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6:18:54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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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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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민수 · 28 이병헌 · 42 김도환
· 47 강민호 [[주장|
C
]] · 52 김응민 · 68 서주원 · 114 채상준'''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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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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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기록
2008, 2011, 2012, 2013, 201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2015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2015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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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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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1982~1994 1995 1996 1997 1998
? 한영준 김응국 이종운 공필성
1999 2000 2001 2002 2003
박정태 마해영 조경환 강상수 박현승
2004 2005 2006 2007 2008~2010
김대익 염종석 손인호 손민한 조성환
2011 2012 2013 20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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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017~2018 2019~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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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0번
정진수 강민호(2004) 고윤성(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7번
김경환(1993~1997) 강민호(2005~2017) 강동관(201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7번
최민구(2015~2017) 강민호(2018~) 현역
}}} ||
파일:ㄱㅁㅎ2.jpg
삼성 라이온즈 No.47
강민호 (姜珉鎬[1]/Min-Ho Kang)
생년월일 1985년 8월 18일 ([age(1985-08-18)]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신체 185cm, 100kg, B형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학력 제주 신광초 - 포항제철중 - 포철공고[2] - (국제사이버대학교)
십이지 소띠
별자리 사자자리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2차 3라운드 지명(전체 17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4~2017)
삼성 라이온즈 (2018~)
병역 병역특례
가족 아버지, 어머니, 형[3], 부인 신소연[4] , 딸 강하이[5]
종교 불교
에이전트 조찬희
등장곡 노브레인 - 넌 내게 반했어 → Kites · John Khalkho[6]
응원가 자작곡[7][8]
연봉 12억 5천만원 (FA, 2019년)

1. 개요2. 선수 생활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여담
5.1. 응원가5.2. 별명5.3. 친목질의 대가5.4. 대두5.5. 기부
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ultraimg.com/xgSi.jpg
출처
“나의 뒤를 이을 포수라면, 모두가 알고 있듯 강민호”
2014년 4월 5일, 박경완이 자신의 은퇴식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주장을 맡고 있는 야구 선수.

2010년대 초반을 전후로 KBO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였으며[9], 골든글러브 5회 수상하여 김동수의 7회에 이어서 이만수와 공동 2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울러 국가대표로 8번 차출되었는데, 이는 포수로서 최다 횟수다.

2. 선수 생활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민호/롯데 자이언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삼성강민호.jpg
[10]
▲ 강민호 삼성 응원가▲ 삼성 이적 후 첫 사직구장 방문한 강민호…롯데팬들의 반응은?

삼민호가 현실이 되다. 고향팀으로 이적한 강민호

1차 FA 때와는 달리 2차 FA 때는 조찬희를 에이전트로 고용하여 협상을 진행했다. 첫 FA때와는 다르게 협상이 조금 오래 걸려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빠른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거의 모든 롯데팬은 강민호의 이탈이 대해선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는 맙소사가 되었다... 2차 FA인 부분도 있었고 선수도 팀에 대한 애정이 넘쳤기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로 역대 FA 최고의 충격으로 불릴만 하다. 이걸로 2018 FA 시장은 모두 잠재워버렸을 정도.

2017년 11월 21일 롯데와의 협상 결렬 기사가 뜨자마자 4년 80억원(계약금 40억, 연봉 총액 40억)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며 고향팀[11]으로 이적했다. 너무나도 조용했던 데다가 롯데 프런트와 롯데 팬덤 모두 강민호는 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 반전이 일어나게 되었다.[12] 17년에 삼성은 방출된 최경철과 주로 2군에서 있던 나원탁을 제외하더라도 기존의 주전포수 이지영에 백업으로 권정웅, 김민수 3명의 포수를 1군에서 기용했었는데, 군 제대하는 김응민과 FA로 이적해온 강민호의 합류로 강민호-이지영 체제에 백업만 네명이 넘어가는 뎁스를 확보하게 되었다.

롯데와 삼성이 같은 금액인 80억원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적하자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의혹이 불거졌다. '이면 계약설', '계약 축소 발표설', '추가 옵션설' 등이 난무했다. 반면 같은 금액으로 이적했다는 것이 사실임을 전제로 롯데의 협상태도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강민호는 이면계약설, 추가옵션설 등을 부인하면서 삼성으로의 이적은 전적으로 감정적인 문제였다고 밝혔다.
기자 : 같은 금액이면 왜 삼성을 택했나.
강민호 : 돈 문제라면 롯데에 남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삼성으로 마음이 흔들린 계기가 분명히 있었다. 보상금까지 내주며 나를 데려갈 팀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가운데 적극적인 삼성에 마음이 흔들렸다.
강민호 인터뷰 중

강민호 :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찾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서 아니었던 거죠. 삼성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요.
SBS 뉴스 링크 #요약본

이와 같은 강민호 측의 잇다른 발언이 나오자 일부팬들은 롯데의 협상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액수에도 불구하고 강민호가 이적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롯데 사정에 능통한 야구인은 롯데의 협상태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민호가 보상금액(20~30억)을 빼더라도 다른 팀에 가겠다고 답답해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참 쓰라린 삼성 강민호, 방심한 롯데가 당했다
하루 뒤인 11월 22일에도 SBS에서 강민호의 삼성 이적은 어디까지나 롯데의 냉랭한 무관심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논조의 기사가 나왔다.
기자는 지난달 강민호를 만나 FA 계약과 관련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민호는 “롯데에 남을 거다. 갈 곳도 없다”며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4년 전과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다. 내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지난 8일 FA 시장이 열린 뒤에도 롯데와 강민호의 FA 협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참고 기다리던 강민호는 지난 주 구단 사무실을 찾아갔고, 먼저 “롯데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구단 측은 강민호에게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중략뒤

