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3 18:09:54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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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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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호준 · 70 이동욱 [[감독#s-1.1|
]] · 71 이대환 · 72 전준호 · 73 송재익
· 74 한규식 · 75 진종길 · 76 지연규 · 77 용덕한 · 79 김상엽
· 81 손민한 · 82 한문연 · 83 정진식 · 85 이현곤 · 87 김민호
· 88 채종범 · 89 박석진 · 93 이종욱 · 97 유영준 · 98 김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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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수상 이력 및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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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기록
2004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7 2007 2010

보유 기록
1경기 최다 볼넷 및 최다 연타석 볼넷[1][2] 6회
최고령 포스트시즌 출전 41세 8개월 13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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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역임 직책 및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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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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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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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2016.01~2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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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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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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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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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양용모 박계원 김기태 조원우
2005 2006 2007~2008 20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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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012 2013 20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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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017 2018~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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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
손시헌
손시헌
박석민
2019~2019.05.03 2019.05.04~
나성범 박민우
}}}}}} ||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성영재(2000) 이호준(2000-2001) 안재만(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오승준(2001) 이호준(2002~2012) 백인식(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김태우(2012) 이호준(2013~2017) 장현식(2018)
장현식(2018) 이호준(2019~) 현역
}}} ||
파일:이호준프로필.jpg
NC 다이노스 No.27
이호준(李昊俊 / Lee Ho-Joon)
생년월일 1976년 2월 8일 ([age(1976-02-08)]세)[4]
신체 187cm, 95kg
출신지 광주광역시
종교 천주교 (세례명: 프란치스코)
학력 광주중앙초 - 충장중 - 광주일고 - (호남대)
포지션 투수[5]1루수, 지명타자[6]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4~1999)
SK 와이번스 (2000~2012)
NC 다이노스 (2013~2017)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8)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9~)
응원가 SK 시절
Hep Stars - Speedy Gonzales[7][8][9]
NC 시절
오기택 - 아빠의 청춘[10]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제1악장 [11]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타격코치
3.1.1. 2019년
4. 인생은 이호준처럼5. 병역비리
5.1. 본인의 병역비리5.2. 병역 브로커 알선 혐의
6. 기타7. 연도별 성적
7.1. 투수 기록7.2. 타자 기록

1. 개요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승엽은 화려했고, 이호준은 묵묵했다. 이승엽은 임펙트있게 꾸준했고, 이호준은 소리없이 꾸준했다. 결국 강한자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자도 강했다.[12]

해태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소속이었던 前 야구선수. 포지션은 주로 1루수였으나, 지명타자로도 오래 뛰었다. 프로 데뷔 당시에는 투수였고,[13] 해태 시절 외야수와 3루수를 보기도 했으며, SK 시절이던 2004년 좌익수로도 몇 경기 뛴 적이 있긴 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은 '로또준'. 부진할 때라도 잊을만하면 가끔 터지는 홈런으로 인해 나온 별명.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34억짜리 경비원'[14]으로 불렸다. 팀에게 너무 피해를 주기에 또르노빌, 또쿠시마라고도 불렸으며, 워낙 SK 팬들의 애증의 대상으로 유명해서 야갤에서는 반어적 의미로 '씹솩의 소울'로 불렸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팀에서 최정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쓸 만한 타자가 되어버려서, 진심으로 'SK의 쏘울'이 되었다.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는 디시 엔갤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호부지'가 있다.# 호준+아부지라는데...젊은 타자들의 아버지 역할을 한데는 데서도 그렇지만, 가장이 그렇게 하듯 꾸역꾸역 타점 벌어다가 팀 먹여살리는 사람이라 그렇다나? 마침 응원가도 "아빠의 청춘"이다.하지만 병역비리와 선수협 메리트발언으로 타팀에겐 그냥 '호로'부지로 통한다.이 별명도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

고졸 신인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굉장히 길다. 1994년에 데뷔해서 통산 24시즌[15]으로, 은퇴 당시 KBO 최고령이자 가장 오래 된(23년차)[16] 선수였다. 이승엽, 박진만, 임창용, 박정진 등 1976년생들과 동갑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호준은 빠른 76이기 때문에 이들보다 선배이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아래 참조.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호준/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지도자 경력

