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4 05:09:13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KBO_Retired_Samsung_22.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KBO_Retired_Samsung_10.svg.png 파일:KBO_Retired_Samsung_36_svg.png

양준혁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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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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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보유 기록
1993~2005 16년 연속 100안타[1]
1380개 통산 최다 사사구
1278개 통산 최다 볼넷
150개 통산 최다 고의사구

수상 기록
1998, 2001, 2006, 200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1996, 1997, 2003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200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199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왕
1993, 1996, 1998, 2001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1996, 1998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
1994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1993, 1996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1993, 1996, 2006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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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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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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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1986 1987 1988~1993
이종도 이해창 김재박 이광은 ?
1994~1997 1998 1999 2000 2001
노찬엽 김동수 송유석 김선진 양준혁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용빈유지현(서용빈의 군입대) 이상훈 이병규 조인성 서용빈
2007~2008 2009 2010~2011 2012~2013 2014~2015
이종열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2016~2017 2018 2019~
류제국 박용택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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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
정성룡(1992) 양준혁(1993~1998) 김기태(1999)
김승권(2001) 양준혁(2002~2010) 영구결번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0번
최훈재(1997~1998) 양준혁(1999) 김경언(2001)
LG 트윈스 등번호 57번
김종헌(1999~2000) 양준혁(2000) 김신섭(2001)
LG 트윈스 등번호 10번
안상준(1998~2000) 양준혁(2001) 이일의(200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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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2 2,318안타 2007년 최초 창립멤버 3인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4_r1_250.png 프로야구 30주년 Legend All-Star BEST 10
in 2011. KBO-NAVER
장효조
OF / 삼성
이순철
OF / 해태
양준혁
OF / 삼성
김재박
SS / MBC
박정태
2B / 롯데
한대화
3B / 해태
선동열
P / 해태
장종훈
1B / 빙그레
김기태
DH / 쌍방울
이만수
C / 삼성

||<table align=center><table width=500><table bordercolor=#d02c20><tablebgcolor=#FFFFFF><:> 파일:mbc.png 파일:Logo_MBCSportsPlus_2019.png의 야구 중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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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진행자 MBC 소속 김나진, 허일후
MBC 스포츠+ 소속 김수환, 손우주, 신승대, 이정호, 정병문, 정용검, 한명재, 한장희
타사 소속 및 프리랜서 박용식, 이대현, 이인환
해설자 MBCMBC 스포츠+ 겸임 김병현, 김선우, 김형준, 송재우, 허구연
MBC 스포츠+ 단독 박승현, 박재홍, 손건영, 심재학, 양준혁, 유선우, 이상훈, 이희영,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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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SPORTS+/KBO 리그 중계, MBC SPORTS+/MLB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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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준혁.jpg
삼성 라이온즈 No.10
양준혁(梁埈赫/ Yang Joon-Hyuk)
생년월일 1969년 7월 10일 ([age(1969-07-10)]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2]
가족 아버지 양철식[3][4], 2남 1녀 중 셋째, 조카 6명
출신학교 대구남도초 - 경운중 - 대구상고 - 영남대
포지션 1루수, 좌익수, 우익수, 지명타자
투타 좌투좌타
신체 188cm, 120kg[5], O형
프로입단 1992년 2차 2라운드 지명(전체 11번, 쌍방울)[6][7]
1993년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8]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3~1998)
해태 타이거즈 (1999)
LG 트윈스 (2000~2001)
삼성 라이온즈 (2002~2010)
해설위원 SBS ESPN 야구 해설위원 (2011~2013)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4~)
기타 직책 양준혁 야구재단 이사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
응원가 LG 시절: Queen - We Will Rock You[9]
삼성 시절: 위풍당당 양준혁 듣기[10][11]
SNS 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양준혁 야구재단)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서명(싸인) 파일:티스토리1.png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
3.1. 은퇴 후 진로3.2. 방송 활동3.3.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3.4. 광고
4. 일상5. 노총각6. 근황7. 사건사고8. 기타9.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파일:양신.jpg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이자, 현 양준혁야구재단 이사장이자 멘토리 야구단 감독이다. 2011년부터는 사업가로도 변신, 식품과 레스토랑, 스크린야구존 사업 등도 병행한다. KBO 리그 통산 타자 WAR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전드 타자이며, 아직까지도 그의 명성과 기록을 뛰어넘은 사람은 몇 안 된다. 이승엽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1990년대~2000년대를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이만수-양준혁-이승엽으로 이어지는 본좌 계보 중 한 축이다. 대표 별명으로는 꾸준한 타격 능력에서 붙여진 양신과 머리가 크다 하여 붙은 양대갈[12]이 있다. [13] 슬럼프를 겪었던 2002년과 2005년, 말년 노쇠화로 기량이 떨어지던 2008년과 2010년을 제외하고는 전부 3할대의 타율을 기록, 배트를 거꾸로 들고 쳐도 3할이라는 비유까지 만들어졌다.

공을 때리려는 건지 투수를 때리려는 건지 분간할 수 없는 타격포즈가 특징. 일명 "만세 타법"이라 불리며 양준혁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응원가는 따로 없이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친다. 양준혁 특유의 보스기질과 합쳐져 아주 잘 어울린다.

2011년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은퇴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파일:attachment/yang_jh.jpg

여담으로 양일환 삼성 스카우터가 사촌 형이며[14], 김태한 삼성 수석코치와는 대구상고 동기다.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준혁/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76F2gnU.jpg파일:WCtDCYa.jpg
양준헉은 남도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경운중 시절엔 주로 투수로 뛰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야수로 전향했다. 경운중 3학년이던 1984년엔 체육부장관기에서 1루수로 타격상 0.714 을 받으며 미래의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대구상고 시절엔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고교 3학년이던 1987년엔 삼성 입단을 희망했지만 박영길 당시 감독의 만류로 대학 진학을 택했다.

