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07:18:13

이원석(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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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88
1989~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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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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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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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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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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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017 2018 2019
2020~2021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 (임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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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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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22 2023 2024~
김헌곤오재일
피렐라 (임시 주장)
오재일구자욱
강민호 (임시 주장)
구자욱

류지혁 (임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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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6번
김태균
(2003~2004)
<colcolor=#fff> 이원석
(2005~2008)
김민성
(2009~2010. 7. 19.)
두산 베어스 등번호 48번
고창성
(2008)
<colbgcolor=#ed1c24> 이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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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수
(2015~2016.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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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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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2016)
이원석
(2017)
김대우
(201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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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3. 4. 26.)
이원석
(2023. 4. 27.~)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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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70514><colcolor=#fff> 키움 히어로즈 No.17
이원석
李沅錫 | Lee Wonseok
출생 1986년 10월 21일 ([age(1986-10-21)]세)
광주광역시 남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학강초[1] - 광주동성중 - 광주동성고 - (세민디지털대)[2]
신체 182cm | 90kg | A형
포지션 내야수(1루수, 3루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5년 2차 2라운드 (전체 9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5~2008)
두산 베어스 (2009~2016)
삼성 라이온즈 (2017~2023)
키움 히어로즈 (2023~)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4년 12월 22일~2016년 9월 21일)
계약 2024 - 2025 / 7억 원[4]
연봉 2024 / 4억 원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1f2023;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000,#fff"
등장곡 싸이 - 〈RIGH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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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구단 자작곡[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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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소속사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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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키움 히어로즈 심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3.2. 수비 및 주루
4. 논란 및 사건 사고5. 별명6. 여담
6.1. 꾸준글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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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움 히어로즈 소속 내야수.

2005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했으며, 2009년 FA로 롯데로 이적한 홍성흔의 보상 선수로서 두산 베어스로 팀을 옮겼다. 이후 본인이 FA 자격을 얻고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2023년 4월 27일, 트레이드를 통해 키움 히어로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주 포지션은 3루수. 롯데 시절엔 주로 백업, 두산 시절엔 주로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유격수3루수로 많이 출장하였고, 삼성으로 이적한 후에는 벌크업을 하면서 유격수를 보긴 힘들어져 주로 3루수, 가끔씩 1루수로 출전하고 있다.[6] 그리고 키움으로 이적한 후엔 주전 1루수로 뛰고 있다.

2. 선수 경력

이원석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원석(1986)/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군 복무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3 삼성 23 키움 2024년
아마추어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파일:메갓 2023시즌 2호 홈런.gif
이원석의 타격폼
장타율과 타율의 차이가 꾸준히 0.1을 상회하는 중장거리형 타자다. 스피드가 느려서 기민한 주루로 상대를 흔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신 클러치 능력으로 투수를 위협한다. 특이한 점으로 보통 타자들이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부각되는 부분이 장타력인데, 오히려 이원석은 나이가 들면서 장타 비중이 더 높아졌다. 보통 타자들이 전성기를 맞이하는 20대 중후반에도 커리어하이가 10홈런에 불과했던 타자가 31세였던 2017 시즌부터 18, 20, 19, 13홈런으로 4년 연속 10홈런을 기록했다. 타석별 홈런(HR%)이 통산 2.47이고 두산 시절의 시즌별 수치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삼성에서는 3을 훌쩍 넘어 4를 넘은 시즌도 있다. 잠실을 쓰는 두산에서 라팍을 쓰는 삼성으로 이적한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차이다. 반면 타율은 2할 중후반에서 2할 초중반까지 떨어져서 두산 시절과는 상당히 판이한 스타일이 되었다.
22시즌 이원석의 상황별 성적 비교
<rowcolor=#fff> 득점권 주자 있을 때 주자 없을 때 주자 만루
타율 .368 .312 .224 .417
출루율 .440 .387 .305 .471
장타율 .575 .461 .374 .500
OPS 1.015 .848 .679 .971
WPA 2.00 1.47 -0.16 0.113
대표적인 클러치 히터이다. 스탯티즈에서 제공하는 레버리지를 기준으로 로우 레버리지에서는 OPS가 0.748, 미디움 레버리지에서는 0.724인데, 하이 레버리지에선 0.887을 기록하고 있다. 세부 지표가 제공되는 2014년 이래로 쌓은 5.93의 WPA 중 무려 5.76을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만 올렸다. 단순히 차려진 밥상만 잘 먹는 게 아니라 로우 레버리지는 1380타석 40홈런(2.9%), 미디움은 1050타석 31홈런(3.0%), 하이 레버리지는 586타석 25홈런(4.3%)으로 주자가 없으면 홈런으로 타점을 퍼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덕분에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에서 이원석은 17시즌 FA 이적 후 커리어 로우라고 평가받는 21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삼성 내 WPA와 Clutch 스탯 탑5 안에 꾸준하게 들었다. '가부장형 타자'라는 별명이 생길정도로 이원석의 타점 먹방 능력이 가장 제대 발휘된 22시즌의 경우 무려 77안타 60타점이라는 타점이 안타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상황별 세부 기록을 뜯어보면 더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주자가 없는 상황에선 2할 2푼, 장타율이 3할 7푼정도인 반면 득점권 상황에선 타율이 3할 6푼, 장타율이 5할 7푼에 육박한다. 이 덕분에 득점권 상황에서 대타로서의 출장도 많은 편이다.

