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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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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원우(趙原佑 / Won-Woo Cho)
생년월일 1971년 4월 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수영구[1]
학력 부산수영초 - 부산중 - 부산고 - 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2차 지명 5라운드 (전체 34순위,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9)
SK 와이번스 (2000~2005)
한화 이글스 (2005~2008)
응원가 SK시절: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2]
한화시절: 동요《금강산》[3]
지도자 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1~2012)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13)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 (2014)
SK 와이번스 1군 수비•주루코치 (2015)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5)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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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1대
박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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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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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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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어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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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
도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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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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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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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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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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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양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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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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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이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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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조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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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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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
공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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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시절2.2. 쌍방울 레이더스 & SK 와이번스 시절 2.3. 한화 이글스 시절2.4. 선수 시절 총평
3. 코치 시절4.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4.1. 감독 임명4.2. 2016년4.3. 2017년4.4. 2018년4.5. 감독 성적
5. 평가
5.1. 긍정적 평가
5.1.1. 거의 없는 남탓 및 언론 플레이5.1.2. 더블스틸
5.2. 부정적 평가
5.2.1. 공격 부문 : 부실한 운영능력
5.2.1.1. 시대에 뒤떨어진 스몰볼 및 올드스쿨 야구
5.2.2. 투수 부문 : 의심받는 관리능력
5.2.2.1. 의심받는 투수 관리 능력5.2.2.2. 좌우놀이
5.2.3. 승부처에서의 용단 부족5.2.4. 특정 선수에 대한 편애5.2.5. 반론
5.3. 총평
6. 기타7. 연도별 성적8. 둘러보기

1. 소개

KBO 리그 선수이자 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

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부산 출신의 선수로, 수영초, 부산중, 부산고를 졸업하고 동기 강상수와 함께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여 故 임수혁, 마해영, 강상수[4], 故 박정혁, 심재학, 조경환 등과 함께 1990년대 고려대학교의 불과 같다고 표현되던 극강의 타선에 일익을 담당하던 선수였다.

2.2. 쌍방울 레이더스 &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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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의 돌격대장, 마지막 선봉장 시절
파일:CWW1.png
1999년 쌍방울 시절 그의 모습[5]
복도에선 김 감독이 조원우를 붙잡고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LG 3차전 노아웃 상황에서 2루로 나간 조원우가 왜 도루를 하지 않았는지. 싸인을 기다렸던 것인지. 거기가 그날 승부처였던 것이다. - 방송 내용 중
파일:CWW2.png
사진에서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조원우[6]

이후 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5순위(전체 34번)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7]

조원우의 부친은 육상선수 출신이었고, 그래서인지 조원우 역시 발이 빠른 편이었는데,[8] 이 덕에 쌍방울 시절에는 1번 내지는 3번타자로 활약했다. 96-97 쌍방울의 전성기에는 상위타선에 최태원김실이 있었고, 이어 조원우-김기태-심성보-박경완에 이르는 클린업이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 타선을 구축했다. 1997, 98 시즌에는 연속 3할을 기록했으며, 1997년에는 3루타왕(9개), 1998년에는 홈런 12개를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있던 선수다. 특히 1997년에는 팀이 타율/출루율/장타율은 해태를 넘어선 2위를 기록했는데,[9] 그 중심에서는 조원우가 있었다. 97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김태한을 상대로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내며 큰 경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해 비록 쌍방울은 삼성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지만, 그의 한방으로 쌍방울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불태울 수 있었다.

1998년에는 149안타로 최다 안타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유일하게 그 해에 두자리수 홈런(12홈런)을 기록했으며, 또한 희생타 1위(39개)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파일:/image/100/2013/12/18/coming201312181434141_59_20131218143603.jpg
SK 와이번스 시절

큰 기대를 가지고 0.314로 고감도 타격을 보여주던 1999년 5월, 주간 수비 훈련 도중 공을 잘못 밟아 왼쪽 고관절 인대에 부상을 입었고 시즌 아웃되었다.[10] 다른 팀에는 주간에 이런 무리한 훈련을 실시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은 체력 저하 및 부상 우려 논란에도 이런 훈련을 지속했었다.

조원우가 재활을 하는 동안 쌍방울은 재정난 끝에 해체되었고 그 선수단을 이어받아 2000년 SK 와이번스가 창단되어 SK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2000년 부상에서 복귀했으나, 부상 직전 리그 수위급 타자의 기량을 결코 회복하지 못했고 은퇴할 때까지 나머지 9시즌 동안 2할대의 평범한 타자에 머물고 말았다.

SK 와이번스로 인계되어 첫 시즌을 마친 2000년에 공인회계사인 황미화 씨와 결혼했다.

2003년부터 타격감을 다시 되찾기 시작하였고 그해 SK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게 되나,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

2004년에는 등장곡으로 숫자송을 사용했는데 시즌 중후반엔 응원가 원곡이기도 한 '어제밤 이야기'로 등장곡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 시즌에는 주장도 겸했었다.

2004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어 FA를 행사하였으며 4년간 17억 5천만원의 조건을 요구하여 원 소속팀 SK와 이견을 보인 끝에 시장에 나왔고, 김재현을 놓친 LG 트윈스정수근의 이적 이후 외야요원의 공백을 메꾸는데 실패했던 두산 베어스 등에서 조원우를 노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요구조건이 너무 셌던 탓인지 다른 팀과 계약을 하지 못한 채 2005년 1월까지 FA 미아로 남아있다가 결국 원 소속 팀 SK와 계약 기간 2년 총액 4억 5천만원에 계약하였다.

