로 실어갔다고 한다. 사막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하니 사막이라 회를 먹고 싶어한다는 말에 "그럼 여기서 떠 가지고 가지."라며 쿨하게 지시했다고.

2015년 7월 3일 울산광역시 소재 한화케미칼 폭발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6명이 숨지자, 한화그룹 임직원에 준하는 보상을 지시하였다. 대인배 협력업체 직원이라서 보상액에 차별을 받는다는 여론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번에도 의리 있게 대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2011년 9월 14일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있던 한국 야구계의 레전드 투수 최동원이 지병으로 별세하자 그의 병원 치료비 납부는 물론이고 그룹 차원에서 장례식 비용을 지원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팀이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당시에는 전 직원들에게 수십만원씩 특별 포상금을 준 바 있다. 그것도 정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직이며 미화직이며 한화그룹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줬다.

아래에 서술할 무지막지한 흑역사들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게 잊혀지지 않고 이미지의 일부로서 강하게 자리잡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보 때문인지 다른 재벌가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이미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상술한 사례 이외에도 긍정적인 미담들이 여럿 나오기 때문에, 돈만 많고 개념은 없는 졸부가 아니라, 자기만의 특이한 원칙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지 튈 수 있는 복잡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가장 크다.

만약 다른 재벌 총수가 동급의 흑역사를 터뜨렸다면, 그들의 이미지는 지금의 김승연 회장 정도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김승연 회장이 내일도 승리서동천 이미지랑 비슷하였던 것 같다.

사실 김승연이 이렇게 의리를 강조하는 성향을 지니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이자 한화그룹 창업주인 김종희의 영향이 크다.

2.1.2. 스포츠 기여

해외에서도 여러 스포츠 구단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폰서로 활동하면서 구장 광고권을 따내기도 했고[7] 축구 분야에도 볼튼 원더러스함부르크 SV, 유벤투스 FC의 스폰서 계약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추어 복싱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복싱에도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부업은 CEO스트리트 파이터 사실 야구단 창단 전부터 시작하고 있던 게 아마복싱 후원이었다. 실전 MMA 청계산 파퀴아오

사격에도 관심을 두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한화그룹이 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아 자금 지원을 해 주는 등의 활동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사격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의 호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2.1.2.1. 한화 이글스
파일:/image/109/2012/05/17/201205171311777640_2.jpg
손수 한대화에게 퇴직금을 주는 모습
2012년 5월 16일, 한대화 당시 한화 이글스 감독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는 모습

한화가 지원하는 한화 이글스의 정점에 서 있는 구단주답게 야구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부문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편.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가 FA인 이범호를 놓치는 일을 포함하여 몇 가지 사고를 터뜨리자 2011년 5월 프런트를 전면 교체하고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팬들에게 약속했다.[8] 직접 잠실 야구장에 행차해서 팬들에게 "김태균이 잡아올게"라고 단번에 OK 사인을 내는 등.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구단 대표 거포에다 코리안 특급까지 데려와도 시즌 성적은 폭망했다.

2014시즌 한화가 또 꼴등에 그치자 김성근 감독을 데려와 달라는 팬[9]들의 영상릴레이, 1인 시위가 빗발쳤다. 한화 이글스 프런트 측에서는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내부승진을 밀었으나, 청계산 회장님의 강력한 요청으로 2014년 10월 25일, 기어코 한밭구장에 그 때까지만 해도 야신이었던 김성근을 강림시킨다. 게다가 16일 뒤인 2014년 11월 10일부로 구단 대표이사에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김충범을 내정하는 초강수를 덤으로 두기도 했다. 2015년 FA시장에서도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2016년 들어 한화 이글스그렇게 팬들이 불러서 뽑은 감독의 독단적인 전권 장악, 미치광이 혹사와 시대착오적 전략, FA 영입 선수들의 잇다른 먹튀, 노쇠화 되어버린 선수층 등으로 다른 팀 다 상위권 다툼 벌일 동안 혼자 하위권에서 노닥거리며 팀이 나락에 빠짐과 동시에 야신이라 칭송받은 자의 더러운 실체가 드러나자 프런트를 무시한 권력 남용, 당장의 성적에 눈이 멀어 팀의 미래를 내다버린 선택 등으로 나쁜 의미로 재평가를 받으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기사까지 나올 정도. 물론 야갤 제외 그리고 2016년 11월 3일 구단의 유임 발표로 절정에 달했다. 아직도 문제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김 회장의 문제점은 허구연이 지적한 바 있듯이 일단 야구를 좋아하긴 하나 정작 야알못이라 팀의 현실을 모른다는 것.[10] 이 때문에 한대화김응용 등을 연달아 거치며 팀을 추슬러야 하는 선택의 순간 별 생각없이 유명인사(김성근)에게 의존해 버렸고, 그 결과가 토탈 700억 쏟아붓고 7위 경쟁한 16시즌의 한화다. 매년 100억대의 적자가 나는 프로야구단에 끊임없이 투자를 해 주는 애정은 분명 높이 살만하나 팀의 내실을 키우기보단 당장 성적에만 눈이 가서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11]