또한 이러한 클러치 히터로서의 기질 덕분인지, 만루에서의 성적 역시 매우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만루홈런의 경우, 현역들 중 (2022시즌 기준) 통산 만루 홈런 공동 3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가 통산 303홈런의 강민호, 429홈런의 최정이 2위, 142홈런인 이원석과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현수의 통산 홈런 개수가 235개인 것을 생각해보면 저 라인업에도 낄만큼 만루에서의 그의 홈런 페이스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2005년 롯데 시절 18세 7개월 12일으로 역대 최연소 만루홈런 기록을 이원석이 갖고 있다.#

3.2. 수비 및 주루

파일:메시다이빙캐치.gif
파일:메시맨손캐치.gif
<rowcolor=#570514> 다이빙 캐치 맨손 캐치 후 러닝스로우
정확하고 빠른 송구가 장점으로 선상으로 빠질 만한 타구를 낚아채 정확한 송구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모습이 이원석 하면 떠오르는 수비 장면 중 하나다.노바운드 원바운드 (자신이 커버 가능한 범위내에서의) 다이빙 캐치나 거리가 애매한 땅볼을 처리하는 러닝 스로우도 일품이다. 애초에 이원석 본인이 2016시즌 이후 첫 FA 신청 당시 '수비는 자신있다'라고 말할 정도.#

단점으로는 수비 범위가 매우 좁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 '성님 공이 굴러 오고 있소' 짤의 이대호와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젊었을 때인 두산 시절과 삼성 시절 초기에는 수비적인 면에서 단점이 거의 없었고, 두산 시절에 오재원이 최고의 3루수라고 인정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으로 FA 이적 이후, 거포로서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몸집을 더욱 키운 것도 모자라 나이가 들면서 전체적으로 몸이 둔해지며 범위가 좁아진 것이다. 이는 2019시즌 이후부터 생긴 고질병으로, 그 이후로 3유간 사이를 빠져나가는 안타를 놓치는 경우가 잦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원석의 수비 범위를 커버하기 위해 발빠지게 뛰는 삼성의 유격수 이재현이 동정을 많이 받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볼을 흘리거나 알까기 당하는 등의 기초적인 에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원래 유격수까지 겸할 수 있는 내야 멀티 자원이며[7] 가끔 2루 자원이 부족할 땐 대신 2루수로도 출전하기도 했다. 내야 자원이 풍부해 자리 싸움이 박터졌던 두산 시절에는 일주일간 수비 포지션이 계속 바뀐 적도 있다.이원석의 내야 방황시절.jpg 물론 두산의 주전 3루수였던 김동주가 노쇠화됨에 따라 그때부터 주전 3루수로서 뛰게 됐다. 하지만 선술했듯 삼성 이적 후 몸집을 키우고 나이가 들면서 범위가 매우 좁아진 것은 물론 몸도 둔해져 코너 내야 외에 다른 포지션을 보는 경우가 없다. 실제로 이적 초반인 2017 시즌에 잠깐 수비 포지션 실험을 하고자 유격 알바를 봤을 때를 제외하고 유격수나 2루수로 출전한 적이 전무하다. 1루 자리가 비었을 때는 1루수도 백업도 겸한다. 두산에 있을 땐 최준석, 호르헤 칸투 등 1루 주전이 항상 있었고 백업에도 오재일이 있었기 때문에 1루는 거의 서지 않았으나, 삼성에서는 주전 1루수인 오재일을 제외하고는 백업이 무주공산 수준이었기 때문에 오재일이 부상 등으로 인해 경기 출장을 못할 때 대신 1루수로 출장하는 경우가 꽤 있다. 키움 이적 후에는 아예 주전 1루수로 출전하는 중이다.

