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0 23:55:08

김기태(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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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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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감독직 / 기타 직책 역임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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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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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AG 2000 Oly 2002 AG 2004 Oly 예선 2006 WBC
심재학 김기태 이종범
2006 AG 2008 Oly 예선 2008 Oly 2009 WBC 2010 AG
박재홍 박찬호 진갑용 손민한 봉중근
2013 WBC 2014 AG 2015 P12 2017 WBC 2017 APBC
진갑용 박병호 정근우 김재호 구자욱
2018 AG 2019 P12 2020 Oly
김현수
ⓐ 1998년 이전의 올림픽과 야구선수권대회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출장했으므로, 따로 주장 경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 2017년 APBC는 U-24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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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2 1993 1994~1995 1996 1997~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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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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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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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4_r1_250.png 프로야구 30주년 Legend All-Star BEST 10
in 2011. KBO-NAVER
장효조
OF / 삼성
이순철
OF / 해태
양준혁
OF / 삼성
김재박
SS / MBC
박정태
2B / 롯데
한대화
3B / 해태
선동열
P / 해태
장종훈
1B / 빙그레
김기태
DH / 쌍방울
이만수
C / 삼성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2017

수상 기록
1992, 1993, 1994, 200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1997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1994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1994, 199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199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2004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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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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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번
김영운(1990) 김기태(1991~1993) 박철우(1994~1998)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0번
김호근(1991~1993) 김기태(1994~1998) 이진영(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
양준혁(1993~1998) 김기태(1999) 김주찬(200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전병호(1996~1999) 김기태(2000~2001) 이정호(2002~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10번
이진영(2000~2001) 김기태(2002~2005) 시오타니 가즈히코(2006)
LG 트윈스 등번호 71번
김용수(2007~2009) 김기태(2010~2011) 조계현(2012~2014)
LG 트윈스 등번호 91번
최계훈(2011) 김기태(2012~2014) 노찬엽(2015~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77번
김종국(2013~2014) 김기태(2015~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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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기태2019.png
이름 김기태 (金杞泰 / Kim Ki-Tae, Gim Gitae)
생년월일 1969년 7월 7일[1] ([age(1969-07-07)]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치동[2]
학력 광주서림초 - 충장중 - 광주일고 - 인하대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3], 좌익수[4]
투타 좌투좌타[5]
신체 180cm, 85kg
프로입단 1991년 신생팀 특별우선지명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
삼성 라이온즈 (1999~2001)
SK 와이번스 (2002~2005)
지도자 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코치 (2007)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7[6]~2008[7])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08~2009)
LG 트윈스 2군 감독 (2010~2011)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11)
LG 트윈스 감독 (2012~2014)[8]
KIA 타이거즈 감독 (2015~2019)[9]
종교 불교[10]

1. 개요

대한민국야구선수 출신 감독. 2015년부터 2019년까지 KIA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다.

선수 시절에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내야수이자 4번 타자로서 쌍방울 레이더스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를 거치며 명성을 쌓았고, 선수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LG 트윈스 코치 & 1군, 2군 감독을 지냈고, 이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으나 2019년 5월에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2. 선수 경력

김기태(1969)/선수 경력 문서로.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경력

3.1.1. 한신 타이거스 시절

은퇴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나, 2006년 8연패에 빠진 SK 와이번스의 사정으로 인해 조범현 감독의 요청으로 연수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타격 보조 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팀은 결국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조범현 감독이 물러난 후 그도 코치에서 물러나 다시 일본으로 연수를 받으러 건너갔다.

3.1.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No.130[11]
김기태(金杞泰)
요미우리 자이언츠 No.84[12]
김기태(金杞泰)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1110301000139300009681.jpg
2006 시즌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김종훈, 김한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친 후 코치 생활을 했다. 2008년 시즌 중에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6 시즌 후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면서 한국인 코치 1명[13]을 데려갈수 있는 조항이 있었는데, 그 조항으로 김기태가 갈 수 있었다고 한다.[14]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솔선수범하여 이승엽만을 위한 보조코치에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팀의 정식 타격코치로 선임되었고, 요미우리의 퓨처스 팀 감독도 맡았다. 당시 요미우리하라 다쓰노리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평가가 굉장히 좋아서, 후에 국내 복귀 뒤에도 여러 일본프로야구 팀에서 탐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한때 몸담았던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2009년 강봉규신명철의 타격 성장에 기여한 나가시마 기요유키 타격코치가 치바 롯데 마린즈로 옮기자 김기태를 타격코치로 영입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3.1.3. LG 트윈스 시절

