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2 10:08:09

고창성

고창성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등번호 48번
오재원(2007) 고창성(2008) 이원석(2009~2012)
두산 베어스 등번호 37번
장원진(1992~2008) 고창성(2009~2012) 원용묵(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37번
신재영(2012) 고창성(2013~2014) 이호중(2015)
NC 다이노스 등번호 1번
정성기(2013~2014) 고창성(2015) 김준완(2016~2017)
NC 다이노스 등번호 37번
이호중(2015) 고창성(2016) 정수민(2017~)
시드니 블루삭스 등번호 37번
Ryo Nishimura (2017) 고창성(2017) -
KT 위즈 등번호 39번
한승지(2016~2017) 고창성(2018) 김민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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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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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재기하지 못한 NC 다이노스 시절.

파일:kt 고창성.jpg
한시즌 뛰고 방출당한kt wiz 시절.
이름 고창성(高昌成 / Chang-seong Ko)
생년월일 1984년 12월 21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봉천초 - 홍은중 - 선린인터넷고 - 경성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우사우타
프로입단 2008년 2차 2라운드 전체 13순위 (두산 베어스)
병역 병역특례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8~2012)
NC 다이노스 (2013~2016)
시드니 블루삭스 (2017)
kt wiz (2018)


1. 소개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두산 베어스 시절
2.2.1. 2009 시즌2.2.2. 2010 시즌2.2.3. 2011 시즌2.2.4. 2012 시즌
2.3. NC 다이노스 시절
2.3.1. 2013 시즌2.3.2. 2014 시즌2.3.3. 2015 시즌2.3.4. 2016 시즌
2.4. 시드니 블루삭스 시절2.5. kt wiz 시절
3. 여담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이재우, 임태훈과 함께 김경문표 야구의 대표적인 혹사 피해자

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 시드니 블루삭스, kt wiz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

별명은 이름에서 따 온 곱창성. 한때 고삐삐로 불리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선린인터넷고 시절에는 잘 던지기는 하는데 임팩트는 약한 투수였다. 결국 유급까지 했지만, 프로 지명을 받는 데 실패했고 경성대학교에 진학하여 에이스로 급부상한다. 당시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현준과 함께 대학 야구의 사이드암 양대 산맥으로 활약하며 2008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된다. 하지만 부상으로 데뷔 연도는 2009년[2]으로 연기됐다.

2.2.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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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2009 시즌

64경기에 출장해 5승 2패 1세이브 16홀드, 2010년 시즌엔 73경기에 출장해 6승 4패 22홀드를 기록했다.

2009년 시즌 성적만을 보면 당시 신인왕으로서도 손색이 없었으나, 달랑 9표로 3위에 그치면서 2차 결선투표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전형적인 중간계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한 것. 신인왕 투표시 같은 팀의 이용찬과 팀이 겹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인들이 주는 일구회 신인왕을 수상했다.

파일:attachment/고창성/KILL.jpg

2009년을 호령하던 두산 불펜, 속칭 KILL 라인 (고창성 - 임태훈 - 이재우 - 이용찬).

그리고, 이름처럼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 김경문에 의해 이용찬을 제외하고 모두 KILL당했다.[3]

2.2.2. 2010 시즌

고창성은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등판하여 3 ⅓이닝 2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2탈삼진 무실점, 1홀드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고창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도 5경기 모두 등판하여 2 ⅔이닝 5피안타 1볼넷 2몸에 맞는 공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0.13, 2홀드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고창성은 2010년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10경기 모두 등판하여 제대로 노예 인증을 하며 6이닝 7피안타 3볼넷 3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4.50, 3홀드 1세이브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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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활약에 힘입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내내 덕아웃에 있었고 파키스탄에 올라와 겨우 ⅔이닝 던졌는데, 그조차도 장작놀이를 했다[4]. 그리고 그 이후 그의 등판은 없었다. 말하자면 베이징 올림픽의 한기주 포지션이었던 셈, 그 경기가 중계가 안되는 바람에 고창성이 엔트리에 있었는지 몰랐던 야구팬들도 몇몇 있었다. 그러고도 금메달로 병역 면제 성공.