기묘한 점으로 유격수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기민한 수비력을 보유한 선수이지만, 정작 주루 자체는 매우 느려 2루타성 안타를 쳐도 1루까지밖에 못 가고 3루타성 타구에도 2루에 미끄러져 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똥차중의 똥차이다. 롯데 시절부터 지금까지 주력이 계속 느린 편이었다. 주루 RAA가 양수를 기록한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통산 도루 성공률도 25도루 26실패로 5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두산 시절 비슷한 이미지였던 손시헌과 묶어서 '쟤네들은 주루를 사이드스텝으로 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이다. 이에 대해 신인 시절 햄스트링 부상 이후 주력이 감소했다고 한다.# 또한 정도의 부상을 자체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덕분에 삼성 이적 후에는 오재일, 강민호, 김태군과 함께 똥차 콰트로로 묶이며 노인정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순서를 매기자면 대체로 오재일-이원석-강민호-김태군이 주력 순서로 자주 여겨지고 있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전부 본인의 잘못보다 과장된 사건이고, 특히 두번째 사건은 오히려 상대 잘못으로 생긴 일이다. 첫번째 사건은 팬들에게농담식으로 가끔 까일 때가 있지만, 두번째 사건은 이미 전말을 알기에 팬들도 장난으로도 언급하지 않는다.

4.1. 20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 응원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전이 열리는 6월 17일, 경기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캐스터가 경기 결과를 예측해 보라고 묻자 '3:1로 아르헨티나가 이길 것 같아요. 메시 화이팅!'이라고 발언하며 용자인증을 해 메국노, 아르헨석, 메시원석이라고 까이기도 했다.

경기를 앞두고 있는 야구 선수에게 뜬금없이 월드컵 경기 결과를 물어보는 것도 문제지만, 그 상황에서 립서비스로라도 좋게 넘어가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한 것은 경솔했다는 평이 많다. 이 발언 때문에 야구와 야구빠들 전체가 싸잡아서 비난을 받았고 이원석 선수 개인적으로도 '타국을 응원하는 모습에서 국가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일단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은 '메시 화이팅'이 아닌 '기성용 화이팅'이라 했다고 주장하였다.[8] 관련 기사 하지만 인터뷰 영상을 보면 '메시 화이팅'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기성용 화이팅이라고 한 것도 맞지만, 아나운서의 유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대답한 것뿐. 영상이 나돌았던 데다가 1-4로 아르헨티나에 진짜로 참패를 당하며, 졸지에 예언가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적어도 야구 커뮤니티 내에서 이원석은 메시 사생팬, 메시와 동급 취급을 받으며 메시가 곧 이원석이고 이원석이 곧 메시로 칭해지게 됐다. FA 이적 후 삼성 팬들 사이에서도 큰 거부감 없이 애칭과 같은 별명으로 메시라 불리고 있다. 이원석이 좋은 활약을 하면 칭찬으로 메갓으로 불리고, 병살타를 치거나, 못할 때면 메좆등으로 불린다. 대활약한 날에는 아예 메시 사진을 올려놓고 이원석이라고 부른다. 쓰리런 홈런을 치면 별명답게 해트트릭을 했다고 한다.