당시에는 연고지 선수 세명을 1차 지명으로 뽑을 수 있었으며 2차지명은 무제한이었다. 그리고 고졸선수가 드물었다. 당시 삼성은 1,2차 지명에서 모두 6명을 뽑았는데 이들은 모두 대학생 선수었다 삼성은 쟁쟁한 야수가 즐비한 팀이었으며 유망주가 뛸 2군 리그도 없었다. 영남대에 진학한 양준혁은 1학년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988년 제43회 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11타수 6안타로 타격상을 따냈다. 이듬해엔 제15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봄철리그에선 12타석 연속 출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4학년이던 1991년에는 대학야구 최강타자로 입지를 굳혔다.

데뷔하기 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을 피하면서 상무에 입대해 논란이 되었다. 제대 후 쌍방울이 아닌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다시 한번 파문이 일었다. 훗날 양준혁의 군복무 기간 동안 삼성은 양준혁에게 용돈 명목으로 매월 100만원이라는 거액을 지급한 사실도 밝혀졌다.

논란거리 정도가 아니라 이는 KBO 신인 드래프트 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었던 역대급 사건으로, 오늘날이면 프로 선수로 활동이 불가능했을 정도의 역대 최악의 입단 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프로야구 규정/단속이 미비했던데다가 신생 구단 쌍방울의 발언권이 취약했고 삼성그룹의 파워 등으로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 특히 당시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양준혁 사태의 여파로 규정이 신인선수 지명권 보유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연장되어 규정이 보완되었다.

데뷔 시즌에 신인왕[15]과 타격왕을 동시에 석권하였으며 아직도 양준혁 이후로 이 두 타이틀을 동시에 가져간 선수는 없다.[16] 그러다 1998년 시즌이 끝나고 임창용 - 곽채진, 황두성, 양준혁, 30억원의 3대1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트레이드 되고, 2000년 LG 트윈스로 다시 넘겨졌다가 2001 시즌 종료 뒤에 FA 자격을 얻은 후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와 2010년 시즌까지 계속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다. 그야말로 꾸준함을 대표하는 선수로 남았으며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다.

홈런 2위만 3번 기록했는데(93,96,97) 그 해 전부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했다.. 근데 불과 1년 후 해태에서 뛰게 될 줄이야

3. 은퇴 이후

3.1. 은퇴 후 진로

은퇴하면 야구장을 짓고 싶다고 했다. 허구연 필드에 이은 양준혁 필드가 나오길... 은퇴 선언 후 실제로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2군데 정도로 후보가 압축된 듯. 남자의 자격에서 직접 꿈의 구장 모형을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은퇴 선언 후에도 후배들을 성심껏 지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지도자로서도 대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지 않고 방송 활동을 하다 자취를 감추어 코치감독이 될수 있을지는 불분명.

2010년 플레이오프는 덕아웃에서 지켜봤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미디어데이에서 문제가 되어 덕아웃에서 퇴장. 하지만 4차전 도중에 난입(?!)해서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트위터 문제도 그렇고 왠지 은퇴 후의 행적이 순탄치만은 않아보인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김재현이 SK의 우승컵을 들었을때 카메라는 양준혁의 뒷모습을 비춰줬다. 김재현의 경우 타석에 섰으나 양준혁의 경우엔 팀이 패배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엔 없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재현과 양준혁, 두 사람의 엇갈린 가을

지도자의 길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하다. 자신이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김성근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스타일을 섞은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2011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뉴욕 양키스 구단으로 연수 예정이었으나 사전 언론 노출 관계로 계속 일정이 지연되다가 본인이 고사했다. 대신 과거 선수협에 같이 참여했었던 김재현이 간다.(LA 다저스 산하 싱글A 쪽으로)

2010년 10월 24일에는 대전 갑천 잔디구장에서 제 1회 '양준혁 전국 청소년 야구 대축제'를 개최하였다. 야구선수의 이름을 딴 야구 대회로는 한국 최초. 1천여명 55개 팀이 참가했으며 구장만 13개를 대여한 엄청난 규모였다. 경비만 약 5천만원 들었다고 하는데 양준혁은 이 비용을 사비로 지출했다. 본인 말로는 이 대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양준혁은 이때를 기점으로 지도자의 길을 일단 접고, 재단 사업을 시작한다. 2011년 7월 30일 2회 대회 개최. 이 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코치 업무도 중요하지만 유소년 야구 육성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삼성의 코치 제의를 거절했다고.#

겨울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다.

2011년 6월 13일, 양준혁 야구재단이 출범했다.

은퇴 후에도 삼성 라이온즈 팀에 대한 조언을 꼬박꼬박 해주는 모양. 실제로 2012년 초반 삼성이 극도로 부진하자, 삼성 타자들의 눈빛이 죽어있고 야구를 너무 쉽게 보는 거 같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5월까지 5할 못 맞추면 선두권으로 올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할을 실제로 맞췄다.

2012년에는 김응용의 추천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할 뻔했다. 본인도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멘토리 야구단을 이유로 코치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3.1.1.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

2012년 부터 시즌이 끝난 후 매년 자선경기를 펼치고 있다. 입장료 전액은 멘토리 야구단을 포함한 야구 관련 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 취지도 취지지만 그 내용도 그야말로 예능감이 넘치는 덕분에 팬들에게 "올스타전 없애고 양준혁 자선경기로 대체하라"는 호평을 듣고 있다. 특히 2013년 자선경기의 내용은 그야말로 백미. 네이버에서 다시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찾아서 보기 바란다. 여담으로 이날 양준혁은 구원등판했다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잡고 6실점해 자진강판 당했다.

3.2. 방송 활동

3.2.1. 해설자

배기완: 좌측 높이 뜹니다. 자 김현수...
배기완&양준혁: 어어어어어!!!
배기완: 쓰리런~~!
양준혁 : 어ㅡ예~
배기완: 쐐기폽니다! 이병규~
양준혁 : 아~ 이게 넘어가네여?
배기완: 어제는 투런 두개, 오늘은 쓰리런....
2011년 5월 5일 두산 vs LG 전 중. 해설위원 양준혁을 상징하는 멘트.

2011 시즌부터 SBS ESPN에서 야구 해설을 맡게 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지도자의 길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과는 다른 의외의 행보. 2011년 초 MBC FM 라디오에서 공익 광고를 했는데, 멘트는 훌륭한데 읽는 게 약간 어색함이 느껴져서 아쉽다. 말을 못 하는 선수는 아닌데 녹음시 긴장을 한 듯.

