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7 20:30:24

신경식(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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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식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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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1]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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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5p4rcEr.png 1983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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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식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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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1999년
1990~1992 1993 1994~1995 1996 1997~1998
? 신경식 최태원 김광림 김기태
1999
최태원
}}}}}} ||
OB 베어스 등번호 19번
팀 창단 신경식(1982~1990) 정효형(1991~199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1번
송광훈(1989~1990) 신경식(1991~1992) 한희민(1993)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26번
김만후(1990~1992) 신경식(1993~1995) 김정수(1996)
두산 베어스 등번호 83번
결번 신경식(2010~2011) 이토 쓰토무(2012)
LG 트윈스 등번호 86번
이천웅(2011~2012) 신경식(2013~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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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 코치 신경식.jpg
LG 트윈스 No.86
신경식(申慶植 /Shin Kyeong-sik )
생년월일 1961년 8월 19일 ([age(1961-08-19)]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부산동성초 - 부산동성중 - 공주고 - (제주산업대)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상업은행(실업)
OB 베어스 (1982~1990)
삼성 라이온즈 (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 (1993~1995)
지도자 쌍방울 레이더스 2군 타격코치 (1996~1997)
자양중학교 감독 (2003)
분당중앙고등학교 코치 (2004~2005)
경기고등학교 코치 (2006)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0~2011)
고양 원더스 타격코치 (2012)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13)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14)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14~2017)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18~ )

1. 소개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시절
3. 지도자 경력
3.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3.2. 자양중학교 감독 시절3.3. 두산 베어스 시절3.4. 고양 원더스 시절3.5. LG 트윈스 시절
3.5.1. 2017년3.5.2. 2018년3.5.3. 2019년
4. 연도별 성적

1. 소개

파일:학1.jpg

OB의 핵심 멤버 였던 학다리 신경식
OB 베어스,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1루수이자 쌍방울 레이더스, 두산 베어스, 고양 원더스의 타격코치. 現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 선수 경력

다리

2.1. 아마추어 시절

부산 태생으로 공주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상업은행에서 활동하였다.

2.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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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선동렬을 상대로 적시타를 날리는 모습. 당시 최강인 선동렬이 모자를 벗어던질 정도로 화를 내는 걸 보면, 잘 친게 분명하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며 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입단했다. 당시 김영덕 감독은 공주고 출신의 좌타 내야수 이근식[2]을 주전 1루수로 낙점하고 있었으나, 시즌 초반 이근식이 복통을 호소하며 결장하게 되자 신경식이 대신 1루수로 출장했는데 그날 당시로선 보기 드문 양 다리를 쫘악 찢는 포구 동작과 깔끔한 수비를 선보이면서 이근식을 제치고 단박에 1루 주전을 꿰차며 그 해 0.334라는 준수한 타율로 맹활약했다.

파일:external/appdata.hungryapp.co.kr/KwyxTjwebVgpXZ.jpg
188cm, 95kg의 체격 조건[3] 으로 당시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문 축복받은 거구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 체격 조건을 살려 앞서 말했듯이 선수 시절 양쪽 다리를 크게 벌려 내야수들의 1루 송구를 포구하는 모습으로 다리라는 별명을 얻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강영수를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고, 1992 시즌 후 삼성이 쌍방울에서 정영규의 지명권을 받아 오는 조건으로 김성길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에 트레이드되어 선수 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4]

1992년 4월 12일에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0경기를 출장하는 기록을 세웠다.

수비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반면, 좋은 체격 조건을 가진 1루수임에도 불구하고 장타력은 다소 부족했다. 어째 서용빈이 떠오른다? 전형적인 컨택 & 스프레이 중거리 타자였다. 그러나 주루 실력은 빼어나서 매년 20개 이상의 도루를 했다. 스탯을 놓고보면 수비형 외야수의 스탯이었는데 어째서인지 1루를 보고 있다는 게 특이한 점. 물론 신경식의 1루 수비가 워낙 뛰어나기도 했지만 컨택형에 준족의 타자가 1루를 보고 있다는건 어깨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다만 유독 프로야구 초기에는 신경식같은 호타준족 선수들이 1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삼미도 그랬고 ob도 그랬으니 그게 정석이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을 지도?