이후 해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2018년 1월 16일 NC 다이노스와 코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바로 코치가 되는 것은 아니고, 1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돌아온 이후 코치로서의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부 팬들은 2018년 6월 3일 김경문 감독이 경질되자 지도자 연수에서 돌아오면 바로 감독으로 앉아달라는 말도 하기도 한다. 정세영 기자의 2018년 9월 15일자 뭐니볼 방송에 의하면 실제로 감독 후보로서 구단의 하마평에 오르기는 한 모양. 하지만 구단에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고, 본인도 부담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2018 시즌 들어 팀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이기 때문에 코치 경력조차 없는 사람에게 덜컥 차기 감독 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사실 무리수에 가까운 결정이다.[17]

이후에도 계속해서 차기 감독설이 흘러나오면서 정말 NC가 파격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으나 2018년 10월 16일자 기사를 통해 코치로서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8]

3.1. NC 다이노스 타격코치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8년 10월 26일 귀국했다. 이후 코치 연수 시절의 이야기를 인터뷰했다. [이영미 人터뷰] 일본에서 돌아온 이호준, NC 코치로 출발선에 서다 시즌 중에 이호준이 일본에 1년 더 머문다는 소문도 잠시 흘러나왔었는데, 실제로 6월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정식 타격 코치 제안을 받았었다고 한다.

2018년 11월 23일 코치진 개편을 통해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등번호는 현역 시절 번호였던 27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많이 야위어진 이호준 코치를 보면서 팬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다. 본인 말로는 20kg를 감량했다고 한다.

3.1.1. 2019년

창원 NC 파크에서 벌어진 시즌 개막 5연전에서 타자들이 홈런을 무려 12개나 날리는 뻥야구를 실현했다.#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뎁스가 습자지만큼 얇은 상황이고 백업들로 이루어진 타선 자체는 부진하지만 본인의 선수 시절을 연상케하는 게스 히팅이 먹히면서 어떻게든 점수를 내고는 있다.이원재 인터뷰

그리고 모든 팀이 13경기를 치른 4월 6일 현재, 팀타율 1위, 팀홈런 1위를 달성했다! 타고투저가 다소 완화된 2019년 초반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NC는 엄청난 불방망이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동욱 감독에 의하면 작년엔 히팅 포인트를 뒤쪽에 두어서 땅볼이 많았기 때문에 이호준 코치와 선수들이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당기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타선이 부진하면서 어려운 경기를 펼치기도 했지만 금세 부상 선수들이 속속들이 복귀하면서 4월 막판 들어서는 좋은 타격감을 유지했다. [이영미 人터뷰] NC 상승세를 이끄는 또 다른 힘, 손민한-이호준 코치

그러나 5월 말~6월 초 들어서는 타격이 부진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조금씩 있다. 물론 부상 선수들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참작의 여지는 있지만 연일 삽질하는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를 계속 붙잡는다는지, 성장이 정체된 이우성을 계속 밀어붙인다는지 등등. 그래도 노진혁이나 김태진 같은 성과도 있기에 아직까지는 호평이 많다.

4. 인생은 이호준처럼

야구 팬들 사이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얘기가 있다. SK 시절에 쓰일 때는 대박을 터뜨릴 정도는 아닌 성적을 거두다가 FA 자격 획득 마지막 시즌에 성적이 뛰어서 거액 FA 계약 후 먹튀가 되었다는 조롱의 의미였지만, NC행 이후 준수한 활약으로 인해 거진 야구계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이호준의 FA 대박 건도 있고, 무엇보다 이호준의 아내 사진을 보면 왜 이러는지 답이 나온다.

워낙에 유명해서 네이버 자동완성에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말해줘서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는데, 이 말이 왜 생겼는지 고려한다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SK에서 FA이후 2008~2011년까지 4년간 연봉 34억 WAR 합계 2.72(스탯티즈)인데, 여기까지라면 먹튀라 불릴만하고 비아냥도 이때 생긴 거지만 2012년에 2억 5천만원이라는 저렴한 연봉으로 SK와 재계약하고 WAR 4.45(이호준 커리어에서 2003년 다음으로 좋은 기록이다)라는 대단히 좋은 성적으로 한방에 만회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못했지만 때문에 사실 종합적으로는 SK에서도 오버페이일 수는 있어도 먹튀까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SK에서 연봉대비 잘했다는건 절대 아니고, 그저 애매했지만 잘봐줘야 평범한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단지 먹튀라는게 좀 심하다는 것 뿐. 먹튀/야구 문서에 나와있듯 진짜 먹튀들은 WAR이 0점대, 마이너스도 수투룩해서...