삼성의 제안을 받은 강민호는 다시 롯데 구단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삼성에서 4년 80억 원을 제시했다. 마음 흔들리고 싶지 않다”며 롯데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롯데는 강민호에게 확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뉴스 링크

그러나 언론의 취재 결과 롯데 구단과 강민호 사이에 감정적인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보도가 나왔다.
취재 결과, 감정적 문제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첨예할 수밖에 없었던 협상의 본질상, 마냥 매끄러울 순 없었다. 그러나 판을 깰 만큼의 갈등은 없었다. 롯데가 협상 과정에서 돈으로 만회할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삼성행’ 강민호는 왜 롯데 프랜차이즈를 포기했나?
이 기사의 주장에 따르면 강민호의 이적은 감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아래에 나오는 추가 옵션이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강민호는 삼성과 롯데가 같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삼성이 적극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적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의 야구팬들과 야구 관계자들은 강민호가 같은 금액으로 이적했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야구계에는 "계약 축소 발표설", "추가 옵션설"이 나돌았다. 강민호, 같은 몸값인데 왜? 충격받은 팬들 “계약규모 축소 발표 또는 옵션 규모 차이 날 것”-서울 경제. 이러한 축소 발표설, 추가 옵션설은 단지 야구팬들 사이에서만 나돈 이야기가 아니었다. 현업 야구계 관계자들의 상당수도 이면 계약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야구계 복수의 관계자들도 “강민호의 삼성 입단 조건을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그러자 강민호가 직접 축소 발표설, 추가 옵션설을 극구 부인하고 나섰다.
기자 : 롯데가 제시했다고 밝힌 액수(4년 80억원)와 삼성의 발표액이 같다.

강민호 : 이건 하늘에 맹세할 수 있다. 80억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80억원 계약이어도 보상금액 등을 생각하면 삼성은 나에게만 1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이다. 80억 이상은 절대 받을 수 없다. 과분하다. 축소 발표가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삼성 구단 역시 공식 입장을 통해 '축소계약'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발표했다. 축소 발표는 절대 아니다. 세금 대납 조건도 없다." - 삼성 라이온즈 구단 #

그러나 삼성 구단 측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삼성의 한 관계자는 80억원 이외의 추가 옵션이 있다고 실토했다.
“보장액수는 80억원이 맞다. 다만 추가 옵션이 있다.” - 삼성 구단 관계자 ‘삼성행’ 강민호는 왜 롯데 프랜차이즈를 포기했나?
즉 보장액 80억 원이고 이와 별도로 추가 옵션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2018년 5월 KBS는 단독 보도로 강민호의 삼성 이적 당시 제기되었던 검은 뒷돈 거래 의혹이 사실이었다고 보도했다. KBS는 익명의 한 야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강민호의 실제 계약 액수는 92억원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 라이온즈 구단 관계자는 강민호의 실제 계약 액수는 총액 90억원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 구단 관계자는 "강민호의 FA 계약 금액은 계약금 40억원, 4년 간 연봉 10억 원씩, 여기에 옵션을 포함해 최대 90억 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선수와의 합의에 따라 옵션 계약은 당시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 #

강민호 사건 등의 여파로 KBO는 구단과 선수 간의 FA 계약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계약과 연봉에 해당하지 않은 옵션 내용도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하고, 계약과 관련된 증빙 서류 제출도 요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되었다. 개정된 내용은 2019시즌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한편 삼성 구단은 2019년 강민호 연봉을 12억 5천만원으로 공시했다. FA 계약 발표에 따르면 강민호의 연봉은 10억원이지만, 2018시즌 강민호가 옵션(총액 10억원/4시즌) 조건을 모두 충족하였기에 2019년 연봉이 12억 5천만원으로 공시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강민호는 공수 양면에서 모두 당초 기대에 못미치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옵션 조건을 모두 달성한 것으로 볼 때, 성적과는 크게 관련 없이 부상없이 경기에 출전한다면 무난히 달성할 수 있는 옵션 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2.2.1. 2018 시즌

2.2.2. 2019 시즌

이제는 사자군단의 캡틴!
뭐라고 해야 하지 참[13]

3. 플레이 스타일

박경완 이후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날렸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0.800 이상의 OPS를 기록했고, 신인시절과 부상시즌 등 몇 시즌을 제외하면 Wrc+로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들중 항상 순위권에 위치했다. 주전 첫해였던 05시즌과 역대급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06시즌, 부상으로 중도 이탈한 09시즌을 제외하면 꾸준히 두자릿수 홈런을 쳐주고 있고[14], 항상 4할 5푼을 넘길 정도로 높은 장타력이 강점이다. 득점상황에서의 클러치 능력도 준수 한 편. 데뷔 이래로 끝내기를 무려 8개나 쳐냈다. 또한 만루의 사나이 2016시즌 현재 만루홈런 10개로 역대 4위 기록이며 나이를 생각한다면 최다 만루포도 잘하면 노려볼수 있을 정도. 주루능력은 아쉬운 편으로 시즌 중에 도루가 5개가 넘어간 적도 없으며 이대호가 있던 시절부터 느리기로 서로 투탑을 달리던 사이였다. 삼진 개수가 많지만 공갈포는 아니라서 출루율 3할 5푼 이상에 BB/K 0.6이상은 찍어줬다. 또한 2015시즌 타격폼을 수정하며 역대 포수 최초 3할 35홈런에 역대 포수 최대 OPS를 기록하여 리그 최강의 공격형 포수임을 확실히 보여줬다. 보통 강타자의 기준을 OPS 0.8~0.85로 잡는데, 강민호는 대부분의 시즌을 .800 후반대의 OPS, 커리어하이였던 15년도에는 1을 넘는 OPS를 기록하며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날렸다.