한편, FA 이적 후 아주 나중에야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원석이 따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자신은 아르헨티나를 응원하기 전 대한민국을 따로 응원했는데, 대한민국을 응원했던 그 부분만 편집된 후 방송이 송출된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당시 논란이 터졌을 때 굉장히 당황했다고 하며, 동시에 의도적으로 이슈를 노린 유도 질문에도 넘어가지 않으면서 악마의 편집으로 만들 수 있는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게 앞으로는 인터뷰를 굉장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4.2. 사생활 관련

2019년 1월 13일 이원석의 전 여자친구 장모 씨가 이원석의 과거에 대해 폭로했다. 당시 프로야구 비시즌 기간이라 크게 이슈화되었으나 당사자인 이원석 측에서는 공식적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둘만의 일 이외의 다른 선수들을 언급하거나, 이원석이 아닌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 이원석인 것처럼 비난의 글을 올렸으나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발각되면서 여론이 크게 변하기도 하였다.

2019년 7월 30일 사건을 폭로했던 장씨 인스타에 따르면 본인은 이원석 측으로부터 ‘허위사실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형사소송건의 경우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1년 4월 1심 결과가 나왔는데 결국 장씨가 공갈,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고 보호관찰과 12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도 받았다.[9]

기사에 따르면 검찰은 장씨가 이원석을 뒷바라지하거나 장씨가 이원석과 교제하던 중 다른 상대를 만나 결혼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장씨의 글이 허위라고 판단했으며, 재판부의 판결 역시도 같은 취지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5. 별명

  • 메시: 현재 이원석의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는 별명. 앞서 언급된 사건으로 인해 붙었다. 이원석이 삼성에서 한창 활약할 때는 "메시 잘 샀다"를 줄여 메잘샀이라 좋아하기도 했다.

아래별명은 대부분 이원석이 상무를 가기전인 2014시즌까지 각각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두산 베어스 갤러리 팀갤에서 사용되던 별명이며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별명이다.
  • 우유: 피부가 우윳빛깔처럼 하얗다고 해서 붙은 별명. 현재는 조금 역변하여 부르기 민망하다. 역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피부 자체는 하얗긴 하다.
  • 마원석: 과거 롯데와 두산 시절 팀원들과 잦은 스킨십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마성의 남자라고 불린 별명. 이원석의 타구가 묘하게 상대의 실책을 유발해서 부르기도 했다.
  • 마꼬북, 꼬부기: 벌크업을 하기 전의 모습은 날쌜 것처럼 생겼으면서 발이 더럽게 느리기 때문에 붙었다.
  • 부길라: 2007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아현동 마님》의 남자 주인공 '부길라' 역을 맡은 배우 김민성과 닮았다 하여서 불렸다. 위의 꼬부기와 합쳐 꼬부길라가 되기도.
  • 내원석: 롯데 시절 빅4라 불리던 김수화, 이왕기, 이원석, 강민호 넷이 내원사 계곡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 때문에 생겼다.
  • 싸이원석: 젊은 시절 싸이월드의 헤비 유저였다.