FA 과정에서 미운 털이 박힌 탓인지, 외야진의 핵이었던 채종범이 병풍으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로 영입된 박재홍이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에 좌익수 자리마저 군에서 제대하고 합류한 조동화가 차지하며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2005년 시즌 중 투수 조영민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image/109/2007/05/20/200705201826101101_1.jpg파일:/image/117/2005/08/24/200508241547460400_1.jpg
한화 이글스 시절 그의 특유의 타격폼

트레이드 당시 1971년생과 1981년생의 트레이드였기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조원우가 연일 불꽃타를 휘두르면서 여론을 잠재웠다. 시즌 후반에는 규정타석을 채우며 막판까지 이병규, 김재현과 함께 타격왕 경쟁을 하기도 하였다.[11] 분위기를 탄 한화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12] 조원우는 친정팀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13]를 휘두르면서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다.

한화에서 2006년과 2007년에 100경기 이상 출전하였으나 2005년의 모습과 같지는 않았으며 배트 스피드가 눈에 띄게 느려져 빗맞는 타구, 특히 수직으로 높이 뻗기만 하는 내야 플라이를 양산하였고 팬들은 로켓타구만 날린다하며 조로켓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1군 5경기 출전에 머물러 결국 2008년 10월에 방출되었다.

2.4. 선수 시절 총평

15년 동안 1,368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282, 68홈런, 443타점, 123도루를 기록했다.

커리어 최다 홈런이 12홈런으로 거포 스타일도 아니며 도루도 20개를 넘긴적이 한 번 뿐이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준족도 아니였지만 2루타와 도루는 매 시즌 어느정도는 기록하였고, 타율 또한 2할 7푼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교타형 타자였다.

이것만 보면 그저 그런 선수시절을 보냈다고 생각 할수 있지만, 조원우에게는 세계 1위의 대기록이 하나 있는데 '외야수 부문 연속 경기 무실책 기록'이다. 총 494경기 연속 무실책[14] 을 기록하였으며 2001년 7월 5일 청주 한화전을 시작으로 이어진 이 기록은 팀을 한화로 옮긴 후인 2006년 5월 23일 대전 삼성전에서의 중계플레이 실책을 범하면서 마감했다. 한화 시절에는 실책이 나올 플레이를 안 해서 실책이 없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야 수비에 능통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승 경력은 없으며 준우승은 SK 시절인 2003년과 한화 시절인 2006년에 경험했고, 쌍방울-SK 시절 동료였던 김원형이 2007년 SK에서 우승을 맛보면서 조원우에 대해 아쉬워했기도 했다.[15]

3. 코치 시절

주로 외야수비 코치를 맡았으며, 수비코치로의 평가는 꽤 좋았다. 그의 손을 거친 의 수비가 꽤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3.1. 한화 이글스 시절

2008년 11월에 한화의 2군 코치로 합류했다.

2009년 1시즌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 코치로 활동한 후, 김태균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하자 그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3.2. 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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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연고 팀으로 돌아온 후 외야 수비코치를 맡게 된 조원우.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비코치로 임명되었다.

1루 코치 겸 외야 수비코치라는 이례적인 기용이었지만,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훈련을 받았던 손아섭김주찬의 외야 수비가 가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 수비에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던 김주찬마저 7월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수비수로 바꿔 놨으니... 이 때문에 같은 수비코치지만 내야를 담당하는 공필성과 많이 비교되고 있는 상황. 7월 31일 경기에서 보살 2개를 기록했던 손아섭도 인터뷰에서 조원우 코치의 지도 덕에 수비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근성으로 불의의 부상을 딛고 일어난, 쌍방울 레이더스다운 선수.

2012년에는 주루코치를 맡았는데, 3루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판단으로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어째서 이 항목에 제대로 작성이 되지 않았었는지 의문.

2012년 10월 말 부로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는데,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의 퇴임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3.3.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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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외야수비 코치 시절

이후 2013 시즌 두산 베어스의 외야수비 코치로 임명됐으나,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김민재와 함께 사의를 표명하였다.

3.4.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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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시 친정 팀으로...

2013년 12월 18일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로 임명되었고, 이로써 조영민과의 트레이드 이후 8년만에 SK로 다시 오게 되었다.

2014년 이만수 감독을 포함 모든 코치들이 비난받는 와중에도 뛰어난 판단으로 김경기 타격코치와 함께 비난의 화살을 피했다.

2015년부터 외야수비코치로 임명되어 이명기의 막장 수비를 한번 맡겨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며, 주루코치와 외야수비코치를 겸하게 되었다. SK 팬들은 이명기의 외야 수비가 만약 정말 좋아진다면 종신계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2015년 시즌 초반 이명기의 수비가 진짜 좋아졌다! 전년도에 비해 수비에 훨씬 안정감이 생긴 것은 물론 간간이 호수비도 보여주는 중.

2015년 광복절에 김경기 수석이 재활군으로 강등되면서 1군 수석코치로 승진했다.

4.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4.1. 감독 임명

2015년 10월 8일에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양승호 감독 재임 시절 이후 3년만에 롯데로 컴백했다. 이종운 감독에 이은 외야수 출신 초보 감독으로, 이종운 감독이 경질되며 외야수 출신 감독의 맥이 끊길 뻔 했으나 이번 선임으로 외야수 출신 감독의 명맥은 2016년에도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역대 최초 1970년대생 감독으로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계약기간 2년에 계약금 3억, 연봉 2억.