풍기라는 별명은 강민호의 커다란 풀스윙에 의해서 생긴 별명이다.[15] 여름엔 그렇게 시원 할 수가 없다강민호 스윙을 보면 당겨치기 위주의 시원한 풀스윙을 선호하는 스타일의 타자라는걸 알 수 있다.[16] 그렇기 때문에 맞으면 많은 장타를 양산 해내고[17] 그러다 보니 바깥쪽 낮은쪽으로 떨어지는 포크볼 체인지업에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강민호가 볼넷이 많은 것은 선구안에 기인한다기 보다 그의 장타를 의식한 투수들이 승부를 어려워 하기 때문이다. 볼넷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역대 BB/K 비율이 1:2 정도로 평균적인 거포타자다. 바깥쪽 낮은 코스에 대한 약점이 극복 되지 않는 이상 삼진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강민호는 07시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인상적인 타격폼인 김태균의 타격폼을 카피하여 타격포텐을 터뜨렸으나[18] 2012시즌 뇌진탕 부상과 계속 써오던 타격기술의 문제점이 겹쳐서 13, 14시즌을 아주 거하게 말아먹었다.[19] 2015시즌 장종훈 타격코치의 조언으로 아예 자신의 장점인 당겨치기를 극대화하고 스윙을 이전보다 더 간결하게 하며 히팅 포인트와 무게중심을 앞에두는 새로운 타격폼[20]을 장착, 정교함과 장타력을 훨씬 발전시키며 부활에 성공했다.

수비의 경우 초년병 때 여러모로 미흡한 모습을 보여 자주 욕을 먹었으나, 초창기에도 그렇게 나쁜 수비는 아니었다. 최기문의 부상으로 처음 기회를 얻은 강민호가 주전 자릴를 꿰찰 수 있었던 것도 수비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21] 하지만 꾸준히 느는 타격실력에 비해 수비의 성장은 더뎠고, 시야가 좁고 입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줬기에 팬들에게 주기적으로 까이게 되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이면서 차츰 수비도 발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강민호의 수비 중 특히 뛰어난 점은 높은 도루저지율이다. 어깨가 매우 강한데다가 전성기 시절 미트에서 공을 빼내는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호의 도루저지율은 꾸준히 좋아져 2011시즌부터 리그 정상급의 저지율을 보여줬다. 09년 팔꿈치 부상의 여파로 09~10시즌에 도루저지율이 크게 떨어져 비판을 받았지만, 부상 여파에서 벗어난 11시즌부터는 리그 상위급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 타격에서 크게 부진했던 2014시즌조차 타 팀 포수들의 도루저지율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완연하다. 이와 함께 포구/블로킹도 점점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노쇠화 때문인지 수비력에서 기량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 리그 탑급을 자랑하던 도루저지율도 최근 급격히 떨어져 이제는 주전 포수들 중 중하위권 살짝 아래 수준까지 도루저지율이 떨어졌다. 포구/블로킹 능력도 좋은 편이 아닌데, 전성기 시절에도 주전 포수들 중 중간 정도 수준이었다. 다만 롯데 투수들이 포크볼을 많이 구사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17 준플레이오프 때 강민호가 여러 차례 포구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고 특히 평범한 직구조차 어이없이 포구에 실패하면서 이것이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롯데 코칭스태프도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크게 아쉬움을 토로했고, 결국 이것이 FA 때 롯데 프런트가 강민호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프레이밍은 예전부터 강민호의 최대 약점 중 하나로 꼽혔다. 프레이밍을 안하는 포수로 유명했다. 그덕분에 KBO 심판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수로 꼽히기도 했다. 심판들이 강민호를 좋아하는 이유 "정직한 미트질". 심판들은 "(강민호는) 심판을 속이는 미트질이 아니라 잘 보이게 공을 잡아준다.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흔들리지 않게끔 정확하게 잡아주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미트질을 하면) 심판들도 가끔 헷갈리게 된다. 강민호 같이 정확하게 잘 잡아주는 포수에게는 심판들도 믿음이 간다."면서 강민호를 칭찬했다. 타팀팬들에게 정직한 포수로 칭송받은 것은 덤이다. 프레이밍으로 여러 소리를 들어서인지 차츰 프레이밍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전히 평가는 좋지 못하다. 최근 강민호가 포구 미스가 많아진 이유에 대해, 프레이밍을 안한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어설프게 프레이밍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공을 빠뜨리는 현상이 잦아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롯데 말년에 여러 수비 지표가 동반 하락하며 리그 하위권으로 쳐졌다.

