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0 17:51:35

임태훈(야구선수)

임태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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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리그 신인왕

두산 베어스 등번호 51번
최준석(2006) 임태훈(2007~2015) 김동한(201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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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임태훈(林泰勳)
생년월일 1988년 9월 28일
체격 182cm 90kg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역삼초 - 이수중 - 서울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7년 1차지명 (두산 베어스)
소속 팀 두산 베어스 (2007~2015)
후쿠이 미러클 엘리펀츠 (2015~2018 )
등장곡 긱스 - 어때 (Feat. 하림)[1]

1. 소개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2.2. 2007년2.3. 2008년 ~ 2009년2.4. 2010년2.5. 2011년2.6. 2012년2.7. 2013년2.8. 2014년2.9. 2015년2.10. 그 이후
3. 기타
3.1. 광저우 아시안게임 관련 여담3.2. 게임에서의 묘사
4. 통산 성적

1. 소개

두산 베어스의 투수. 2015년 6월 두산 베어스에서 임의탈퇴 되었고 같은 해 8월, 일본 독립 리그 구단인 후쿠이 미라클 엘리펀츠에 입단했다. 지금은 퇴단하여 무적 상태로 남아있다.

트레이드 마크로 로진을 바르고 또 바르고 불고 또 바르는 습관때문에 검은 모자가 하얀 색으로 되버린다. 안개 투구 취미손에 쥔 로진 불기.

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으나 하필 그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손을 대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어머니마저 식당 일에 가사 도우미까지 뛰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고 임태훈 본인도 신문을 돌려야만 했다.

결국 형편 때문에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야구를 계속했고, 공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주변에서 프로 행을 권할 정도까지 실력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공부도 꽤 잘했던 듯 하다. 당시 스카우터들 평가가 책을 손에 놓지 않는 투수였다고. 출처

2.2. 2007년

파일:20070124-001.jpg
혜성같이 등장한 두산의 기둥.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 이용찬과 입단 동기이다. 입단 첫해부터 101.1IP 7승 3패 1세이브 20홀드 ERA 2.40 93K를 기록, 2007년 신인왕을 거머쥐며 두산을 한국 시리즈까지 이끄는 데에 큰 공헌을 한다. 비록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참고로 임태훈 이후로 순수 신인 출신 신인왕 수상자는 2017년 이정후가 수상하기까지 10년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 시즌의 기록은 역대급 혹사라고 보아도 될 정도의 심각한 혹사였다. 임태훈은 1차 지명된 투수였고, 1차 지명된 투수는 고교 시절 날리던 에이스였을 것이다. 고교 에이스는 대부분 고교 시절에 죽어라 굴려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그렇기에 고졸 1년차 투수는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김경문은 고졸 1년차 투수를 순수 불펜으로 100이닝을 채운 것이다. 고졸 1년차 투수가 불펜으로 100이닝을 채운 것은 임태훈을 제외하면 없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사례가 10대였던 2011년도의 임찬규가 있지만 임태훈과 비교하면 18과 2/3이닝이나 차이가 난다.

2.3. 2008년 ~ 2009년

그리고 2008년에도 솔리드한 활약을 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팀에 뽑히나 했지만 직전에 윤석민으로 교체, 병역 특례를 이른 시기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이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사이테러를 필두로 그야말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당시 대표팀 감독이 두산 김경문 감독이었기 때문에 전격 교체가 가능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임태훈과 윤석민 모두의 병역 특례가 걸려있던 문제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욱 컸다. 베이징 올림픽 우승 이후 제작된 특별 다큐멘터리에서 김경문 감독은 '엔트리 교체 이후 임태훈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코멘트를 할 정도였다.하지만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적중하여 올림픽 기간 한기주가 싸지른 불을 윤석민이 진압하는 성과를 거둔다. 허구연 해설 위원은 "윤석민 안데려왔으면 큰 일 날 뻔 했어"라 말할 정도였다.