팬들의 반응은 격노. 특히 장성우 사건까지 겹쳐 아주 제대로 유전이 터졌는데, 롯데 프런트는 "로이스터도 후보군에 있었다" 라는 말로 유전에 불을 붙여 팬들의 염통을 불살라버리고 있다. 이후 선임배경에 대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상황이 가관이다.
Q. 어제(7일)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렀다. 다음날 롯데 감독 사실이 발표됐다. 이미 얘기가 돼 있었던가.
A. "전혀 몰랐다. 앞서 롯데 관계자들로부터 '롯데 와야지'라는 농담같은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롯데에서 코치로 일한 적이 있으니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지금 SK 수석코치인데 어딜 가느냐’고 말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경기 끝나고 롯데 운영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롯데 오라고 하더라. '오늘 경기 진 사람한테 무슨 소리냐' 했더니 감독으로 영입하려 한다고 하더라. 잠시 고민 했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SK 숙소에 돌아와 함께 인천으로 이동했고, SK 코칭스태프와 맥주 한 잔 했다. 그리고 나서 롯데 단장님과 계약서에 사인했다"

김용희 감독한테 얘기는 하고 사인한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 근데 이창원 사장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파악해 선임했고, 로이스터는 생각도 한 적 없다." 며 손발안맞는 언플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사장 인터뷰를 보면 위의 조원우 인터뷰와 전혀 말이 안 맞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SK 구단 관계자 인터뷰로 정말 김 감독에게 일절 얘기도 없이 감독을 선임한 게 밝혀졌다.
롯데 자이언츠는 8일 신임 감독으로 SK 조원우 전 수석코치를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원우 신임 감독은 바로 전날 밤 23시 8분께까지 SK 더그아웃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지휘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패배 바로 다음날 아침 다른 팀의 감독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히 사전 접촉이 의심될 만한 상황이었으나 SK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조원우 전 코치가) 어제 경기가 끝난 뒤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밤새 고민을 하셨고 오늘 오전에 (롯데행을 결정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SK 입장에서는 물론 아쉽지만 (프로야구 감독직은) 일부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3년 계약을 해서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렸다"고 설명했다.

조원우 인터뷰와 SK 관계자 인터뷰의 내용이 같은 것으로 보아 이창원의 인터뷰가 거짓말이 된다. 시즌 시작도 전에 프런트는 프런트대로 조원우는 조원우대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감독 자리라는 게 야구인 생활 평생 한번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보통 김성근을 생각하지만 김성근은 커녕 선동열 정도만 돼도 감독으로서는 크게 성공한 축에 속하는 것이 현실이다.[16] 그리고 프로구단 감독 경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야구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히기에 수많은 감독 후보군들이 1년짜리 감독이라도 해보려고 줄을 서는 것이 현재 프로스포츠의 현실이다. 즉 구단이 철저하게 갑이라는 이야기.[17] 조원우 만한 인재가 야구계에 널린 상황에서 만약 조원우가 조건 때문에 망설이다가[18]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나중에 기회가 온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즉 당시 제의를 승낙하는 건 조원우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

4.2. 2016년

아직 승부처가 아니다.[19]

감독감이 부족한 KBO에서 그의 행적은 KBO의 비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2016년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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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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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18년

수차 지적하지만 롯데는 감독이 상식적인 경기 운용만 보인다면 치고 올라갈 힘이 충분한 팀입니다. - 케이비리포트 #
결국 비극으로 끝난 시즌. 잔여 계약을 2년 남기고 재부임 1년차에 경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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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6롯데 자이언츠 144 66 78 0 8위
2017 144 80 62 2 3위 3위[20]
2018 144 68 74 2 7위
통산 432 214 214 4 ­

통산 승률은 정확히 5할이다. 다만 2017년 한 해에 거둔 성적이 좋아서 나름 이렇게 나온 결과라고 봐야 할 듯.

5. 평가

5.1. 긍정적 평가

5.1.1. 거의 없는 남탓 및 언론 플레이

KBO 감독 중에서 상대적으로 남의 탓이나 언론 플레이가 적은 편이다. 롯데 감독들 중 양상문이나 전임 이종운 감독과 대비되는 부분. 예를 들어 투수교체는 투수 및 수석코치를 맡은 김원형 코치가 대부분 담당하고 있으나 교체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이 지는 편이며, 베테랑을 제외하고 기사를 통해 선수 탓을 하는 경우도 드문 편. 201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투수교체 미스로 시리즈 탈락을 하며, 이 사유로 조원우 감독의 재계약이 지연되자 김원형 코치가 이를 굉장히 미안해했다.

이종운 감독과 양승호 감독이 언론 노출이 많았고 언론을 통해 선수단에 메세지 전달이 많았던 점에 비하면, 언론에 선수 탓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연차가 낮은 어린 선수는 단점보다 장점 위주로 평가하며 지적을 거의 안하지만, 연차 높은 베테랑의 경우 책임에 대한 언급을 하기는 한다.

감독 첫 해에 승부처 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이후, 다음 해부터는 입이 더 무거워졌다. 선수단 근황, 지난 경기 복기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팀이나 심판 판정에 대한 언급은 적은 편. 이 때문에 감독의 연차가 쌓임에도 시즌 전 미디어 데이에서 대표적으로 재미없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구단과 현장의 온도차가 커서 경질시켰음에도, 구단의 탓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동안 고마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5.1.2. 더블스틸

롯데가 2017년 후반기 기적같이 반등했는데 그 당시 조원우 감독은 발빠른 주자 나경민을 이용해 더블스틸을 자주 시도했는데, 성과가 좋았다.

5.2. 부정적 평가

7월 8일, 김한수 감독을 저격하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는 조원우 감독의 단점들과 100% 일치한다. 한 가지 다르다면 구단의 투자를 받았다는 점. 그러고도 상대전적에서도 김한수 감독에게 밀린다.