원년 선수들 중 포수 이만수, 투수 박철순 다음으로 가장 오랫동안 프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3. 지도자 경력

우타자의 좌타 & 스위치 전향 성애자, 이성열최승준 등 별볼일 없는 타자들의 타격능력 향상이란 양면이 공존하는 양날검.

3.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은퇴하고 스승인 김성근 감독 밑에서 2년간 타격코치를 했다. 그리고 구단의 운영비 삭감으로 인해 1997 시즌 끝나고 해임된다.

3.2. 자양중학교 감독 시절

2003년 자양중학교 감독으로 있었을 때 학교 문제로 야구를 그만둘 뻔했던 오지환을 군산에서 상경시켜 발굴했다.

3.3.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image/073/2011/07/29/20110730aa006.jpg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2007년 전력분석원으로 친정 팀으로 돌아와 2009년 시즌 종료 뒤 타격코치로 승격하여 2011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였다.

파일:external/img.khan.co.kr/ni.jpg
신경식 투수 데뷔
ⓒ 경향신문 2011/05/10

뜬금없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는데, 2011년 5월 10일 석가탄신일에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무등 원정 경기에서 당일 선발 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원정용 유니폼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아 체구가 비슷한[5] 신경식 코치의 유니폼을 빌려입고 등판했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니퍼트는 국내 데뷔 첫 패전을 기록하였다

일단 두산에서는 2010 시즌엔 답이 없던 이성열의 파워 포텐을 터뜨려 24홈런을 치는 타자로, 무명 포수인 양의지를 20홈런을 친 신인왕으로 각성시켰고, 최준석을 3할-20홈런의 강타자로 만들어 2010 시즌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일조했다. 다만 김현수를 무리하게 홈런타자로 개조시키려다 컨택능력을 깎이게 만든 건 흠.

그러나 2011년에는 양의지는 장타력 상실, 이성열의 원래 모습 롤백으로 장기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아쉬운 점을 보였다.

3.4. 고양 원더스 시절

어수선했던 2011 시즌 후 두산을 떠나 2012년에는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타격코치로 있었다.[6]

3.5. LG 트윈스 시절

퓨처스에서는 화타, 1군에선 실패 전문가

파일:/image/018/2013/01/17/PS13011700009_59_20130117081202.jpg
2013년 LG 트윈스의 2군 코치로 합류한 신경식. 좌측 두번째, 왼쪽부터 계형철, 신경식, 김민호, 경헌호

파일:/image/109/2015/02/06/201502060551773596_54d3e8f742bca_99_20150206072503.jpg
보기엔 푸짐하고 아주 유능해보이는 2군 메인 타격 철밥통 코치의 위엄(...)

2013 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의 2군 코치로 부임했다.