2.2.3. 2011 시즌

전반까지는 무난한 성적을 보여줬으나, 잦은 등판, 피로누적 등으로 인해서 제구력, 구위등이 많이 하락한 편이다. 최근에는 등판 횟수도 크게 줄어들었고 방어율도 5점대 이상으로 올라갔다. 최종적으로 2011시즌 51경기 1승 4패 14홀드를 기록했으나 전년도에 비해 이닝수는 거의 ⅔수준으로 토막난데 비해 피안타 개수는 별 차이가 없고 사사구는 오히려 늘었다. 평균자책점도 4.44로 전년도에 비해 크게 상승.

2.2.4. 2012 시즌

4월에는 진정한 폭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4월 동안 현재 7경기에 나와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11.57. 더 충격적인 것은 4⅔이닝 동안 맞은 피안타가 12개고 사사구가 5개(고의사구 1개 포함)였다. WHIP가 무려 3.43에 달했고 피안타율은 .522. 정재훈이 드러누워 있던 상황에서 두산 입장에선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는 게 더욱 안습. 김진욱 감독에 의하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제 공을 뿌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2012년 7월 5일 스캇 프록터, 김현수와 빈볼 시비가 붙었던 나지완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오히려 프록터, 김현수, 나지완은 당시 사건에 관해 각자의 변명거리가 있었음에 반해 고창성은 비하의 의도가 다분하여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해당 글은 삭제되었고, 김선우와 이종욱의 중재로 나지완에게 사과를 하여 화해했으나 논란이 계속 커지자 결국 1군에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7월 6일 징계성 2군행을 당했으며 두산 선수들은 SNS 사용을 다시 한 번 제한받았다.

2.3. NC 다이노스 시절

시즌 종료후 NC의 특별지명에 선택되어 NC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로써 1년만에 다시 김경문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2.3.1. 2013 시즌

2013년 5월 7일 한화와의 홈 경기에서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노성호와 교체되어 구원등판했다. 그런데 오선진에게 초구 사구를 던져 1구만에 블론세이브를 달성한 것도 모자라, 정현석에게 결승타까지 맞는 등 순식간에 5점을 내줘 대첩급 패전의 원흉이 되었다. 패전의 멍에는 호투했지만 승계주자를 남긴 이민호에게 덮어씌우게 됐다.

감독이 이승호와 더불어 어느정도 경험이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투수진에 나름대로 고참으로서 역할을 해주길 바랬지만, 부진하면서 고참으로서의 역할은 손민한이 하고 있는 실정. 그나마 완전히 폭망한 이승호와는 달리 간간히 등판하는 편.

시즌 이후 8000만원에서 1000만원 깎인 7000만원에 계약했다. NC에서 삭감된 선수 두명중 한명.

2.3.2. 2014 시즌

의외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4월 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9-6으로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해서 0.2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내며 시작했다.

4월 11일에 말소된 후 한 달 정도 후인 5월 7일, 그러니까 507 대첩에서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고창성이 등판하기 전 우천취소가 되어 이 날 고창성은 투구수 0개, 0이닝을 기록하고 등판 경기 수만 1경기 늘어났다.

5월 2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팀이 18-2로 크게 이기는 상황에서 등판했다. 7회에 홍성용의 뒤를 이어 한 타자를 잡고, 8회에 다시 올라왔는데, 이때 첫 타자 김태완을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키더니 한화 타자들이 고창성을 맹폭하며 5실점했는데, 정작 자책점은 1점이었다.

5월 3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1이닝을 임창민의 주자를 분식하기는 했지만 피안타 1개로 잘 막아냈고, 팀이 고창성이 등판하는 중에 역전을 해서 이 날 고창성은 시즌 첫 승을 챙겼다. 달과 아버지를 위하여

6월 1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선발 에릭 해커에 이어 등판했다. 점수 차이가 2점차로 홀드 상황이었는데, 아웃 카운트 2개를 잡고 시즌 첫 홀드를 기록했다.

6월 20일자 기준으로 18.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0.98이다.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7월 22일 한화전에서 1이닝동안 볼넷 2개, 피홈런 1개를 허용하며 2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해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 경기 이후 1군에서 말소되어 다시 1군에 오르지 못했다. 당연히 준PO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 25이닝 1승 1패 1홀드 ERA 1.80. 고창성 외에 다른 불펜들이 잘 해줘서 그런지 고창성을 왜 안쓰냐는 말은 딱히 나오지 않았다.

2.3.3. 2015 시즌

패전조로 등판 중이다. 5월 19일 기준 6경기 9 2/3이닝 ERA 3.72,WHIP 1.55 탈삼진 3개 사사구 4개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부상 때문인 듯.