원래는 "야구선수로서의 기록은 더 뛰어나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양준혁보다, 기록은 좀 뒤져도 미인과 결혼한 이호준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라는 좀 장난기와 비아냥이 담긴 의미였다. 그러나 이후 FA 계약으로 인한 연봉 대박, NC로 팀을 옮긴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신생팀을 이끌어가는 모범적 고참 선수로 인정받는 등[19] (이승엽이나 양준혁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선수라는 경의를 담은 별명이 되었다.

카스포인트에서 이걸 놓치지 않고,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만들었는데 실로 가관이다.직접 보자

NC는 이 구절을 인쇄한 티셔츠를 14년 7월부터 판매 중.

자신도 이 별명에 자부심이 있는지 '인생은 조인성처럼'이 나오자 발끈(...)했다.기사

5. 병역비리

이호준 최대의 흑역사로, 병역비리와 관련하여 이중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두 가지 범죄를 저질렀고 전과자 빨간줄도 그어졌으나, 운좋게도 실질적으로 둘 다 처벌받지 않았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5.1. 본인의 병역비리

본인의 병역비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재검 뒤 공익 복무로 군 복무를 마쳤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이호준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20]

5.2. 병역 브로커 알선 혐의

본인의 병역비리가 운종게 공소시효 만료로 넘어간 것과 별도로 다른 선수들에게 전문 브로커를 소개해 준 행위가 발각되어 병역법위반방조죄로 빨간줄이 쳐진 전과자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감방살이는 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되나 아무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호준이 전과가 없는 초범임을 고려하여 짐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초범이 아니라 과거에 본인의 병역비리 사실이 발각되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았을 뿐이다. 본인 병역비리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기소되어 처벌받고 전과자가 되었다면 이번 사건 역시 실형을 선고받고 실제 감방살이를 해야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죄목으로 처벌을 받은 최기문이 사회봉사 200시간으로 끝난 것을 보면, 이호준의 죄질이 훨씬 심각했던 듯 하다. 인생은 이호준이라는 말도 있듯이 운빨 하나는 끝빨나게 좋은 사람이다.[21]