2009년에도 맹활약하여 11승 5패 4세이브 13홀드 3.06ERA를 기록하였다. 특히 이 당시 철벽 불펜으로 활약하던 고창성-임태훈-이재우-이용찬을 일컬어 KILL 라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라인은 20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했다.

시즌 말 허리 통증 때문에 9월 내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 필승조로 매일 출근하며 열심히 등판했다.

2.4. 2010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태훈(야구선수)/201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5. 2011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태훈(야구선수)/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용서받지 못할 스캔들로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고 시즌을 말아먹은 바로 그 해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6. 2012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태훈(야구선수)/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7. 2013년

허리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는지 2군에서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고, 피칭 내용도 좋지 않았다. 이 와중에 선수단이 초토화된 한화 이글스와의 트레이드 루머가 돌기도 했다. 카더라에 따르면 유창식 (+ 현금) ↔ 정수빈 or 김재호 or 고영민 + 임태훈이었다고 한다.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았기에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그런데 5월 17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5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회말 1사 때 핵폭탄을 구원하러 등판하였다. 첫 타자 최진행에게 밀어내기 볼넷, 김태균을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김태완에게 좌익수 앞 2타점 적시타를 맞았고, 3회말에는 오선진에게 좌중간 1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4회말에도 최진행김태균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다시 김태완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1과 ⅔이닝 동안 2자책점을 기록하고 홍상삼으로 교체되었다.

5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변진수를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지만 1과 ⅓이닝동안 1피안타 3자책점으로 거하게 불을 지르고 내려갔다. 재미있는 것은 5월 18일과는 반대로 임태훈이 내보낸 주자들을 이혜천이 불러들이는 분식회계를 당했다는 것. 팀도 15:7로 완패.

5월 2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3:6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오현택 다음으로 등판했지만 1이닝 1실점으로 그냥 털리고 강판.

그러다가 6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7:2로 앞선 상황에서 4이닝도 못채우고 강판된 개릿 올슨을 다음으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앞선 경기에 비해서 비교적 잘 틀어막았으며 팀도 8:4로 승리하면서 올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6월 6일 LG 트윈스전에서 8회 의장대 출신의 다리 긴 남자에게 우월 솔로포를 맞고 결국 그날 팀이 졌다.

6월 11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에 등판해서 2실점을 헌납하며 또 털렸다. 거기다 박진만에게 통산 1500안타를 헌납했다.

6월 1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⅔이닝동안 탈삼진 4개를 잡았지만 5피안타 4실점을 당하여 강판되었다.

6월 22일 1군 엔트리에 말소되었다. 그리고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 콜업되지 못했다.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9경기 10⅓이닝 1승 1패에 평균자책점은 11.32이라는 막장 스탯으로 끝을 맺었다.

2.8. 2014년

스프링 캠프에 따라가긴 했지만 고질적인 허리와 골반 통증으로 중도 하차했다. 팬들은 꼬시다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도 불미스러운 일과는 관계 없이 작년의 성적과 비교해 보며 "쟤는 야구 선수 생활 오래 못 할 것 같다"며 한 입 모아 말하는 중. 확실히 이 상태라면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

최근 사진인데 자기 관리가 안 되는 것인지 살이 심하게 쪘다.

2군에서도 평균 자책점 5점대를 찍으며 부진했는데 8월 21일 삼성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 야구 팬들은 2군에서의 이런 막장 스탯에도 1군에 올릴 정도로 두산 투수진이 이렇게 비참해졌냐는 반응. 이 날 임태훈은 팀이 1:5로 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 1이닝 18투구수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3일 후에 바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송일수 감독은 야수 보강 차원에서 그랬다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이미 박살 난 불펜인데 야수 보강은 핑계고 여론 때문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는 반응.

9월 6일 SK전에 1:7로 뒤진 상황에서 3번 째 투수로 등판. 1이닝 동안 사구 2개 삼진 1개 무실점을 기록.