결국, 2017년 5월 23일에 김성근이 자진 사퇴의 탈을 쓴 경질로 퇴출됐다, 김 감독과 단장과의 마찰로 인한 여러 일들에 격분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12], 결국 그룹 차원의 내부감사[13] 후 경질이 됐다. 그룹의 내부감사가 진행됐고, 21일 벤치 클리어링이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팀 내부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리빌딩을 비롯한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을 감독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여서 한용덕을 감독으로 임명했으며, 한용덕은 오랜 부진에 시달렸던 한화 이글스를 포스트 시즌으로 진출 시키는데 성공했다.[14] 오랜 시행착오 끝에 깨달음을 얻은 회장님

2018년 한화 이글스가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자, 11년간 비밀번호를 찍을때 기다려준 팬들에게 고맙다며 장미꽃 13000송이를 선물했는데, 이 비용 4,000만원을 사비로 냈으며, 1차전에 직관하러 왔다. 기사 답답해서 본인이 특타하신다 카더라

그리고 2018시즌 종료 후 아예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그 동안의 암흑기 속에서도 팀을 믿고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는 한화 이글스 단독 광고를 제작해 지상파 황금 시간대에도 편성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2.1.3. 일가의 깨끗한 병역사항

아들이 세 명 있는데 전부 호감형의 외모에 키도 큰 훈남들이다. 금수저+훈남+멋진 아버지[15]

자신은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했고, 아들 셋도 병역의무를 이렇다 할 잡음 없이 깔끔히 마쳤다. 이는 한화의 근원이 한국화약이라는 방산업체이기 때문에 김 회장이 병역문제에 대해선 확실하게 해야한다는 지론 때문. 면제가 판을 치고 끽해야 공익근무 출신이 섞인 다른 재벌가의 총수와 자제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부분 중 하나. 맏아들 김동관과 둘째 아들 김동원은 각각 하버드 대학교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처럼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했다.

다트머스 대학교를 나온 셋째 아들 김동선은 현역 출신은 아니지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승마 금메달리스트로서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았으므로 구리구리한 냄새를 풍기는 다른 재벌가의 4급, 5급들과는 비교를 불허. 이는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서 받은 병역특례라서 별다른 논란이 없다. 김동선은 꾸준히 승마선수로 활동하며 2010, 2014년에도 모두 금메달을 땄고 2016 리우 올림픽에도 대표로 출전했다. 다만 아주 약간의 불편한 진실로, 승마 종목은 좋은 품종의 말을 구해서 관리하는 비용이 막대한 특성상 애초에 재벌가, 왕족처럼 최상류층 출신 선수들이 90% 이상이다. 물론 메달 자체는 실력으로 따는 거니 비리라고 할 순 없다. 연습이야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하는 것이지만 실제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서는 선수 개인 소유의 말이 아닌 주최측에서 제공한 말을 랜덤으로 배정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병역기피로 의심을 받을 만한 과거가 있는데, 1995년 5월~1996년 12월 사이에 당시 주한 그리스 대사의 양아들로 들어가면서 그리스귀화했었다. 한화그룹 측에 따르면 "그리스 대사가 (김)동선이를 친아들처럼 귀여워해서 잠시 양자로 보내줬다"고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뭐 그래도 그리스 대사의 임기가 만료되자 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병역문제도 깨끗하게 해결했으니[16]

사실 재벌가의 병역문제가 비리의혹 때문에 불거지는 것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병역비리 문제와 김승연 일가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지금은 빙그레로 분리해 나간 동생 김호연 회장가도, 김호연 회장 본인은 백범 김구의 차남인 김신 장군의 사위이며, 장인처럼 공군 장교로 복무해 중위로 만기전역했다. 김호연 회장의 둘째아들 역시 공군 장교로 복무했고 심지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누나 김영혜도 여군공군장교로 복무했다. 공군집안 김호연의 장남은 공익근무지만, 뭐 면제 아닌게 어디야(...) 이 녀석 공군을 가랬더니 공근을 가느냐