6. 기타

  • 가수 김종서와 상당히 친분이 있다고 한다.
  • 참고로 이진주(속칭 펄녀)를 앞장서서 내쫓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34억짜리 구단경비원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팀 케미스트리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각광받는 유망주의 타락으로 통하는 길 하나를 막아버렸다는 얘기니까. 이래서 성큰옹만수르 둘 다 성적이 바닥을 칠 때도 로또를 계속 밀어준 것 같다. 그리고 NC도. 이게 농담이 아닌 게, 같은 팀 고참이었던 김재현과 함께 둘이서 쌍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반농담이긴 하지만 찰리 쉬렉이 심판에게 욕한 게 이호준에게 배운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파일:/pds/200901/14/55/e0074455_496d5787c5b08.jpg
  • 이호준의 아내 홍연실 씨가 아주 미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22] 그래서 일부에서는 확실히 이런 부인이 있다면 이진주가 소개하는 연예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면서 이진주를 앞장서서 내쫓는 원동력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하지원 + 성유리 + 김유미을 닮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KBO 리그의 WAG 중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반론이 없을 정도다. 인천대학교 출신 전직 땅콩 스튜어디스로, 꼬실 당시에 자기 연봉을 사기치고 외제차를 뽑았다고 뻥쳐서(...) 꼬셨다고 한다. 이게 잔혹한 현실이다. 미녀와 결혼할려면 돈을 벌어라. 그것도 억대로. 그 당시엔 연봉이 적었겠지만 FA로 대박친 이후의 연봉은 5억. SK에서 박경완, 박재홍과 함께 최고 연봉 수령자였고 KBO 전체에서도 양준혁 - 김동주 - 손민한 - 박진만 - 장성호 다음가는 고액연봉자였다. 처음엔 거짓말이었겠지만 이후 현실이 되었으니 팀은 몰라도 부인에겐 진실된 남자. 게다가 이호준이 외출할 때는 신발을 직접 신겨주는 현모양처 스타일.모든 것을 가진 남자 이호준 이호준 부부 인터뷰 보면 알겠지만, 딸도 엄청 귀엽다. 정말 다 가졌다 물론 딸이 어렸을 때였으니까 귀엽긴 하다. 아빠 닳으면 안되는데
  • FA 대박치기 전 신혼이던 시절. 팀 선배가 아기 분유 뭐먹이냐고 물었고 자기는 어떤 제품을 먹인다고 했다. 분유에 대해 잘모르던 이호준이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 애는 뭐먹이냐고 물으니, 현재 형편상 그런 분유는 못 산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 각성했다는 후문.
  • 최동수와 닮은 꼴로 유명한데, 위의 사진에 나온 그 딸조차 SK로 이적 온 최동수에게 달려가 '아빠!~~'라고 할 정도.(…)
  • 현재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징크스를 다 합치면 100개가 넘을 만큼 많은데 지금은 많이 깼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징크스도 많은데 특히 자신이 손톱을 깎거나 남이 손톱을 깎는 걸 보면 그 날 경기가 잘 안 풀려서 그러한 행동들은 전부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한다고 한다. 그 밖에 이발하는 것도 피하고, 비누 없이 물로만 세수와 샤워를 하며, 계란같이 잘 깨지는 것도 피한다고 한다. 또한 성적이 안 좋으면 쓰던 야구 용품을 모두 버리고 새로 바꾼다고 한다. 반대로 좋은 징크스로는 자기나 자기 부인이 똥차를 보면 그날 홈런을 친다고 한다.
  • 고향 팀에 지금도 애착이 있는 듯하다. 기아가 연패에 빠질 때 인터뷰에서 기아가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 2009 시즌에는 기아와 벤치 클리어링이 여러 번 터질 때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23] 성적 역시 유난히 기아전 성적이 처참하다. 물론 지금은 그 반대로 기아전 성적이 뛰어나다. 그것도 혼자 뛰어난게 아니라 클린업 트리오 전부 뛰어나다
  • 이미지에 가려 잘 안보이는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통산 성적은 꽤 좋다. 2007년 우승과 2008년 야구붐 이후 SK 팬이 된 사람들은 그 이전에 보여준 이호준의 전성기 활약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까인다. 실제로 2007년 우승 후 FA가 되었을 때는 SK 팬들이 "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꼭 FA로 잡아야한다."라고 팬 게시판에서 서명운동까지 했다.[24] 그 때 팬들의 반응 덕분에 이호준은 예상보다 훨신 높은 금액의 FA 로또를 터트릴 수 있었으니, 지금 반응과 비교하면 흠좀무. 사실 SK시절 말기에 보여준 로또와 먹튀 이미지(...) 때문에 꽤나 저평가를 받고 있는 타자지만, 현역 타자들 중에서는 이승엽 다음으로 홈런 2위에 랭크되어 있고(2015년 6월 18일 기준 300홈런), 현역들중에선 300홈런이 넘는 유이한 타자. 역대 홈런 순위도 8위에 랭크되어 있다. 2014 시즌에는 1,000타점도 달성하여 은퇴한 마해영의 기록까지 넘었다. 특히 NC에 이적해와서는 거의 회춘했다고 평가받을 정도. 나이가 있긴 하지만 2014년까지 통산 285홈런을 때렸고, 2015년 초반의 홈런페이스도 좋기 때문에, 아홉수가 좀 있긴 했지만 6월 18일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300홈런 달성에 성공했다. 최고령 300홈런 기록은 덤. 300홈런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이게 더 의미있는 것이, 이호준 다음으로 당분간 300홈런을 기록할 타자들은 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이다.[25][26]