또한 SBS 지상파 야구 중계에도 투입되어 배기완 캐스터와 함께 했었다.

해설가로서의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다. 초기에는 경험 부족이라는 실드거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어서 문제. 야구팬들 사이에선 2011년 SBS ESPN에서, 아니 모든 스포츠 방송 중에서 최악의 해설자로 손꼽혔다. 지상파 중계에 투입되는 배기완 캐스터와의 조합은 최악으로 꼽힌다. 일단 특유의 발음과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해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으며, 특히 경기 중 침묵이 너무 잦아서 중간중간 캐스터만 떠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사실은 이 때 트위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설을 들으면서 양준혁의 트위터를 보면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해설가 초기 시절에는 브라이언 코리 선수에게 외국인인데 영리하다는 외국인 차별 발언을 하였다. 의식적으로 한 발언은 아니겠지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그냥 계속 영리하다고만 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 조심해야 할 사항.

그 밖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겠지만 양준혁이 삼성 경기 해설을 맡으면 일방적인 편파 해설이 돋보인다. 특히 4월 중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가 가장 대표적인데, 당시 해설을 듣던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도 편파 해설 좀 하지 마세여라고 했을 정도. 상대방이었던 한화 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인지 이후로 편파 해설은 좀 완화된 상황. 삼성 경기를 많이 맡지도 않는 편이고…. 그런데 예상 외로 롯데 자이언츠에는 친절한 편이었다고...

가장 최악의 해설로 꼽히는 장면.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 두산vsLG전에서 라뱅이 쓰리런을 쳤는데... 어ㅡ예[17][18]

2013년 5월 13일,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양준혁의 해설에 대해 한 문장으로 잘 축약했다. "아는 건 많은데 말로 설명은 못한다." 그래도 2013년 들어서는 타격 메커니즘이나 투수 메커니즘, 특히 선구안 관련된 부분 등을 잘 풀어내면서 그 부분만큼은 괜찮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나 사투리 등은 여전해 호불호가 갈린다. 공교롭게도 대학친구인 신태용도 똑같은 지적을 받는 중이다.

2013 시즌 종료 후, MBC SPORTS+로 이적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났다. 덕분에 동시기에 SBS ESPN으로 이적한 정우영 캐스터에 빗디어 정우영-양준혁 트레이드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4년 1월 15일 네이버스포츠 라디오볼 방송에 전화연결된 MBC 스포츠+ 이석재 PD는 아직 양준혁의 해설위원 영입이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검토중이고 회의중이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후 한참동안 소식이 없다가 4월 8일부터 베이스볼 투나잇에 출연하고 있으며, 5월 18일 SK vs 한화 경기부터 해설에 투입되었다. 경기 중에 차명석 위원에게 .455의 타율을 기록했다는 것을 자막으로 띄워주면서, PD가 차위원 디스를 하기도 했다. 또한 예전 한밭야구장 이야기를 하니, 자료화면 나오니 '말만 하면 화면이 나온다'며 감탄했다.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양준혁 해설이지만 딱 한번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2013년 10월 5일,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꺾고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게 되자 박용택, 이동현, 이병규등 2002년 한국 시리즈를 겪은 고참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는데 이를 보고 양준혁이 본인도 울먹거리면서(!) "LG 선수들 오늘은 울어도 됩니다. 정말...얼마나 서러운 세월이었습니까."라고 코멘트를 하는데 극적인 승리와 함께 마침내 끊어진 비밀번호 + 동수옹의 은퇴 + 양준혁의 이러한 코멘트를 들은 쥐갤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며 이날만큼은 양신으로 칭송받았다. [19]

2015년 6월 12일 드디어 종범신과 같이 해설한다. 시청한 사람들의 소감은 하나같이 '하라는 해설은 안하고' 만담만 했다고. 그리고 2017년 시즌 들어서는 후술하듯 이종범 해설위원 대비 연전연패를 당하는 중.

2017년 6월 27일, MLB 해설에 데뷔했다.#

2018년 들어서 삼성 라이온즈 타자들에게 비 시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라는 대사를 자주 내뱉는다. 팀 선배로써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나는 듯... 삼성 경기 중계 중에도 자주하고, 라디오볼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른 패널들이 양준혁의 이 대사를 많이 언급한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삼성의 소총부대화이기도 하다.

3.2.2. 예능

해설뿐 아니라 예능 프로에서도 자주 모습을 비추었다. 야구는 뒷전이고 연예인으로 변신했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치를 하고 싶다고 해서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감독과 구단의 의중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양준혁의 경우에는 선수협 일로 팬심과는 달리 삼성 구단하고도 조금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라 코치 인선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코치 인선 기다리면서 손가락만 빨 순 없다는 점도 이해할 부분이다. 더군다나 삼성에서 은퇴 뒤 양준혁에게 전혀 코치직에 관한 언질조차 주지 않은 걸 생각하다면 양준혁만 깔 문제는 아니다. 선수 시절의 엄청난 실적에도 야구계에서 코치나 감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전직 선수들을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강호동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홈런 신기록을 세울경우 3루에서 홈까지 마이클 잭슨문워크로 들어올 거라고 약속했다.(후술) 또한 결혼 얘기가 나오자 세탁기만 들고 오면 된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약간의 개그 실력도 겸비하고 있는 듯. 정말로 그는 신이다.

KBS 2TV 해피선데이 - 1박 2일의 2010년 12월 12일 방송분에서는 강호동의 갑작스런 요청으로 서울에서 대구까지 급하게 내려와서 대구광역시의 명사로 출연하여 자신의 집과 대구의 맛집을 알리기도 했다. 다음 회인 12월 19일 방송분에서는 대전광역시까지 함께 이동하여 1박2일 출연진과 함께 복불복 등의 게임도 하였는데, 지는 바람에 강호동, 이수근과 함께 대전시청 앞에서 텐트 노숙까지 하였다.

2011년 4월경부터 남자의 자격 제7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이후 2012년 7월 하차.