2.3.4. 2016 시즌

1군에 한 번도 등판하지 못했으며, 8월에 있었던 화성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에서는 강백산의 타구에 귀 쪽을 맞는 불운까지 겹쳤다.

결국 11월 28일 NC 다이노스에서 방출되었다. 기사

2.4. 시드니 블루삭스 시절

파일:시드니창성.jpg
방출된 후 스포츠기록 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가 운영하는 야구학교에서 몸을 만들어 오다가, 임경완이 뛰었던 구단인 호주 프로야구 리그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하였다. 기사 2018년 1월까지 총 9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세부 성적은 아래와 같다.
블루삭스 성적
일자 OPP W L ERA SV IP H ER BB SO
18/11/2017 ADE 0 0 0.00 0 3.0 1 0 1 2
23/11/2017 @CAN 0 0 1.50 0 3.0 3 1 0 4
09/12/2017 @BRI 0 1 4.70 0 1.2 4 3 0 1
16/12/2017 @MEL 0 0 3.60 1 3.1 1 0 1 2
17/12/2017 @MEL 1 0 3.48 0 0.1 0 0 0 0
28/12/2017 MEL 0 0 4.11 0 5.0 4 3 1 4
04/01//2017 BRI 0 0 4.43 0 5.0 6 3 2 3
11/01/2017 @PER 0 0 4.64 0 1.0 1 1 2 1
14/01/2018 @PER 0 0 6.17 0 2.0 5 5 1 2
TOTALS 1 2 6.17 1 23.1 25 16 8 19
블루삭스 공식 웹

2.5. kt wiz 시절

2018년 1월 28일 kt wiz에 입단했다. # 호주 프로야구 리그에 진출한 시점부터 죽 kt가 지켜봤다고 한다. 쓸 만한 우완 사이드암 중 최원재는 2017 시즌 후 방출되었고 엄상백은 거의 쓰리쿼터까지 팔각도가 올라가 버린지라, 로또 한 번 긁어보는 심정이었는 듯.

스프링캠프에서 포심, 체인지업 외에도 투심성 구종이 추가된 것이 확인되었다.

3월 17일 시범경기 롯데전에서 5회초 2사 주자 1·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⅓이닝동안 2개의 볼넷, 2개의 안타로 4실점했다(이종혁이 남겨놓은 주자들에 대한 2실점은 제외). 한동희의 땅볼을 3루수 실책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면서 이닝이 마무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날 고창성의 자책점은 잡히지 않았다. 이후 안타, 3루수 실책, 볼넷, 안타로 계속하여 실점하다가 나원탁을 겨우 뜬공으로 잡아내었다.

시즌 전 연습경기에서 1 ⅓이닝 동안 5피안타 2사사구 7자책을 기록하여 47.25라는 형편없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적어도 이 때까진 고창성에 대한 기대는 단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3월 24일 우려를 불식하고 KIA 타이거즈와의 개막전에서 이상화와 함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홀드를 기록하였다. 이후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단 8개의 공으로 5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놀라운 땅볼 유도 신공을 보이면서 1 ⅔이닝을 퍼펙트로 처리했다. 전성기에 주 무기로 쓰던 싱커의 구위가 확실히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3월 31일 경기에서도 황경태를 견제사로 잡아내고, 8회 초 두산 베어스의 공격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끝내면서 kt 팬들의 기대치를 꾸준히 높여가는 중이다. 그리고 강백호와 함께 이 날 경기의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4월 들어서 몇차례 불을 지르며 평균자책점이 크게 상승했다.

27일 기아전에서 8회에 등판했는데 올라오자마자 안타를 맞고 시작하더니 버나디나에게 홈런을 맞으며 강판당했다. 기록은 ⅔이닝 4실점 1피홈런 1삼진. 이 경기로 인해 평균자책점이 8점대로 폭등했다.

5월 5일 1군에서 말소됐다.

5월 중반 재등록되어 패전조로 나오고 있다.

5월 23일 기아전 8회 4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올라와 1이닝을 무실점했는데 팀이 9회 5득점을 하고 김재윤이 남은 이닝을 무실점하여 얼떨결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kt 입단 후 첫 승이자 2014년 5월 31일 기아전 이후 4년만의 첫 승이다.

25일 lg전에서 또다시 불을 지르며 평자책이 9점대로 올라갔다. 하지만 워낙에 혹사당한 전례가 있으니 쉽게 까이지는 않는다.[5]

7월 18일 한화전에서 12회초 2사에 등판해 간판 타자 호잉을 돌려세웠고, 12회말 정우람을 상대로 로하스가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7월 24일 넥센전에서 8회말 등판하여 삼자범퇴이닝을 마무리하고 홀드투수로 기록되었다.