총액 90억원으로 삼성으로 이적하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나 공수 양면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2018시즌 일각에서 노쇠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대부분의 삼성팬들은 팀을 옮긴 적응기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2019년 공격력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했다. 대신 수비형 포수를 공언했던 만큼 2019시즌 들어 수비 지표가 많이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몇몇 수비 지표가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고, 강민호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프레이밍 지표도 준수해졌다. 하지만 실책 1위를 기록하는 등 명암이 존재한다. 일단 Pass/9 지표는 좋게 나오고 있지만 수치와는 별도로 실제 경기에 강민호의 포구, 블로킹에 대해서 불안하다고 말하는 삼성팬들이 많다.

내구성이 좋다. 강병철 감독에게 중용 받은 이래 부상으로 빠진 2009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풀타임으로 소화해냈다. 포수가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인 만큼 이는 큰 강점이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만큼 넘긴만큼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

4.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내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롯데 3 5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5 104 214 .243 52 11 2 2 18 20 1 7 .341 .267
2006 126 410 .251 103 20 0 9 53 40 4 34 .366 .307
2007 125 413 .271 112 20 0 14 68 48 1 41 .421 .335
2008 122 435 .292 127 25 1 19
(5위)
82 51 2 56 .485 .365
2009 83 262 .260 68 13 0 9 30 36 0 36 .412 .346
2010 117 410 .305 125 19 1 23 72 66 2 50 .524 .376
2011 124 450 .289 130 25
(5위)
2 19
(5위)
66 63 4 55 .480 .366
2012 119 400 .273 109 21 0 19 66 41 0 52 .468 .355
2013 105 327 .235 77 13 0 11 57 48 4 71 .376 .366
2014 98 310 .229 71 14 2 16 40 37 1 46 .442 .325
2015 123 380 .311 118 18 1 35
(4위)
86 63 0 74 .639
(3위)
.421
2016 116 381 .323 123 26 0 20 72 65 4 76 .549 .433
(5위)
2017 130 456 .285 130 22 1 22 68 62 0 56 .482 .361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8 삼성 129 427 .269 115 14 0 22 71 46 0 43 .457 .331
KBO 통산
(15시즌)
1624 5280 .277 1460 261 10 240 849 686 23 697 .466 .358