2011년 12월경부터는 불멸의 국가대표에도 출연하였다.

삼성팬들은 이렇게 예능을 하면 지도자 연수는 언제 가고 코치로 삼성에 복귀는 언제 하는 거냐거 양신 이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2014년 7월부턴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에 출연했다. 그리고 왜 결혼을 못 했었는지 보여준다

2019년 6월 13일에 첫방송을 한 JTBC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 '어쩌다FC' 멤버로 출연중이다.

3.3.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

2017년 1월 17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로 선임 되었다.

3.4. 광고

  • 케이블방송협회 디지털케이블VOD[20]

4. 일상

홈런타자로서 괴력을 유지하는 비결의 하나는 스테이크 식단이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홈경기가 있는 날은 지인으로부터 얻은 미군부대 출입증을 이용해 부대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곁들여 식사를 즐긴다고 한다. 그것도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를 즐긴다고.

그리고 '삼성 직원인데 삼성 제품을 써 줘야지'라고 하며 TV, 에어컨, 냉장고, 노트북모두 삼성제로 통일했다. 그리곤 계약직이라 직원할인은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반쯤은 사실. 프로야구 선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개인사업으로서 돈을 받고 그 팀을 위해 싸워주는 용병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법적으론 용병으로 불리는 외국인 선수들이랑 동일 신분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

그런데 은퇴 이후 찍은 삼성카드[21] 광고는 마치 선수 시절에 직원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찍었다.

,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기 위해 출연한 구원의 밥상에서도 술은 마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5. 노총각

아들은 아직이다, 아내부터 필요하다!
정용검[22] MBC 스포츠플러스 캐스터, 스크린야구 레전드 매치 중

인터뷰에서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나이 얘기와 결혼 얘기.

1969년 생[23]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며 팬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양준혁은 동자공을 익히고 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결혼을 안 하는 것도 긴 선수 생활의 비결 아닐는지. 대부분 야구선수들이 결혼 후 안정을 찾고 기록이 상승하거나[24] 선수생활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25] 독신으로 저정도의 커리어를 쌓았다는 것은 놀랄 부분이 많은 듯. 이미 남자의 자격 같은 프로그램에서 부모님께서 "결혼 좀 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이젠 포기한 상태라고...

하지만 워낙 발이 넓어 오승환 여친을 소개해 주었고, 박한이에게도 지금의 부인을 소개해 주었다.

본인보다 25살 어린 f(x)설리에게 반하기도 했다. 설리는 영원한 오빠 ㅋㅋㅋ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설리 어머니와 양신의 나이가 동갑이라고. 그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유이에게도 마수(?)를 뻗었다. 유이의 부친인 김성갑 코치에게 오빠 동생 사이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성갑 코치와 양준혁은 8년차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준혁과 가장 관련이 깊은(?) 여자 연예인은 역시 한효주. 이상형으로 그녀를 꼽았고 드라마도 그녀가 출연한 동이만 시청했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이 덕분인지 한효주와 화보촬영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편이다.

2012년 시즌 이후 박재홍이 노총각인 상태로 은퇴하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나눌 이가 생겼다.

2014년 삼성과 한화의 2차전에서 한명재가 같이 해설 중인 박재홍에게 "시즌 끝나면 엠스플에서 겨울 특집 프로그램으로 류택현, 양준혁, 박재홍 모아 놓고 장가 보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겠다"며 놀렸다.

이후 본인에 맞먹을 수준이었던 노총각인 강동우, 류택현, 조인성 등이 차례차례 장가를 가면서 동지가 사라지고 있다. 더 갈 것도 없이, 본인보다 한 살 많은 SK 와이번스염경엽감독은 결혼해서 이미 딸이 대학생이고,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2017년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해서 그해의 신인왕까지 탔다. 양준혁과 비슷한 연령대(만 50세 전후, 1967~1970년생)의 일반인 남성들 기준으로 잡아도 자녀가 대학생 내지 사회인이거나 군대에 가 있는 경우가 많다.

2014년부터 애정통일 남남북녀를 촬영하며 북한 출신 김은아 양과 가상결혼을 진행하고 있는데 너무 지나치게 밝히고 능글맞아서 왜 결혼을 못 했는지 알 수 있겠다고 매주 줄기차게 까이고 있다. 계산하게 돈 좀 달라는 걸 눈 앞에다가 옛다 받아라 라며 바닥에 돈을 내던지고, 니 다 처먹어라 하고 욕설을 내뱉거나, 아내가 남편 발을 씻겨야 한다며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는다. 남편으로서도 애인으로서도, 그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최악이다. 그나마 다른 여자였으면 벌써 촬영거부 들어갈걸 대인배스럽게 다 받아주는 김은아양이 대단하다. 물론 예능프로인 만큼 각본에 의해 행동했을 가능성도 꽤 있다.

삼성 라이온즈에 있을 때, 방송에 같이 나왔던 박석민[26]"양준혁 선배는 자꾸 어린 여자들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며, "자기 나이와 비슷한 나이대를 찾아가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일침을 날린 적이 있다.

2015년 삼성 구자욱 선수가 열애설이 나자 해설 도중 "사랑 할 때는 해야한다. 안하면 제 꼴납니다." 라며 자기 디스를 했다.

2017년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자 갈수록 의문의 패배를 매번 적립하는 중. 삼성 팬중 일부는 결혼해서 애도 안 낳고 뭐했냐고 투덜대고 있다. 이정후 4안타에 어째 또 패배한 양준혁 위원님. 이젠 아예 포기한 듯.....[27] 이제는 양준혁 vs 이정후 누가 먼저 결혼 할 것같냐는 드립도 나온다.

스크린야구 레전드 매치에서도 정용검 캐스터에게 디스당했다.

일정상 해설 맡을때 카메라에서 여성 관중들이 비추면 캐스터들과 동료 해설위원들이 농담삼아 이야기를 하지만..

2019년 3월 29일 NC대 한화전 중계중, 류현진의 개막전 승리 영상자료가 나오니까 역시 '역시 선수는 와이프의 내조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는데, 캐스터가 "그걸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라고 디스를 하자 "저는 은퇴했잖아요... 저하곤 상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캐스터와 시청자는 폭소.

