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09:43:52

김상현(1980)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흑역사/목록/야구
파일:Semi_protect1.png   로그인 후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김상현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수상 기록
2009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9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2009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2009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2009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2009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 ||
김상현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6번
구한성(1994~1997) 김상현(2000~2002.7.29) 방동민(2002.7.30~2005)
LG 트윈스 등번호 59번
방동민(2002~2002.7.29) 김상현(2002.7.30~2005) 김성대(2006~2008)
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재현(1994~2004) 김상현(2007~2008) 김광삼(2009)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최종인(2007) 김상현(2009~2009.4.19) 강철민(2009.4.20~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
강철민(2002~2009) 김상현(2009.4.20~2013.5.5) 신승현(2013.5.6~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백인식(2013~2013.5.5) 김상현(2013.5.6~2014) 조한욱(2015~2016)
KT 위즈 등번호 19번
이광근(2014) 김상현(2015~2016.7.13 ) 배제성(2018~ )
}}} ||

파일:external/bm.gametree.co.kr/e2psryie.jpg
신인 당시의 해태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0703100813441101_1.jpg
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LG 트윈스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news1249432459_166375_1_m.jpg
본인 최고 전성기였던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external/blogfiles13.naver.net/1391669587634_59_20140207073102.jpg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ddalsangsa.jpg
흑역사가 되어버린 kt wiz 시절.

파일:0003981431_001_20170424165316201.jpg
이름 김상현(金相賢 / Sang-hyeon Kim)
생년월일 1980년 11월 12일
국적 대한민국
신체 190cm, 95kg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대불대
포지션 3루수외야수, 1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2차지명 6라운드 (전체 42번, 해태)
소속팀 해태-KIA 타이거즈 (2000~2002)
LG 트윈스 (2002~2009)
KIA 타이거즈 (2009~2013)
SK 와이번스 (2013~2014)
kt wiz (2015~2016[2])
저니맨 외인구단 (2017~2018.05)
지도자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 (2018) [3]
응원가 LG 시절
동요 모두 다 뛰놀자[4]
KIA 시절
김추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5][6]
신해철 '안녕'[7][8]
이루마 'Kiss the Rain'[9][10]
싸이 '연예인'[11]
SK 시절
신해철 '안녕'[12]
kt 시절
신해철 '안녕'[13]
Ray Parker Jr. 'Ghostbusters'[14]
트니트니 '홈런'[15]

1. 소개2. 별명3. 스타일4. 프로 선수 시절
4.1. 해태~KIA 타이거즈 시절4.2. LG 트윈스 시절4.3.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컴백, 그리고 2009 시즌4.4. 2010 시즌4.5. 2011 시즌4.6. 2012 시즌4.7. 2013 시즌4.8. 2014 시즌4.9. 2015 시즌
4.9.1. 2015 시즌 후, FA
4.10. 2016 시즌
4.10.1. 자위행위 사건으로 임의탈퇴
4.11. 2017 시즌4.12. 2018 시즌
5. 도핑 의혹과 진실6. 기타7. 연도별 성적

1. 소개

해태/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SK 와이번스kt wiz외야수. 3루수로 데뷔하였으나 수비 미숙 및 주전 경쟁 등을 이유로 외야수로 전업하였다가 kt 시절엔 대부분 1루수를 맡았다. 이후 독립구단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8년 1월 말 감독이 되었다가 같은해 5월초에 개인사 문제로 팀을 퇴단했다. 현재는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겸 자영업자로 일하고 있다.

등번호는 KIA 타이거즈 입단 초기에는 46번 - LG 트윈스 이적 후 59번 - 상무 제대 후 7번 - 2009시즌 개막 후 26번 - KIA 타이거즈로 이적 후 SK로 팀을 옮긴 후에도 27번을 계속 사용하고[16][17] kt 위즈에서는 용덕한이 27번을 가져가면서 19번을 달게 되었다. 어쩌면 복선 이후 용덕한이 오정복, 홍성용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김상현의 번호는 19다.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팀에서는 떠났지만 2009 시즌 우승의 주역이자, 팀에 과시한 각별한 애정때문에 어느 팀을 가든 항상 응원하게 되는 선수. 하지만 LG 트윈스 팬들에게는 많은 기회를 받았음에도 그걸 자기 발로 차버리고, 나갈 때 LG를 간접 디스한 인터뷰 때문에 천하의 개쌍놈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도 희대의 루즈-루즈 트레이드인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때문에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을 듯. 그래도 파워 하나만큼은 KBO 리그 역대급에 들어갈 정도로 절륜하고, 2009 시즌의 어마어마한 임팩트 때문에 딱 공갈포스러운 통산 성적에 비해 팬덤들 사이에서 주목도는 높은 선수이다.