5.2.1. 공격 부문 : 부실한 운영능력

전임 감독 시절 롯데의 작전은 '희생번트, 도루, 히트앤드런'밖에 없었다. 3가지 작전만으로 한 시즌을 치른다는 건 메이저리그 아니면 초등학교 야구부밖에 없다.”
- 양승호 전 감독, 2011년중 박동희와의 네이버 문자 인터뷰. 로이스터 이전에 감독을 지냈던 강병철, 양상문 등을 저격하는 말이지만 이후에 부임한 김시진, 이종운 거쳐 현 감독인 조원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감독은 없다.
5.2.1.1. 시대에 뒤떨어진 스몰볼 및 올드스쿨 야구
2010년대 야구의 트렌드는 야구의 본가인 미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트렌드라고 하면 빅볼, 수비시프트, 플라이볼 혁명(발사각도), 강한 2번타자 정도가 되겠으나, 조원우 감독에겐 먼 미래의 이야기인 듯하다.[21] 대표적으로 수비 부분에서도 새로운 작전을 받아들이는 데 보였던 소극적인 모습을 들 수 있다. 이미 유행을 지나 이제는 필수로 여겨지는 수비시프트조차 뒤늦게 적용하는 것이 그 증거. 하지만 조원우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내 감독들이 보수적이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김성근, 김응룡, 김경문, 선동열, 김시진 등 이미 감독으로서도 연차가 지긋한 노장 감독들이 여전히 지휘봉을 잡을 정도로 감독의 세대교체는 느렸고, 이들이 자신이 배운 것을 토대로 보수적인 작전을 펼쳤기에 조원우 감독도 그러한 시류에 자연스럽게 편승했다는 것. 하지만 조원우 감독은 현재 KBO 리그에서 가장 젊은 감독이며, 그보다 나이가 많은 김태형, 한용덕 감독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현재 애용하는 올드스쿨 야구는 조 감독의 연차에 걸맞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론 위의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인재풀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분명히 롯데에는 빅볼을 할 수 있는 인재풀이 있음에도 조원우 감독이 스몰볼, 히트앤드런, 도루, 약한 2번타자 등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임초기의 인재풀로는 스몰볼 야구가 더 적합할지 모르나, 2018시즌은 이대호, 채태인, 이병규, 전준우 등 누가봐도 빅볼을 구사하기에 적합한 슬러거들이며 손아섭이나 민병헌 또한 10홈런은 거뜬히 칠 수 있는 강타자들이다. 2018시즌 3/4 가까이 지난 롯데에는 20홈런 이상 타자만 4명이며[22] 신본기도 타격이 만발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고, 부상에서 돌아온 안중열도 장타력을 보여주는 등 조원우의 스몰볼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롯데의 선수단은 체질개선만 한다면 언제든지 빅볼을 구사할 수 있다. 아니, 중심 타자들은 오히려 오랫동안 경험해온 빅볼 야구에 더 능통하다. 반면 스몰볼의 필수조건인 테이블세터는 명확히 지정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현재 테이블 세터로 기용되는 선수들은 단지 발 빠르고 안타 생산력이 좋을 뿐 투수를 괴롭히는 능력은 떨어진다. 또한 주전급 선수 중 작전수행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연 이 팀이 스몰볼에 적합한 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조원우 감독은 여전히 스몰볼을 필두로한 올드스쿨 야구를 지향하는데, 이에 능하냐고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노련한 감독[23]만 만나면 모든 작전을 간파당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자주보이며, 이기는 경기조차 스코어만 앞섰을 뿐 지략 면에선 진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답답한 것이 주자만 나가면 늘상 번트를 지시하는데, 예로부터 롯데는 번트에 능한 팀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날의 타격감이 좋든 말든 무조건 번트를 지시하는 모습은 조원우 감독이 지향하는 스몰볼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타구의 발사각도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타격코치의 몫이라고는 하지만, 그 코치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역할이다. 조원우 체제가 갖춰진 17시즌부터 18시즌까지의 1군 타격 코치를 맡은 김대익, 김승관은 사실상 코치 경험이 전무하고 프로시절에도 타격으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들이다. 이들이 가르쳐야 할 롯데의 베테랑 타자들은 이미 자신의 타격 폼을 확립시킨 상태인데, 과연 지금의 코치진이 이들에게 발사각도를 장착시킬 수 있을까? 당시 코치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작 2군, 3군에는 장종훈훌리오 프랑코가 코치로 있었다. 타격이 감독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니지만, 조원우의 코치 기용에서 드러나는 문제 중 하나.

강한 2번타자 같은 경우는 약 10년 이상 롯데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원래 조원우 감독도 강한 2번까진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테이블 세터 구축을 꿈꿔왔으나, 아시다시피 롯데는 최근 10년간 고정시켜 놓고 쓸 만한 테이블 세터 자원이 없었다.[24] 특히 2018시즌엔 출루마저 힘든 최악의 하위타선이 만들어지며 테이블 세터 역할에 적합한 신본기가 하위타선에 남고 그나마 작전 수행을 잘한다고 판단했는지 문규현을 2번 타자에 기용하는 악수를 두게 된다[25] 부실한 내야 뎁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문규현을 기용해야 한다고는 하나 2번 타순은 그가 맡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리임이 이미 판명났다.

5.2.2. 투수 부문 : 의심받는 관리능력

5.2.2.1. 의심받는 투수 관리 능력
2017년 후반기에 보여준 모습으로 조원우 감독은 관리야구 이미지를 확립했다. 확실히 2017년만 해도 풀타임 기준으로 다소 부담은 되지만 심각하다고는 볼 수 없는 70이닝 선에서 마무리해주며 불펜의 관리를 철저하게 해준 편이다. 5일 휴식을 가져가는 선발투수에게 가능한 부담을 집중시키며 불펜의 부담을 줄여주는 전략을 가져갔고, 혹사라고 하면 한 두명 정도로 그친 것으로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8 시즌 6월 불펜으로 전업한 송승준을 혹사시키거나[26] 점수차에 상관 없이 필승조를 올리기도 하고,[27], 불펜으로 올라온 노경은이 6이닝 105구를 던지게 만드는 등[28] 기존의 '관리'는 이미 내다 버린지 오래다.