LG 트윈스 No.71
김기태(金杞泰)

파일:external/dimg.donga.com/41735117.2.jpg

파일:/image/076/2011/10/08/2011100801000545500045351.jpg

2009년 시즌 종료 후 김재박의 뒤를 이어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확정되었다는 설도 있었으나 LG의 감독은 박종훈이 되었고, 박종훈 신임 감독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15] 이 때부터 김기태 차기 감독 내정설을 불러 일으켰다. 2011 시즌 말미에는 김영직과 보직을 바꿔 1군 수석코치로 콜업되었다. 2011 시즌을 마치고 박종훈 감독이 사임한 후 후임 감독으로 수많은 카더라가 난무하던 가운데, 유일한 내부승격 후보였다. 이 때 LG 2군 선수단을 본인의 유명한 카리스마로 휘잡으면서 '사신기태'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나중에 이 별명을 알게 되고 나서 "선수들하고 잘 지내는데 왜 사신으로 부르지 모르겠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결국 본인 성격과 성향이 사신과 맞아떨어졌음이 해가 지날수록 드러나게 된다. 특히 2018시즌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보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3.2. 감독 경력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최종 순위
2012 LG 트윈스 133 57 72 4 7위 -
2013 128 74 54 0 2위 3위
2014 17 4 12 1 9위[16] -
통산 278 135 138 5 ­.49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최종순위
2015 KIA 타이거즈 144 67 77 0 7위 -
2016 144 70 73 1 5위 5위[A]
2017 144 87 56 1 1위 우승
2018 144 70 74 0 5위 5위[A]
2019 42 13 28 1 10위[19] -
통산 576 307 308 3 .499­
총계 896 442 446 8 .498­

3.2.1. LG 트윈스 감독

3.2.1.1. 2012 시즌
LG 트윈스 No.91
김기태(金杞泰)

파일:external/photo.hankooki.com/yoyo201204032026440.jpg
선수들을 직접 지휘하는 현역 최연소 감독.[20]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3092001001724300130701.jpg
직접 타격 케이지 안에서 타격시범을 보이는 김기태 감독.[21]

김기태(1969)/2012년 참조.
3.2.1.2. 2013 시즌
LG 트윈스의 10년에 걸친 암흑기를 청산한 해였다.

김기태(1969)/2013년 참조.
3.2.1.3. 2014 시즌
시즌 초반에 성적이 좋지 않자 사퇴. 런기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김기태(1969)/2014년 참조.

3.2.2. KIA 타이거즈 감독

3.2.2.1. 2015 시즌
파일:external/pgr21.com/1429099516_BandPhoto_2015_04_15_20_59_10.jpg
쓰리피트 아웃에 항의하다가 그 거리를 보여준다며 직접 누웠고, 이로 인해 눕기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자매품으로 눕동님도 생겼다.

파일:4jKJHYo.jpg
러브 투게더 시프트. 미국 ESPN에 소개 될 정도로 엄청난(?) 시프트 였다.

김기태(1969)/2015년 문서로.
3.2.2.2. 2016 시즌
KIA 타이거즈에서 2년차. 프런트에게 FA 선수 중 손승락을 꼭 잡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잡지 않았다. 하지만 구단 내 재활 시설과 선수육성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리빌딩에 더 큰 도움이 될만한 해다.

지난해 어느 정도의 리빌딩과 작년보다 나아진 용병 투수들을 보면기대가 되는 시즌. 그리고 시즌 전 순위 예상을 뒤엎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자세한건 김기태(1969)/2016년 참조

LG 트윈스에 이어 기어코 감독 2년차에 가을잔치 티켓을 거머쥐었다.
3.2.2.3. 2017 시즌
파일:2017103001002530700198521_20171030235326856.jpg