  • 횡령 등으로 무너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차기 회장으로 박재홍을 떠밀면서 존재감을 다시금 입증했다. 처음에는 자존심 강하고, 개인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던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많았으나, 예상외로 박재홍이 선수협을 잘 이끌어 나가자 덩달아 이호준의 평가도 올라가고 있는 중. 이호준 요정설 어쩌면 사람 보는 눈이 선구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은퇴하고 스카우트 시키자![27]
  • 퇴물, 먹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롯데만 만나면 전성기로 돌아와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로나쌩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 이후의 SK는 롯데한데 뭘 해도 이기는 팀이라서, 팬들에겐 호구 상대로 스탯쌓기만 한다고 오히려 까였다.(…) 이 때문에 2007년 FA 당시 롯데에서 영입하려 했지만, 영입 실패로 돌아가면서 꼴런트 어디 안 간다고 욕을 먹었었다. 알고보니 신의 한 수.
  • 201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뒤 SK와 협상이 결렬되며 NC로 갔을 때 솩갤에서는 아름다운 이별행이라면서 섭섭함보다 기쁨이 크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호준이 NC로 이적한 후 먹튀짓을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마다 SK에게 비수를 꽂자 모두 뒷목을 잡았다고 한다. 이호준을 까는 데 앞장섰던 솩갤의 경우 엔전드라고 부른다.[28] 그리고 2013년 겨울 정근우가 팬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떠나면서 좋게 떠난 이호준은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는 재평가가 잠깐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2015년 겨울 이 분이 정근우보다 더한 뒤통수를 거하게 쳐서 또 재평가를 받았다
  • 보통의 인간 이호준, 인생은 아름다워! : ##
  • 큰아들인 동훈(2002년생)이 프로 입단할 때까지 뛰는 게 목표라고 한다.[29] 그럼 그 때가 2021년이니까 최소 46세까지 뛸 거라는 얘기인데? ?? 인천동막초등학교와 수원북중학교, 휘문중학교를 거쳐 2018년 현재 휘문고등학교 1학년이다. 포지션은 투타 겸업으로 3루수와 투수라고 한다.[30]
  • 축구선수 곽태휘와 친분이 깊다. 2008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러 독일을 방문했을 때, 곽태휘도 마침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러 온 것. 이후 재활센터에서 같이 재활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이호준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했을 때 박찬호 배우 정경호 그리고 곽태휘를 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ㅡ 2013년 인터뷰
  • 프로 데뷔 후 골든 글러브 수상이 단 한번도 없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300개가 넘는 홈런을 쳤지만[31] 사랑의 골든글러브만 수상 했을 뿐 지독하게도 운이 없었다. 이유는 골글을 받을만한 시즌에 항상 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어서(...)[32] 그래서 엔갤에서는 은퇴 선물로 골든글러브를 만들어서 전달했다.
  • 개인 타이틀도 2004년 타점왕 하나밖에 없다. 살짝 아쉬운 부분. 어쩌면 개인 타이틀에서 밀렸기 때문에 골든글러브 경쟁에서 뒤쳐진 원인일지도.
  • 역대 우타자 통산 타점 1위이다. 2위는 장종훈.
  • 해산물을 좋아하는 듯. SK 시절에는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 여담으로 NC에서 방출당했다가 재입단한 투수 이효준이 이호준과 비슷한 이름을 지닌지라 로뚀준(...)이라고 불리고 있다.
  • 입담이 상당히 좋기로 유명하다.2017년 KBS N SPORTS 합의판정에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많이 풀어내어 MC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아야 닭이 매워야 1인분은 라면사리가 안들어가요
  • 차덕후다. 이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 자동차를 24대나 탔다고 하며,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었던 욕구가 야구선수로서의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멋 모를 때는 할부리스 없이 현금으로만 차를 샀다가 취등록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한다.
  • 본의 아니게 임창용을 각성시켜 야구 역사를 뒤바꾸는데 일조한바 있다. 광주 진흥고 시절 1 년 후배인 임창용과 노가리를 까면서 짖굿은 농담으로 "네 공은 도시락 하나 까먹으면서도 칠수 있으니깐 마음대로 던져봐라" 하며 약올렸는데 그 이후로 임창용이 팔 각도를 사이드 스로로 올리며 죽어라 노력하자 최고구속이 120km중반대에서 145km로 급상승하자 이호준이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고. 결과적으로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로 쓰는데 간접적인 공헌을 한 셈.