불펜 투수들이 한 번 등판할 때 소화하는 이닝이나 투구수 자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연투를 하게 되면 엄청난 피로가 쌓인다. 2018시즌 후반기 롯데 계투진의 경우 3연투, 4연투도 종종 나오는 편으로, 확실히 구위가 떨어지는 게 보인다. 이는 KIA의 김기태 감독과 정반대의 투수 운용방식으로, 김기태는 필승조 투수를 한 번 내보낼 때 기본적으로 1이닝동안 20구에서 많으면 40구까지 던지게 하지만 연투 횟수는 리그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2018시즌에는 박세웅, 조정훈의 조기복귀와 박진형의 예상치 못한 시즌 초반 이탈로 이닝 관리 능력과는 별개로 부상 관리 능력에 의심을 품게 했다. 결국 아직 회복되지 못한 그들이 실망스러운 투구를 보이며 사실상 안식년을 보냈고 팀은 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투수조의 전반적인 붕괴가 일어나는 와중에도 점수차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 가능한 한 장시환, 이명우 등을 올려 지더라도 이닝을 분담시키며 혹사를 줄이려 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대체로 이 선택이 최악의 결과로 연결되어 굳이 꺼내지 않았을 승리조가 지는 경기까지 매듭지어야 하는 상황으로 마무리된다. 설령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투수진 전체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자명한 결과다.

최근 불펜 혹사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조원우의 투수 운용 능력이 의심받는 큰 이유는 매년 꼭 구위 하락이나 부상을 겪는 선수가 나온다는 점이다. 2016년에는 이정민, 2017년에는 배장호, 박세웅, 박진형[29][30]이 구위 하락과 부상을 겪었다.[31]

그리고 박세웅이 2019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로 1시즌을 빠지게 되었고 조원우 체제동안 엄청나게 굴렀던 이 2019년 전부 하락세를 타고 있을 정도로 가히 멸망수준의 투수진이다. 고로 이 작자의 관리야구 라는것은 허상이였음을 증명했다.
5.2.2.2. 좌우놀이
조원우 감독은 상기한 타석에서뿐만 아니라 마운드의 좌우놀이에도 충실하다. 애초에 이명우, 김유영[32], 고효준밖에 없는 좌완 불펜진으로 좌우놀이를 빈번하게 시전하니 결과는 엉망일 정도로 좋지 않다. 게다가 둘 뿐인 '좌완 스페셜리스트'에서 이명우가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롯데 투수진에는 플래툰에 어울리는 선수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좌완 스페셜 리스트로 효과를 보는 것은 강속구 좌완투수이다. 하지만 롯데의 좌완투수 이명우, 김유영은 구속이 느린편이며, 그렇다고 투구폼에서 좌타자를 현혹시킬만한 투구폼이 장착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명우는 체중 및 노쇠화로 인해 운동신경, 반응속도가 심각히 떨어져 1루 진루에 유리한 좌타자들에겐 오히려 좋은 먹잇감인데 특히 최근 이명우가 등판하면 박민우, 박해민 같이 다리 빠른 좌타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기습 번트를 대고 출루를 해버리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좌타자 한 명 잡아라고 등판시켰더니 오히려 출루만 잔뜩 시켜놓고 내려가는 그림이 펼쳐지는 것이다. 상대편 클러치 상황에서 좌타가 타석에 들어서면 없다시피 한 좌완 계투진에서 이명우를 등판시켜버리니 팬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갈 뿐.

5.2.3. 승부처에서의 용단 부족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드러난 조원우 감독의 소신이나 행동으로 보면 좋은 성품을 가진 덕장임은 확실하나, 감독으로서 용기있는 결단을 밀고 나가는 용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잘 나타냈던 것이 부임 첫 해의 '승부처 발언'인데, 사실 말 자체는 좋았으나 끝끝내 승부처를 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 해를 끝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감독으로 맞는 첫 해라 겪는 시행착오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2017 시즌에도 부족한 작전능력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물론 이 시즌 후반기 대약진을 통해 순위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것이 단순히 운이었는지 자신의 실력으로 이루어 낸 결과인지는 다음 시즌에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본인의 결단으로 기류를 전환시키기 보다는 좋은 기류를 기다렸다가 이에 탑승하여 밀어붙이는 게 조원우 감독의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승부처를 영 못잡는 것이 가장 큰 문제. 크게는 한 시즌부터 작게는 한 시리즈나 한 경기에서 승부처를 잡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시즌 전체적으로 보면 작년에 시즌 최다 승리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시즌 전체적으로 보면 처참했던 전반기 + 역대급 후반기라는 비정상적인 시즌이었다. 앞서 말했듯 기적이 따랐는지 본인이 이룩한 것인지는 스스로 밝혀낼 사안.

한 시리즈의 경우 시리즈의 한 경기 정도는 내줘도 좋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지 부임초부터 현재까지 좀처럼 스윕으로 가져가질 못한다. 덕분에 2018 시즌은 시리즈마다 번번이 스윕을 놓치며 전 구단중 최저 스윕을 기록하는 중이며, 스윕 찬스에서 현재 승수보다는 다음 시리즈에 집중하며 스윕에 실패하는 것이 주된 레퍼토리. 따지자면 이것 또한 조원우식 '관리야구'에서 나오는 병폐중 하나.

한 경기의 경우 이러한 단점이 가장 두드러진다. 경기 초반임에도 무리하게 번트를 지시하여 오히려 흔들리는 상대 투수를 도와주거나[33][34] 선수들의 힘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만한 점수차의 경기에서 필승조를 아껴 낮은 점수차로 지는 경우, 상대 선발 투수가 무너지는 찬스에서 경기 후반을 위해 대타를 아끼다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경우. 투수가 흔들리는 조짐이 보일 때 출루를 시키거나 실점을 하여야만 교체를 하는 경우 등등 매우 많은 상황에서 승부처 판단이 늦다. 2017년 준플레이오프가 그 좋은 예시.