그러나 불미스럽고 치욕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의 야구인생의 모든 커리어가 멈춰서게 되어 버렸으며, 자신은 물론 팀에게도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여주며 커리어를 마감했다.

2. 별명

"곤조, 곤잘레스 김, 김곤조" - 라티뇨스런 얼굴 모양에서 기인. 반짝 성적으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약상현으로 불린다. 2009년 KIA로 이적한 뒤에는 "LG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이미지로 '김상사', 이후 기적과 같은 미라클 타이거즈를 이끌면서 '해결사'라는 이미지가 굳혀졌다. 다만 SK로 이적한 뒤 스포테인먼트 정신에 입각한 구단에서는 '해결사'라는 닉네임보다는 '김상사' 이미지를 더 밀고 가려는 듯하다.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약상현도 약하다면서 씹곤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전병머[18]라고 부른다. 지금은 묻혔지만 과거엔 싱하형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kt wiz 20인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하자 3사의 팀을 다 겪어본다는 이유로 "야구계의 언락폰"이라 불리고 있다(...)[19]

그리고 아래의 2016년 본인의 불미스러운 사건때문에 딸상사,김상딸,딸전드,딸상현,딸바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3. 스타일

파워가 상당히 좋아서 앉은 자세, 그러니까 자세가 무너져 무릎이 땅에 닿은 상태에서파워 무릎샷! 타격을 했는 데도 잠실 구장을 넘길 정도로 파워 하나만큼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좋은 타자다. 야구 방망이가 부러졌는데 공이 담장을 넘어가버린 적도 있었다. LG 트윈스 시절 최훈의 LG 트윈스 전지훈련 카툰을 보면 김상현의 배팅파워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하지만 장타력이 있는 우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좌투수 상대로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20]

또한 선구안도 그리 좋지는 않은 것이 단점.

수비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 3루수를 보던 시절에도 수비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외야로 전향한 후로도 마찬가지. 파이팅이 넘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안불안하다. 다만 어깨는 강한 편이어서 종종 인상적인 보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4. 프로 선수 시절

4.1. 해태~KIA 타이거즈 시절

군산상고 출신으로 원래는 좌타자 이진영과 동기동창이었다. 트레이드 전에 잠깐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허나 당시 키가 작다는 이유[21]로 인해 1년 유급하여 좌완투수 이승호, 이대수와 같이 졸업하게 되었고, 2000년 드래프트에서 2차 6순위(전체 42번)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파일:/image/076/2013/05/07/2013050801000605000045811_59_20130507235402.jpg
풋풋했던 해태 타이거즈 시절.귀엽다

입단 초기에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주로 대타 요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찾아오게 된다. 2002년 7월 29일, 잠실 LG전 9회초 무사 1루 상황. 기아는 1-3으로 뒤지고 있었고 마운드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마무리 우완투수 이상훈. 게임이 끝나겠거니 하는 와중에 김성한 감독은 대타로 김상현을 지목했고, 김상현은 좌완투수 이상훈의 초구를 공략,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겨버리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 경기 후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팀에 김상현의 영입을 요청, 마침 좌완 투수가 부족하고 3루에 정성훈이 있어 포지션이 중복된[22] KIA 타이거즈의 사정이 맞아떨어져 양팀은 좌완투수 방동민과 김상현을 맞교환하게 된다.[23]

당시 그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김상현은 상심한 나머지 밤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김성한 감독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제발 타이거즈에 남게 해주세요"라고 읍소했다(…).하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는 게 함정

4.2. LG 트윈스 시절

파일:/image/076/2013/05/07/2013050801000605000045812_59_20130507235402.jpg
LG 트윈스 시절.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LG 트윈스3루수로 뛰었다. 전반기에는 확실히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5월 22일 잠실 현대전에서 내야 뜬공을 놓치는 연예인야구급 수비 이젠 사고를 쳐서 진짜로 독립야구단에 들어가 연예인야구팀과 붙기도 했다 에러를 저질러서 다 이긴 경기를 날려먹는다. 이에 이광환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아직 관중들이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코치들을 시켜 펑고 연습을 시켰다.[24][25] 여튼 그렇게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팔이 부러져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004년에도 100게임 넘게 출장했지만, 파워에 비해 정교함이 없고 수비력도 좋지 못해 그저 그런 성적을 내는 데 그쳤다. 결국 2004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대.

