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9 12:38:44

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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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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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8 200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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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KBO 리그 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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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KBO 리그 구원왕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8번
팀 창단 조규제(1991~1998) 가내영(1998~1999)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박정현(1988~1998) 조규제(1998~2000) 배힘찬(2002~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박정현(2000) 조규제(2001) 정대현(2002~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가내영(2000~2001) 조규제(2002) 제춘모(2003~2004)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7번
서성민(1999~2002) 조규제 (2003) 박준수(2004~2007)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김경언(2002~2003) 조규제(2004~2005) 장문석(2006)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8번
결번 조규제(2006~2007) 결번
우리 히어로즈 등번호 72번
팀 창단 조규제(2008) 이광근(2009~2011)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1번
김응국(2008) 조규제(2009~2011) 최창호(2012~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76번
이광우(2006~2009) 조규제(2011~2013) 한혁수(2014)
LG 트윈스 등번호 78번
이희성(2012~2013) 조규제(2014) 윤학길(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8번
카도쿠라 켄(2017) 조규제(2016~2017) 오치아이 에이지(201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5번
류중일(2000~2016) 조규제(2018~)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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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75
조규제 (曺圭帝 / Kyu-je Cho)
생년월일 1967년 10월 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금광초-군산중-군산상고-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1차 지명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
현대 유니콘스 (1998~2000)
SK 와이번스 (2001~2002)
현대 유니콘스 (2003)
KIA 타이거즈 (2004~2005)
지도자 현대 유니콘스 2군 투수코치 (2006~2007)
히어로즈 2군 투수코치 (2008~2010)
넥센 히어로즈 2군 재활코치 (2010)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1~2012)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2)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3)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3)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14)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투수코치 (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17~현재)
프런트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원 (2015)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프런트 경력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의 마무리 투수이자 현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1991년 쌍방울 입단 동기로 시작해 1998년 현대로 함께 현대로 이적했고[1], 박경완이 FA 자격으로 SK로 이적했을 때 박경완의 보상 선수로 잠시 머물던 현대에 다시 지명되는 등 박경완과 인연이 깊었다.

전성기 때는 전주특급[2], 쌍방울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2. 선수 경력

원래 오른손잡이었지만, 중3 때 장난삼아 왼손으로 피칭한 것이 140Km/h 가까운 속도를 내자 아예 좌완으로 전향했고, 군산상고 시절 전국구 좌완 에이스로 명성을 날리며 동대문을 평정(...)하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에도 국가대표로 꾸준히 활약을 보였으며 170cm에 불과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140킬로 중반대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유니크한 좌완투수였다.[3][4] 우선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쌍방울로서는 연고지 전주 출신 조규제는 이미 찜해놓았고, 해태가 1차 지명자로 오희주[5]를 선택하며 2차 지명 최대어로 나온 김기태 역시 자동으로 획득한 상태였다. 다만 이때 조규제는 2차 1순위로 지명하면 절대로 입단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당당하게 1차 지명자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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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첫 해에 규정이닝을 채우며 1.64의 평균자책점에 27세이브를 기록하여 팀 동료 김기태를 제치고[6] 신인왕에 오른다[7].

참고로 조규제의 데뷔 시즌 WAR는 KBO 역대 신인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8] 특히 선동열의 프로 입단 후 6년간 아무도 선동열의 평균자책점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는데, 조규제는 모처럼 선동열과 평균자책점 경쟁을 하는 선수였다. (선동열 1.55, 조규제 1.64)[9]

시즌 후 한일 슈퍼게임에 참가했고, 1차전에서 5회 선발 박동희 다음으로 등판하여 2아웃까지는 잘 잡았지만 일본의 3/4번 타자인 아키야마 코지오치아이 히로미츠에게 연속타자 홈런을 맞으면서 체면을 구겼다.[10] 이 일로 '국내용'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셈.[11]

입단 초 보직은 선발 투수였고, 빙그레 이글스와의 데뷔전에서 송회장님[12]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쌍방울의 구원진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의 지시로 클로저로 전향했고, 이 후 김현욱[13]과 함께 쌍방울의 구원투수진[14]을 책임지다시피하며 매년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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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그러던 1998년 8월, 현금 3억+박정현+가내영과 맞바뀌어 현대[15]로 이적했고, 현대에서 2(+1)개의 우승반지를 수집했다.