5.2.4. 특정 선수에 대한 편애

특정 선수에 대한 편애가 두드러지는 모습은 조원우 감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용병이 부진할 때 프런트의 결정이 떨어지기 전까진 "기다리면 괜찮아질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가능성을 보았다."등으로 너무나도 관대하고, 지나치게 언론플레이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KBO 특성상 한 시즌의 판도를 결정짓는 용병농사를 너무나도 안일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기다리다가 후반기에 터지면 다행이고 가망없으면 애디튼처럼 퇴출시키기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손실된 승수가 후반기 롯데가 달려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어처구니없는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아웃된 맥스웰의 부재로 공격력이 약화된 2016년이 대표적인 예.

조원우 감독의 편애라고 하면 문규현이 주로 언급되는데, 인터뷰마다 '"작전수행을 가장 잘하는 선수"' '"2번 타자에서 잘해주고 있다."' '"수비가 안정적이다."'(그러나 현실은...)라며 관용을 베풀기 때문. 백업요원으로 써봄직한 김동한, 황진수는 선발출장 기회를 잡으면 2타석 이내에 뭔가를 보여주거나 흠없는 수비를 선보이지 않으면 얼마 안가 문규현으로 교체되며, 그 이후에 출장 기회를 좀처럼 잡기 어렵다. 반면 문규현은 경기의 흐름을 내줄 만한 모습을 보여도 2군 강등은 커녕 문책성 교체도 하지 않는다. 사실 문규현이 본래 이상의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은 비단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한동희, 이호연, 김민수 등 다른 유망주들은 다 2군에 박아놓고 3할치는 같은 유격수에게는 허구한날 번트나 시키고 수비포지션을 돌리면서까지 주전에 기용하는 조원우의 책임도 있는 셈. 백업요원뿐만 아니라 신인선수에게도 무지하게 엄격해서, 박세웅이나 윤성빈같이 처음부터 선발진으로 낙점한 경우가 아니면[35]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지 않는 한 기회는 이미 물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베테랑이 장기간 부진할 때 2군에 내리거나 타순을 재배치하는 등의 과감한 결단을 갈구하지 않고, 성적이 엉망진창이라도 이를 대체할 신인, 유망주는 거들떠도 안보니 아무리 결과론이라 하더라도 팬입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5.2.5. 반론

그러나 리그 전체로 봤을 때, 조원우 감독이 신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문규현의 중용은 결과론으로, 2017시즌에는 신본기를 유격수로 계속해서 믿음을 주며 기용하였으나 .237/.313/.317이라는 성적을 기록했으며 (문규현은 .270/.295/.391), 2018시즌 또한 개막전 주전 유격수는 신본기, 3루수는 고졸신인 한동희로 문규현은 당초 시즌 구상에서 주전으로 낙점된 것이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결국 문규현이 유격수 수비밖에는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로, 신본기가 2018시즌 wRC+ 100을 치는 내야수로 각성한 상황에 타격/수비의 밸런스를 그나마 유지하는 방법이 신본기의 3루 이동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한동희는 2018시즌 226타석에 들어섰으며, 이는 한화 이글스의 정은원(227타석)과 함께 신인왕이었던 kt wiz의 강백호(556타석)를 뒤잇는 기록이다. 실제로 첫 시즌에 2군에 머물다가 군대를 공익근무요원으로 다녀온 전병우는 2군 성적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1군에 등록했고, 뛰어난 활약을 보여 시즌이 끝날 때까지 준주전으로 기용되었다. 물론 한동희가 당장 2019시즌에라도 3루 주전을 차지하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이나, 결과적으로 충분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문규현을 밀어낼 수 없었던 것이지 문규현을 억지로 기용했다는 것은 감정론이자 결과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6] 투수 쪽에서는 더 할 말이 없는 것이, 2018시즌 기준으로 롯데 2군 투수진은 완전히 황폐화된 상태이며 2군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이 박시영, 김대우, 윤성빈. 장시환, 김건국 정도인데, 확장엔트리때 1군에 올라온 김건국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다 1군에서 기회를 받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거나 역할을 해 주었던 선수들이다.

그리고 2019년 새로 부임한 양상문 감독은 주전 유격수 신본기를 고정해서 선발로 내고 있지만, 발전은 커녕 오히려 공수주 모든 면에서 불안함을 보이며 조원우 감독이 주전 유격수 문규현을 쓴 것을 재평가 받고 있다.

SBS 이순철 해설위원은 오히려 신본기는 유격수 불가이고, 3루수로 전향해야 된다고 말한다.

5.3. 총평

장기간의 시즌 동안 선수단을 운용하는 능력은 준수한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 연고라는 특성상 KBO 구단 중 이동거리가 매우 긴 편에 속하므로 선수들의 체력관리와 부상관리가 중요한데 선수단의 관리는 잘 해준다는 평. 선수단 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인 언론 플레이나 선수 탓, 코치 탓의 빈도가 낮은 것 또한 장점이다.

다만,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한 면을 보인다. 발빠른 나경민 등을 활용한 주루 작전은 나름 1년차 당시에 비해 발전한 편이나, 여전히 투수 교체타이밍을 한템포 늦게 가져간다거나 좌우놀이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점, 시대에 뒤쳐진 올드스쿨 야구를 지향하는 것은 아직 해결 과제로 남아있다.[37] 최근 공격 작전이 도루보다 화력 중심으로 재편되고, 단순 좌우놀이보다는 데이터 야구로 진행되는 KBO 리그의 추세는 조원우 감독의 현재 작전 성향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감독 뿐 아니라 코치진, 전력분석팀, 트레이닝 파트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일 듯.

