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22:03:50

박해민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74CA1> 파일:SL_emblem.png 삼성 라이온즈
2019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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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찬도 · 24 김기환 · 31 이현동 · 34 김헌곤
· 37 황선도 · 38 김동엽 · 55 이성곤 · 58 박해민 · 59 최선호
· 63 윤정빈 · 64 송준석 · 65 구자욱 · 66 이태훈 · 118 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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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민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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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14

보유 기록
한 경기 최다 3루타[1] 3개

수상 기록
2015 ~ 2018년 한국프로야구 도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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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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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5번
결번 박해민(2012~2013) 구준범(2014~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8번
김현우(2013) 박해민(2014~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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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ㅂㅎㅁ.jpg
삼성 라이온즈 No.58
박해민(朴海旻 / Hae-Min Park)
생년월일 1990년 2월 24일 ([age(1990-02-24)]세)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0cm, 75kg
출신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가족관계 부모님, 여동생[2], 아내, 처남
종교 개신교[3]
학력 서울영중초 - 양천중 - 신일고[4] - 한양대[5]
포지션 중견수, 1루수[6]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2012년 신고선수 입단 (삼성)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2012 ~ 현재)
등장곡 Infinite Blessings · YMG Bundy(2018년)
응원가 자작곡[7][8][9]
연봉 3억 6000만원 (24.1%↑, 2019년)
병역 병역특례[10]

1. 개요2. 선수 생활3. 플레이 스타일4. 기타5. 연도별 성적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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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외야수. 신일고-한양대 생활체육학과(2008학번)를 졸업하고 2012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별명은 바개민[11], 해민 스님[12], 개신교 신자인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해멘, 해렐루야 등등으로 불리고 있다. 도루와 발로 만든 득점이 많아진 2015년에는 람보르기니를 본뜬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이 생겼다.[13][14] 본인의 등장곡 'HER'에 나오는 가사를 따서 인스타그램 소개란에 '모두 널 작품이라고 불러☆'라고 쓴 뒤 팬들에게 박작품, 작품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4년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케이윌이라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케이윌은 열혈 두산 베어스 팬이라는 게 함정 영타 변환으로 박해민 > qkrgoals > 박goals이 되기도 한다.못하면 좆해좆으로 불린다.

2. 선수 생활

서울영중초등학교 시절에는 달랑 9명 뿐인 곧 해체될 야구부라 포수도 본 적이 있었으나, 주로 동창인 백용환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 이들이 졸업한 후 야구부는 해체되었고 그 마지막 야구부원 9명 중 2명이나 프로선수가 된 셈. 6학년이던 2001년에는 주장을 맡아 제1회 박찬호기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 개막경기에서 시구자였던 박찬호의 공을 받아 본 적이 있다.

양천중을 거쳐 신일고 재학 당시만 하더라도 내야수(주로 2루수)를 봤으나 송구에 문제가 있어서 한양대 생활체육학과(2008학번) 시절 1학년을 마치고 외야수로 전향했다. 한양대 4학년 때인 2011년에 타율 0.429를 기록, 대학리그 타자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3학년 때까지의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4학년 때의 활약을 한해 반짝한 플루크에 놀랍게도 수비 못하는 외야 똑딱이로 평가되면서,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고, 삼성 라이온즈신고선수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다.[15] 또한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하기로 결정한 후, 마지막 야구 월드컵이었던 2011년 파나마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뽑혀 도미니카전 때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동점 3점 홈런을 때렸다.

2.1. 2012 시즌

시즌 중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으나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타율이 2할 5푼대로 저조했고 어깨 부상 때문에 시즌 후 다시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없을 정도로 부상 정도가 심했던지라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었지만, 이한일 2군 트레이너[16]의 설득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고.

2.2. 2013 시즌

어깨 재활 때문에 5월이 되어서야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6월 말에 붙박이 주전 중견수였던 박찬도가 부상을 당하면서 주전으로서 기회를 더 받게 되었다. 9월 들어 좋은 타격감을 보이면서 9월 10일에 다시 정식 선수가 되었고, 동시에 1군에도 등록되었다. 9월 13일 대구 롯데전에서 최형우의 대주자로 출장해 1군에 데뷔했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14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면서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김헌곤, 박찬도, 정두산, 이현동과 함께 상무에 지원하여 서류전형에서 합격했으나, 실기에서 5명 모두 탈락했다. 소문이기는 하지만 이는 배영섭경찰청으로 보낸 것에 대해, 상무가 보복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이듬해 2014 시즌 삼성의 외야진에 신의 한 수가 되었으니...