상무 입대 후에는 2군리그를 초토화시키며 홈런왕을 차지하였다. LG로 복귀한 2007년에 시즌 초반 최다 2루타 기록은 물론 장타율 5위권 내에 드는 등 좋은 활약을 하며 LG팬들을 기대하게끔 했으나, 시즌 중반부터 꼴아박으며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본격 김재박이 싫어하는 김상현[26]이를 보고 김상현이 LG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네, 감독이 나쁘네등 김상현을 옹호하는 여론이 강했으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당시 김상현은 LG의 주전3루수였다. 지금이야 선수층이 나름 두터워진 LG이지만 저당시에는 이효봉의 연고지 팜 박살의 후유증으로 휘청거리던 때였고, 선수층은 2010년대의 한화나 KIA못지않게 얇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타격면에서는 포텐셜이 있었기에 좋던 싫던 김상현에게는 주전으로써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숱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타격은 공갈포였으며[27] 수비면에서도 전혀 개선점이 없었다[28]. 이런 선수를 어떤 감독이 좋아하겠는가?

2008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있다가 2009년에는 달고있던 번호 7번마저 뺏기고 말았다.(...) 이후 LG의 7번은 작은 이병규가 다시 가져갔다. 여기에 FA가 된 정성훈이 들어오면서 김상현은 사실상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주전 3루수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KIA로 간 이후에 인터뷰에서 LG에선 기회가 적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에 대한 LG 팬들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트레이드 후 4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안 좋아서 쥐갤에서 한 갤러는 정재복 사인을 받았음 받았지 X곤조 사인은 안 받는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정재복은 왜...

4.3.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컴백, 그리고 2009 시즌

파일:/image/109/2009/08/28/200908282155341101_1.jpg
2009년 8월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 첫 30홈런을 기록하고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2009년 4월 19일, 두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LG 트윈스에서 투수를 얻기 위해 사이버투수 강철민을 받아오는 대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 박기남과 묶여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다시 보내진 것. 친정팀 기아로 오자마자 5번 3루수로[29] 붙박이 출장하며 심적 안정을 찾아서인지 좋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수비야 뭐 실책 하나 하면 타점 하나 올리면 된다는 마인드로 나서고 있으니까... 결국 엘빠 만화가인 최훈이 (LG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별명을 추가시켰다.[30]

특히 4월 26일 만루홈런, 28일 결승타 30일 만루홈런으로 그리고 5월 7일 또 만루홈런을 쳐서 야구팬들을 집중시켰다. 시즌 1,2,3호 홈런이 모두 만루 홈런이라 그 충격은 매우 컸고 KIA팬들은 이용규에 이어 다시 한번 사랑해요 LG를 외치고 있다(...)[31] 그 이후 부진(?)하다가 계속 홈런을 날리며 5월 15일에 5, 6호 홈런을 날렸다. 한 시즌 만루홈런 4개로 박재홍이 1999년에 기록했던 기록과 타이를 기록했다.

5월 30일에서야 규정 타석을 살짝 넘겼음에도 클리프 브룸바, 로베르토 페타지니에 이어 타점 3위에 랭크되었다. 최희섭의 우산 효과도 있지만, 최희섭을 거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자신의 각오가 큰 위력을 발휘한 셈. 시즌 후반부에는 오히려 최희섭이 김상현의 덕을 보기도 했다. 말 그대로 CK포가 서로를 받쳐준 것. 그 후로도 침체기에 빠진 최희섭을 대신해서 팀을 짊어지며 잘 나갔고, 이 때부터 한대화급의 해결사 이미지를 굳혀갔다.

그리고 8월달 우주의 기운이 김상현에게 내려왔다 8월의 김상현은 월간 최다홈런기록을 가지고있다. 타이를 이루는선수는 이승엽

8월 8일, SK전에서 3연타석 홈런으로 5타점을 올리며 홈런 순위 공동 2위, 타점 순위 단독 1위에 올랐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 투런 홈런을 쏘아올리며 브룸바와 홈런 공동 1위 등극!!

8월 21일, SK전에서 홈런 2방을 꽂아넣으며 드디어 홈런 단독 1위에 오르게 되었다.

8월 26일, 한화 전에서 2타점 적시타를 추가, 99경기만에 100타점을 넘겼고 쓰리런 장외 홈런을 날리며 홈런 레이스에서 선두를 굳게 지켜나갔다.

8월 28일, 두산전에서 홈런 2방을 치면서 드디어 30홈런을 달성했다!