6. 여담

파일:attachment/e0080000_489ae34dcf97d_magiccandy2.jpg
  • 동료들과 친화력이 상당히 좋다. 롯데 시절에는 친목질의 대가인 강민호와는 당연히 친하며, 이승화와 곧잘 붙어지내는 것은 물론 위 짤과 같은 모습을 보여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후로게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원석의 보상선수 이적 이후, 이승화가 굉장한 성적부진에 시달리자 이것이 이원석의 부재때문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 두산에 가서는 김현수양의지와 애틋하게 손을 잡거나 서로에게 달라붙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오재원과도 경기장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다녔으며, 오재원 역시 본인의 은퇴식때 양의지, 오재일과 함께 이원석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원석, 양의지, 오재일, 오재원 이렇게 넷이서 굉장히 붙어 지냈는데, 이원석이 삼성에 이적하고 나서 홀로 두산 소속이 아님에도 따로 넷이서 모인 목격담도 많이 돌았다.
  • 이원석 본인에 의하면 원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롯데 시절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말도 잘 안했다고. 보상선수로서 두산으로 이적하고 나서, 당시 두산의 감독이었던 김경문이 활발하고 파이팅 넘치는 선수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후 경기에 나서고 싶어 억지로 성격을 바꾸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것이 계속 이어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원석을 오래 봐온 주변인들은 이원석이 예전부터 굉장히 장난기 많고 말 많은 타입이라 입 모아 얘기하며, 실제로 그 시절 롯데 관련 방송에서 찍힌 이원석의 다른 어떤 선수보다 가장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촬영 및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원래도 그런 성격인 듯하다.
  • 동갑내기 오재일과는 가장 절친이자 애틋한 사이이다. 오재일의 경우 굉장히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넥센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 이적 후 팀 적응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미 FA 보상선수로서 롯데에서 두산에 합류한 이원석은 갑작스러운 이적에 대한 그 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먼저 오재일에게 다가가 말을 트면서 관계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2013 시즌 이원석은 부진으로, 오재일은 부상으로 각각 2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땐 서로가 서로를 보며 다독이고 힘을 불어 넣어주며 2군 생활을 버티면서도, 서로의 타격폼과 타격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하면서 1군행에 매진했다. 둘 모두가 이 시기에 홀로 있었으면 그냥 2군에서 자포자기했을 거라고 입을 모은 것은 물론 이때를 계기로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같이 1군으로 콜업되어 정규 시즌 경기를 소화할때도 매 경기 서로의 타격폼과 타격 결과에 대해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해주면서 스윙 연습을 했다고.# 이덕인지 2013년 후반기부터 이원석과 오재일 모두 성적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원석이 FA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함에 따라 한동안 헤어진 사이가 되었는데, 마침내 오재일이 2021년 FA에서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5년만에 다시 동료로 뛰게 되었다. 또한 오재일의 FA 이적으로 삼성 행이 확정되었음에도 이원석의 2차 FA가 진전이 보이지 않자 하루가 멀다하고 언제 계약하냐며 오재일에게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원석 역시 재계약하자마자 오재일에게 전화를 걸어 잔류 소식을 전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이후 이원석은 FA 잔류 인터뷰에서 두산과 삼성간의 경기를 치르면서 몇번씩 만날 때마다 은퇴하기 전에는 꼭 운동 같이 해보고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서로 얘기했는데 이것이 현실이 돼 정말 기쁘면서도 5년만에 재일이에게 송구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벌써 짜릿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슬슬 해가 지나면서 은퇴시기가 어느 정도 전해지자 같이 삼성에서 은퇴하자며 얘기도 했지만 이후 이원석이 시즌 중에 갑작스럽게 키움으로 트레이드 이적되면서 모든 게 무산되었다. 또한 트레이드 직후 서울로 상경하는 길에 이원석은 오재일에게 연락하여 트레이드 소식을 전하였을 때 처음에 오재일은 장난치지 말라며 바로 전화를 끊었지만 나중에야 기사를 보고 사실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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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엔 상당한 미남 야구 선수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했고, 롯데-두산 시절엔 여성 팬을 끌고 다녔다. 광주동성고에서 뛰던 시절 같은 재단 유은학원 학교였던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의 여학생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 이러한 면모가 묘사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외모는 하다못해 삼성 이적 초창기때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유지되었으나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삼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사실 현재도 살에 비해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해서 살만 빼면 언제든지 미남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물론 살이 찌게 된 것은 자기 관리 실패라기보다는 홈런이 자주 나오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특성상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중장거리형 타자로서 변화를 꾀하고자 살크업한 것이라고 보는게 더 알맞다. 실제로 덕분에 그 전까지는 딱 한번 밖에 기록하지 못한 10홈런을 4년 연속이나 기록했다.