10월 16일 SK전에서는 선발 이현승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해서 5:1로 이기던 경기를 3피안타 2볼넷 4실점(이닝 없음)으로 동점을 만드는 승부 조작급 졸전을 펼쳤다.

2.9. 2015년

미국 전지훈련에는 허리 부상으로 불참했다고 한다.

5월 4일까지 2군에서 1승 1세이브 방어율 0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월 6일 한화 이글스와의 2군 경기에서도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냈다. 5월 9일 기준 1승 2세이브 4피안타 7K 2사사구 WHIP 0.75라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년 이맘때엔 2군에서도 탈탈 털렸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 발전하긴 한 것. 물론 딱 8이닝만 소화하긴 했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1군에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1군 등록 시 팬들의 반응이야 뭐...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5월 10일 기아전에서 1⅔이닝 39투구수 4사사구 4실점(4자책)으로 탈탈 털렸다. 방어율도 0에서 3.86으로 폭등.

5월 12일 1군 복귀 기사가 떴다. 그리고 기사가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 실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네팔에서 또 지진이 벌어지며 얼마 가지 않아 네팔 대지진이 실검 1등 자리를 먹었다.

12일 당일에 경기 출장 가능성이 있었으나 정지훈이 등판해 등판하지 않았고, 15일엔 두산이 7:1로 리드하고 있어서 등판 가능성이 생겼으나 경기 후반 갑자기 그 느린 정상호에게 문학에서 3루타를 맞는 등 게임이 개판이 되며 스코어가 7:6이 되자 또 등판하지 못했다. 결국 18일부로 홍성흔과 사이 좋은 2군 행.

2군에선 계속 출장했고, 5월 30일 기준 세이브 4개로 2군 1위지만 방어율은 4.96. 이건 딱 한 게임 삼성전에서 1이닝 5실점으로 탈탈 털렸기 때문이다. WHIP는 1.35로 준수한 편. 게다가 두산 불펜의 상태가 전부 메롱이라 콜업 가능성은 충분하다.

6월 중순까지 콜업되지 못했고, 2군에서 계속 세이브를 쌓아 세이브 6개로 전체 세이브 4위에 올랐다. 6월 16일 기준 성적은 1승 1패 ERA 4.29 6세이브 1홀드. 방어율만 좀 높지 볼삼 비율도 괜찮기 때문에 양현과 함께 계투 중에선 유력한 콜업 후보다.

2015년 6월 25일, 본인 요청에 의해 두산 베어스에서 임의탈퇴되었다. 두산 구단은 본인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며, 쉬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말이 은퇴를 암시하는 지는 불명확하나, 웨이버 공시가 아니라 임의탈퇴이기 때문에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은퇴라는 표현을 쓴 기사도 있다. 결국 허리 부상이 발목을 잡았나 생각하던 의견은 하단의 사건으로 사라졌다.

하필 같은 날엔 최진행의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서 묻어가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선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 특례가 확정되었고, 기초 군사 훈련을 다녀온 지 4년이 경과되어 군대 가기 싫어서 버틴 거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는데 이미 예술 체육 요원의 복무 기간 34개월을 채워 예비역이 됐기 때문에 군대 가기 싫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34개월만 딱 채워선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기간을 더 채웠다는 의견도 있는데 당연히 진실인지는 불명.이라는 말이 있긴 한데, 선천성 허리분리증이면 대부분 전시근로역이다. 그러니까 금메달이 아닌 뭘 따도 군대는 안간다...[2]

2.10. 그 이후

며칠 뒤 사회인 야구에 가입했다는 자료가 올라왔다. 다만 일주일 후 철회

2015년 7월 5일, 임태훈의 전 여자친구라 주장하는 MLB파크의 회원이 임신, 낙태, 자살 암시 등의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내용의 글을 올렸으나 삭제되었고 관리자가 경찰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아카이브

7월 11일 새벽 2탄이 올라왔지만 삭제되었다. 캡처

7월 12일 저녁 3탄도 올라왔지만 삭제되었다. 캡처 그리고 임태훈은 해당 여성을 고소했다고 한다.