6. 근황

2010년 10월 30일 김동재 코치를 돕기 위한 일구회와 천무야와 자선경기를 가졌으며 여기서는 일구회의 타자로 출장했다. 송진우, 이종범, 박철순 등등 야구인들이 참석해 서로의 훈훈함을 선보였는데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장효조와 서로 등번호를 맞바꿨다. 장효조 코치의 등번호는 83번이다. 그것도 서로의 등번호와 맞바꾼 것. 참고로 일구회 유니폼은 간지. 그런데 같이 참석한 김봉연과 김시진의 등번호는 똑같다.

2010년 11월 5일, 금복문화사회문화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한 테이블 가득한 소주를 받아왔다. 양준혁 선수 본인은 트위터에 수상도 기쁘지만 역시 소주는 참○주가 최고라고 평한듯. 그런데 여기에 일부 유저가 수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삼성에서의 선수생활에 큰 자부심을 가진 양준혁 선수에게 뜬금없이 삼성불매 드립을 쳐서 화제가 되었다. 해당 유저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급히 사죄하였으나 이미 퍼질대로 퍼져 고생 좀 한듯.

201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 스트라이커로 선발출전했다. 오프사이드 개념을 전혀 모르는건지 계속해서 수비수들 뒤에서 방황하고 상대팀 수비수에게 관광을 타기도 했지만 계속적인 양준혁 밀어주기 플레이 끝에 김병지 골키퍼를 상대로 한 골을 넣었다. 꼬발로…. 이당시 등번호는 10번.

2011년 2월 6일 코엑스에서 열릴 V-리그 올스타전에 선동열, 이순철, 홍명보, 우지원, 문경은 및 전직 배구 선수 김호철, 박희상, 김상우, 김세진, 신진식과 함께 배구 선수로도 출전하였다. 전직 운동 선수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를 섭렵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등번호 10번을 달고 나왔다. 게다가 같이 출전한 이순철은 14번, 선동열은 18번, 홍명보는 배구에서는 흔하지 않은 20번[28], 김태영은 7번, 문경은은 10번을 달고 나왔는데 우지원만 문경은과 번호가 겹쳐 5번을 달고 나왔다. 이 날 양준혁은 스파이크를 성공시키면 문워크 세레모니를 선보이겠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스파이크는 커녕 거의 공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 선수의 공격을 블로킹하다 네트 터치를 범할 뻔...

2011년 4월 1일 엠팍인증을 했다. 그것도 한국야구게시판이 아닌 불펜에.. 불펜에 글을 쓰려면 4주간의 대기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양준혁은 뭘 한걸까? 있는대로 조공을 바친 삼갤만 허탈하게 됐다. 때문에 엠팍과 견원지간인 야갤에선 야갤에 인증안하고 엠팍에 인증한다고 분노. 매우 까였다. 40대의 어장관리. 아니면 지역드립에 실망했거나 이 때부터 양가놈이란 별명으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22일 새벽 야갤에도 인증을 남겼다. 하지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엠팍의 댓글과는 달리 리플들이 하나같이 까는 리플들이다. 야갤러와 삼갤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며, 단적으로 예전엔 양준혁 혹은 양神 혹은 양甲 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양씨', '양가', '양가놈' 으로 바뀌어버렸다.

2012년 7월 20일 한일 프로 야구 레전드 매치에도 출전하였다. 4타수 1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했으나 8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2루 땅볼을 친 뒤 1루로 뛰다가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다행히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은 아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될 거라고.

2015년 7월 23일경에는 일부 매체가 은사이자 양아버지인 김응용 감독을 깎아내리자 페이스북으로 분통을 터뜨렸다.[29]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6.jpg
현역 선수 시절 사진 기준으로 왼쪽이 양준혁이고, 나머지 선수분들의 이 유니폼의 활동은 마지막이 되었다.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2015100201000128100006571.jpg
2015년 10월 2일 현 대구구장 정규시즌 마지막 고별식때 레전드인 본인을 비롯하여 이만수박충식을 초청 방문했고, 여기서 본인은 시타를 맡았다.
참고로 이날 박충식은 원바운드 폭투시구를 선사하는데, 경기가 하필 포일로 끝나버렸다.(...)

2017년 8월 10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기사가 11일에 났고, 본인이 8월 14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림으로서 사실이 알려졌다고.

최근 들어 프로동네야구 PDB에 자주 출연하고있다. 2018년 10월 14일 영상에서는 이날 반발력이 엄청난 Z2K 배트로 타구 스피드를 측정했는데, 22세의 현역 대학교 야구선수의 157km를 재치고 158km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해당 영상[30]

2018년 10월 20일에 올라온 프로동네야구 PDB의 영상에 또 모습을 나왔다. 이날은 구속 측정이였는데, 50대의 나이임에도 시속 110km 정도를 던지며 양신의 위엄을 보여주었다.물론 우승은 131km를 던진 현역 대학 야구선수가 차지했다

11월 30일에는 여러가지 배트로 홈런레이스를 펼쳤다. 나무배트는 물론 알루미늄 배트와 유소년용 배트, 심지어 크리켓 배트로 홈런치기 실험도 했다. #

12월 23일에는 조수행, 김대현 선수과 함께 출연했다.

현재는 서울 잠실 신천에 스크린야구장 겸 펍인 <양준혁 라운지펍>을 운영 중이며, 세종특별자치시에도 회와 스테이크라는 메뉴조합을 파는 <양준혁의 가즈아>를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도 자신이 운영중인 펍과 관련된 사진을 올리기도했고 2019년 5월 19일 업로드된 PDB 출연영상도 자신이 운영하는 펍에서 찍었다. 사장님 계실 때 양준혁 대타찬스가 사용가능하다고...

7. 사건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준혁/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

위키백과 한국어판에서 2009년 2월 경 그 동안의 양준혁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기사들이 출처로 사용되어지면서 알찬 글로 선정되었다. 위키백과에서의 알찬 글 선정은 양준혁이 야구 선수로는 유일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준혁과 관련된 사진들이 모두 지워지면서 한때 알찬 글 지정 해제 논쟁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알찬 글 해제는 면했다.[31]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평발이라고 한다.