2.3. 2014 시즌

박해민/2014년 문서로.

2.4. 2015 시즌

박해민/2015년 문서로.

2.5. 2016 시즌

박해민/2016년 문서로.

2.6. 2017 시즌

박해민/2017년 문서로.

2.7. 2018 시즌

/2018년 문서로.

2.8. 2019 시즌

/2019년 문서로.

18시즌 탱탱볼 타격거품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이순철: 지난 대구 방송때 말씀드렸잖아요. 박해민 선수는 날아가는 새도 잡을거라고요.

정우영: 잡을 것 같네요.

이순철: 거의 환상적인 수비입니다. 말로 표현이 안되는거에요. 이 정도면. 박해민 선수가 아니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타구에요.#

수비는 외야 전 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지만 리그 최고의 수비범위를 살리기 위해 보통 중견수로 들어가며, 간간이 1루 백업으로도 들어간다. 정형식의 이탈을 깔끔하게 메운 정상급 낙구 판단과 포구 능력에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한다. 고교 때까지는 2루수를 봤으나, 내야 공백이 길고 어깨가 좋지 못해 내야에선 1루만 맡을 수 있다. 1루 수비는 적은 경험을 생각하면 처음부터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승엽, 채태인[17]같은 기존 1루수에 비하면 팔이 짧아서 공을 놓치거나 하는 아쉬움을 보인 적도 있었다. 2015년에는 군 복무를 마치고 새롭게 1군에 합류한 구자욱이 1루수에 적응하면서 1루로는 잘 들어가지 않았고 구자욱이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을 때 1루를 맡았다. 하지만 2016년 구자욱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워 1루수로 대신 들어갔을 때는 1루 수비 역시 더욱 발전을 해서 전문 1루수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의 특기인 낙구 지점 판단과 빠른 발로 우익수도 잡기 힘든 파울 플라이를 1루수로서 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린 러프가 영입되면서 1루를 볼 일이 없어졌다.[18]

2015년까지는 빠른 낙구 지점 판단에 빠른 발과 슬라이딩 같은 허슬 플레이로 타구를 잡아냈지만, 2016년에는 수비 능력이 더욱 일취월장하면서 남들이 슬라이딩으로 잡을 만한 것을 감각과 발로 다 해결하기 때문에 어려운 타구임에도 평범한 듯 잡아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타구 음을 듣고 낙구 지점을 먼저 예상하고 바로 스타트를 한 다음 낙구 지점에 가서 공을 보며 잡아내는 방식으로 수비를 하면서 어려운 타구를 쉽게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게 것이다.라면 수비 남들보다 빠른 위치 판단과 스타트, 그리고 엄청난 주력이 합쳐져서 외야 수비 범위는 리그 최정상급.

수비수로서의 유일한 약점은 부상경력이 있는 어깨인데, 팬들 사이에선 소녀어깨라는 악평과 그래도 중하 정도는 된다는 반론으로 의견이 갈린다. 옹호하는 측도 전술한 빠른 발을 살린 넓은 수비범위와 낙구판단, 수비진과의 연계[19]를 강조하며 중견수의 덕목은 강견이 아니며 군대에서 몸관리 개판으로 한 배영섭 등 보다는 강하다고 할 뿐 어깨가 강하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KBO의 주전급 중견수 중에 이용규, 이대형 말고 박해민보다 어깨 약한 중견수는 없다. 어깨가 김강민 수준이었으면 수비수로선 완전체라는 얘기를 들었을 것 인데 아쉬운 부분.이다