5. 여담

  • KBO 친목질계의 아이콘. 야구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선수 강민호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인간 강민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 2011년, 프로야구 30주년 기념 영상에 출연해서 춤을 선보였다. 김현수, 나성범과 달리 댄스실력은 준수했다.
  • 팬들 사이에선 박기혁, 김주찬과 함께 나이트 죽돌이에 술 잘 먹고 노는 거 좋아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내원석이 캐슬수화 장롤코 강풍기 빅 포;;; 빅 포중 2명이 삼성갔다
  • 2011시즌 이전까지 타격에 비해 부족했던 수비스킬과 맞더라도 몸쪽으로 자신있게 찔러넣을 것을 강조했던 로이스터 감독의 성향, 양상문이 망가뜨려놓은 불펜진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야구팬들 사이에 공격형 포수와 수비형 포수 논쟁을 불러왔었다. 10시즌까진 굉장히 치열한 논쟁이었으나 수비가 일취월장한 11시즌부턴 추억거리가 되었다. 타격이 극히 부진했던 13~14시즌에는 되려 수비형 포수라고 욕을 먹었다.
  • FA계약 이전 진갑용의 노쇠화를 우려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강민호를 굉장히 탐냈었다. 특히 강민호를 뽑을 기회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진갑용 백업으로 이정식을 지명하는 바람에 강민호 포텐이 터지고 이정식은 백업 이하로 전락하자 많은 삼성팬들이 뒤집어졌다. 이때 삼성팬들은 강민호를 대놓고 '삼민호' '삼풍기'라고 불렀다.[22] 삼성팬들만 그랬던게 아니라서 몇몇 엘지 트윈스 팬들도 '엘민호'라고 불렀다. 그럴만도 했던게 기존 국가대표를 봤던 포수들인 진갑용, 박경완, 조인성이 모두 선수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상태였고, 리그 전체가 포수 기근에 시달렸다. 대형포수로 성장할 만한 재능이 1군 주전이 아닌 유망주 레벨까지 통틀어도 강민호, 양의지, 장성우 3명에 불과했는데 강민호는 경험이나 타격에서 다른 둘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수비력도 11시즌부터 일취월장했고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을 해결했고 워낙 일찍 데뷔한 탓에 FA시즌에도 20대라 KBO FA는 노후연금이라는 비판과도 무관했다. 누구나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선수 본인은 롯데와 부산에 강한 애정을 드러냈고‎게다가 삼나쌩 클럽이기도 했고 2013년 FA 자격을 취득했을때 정말로 부산에 남았다! 그리고 삼성은 프랜차이즈 출신 포수를 얻어서 마르고 닳도록 찬양하고 있으니 모두에게 해피엔딩 LG도 유강남을 얻었다 그런데 정말로 강민호가 삼성으로 왔고 삼성팬들은 축배를 터뜨리며 환호하고 있다. 롯데팬들은 울상짓고 있지만.삼민호, 환영합니다![23]
  • 여담이지만 정말 의외인 사실이 유일한 제주도 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 때문에 제주도 체육회 영예경기상을 수상했다. #
  • 2010년 7월 20일 넥센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된 황재균이 거처를 정하지 못해서 자기네 집에 임시로 얹혀 살게 해줬다.
  • 또한 팬 관리, 특히 싸이질을 통한 여성팬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쏟고 있는 듯하다. 수능이 끝난 후 싸이 다이어리에 올린 "여고생 여러분 수능 잘 치셨어요?"는 가히 압권. 남자는 수능 안 보냐 참고로 강민호 싸이홈피에 어떤 팬이 비난글을 올리자 그는 그 팬에게 욕을 하실꺼면 쪽지로 보내주세요 제 홈피가 더러워지는거 원하지 않습니다!!!(써있는 그대로기에 문법이 다소 틀린부분이 있다.)라고 답장쪽지를 보내서 야갤에서 까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타팀의 여러선수들이 미니홈피에서 각종 욕설이나, 팬을 비난하면서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무척 자주 생기자 강민호의 긍정적인 반응은 다시 한번 재조명받기 시작했고 훌륭한 미니홈피 운영의 귀감으로 떠올랐다.
  • 워낙 호인인데다 팬들에게 초창기부터 이래저래 시달리고 울고 웃기다 보니 그쪽으론 이골이 난 듯하다. 2010년 시즌 초반 수많은 비난을 혼자 감당하여 자신감이 매우 결여되었을 듯한 상황에서도 비난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했다.
  •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카메라만 보면 특이한 표정을 잘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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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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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그나마 이건 어렸을때(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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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9일 두산과의 3연전 첫날 엠스플 카메라에 윙크하는 모습. 이 날 강민호는 더스틴 니퍼트로 부터 결승 투런홈런을 치면서 엠스플에서 수훈선수 인터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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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본인 트위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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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공식홈페이지에.. 데프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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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카메라로 셀카. 참고로 저 렌즈(70-200mm로 추정)로는 저 거리에서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한 마디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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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귀요미라기 보단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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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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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은 제리 로이스터 문서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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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중?의외로 잘생겼다.
  • 본인 스스로 굉장히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차례 야구 관련 프로그램에서 미남을 자처했다.[24] 사실 데뷔 당시엔 본인 소개에 적은 꽃미남이란 별명이 나름 어울릴 정도로 훈훈한 얼굴이긴 했었다. 하지만 2006년 전 경기 출장을 달성하고 난 이후 위의 거지왕 짤을 생산할 정도로 급 노화가 진행되며 소위 장모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되었다.사실 어릴 때 강민호는 은퇴하고 대신 풍기가 뛴다 카더라
  • 10시즌을 마지막으로 최기문이 은퇴하면서 팀 내 최고령 포수가 되었다.[25] 2012시즌 4살 위 용덕한이 트레이드 되어 오면서 최고령 타이틀을 내어주었다가 용덕한이 KT위즈로 이적한 2015시즌 다시 팀내 최고령 포수가 되었다.
  • 꼴갤은 이제 꼴갤이 아니라 풍기갤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민호를 열심히 물고빨고 한다. (물론 이건 갈마에서 강민호를 지나치게 까댄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FA 계약 체결 이후에도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에 빠지자 '강극혐'이라고 가장 많이 불리고 있다. 물론 2015년 이후로는 그런 거 없고 '강혜자'라고 부른다.
  • 권혁이동국 등과는 같은 포항제철고를 나왔고, 같은 제주도 출신 스포츠스타인 정성룡과 동갑이다. 강민호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포항에서 보냈고, 정성룡은 경기도 광주시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그래서 제주도 출신 스포츠스타를 거론할 때 이 둘은 반드시 언급된다.
  • 2011년 추석을 앞두고 야구 담당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추석을 같이 보내고 싶은 선수를 꼽는 질문에 두 표[26]를 얻어 1위가 되었다.#
  • 그리고 2012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부문 수상자로 나왔는데, 각각 케이블방송을 대표하는 최희, 배지현, 김민아 아나운서와 같이 나왔다. 야빠들은 배가 아프거나, 아니면 말 더듬는 강민호를 보면서 히히덕거리거나..
  • 사족으로 전 두산 베어스, 현 롯데 자이언츠민병헌과 약간 닮았다는 소리가 있다. 실제로 약간 처진 눈매가 비슷하긴 하다. 다만 민병헌이 좀더 각이 진 얼굴이라면, 이쪽은 좀 더 동글동글하고 펑퍼짐한 얼굴에 눈꼬리가 더 처졌다. 2018 시즌 이후 민병헌이 롯데로 이적하자 둘이 닮았다는 게 더 부각되었다.
  • 한동안 세월호 리본을 달고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
  • 배우 이상윤과도 매우 닮았다. 나이는 이상윤이 81년생으로 강민호보다 4살 위.
파일:2014080801000733900036853.jpg잘생겼다.파일:20140518001038_0.jpg

5.1. 응원가

롯데시절 응원가는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을 개사한 곡을 사용했다.[27]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당연히 새로운 응원가를 쓰게 될 전망이다.[28]

...였는데 이적후 시즌 절반이 지났는데도 응원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3월말 삼성측에서 바그너의 ‘쌍두독수리 깃발 아래에서’를 편곡한 응원가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퇴짜맞은 후 더이상 후속곡 소식이 없다.

드디어 응원가가 나왔다!

7월 6일 금요일 잠실 두산전부터 사용중인데, 반응이 굉장히 좋다.
멜로디도 꽤 좋다. 삼성 NEW 응원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라는 반응이 다수.

백문이 불여일견. 들어보자.

떼창이 꽤 들을 만하다. 만원 관중에서 무반주 떼창으로 들어보면 꽤 좋을듯.