이제는 우승을 향해 전력질주해야 할 KIA 타이거즈의 3년차. 프런트에게 브렛 필을 대체하는 좌타 외국인 선수와 최형우를 꼭 잡기를 요청했고, 전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최형우도 잡았고 나지완과 양현종도 잔류시키고 외국인 타자까지 교체해주었다. 구단의 과감한 투자에 보답하는 성적을 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타이거즈 부임 3년차가 되자, 이제는 김기태 감독의 성향을 '잘 알게 된' 선수들이 알아서 시즌 전 몸을 만드는 습관을 기르게 되면서 2년 동안 해온 체력테스트를 없앴다. 김 감독 시각에서는 이제는 준비가 잘 되었다고 판단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석민이 시즌 전 어깨 뼈 수술로 이탈이 불가피해지면서 4, 5선발 및 중간계투 구성을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 동안 큰 부상이나 충돌 없이 무탈하게 팀 훈련을 이끌었다.[22] 무엇보다도 최형우의 가세 및 안치홍-김선빈의 제대 등으로 주전 층이 두터워지면서 백업층 역시 다양해지면서 운용 폭이 커진 것이 김기태 감독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투수력은 리그 중간급이나 공격력은 단연 1등팀.

결국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상대로 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거두며 기아 타이거즈에게 11번째 우승을 선물했다. 그리고 김기태 본인으로서도 선수와 지도자 커리어 통틀어 첫 우승이다.
3.2.2.4. 2018 시즌
KIA 타이거즈 출범 이후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끈 감독이 되었다.[23]

하지만 야구 내외적으로 잡음이 많았던 시즌.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김기태(1969)/2018년 문서로.
3.2.2.5. 2019 시즌
김기태(1969)/2019년 문서로.

시즌 도중 사퇴하였다. 조범현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오랜만에 팀을 우승시켰으나(2009, 2017) 성적 부진으로 인해 팬들의 비난에 의해 연임 2년차(2011, 2019)에 자진 사퇴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 조범현은 포스트시즌이 끝나고 사퇴했으며 2011년 당시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1위를 질주하다가 후반기에 급추락했으나 결국 최종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다. 그러나 2019년의 김기태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해태 타이거즈 포함하여 타이거즈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시즌 시작부터 답이 없는 형편없는 성적을 보였다.

이런 형편없는 몰락의 배경에는 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17년 우승, 18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이라는 성적을 보여줬음에도 주축 선수들이 먹튀 또는 부상으로 전력이 급하락 하면서 성적도 같이 떨어지게 된 점도 있으나, 감독(코칭스텝들의 책임과 권한)의 역할도 크며, 전술적인 무능과 선수 부상 등의 배경에 이들의 잘못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들이 있기에 이 모든 것을 선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럴 경우에는 과거 노리타들이 범했던 것과 같은 우를 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믿었던 선수들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부진에 빠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이미 17년 하반기부터 타자들의 노쇠화에 대해서 몇몇 팬덤에서는 지속적으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실제로 17년, 18년 주전야수 막내가 안치홍이었던 것을 고려해보면 야수진의 고령화가 진행중이었다. 즉, 하루 아침에 선수단이 무너진게 아니란 이야기다. 이는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해오던 삼성 라이온즈의 몰락 과정과[24] 00년대 한화 이글스의 몰락 과정에서도 보였던 것이다. 이미 수차례 반복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감독이 이러한 사례들을 전혀 학습하지 않은 수준의 팀 운영을 보였다는 것은 감독으로서의 재능과 노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 주전 선수들의 성적이 떨어진 부분은 변명거리가 될 수 있으나, 2년간 수도 없이 팬덤과 외부 전문가들이 이야기 해 온 운영을 고집하여 몰락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후술할 투수 운영 문제에서 투수를 여럿 갈아마셨으니 감독으로서 운영능력에 대해서는 KIA 타이거즈 사상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5] 수많은 악재에 대해서 수도없이 경고해왔으나 그것을 무시하고 밀어부친 주제에 변명을 한다는 것은 후안무치의 끝이 될 것이고, 경고하던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 버틴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결과물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김기태가 사퇴하자 놀랍게도 KIA의 팀 성적이 갑자기 껑충 뛰었다. 결과 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표 면에서도 상당히 좋아져서, 선수들이 태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 아닌 의혹도 제기되고 있으며, 있는 자원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무능한 감독이라는 반증이 될 가능성이 열려버렸다. 동시에, 임창용과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 등으로 차후 감독을 맡게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소위 어용기자라 불리는 기자들이 지속적으로 임창용만 공격하고 김기태의 이야기는 청취하지 않으면서, 막장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으면서 말 한마디 안하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은 옹졸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데[26], 감독으로서 인격과 실력이 모두 실격이라는 판정패를 당할 위기에 놓여져 있다. KIA 팬들의 바램과는 달리 KIA 타이거즈가 김기태 감독 커리어상 마지막 감독이 될 수도 있는 상황.