이대호와 함께 사직야구장 최장 비거리홈런 기록 보유자 라고 한다.[32] 사직야구장참조.

존경하는 스승으로는 김성근 감독을 꼽았다.

양준혁의 스탯은 고등고시에 문제로 만들어져 출제된 경력이 있다. 정확히는 행정·외무고시 1차시험인 PSAT의 2008년 자료해석영역[33] 열책형 25번(정책형 5번) 문제이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의 타격기록이 데이터로 제시되었다. 물론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프로야구 선수 Y'라고 표기되었지만, 찍혀 있는 스탯의 범상치 않음으로 인해…[34] 당해 시험에서 야구팬 고시생들은 문제를 보면서 즐거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합격 불합격 여부를 떠나서.

한 때 국내 최고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해서 다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해외진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렇다할 활약도 못하고 온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자신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같이 언급했는데, 자기 자신은 실력이 안돼서 해외 진출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도 LG에서 FA로 풀린 뒤 삼성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 해외진출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인터뷰를 보면 단지 겸손한 의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선수협 파동과 더불어서 받아줄 팀이 없었다. 원 소속팀 LG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다른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당시 타격왕을 딴 타자임에도 말이다. 즉, 삼성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국내에서 야구를 할 수 없으니, 야구를 하려면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심지어는 이도 저도 할 수 없을 위기까지 몰렸다고 한다. 다행히 김응용 감독이 강력히 주장해서 삼성으로 왔지만.

리더십도 있는 편인데, 삼성에서 주장도 했었고, LG 시절이던 2001년 시즌에도 LG의 주장을 맡았던 적 있다. 시간이 지나 LG에서 삼성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던 2002~2003년, 분위기상 주장은 맡을 수 없던 시절에도[35], 선수들 기강을 잡는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말로는 불성실한 편인 후배들은 당연히 가차없이 불러서 혼내고, 평소에 성실한 편인 선수들도 며칠 정도 집중력이 떨어질 때에는 살짝 갈궜다고 한다. 당시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있던 이승엽마저도 어쩌다가 집중력 없는 경기를 한 날은 살짝 혼낸 적이 있다고. 양준혁 본인 주장으로는 2002~2003년의 어마어마했던 삼성 타격기록에는[36] 자기가 잡아준 분위기도 한 몫이 있다고 한다.

통산기록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부문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에서 사사구를 가장 가치있게 여긴다.

박재홍과 함께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통산 우승 3회로 공동 1위다. 2006년엔 결승전에서 홈런을 하나도 못때리는 바람에 이택근이 고작 홈런 1개 때리고 우승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투수나 피칭머신이 던지는 공은 살아있는 공이라 홈런을 때리기 어려워 컨택에 집중하지만 홈런 레이스 때는 죽은 공을 때리기 때문에 편해서 홈런이 잘 나온다고. 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최훈이 프로야구 카툰 연재를 시작한 후 최초로 한 회차를 모두 할애해 은퇴기념 카툰을 그렸다. '양신'을 떠나보내며 더구나 패넌트레이스가 끝나갈때 그렸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일일연재가 아니라 매주마다 8개 구단을 모두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다. 이 후 카툰과 관계없이 양준혁을 따로 그려내면서 은퇴를 아쉬워했다. 그림 주소

안지만이 1군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 안 된 시절에 강영식과 함께 힙합모자 대결을 했다. 결론은 안지만이 승리했고, 그 이후 안지만 본인의 엉덩이로 편 모자를 구부렸더니 양준혁이 손수 펴주면서 "구부리면 죽인다"라는 말을 남기셨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안지만은 매일 힙합모자를 쓰게 되었다.

2010년 은퇴식 때 랩퍼 MC신건이 헌정곡 "위풍당당 양신"을 발표하였다.

1969년 생 동갑내기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신태용과는 영남대학교 88학번 동기로 상당히 친한 친구다. 영남대학교 재학 시절 야구부와 축구부의 식당과 샤워실이 같은 건물에 있어서 자주 마주친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신태용은 야구를 보고 ‘스포츠’가 아닌 ‘레포츠’라고 부른 최초의 인물이다.

유명한 낚시광이다. 낚시TV에도 종종 출연했을 정도. 하지만 본인이 말한 여자 낚시...

현역 시절에는 야구 팬덤에서 이종범과 자주 라이벌로 엮였다. 사실 타순도 포지션도 달랐지만 1993년에 같이 데뷔한 대졸 신인이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으며 호남팀 해태(KIA) 타이거즈의 이종범 vs 영남팀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이라는 자연스러운 라이벌 구도도 있었다. 게다가 둘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야수들로 경력을 쌓아갔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각종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특별한 친분도 없고, 라이벌 의식도 느끼고 선수 생활을 하던것은 아니었다. 말년 즈음엔 둘다 방송도 좀 더 타고 여유가 생기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하는 편. 은퇴 후에는 장난 반, 진담 반을 섞어서 서로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잘했지.'라고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팬덤에서는 2017년 기준으로는 바람의 손자를 아들로 둔 바람의 아들이 우세하다는 드립을 내세우기도 한다.

패션센스는 별로 좋지 않은 편인데, 아저씨답게 배바지를 좋아한다. 유니폼도 바지 바짝 끌어올려 배바지 스타일로 입으신 분. 야구계에서 배바지로 유명한 사람은 선동열 감독이 단연 유명한데, 양신도 한 배바지 하신다. 오죽하면 자선야구대회에서 이여상이 배바지를 흉내내서 타석에 나왔을 정도. 야구내적으로는 매우 사이가 안좋은 양준혁과 선동열이지만, 패션센스는 통하는 게 있는 듯 하다. 가히 KBO 패션테러리스트계 투타 원탑이라고 할 수 있을 듯.