9월 18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5호 홈런을 때리며 해태-KIA 국내선수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홍현우의 34개.[32]

수비도 가끔 에러가 터지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평가. 하지만 그래도 09시즌 에러 1위다.(...)[33]

KIA 타이거즈 2009년 우승의 일등공신. 압도적인 표 차이[34]로 2009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되었으며, 역시 압도적인 표 차이로 KBO 골든글러브도 차지하였다.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된 선수가 MVP를 차지한 건 역대 최초.

2009년 연봉이 5,400만 원이었는데 연말에 벌어들인 상금만 최소 6천만 원이 넘어간다고 한다. 뭐야 이거(...)

2009시즌의 최종 성적은 121경기 출전 448타수 141안타로 타율 0.315(리그 7위), 홈런 36(리그 1위), 타점 127(리그 1위), OPS 1.011(리그 5위)를 기록. 해태 시절 홍현우가 기록한 국내 선수 최다 홈런, 최다 타점 기록인 34홈런과 111타점을 넘어섰다. 팀 내에서는 타율도 1위다. 장타율(0.632)와 득점권 타율(0.403)이 특히 높지만, 출루율과 비득점권 타율은 타율/OPS에 비하면 의외로 낮은 편. 그래서 4번 타자보다는 한방을 쳐줄 수 있는 5번 타자감으로 더 적당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4.4. 2010 시즌

엄청난 연봉 인상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지만 무릎 통증으로 인해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사실 LG 트윈스에 있을 때부터 무릎 통증이 조금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난 시즌 KIA로 트레이드되고 나서부터 풀타임을 뛰면서 피로가 급격히 누적된데다 하필이면 홈구장이 국내 야구장 중에선 소말리아급이라는 무등야구장이라...

결국 무릎 통증을 안고 뛰며 4월 26일까지 타율 .198 5홈런 18타점 25삼진을 기록하며 부진하다가 2군으로 강등, 무릎 수술을 받았다.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후 지명타자로 뛰며 홈런 3개를 추가했는데, 6월 25일 잠실 두산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발목을 접질려 또 부상을 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패중이던 팀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며 해태 시절을 포함하여 최다연패인 16연패를 당했고, 결국 또 한 달이 지나서야 복귀했다.

8월에는 홈런 10개를 몰아치며 해결사 본능을 발휘했으나, 그 이후 다시 부진하면서 최희섭의 별명 중 하나인 농부에 빗대어 어부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15 21홈런 53타점. 전형적인 공갈포 스탯을 찍었다. 세부 스탯은 더 안습이어서, 79경기 출장해서 볼넷을 33개 얻었는데 반해 삼진은 85개나 당했고, 그러다 보니 출루율도 막장이어서 3할을 가까스로 넘기는 정도에 불과했다.[35] 그나마 위안거리로 생각되던 장타율도 딱히 나은 건 아니어서 4할 5푼대를 기록하였다. 이러다 보니 장타력은 예나 지금이나 인정하지만 2009년의 활약이 단지 플루크가 아니냐며 까도 할 말이 없는 모양새였다.

시즌 후 수비 부담을 덜기 위해 코치진에서 외야 전향을 시켰다. 본인은 3루를 고집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범호가 입단하게 되면서 11시즌부터는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이해 기록한 타율 .215 21홈런은 역대 최저타율로 20홈런을 넘긴것이다.

4.5. 2011 시즌

헬을 예상했던 외야수비는 그럭저럭 해주고 있지만 가끔씩 머리 너머로 날아가는 타구가 나올 때마다 TV앞이나 야구장에 있는 팬들의 심장을 철렁거리게 하는 똥줄수비를 보여줬다. 그래도 전반적인 평가는 괜찮은 편. 특히 어깨가 원래 강한 편이라 외야 전향 후에도 강견을 보여주었다.

4월 말까지 타율 0.164로 극심한 타격부진을 겪으면서 LG 시절 모습으로 돌아온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수비요정'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4월 30일 광주 롯데전에서 배장호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냈다. 방망이가 부활할 것인가? 5월 4일 목동 넥센전에서 금민철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뽑아냈다.