8월 6일 일간스포츠 단독 근황 기사 3부작으로 이는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본인은 임의 탈퇴 전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이 여자친구는 대만 프로 야구 정보를 찾아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 그런 여자친구에게 낙태 종용, 다른 이성과의 만남[3] 등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겨줬다는 점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것만 증명했다.

8월 14일, 일본 독립리그BC 리그 소속 후쿠이 미라클 엘리펀트(福井ミラクルエレファンツ) 입단 기사가 떴다. 대한민국 독립되기 전날 일본으로 떴다 일단 임태훈이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에 팬들은 격분했고, 위의 사건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웃는 표정으로 유니폼을 입은 사진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인간 쓰레기 확정. 이로 인해 한때 위키백과의 임태훈 문서가 반달당하기도 했다.

독립 리그 데뷔전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2015년 성적은 2승 무패 방어율 4.13. 2016년 기록은 17경기 7승 6패 58탈삼진 방어율 3.44.

2017년 4월 25일 기사에 따르면 2016년 말에 두산이 임태훈의 요청에 따라 임의탈퇴를 해제하고 방출했다고 한다. 족쇄는 풀렸지만 KBO 리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할 듯.

2017년 12월 88년생 야구선수들끼리 모여 이두환을 추모하는 일일호프를 할 때 임태훈도 참여했다고 한다. 야구선수들 사이에서는 버림받지 않은 듯. 이쯤 되면 영구실격이 아니기 때문에 KBO 리그에 복귀를 시도할지도 모른단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기점으로 안그래도 안좋던 허리가 완전히 맛이 간 상태라 특히 선수로 복귀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수렴한다고 보면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그냥 넘어갈 리 없는 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건 덤이고.

2018년 10월 24일, 4년간의 후쿠이 미러클 엘레펀츠 생활을 마쳤다.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

3. 기타

  • 특이하게도 포스트 시즌과는 악연이 깊었다. SK 와이번스김재현에게 약한 것도 그렇고 2007년부터 시작해서 두산의 우승을 위하여 묵묵히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6차전에서 김재현에게 홈런포를 맞았다.[4]
  • 이대호무릎팍도사에서 말한 바로는, 우승하자마자 랜덤으로 고르는 도핑 테스트에 당첨, 제대로 환호도 못하고 끌려갔다고. 그 당시 임태훈이 주최 측 도핑 요원에게 낙점을 받은후 시뻘겋게 열을 내면서 "나 이거 세레모니 조금 하고 들어간다고! 제발 좀 기다려달란 말야!!"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세리머니는 하고 TV에도 나왔고 도핑 테스트 받으러 갔다고 한다. 당시 동료들은 얘가 왜 금메달까지 받아놓고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인지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대호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다.
  • 선천성 허리척추분리증을 앓고 있어서 평소에도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5] 플레이오프에도 내내 진통제를 맞고 압박붕대를 한 채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평소에도 "허리야, 버텨줘!"라고 쓴 모자를 쓰고 나온다. 하지만 그 허리가 어떤 용도로 주로 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파일:external/sports.phinf.naver.net/dsb_6867.jpg

파일:external/sports.phinf.naver.net/kmh_98094.jpg
하지만 플레이오프 5차전에는 이 글귀가 "허리님...버텨주세요"라고 바뀌어 있는데, 잘 보면 싸인펜으로 지운 글귀는 "허리야, 버텨라!"이다. 이전 "허리야, 버텨줘!" 모자에서 새 모자로 교체했을때 "허리야, 버텨라!"라고 바꿨는데 준플 1차전에 그 모자를 쓰고 나와서 시원하게 털렸다.(...) 그래서 다시 이 문구로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5차전에서도 털림
  • 2013년 12월 19일 이두환을 기억하기 위한 일일호프에서 치킨을 서빙하는 모습이 찍혔다.
  • 2011년 9월 사과문을 두산 홈피에다 게시한 적이 있긴 하다. 이하는 사과문 전문.
안녕하십니까? 임태훈입니다.
먼저 프로야구 선수이자 공인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염려를 끼쳐드린 점, 팬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 동안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여름 군사 훈련을 마치고 2군에 합류해 합숙생활을 하면서
오직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에만 전념했습니다.