다만 2004년 유남호도 돌풍을 불러일으켰다가 2005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지하에 틀어박혀버리는 상황도 있었기에 평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보는 것이 타당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김윤동[27], 황인준[28], 홍건희[29], 한승혁[30], 유승철[31], 윤석민[32] 등 투수를 갈아마시고, 선수들을 이용하여 언플하고, 팬들을 향한 위선적인 모습들과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점들이 초대 금지어와 쏙 빼닮았다. 심지어는 투수를 대타로 세우거나 베테랑 선수의 정당한 발언을 항명으로 치부하고 사적 감정으로 팀을 운영하는 등 더 심각한 패악질까지 부렸다. 성과상으로는 팀 차원에서는 가장 큰 업적을 세웠으나[33] 하는 짓거리는 초대 금지어와는 전혀 다를바가 없으므로 럭키 서정환 이란 악명은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영원히 입에 오르내릴 것이며, 만일 이후 KIA 타이거즈가 상승세로 간다면 감독으로서는 두 번째 금지어로 확정될 것이다.[34]

퇴임후에는 쉬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다. 토론토에서 벌어진 2019 NBA 파이널 1차전때 김기태 전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이 카메라에 잡혀 여러 커뮤니티에서 본인인지 아니면 그냥 닮은사람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 그냥 닮은 사람이라기엔 너무 본인과 유사하고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토론토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김기태가 맞는 것으로 굳어지는 분위기. 만일 맞다면, NBA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KIA 측에서 편의를 봐준 듯 하다.

4. 평가

KBO의 이슈메이커 감독 중 한 명이다. 이것도 스승과 닮았다 대체적으로 평가는 호와 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다. 특히 주요적인 비판은 경기운영과 관련된 부분에서 받고 있으며, 호의적인 평가는 팀의 성적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받고 있다.이것마저 스승과 닮았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5. 별명

  • 왕방울 - 쌍방울에서 가장 타격이 좋아서 붙은 별명이다.
  • 눕기태 - 2015년부터의 별명
  • 런기태 - 2014년부터의 별명
  • 숲기태 - 2012년 한정 별명
  • 포기태 - LG 감독 시절부터의 별명
  • 돌기태 - LG 감독 시절부터의 별명. 간혹 '돌태'로 줄여서 까는 팬들도 여럿 있다.
  • 숨기태 - 2018년부터의 별명
  • 줍기태

6. 여담

  • 홈런왕과 타격왕을 둘다 차지해본 한국프로야구 선수 5명 중 하나.[35] 그러나 140안타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당시 경기수를 144경기로 환산하면 5번을 기록)1997년에 그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 이승엽이 170안타를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 그는 최다 안타와는 인연이 없다. 대신 어마무시한 볼넷을 얻어내는 중장거리+출루형 타자로 보면된다. 다만 언급되는 이야기로, 김기태 감독이 현역시절 클러치 상황이 아닐 때 의도적으로 루킹 삼진을 당하며 약점인 척 노출시키고 결정구의 구질이나 위치 등을 기억하고 있다가 중요한 시점, 한방이 필요할 때 투수가 전 타석에서 사용한 똑같은 결정구를 사용하면 쳐냈다는 일화를 봐선 굳이 욕심부려가며 안타를 생산해내는 스타일은 아닌 듯 하다.
  •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에 우승이 없기로 유명하다. 약체 쌍방울 소속이라 우승 근처도 못가보다가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해 콩라인에 가입되었다. 커리어 기준으로도 번번이 장종훈, 양준혁, 이승엽에 밀린 안습한 2인자 인생. 1994년에 홈런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절친한 동생인 이종범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 홈런을 많이 쳤지만 홈런왕이 된적은 없다.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직전에 LG의 2군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콩라인에서 탈퇴하지 못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한 게 선수, 지도자 합해서 유일한 우승 경력이었으나, 마침내 2017년 KIA가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첫 우승을 감독의 이름으로 맛보며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렀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창립을 결사 반대했던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 이호성과 함께 선수협 오적으로 불리우는데 63빌딩 창립총회 당시 뒤늦게 들어와 TV 방송 카메라들이 뻔히 중계하고 있는 자리임에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을 거친 말과 행동을 위협해 모두 끌고 나갔고 자신의 행동에 반발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 송진우를 회장으로 뽑고 나서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들었는데.