5.2. 별명

  • 별명은 헛스윙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라 강풍기, 혹은 풍기라고 불리고, 카림 가르시아(갈풍기)와 함께 '쌍풍기'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아예 본명 대신 그냥 "풍기"라고 불린다.
  • 번저강(번트? 저 강민호인데요?)
  • 강구못(다른 팀은 강민호 구경도 못할 것.) 롯데 프런트가 강민호의 FA 계약을 앞두고 한 말. 얼마나 자신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강민호와 4년 75억 계약을 맺으면서 다른 팀은 정말 구경도 못했다. 이를 두고 2013 한국 프로야구는 번저강으로 시작해서 강구못으로 끝났다는 드립도 나왔다. 그리고 삼성라이온즈가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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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짤방 때문에 거지왕 강민호라는 별명이 생겼다. 당시 방송에 이 장면이 나오자 야갤에 이 짤방을 캡쳐한 유저가 '안녕하세요 강민호입니다. 천원만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 원인. 참고로 해당 경기는 더블헤더로 진행되었고, 강민호는 두 경기 연속으로 출장했다. 강민호의 높은 출장 빈도와 이 짤방으로 인해 야갤에서는 '강병철 감독은 투수혹사에 이어 이제는 포수혹사냐'며 강감독을 깠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미노타우루스에 빗댄 '민호타우르스'라는 별명도 있다.[29]
  • 2014시즌 역대급 부진과 찬스에서의 삽질로 위에 나열된 별명보다는 강극혐으로 많이 불렸었다. 그나마 이건 순화된 거고 롯갤 같은데에서는 거의 강xx으로 불렸다. 그러나 현재는 15시즌의 활약으로 강혜자로 불린다.
  • 예전 인터뷰에서 76홈런을 친 후 26홈런을 더 치면 100홈런이 된다고 말한바 있어서 암산왕 강민호란 별명을 얻은 바 있다.

5.3. 친목질의 대가

붙임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영어 실력과 상관 없이 외국인 용병 선수들과도 잘 지낸다. 로이스터 감독도 마찬가지. 파인 플레이 후, 혹은 승리 후에 로이스터 감독과 마주보고 포효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008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선 이 장면으로 골든포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롯데 팀 내에선 친목질의 중심. 어지간한 선수들은 죄다 강민호의 어장속에 들어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 초창기 시절 손민한과 배터리를 이루고 승리한 날엔 치킨 자유이용권을 발급받았다고 하며[30], 2006년시절엔 김수화, 강민호, 이원석, 이왕기의 롯데 Big 4(좋은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의 중심에서 친목질, 그 외에 자주 배터리를 이뤄야 했던 투수진 등등등…. 오죽했는지 이 놈 게이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다.

그렇다고 같은 팀에서만 친목질이냐? 절대 아니다. 가히 KBO 내의 친목질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맥을 자랑한다. 같은 포수 포지션의 박경완, 진갑용등에게는 애교와 조공을 통해 이쁨받고[31], 그 외에도 신경현, 김상훈, 조인성등과도 친밀한 사이. 또한 포지션이 포수인지라 어지간한 타자들과는 거의 다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시 정말 쉼 없이 입을 놀리면서 친하면 농담질, 안 친하면 '안녕하십니까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민호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부터 하고 친목질을 시도하는 등. 타자 앞에서 떠드는 점은 포수 출신 홍성흔이 지적을 한 적이 있으며, 양신은 XTM 겟잇기어에 출연해서 반쯤 농담조로 "롯데전에서 타석에 들어서면 강민호가 하도 시끄러워서 준비자세에서 배트로 프로텍터를 툭 치곤 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동 시대에 같은 포수로 활동하고 있는 양의지는 롯데와의 경기를 하게 되면 특히 더 신경이 쓰인다면서 "(타석에 들어서면) 민호 형은 입이 쉬질 않는다. 자꾸 말을 건다. 가끔 너무 웃겨서 힘이 빠진다."라고 하기도 했다. 양의지 또한 강민호가 타석에 들어왔을 때 악착같이 안타 안 맞으려고 한다고.. 알려진 바로 타 팀에서는 특히 김현수와 친분이 있고 그 외에도 김태균 등등…. 박석민은 자신이 삼성 감독이 되면 수석 코치 강민호, 주루 코치 김상수를 선임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박석민 개갞기 근데 NC 다이노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삼성 감독직에서 멀어질듯

심지어 강민호의 친목질은 해외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시상식에서는 동메달 수상을 위해 미국 대표팀의 멤버로 참여했던 존갈과 뜨거운 포옹을 하기도 했다. 이건 뭐 강민호 결혼하면 하객으로 전세계 사람들 다 모일 기세…. 진짜 결혼식장에는 결국 안 모였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제 선수끼리의 친목질을 벗어나서 타팀의 코칭스탭, 더 나아가 심판진들과도 친목질을 한다는 것. 2010년 6월 12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임채섭의 스트라이크 존이 바깥쪽으로 넓어지는 것에 대해서 "심판님, 민호는 심판님 말 잘듣잖아요…. 그런데 좀 전에는 볼 해줘도 됐을거 같은데…."

이 친목질은 고교 시절부터 알아줬던 모양이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된 축구선수 신광훈은 포철공고 1학년 시절 3학년이었던 강민호가 먹을 걸 많이 챙겨줬다며 아시안 게임에서의 선전을 기원했다. ### 아무리 같은 학교 후배라지만 다른 종목 선수까지 챙겨준 걸 보면 진짜 호인은 호인이다.