주루 툴은 매우 우수해서 2013년 시즌 후 상무 입단 테스트 때 100m를 11.3초에 돌파했을 정도이다. 5년 만에 등장한 60도루 달성자에 4년 연속 도루왕이라는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일단 출루하면 무조건 뛰거나 뛰지 않더라도 배터리를 흔들기 때문에 상대 배터리도 박해민이 출루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며 많은 견제구를 던진다. 하지만 상대팀도 데이터가 쌓이고, 15년 도루왕을 차지한 이후 바람이 들어가 과욕을 부리다 견제사나 주루사가 늘었다. 해가 갈수록 도루 성공률이 조금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20] 2014년에 81.8% 2015년 85.2%로 높은 성공률을 보이다 2016년 77.6% 2017년 76.9% 2018년 78.3%를 기록했다. 보통 75%정도를 도루의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떨어졌다.[21][22][23] 물론 도루 성공률이 떨어졌다고해서 박해민의 주력이 줄었다던가, 상대팀이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문제는 그 놈의 타격. 수비와 주루 플레이는 S급이지만 리그 평균 이상 타자였던 적이 한번도 없다. 박해민의 핫&콜드존으로 요약되듯 그 넓은 야구장을 펄펄 날아다니지만, 정작 조그마한 배팅박스 안에서는 작아지는 선수.세상은 공평하다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로 장타력은 기대할 수 없고, 근력이 약해서 타구의 비거리 자체가 짧다. 약한 타구질 때문에 우타 전향을 팀에서 제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출루 능력에서는 아쉬움이 있는데, 선구안은 제법 있는 편인데도 배트 컨트롤이 떨어져 컨택이 되지 못해 스트라이크존 한 가운데가 콜드존이다. 어떻게 쳐낸다고 하더라도 상술한대로 비거리가 짧아서 내야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타석에서 기습번트를 많이 시도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번트안타와 내야안타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기습번트로 본인이 살 수 있는 플레이는 잘 하는 반면, 주자를 안전하게 진루시키는 희생번트는 자신의 도루 욕심 때문인지 잘 안 대려 한다. 물론 대려고 맘먹으면 잘 대긴하지만...

2014년 12.1%에 머물렀던 삼진률은 풀타임 2년차인 2015년 들어 20.7%로 급증했고, 리그 최다 삼진 6위/최고삼진율 10위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로 삼진이 많아졌다. 2015시즌 리그 삼진 10위 내에 드는 타자 중 유일한 무홈런 타자다. 최다 삼진율 10위 안에서 박해민을 제외하면 모두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이고, 최다 삼진 10위 내에서 박해민을 제외하면 잠실을 홈으로 쓰는 오지환이 10홈런, 그 외 8명은 모두 20홈런 이상 친 장타자들인데 박해민은 똑딱이면서도 이런 타자들과 비슷한 삼진을 당했다. 2016시즌에는 약간의 벌크업, 타격폼 수정으로 삼진은 2015년 126개에서 86개로 대폭 줄었다. 비거리가 약간 늘어나며 순장타율 역시 상승하였고, 2015년에는 하나도 치지 못했던 홈런을 4개나 쳐냈다. 그러나 이걸로 타격지표 상승 운운하기에는 더 떨어진 출루율이 뼈아프다. 17시즌에는 홈런은 7개로 3개 늘린 대가로 가뜩이나 낮은 출루율이 2푼이나 더 떨어졌고 순장타율은 0.110에서 .0109로 아주약간이지만 하락했다. wRC+는 4년째 제자리 걸음.

4년 간 2할 후반에서 3할 사이 타율을 유지하곤 있지만 현대 야구에서 거의 의미를 잃은 클래식 스탯 타율 외에 딱히 내세울 타격지표가 없다. 오히려 출루율은 눈에 띄게 감소중이다. 당장 세부지표를 보면 .245의 타율로 커리어로우를 기록했던 2012년의 배영섭 조차도 넘지 못한다. 2017년 들어서는 이게 더욱 더 심해져서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5푼도 채 나지 않는다. 본인도 이걸로 고민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wRC+는 늘 85~86 언저리로 단 한번도 100을 넘긴적이 없다. 리그 평균 이상 타자였던 시즌이 없다는 뜻.

다만 2018시즌은 타격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wRC+도 커리어 최초로 90을 넘긴 99로 시즌을 마무리 했고 아시안 게임 선발 때는 100을 넘기기도 했다. 아시안 게임 이후로 홈런을 5개나 때려냈다. 하지만 이건 그저 탱탱볼 거품이지 타격 능력 향상이 아니다.

마지막 탱탱볼 시즌에 군면제를 받은 박해민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한 2019시즌 고장난 람보르미니모드로 최악의 1번타자가 되었다. 7월 현재 1번타자중 타율 꼴찌. 출루율 3할 초반.