2.2. 부정적인 면

2007년 둘째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을 상대로 특수폭행 보복 사건을 일으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항목 참고. 이 사건이 청계산에서 일어났기에 국내야구 갤러리와 각 팀별 갤러리에서는 한화 이글스가 경기에서 못할 때마다 "청계산 가야겠네"라는 드립을 치고 있다. 2012년 들어서는 경기간 나오는 이니스프리 광고 때문에 '숲으로 와~' 드립이 야구 커뮤니티 등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니스프리 광고에 피식 웃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야갤러임이 분명하다

2012년 8월 17일에 배임혐의로 법정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되었다. 보통 재벌 수장들이 비슷한 혐의에 집행유예가 선고된 전례를 볼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볼 수 있겠으나, 아니나 다를까 2014년 2월 11일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및 벌금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2.2.1. 자식들의 이미지

그런데 병역문제가 깨끗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둘째와 셋째 아들이 사고를 많이 치는 편이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밑의 사건. 기업을 이어받을 장남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나머지 둘은 자유분방하게 키워서 그런 건지, 사랑을 덜 받아 그렇게 된 건지, 맏형에 대한 자격지심인 건지... 차남은 밑의 보복 폭행사건 뿐만 아니라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된 적도 있다. 어쨌든 2019년 현재 한화생명 상무로 재직 중이다.# 2014년 2월 김승연 회장 차남 대마초 혐의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연합뉴스) 2011년에는 교통사고를 내고 구호조치 없이 도망가서 뺑소니 벌금 700만 원이 선고된 전력도 있다. 셋째도 역시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전적이 있다.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씨는 2010년에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 주점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고 보안직원 2명을 폭행하고 유리창과 집기를 부순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7년 1월 5일 새벽 3시 30분에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 술집에서 술에 취해 종업원의 뺨 2대를 때리고, 다른 종업원의 머리를 2∼3차례 때렸다. 김씨는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경찰서로 호송되던 중 순찰차 내부 유리문을 걷어차고 카시트를 찢기도 했다. 김승연 3남 김동선 술집 난동, 한화家 사건사고 보니…보복폭행·대마초까지회장님이 보시기엔 맞고 다니는 둘째 형보다 때리는 셋째가 더 낫다?

참고로 장남 김동관은 어린 시절부터 전교 1등은 도맡아 했으며[17], 하버드대 유학 중에도 한인학생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아침 8시에 출근하는 등 회사 생활에 굉장히 성실하게 참여 중이며, 경영 승계를 위해 실무를 익히고 있다. 직급에 상관없이 자신의 직원들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하는 등 사내문화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게다가 아버지와 동생들과는 다르게 별다른 구설수 없이 독서가 취미이며, 운동은 주짓수?와 스키를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김동선씨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와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딴 승마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여담으로 이번 리우 올림픽에 승마 선수로 출전한 셋째 아들 김동선 선수가 대한승마협회의 일 때문에 약간 고생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사실이 회장님에게 알려진다면 협회의 미래가 어찌될 지 주목되는 상황(...). 그러나 어차피 예선 탈락이 확정적이고 (예선 최종 순위 43위) 때마침 조모상이 겹치면서 귀국하게 되었다. #한화그룹 3남 김동선, 리우에 날아든 비보에 조기 귀국

김동선씨는 2017년 9월 말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술집에서 열린 대형로펌 김앤장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 명의 친목 모임에 동석해서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남아있던 변호사들은 김씨를 부축했는데 그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한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등 폭언과 함께 폭행했다고 한다. 한화家 3남 김동선, 또 음주 폭행 물의

2.2.2. 1993년 횡령혐의

김승연 회장은 6공 실세라던 박철언 전 장관과 친하며 그의 사조직 "월계수회"의 자금줄이었다. 그러나 박철언 전 장관이 당시 민주자유당 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권력투쟁을 벌였다가 민자당을 탈당했고 이후 정주영 회장이 이끌던 통일국민당에 들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디스한다.

그런데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 박철언 전 장관은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김승연 회장도 회사 돈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처음으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는 정치보복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사실 다른 재벌들도 관행처럼 하던 일을 유독 김승연 회장에게만 엄격히 적용한 것이었다.