7월 26일 넥센전에서 7회말 등판하여 타자 3명을 올려보내고 0이닝 1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7월 27일 LG전에서 7회초 등판하자마자 서상우에게 안타를 맞아 김사율이 남겨두었던 오지환이 홈으로 들어왔다. 4구 0이닝만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7월 31일 한화전에서 8회말 등판하자마자 이용규강경학을 차례로 2·3루로 출루시키고 엄상백과 교체되었다. 다행히 엄상백이 아웃카운트를 모두 잡아내면서 실점은 하지 않았다.

8월 5일 넥센전에서 5회초 등판하여 이택근을 출루시키고 박병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아 2실점하였다.

8월 8일 NC전에서 7회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10월 29일 재계약 불가통보를 받았다. 본인은 현역 의지가 강하다고.기사 댓글에서도 까이는 김경문

하지만 결국 팀을 찾지 못했고, 은퇴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강남구 개포동에 오픈하였다. 사야이 2019년 3월 13일자에 따르면 일반인도 187km를 던지게 하는 명코치라 카더라

3. 여담

  • 두산 시절에 '고창성의 사이드암 투수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동영상을 찍은 바 있다. 동영상 그러나 본인도 그 이후로 살아남지 못했다 박동희가 영상 게시자이다
  • 2013년 4월 11일 이재학과 함께 켠김에 왕까지 164회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거기서 징크스같은게 생기면 그 징크스를 한번 더해보면서 징크스를 극복하려 한다고 말해놓고 제작진이 간식으로 홈런볼 과자를 주자 5년째 홈런볼을 안 먹고 있다고 하면서 웃음을 주었다.
  • 지인 피셜로, 2018년 중반 즈음에 이미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적지않은 나이에 호주에 이어 바로 KBO에 투입되서 초반에 무리가 된 모양. 현역으로 뛰고 싶어 이악물고 던졌다고.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팀명경기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8두산 5 3⅔ 0 0 0 0 0.000 2.45 5 0 3 2 1 1 2.182
2009 64 74 5 2 1 16
(2위)
0.714 1.95 59 1 25 48 21 16 0.986
2010 73 82 6 4 0 22
(2위)
0.600 3.62 68 7 27 67 37 33 1.024
2011 51 50⅔ 1 4 0 14 0.200 4.44 50 4 31 40 27 25 1.461
2012 21 15⅔ 3 2 0 3 0.600 8.62 22 2 10 5 15 15 1.851
연도팀명경기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3NC 28 20⅔ 0 0 0 1 0.000 4.79 27 0 17 13 12 11 1.887
2014 25 25 1 1 0 1 0.500 1.80 25 1 10 11 9 5 1.280
2015 6 9⅔ 0 0 0 0 0.000 3.72 11 1 6 3 4 4 1.552
20161군 기록 없음
연도팀명경기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8kt 42 37⅔ 2 0 0 5 1.000 6.69 57 7 16 23 29 28 1.81
KBO 통산
(9시즌)
315 319 18 13 1 62 0.581 3.89 324 23 145 212 155 138 1.32

[1] 2004학번[2] 경성대학교 야구부에서 혹사 논란까지 있을 정도로 투구 이닝이 많았고, 그 덕분에 팔꿈치에 무리가 갔다는 설이 정설. 실제로 김기표 - 장원삼 듀오가 졸업한 2006년에 고창성은 대학야구 투수 중 유일하게 100이닝을 넘게 던졌다. 경성대학교의 특정 투수 1명(때로는 1명 추가) 줄창 돌리기 계보는 이후 이상백 - 임현준 - 임준섭 - 이민우 - 김명신으로 이어진다. 그 중 이민우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후에도 팔꿈치 부상 때문에 일찌감치 수술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한 뒤 17시즌 말이 되어서야 1군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다.[3] 그나마 이용찬도 본래 선발투수로 나와야 할 선수가 마무리를 맡은지라 삽질이 되었다.[4] 하지만 고창성은 롯데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모든 경기에 등판했다. 연투로 인한 피로누적도 있고 사이드암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5] 패드립으로 악명높은 그 디시위키조차 잘 까지 않는다. 사실 이건 혹사를 시킨 감독을 까기 위해 보호하는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