현대 이적 초기에는 선발투수로 뛰었다. 199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우타자만으로 타선을 구성한 천보성 감독의 LG 트윈스 및 상대 선발 투수였던 손혁에게 완패했다. 1999년 마무리 조 스트롱이 미국[16]으로 돌아가자 마무리로 전업했지만,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 선발로 돌아왔다. [17]

2000년에는 좌완 신인 마일영[18]이 입단하고, 고질적인 목부상으로[19] 9경기에만 출장하는 등 김동식스러운 모습을 선보이면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우승반지를 또 가져갔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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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결국 신생팀 SK의 전력 보강을 위해 우승 팀에서 선수 2명을 현금트레이드로 영입이 가능하다는 지원책 덕분에, 2001년 초 조웅천[21]과 함께 현금 15억원[22]에 SK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났다는 예상과는 달리 노익장을 과시하며,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며 당시 약했던 SK의 투수진에서 쌍방울 시절의 후배 오상민[23]과 함께 전천후 좌완으로 활동하였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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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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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하지만 2002 시즌 후 박경완[25]의 보상 선수로 다시 현대로 옮겨가게 되었고, 2003년 한 시즌은 현대 유니폼을 입고 뛰며 그 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올라 3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한 후우승 운은 참 좋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계약기간 2년, 총 4억 5000만원에 KIA 타이거즈와 계약해 2004 시즌부터 KIA에서 뛰었고, FA 계약이 만료된 2005 시즌 후 홍현우[26], 이강철[27] 등과 함께 KIA에서 방출당해 그대로 은퇴했다.

SK 시절이던 2002년 8월 1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 1사 2루서 등판, 1⅔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프로 통산 150세이브(역대 세 번째)고지를 밟았다.[28]

3. 지도자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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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200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 2군에서 투수코치를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 넥센 팬들에게도 KIA 팬들에게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며[29], KIA로 이적할 당시 넥센 팬들이 많이 아쉬워했을 정도. LG 감독을 맡은 김기태도 노리고 있다 카더라 그래서 데려갔지만 정작 본인이 도주했다.

3.2. KIA 타이거즈 시절

2012 시즌까지 KIA의 1군 투수코치를 담당했던 이강철 코치가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면서 2013 시즌부터 KIA의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KIA의 방어율이 8위가 되면서 선동열, 김용달과 같이 까이고 있다. 결국 8월 17일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김용달, 정회열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10월 5일에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이순철, 박철우, 김평호 코치와 더불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30]

당시 외야수로 입단해 변화구 대처와 수비에 어려움을 겪던 김윤동에게 투수 전향을 권유했다.[31]

3.3.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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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2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다는 보도가 났다. 이에 대해 LG 트윈스 갤러리 등에서는 김기태 감독과의 친분으로 데리고 온 것인데 걱정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일단은 건강 문제로 1군에서 빠진 차명석 코치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영입인 모양. 그러나 2군 투수코치로 부임이 되었고 팬들은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1군 투수코치인 강상수의 무능을 한탄하였다.[32]

그러나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2군 코치 개편의 일환으로[33][34] LG 트윈스에서 해임되었다, 여담으로 이 무렵 LG에서는 2군 투수코치로 윤학길을 영입했다.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에서 영화 파울볼을 다룰 때, 패널로 출연한 고양 원더스 선수 이지훈[35]이 원더스에 오기 전인 LG 2군 시절에 전라도 출신 투수코치가 동향인 광주나 전라도 출신 선수들만 편애했다고 말했는데, 당시 LG 1,2군 투수코치를 통틀어 전라도 출신은 조규제밖에 없었다.[36]

3.4. 삼성 라이온즈 시절

허나 1년만에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 보직은 3군 투수코치. 그 후 2017년 시즌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2018년부터 등번호가 류중일 감독이 삼성 감독 시절 사용하던 번호인 75번으로 바뀌었다.]