그리고 2013년 LG의 2군 메인타격코치를 맡게 되면서 2012년에 전임 2군 타격코치였던 서용빈이 사멸시켜 버린 LG 2군 타선을 확실하게 부활시켰다. 저 시기 지도했던 선수들인 최승준, 채은성은 LG 팬들에게 우타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즌 이후 김무관 1군 타격코치가 2군 감독으로, 서용빈 2군 타격코치가 재차 일본연수를 떠나면서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는데 시즌 초반 장타력 부족과 병살타 양산 등으로 까이고 있으며, 2014년 초 1군 타선을 사멸시켰다. 결국 양상문 체제로 바뀌면서 김선진 보조 타격코치와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으로 다시 간 후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이 사람이 오지환 좌타 전향의 장본인[7]이었기도 하고 심각한 우타자의 좌타 & 스위치히터 전향 성애자라는거다. 2014년에는 우타 외야 유망주인 배병옥을 스위치히터로 전향시키는 병크를 터뜨리기까지 했다. 아마 감독 시절에도 이런 문제로 논란이 많았는데 프로에서까지 이런 지도를 했고 그렇다고 성공적으로 지도를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선수의 타격 정체성만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최종적으로 배병옥 스위치 병크는 KT의 지명으로 이어졌다는게 중론이다.[8]
퓨처스리그가 끝난 후에도 2군의 메인 타코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2015 시즌 스프링캠프 시 인터뷰에서 유망주를 키우는 데 구리보다 이천 챔피언스 파크의 환경이 좋으며, 유망주들이 올라오는 시간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리빌딩이 시작될 2~3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5월 22일 1군으로 올라온 나성용인생경기를 보여준 다음에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건 맞는 듯. 양석환 또한 집중적인 변화구 공략을 가르친 이후 1군으로 올려보내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16년 손주인, 김용의, 유강남, 양석환 외 많은 야수들이 2군을 갔다온 뒤 타격 전지표가 향상되는 활약을 보이자 재평가받는 중이다. 특히 타율 1할대, OPS 5할대를 찍고 2군에서 몸을 회복하고 온 오지환이 1군 복귀이후 OPS를 4할 가까이 올리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LG가 2015년 극악의 타격성적을 찍었다가 1년만에 평균이상의 타선을 보유한 팀으로 탈바꿈한데는 (그게 신경식의 공인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군만 내려갔다하면 타자들이 불방망이를 휘두르는 기현상이 컸다. 현재 주전 라인업에서 올시즌 2군물의 영향을 안 받은 선수는 박용택-히메네스-채은성 클린업과 정성훈 밖에 없다. 아무리 타고투저라지만 그 외 선수들이 이천밥만 먹었다하면 죄다 3할을 치고[9] 장타율마저 큰 상승폭을 그리고 있다보니 2016시즌 신경식은 팀이 이길때마다 그야말로 까방권을 흡입하고 있는 중이다.

3.5.1. 2017년

2017년에는 그야말로 과학이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1. 야수가 성적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간다.
2. 2군에서 날아다니고, 1군 콜업돼서도 한동안은 잘한다.
3. 서용빈이 손을 대기 시작하고, 부진의 늪에 빠진다.'용빈 당한다.'
다시 1로.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서용빈을 해임하거나 2군, 3군으로 내리고 신경식을 올리라는 팬들의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12월 8일, LG에 새로 부임한 류중일 감독은 사퇴한 서용빈 코치를 대신해서 신경식을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승격한다고 언급했다.

3.5.2. 2018년

2018년 4월 LG 타선은 리그 타율 2위, 홈런 4위[10]를 때리며 각성했고, 그 중심엔 1군 레귤러들인 박용택, 김현수와 신경식 타격코치의 지도를 2군에서부터 받아온 채은성, 이형종, 유강남이 이끌고 있다. 6월 기준으로 주전 9명 7명이 3할을 치고 있으며 다른 1명도 3할에 가까운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 덕에 갓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보조 타격코치인 이병규와 함께 찬양받는 중. 5월에도 불펜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도 타선은 식지를 않는데다 팀 타율이 어느덧 3할이 되었다. 덤으로 전임인 서용빈은 해설위원으로 LG의 승리요정이 되었다. 2017년 최악의 수준이었던 LG 타율도 .293, 전체 3위로 마감하였다. 쿠바인이 먹튀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수 효과와 맞물려 트윈스 역사상 첫 20홈런 이상 타자 3명, 그리고 10홈런 이상 타자는 7명을 배출하게 되었다.