7. 연도별 성적

7.1. 투수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1994 해태 8 12⅓ 0 0 0 0 - 10.22 16 7[33] 9 4 14 14
KBO 통산
8 12⅓ 0 0 0 0 - 10.22 16 7 9 4 14 14

7.2.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해태 17 18 .167 3 1 0 1 3 6 0 6 .389 .375
1997 54 126 .278 35 9 1 8 20 26 0 8 .556 .321
1998 121 422 .303 128 27 1 19 77 64 5 33 .507 .354
1999 107 312 .276 86 16 1 16 55 48 5 27 .487 .333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61 190 .232 44 9 0 10 25 23 1 16 .437 .291
2001 80 286 .234 67 17 5
(3위)
8 30 44 4 21 .413 .287
2002 129 444 .288 128 24 2 23 64 76 5 49 .507 .358
2003 133 473 .290 137 20 1 36
(4위)
102
(5위)
86 9 78 .564 .389
2004 133 497 .280 139 22 2 30
(3위)
112
(1위)
87 7 73 .513 .368
2005 105 354 .271 96 16 1 21 65 59 5 55 .500 .367
2006 공익근무요원 복무[34]
2007 101 351 .313 110 22 1 14 71 56 3 34 .501 .368
2008 8 25 .200 5 2 0 0 2 1 0 1 .280 .231
2009 103 299 .298 89 14 1 16 55 40 0 36 .512 .369
2010 85 194 .278 54 9 0 8 46 19 1 21 .448 .342
2011 114 368 .253 93 12 0 14 62 41 2 45 .399 .333
2012 127 426 .300 128 26 0 18 78 55 3 77 .488 .40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NC 126 442 .278 123 25 1 20 87 46 2 61 .475 .362
2014 122 424 .271 115 20 0 23 78 59 3 70 .481 .371
2015 131 449 .294 132 25 0 24 110 48 0 68 .510 .381
2016 119 399 .298 119 20 0 21 87 46 3 67 .506 .396
2017 77 164 .299 49 10 0 7 36 13 1 21 .488 .366
KBO 통산
(22시즌)
2053 6663 .282 1880 346 17 337
(4위)
1265 943 59 894 .491 .362