4. 프런트 경력

2015년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관으로 활동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1 쌍방울 레이더스 49
(2위)
142⅓ 9 7 27
(1위)
0 1.64
(2위)
70 61 133
(5위)
1992 30 54 7 7 8 0 3.17 48 26 65
1993 41
(5위)
88⅔ 1 4 23
(3위)
0 1.42 51 37 96
1994 44
(4위)
98⅓ 2 8 24
(4위)
0 2.39 69 43 93
1995 8 10⅔ 0 1 3 0 5.06 11 7 9
1996 48 59⅔ 5 5 20
(3위)
0 1.81 41 28 74
1997 52 77⅔ 4 6 28
(2위)
0 2.90 64 27 7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8 현대 유니콘스 40 56 5 4 2 0 4.18 65 17 40
1999 17 56 6 2 2 0 5.95 62 23 52
2000 9 4⅓ 0 0 0 3 2.08 2 2 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SK 와이번스 46 106⅓ 8 9 9 3 3.55 90 38 75
2002 46 78⅔ 6 8 6 3 4.23 81 37 6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현대 유니콘스 36 40 0 3 0 4 5.63 39 36 41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4 KIA 타이거즈 38 21 1 0 1 5 2.14 11 5 18
2005 4 1 0 0 0 0 36.00 5 3 0
통 산 508 894⅓ 54 64 153
(7위)
18 3.07 709 390 838