3.5.3. 2019년

LG 타격의 화타인줄 알았으나 2019년 들어 김현수와 타고투저빨임이 드러났다. 공인구 변화와 함께 리그 전반적으로 투고타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LG의 타격은 SK의 무관매직에 가려졌을 뿐 식물타선 그 자체다. 4월 21일을 기준으로 출루율과 장타율 모두 각각 .320, .340으로 리그 꼴찌이다. 작년의 타선의 호성적에 가려졌지만 이미 신경식 코치는 2번의 실패를 경험한 바 있는데 첫째는 두산에서의 2011년이고 둘째는 LG에서의 2014년이다. 공교롭게도 신경식이 1군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던 두 시즌 모두 감독이 사퇴를 한 바 있다. 2011년 두산의 부진 원인은 그 전시즌과 완전히 달라져버린 타선이었는데 2010 시즌 김현수, 이성열, 최준석, 양의지가 20홈런 이상을 쳐줬던 주축 타선이 2011 시즌 성적이 완전히 급감한 바 있다. 2011년 두산 베어스의 사례처럼 14시즌 LG에서도 굉장히 비슷한 길을 겪었는데 비록 13시즌 LG 타선은 10홈런 타자조차 없을 정도로 장타력은 좋지 않았지만 기관총에 비유될 정도로 한번 터지면 매섭게 몰아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면서 SK에서 욕먹다가 좌천된 김무관 코치가 그때는 그 공로를 인정받으며 2군 감독으로 승진하고 신경식 코치가 그 자리를 가게 되는데 그가 이끌었던 14시즌 초반 타선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불안정했다. 팀 타격의 약점인 장타력 부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여 전년도보단 장타력이 쥐꼬리만큼 좋아지기는 했지만 13시즌 최대 장점이었던 팀 타선의 유연함이 실종되어버렸다. 찬스에서도 극단적으로 당겨치기 한 탓에 병살이 자주 나오고 팀 성적도 꼴찌로 꼴아박으며 결국 김기태 감독이 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8시즌 트윈스의 타선이 17시즌보다 좋아진 점을 신경식 코치의 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2017 LG 평균자책점 1위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 공이 강상수 코치의 공으로 아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채은성이 2018년 커리어하이를 찍은 것도 신경식의 영향이기보다는 17년도부터 바깥쪽공을 가볍게 밀어치려는 시도의 보상을 받은 것이며, 팀 전체적으로 볼땐 코치의 역량보다는 김현수 영입 효과와 리그 전반적인 타고투저 흐름에 편승한 것이 크다. 실제로 김현수가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이후 첫 경기에서 부상으로 시즌아웃 된 후 팀 타선이 완전히 붕괴가 되어 17LG로 돌아갔다.

5월 15일 사직 롯데전에서 LG 타선은 13안타 8볼넷에 상대실책출루 1개로 총 22번 누상에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4번의 만루 찬스 1점도 내지 못하고 결국 4:8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덕아웃에 비칠 때마다 어쩔줄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잡히고 있다. 득점권에서 무서워서 위축되고 벌벌 떠는 타자들을 진정시켜주고 여유를 갖게 해주어야 하는데 신경식이 할 줄 아는건 그저 덕아웃에서 득점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과 함께 떠들고 웃고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 밖엔 없어보인다. 2010년 송재박 코치가 이룩한 두산 강타선을 두점 베어스로 만들고 2013년 최강의 소총부대였던 LG 타선을 2014년 초반 병살 트윈스로 만든데 이어 2019년엔 잔루-병살 트윈스로 만들고 자신이 코치를 맡았던 시기의 감독을 두 명이나 사퇴하게 만든 적폐 코치이자 실패 전문가이다.

의외이지만 LG의 타격 부진 원인으로 신경식을 욕하는 여론은 거의 없다. 시즌 초반에는 SK를 식물원으로 만든 김무관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잘 묻어갔고, 5월달 들어선 이천웅을 제외한 모든 타자들이 앞장서서 욕받이를 대신 해주며 덜 까인다. 물론 사정을 잘 아는 몇몇 팬들은 당연히 비판하고 있다.