거기다가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 전창진 감독도 강민호 팬임을 자처하며 PO2차전 전에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강민호를 "방에 불러서" 홍삼액을 줬다고. 심지어 강민호도 우리는 "베프"라고 했을 정도.

여하간 그의 친목질 범위는 끝을 모른다. 오죽하면 "강민호를 포수로서 싫어하는 건 몰라도, 그를 인간으로서 싫어하는 건 그건 싫어하는 사람의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거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12시즌 후 녹화된 무릎팍도사 조진웅편에서는 직종의 벽도 넘었다. 당시 조진웅의 고민이 "롯데 야구가 신경쓰여 연기에 집중을 못하겠어요."였는데 프로그램 말미에 김시진 감독과 강민호의 영상편지가 공개되었다. 이때 시종일관 조진웅을 '진웅이행님'이라며 살갑게 얘기하고 이에 조진웅은 "민호 아이가ㅋㅋㅋ"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는데,
강호동 : 아, 두분이 원래 알던 사이셨어요?
조진웅 : 아뇨 한번도 본적 없어요.

이날 방송에서 조진웅씨는 사직에서 시구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 말했고 바로 다음시즌, 그것도 무려 개막전 시구자 자리를 꿰찼고 강호동이랑 약속한 시구 포즈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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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 아나운서의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애도를 표한 몇 되지 않는 프로야구 선수였다.[32] 괜히 여자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게 아니다.

2010년 1월 초, 방송에서 김석류 아나운서가 '자신과 친한 강민호가 내 이상형이다.'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썸싱이 있나 관심이 집중되었다. 강민호도 어지간히 친목질을 시전하면서 인터뷰에서 최근 누나가 변했다. 예전엔 홈런 치면 전화도 했는데 요즘은 전화 걸어도 안 받는다.며 징징댔는데…. 결국 8월 2일 별명이 많으신 그 분과의 결혼 발표가 보도되면서 여신의 어장관리에 당한 '강민魚'가 되었다. 이후 진짜 열애설이 터졌는데 2012년 8월부터 sbs 기상캐스터 신소연과 만나고 있다고 직접 밝혔다. ## 그리고 2015년 12월 5일 신소연 캐스터와 결혼하여 이제 어엿한 유부남이 되었다. 그리고 올 것 같았던 존 갈과 가르시아의 소식은 없었다

이젠 날씨랑도 친목질을 한다 카더라 #

2017년에 삼성에 이적하고 나서 입단식을 치른 다음날에 온 팀 아델만과는 아델만이 입단하자마자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것은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에 또 대문짝만하게 올라왔다. 그런데 원래는 단장과 투샷을 찍어야 정상이지만...강민호 단장썰[33] 나중에 아델만과 홍준학 단장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다.

5.4. 대두

양준혁, 이진영 등과 더불어서 대두 야구선수로 유명하다. 본인 말로는 신교대전투모 크기 60짜리를 썻었다고 주장하는 중인데... 그의 머리크기를 직접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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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이 강민호의 모자를 쓰자 얼굴이 다 가려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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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_원근법_무시.jpg 금환일식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왼쪽 맨 뒤가 강민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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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히메네스도 그의 머리크기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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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는 크지 않았다고....주장한다. 오른쪽이 강민호, 왼쪽은 NC 다이노스개리 박석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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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재원의 인스타에서 키배를 뜬적이 있다. 이때 오재원의 공격이...

5.5. 기부

4년간 75억을 받고 난 후 프로선수로서 기부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FA 계약 스타로서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하지만 FA 계약 후 저조한 성적 때문에 롯데 팬들은 "야구만 잘하면 될텐데"라는 애증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부활동을 인정받아 2015년 KBO 골든글러브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2014년에는 부산광역시 폭우 피해 지역민들에게 3,000만원을 기부했다
  • 2014년 양산에 야구장 건설비용으로 2억원을 기부했다. 자세한 내용은 강민호 야구장 항목 참조.
  • 야구장 건설 후 부산 지역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디딤씨앗통장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기사
  • 2015년 전지훈련 중 구단프런트직원들을 위해 150만원 어치 운동화를 사서 나눠주기도 했다.##
  • 2015년 어린이날을 맞아 사직 야구장에서 경기가 있던 날에 자비를 털어 아이들이 신을 수있는 신발 470켤레를 나누어 주었다
  • 2015년에 삼광초등학교 30명의 초등학생[34]에게 자비로 신발을 사서 기부했다.
  • 2016년에는 감만종합사회복지관에 홈런 1개당 100kg의 쌀을 기부하기로 했다.#, ## 2017년에도 해당 기부를 진행했다.
  • 또한 2016년 부터는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 삼성에 이적하자마자 2017년 포항 지진의 피해자들을 위해 포항시에 1억원을 쾌척했다.##