그리고 잠깐 방망이가 주춤했으나, 6월 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점 쐐기 홈런, 6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4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의 맹활약을 했다. 게다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성 안타와 박재홍의 홈런성 타구를 온몸을 던져 잡는 등 수비에서도 맹활약했다. 타율은 0.226으로 굉장히 저조하나 타점은 28점으로 오히려 최희섭보다 높으며 홈런도 6개나 되는 등 천천히 타격감이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병신같은 삼진만 안 당하면 된다 6월 23일에는 KIA킬러김광현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 결승타, 그리고 이어진 타석에서 연타석 쓰리런까지 터트리면서 혼자 6타점을 쓸어담아 기아팬들을 다시 설레게 하였다. 6월 28일 송승준을 상대로 역전 2타점 2루타를 날렸으며 6월 29일 라이언 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6월 말의 기록은 0.235 9홈런 46타점 삼진 64 안타 54! 타점 수랑 안타 수 차이가 8개... 변태 같은 스탯을 찍긴 했지만 확실히 방망이가 살아났다.

7월 10일 LG전에서 선취 타점과 솔로 홈런을 때려내면서 개인 통산 100홈런 기록을 세웠다.

헌데 7월 29일 넥센과의 경기 도중 김상수의 142km/h 포심을 얼굴에 맞아 앰뷸런스에 실려갔는데, 왼쪽 광대뼈 부상이라고 한다.[36] 남은 잔여 경기를 생각할 때 거의 시즌 아웃에 가까웠다.

그런데 괴물같은 회복력으로 8월 25일 1군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27일 SK전에서 이영욱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이후로는 장타는 줄었지만 17경기 연속 출루, 4경기 연속 타점 등을 기록하며 좋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55 15홈런 64타점.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5안타 3볼넷 타율 .385,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여담으로 2011 한국 최고의 스포츠 사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사진이 영...[37]

4.6. 2012 시즌

파일:/image/076/2012/03/21/2012032101001538400128291_0_20120321195815.jpg

4월 7일 개막전에서 스윙을 하다 왼쪽 손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교체. 왼쪽 손바닥 골절로 3달 결장 판정을 받았다.(...) 이범호도 없고 김상현도 없고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이후 계속 재활에만 매진하였다. 본인은 타격 빼고는 모두 OK라고 한다.

6월 22일부터 2군에 출전하며 타격감을 찾아갔다. 26일 2군에서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6월 말 팀이 다시 상승세를 타는 상황이라, 팬들은 득점권에 강한 김상현의 복귀만을 기다렸다.

7월 12일 신종길 대신 1군에 등록되었으며, 예상보다 일찍 복귀를 했기 때문에 우선은 대타로 출장을 하게되며 몸 상태를 살펴보면서 선발 출장을 고려한다고 한다.

7월 18일 무등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팀이 0:4로 앞선 2회말 첫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비 때문에 경기취소가 될 우려가 있었지만 5회초가 끝나며 정식 경기로 인정이 되면서 김첨지 신세를 면했다 활약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팀은 4:7로 강우콜드승.

7월 19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팀이 0:4로 리드하던 5회말 우익수 쪽 펜스 맞는 2루타를 때려내며 장타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최희섭의 2점 쐐기 홈런까지 더해지며 팀은 0:6으로 승리. 후반기 CK포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다.

7월 24일 무등야구장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회말 좌중간을 가르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으나 팀은 5:1로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더불어 이 날 기아 타선에서 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김상현과 최희섭, CK포 둘뿐. 대포가 작동하니까 이번엔 소총이 말썽이다

이후 7월 29일 홈런을 기록하였고, 8월 들어 삽질을 하다가 8월 8일 우익수 수비 도중 펜스에 부딪히며 또 무릎 부상을 당하였다.(...) 이래저래 유리몸 때문에 고생이 많은 상황.
8월 14일 수술에 들어갔다. 재활은 6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18일부터 2군에서 다시 몸을 가다듬기 시작. 2군 복귀 첫 경기만에 멀티히트 유리멘탈인 어떤 선수들과는 다르게 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팬들은 김상현의 복귀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9월 21일 오랜만에 1군 선발 출장. 지명타자로 출장하였으며, 6회말 1타점 적시 2루타를 쳐내며 팀의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적절히 끊어주었다.

10월 1일 군산 월명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팀이 0:4로 크게 이기던 2회말 2사 만루에서 신인 투수 이경우를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최종 성적은 32경기 출전 타율 .259 4홈런 17타점 17득점. 그놈의 부상이 원수다.

4.7. 2013 시즌

파일:external/i41.tinypic.com/17d5qu.jpg
선동열에게 전해,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5월 7일 트레이드 후 SK 소속으로 첫 출장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그러나 그 후...

시즌 중 2:2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상현/2013년에서.

4.8. 2014 시즌

파일:/image/076/2014/04/02/2014040201000380800019631_59_20140402183802.jpg

2월 16일 스프링캠프 기간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때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고 팀은 요미우리와 3-3으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2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쳐내며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

3월 30일 넥센전에서는 먼거리를 달려와 파울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이후 계속 2군에만 있다가 4월 24일 1군에 복귀하였으며 4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으로 오랜만에 좋은 활약을 하였다.