2.2.3. 동생과의 재산권분쟁

동생 김호연과 재산권 분쟁이 일어나 한화그룹을 반분하였다. 수 년의 법정 공방 끝에 결국 그룹 분할에 합의하여 유명했던 빙그레를 비롯한 여러 회사를 동생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로 야구 팀 명칭까지 갈아 치우게 된다.

2.2.4. 2007년 보복 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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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8일, 새벽 서울 청담동 G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북창동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8명과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벌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 불만 있으면 와보라는 식으로 종업원이 던지고 간 명함에 격노한 김 회장은 아들을 폭행한 범인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아랫 사람들을 시켜 G 노래방을 통해 S 클럽 종업원들을 불렀다. S 클럽 종업원들은 자신들 5명에 노래방 종업원 3명을 끼워서 대신 내보냈으며, 그들은 김승연 회장 경호원들에게 붙들려 산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 폭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호소하자, 김승연 회장은 이젠 경호원들을 이끌고 가게로 쳐들어갔다.

북창동 S 클럽에 도착한 김 회장은 '내 아들 폭행한 놈들'을 끌고 오라고 말했고,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가게 측이 폭행 가담자를 데려오자, 김 회장의 아들 김씨가 자신을 폭행한 사람에게 직접 주먹으로 보복을 가했다고 한다. 이 때 종업원들도 경호원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 과정에서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김 회장은 술값이라면서 카운터에 100만 원을 던져 놓고 나갔다. SK 가문네 방계 놈도 매 값으로 2000만 원을 준 적이 있다. 적게 줘서 더 이슈가 된 것도 있다.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라면서 가죽 장갑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저희는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오라 그래서 왔을 뿐이에요" (중략) 김 회장 아들 폭행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 전무"가 김 회장 앞으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조 전무를 룸 안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고성과 함께 뺨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세 차례 들려왔다. 김 회장은 곧이어 새벽에 폭행을 당했던 아들을 불러서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고 일렀다. 곧 룸 밖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퍽, 퍽, 퍽" 하는 폭행 소리가 새어나왔다. - 한겨레신문, 2013년 4월 5일.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정치권에서까지 논의가 될 정도였다. 실상이 알려지기 전 국민들의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조폭과 다를 바 없는 폭행에 이어 경찰까지 움직여 없는 사건으로 처리했다는 점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서민 부모는 자식이 집단 폭행을 당해도 합의금만 받고 분을 삭힐 수밖에 없는데 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당연히 때린 놈들 사지를 분질러 놓아야 한다"라면서 그런 행위를 한 김 회장을 칭찬했다.[18] 대표적인 인물이 김구라. 그 외에 복거일도 김승연 회장을 옹호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만, 이들은 유명인으로서 원칙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을 옹호했기 때문에 비난받았을 뿐이고,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랬겠느냐?"는 식으로 "분명히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해는 된다"라면서 공감하는 반응들도 꽤 많았다. 김승연 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대인배적인 행보도 그렇고, 김 회장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보기엔 피해자 측이 먼저 김 회장의 아들을 두들겨 팬 잘못이 먼저 있었으므로, 당시에는 "내 자식이 두들겨 맞고 왔으면, 재벌 회장이든 아니든간에 가해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지 않겠냐?"는 식의 여론도 많았다. 