  • 아버지 이용주는 상업은행 야구단의 투수였다. 은퇴 후에는 광고업에 종사하면서 어린 이원석을 상대로 캐치볼을 즐겨했는데, 현역 시절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아들이 운동선수가 되는 건 결단코 반대했다. 그러다 이원석이 막 창단된 핸드볼부에 몰래 가입하고 나서 훈련 때문에 귀가가 늦자, 친구 집에 놀다온 것이라고 핑계를 됐지만 지역 신문에 핸드볼부 창단 소식과 이원석의 사진이 실리면서 결국 들통이 났고,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운동을 할 거면 차라리 야구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학창시절인 후배인 이순철을 불러다 야구 관련 테스트를 했다. 이후 이순철이 합격점을 주자 이원석은 그대로 야구를 하게 됐다. 이원석의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투병하는 와중에도 아들의 경기를 직접 지켜보며 아들이 FA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이원석이 상무에 입대를 앞둔 2014년 12월에 타계했다. 2009년 두산 시절 이원석이 아버지에게 남긴 편지 한편 이원석은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한다. 자신이 이제 본격적으로 집안의 가장이 되었기에 야구의 절실함이 생겼다고.# 참고로 첫번째 터닝 포인트는 야구의 독기를 품게 만들었던, 롯데에서 두산으로 보상선수 이적했을 때다.
  • 후배 사랑에 진심인 것으로 유명하다. 시즌을 앞두고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명 브랜드의 스파이크를 선물하거나 방망이 등 야구용품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등 후배들을 매우 잘 챙겨준다.# 또한 후배들에게 용돈을 주고싶을땐 억지로 명분까지 만들어서 손에 쥐어주는 스타일이다. 본인은 그동안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베풀자는 마음이라고 한다. 2022년 득녀한 이승현에게는 패밀리 침대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첫 안타를 친 이병헌이 '오늘 경기서 차고 나간 장비 모두 원석 선배가 준 것이다'며 감사를 표한 것이나 김호재에게 스파이크를 선물해준 것은 물론 자신이 선물한 스파이크를 신고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자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나 삼튜브에서 홈런을 친 사람에게 20만 원을 주겠다는 뷰캐넌의 공약으로 20만 원을 얻은 오재일에게 "그 돈으로 태훈글러브 하나 사줘라"고 말하는 등의 갖은 미담의 소유자. 무엇보다 신동수 SNS 막말 파문의 주인공 신동수가 이원석을 '그저 빛' 이라 칭한 것만 봐도 말 다했다.
  • 과거 롯데 시절 강민호와 함께 Tell Me 춤을 춘 영상이 새로이 발굴되면서 야구팬들 사이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다.# 저 시절 그 둘이 같이 춤을 췄다는 것 자체가 주목을 받을만하지만, 그 춤을 상당히 잘 춰서 더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원석의 말에 따르면 무슨 행사가 있어서 선배의 말에 따라 연습을 되게 많이 한 다음에 본 무대서 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후론 전혀 안췄다는 말과 함께 질색하는 것을 봐 본인에겐 굉장한 흑역사로 남아있는 듯하다. 그래도 삼튜브에서 꾸준히 언급되며 제2의 텔미에 대한 떡밥을 남겼다. 강민호 역시 질겁하면서도 오재일도 함께해서 셋이서 요즘 유행하는 LOVE DIVE 춤으로 공연하자 말하며 마침내 실현되는 듯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 FA 보상 선수로 이적하여 FA 자격으로 다시 이적한 최초의 선수이다. 그야말로 보상 선수계의 신화. 거기다 선수 생활 말년에 트레이드 이적, 키움 이적 후에는 비FA 다년계약까지 체결하면서 웬만한 계약 방식도 다 해봤다.[10]
  • 밥을 많이 먹는 편인 것 같은데 소식+채식 컨셉을 삼튜브에서 계속 밀고 가고 있다. 팬들은 이원석을 못믿으면서도 동시에 재밌다는 반응.[11]
  • 2023년 6월 5일 야구부장에 의해 로또 3등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이원석의 말에 따르면 한화와의 대전 원정 경기가서 로또집이 있길래 수동이 아닌 자동 번호로 한번 사본 게 당첨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작년에도 3등 당첨된 적이 있어 이번이 두번째 3등 당첨이라고. 그리고 이원석의 성격상 로또 당첨됐을 때 동네방네 자랑했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것과는 달리, 동갑내기 친구 김지수한테만 몰래 얘기한 사실인데 이미 야구장에 소문이 다나 모두가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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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학강초등학교 시절에 당시 윤여국 야구부 감독에게 만약 자신이 야구 선수로서 성공한다면 해외여행(세계일주)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었다. 그리고 2011년 이원석이 두산에 있을 적, 광주일보의 김여울 기자가 학강초 관련해 취재하다 이 각서를 발견했고 각서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며 퍼지게 되었다. 이후 상당히 화제가 되어 또다른 기자가 이원석에게 관련해 묻자 이원석은 본인은 처음에는 '그런 각서를 쓴 적이 없다'고 답했지만 이내 '썼던 것 같다'에서 다시 '6학년때 장난으로 쓴 것'이라 말을 정정했다. 또한 물론 감독님을 은사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아직 야구로 성공을 하진 못했다고 흐지부지 넘어갔었다.# 그러다 해가 지난 2012년이 되고, 야구 선수 바자회에서 김여울 기자와의 대화 중 쓴 기억은 없지만 사인을 보니 자신의 사인이 맞다며 인정했기도.# 이후 이원석이 야구 선수들에겐 거의 성공의 척도와도 같은 FA 계약에 성공하면서 이 각서가 다시금 조명되었고, 각서의 내용대로 감독님의 여행을 보내드렸는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관련 언급이 전혀없다가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이원석이 키움으로 트레이드 이적 하고난 뒤에야 큠튜브에서 이에 대해 얘기가 나오게 됐는데, 이원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성공은 야구를 잘해야 성공이지만, 아직 자신은 야구를 잘 못하기에 (야구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성공하면 꼭 보내드리겠다고 덧붙였다.# 물론 당시 처음으로 퍼져 화제가 되었던 2013년에, 윤여국 감독은 자신도 그냥 장난으로 받은 것이라고 웃으며 넘겼다.