[1] 한 경기에 6번이나 볼넷으로만 출루했다. 그것도 연타석으로...그러나 6번이나 출루하고도 그 날 경기 때 이호준의 득점은 0.(...) 이걸 보면 한국시리즈 5차전 때 최정오승환한테 선두타자로 3루타를 쳐도 홈으로 못집어넣은 게 살짝 이해가 가기도 한다. '1경기 제한'을 없애면 홍문종의 9연타석 고의사구가 최다 기록.[2] 2013년 4월 28일 김태균이 7타석 6볼넷을 얻어 이호준과 타이를 이루긴 했지만 이는 6연타석 볼넷은 아니었고, 고의사구가 하나 포함된 것이다. 이호준의 경우에는 고의사구가 하나도 없는 모두 순수한 볼넷. 김태균의 이 날 기록은 볼넷-볼넷-고4-안타-볼넷-볼넷-볼넷.[3] 2017년 10월 21일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4] 입춘(2월 4일)을 넘겼기 때문에 용띠가 맞다.[5] 해태 타이거즈 입단 시즌에는 투수였으나 당시 LG 트윈스의 김재현에게 20-20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20홈런을 맞은 후 투수를 그만두고 타자로 전향했다.[6] SK 시절 첫 FA 계약을 맺은 2008년 전까지는 주전 1루수였으나 이후 무릎 부상으로 박정권에게 서서히 1루를 내주고 지명타자가 되었다. NC 이적 후에는 쭉 4번 지명타자. 1루수 수비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부상 전력과 나이 문제 등으로 사실상 수비 측면에서는 거의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다.[7] 야야야야~ ~~이호준 날려버려라(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X2[8] 현재는 한동민이 사용중이다.[9] 가끔 삼성의 늙은젊은사자 응원가와 햇갈리는 사람들이 있으나,그 노래는 장윤정의 올레다[10] 다이노스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홈런!) 이호준!(홈런!) NC 이호준![11] 일명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 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그 곡이다.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오~ 이호준 홈런 오오오 홈런 이호준 홈런~ X2[12] 이승엽, 이호준이 2015년 올스타 득표 1, 2위 발표가 난 기사의 베댓[13] 입단 당시에는 선동열의 뒤를 이을 우완투수로 평가받았으나, 불만 지르다가 결국 타자로 전향했다.[14] 여기에 엮여서 생긴 김성근 감독의 별명으로 나니욘쥬라는것도 있다. 대충 3억짜리 경비원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던 김성근에게 이호준이 40억이라고 알려주자 놀라며 나니?! 욘쥬?!(...)라고 말했다는 드립이 흥하면서 생겼다.[15] 그러나 1995년의 1군 출전 기록은 없다. 23년 연속 1군 출전한 선수는 박경완...[16] 이병규와 최영필은 대학(93학번)을 졸업하고 1997년에 데뷔했고, 이호준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1994년에 데뷔했다.[17] 멀리 갈 것도 없이 창원 스포츠팬들은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겨울에 뼈저리게 느꼈다.[18]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서 함께 브로커 알선 혐의가 있었던 최기문은 팀을 떠나고, 이호준은 다시 합류하게 되었으니 참 묘한 인연.[19] 이는 성적에서는 역대 정상급의 타자이면서도 팀워크, 인성 등에서 평판이 나빠 환영받지 못하며 은퇴했던 두산 김동주의 사례와 대조를 보였다.[20] 이 후 추정상으로 SK 소속 선수들 다수에게 병역 브로커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시 일이 있던 후 이진영을 비롯한 몇몇 SK 선수들과 약간 사이가 좋지는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21] 유독 다른 병역 비리 선수들에 비해 해당 혐의에 대한 언급을 인터넷 기사에서 하면 비추천이나 왜 흠집을 내냐는 등 오히려 쉴더들이 많은 편이다.[22] 훈련소에 있을 당시 퇴소 전날에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깜짝 영상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모든 훈련병들이 우와~를 외쳤다(....)[23] 벤치 클리어링은 투수 몇몇을 제외하곤 무조건 나가야 한다. 안 나가면 벌금도[35] 내야 하고 팬들에게 욕도 먹는다. 자세한 것은 벤치 클리어링 문서를 참고. 근데, 사실 돈을 내기 싫어서 않나왔다 카더라[24] 이호준이 지금은 사라진 용틀임마당에 술을 먹고 쓴 글(...)이 계기가 됐다.[25] 이호준 다음으로 300홈런 후보군이 한화 이글스김태균일 정도로 통산 300홈런도 은근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김태균은 일단 2017시즌 종료 시점에서 통산 294홈런을 달성했다. 이전 버전에서는 이범호도 300홈런 후보군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2017시즌 중에 300홈런을 달성했다. 2017시즌 종료 시점에서 통산 308홈런. 김태균 역시 매우 높은 확률로 2018 시즌 중에 300홈런 달성이 가능해보인다.[26] 그 외에 일본에 진출해 있다가 2017년 국내로 돌아온 롯데 자이언츠이대호미네소타 트윈스박병호, KIA 타이거즈최형우, SK 와이번스최정 정도가 유력하다. 네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자면, 이대호는 일본 진출 직전인 2011 시즌까지 통산 225홈런을 기록, 일본프로야구 기록까지 합하면 일단은 개인통산 300홈런을 넘겼다. 박병호는 2015년 8월 17일 현재 통산 200홈런을 기록 중이며, 최형우는 2015년 8월 30일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고, 최정은 2016년 6월 1일 통산 200홈런을 넘겼다.[27] 참고로 이호준 본인은 해설을 하고 싶다고 한다. 방송국에서도 몇번 섭외 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봉중근도 이호준은 해설가로 어울린다고 말했다.[28] 실제로 게임인 마구마구에서 NC 레전드 카드로 출시가 되었었다. 물론 SK도 나왔다.[29] 물론 농담이고, 2017시즌 이후 은퇴했다.[30] 공교롭게도 아버지인 이호준 역시 프로 초창기 투수로 입단했고, 타자 전향 후 3루수로 뛴 적이 있다. 2대째 야구를 하는 선수의 경우, 아버지의 포지션을 닮아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내야수 출신인 김한수 감독.[31] 프로 통산 300홈런 이상 친 타자 중 유일하게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32] 대표적으로 36홈런을 쳤지만 동갑내기 국민타자에게 밀린 2003년.[33] 여기에는 김재현에게 맞은 홈런이 있다. 무려 20-20 클럽 가입포(...)허용투수[34] 병역비리 연루로 입대 후, 1년 만에 의병 전역했다.



[35] 이숭용무한도전에서 말한 적도 있고 무릎팍도사 출연한 야구인 해설가 허구연, 신이라 불리던 양준혁, 이종범도 말했었고 후에 출연한 후배 이대호와 친구 추신수도 방송에서 언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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