“말도 마라. 두 시간 걸려서 회장을 뽑았는데 이제는 어느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것을 두고 다퉜다. 선수들이 63빌딩에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우동도 먹고 있고, 버스 안에 대기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입장을 하지 않는 거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절대 먼저 들어가려는 팀이 없었다. 삼성은 LG만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의 K 선배는 LG Y 선수에게 LG 몇 명 왔냐,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Y 선수는 왜 우리 팀 이야기를 하냐,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멱살 잡고 고성 오가고 몸싸움 벌어지고 막 그랬다.”
- 그리고 나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단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겠나. 긴 설명 하고 싶지도 않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끌고 나갔고, 안 따라 나온다고 고함 지르고 난리 치고. LG는 삼성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남아 있냐고, 우르르 따라 나가고 그랬다. 아주 가관이었다. 200여명 모였던 선수들이 8개 구단 수는 맞췄지만 100명도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야구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다. K 선배가 나가는 순간 나는 야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산 대표는 나오지도 않았고, 얼떨결에 내가 대표를 하게 됐다. 최동원 선배가 구단에게 보복 당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려고 진짜 총회 개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출처
  • 마구마구 관련 고정글 중 해기태와 비기태에 대한 비교글이 있다.보러가기 첨언하자면, 꼭 쌍방울 올스타를 하지 않을바에야 파워-컨택 모두 나은 비기태가 많이 쓰이며, 저 글에서는 7렙을 찍는다는 가정하에 해기태>비기태 드립을 치는 것이다. 낚이지 말자.
  • 두 사람의 프로필을 봐도 알겠지만 염경엽 감독이 원래 1살 더 많은데, 김기태 감독과 동기동창이 된 이유는 빠른 1968년생[39]인 염경엽 감독이 중학교 때 1년 유급했고, 김기태는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 같은 1969년생 양준혁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 참고로 1970년생 이종범이 1993년 데뷔, 1969년생 양준혁은 상무를 거쳐서 1년 늦게 25세인 1993년 데뷔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야구 안 한다고 염경엽과 둘이 같이 도망나와서 서울역에서 3일 동안 구두닦이를 했었다. #
  •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하면서 3개월만에 왼손잡이로 전향했다. 우투좌타 스타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교롭게도 동네 동생인 이종범은 그 반대로 왼손잡이이지만 우투우타라는 것.
  • 해태-KIA 타이거즈 연고인 광주광역시 출신이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은 이후로 고향 연고인 타이거즈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40] 이 때문에 좌타자 잔혹사에 시달렸던 타이거즈에서 뛰어 봤었음 하면 어땠을까 하는 많이 아쉬워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23년 후 그 김기태를 감독으로서 KIA 타이거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주 포지션은 1루수이지만, 골든 글러브도 지명타자로서 2번을 받기도 했고 경기 출장도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우가 많아 엄밀히 말하면 전문 지명타자에 가깝다. 사실 뛰어난 타격에 비해 수비에는 약점이 많기도 해서 지명타자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41] 찰스 스미스에 밀려 좌익수 수비를 하지 못했다면 말 다한 것.[42] 사실상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전문 지명타자 출신 감독. 그리고 지명타자 출신 감독 최초의 우승 커리어도 추가됐다.
  • 거포 이미지와는 달리 주루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이상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2차례나 성공했고, 두 자릿수 도루도 네 차례나 기록했다. 거기다가 빵사마도 못해본 11년 연속 3루타 기록까지...
  • 2012년 5월,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유동닉 갤러에 의해 발굴된 것이 홈런을 치고 홈으로 들어오다가 바닥에 엎어진 것이다. 눕는 게 종특인 게 여기서 이미 싹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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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lh5.googleusercontent.com/%25EC%259B%2590%25EC%25A1%25B0%2520%25EA%25B9%2580%25EA%25BD%2588%25EB%258B%25B9.png
정작 본인에게는 잊을 수가 없는 흑역사이지만, 워낙 오래 된 일이다보니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라고 안도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이파이브를 하러 손을 건넸다가 저걸 본 심성보의 기분은 어땠을런지…. 다행스럽게도(?) 해당 게시글은 전혀 뜨지 못하여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모른다는 것. 참고로 저 영상은 네이버 스포츠에 올라온 한국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동영상 김기태 편에서 감상할 수 있다.