4. 기타

2016년 내 질문을 부탁해
  • 전술한 대로 선수 인생의 전환점이 된 2014 시즌 시작 전 상무 입대를 계획 중이었으나, 김헌곤 등과 함께 단체로 탈락했다. 하지만 붙박이 중견수 후보였던 정형식의 끝 모를 부진, 그리고 음주사고로 인한 완전 시즌 아웃으로 기회를 잡아 김헌곤과 함께 외야진의 한 자리를 이끌고 왔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2015 시즌 후 군 입대가 예상되었지만 배영섭이 군 복무 중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것으로 인해 군 2년차에는 지명타자로만 나오다시피 하면서 중견수 수비 가능 여부가 불분명했고, 당시 연속 우승을 노리던 삼성의 사정상 2015 시즌을 마치고도 군 입대를 신청하지 않았다. 김헌곤이 전역하면 군에 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한 시즌 더 미루게 되었다. 현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서 군문제를 덜었다.
  •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공을 치는 좌타자다. 류중일 감독은 그래서인지 타구에 힘이 덜 실리고, 우타석 스윙시 궤도가 괜찮다며 2014 시즌이 끝난 후 캠프에서 우타자 전향 테스트를 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 류중일 감독의 우타자 리드오프 선호와 파워 툴 중시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그냥 해보는 말은 아닌듯하나, 성공적으로 우타자 전향에 성공할 경우 재기발랄한 번트 플레이는 보여주기 힘들듯하다. 2015년 전지훈련에서 우타 전향을 시도했지만, 좌타자로 보낸 기간이 더 길었던 탓인지 잘 적응하지 못해 열흘 만에 포기했다.
  • 원래는 서울 출생에 가족들도 대구와는 연고가 없음에도, 2014년 말에 가족 모두가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로 이사했다. 여동생(박해영)이 하나 있는데 놀랍게도 20살이나 어리다. 평소 플레이에 독기가 철철 흐르는 데는 이런 가정 사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여담으로 신인 시절에는 동료들이 이 여동생을 박해민이 사고쳐서 낳은 딸인 줄 알고 아버지로서의 책임 때문에 그렇게 죽어라 노력하는 줄 알았다고. 게다가 박해민이 나이 먹고 점점 구수해지면서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부녀 관계 같다. 박해민과 여동생의 시상식 사진
  •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대단하다. 몇 안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중 처음 올린 사진도 동생과 찍은 사진이며 여러 인터뷰에서 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표현했다. 삼성 라이온즈 공식 인스타그램에 박해민이 처음 홈런 인형을 받은 뒤 올라온 게시물 내용을 보면, 처음 홈런 인형이 나왔을 때 박해민이 동생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싶어 눈을 반짝였으나 홈런을 쳐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본인은 못 받는다며 고개를 떨궜었다고 한다. 이날 박해민이 받은 홈런 인형은 무사히 동생에게 전달해 박해민이 직접 본인 인스타그램에 인증샷까지 올렸다.
  • 영중초 시절, 제1회 박찬호기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 개막경기에 선발포수로 출전하면서 시구행사에서 시포를 맡았다. 시구는 당연히 박찬호. 박찬호-박해민 배터리
  • 마구마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삼성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자신 캐릭터는 대주자로만 쓴다고.
  • 2016년 KBO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손을 잡고 구단별로 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뽑았는데 삼성에서는 박해민이 뽑혔다.
  • 2014년까진 이승엽급은 아니지만 싸인을 매우 안 해주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시즌 후 여자친구에게 "니가 뭔데 싸인 안 해주는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24] 그 후 초기엔 팬 서비스가 좋았었다. 하지만 2017년에는 다시 안 좋아져서 이젠 구자욱과 이승엽보다도 팬 서비스가 형편없어졌다. 삼갤에서는 선물을 받아달라고 부탁해야 가져가고 인사도 안 한다고 한다. 또 타격율이 낮은데 과대평가되었다고 평가가 극도로 박해진 상황. 네이버에서도 삼성 선수들 팬 서비스 좀 어떻게 해보라는 말이 나온 걸 보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 2017년 8월 26일 박해민 데이 경기 종료 후에 단상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언급했다. 구자욱이랑 강한울도 같이 언급하면서 먼저 피드백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팬서비스가 다시 좋아졌다. 팬 요청에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정성껏 하고 있다고 한다.
    • 박해민데이 이벤트 때 해미니 삼행시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이벤트 당선작이 희대의 명작이 되었다.
    • 로운 국인 퍼트 라는 삼행시가 삼성 라이온즈 페북에 올라왔고 그대로 당선되었다.
  • 그러다 2017년 11월 27일 남몰래 포항 지진 성금 1,000만원 기부한 사연이 알려졌다. 박해민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구호 성금을 내려 했으나 성금을 전달받은 협회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졌다. 기사
  • 2017 시즌 종료 후 자신의 여자친구와 결혼했는데, 같은 팀에서 뛰는 황선도의 친누나이다. 즉, 황선도가 처남이다.
  • 의외로 누적성적이 좋은 편이다
  • KBO 역사상 5번째로 4년연속 150안타 이상을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이 있지만, 정작 본인은 람보르기니를 못 사고 있다...[25]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삼성 라이온즈 1군 기록 없음
2013 1 0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14 119 310 .297 92 11 4 1 31 65 36
(5위)
43 .368 .381
2015 144 525 .293 154 22 7
(1위)
0 47 96 60
(1위)
58 .362 .362
2016 141 564 .300 169 26 12
(2위)
4 61 109 52
(1위)
52 .410 .357
2017 144 570
(2위)
.284 162 25 8
(공동 2위)
7 54 96 40
(1위)
51 .393 .338
2018 144 576
(1위)
.299 172 30 10
(1위)
9 68 114
(공동 2위)
36
(1위)
59 .432 .360
KBO 통산
(6시즌)
693 2545 .294 749 114 41 21 261 480 224 266 .396 .358