지난 8월 말 이천에서 2군 경기에 처음 등판한 날,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곳이 바로 마운드라는걸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정말 야구가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이제 용기내어 마운드 위로 걸어가려 합니다.
오늘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그리고 제 삶이라 할 수 있는 야구를 위해 오늘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 동안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목은 사과문인데 어째 내용은 자신이 힘들었단 말 뿐이고,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 2013 시즌 이후 한 장애유기아동 보호시설에 4년간 후원을 했다는 기사가 떴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 언플, 물타기 소리만 바가지로 먹었다. 게다가 2013 시즌의 삭감당해야 마땅한 개판 5분전 성적에도 불구하고 연봉 협상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팬들의 분노가 폭발, 최저연봉도 아깝다느니 방출감이라느니 무지막지하게 까였다. 이쯤 되면 구단을 아예 등쳐먹을려고 하는 수준이다.
  • 2014 시즌 후 양준혁 야구재단 주최 2014 제3회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종범신 팀 2루수로 출전, 혼자서 5타점을 기록해 종범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대다수 야구팬들은 다 좋은데 임태훈이 왜 나왔냐면서 깠다.

3.1. 광저우 아시안게임 관련 여담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국가대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많이 등판하지는 않았지만... 다만 여기서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으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에 불가피하게 김광현 대신 정우람을 거르고 대표팀에 승선하였다! 그리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사건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서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엔트리 교체때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컸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출장전 시즌 성적은 한마디로 엉망이었고, 이는 경쟁자로 꼽히던 좌완불펜투수의 이점까지 가진 정우람과 비교되어서 더욱 말이 많았다. 굳이 정우람이 아니라도 임태훈보다 성적이 더 좋은 후보군 투수는 많았다. 이닝 때문에 평균자책점 2위를 놓친 승률왕 차우찬, 팀 상황에 따라 보직을 바꿔가며 미친 듯이 굴려지면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이승호, 딱히 좋은 성적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임태훈보다는 좋았던 장원준 등등... 게다가 이 선수들은 모두 김광현과 같은 좌완이었다! 본인도 당연히 좌완이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하지만 결국 임태훈이 승선한 것은 성적보다는, 병역면제인 김광현 대신 같은 팀의 정우람이 승선할 경우의 논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에 대한 보상문제[6] 그리고 대표팀 감독은 임태훈의 교체로 대신 승선한 윤석민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조범현 감독이었다는 것 등등 실력 외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평이 당시에도 일반적이었다. 여러가지로 운이 맞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전에는 농담처럼 우승팀 멤버인 것이 죄라고 적혀있었지만, 우승팀 멤버라서라는 것은 그다지 영향이 없었다. 앞의 3가지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기 때문.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당연히 2010 시즌 도중에 열렸고, 2009 시즌 우승팀은 기아이고, 이것이 조범현 기아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된 이유였다. SK가 2010년 시즌에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을 해서 페널티를 줬을 리는 거의 없다.[7]

2010년의 정우람과 임태훈의 성적을 비교해보면, 홀드 3위+출장경기수 2위+평균자책 3점대 < 피홈런 1위+평균자책 5점대의 결과로 광저우 AG 국대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임태훈도 2008년에 윤석민에 밀려 베이징 올림픽 국대로 선발되지는 못했긴 하나, 적어도 정우람은 국대에 가서 운 좋게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들에 비해서는 차라리 양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게 정우람을 선발하지 왜 하필이면... 조뱀 이불킥 할 거리 더 늘었다 그나마 한기주는 혹사 전까지만 해도 특급 클로저였지만...