  • 2015년 시즌을 맞이하고 적극적인 어필 제스처와 의욕적인 모습 덕분에 이 해에만 5월 기준으로 7개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직은 박용택, 김태균의 별명왕 명성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2015년에 이 두명의 별명왕을 능가하는 별명 획득 페이스를 보이고 있어서 만약 시즌을 희망적으로 마치고 김기태 감독이 KIA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다면 별명 문서가 생길 수준이 되었다.
  •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가 상당히 깬다. 얼굴만 봐서는 꼭 굵직한 저음에 할 얘기만 할 것 같은데 의외로 하이톤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머로 운을 떼며 더듬더듬 정신없이 빠른 속사포가 마구 섞여서 마치 시골 이장님같은 수더분하고 푸근한 인상을 준다. 그덕에 머동님이라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친구인 염경엽 감독이 비교적 안정된 톤에 달변가인 것과 대조된다. 2016 KBO 리그 미디어 데이에 어떤 팬이 그뭐저를 사용하지 않고 기아 팬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고 하는 질문에 팬들이 빵 터졌는데 SPOTV에서 그 질문을 예상하고 김기태 감독의 예뭐저를 영상 자료로 준비한 것에 2차로 빵 터졌다 카더라.출처
  • 보상선수 픽의 귀재다. 2012년 LG 감독으로 부임시 여러 요인으로 의 대규모 이탈이 발생했고, 곧이어 전력 보강의 기회로 3명의 보상선수 영입 기회가 돌아왔다. 아무리 리빌딩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도 차포도 모자라서 마상까지 떼고 장기를 두는 정도의 대규모 전력 출혈이 발생한 이상 즉시전력감 선수를 지명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이지만, 김기태의 선택은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프로 1년차 루키 3명이었다. 심지어 셋 가운데 그래도 즉시전력감이라고 평가할 만했던 윤지웅은 이미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상황.[43] LG 팬들 입장에서야 꽤 기대할 만한 유망주들이기에 결과 자체에는 호의적이었지만, 그 선택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 2013년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이대형이 FA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는 꽤 나이가 있는 신승현을 선택한다. LG팬들 입장에선 나가도 아쉬울 게 없는 이대형에 대한 보상선수인지라 어차피 누구든지 일단 받기만 하면 이득이라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신승현으로 결정된 이후에는 뭔가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앞서 뽑은 루키들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자원들이지만 신승현은 과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건 이젠 무리다 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기대치 자체가 높아질 수가 없었기 때문. 차라리 앞서처럼 신인이나 뽑지 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 보상선수 4인방 가운데 임정우와 윤지웅은 2014년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미 LG 마운드 구상에서 제외할 수 없는 자원이 되었다. 또한 2015년에는 LG가 전년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쑤는 가운데 전혀 기대도 안했던 신승현은 뜬금없이 나타나서 7월 기준으로 1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며 음주운전으로 자숙에 들어간 정찬헌과 폼이 박살나서 2군에 틀어박힌 유원상, 신재웅의 공백을 제법 훌륭하게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타선의 노쇠화, 부상, 시즌전 기대했던 최승준 등이 삽질을 하는 가운데 기회를 얻은 나성용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상선수로 뽑은 4인 모두가 1군 엔트리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보상선수 선구안을 보여줬기에 KIA 팬들은 송은범의 보상선수로 선택한 임기영[44]에 대해서 기대를 해보는 상황. 전년도까지 성적은 그렇게 훌륭하진 않지만 어쨌건 젊은 선수들 재능을 꿰뚫어보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 김응용 전 감독이 눈여겨보던 자원이었으며 상무 입대 후 2군 리그에서 썩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연 보상선수 불패신화를 계속 이어갈 가능성도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임기영은 군에서 복귀한 2017년 시즌 놀라운 호투를 거듭하며 보상선수 불패 정도가 아니라 보상선수 대박 신화를 봉여주었다.[45]
  • 자타 공인 고졸 성애자이다. 2016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로 도배하다시피 선발을 해서 전임 선동열감독의 미래가 없는 미칠듯한 대졸 사랑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며 팬들이 환호중이다. 또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김기태 감독의 평소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평. 앞으로도 김기태 감독의 이런 신인 선발은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 롯데 자이언츠가 2016시즌을 이끌 새 감독으로 조원우를 선임함으로써 길게 이어져왔던 막내감독 딱지를 드디어 뗐다.
  • 전지훈련 사진인데, 배트를 이용해 만든 쌍절곤이 눈길을 끌었다.