전후반기 승률 격차가 극심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2017 시즌과 2018 시즌[38] 모두 전반기 처참한 성적을 낸 후 후반기에 따라가는 양상을 보였는데 2017년에는 3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지만 2018년에는 뒷심 부족으로 7위에 그쳐 5강 진입에 실패하였고, 결국 10월 19일에 경질당하고 말았다. 후임은 2004년과 2005년에 롯데 감독을 맡았던 양상문이 다시 선임되었다. 그리고 나락으로 그립습니다 양상문은 1시즌도 못 버티고 사퇴했다

6. 기타

  • 이상하게도 컴투스 프로야구 2013에서는 조원우98카드가 SK 레전드 카드가 아닌 한화 레전드 카드로 되어 있다.
  • 별명은 돌격대장. 쌍방울 레이더스 타선의 주축이자, 이후 4번타자 김기태 등으로 이어지는 쌍방울 득점라인의 선두였기 때문에 팀명의 별명인 '돌격대'에서 따온 별명이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조로켓이라는 별명도 얻었다.[39]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 되고나서는 돌머리라는 뜻의 조석두로 자주 불린다. 잘하는 날에는 보석두, 다이아몬두 등으로 불렸는데, 자기 이름 자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아이러니.
  • 여러모로 쌍방울 시절의 동료이자 친한 형님인 김기태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쌍방울의 연고인 전북 지역이 아닌 타 지역 사람으로[40]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그 후 SK 와이번스에서 재회하게 된다.[41] 감독으로 임명될 당시 최연소 감독 타이틀을 얻은 것도 공통점.[42] 둘 다 현역 시절에는 팀에서는 뛰지 못하였지만 둘 다 팀의 감독을 맡았다. 둘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조원우는 수비 능력이, 김기태는 장타력이 월등했다는 점.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쌍방울 레이더스 86 223 .274 61 5 1 4 13 26 15 13 .359 .312
1995 38 87 .230 20 5 1 1 7 14 3 5 .345 .272
1996 122 284 .268 76 7 1 2 29 39 8 27 .320 .328
1997 126 424 .321
(8위)
136
(8위)
18 9
(1위)
5 49 61 15 26 .441 .355
1998 126 479 .311
(6위)
149
(2위)
20 4
(8위)
12 62 80
(6위)
23
(7위)
42 .445 .365
1999 47 188 .314 59 9 2 6 22 25 11 13 .479 .3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와이번스 29 77 .221 17 0 0 1 10 5 0 6 .260 .267
2001 111 307 .244 75 15 1 7 39 43 7 46 .368 .339
2002 116 297 .269 80 8 2 8 36 42 4 23 .391 .320
2003 128 452 .281 127 18 0 8 48 65 13 49 .374 .349
2004 119 386 .277 107 17 2 3 35 59 5 53 .355 .36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이글스 95 351 .302
(9위)
106 17 1 6 42 43 7 35 .407 .362
2006 106 341 .267 91 10 0 1 25 48 6 35 .305 .332
2007 114 319 .266 85 15 1 4 26 36 6 30 .357 .329
2008 5 5 .200 1 0 0 0 0 0 0 0 .200 .200
KBO 통산
(15시즌)
1368 4220 .282 1190 164 25 68 443 586 123 403 .381 .342