6.1. 꾸준글

2009 시즌 초반, 디시인사이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이하 롯갤) 유저들은 다른 롯데 팬들과 마찬가지로 FA 이적생 홍성흔의 부진 때문에 속이 타고 있었다. 그래도 홍성흔은 늦은 나이에 지명타자로 전환해 타격에 눈을 뜬 선수기 때문에 믿고 기다리자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이원석이 두산 이적 후 맹활약을 펼치자 롯데 팬 입장에선 눈 뜨고 빼앗긴 셈이 된 이원석을 아까워 하는 분위기가 시나브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한 유저가 다음과 같은 꾸준글을 적기 시작했다.
원석이를 보상으로 내준게 너무나 아쉽다
지금 롯데 입장에선 내야 포지션(특히 유격)이 아쉬운 상황이고...
원석이가 유격까지 소화가 되는데다가 타격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 좋은 선수였는데...
이원석이 보호명단에 못들어갈정도로 롯데전력이 빵빵한것도 아니었는데...
시즌끝나고 이원석과 김민성 성적을 비교해서..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게 만들어야 한다...[12]
처음에는 그냥 흔히 디시에 올라오는 보통 글과 마찬가지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툭하면 올라오는 바람에 슬슬 팬들의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롯갤 유저들은 '이미 가버린 선수 적당히 그리워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 글은 계속 올라왔다. 그러다 갑자기 롯갤의 대세가 되었고 낚시글로도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패러디 짤방들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에도 홍성흔이 부진할 때 간간히 올라오긴 했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그냥 놀이 수준이었고, 2010년 들어 홍성흔이 귀신같은 활약을 펼치자 그 뒤로는 잘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홍성흔이 2010 시즌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득점 기회를 몇번 날려먹고 이원석이 포스트시즌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13] 롯갤러들이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다가 우리 원석이 다시 돌려주셈이라는 글을 올린 적도 있었다고.
원석이를 FA로 내준게 너무나 아쉽다
지금 두산 입장에선 내야 포지션(특히 3루) 이 아쉬운 상황이고...
원석이가 3루까지 소화가 되는데다가 어느정도 받쳐주는좋은 선수였는데...
이원석을 못잡을정도로 두산자금이 빵빵하지 않은것도 아니었는데...[14]
시즌끝나고 이원석과 허경민 성적을 비교해서..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게 만들어야 한다...
2016년 FA 자격을 취득한 이원석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는 패러디 글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원석이를 트레이드로 내준게 너무나 아쉽다
지금 삼성 입장에선 내야 포지션(특히 3루) 이 아쉬운 상황이고...
원석이가 1루까지 소화가 되는데다가 어느정도 받쳐주는좋은 선수였는데...
이원석이 트레이드될정도로 삼성전력이 빵빵한것도 아니었는데...
시즌끝나고 이원석과 김태훈 성적을 비교해서..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게 만들어야 한다...
2023 시즌에 이원석이 키움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되자 아니나다를까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도 패러디 글이 올라왔다.