6월 중순에 들어서도 타격 문제는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김민성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이천웅과 김현수가 아니면 득점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 채은성과 오지환의 부진이 심각하고 배트를 짧게 잡고 밀어치는 타자를 발견하기 어려워 LG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OB 베어스 77 293 .334
(4위)
98
(2위)
21
(2위)
3 4 54
(3위)
40 14 23 0.468 0.379
1983 100 377 .268 101 15 1 5 50 47 10 38 .353 .335
1984 31[11] 91 .231 21 5 0 1 12 15 3 13 .319 .324
1985 110 404 .280 113 23
(3위)
4 8 58
(4위)
54 16 46 .416 .352
1986 106 380 .271 103 15 5
(3위)
1 34 37 6 37 .345 .333
1987 102 349 .269 94 8 6
(5위)
3 39 39 5 26 .352 .318
1988 107 378 .288 109 12 3 4 38 41 12 26 .368 .333
1989 118 422 .275 116
(3위)
25
(1위)
6
(1위)
8 57 55 25 43 .419 .338
1990 117 385 .255 98 21
(5위)
2 5 42 38 14 36 .358 .31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삼성 라이온즈 126 460 .309 142
(2위)
15 3 7 57 71 20 56 .400 .380
1992 117 423 .267 113 15 2 3 41 61 17 40 .33 .32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쌍방울 레이더스 119 418 .275 115 18 2 5 49 35 12 39 .364 .335
1994 93 227 .220 50 14 1 2 26 23 2 10 .317 .249
1995 41 43 .209 9 1 0 0 3 3 0 5 .233 .286
KBO 통산
(14시즌)
1364 4650 .276 1282 208 38 56 560 559 156 438 .373 .335


[1] 1982년 우승은 우승반지가 생기기 전이지만 훗날 2011년에 베어스 구단에서 직접 우승멤버들을 초청해서 우승반지 수여식을 가졌으므로 우승반지라고 해도 무방하다.[2] 당시 OB에는 2명의 이근식이 있었는데 1958년생 좌타 내야수 이근식은 "큰 이근식", 한양대학교 출신의 1959년생 좌타 외야수 이근식은 "작은 이근식"으로 구분했다. 참고로 이근식은 신경식과의 1루수 주전 경쟁에 밀려 벤치만 덥히다가 1982년을 끝으로 타율 0.185라는 부진한 성적만 남긴 채 은퇴했고, 작은 이근식은 1986년 까지 주로 내야 백업으로 선수 생활을 유지했다.[3] 프로 원년인 1982년 당시 롯데 자이언츠김용희(190cm) 다음으로 장신이었다.[4] 특히 쌍방울 이적 첫 해인 1993년에는 삼성과의 전주 홈 경기에서 2홈런을 쳤다.[5] 키는 니퍼트가 훨씬 크지만, 체중은 비슷하다.[6] 이건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다. OB 시절부터 김성근과 연을 맺었고, 김성근 감독이 삼성에 부임하면서 같이 이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삼성을 떠나면서, 신경식도 쌍방울로 축출되게 된다. 다만 재미있는건 쌍방울에서 선수 생활이 끝난 바로 그 다음에 김성근이 쌍방울의 감독으로 취임했다는 것.[7] 그렇지만 몇몇 증언에 의하면 오지환은 우타석에서의 컨택능력이 시망이라 좌타로 전향시켰다고 한다.[8] 다만 배병옥은 갓 1년차인 상황에서 언더, 사이드암 투수 상대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한정해 좌타석으로 돌린 것이며 후반에는 다시 우타석에 들어서게 했다.[9] 오지환은 강등전에 타율을 너무 까먹어놔서 3할까진 회복이 안된다.[10] 작년 팀 홈런의 4분의 1을 1달만에 넘겼다.[11] 방위 복무(홈 경기 한정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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