사실 이런 사건은 대한민국 내에선 하도 조직폭력배나, 일진, 학교폭력같은 문제 때문에 학을 뗀 사람들이 많아서, 보복 폭행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피해자가 절대로 동정받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사실, 가해자들이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저질렀다고 한다. 사실 워낙에 김승연이 쓰레기짓을 해서 묻히는 부분이지만, 사실 저 놈들도 죄질이 나쁘다. 시비가 붙은 게 누구의 잘못인가를 떠나서 8명이 한 명을 집단으로 구타한 것인데, 피해자가 재벌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이었다면 두들겨 맞고 합의금 몇 푼에 분을 삭혀야 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단순히 보복 폭행 사건만이 문제가 아니라 폭행 과정에서 뒤처리를 대신 해 줬던 조직폭력배 맘보파 두목 오 모씨에게 1억 1천만원을 지급했고, ㅎㄷㄷ 이 사건에 관한 소문이 언론에 퍼지기 전후로 5억 8천만원을 뿌려서 전직 경찰청장을 비롯한 전 현직 경찰 간부들을 동원하여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다가 죄상이 드러나면서 큰 문제가 되었다. 경찰이 한 달 넘게 사건 처리를 미적미적거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 변호인과 상의도 없이 피의자 심문 중에 뜬금포로 검사에게 "검사님은 복싱에 대해 많이 아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아구 몇번 돌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거기다 이를 설명하며 '오른손, 왼손'이라고 말하며 잠시 복싱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RP LP ↘ RP LP LP+RP 이 때문에 변호인들이 진짜 혼이 나갈 정도로 경악했다고... 회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또한,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 사용에 있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다가 사실로 드러나자 겁만 주려는 용도로 썼다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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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사 내용에선 '귀싸대기, 놈, 맞짱' 드립까지 여과 없이 나오는 바람에 "재판 중인데 나이 먹고 철이 없는 드립을 쳤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재판 중에는 힘들다면서 턱을 괴고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재판을 받다가 재판장에게 주의를 받고 저지를 당했다. 이 결과 1심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는데,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신문 기자들을 동원해서 양로원에서 사회봉사를 열심히 했다. 그 덕분인지 2심에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이 선고 되었다. 그리고 돈을 받고 뒤를 봐준 전직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간부들은 9월~1년 사이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2007년 이후로도, 10년이 넘어도 계속 회자되는 사건이다. 위에서도 말한 SK그룹 최태원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재벌 2세 야구방망이 구타사건, 소위 말하는 2010년 "맷값 폭행" 사건이 이것과 거의 유사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잊혀질 타이밍을 놓친 것도 있겠지만, 한화 이글스가 죽을 쑬 때마다 "한화에서 유일하게 실화로 빠따 좀 휘두를 줄 안다는 인간이 타자를 안 뛰고 있기 때문이다."면서 비웃음이 섞인 비아냥을 듣는 통에 잊힐 리가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2.2.4.1. 외신 반응
이 때, 김승연은 자택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방송국 취재진을 한화그룹 직원들을 동원해 막았는데 CNN등의 외신에선 김승연의 이러한 행각을 들어 크게 보도하면서 무려 "한국의 마피아"라고 뉴스 타이틀을 내보냈다. 외신들은 김승연이 폭력배를 사서 폭행 사건을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 회사 내 고용관계에 있는 한화 직원들을 "회사 업무가 아닌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동원해서 물리력으로 쓰는" 김 씨의 행동에 더 주목한 것인데,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마치 러시아의 마피아나 남미의 카르텔처럼 여기고 김 씨와 한화그룹을 그에 빗댄 것이었다[19]. 외신들의 이런 반응은 한국의 9시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2.2.5. 배임 사건