7. 관련 문서



[1] 야구로 유명한 초등학교이며 출신 인물로는 SSG 랜더스 김창평, KIA 타이거즈 양현종, 롯데 자이언츠 김원중, 같은 팀의 최주환 등이 있다.[2] 입대를 연기하기 위해 이름만 올려둔 것이다.[3] 두산 시절까지는 유격수2루수로도 제법 출장했지만, 삼성 이적 이후에는 거의 출장하지 않고 있다. 키움 이적 후에는 주로 1루수로 출장하고 있다.[4] 2026년 옵션 3억 원[가사] 히어로즈 이원석~ (안타!) 히어로즈 이원석~ (안타!) 히어로즈 이원석~ 오~ 이! 원! 석! ×2[6] 다린 러프가 빠진 2020 시즌에 1루수 선발 출장이 크게 늘었으며, 2021 시즌 이후로는 오재일이 결장하거나 경기 후반 대주자/대수비로 교체됐다거나 하는 경우에 가끔 1루수를 본다.[7] 실제로 아마추어 시절엔 주전 유격수로 뛰었으며 프로 데뷔 초반까지만 해도 유격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잦았다.[8] 여담으로 이원석과 기성용은 둘 다 광주 출신이다.[9] 왜 실형 면제냔 의견도 있는데 이미 평생 조리돌림 당할 운명인 데다가 한국은 현재 교정시설이 포화상태라(구속 기소되어 형량이 길지 않을 경우 그대로 구치소에서 형을 끝내기도 한다.)거의 묻지마식 가석방이 늘어가는 중이며 더군다나 여성 교정시설이 지나치게 적어서 웬만해서는 여성들에겐 실형을 면제해주는 대신 벌금을 높여 선고한다. 더군다나 천만 원이면 명예훼손 최고 벌금형이며 복합적인 죄라서 징역에 집행유예까지 나와 최소 2년간 사회 생활 못한다.[10] 방출 후 타팀 계약과 2차 드래프트로 인한 이적까지 성공한다면 KBO 모든 계약제도를 모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11] 친구 오재일도 항상 다이어트 중이라고 나오지만 다른 선수들의 반응은(...)[12] 원본 그대로 긁어온 것이라 띄어쓰기는 신경쓰지 말자.[13] 더해서 리버스 스윕으로 끝났던 2010년 준플레이오프의 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다이빙 직선타 캐치로 기가 막히게 잡아내고 보란 듯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여러 꼴빠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14] 그냥 라임을 맞추려고 한 말이고, 실제로 모기업 두산그룹의 재정사정은 상당히 좋지 못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