9.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기록.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기록. 푸른 글씨는 KBO 리그 역대 최고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삼성 라이온즈 106 381 .341
(1위)
130
(5위)
27
(3위)
1 23
(2위)
90
(2위)
82
(2위)
4 69
(3위)
.598
(1위)
.436
(1위)
1994 123 427 .300 128 21 1 19
(4위)
87
(1위)
62 15 63
(공동 5위)
.487 .386
(5위)
1995 125 438 .313
(4위)
137
(5위)
34
(1위)
1 20 84
(3위)
81
(2위)
8 83
(1위)
.532
(2위)
.417
(3위)
1996 126 436 .346
(1위)
151
(1위)
33
(1위)
2 28
(2위)
87
(2위)
89
(2위)
23 88
(2위)
.624
(1위)
.452
(2위)
1997 126 442 .328
(3위)
145
(5위)
32
(3위)
5
(5위)
30
(2위)
98
(2위)
94
(5위)
25 110
(1위)
.627
(2위)
.455
(2위)
1998 126 456 .342
(1위)
156
(1위)
30 1 27
(5위)
89
(5위)
80 15 92
(2위)
.590
(4위)
.450
(1위)
연도 소속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해태 타이거즈 131 496 .323 160 23 1 32 105 96 21 87
(4위)
.567 .421
(4위)
연도 소속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LG 트윈스 117 432 .313 135 30 2 15 92 79 15 78 .495 .415
(4위)
2001 124 439 .355
(1위)
156
(3위)
20 3 14 92 79 12 81 .510 .449
(3위)
연도 소속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삼성 132 391 .276 108 23 2 14 50 60 2 44 .453 .349
2003 133 490 .329
(4위)
161
(3위)
37
(2위)
2 33
(5위)
92 90 2 55 .614
(3위)
.395
2004 133 479 .317 152 30
(3위)
0 28
(4위)
103
(4위)
95
(2위)
5 102
(3위)
.553
(3위)
.434
(4위)
2005 124 394 .261 103 15 1 13 50 61 10 67 .404 .367
2006 126 413 .303
(5위)
125 31
(1위)
1 13 81
(2위)
63 12 112
(1위)
.477
(5위)
.445
(1위)
2007 123 442 .337
(2위)
149
(2위)
34
(1위)
0 22
(4위)
72 78
(4위)
20 98
(2위)
.563
(2위)
.456
(2위)
2008 114 385 .278 107 16 2 8 49 49 1 53 .392 .364
2009 82 249 .329 82 16 0 11 48 51 3 67 .526 .464
2010 64 142 .239 34 6 0 1 20 10 0 31 .303 .371
KBO 통산
(18시즌)
2135
(3위)
7332
(4위)
.316 2318
(2위)
458
(2위)
25 351
(2위)
1389
(2위)
1299
(2위)
193 1380
(1위)
.529 .421
(5위)
  • 2318 안타 중에 내야안타가 159개다. 양준혁은 타격 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선수로 유명했는데 아웃 여부와 상관없이 1루 전력질주는 프로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고, 내야안타 159개가 없었으면 자신은 2할9푼대의[37] 평범한 타자(?)[38]로 선수생활을 끝냈을 것이며 이러한 내야안타가 밑바탕이 되서 9개 부문에서 통산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하지만 지금은 콩준혁이 되고 말았다. 9개부분 중에서 5개[39]홈런왕께서 사정없이 다 깨부수고 경기수는 정성훈에게 깨졌고, 8807타석 7332타수 2318안타의 최다 타석과 타수 및 최다안타도 LG의 레전드에 의해 깨졌다. 마지막 남은 사사구도 현재 김태균이 1141개로 양준혁과 239개 차이가 나서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마저 깨지면 진정한 콩준혁. 지못미 허나 여기 거론된 타자들 모두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여 병역면제를 받아서 이렇게 대기록에 근접했다. 반면 양준혁의 대기록은 상무 야구단방위병을 거쳐 군복무를 해서 5년을 날리고 만 24세 다소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방위 복무 중 데뷔)한 것을 고려하면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승엽일본프로야구에서 8년 동안 뛰어 KBO 통산 기록을 누적하지 못했고, 김태균도 2년간의 일본 생활이 있었고, 박용택도 대학졸업 후 만 23세에 프로에 뛰어 들었기 때문에 딱히 양준혁만 누적에 손해가 컸다고 볼 수는 없다.
  • 다만 최다 사사구(BB + HBP) 기록은 당장은 깨질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1,278개의 볼넷이라는 것이 워낙 수치가 커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기록인 데다가 애초에 볼넷이라는 것이 선구안도 좋아야 하고, 유인구에도 잘 속지 않아야 하니 매우 어렵다. 그 때문인지 양준혁이 제일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나마 김태균이 사사구 최고기록에 더 나아가고 있긴 한데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2017년 이후 부상 등으로 인한 부진 탓에 기록 달성에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다. 물론 몸에 맞는 공은 마그넷정이 압도적인 1위이지만.[40]
  • 또한 고의사구150개로 역대 1위인데, 이건 향후 몇십 년 동안은 절대 깨지지 않을 역대급 기록이다. 애초에 당장 KBO에서 고의사구를 100개 이상 기록한 선수는 양준혁과 김기태(129개)를 포함해 단 2명 뿐이고 심지어 90개 이상 기록한 선수도 이 둘 뿐이다. 그나마 현역인 김태균이 통산 6위긴 한데 그 6위라는 기록이 77개로 양준혁 기록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며, 통산순위 20위권에 들어온 현역 이대호(8위), 최형우(10위), 김현수(15위)는 아예 양준혁 기록의 절반도 못 채웠다. 게다가 이 4명 전부 나이가 30대를 넘겼고 그 중 3명은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어서 양준혁의 기록을 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엄청나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는 기록.