8. 둘러보기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6번
최해명
(1992~1993)
조원우
(1994~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36번
팀 창단 조원우
(2000~2002)
곽국희
(2003)
SK 와이번스 등번호 9번
곽국희(2001~2002) 조원우(2003~2004) 조영민[43](2005~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27번
조영민[44](2004~2005) 조원우(2005~2008) 빅터 디아즈(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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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현재
2000 2001 2002 2003 2004
최태원 양용모 박계원 김기태 조원우
2005 2006 2007~2008 2009 2010
강성우 김재현 김원형 박경완 김재현
2011 2012 2013 2014 2015
이호준 박정권 정근우 박진만 조동화
2016 2017 2018~현재
김강민 박정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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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 당시는 부산직할시 동래구였다.[2] (어젯밤엔 난 네가 싫어졌어) 안타!조원우!(x2)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 가슴 아팠지) 안타! 조원우!, 훗날 조동화가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3]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안!타! 조원우! (X2)[4] 아마추어 시절엔 타자로써의 재능이 뛰어났다.[5]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김성근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이다. 영상 속 37분 20초부터 그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6] 오른쪽은 김성래 현 한화 2군 타격코치. 말년에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쌍방울에서 뛰었다.[7] 1994 드래프트에서 쌍방울이 유일하게 건진 선수가 조원우 한 명이다...[8] 빠른 발과 정확한 컨택 능력을 생각한다면 2번 타순에 기용하는 것이 적당하나 나름 클러치 능력도 있어 주로 6번 타순에 기용됐다. 1번 타자로 출전한 적도 적지 않다.[9] 팀 득점과 홈런에서는 해태에 밀린 3위를 기록했다.[10] 조원우의 시즌 아웃은 당시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심성보의 이탈로 약화된 외야진과 김기태심성보가 모두 이탈한 타선에 큰 악재였다. 거기에 김원형까지 장종훈의 타구가 얼굴을 정면 강타해 시즌 아웃되자 완벽히 환승역 없는 8호선 신세가 된다.[11] 그해 타격왕은 결국 이병규가 차지하였다.[12] 2001년 이후 4년만[13] 21타수 9안타, OPS 1.097[14]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대런 루이스의 392경기가 최다 기록이며, KBO 리그의 종전 기록은 김종모의 265경기였다.[15] 그리고 이 둘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16] 김성근은 현재 논란이 많은 감독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1000승 이상+5할 이상과 우승반지 3개(SK와이번스 3)는 그냥 얻어지는게 절대 아니니, 신임 감독과의 비교 선상에 놓일 수가 없다. 선동열의 경우 지금은 감독 커리어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또 언제 감독을 맡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감독 하면서 두 번 우승 해보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17] 물론 구단측을 상대로 어느 정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감독도 있지만 특급 감독 한정. 그나마도 마지막 임기 성적이 안좋으면 김재박처럼 감독 복귀가 어려워진다.[18] 연봉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고령도 아닌 젊은 초보감독의 계약기간이 고작 2년이었다. 이종운의 예로 볼 때 이마저라도 지켜줄지 의심스러운 상황.[19] 1년 내내 언론에서 자주 언급한 말.[20] 준플레이오프에서 NC다이노스에게 패했으나 NC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최종순위는 그대로 3위.[21] 사실 국내야구계는 메이저리그에선 이미 2000년대에 도입되서 이제는 상식이 되버린 세이버매트릭스도 이제야 조금씩 받아들이는 추세이다. 빅볼, 수비시프트, 발사각도, 강한 2번타자 모두 세이버매트릭스가 대세가 되면서 파생된 효과들이니 아직도 감에만 의존하는 국내야구인들이 거부감을 보이는게 당연하다.[22] 이대호 전준우 손아섭 앤디 번즈[23] 대표적으로 김경문 감독. 사실 김경문 감독의 운영 성향은 오히려 빅볼에 가깝다.[24] 그나마 2008 시즌에는 정수근, 김주찬이 가장 근접했으나 이마저도 1년을 완벽히 돌아가진 못하였으며, 김주찬 또한 2012시즌 이후 팀을 떠나면서 2018년 지금까지도 붙박이 테이블 세터가 없다.[25] 2018년 5월 22일 기준 유격수 war 3위. 문규현 22위.[26] 불펜 전환 후 12일간 무려 206구, 보름간 231구를 던졌다.[27] 시즌 초 진명호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점수차에 상관 없이 올려댔고 6월 중반부터 제대로 퍼져버렸다. 진명호가 퍼지자 오현택이 작년 배장호를 연상시키듯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더니 결국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실점이 늘어나고 있으며, 후반기 필승조 구승민도 점수차에 상관없이 올려대자 9월 들어서는 올라올 때마다 한 방씩 맞을 정도로 피홈런이 늘어나고 있다.[28] 오죽하면 해설도 이정도면 퀄리티릴리프를 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 5.2이닝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으나, 9회엔 힘이 빠진 것이 명확하게 보였는데도 조원우는 교체 없이 강행했고, 결국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주자를 내보내더니 투런 홈런을 맞았다.[29] 그러나 박세웅, 박진형은 APBC 출연 여파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같이 대회에 출연했던 김대현이 딱히 혹사를 당한 것도 아닌데 김원중보다도 못한, 리그 최악의 선발투수 중 하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30] 그리고 이 리스트에 조정훈도 넣는 사람도 있는데 26경기 등판 23이닝 투구, 3연투도 없으며 2연투도 포스트시즌 포함 네 번인데 이걸 보고 혹사라고 하는 사람은 그냥 조원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된다. 오히려 조정훈의 등판이 뜸해서 박진형이 혹사당했다.[31] 다만 연투 횟수만 보고 단기간 혹사는 김경문, 김성근 못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애초에 그 단기간 혹사를 위 두 감독은 시즌 내내 시행했으며, 부상이나 기량 저하라는 결과가 혹사의 척도라는 논리라면 김성근 체제 및에서 부상 없이 롱런한 정우람은 졸지에 철저하게 관리받은 불펜이 되어 버린다.[32] 김유영은 원포인트 릴리프보다는 롱 릴리프나 선발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며 변화구 제구력도 썩 좋진 못하다. 그마저도 상무에 갔다.[33] 상대적으로 투수는 경기 초반에 제구나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데, 초반의 공짜 아웃카운트 1개는 투수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34] 애초에 한 점을 짜내기를 위한 번트의 효용성은 이미 수치상 안 좋은 것으로 드러난지 오래다. 경기 후반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점수보다 타석 하나가 소중한 초반에는 비효율적이다. 특히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지는 2018년 현재 이런 작전을 쓰는 건 굉장히 소모적이다.[35] 사실 이들은 프런트 차원에서 밀어주는 선수들이다[36] 실제로윗 문단에서 든 예시로 든 김민수는 2017시즌 퓨쳐스리그에 .275/.337/.505의 성적을 보이며 가능성을 보이긴 했으나 경찰청 첫 시즌에 .211/.283/.400로 성적이 뚝 떨어졌으며, 이호연같은 경우는 2군에서도 떨어지는 수비 기본기는 물론이고 최다실책(19개)으로 도저히 1군급 수비라고는 보기 힘들다. 게다가 김동한황진수는 각각 88년생, 89년생으로 리빌딩과는 거리가 멀며 2018시즌 퓨쳐스리그에서는 OPS 7할대의 성적을 보여주며 부진하고 있는 중이데 이 선수들을 중용하는 것이 과연 리빌딩이란 말에 해당이나 한단 말인가?[37] 발사각 향상은 높은 사직구장 담장을 고려해서 필수적일 부분일지도.[38] 본인도 이걸 아는지 2018년 시즌엔 인터뷰로 초반부터 치고 나간다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3월 전패...[39] 로켓같이 빠르다던가같은 긍정적인 별명이 아니다. 늘상 로켓같이 붕 뜨는 내야 플라이 타구를 날린다 하여 로켓...[40] 그나마 김기태는 광주광역시 출신인지라, 호남 지역 사람은 맞다.[41] 조원우는 쌍방울 해체 후 선수단을 이어받아 창단한 SK의 창단 멤버이고, 김기태는 쌍방울 시절 트레이드로 삼성에 이적했다가 이후 SK로 재트레이드되어 재회하게 되었다.[42] 김기태는 2014년 KIA의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 43세였으며, 조원우는 2016년 45세의 나이로 롯데 감독 자리에 올랐다.[43] 참고로 투수인데도 1번이 아닌 한자릿수 등번호를 단 특이한 케이스이다.[44] 조영민-조원우 트레이드로 등번호 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