5월 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9회말 대타로 출장해서 김승회를 상대로 마수걸이 투런홈런을 때리며 경기를 1점차까지 좁혀놓았다. 그러나 뒷타자들이 맥없이 물러나며 경기는 패배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계속 부진했으며 5월 8일 이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1군으로 콜업되지 못하는 중. 본인이 내년 시즌을 위해 콜업을 거부했다고 한다.

7월쯤 콜업,홈런도 치고 4년만에 3루타도 치는 등 올라온 뒤 2경기 까지는 잘 하고 있다.

9월 7일 추석 원정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치는등, 4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이날의 MVP로 선정되었다.

만루홈런을 쳤다라는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이날 김상현의 비거리는 아직까지도 힘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비거리였다. 어지간한 구장이면 장외홈런도 나올법한타구이고 잠실이어서 상단 광고판을 맞췄다. 그 구장도넓고 외야관중석도 넓은 잠실구장에서 모두가 뒤를봐야만 타구의 낙하지점을 알수있는타구를 보냈다 안경현 해설위원은 우즈이후로 이런홈런은 처음본다라고 평가했다. 영상

그러나 이후에는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42경기 87타석 80타수 21안타 5홈런 20타점 8득점 1도루 6사사구 타율 0.262.

11월 28일, kt의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2009년 당시 KIA의 감독이였던 조범현과 타격코치 황병일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김상현은 세 개의 통신사 에서 선수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것도 수도권(서울/경기/인천)팀까지 선수생활한거 한몫을 한 셈이지. 그래서 이런 드립도 나왔다. 댓글 참조통신사 저니맨 그런데, 무려 2명이 더 늘어났다.[38] 이대형 얘기밖에 없는데요?

kt 이적후 "야구장 펜스만 보면 (홈런을 쳐서) 넘기고 싶다."라는 포부를 드러냈다.

4.9. 2015 시즌

조범현 감독이 기대했던 kt wiz의 중심타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홈런도 무난하게 넘기며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하게 하는 모습. 빠던도 많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실력발휘를 하면서 kt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중.

해당 항목으로.

4.9.1. 2015 시즌 후, FA

시즌 후 FA 자격을 얻게 되며 kt 구단 창단 첫 FA 선수가 되었다. 우선 협상 마감일이었던 11월 28일 저녁 4년 17억원에 계약했다.더 퍼줬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중론.[39]

그러나 정작 본인은 위 계약에 구단에 매우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FA거품시대에 비교적 적은 금액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모습에 팬들의 찬사가 이어진 건 당연. “17억도 큰 돈인데…” kt 김상현의 울림인성 클라스 몇십억씩 받고 드러누우신 분들은 반성하셔야... 그돈으로 도박하신 분들 께서는 더더욱 반성하셔야... 결국 본인도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4.10. 2016 시즌

시즌 전, 조범현 감독이 40홈런은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작년 박경수 20홈런 예언이 적중했는데 올해는 과연...?이때는 아무도 다른 방망이를 불태울 줄은 몰랐다.

3월 8일,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당겨치고 밀어치는 연타석 홈런으로 3타점을 올렸으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미스터 스프링]‘홈런 2방’ 김상현 “더 일찍 생각 바꾸지 못한 것 후회”

4월 2일, 친정팀 SK와의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1사 만루의 위기상황에서 박재상의 평범한 병살성 타구를 포구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어처구니 없이 뒤로 드르렁 벌러덩 넘어지면서 끝내기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야구 관련 각종 사이트에서는 히 드르렁 더 볼과 같은 온갖 관련 드립들이 터지고 있다. 송중기 1킬 추가 경기 종료 후 한동안 일어서지 못한 채 발을 매만져서 부상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부상은 아닌 듯 싶다. 야갤에서는 쪽팔려서 아픈 척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무릎 통증으로 다음 날 경기에서 빠졌으며 추후 엔트리 제외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부상은 맞는 듯했으나 다행히도 엔트리 제외 없이 금방 복귀했고, 4월 10일 수원 KIA전에서 2회 윤석민, 6회 홍건희를 상대로 투런포 두 개를 쏘아올리며 시즌 1호 2호 홈런을 신고했다. 특히 2호 홈런은 2015년 박병호에 이어 하이트펍을 넘겨버리는 두 번째 홈런으로 비거리 145m로 기록되면서 수원야구장에서의 가장 큰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제 통산 150홈런까지 한 개 남았다.