6. 관련 문서



[1] 일본어 한자에는 珉자가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냥 편하게 카타카나로 쓰는 편. 사실 최근 들어 한국인 인명도 비한자권처럼 카타카나로 쓰는 경향이 생기기는 했다.[2] 당시 포철공고 야구부였으나, 포철공고가 마이스터고로 지정되며 야구부는 포철고 야구부로 이관되었다.[3] 형사라고 알려져 있다.[4] 인스타그램. 전 SBS 소속 기상캐스터. 강민호 본인은 시즌 중에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식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댓글창에 삼성팬들과 신소연의 지인들이 줄을 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5] 기사. 2017년 6월 23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태어났다.[6] 롯데시절 등장곡을 그대로 쓰다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7] 강(한 손 올리면서)! 민(한 손 올리면서)! 호(한 손 올리면서)! 민호민호~ 삼성 강민호! 오오오오 강민호! 빠라밤 빰빰 빰빰빰 빰 강민호 x2[8] '쌍두 독수리 깃발 아래서'를 개사한 응원가는 본인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빠르게 인천행 폐기되었다.[9] 2011년, 2012년, 2013년, 3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10] 파일:삼민호.jpg[11] 양친고향이 원래 경북이고 강민호는 출생만 제주도지 본적은 경북이다.[12] 오죽하면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뿐 아니라 각종 팟캐스트에서 기자들이 푸는 썰에도 "강민호가 이적하는 일이 있겠어요?" 라는 식으로 넘겼다.[13] 투고타저 시대에 공인구 교체를 감안하면 포수로써 전반기 두 자릿수 홈런은 나쁘지 않으나 타율이 너무 낮다.....[14] 06, 09시즌에는 홈런9개로 두자리수 홈런에 딱 1개씩 모자랐다. 20홈런을 넘긴 시즌은 23개를 친 10시즌과 35홈런을 친 15시즌, 20개를 친 16시즌, 22개를 친 17, 18시즌까지 무려 5번이며 19홈런을 쳐낸 시즌이 3번(08, 11, 12)이다. 매 시즌전 타격목표로 20홈런을 잡는데 딱 하나씩 부족한 시즌이 3번이나 되는건 재밌으면서도 아쉬운 부분.[15] 잘하면 갓풍기, 못하면 X풍기(...)로 불리게 된다.[16] 2010시즌의 경우 23홈런중 밀어쳐서 만든 홈런이 아예없이 싹 다 당겨쳐서 만들었다. 중월 홈런도 몇개 있었으나 그마저도 당겨친 동작이었다. 슬럼프였던 2013, 14시즌도 당겨치기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것이 원인 중 하나이며 완벽히 부활한 2015시즌은 본인의 장기인 당겨치기를 극대화한 것이 영향이 꽤 있었다.근데 이 시즌 동안 밀어친 홈런도 더 많이 생겼던 것은 함정 아님 그냥 홈런 자체가 많이 늘어나서 그래 보인걸수도[17]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맞을시 타구의 파워가 장난아니다. 라인드라이브성 장타도 많이 양산해 내는편그래서 사직구장 펜스를 자주맞춘다[18] 본인이 포수자리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인 타격폼이 김태균과 장성호의 타격폼이었는데 자신은 다리를 높게드는 편이 아니라(물론 15시즌 부터는 다리를 높게드는 폼으로 수정했다.) 김태균 타격폼을 카피했고 카피한 후 첫 타석에서 바로 쓰리런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15시즌 타격폼 수정 전까지 보면 김태균과 상당히 유사한 타격폼을 계속 유지했었다.[19] 웃긴건 그럼에도 홈런 두자릿수는 유지했다는건 함정. 물론 FA였던데가 본인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커리어에 비해 매우 초라했던건 사실이다.[20] 이전 타격폼이 김태균과 유사한 폼이었다면 이번 타격폼은 강정호와 매우 유사하다. 강정호 또한 강민호처럼 당겨치기를 선호하는 타자이다.[21] 장성우가 수비보다 타격으로 롯데에 지명받은 것과 상반되는 부분.[22] 특히 양친 고향이 경북 출신이고 강민호 본적 또한 경북이며 강민호의 학교 포항제철공고는 삼성의 연고 팜이였으니 더더욱 탐이 날 수 밖에. 오죽했으면 시민구장 시절에 타팀 선수인 강민호를 마킹한 유니폼을 입은 팬도 있었다![23] 얼마나 기뻤는지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에 강민호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한 크기로 올려져있다.[24] 한 로그램에서는 다른 야구선수보다 내가 이건 낫다, 라고 할 만한 게 뭐냐고 묻자 잘생긴 얼굴 말고는 자랑할 게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25] 부상당하면 채상병이 오기 전까지 이지영을 주전 포수로 써야 했던 2009년 삼성 라이온즈똑같은 꼴이 난다.[26] 최희, 배지현, 김민아에게 물었다! 세 표라고 해도 무방한 매우매우 높은 퀄리티![27] "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 오오오오~"인데 이것이 몬데그린로 인하여 '모텔에 간 민호' '505호 505호'로도 들린다.[28]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적 후 새로운 응원가를 쓴다.[29] 우연히도 강민호 선수는 소띠이다.[30] 강민호에게 수싸움을 처음 가르쳐 준 것이 다름아닌 손민한이었다. 호텔에서 불을 끄고 함께 누우면 손민한이 "강민호, 내일 첫 타자 누구냐" "누구입니다" "처음에 뭐 던질래" 이런 식으로 묻곤 했다고.[31] 박경완이 좋아하는 양주를 진상했다거나, 진갑용을 통해 일제 벨가드 프로텍터 공수 해준다던가.[32] 참고로 송지선 아나운서와 강민호는 동향출신(제주도)이다. 그래서 더 각별했을 듯.[33] 때마침 강민호가 유니폼이 아닌 양복을 입은 채로 사진을 찍어서... 삼성팬들이 이걸 보고 뒤집어졌다고 한다.[34] 이게 전교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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