[1] 2016년 9월 21일 vs 롯데 자이언츠[2] 2010년 생이다. 무려 20살 차이다.[3] 이름 때문에 해민스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정작 본인크리스찬이다. 모 걸그룹 멤버와 비슷한 케이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4] 원래는 한서고를 다녔으나 1학년을 마치고 팀이 해체되면서 신일고로 전학했다.[5] 생활체육학과(2008학번) 이쪽은 체육교육과가 아니기 때문에 교사자격증은 나오지 않았다.[6] 2014년 6월 8일 한화전에서 선발 1루수 채태인의 부상에 따라 1회 말부터 1루수로 경기를 뛰었다. 이후로도 대타나 대주자 투입으로 수비 포지션이 꼬이면 1루수로 들어간다. 초기에 1루 수비는 그냥 할 줄 아는 수준이었으나 2016년에는 전문 1루수 수준의 수비를 보여줬다. 발이 빨라 수비 범위가 넓다. 이 때문에 우익수가 수비해야 할 범위까지 커버해버려서 1익수라고 불리기도 했다 원조는 이 분[7] 안타쳐볼까 (안타안타) 도루를 해볼까 (다다다다) 라이온즈 수비의 심장(두근두근) 최!강!삼!성!박!해!민[8] 김상헌 단장이 남녀 구분 응원가를 만든듯하다. 곡 분위기가 아즈망가 대왕 엔딩 소녀의 로망과 약간 비슷하다.그러나 시즌이 막바지로 갈수록 점점 구분은 없어졌다고....[9] 개막전(잠실 두산전)에서 "저기 반대편에 잘하는거 있잖아요"[26]라고 말하기도 했다.[10]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땀으로써 병역이 면제되었다.[11] 허구연 특유의 발음이다.[12] 이름이 혜민 스님과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지만, 박해민은 개신교 신자다. # 가끔 인터뷰에서도 종교가 개신교임을 알 수 있다.[13] 자신도 이 별명을 좋아해 인스타그램의 아이디까지 바꿨다.[14] 2017 시즌부터는 타격시 차고 나오는 팔꿈치 보호대에도 lambormini라고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15] 드래프트 후 바로 삼성에서 박해민의 아버지에게 육성선수 입단 제의를 하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16] KIA에서 2차 드래프트로 삼성으로 온 신용운의 재활도 담당했었다.[17] 사실 이들은 수비로도 KBO 최고 수준이었다.[18] 2019년 삼성의 1루 수비 우선순위는 다린 러프-이원석-박한이-이성곤 정도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최영진은??[19] 구자욱과의 토스플레이의 활용을 늘리기 시작했다.[20] 매년 벌크업을 조금씩 하면서 주루는 조금씩 안좋아진다는 썰도 있다.[21] 이에 대해서는 갈 수록 떨어지는 팀 장타때문에 발로 해결하려하는 팀의 성향과 겹쳐서 무리하게 뛰는 일이 자주 벌어져서 그럴 것이라는 평도 있다. 팀의 장타력이 증강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9년에 지켜보면 알 수 있을 부분...[22] 2016년에는 스파이크를 잘못 선택한 해프닝으로 6~7연속 도루 실패가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2015년 정도 수준이다.[23] 2017년과 2018년에는 장타력이 떨어진 팀 사정에 따라 더블스틸 실패 등이 좀 많았었다. 물론 야구에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이 역시 이를 제외하면 예년 수준일 수도 있다.[24] 2015 시즌 중에는 싸인 몇 번 한다고 손가락 부러지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25] 람보르기니 우라칸이 3억 4200만원으로, 박해민의 연봉보다 5천만원이나 비싸다. 이젠 1년만 열심히 뛰면 살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