[1] 박한이와 타이 기록.[2] 김광석 거리로 유명한 방천시장 출신이며, 출생 당시에는 남구 대봉동이였다. 본적지는 전라남도 해남.[3] 1936년 전남 해남 출생. 아버지는 내 야구의 힘[4] 어머니는 2017년 8월 10일 폐렴으로 별세.[5] 선수 시절엔 95kg였으나 은퇴 이후 살이 많이 쪘다.[6] 프로야구 역사상 초유의 지명 거부 후 상무 야구단 입대로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는 아무런 제제를 가하지 않았고 어물쩡 넘어가버렸다. 결국 쌍방울만 억울하게 지명권을 날린 사례.[7] 만약 쌍방울에 입단했었으면 김기태와 쌍포를 이룰수도 있었고 쌍방울의 역사도 달라졌을것이다.[8] 상무에서 6개월 복무 후 방위병 전환하면서 다음해 드래프트에 다시 나와서 삼성의 1차지명을 받았다. 이때문에 삼성과의 밀약설이 퍼졌으나 양준혁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도 부인하고 있다.[9] 홈런~홈런~양준혁!양준혁![10] J 가일스 밴드의 Come back의 전주를 사용했다.[11] 삼성으로 돌아온 2002년부터 쓰기 시작했다.[12] 장성호가 "제가 이진영선수보다 (머리가) 큰데, 제 위로 (머리가 더 큰) 양준혁 선배님이 계신다."고 한 적이 있다.[13] 하지만 은퇴 후 각종 흑역사들이 발굴되며 엠엘비파크에서는 양아치, 양파. 디씨 등지에서는 양형, 양가놈, 양 얼굴의 사나이, 양쯔쯔, 양대갈비 등의 안 좋은 별명이 순식간에 붙어 버렸다. 은퇴 후 성명 라이센스권과 관련된 문제로 게임 등의 매체에서 양준혁의 이름이 장남식 장가놈으로 잠시 바뀐 사건 때문에 장남식이라고도 불린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양준혁/사건사고 문서 참조.[14] 야구글러브 한 개 사지못할 정도로 집안이 어려워 야구를 못할뻔 했으나 양일환이 하나 구해줘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삼성을 선택한 데에는 양일환이 삼성 선수였던 부분이 크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15] 당시에 입단 동기로 신인왕 경쟁자가 이종범, 박충식, 구대성, 이상훈이었다.[16] 신인왕+홈런왕이라면 1996년의 박재홍이 있다. 이 둘은 프로야구가 생긴지 40년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가 최강의 신인타자였나 다툼을 할 만 하다.[17] 야갤 등지에서는 해설가 양준혁을 상징하는 감탄사(?)로 통한다. 뭔가 김빠진 듯한 억양이 포인트.[18] 사실 이 쓰리런 당시 이병규 본인도 이 타구에 기대하지 않았는지 뛰지도 않고 실망한 것으로 보아 해설진들 또한 홈런으로 생각하지 않은 듯. 실제로 타격음도 "틱"하면서 좋지 못했다.[19] LG 트윈스 시절 주장도 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었던 일도 있고, 이 날의 해설로 인해서 양준혁은 삼성출신선수로서는 매우 드물게 LG팬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선수이기도 하다.[20] 한효주, 최효종과 동반 출연[21] 삼성카드 S클래스라고, 신세계, CJ삼성 관계사 혜택이 많다고 광고하는 카드였다.[22] 정작 중계에서 이 멘트를 시전한 정용검 본인도 아직 미혼이다.(...)[23] 동갑인 김기태는 결혼 25년차, 큰아들이 1997년 생으로 대학생이다. 심지어 1년 연하 이종범은 이미 아들 이정후가 프로구단에서 뛰고 있다.[24] 대표적인 예가 2010 시즌의 이대호, 2012 시즌의 박병호, 2017 시즌의 김선빈.[25] 이쪽의 예는 박찬호를 들 수 있겠다.[26] 박석민은 겨우 만 21세에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봤다. 게다가 방송자료를 보면 박석민 뒷편에 양준혁 본인이 박한이와 엮어 준 조명진씨가 보인다.[27] 그런데 이정후는 이종범 vs 양준혁 떡밥 질문 때 양준혁 편을 들어준다.[28] 2002년 국가대표시절에 달던 등번호가 20번이다.[29] 실제로 김응용 감독과는 각별한 관계로 여긴다고 한다. 선수로 뛰던 시절에도 2번이나 자신을 찾아준데다가, 2010년에 본의 아니게 은퇴로 내몰렸을때도 김응용 前사장만큼은 영구결번 즉시 지정, 역대 최대 규모의 은퇴식 등 유독 양준혁을 챙기기도 했고.[30] 6분 56초부터[31] 참고로 위키백과에 등록된 알찬 글에서 사진이 모두 없어지면 알찬 글 항목에서 해제된다. 그럼에도 양준혁 한국어판 문서가 알찬 글에서 해제되지 않은 것은 데뷔 시절 이래 자료가 빈약했으니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32] 장외홈런은 아니라고 한다.[33] 그래프나 표 등의 데이터를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과목이다. 일반적으로 PSAT 3개 영역 중 평균 점수가 가장 낮다.[34] 맞는 보기를 고르라는 문제였는데, 보기 ㄴ이 1997~2007년 중 Y선수의 타율이 0.310 이하인 해는 4번 있었다. 였다. 물론 틀린 보기로, 4번이 아니라 3번이다. 어?[35] 당시 주장은 냉동님 김한수 였다.[36] 이마양 항목에 나오는 그 시기다. 이승엽 뿐만 아니라 마해영도 엄청난 활약을, 그리고 양준혁 본인도 활약했고 다른 삼성 타자들도 상당히 잘 했던 시기. 페넌트레이스는 엄청났다. 근데 포스트시즌에서..[37] 정확히는 .294[38] 은퇴 선수 중 통산 .290 이상의 타율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은 김기태, 김재현, 마해영, 박정태, 이만수 정도로 레전드 반열에 올라선 선수들 뿐이다. 즉 양준혁에게 있어 2할 9푼 정도로는 평범한 타자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 양준혁의 겸손함과 프로정신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39] 최다 2루타·홈런·타점·득점·루타[40] 최정은 사구는 많은데, 볼넷은 적은 편. 물론 최정이 현역 레전드라 다른 레전드들과 비교해서 적은거지, 전체적으로 평굴 선수들에 비해 적은 건 당연히 아니다. 최정의 통산 출루율은 3할 8푼에서 9푼대를 유지한다. 대신 통산 사구 페이스가 은퇴전 300개는 될 수준이라, 700볼넷만으로 1000사사구가 가능할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