파일:눕동님빠따.jpg

파일:감독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jpg
  • 유독 투수를 타석에 세우는 기행을 자주 보여주는 편이다. LG 시절에도 투수로서 1군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급 투수를 정우람을 상대하라고 대타로 기용한 적이 있었고, 외국인 투수들도 지명타자 소멸 등을 이유로 타석에 내보낸 사례가 있다. 조쉬 스틴슨, 헥터 노에시 등이 그 예. 그러다 경기 포기 논란에 휩싸여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2019년 3월 26일 한화 경기에서도 6점차로 벌어진 9회말 2사에서 정우람을 올리자 투수를 대타로 기용했다.
  •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 유일한 좌투좌타이다. 김동엽, 김응룡,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 선동열은 전부 우투우타였지만, 김기태만 좌투좌타다. 하지만 김기태 역시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인 탓에 아직 기아에 완벽한 왼손잡이 감독은 없다.

7.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쌍방울 124 427 .262 112 15 0 27
(2위)
92
(2위)
65 7 76 .487 .370
1992 123 398 .302 120 28
(2위)
3 31
(2위)
96
(3위)
86 5 122 .621
(2위)
.461
(1위)
1993 96 317 .240 76 17 2 9 43 36 11 74 .391 .380
(4위)
1994 108 376 .316
(5위)
119 20 4 25
(1위)
79
(3위)
70
(5위)
9 76 .590
(1위)
.430
(2위)
1995 116 402 .321
(3위)
129 34
(1위)
3 12 72 48 12 73 .510
(3위)
.419
(2위)
1996 91 310 .297 92 17 3 12 53 47 3 54 .487 .399
1997 111 390 .344
(1위)
134 30
(5위)
3 26
(5위)
79
(4위)
95
(4위)
10 86 .636
(1위)
.460
(1위)
1998 126 434 .309 134 28 4 31
(3위)
90
(4위)
84
(5위)
10 104 .606
(3위)
.440
(2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삼성 130 468 .293 137 33
(5위)
2 28 88 82 5 88 .551 .403
2000 101 333 .309 103 24 1 26 80 69 5 59 .622 .410
2001 44 85 .176 15 2 1 0 9 5 0 17 .224 .31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SK 101 284 .257 73 15 1 9 46 32 2 47 .412 .359
2003 93 236 .292 69 7 0 3 18 32 2 27 .360 .364
2004 126 403 .320 129 24 0 10 67 60 2 57 .454 .403
2005 54 112 .205 23 4 0 0 11 5 0 15 .241 .297
KBO 통산
(15시즌)
1544 4975 .294 1465 298 27 249 923 816 83 975 .515 .407