그리고 12일 넥센전에서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40번째 150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팀은 이날 넥센 선발 신재영의 호투에 2-5로 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위의 4월 10일 경기 이후에는 4월동안 홈런을 단 2개 추가하는데 그쳤고 극심한 타격 부진까지 찾아와 5월 초반을 기준으로 타율이 딱 2할대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져있다. 이후에도 살아날듯 하다가 찬물을 끼얹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팬들은 부진한테도 영웅 풀스윙을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작년보다 훨씬 페이스가 떨어지며 부진하던 중에 허리 통증으로 6월 2일 경기전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일단 사흘정도 쉰 뒤에 익산으로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말소 전까지 성적은 타율 0.235, 9홈런, 26타점으로 작년보다 훨씬 뒤쩔어진 성적을 기록한 상태였다.

이후 6월 17일에 복귀, 이날 경기서 4회 대타로 나와 병살타를 기록하며 화려한 복귀신고를 알렸다(...)

복귀 이후에도 타격감은 계속 바닥이었고 6월 26일부터 7번 타자로 강등되었다.

7월 12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3회까지 소화한 후, 김연훈과 교체되었다. [40]

7월 13일 밑에 나와있는 사건 하나로 인해 구단에서 임의탈퇴 처리하였다. 야구인생의 커리어가 사실상 끝났다. 나이도 많을 뿐더러 실력도 예전만 못하기에 사실상 강제은퇴나 마찬가지다.

4.10.1. 자위행위 사건으로 임의탈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정 사건사고 문서는 유머성 서술과 비하적인 표현이 제한되며, 사실관계를 작성할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야 합니다.

파일:external/i.imgbox.com/NilDpRFz.jpg
얼굴이...
파일:zzzz.jpg

2016년 7월 12일, 한 야구선수가 익산에서 여대생을 보고 차안에서 자위행위를 하다[41] 신고를 받고 조사를 받은 사실이 기사를 통해 전해졌다. 6월 16일에 벌어진 사건으로 익산에 kt의 2군 홈구장인 익산 야구장이 있어서 kt 선수 중 한 명으로 추측되었고, 이후 기사로 김상현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팀명의 뜻이 새롭게 알려졌다. ㅈㅏ 위즈 경찰 조사에서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런 짓을 저질렀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내와 자식까지 있는데[42] 후폭풍이 꽤나 거세게 일 듯하다.

kt가 그간 장성우, 오정복, 장시환 등 소속 선수들의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철저한 교육을 통해 재발방지를 하겠다고 했음에도 계속해서 사건이 터짐으로써 구단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으며 조범현 감독은 큰 실망감을 드러내며 기자와의 전화통화로 김상현이 임의탈퇴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결국 임의탈퇴 중징계를 받았다.# 김상현은 36세로 운동 선수치고는 상당한 고령이며 차마 말할 수 없는 사건 특성상 사실상 불명예 은퇴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임의탈퇴는 잔여연봉이 지급되지 않는다.

임의탈퇴 조치는 장성우 사태의 미흡한 처리로 비난을 받은 kt 수뇌부의 격노의 철퇴로 보인다. 이후 비슷한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구단자체 인성교육 등 부단한 노력을 했으나 팀 내 모범을 보이고 후배를 이끌어야 할 베테랑 타자인 김상현이 말하기도 부끄러운 사건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반면교사로 김상현에게 임의탈퇴라는 중징계가 내려지게 된 것이다. 그도 그렇거니와 본인의 입장에서도 사건이 터진 이상 팬들 보기 쪽팔려서 경기장에 서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임의탈퇴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장성우의 출장정지 징계에 비교를 하며 김상현이 저지른 일에 비해 징계수준이 너무 높다는 평이 있다. 거기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무죄[43]로 끝났기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김상현 본인은 재판까지 가기를 바라는 실정. 하지만 법원에서 다뤄지지 않으면서 김상현은 현재 유죄가 아니다. 범죄가 성립되지 않은 것.

박동희 기자에 따르면 kt 프런트는 오정복 건까지는 자진신고 시 감면해준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한다.

후일 제재금으로 벌금 500만원이 내려졌다. 팬들은 이놈에 비해 너무 징계가 크다며 복귀시키자는 말이 많지만[44],향후 복귀는 아직 불분명.

그로부터 3년 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소속의 모 선수가 인천 로데오거리에서 비슷한 사건을 저질러 농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4.11. 2017 시즌

최익성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유창식과 함께 독립구단인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뛰고 있음이 밝혀졌다.