3.2. 게임에서의 묘사

이러한 행보를 반영했는지는 몰라도 마구마구에는 11 임태훈 카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논외로 마구마구에선 쏠쏠히 쓰이는 카드이다. 투구폼이 굉장히 역동적이어서 직구체력소모 잠재력 아기곰을 달고 155~160에 달하는 직구를 빵빵 쏘아대면 정말 치기 힘들다. 체인지업과 포크도 같이 붙어있는지라 떨공삼에도 좋다.

컴투스 프로야구 2012에서 국대 표시가 없는 선수가 되었다. 이는 송승준권혁도 마찬가지다.[8]

이사만루2019 KBO의 08임태훈 11성 엘리트 카드의 원래 최고 구속이 147, 직구 D / 슬라이더가 B를 보유하고 있다. 직구 한두 개 꽃아넣고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하면 십중팔구 범타나 삼진이 된다.이는 다음 시리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쓸 만한 강속구 계투가 없을 때 한두이닝 정도는 맡길 수 있으나 단점은 길게 끌고가기 쉽지않아 이닝을 적절히 끊어줘야 하며 3연투까지는 가능하나 그 이상은 힘들다.

4. 통산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7 두산 베어스 64 101⅓ 7 3 3 20
(2위)
2.40 77 41 93
2008 57 87 6 5 5 14
(5위)
3.41 69 28 83
2009 58 88⅓ 11 5 4 13
(4위)
3.06 67 27 85
2010 36 130⅔ 9 11 1 1 5.30 134 59 103
2011 19 19 1 1 7 0 3.79 16 8 13
2012 22 50⅓ 4 4 0 3 4.65 53 37 33
2013 9 10⅓ 1 1 0 0 11.32 18 11 13
2014 6 3⅔ 0 0 0 1 9.82 7 7 4
KBO 통산 271 490⅔ 39 30 19 52 4.00 441 218 427


[1] 공교롭게도 정형식의 등장 곡이었다. 두 선수 다 원 소속팀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지 생각하면... 게다가 두 선수 모두 백넘버가 51번이었다.[2] 훈련소를 갔다온 것으로 보아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을 수도 있다. 평시에 병역이 면제되고 훈련소도 안 가는 5급 이하는 메달 포상금, 연금은 나오지만 예술체육요원 편입이 안 되기 때문. 대표적으로 이승엽, 정대현 등은 올림픽 메달을 땄으나 5급 밑으로 신검이 떠 훈련소를 가지 않았다. 여튼 상무나 경찰 등 현역입대 대상은 아니다.[3] 카사노바짓을 했는데도 잘 살았다는 건...[4] 07년 페넌트레이스에서 임태훈이 선발로 나온 경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음에도 6차전에 선발로 올라가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쓰고 말았다. 참고로 5차전에도 구원등판해서 패전을 기록한 선수다.[5] 한대화도 같은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6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면...[6] 야구 관계자들은 한결 같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문제로, 당시 대표적으로 꼽히던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박기혁과 성적이 엉망이던 임태훈이었다. 박기혁은 얼마 뒤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서 말이 나왔지만.[7] 거의라고 쓰긴 했지만 당연히라고 보면 된다. 억지로라도 예상을 하고 출전시켰다고 생각하면 SK가 2007~2009년 3년동안 2연속 우승에 준우승도 한 팀이고 그 3년동안 계속 6할 승률을 지켰으며, 2010시즌도 아시안게임 전까지 승률 6할의 독보적 1위를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승팀 관련 패널티는 WBC에서 선수를 많이 뽑아가는 정도지, 아시안게임 등의 군면제가 걸린 국대에서 안 뽑아가는 일은 없다.그러나 요즘은 두산팬이 우승팀 패널티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다[8] 다만 이 둘은 2013 업데이트에서 국대 표시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