[1] 음력 5월 23일.[2] 구 전남 광산군 본량면 금치마을.[3] 전체 커리어에서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가 많다.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에서 지명타자로 뽑힌 이유다.[4] 삼성 시절 한정. 당시 이승엽과 1루 포지션이 겹쳤다. 당시 삼성 용병이던 찰스 스미스와도 포지션이 겹쳐 스미스와 함께 지명타자와 좌익수를 돌아가며 뛴 경험이 있다.[5]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다.[6]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7] 베이징 올림픽[8] 시즌 도중 자진사퇴.[9] 시즌 도중 자진사퇴[10] 경기 중 김기태 감독을 비춰주는 장면을 보면 오른쪽 손목에 염주를 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1] 육성 코치 시절 등번호.[12] 2군 타격 코치 시절 등번호.[13] 원래 예정된 분은 김동재 전 기아 타이거즈 코치.[14] 그래서 김성근이 공백기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할 수 있던 것이다.[15] SK 시절 선수와 코치로 잠시 함께한 인연이 있다.[16] 시즌 중도 사퇴 당시.[A] 와일드카드 결정전 敗[A] 와일드카드 결정전 敗[19] 시즌 도중 사퇴[20] 당시 나이가 43세로 상당히 젊은 편이었다.[21] 감독들은 대개 나이가 있다보니 직접 시범을 보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한국 프로야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22] 다만 박경태가 어깨 통증으로 재활군으로 보내지는 등 캠프 이탈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23] 일전에 2호 감독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김성한 감독은 04년 시즌중 경질되었기 때문에 1호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24] 2015년 윤오안임의 도박사태의 여파가 분명 있었으나, 주전야수들의 대안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성과만을 고려한 운영의 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있는 선수들을 극한으로 뽑아먹었다고 봐도 된다.[25] 세대교체 면의 육성문제에서는 김성한, 조범현이 낫고 선동렬에게 투수관리는 밀린다. 투수운영 면에서는 서정환과 비견되는 수준.[26] 물론 그럴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본인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김기태가 잘못을 시인하는게 아니라 "이러한 사단이 난 것은 제가 모자라서 난 것이다. 제가 다 감내하겠다" 라는 식으로 언플이라도 했으면 덕장 코스프레도 해가면서 극소수의 지지층들 덕택에 어떻게든 권토중래가 가능했을 것이다.[27] 말 안해도 모두가 알겠지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다 주저앉은 사태가 벌어졌다.[28] 팔꿈치 통증으로 말소된 이후로 퓨처스리그에서도 보이지 않는 중[29] 2016시즌 전형적인 노예로 구른 뒤에 구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30] 2018시즌 선발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투수를 수시로 불펜대기시켰다. 특히 우천취소된 6월 10일 경기에서는 직구가 142km/h가 찍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미친듯이 굴렀다. 직구 155km/h가 꽂던 선수가 이정도 구속하락을 겪을 정도면 대체..[31] 재활을 마치고 온 투수를 미친듯이 갈아마신다. 한달에 250구를 넘게 던진 달이 무려 2번 있었으며, 140 초중반을 오가던 평균구속이 7월 27일 이후 평균구속이 130후반~140 에서 머무르게 된다.[32] 비록 2015년 한 해였지만 그 해에도 상당히 굴렀다.[33] KIA 타이거즈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감독이니 팀 차원의 성과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선수들의 능력과 운이 같이 따랐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지만.[34] 현재도 확정적인 분위기이나 결론은 내후년 이후에 내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35] 김기태는 1994년에 홈런왕, 1997년에 타격왕을 차지했다. 나머지 네 명은 이만수(1984년 트리플 크라운), 이대호(2006, 2010년 트리플 크라운), 김태균(2008년 홈런왕, 2012년 타격왕), 최형우(2011년 홈런왕, 2016년 타격왕)이다.[36] 염경엽 문서에도 있지만 그 염경엽과 김기태의 후배가 바로 이종범이다. 포지션은 염경엽과 이종범 모두 유격수로 동일.[37] 당시 염경엽은 실력은 없는데 정치력을 발휘해 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이 돌아서 LG에 남아 있기가 힘들었다.[38]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염경엽도 대단한 게 기사 내용대로, 술 안 먹고도 잘 놀려면 애주가의 몇 배 노력이 필요하기에 더욱 놀라움 그 자체.[39] 즉, 염경엽은 원래 1967년생과 동기다.[40] 참고로 절친인 염경엽도 광주 출신이지만,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아 타이거즈에서 뛴 전력이 없다.[41] 쌍방울 입단 초기에 어깨 부상이 있어서 송구를 못 하는 상태였었고, 어깨만 완치되면 1루 수비를 나서려는 본인의 의지도 강했다. 그런데 1루수로서 수비는 괜찮은 편이었다. 1루수는 어지간하게 수비가 노답이 아닌 이상 공격만 잘하면 그만이니 크게 의미는 없지만...[42] 몸매가 이대호급이었다.[43] 넥센 입장에선 군입대를 통해 픽을 막으려고 한 것이고 실제로 김민성 정도로 추측되는 1군급 선수를 떡밥으로 풀어 그 쪽으로 픽을 유도하려 했으나 LG의 선택은 윤지웅이었다. 이후로 보상선수 픽에 있어서 한승택 등 군 입대가 확정된 선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기 시작한다.[44] 윤지웅과 마찬가지로 군입대가 확정된 이후에 보상선수로 결정됐다.[45] 2018 기준으로 한화지명 선수 최초로 한국시리즈 승리투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