[1] 실질적으로 박경완은 97 시즌 후에 트레이드가 된 상태였다.[2] 야구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컨디션 최상 그 이상 높은 100% 보조를 받는 능력치, 한 때 별명이다 보니 반영 된 듯으로 추측, 이사만루에서는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완산특급'이 스킬로 되어있다.[3] 위키를 보면 8, 90년대에 죄다 150킬로를 던진 것처럼 헛소리를 적어놨는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최고구속 145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프로야구 전체를 통털어 10명 남짓한 시절이었다. 그 시대 조규제는 본적도 없으면서 중학교때 150을 던졌다는 뻥구라는 해도해도 너무한 듯.[4] 물론 조규제는 대학 시절 최고 146~147Km까지 나왔다는 평이 있었으며, 당시 이 정도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최정상급 좌완 강속구투수였다. 90년도 즈음엔 최고구속 140Km만 넘으면 정통파 투수로 인정받던 시대였다.(평균 140이 아니다!) 당시 한국에서 최고구속 145Km를 넘는 좌완은 프로에서도 송진우와 가을까치김정수 둘 뿐이었다. (물론 아마야구의 괴물 좌완 구대성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152Km을 던져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5] 그 오희주는 해태와 LG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조규제와 김기태 보다 못했으며, 심지어 자기관리에 실패하며 결국 방출의 쓴 맛을 보고 만다. 어찌보면 해태 타이거즈1차 지명가장 흑역사를 보여준 일과[6] 대신, 김기태는 이승엽 이전 94년 좌타자 최초의 홈런왕과 처음이자 마지막인 타격왕을 차지한다. 이 홈런왕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홈런인데. 바로 방위병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성적을 낸 것이다.[7] 9승 중 2선발승을 거두었다[8] 링크된 순위가 2015년 기준이지만 2019년에도 여전히 1위이며, 류현진급의 괴물투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대단한 기록이다. 상위에 랭크된 대부분의 선수들은 투수보직과 관리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크게 뒤떨어지던 시절에 혹사를 당하면서 활약한 기록이며, 리그수준의 상승에 따라서 포지션을 떠나 신인이 괴물같은 활약을 보이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포텐 있는 선수는 고졸 후 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 당연시 된 요즘은 피지컬 완성도와 체력적인 문제로 1년 내내 1군에서 꾸준히 맹활약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당장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2017 이정후의 WAR이 3점대이며, 역대급 천재로 주목받는 2018년 강백호는 2점대이다.[9] 이후 2년 뒤 OB 베어스 신인 마무리 투수 김경원1.11선동열평균자책점 1위 경쟁을 한다.[10] 1차전 객원해설을 맡았던 장훈이 체구가 작은 걸 보니 구원투수인 거 같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11] 2006년 WBC가 열리기 전 까지만 해도 한국이 일본에게 이긴 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면 원로 야구인들에게 아직도 회자 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2 단 한 경기이고 20세기 초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의 일본 야구팀, 2000년대에 들어 현재로 유명한 베이징 올림픽/야구 이런 것들 밖에 없었다.[12] 송회장님은 데뷔 승리가 완봉승을...[13] 불펜 사상 첫 20승 투수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14] 투수난이 심각하여, 에이스 김원형과 2선발 김기덕도 가끔 구원진에 추가되었다.[15] 이 당시 국내는 IMF였는데 머니 파워중에서 가장 꿀리지 않는 팀이 현대, 두번째가 삼성이였다.[16] 대신 스트롱은 41세의 나이로 2000년 당시 가장 늦은 메이저리그 최고령 신인으로 데뷔를 했다.[17] 4월 말 이후에는 김수경이 기용되었으나 역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쳐 정명원이 다시 마무리로 돌아왔다.[18] 마일영은 원래 쌍방울이 지명했지만, 돈이 없어 5억원에 지명권을 양도했다. 이후, KBO는 신인 지명권을 현금으로 양도하는 일을 금지 시켰다.[19] 이로 인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20] 현대의 당해년도 좌완은 김홍집마일영 두 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죄다 우완 투수들 밖에 없었다. 사실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발 10승을 기록한 좌완투수는 오재영장원삼 둘 뿐이다. 마일영은 중간계투에서 얻은 것이 반이다.[21] 전년도 신설된 초대 홀드왕에 등극했고, 현대왕조의 허리를 지탱하는 리즈시절이었다.[22] 초창기와 달리 중반기의 현대는 자금난으로 망해가고 있었다.[23] 오상민은 쌍방울 시절에 조규제와 한 시즌 반 정도 같이 있었고 SK에 온 조규제와 다시 한 시즌간 함께 하였다, 이미 그는 당시에 검증된 믿을맨이였다.[24] 2001년 전천후로 46경기에서 106⅓이닝을 던졌고 2002년에는 46경기에서 78⅔이닝을 던졌다.[25] 현대에서 두 번의 우승을 맛 본 동료였고 무엇보다도 쌍방울에서도 동고동락을 한 후배였다.[26] 특히, 홍현우의 경우 LG에서 먹튀 행각을 벌이다가 고향 팀으로 반품 트레이드 왔다. 그러나 거기에 딸려서 선수가 큰 대박터트렸다[27] 200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거대한 삽질을 하며, 노쇠화가 진행 중이였다[28] 그의 역대 최소경기 100 세이브는 조용준에 의해 깨졌다. 단, 조용준의 통산 세이브는 116개에 그쳤다.[29] 본인과 마찬가지로 좌완인 심동섭에게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끊임없는 잔소리 토렌트 주소도 있다[30] 더군다나, 이들은 모두 타어강을 경험하며, 기아 팬들에게 뭇매를 맞던 시기였었다. 다행히, 이순철 수석코치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며 박철우 코치는 두산 베어스에서 타격코치를 하며 아들인 박세혁의 타격을 봐주며 부자가 한 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김평호 코치는 NC 다이노스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루 코치를 맡고 있다.[31] 그렇게 전향을 권유 받은 제자는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다.[32] 결국, 2019년 시즌은 KIA 타이거즈로 갔지만, 거기서도 투수진들이 부진하고 있다.[33] 김기태 전 감독의 색채를 지우기 위해서 일어난 코치진 정리였다.[34] 이 시기에 해임된 이홍범, 계형철 코치는 김기태 감독과는 쌍방울 시절에 인연이 있었고, 김선진, 박준태, 김인호 코치는 모두 김기태 감독의 광주일고 선배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갈려나간 2군에서 살아남은 김기태의 인맥이라 할 수 있는 코치는 신경식 타격코치밖에 없다.[35] 2014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으나 시즌 중 방출 통보를 받고 고양 원더스에서 훈련했다.[36] 근데, 엄밀히 말하면 전라도 지역은 예로부터 팜이 좋아서 지명 받는 선수들이 꽤나 있었다. 허나, 그 조규제는 발굴하는 능력이 좋은데 선수 편애라기 보다는 선수 자질이 먼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