2012년 8월 16일 부실 차명회사 불법지원과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 회장은 실형인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2013년 1월 4일에 위독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구치소에서 구속집행정지 건의서를 제출한 상태라고. 결국 1월 8일 구속집행정지가 내려져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에 대해 재벌 회장 등 유명인들이 건강 문제를 핑계로 법적 구속 및 처벌을 회피하는 사례가 자주 있어서 김승연 회장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여론도 존재했다. 방어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근데 공판에 출석한다고 한다.
결국 2013년 4월 1일 새로운 재벌총수들의 이동 수단인 병상에 누워 법정에 출석했고 징역 4년과 벌금 1,500억 원을 구형받았다. 관련 기사

2013년 12월 26일 검찰에 의해 징역 9년이 구형되었고, 2014년 2월 11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이 선고되었다.

결국 김 회장은 한화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2014년 12월 사실상 경영에 복귀하였다.

3. 여담

  • 유전적으로 재벌도 막을 수 없는 무서운 병인 탈모가 있어 노안이다. 덕분에(?) 아들 세 명 또한 훤칠함과는 별개로 탈모 진행형으로 극강 노안을 자랑한다.
  • 회장님은 물론이오, 아들들의 전적도 화려하다. 위에 언급된 둘째 아들 김동원은 청계산 사건, 대마초 흡연, 뺑소니를 저질렀다. 셋째 아들의 사건사고는 김동선 문서 참조. 유일하게 장남 김동관만 스캔들 하나 없는데, 장남(+그룹 후계자)이기 때문에 유독 공을 들여서 키웠다고.
  • 아내 사랑이 각별한 듯하다. 서울대 약대를 수석 졸업한 자신의 아내 머리를 닮아서 아들들, 특히 그룹 후계자가 될 장남이 하버드대를 졸업한 수재인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 장서기금을 조성하여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많은 장서를 갖출 수 있게 해 주었다(실제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가 보면 '김승연장서기금' 스티커가 붙은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발전의 숨은 공신이다.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우천 법학관'이라는 큼지막한 건물을 지어 주었다. 솔까말 건물 자체는 좀 흉물스럽게 생겼다. "于泉"이 김승연의 아호라고 한다. 그리고 셋째아들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여변호사 머리채를...
  • 성격이 불 같은 게 나쁜 건 아닌지 화통한 면이 있어서 상술된 것처럼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잘 챙겨준다. 또한, 재계 내에서도 손윗 격인 총수들에 대해서는 제법 예절을 갖추는 것으로 보이는데,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서 사적으로는 한화 이글스 하와이 전지 훈련 때 자기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이건희 회장이 수백만 원 어치의 양주를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사업적으로도 많은 조언을 구했는지, 현재는 한화그룹에서 없어선 안될 가장 중요한 회사가 된 대한생명이 매물로 나왔을 때에는 이건희 회장을 찾아가서 "금융업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주시면 형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해보겠습니다."라고 간청하여 허심탄회하게 지도편달을 받고는 대한생명 인수 뒤, 이를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들을 한화그룹의 3대 축으로 키워냈다.
  • 그 나이대의 남자들이 그렇듯 끽연가다. 선친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도 담배를 즐겨 피는 듯. 일례로 대통령과 기업총수들 간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행 버스에 오르기 전에 담배를 꺼내문 사진이 기자들에게 찍혀 기사화 되었다. 건물에 나와 천장은 있으나 옆은 뚫린 공간으로 흡연구역은 아닌지라 옆에 있던 직원이 바로 제지해 담뱃불은 붙이지 않은 채 담배를 수거했다.

[1] 세례명프란시스[2]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할 일이 없는 한국화약보다야 식품회사인 빙그레 쪽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광고 효과가 훨씬 높기 때문에 빙그레 이름을 붙였던 것. 비슷한 사례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경우가 있다.[3] 한때 건물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4] 단순한 재정지원 뿐만아니라 성공회대 학생들을 갤러리아 등 계열사에 인턴으로 고용해주고 정식 채용까지도 해준다.[5] 5주기인 2015년[6] 최말단 갤러리아백화점 캐셔가 받은 돈이 무려 50만원.[7] 그런데 SF의 원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한 류현진과 묶이면서 류현진이 AT&T 파크에서 등판할 때 SF가 류현진에게 도발하는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곤 한다.[8] 근데 문제는, 이 때 한화그룹 전체가 대통령한테 찍혀서 돈을 풀 수가 없었다. 회장에 구단 사장까지 죄다 대통령 앞으로 끌려갔으니...[9] 정확히 말하면 한화 팬의 탈을 쓴 김성근의 추종자들[10] 회장의 의리 중시 성향+야알못 문제점으로 인해 팬의 의견에 휘청대는 문제점이 있다.[11] 여기에 김성근이 혹사+유망주 유출+노장 영입을 더해 적자의 영향이 장기화되었다.[12] 이거 말고도 구단 내부에서도 특타를 좋지 않게 보았다고 한다.[13] 이 때 자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14] 시즌순위 3위, 최종순위 3위다.[15] 창업주 김종희 전 회장부터 미남이다. 우월한 유전자 다만 회장님을 봐서는 대머리 유전자가 우려되기는 한다.[16] 사실 그리스와 한화 그룹의 관계는 선대 때부터 매우 좋다. 당장 주한 그리스 대사관이 20년 넘는 기간동안 한화그룹 본사 건물에 입주해 있다. 선대 회장 김종희가 그리스의 주한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고, 김종희가 별세하자 그리스는 김승연에게 같은 직위를 다시 수여했을 정도.[17] 김승연 회장의 부인이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수석 출신이다. 공부 재능은 어머니한테 물려 받은 듯[18] 이런 반응이 시사하는 의미는 사건상 최초 피해자인 차남의 경우가 결투에 준하는 1:1 대결 끝에 패배했거나 쌍방 폭행 중 폭행 피해를 입은 정황이 아니라 1:8의 상황에서 일방적 집단 린치를 당했으므로 비겁한 클럽 종업원들이 보복의 명분을 제공했다는 뜻.[19] 굳이 현실적으로 엮자면 한화그룹은 본체가 방위산업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