4월 24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연천 미라클과의 개막전에서 4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4안타 1타점 4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그 뒤로도 다수의 홈런을 치는 등 한국독립야구리그를 폭격중.독립야구리그가 단 두 팀 만으로 파행 운영 중이라는 점은 넘어가자. 점점 임의탈퇴 해제 기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7월 8일 기사를 통해 김진욱 kt감독이 "여론의 반응도 살펴봐야 하겠지만, 1년의 시간이면 충분한 반성의 기간이 되지 않을까"라고 언급하며 김상현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김상현은 500만원의 벌금 및 임의탈퇴 징계 외에도 리틀야구단에 재능기부를 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찬반이 엇갈리지만, 도박등도 야구를 하는데 김상현은 못할게 뭐있냐는 반응이 다수다.네이버 댓글 상황다음 댓글 상황

김상현 본인은 7월 9일 기사를 통해 "내가 풀어야 할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한다. 감독님께 그 짐을 떠넘기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내보이는 중. 그는 "(김감독이 본인을)생각해주셨다는 자체가 감사하다. 팀에 민폐를 끼친 것 아닌가. 복귀 여부는 전적으로 구단의 판단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7월 14일, kt wiz는 김상현의 임의탈퇴를 해제하고 웨이버 공시를 통해 김상현을 방출했다. 현재 kt가 젊은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리빌딩중인데다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히어로즈의 강타자인 윤석민을 영입했기기 때문에 김상현의 자리가 없어서 이별을 선택한듯. 다행히도 FA 잔여연봉은 받는다고 한다. 이후 저니맨 외인구단의 감독인 최익성의 인터뷰에 언급된바에 따르면 김상현은 kt구단 관계자랑 만나 좋은 얘기를 나눈것으로 보였으나, 방출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최익성 감독과 통화하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7월 25일, 결국 웨이버 공시기간동안 그를 찾는 팀이 없어서 올해에는 KBO 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 1년간 쉰 노장인데다 kt와 2018년까지 FA 계약이 된 상태라 그를 대려갈 구단이 올해 남은 연봉 약 1억원 & 내년 연봉 2억원+옵션 1억원도 승계해야 하는데 금전적 부담이 있어 프로팀들이 눈을 돌린듯. 내년에 이 제한이 풀리더라도 다른팀들이 관심을 보일만큼 김상현의 몸상태가 베스트일지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앞날이 어두운 상황에서 12월 19일 언론보도를 통해서 2018년부터 저니맨 선수 겸 2대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4.12. 2018 시즌

이후 2018년 5월 16일자 엠스플뉴스 기사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약 2주전, 그러니까 5월 초경에 합의하에 팀을 탈퇴했다고 한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열악한 독립구단의 환경과 함께 개인사가 맞몰려 떠나게 됐다고. 후임으로는 위재영 인스트럭터가 대행을 맡게됐다.

엠팍에서의 언급에 따르면 은퇴 이후 인천에 거주하고 있으며[45] 인천 신흥동에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차렸다고 한다. 이후 한국 선수들로 구성된 호주 프로야구 리그 소속 질롱 코리아에 합류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합류하지 않았다. 요기

5. 도핑 의혹과 진실

일부 야구 팬들은 김상현도 심정수와 마찬가지로 약물 사용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평균 2할 4푼대의 타율에 8홈런씩 치던 타자가 갑자기 3할 1푼대의 타율에 36홈런을 때려냈고 그 직후 다시 타격 성적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까지 달고 살고 있다. 2009년 KBO가 약물 검사를 실시한 바 있고, 심정수와 더불어 약물 의혹이 제기되는 선수 중 한 명. 게다가 심정수는 본격적으로 홈런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도 꾸준히 2~30홈런을 쳤었지만, 김상현은 그 전까지 위에서 적었듯이 2할 4푼대의 타율에 가끔씩 뜬금포만 기록했을 뿐 1군에서 두 자릿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던 만년 유망주에 불과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일단 파워는 LG 시절부터 인정받아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타격 폼이 무너지거나 배트가 부러졌음에도 잠실 담장을 넘긴 적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좋았으며, 상무 시절에 홈런왕을 차지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LG 팬들도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근데 하필 제대했는데 코치가 김용달[46] 2009년 KIA에서의 무시무시한 성적은 원래 가지고 있던 포텐에 고향팀 복귀[47] + 3루수 주전 확보[48]를 통한 심리적 안정 등의 효과와[49] 최희섭과의 핵우산 시너지 등으로 나오게 된 성적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시즌이 타고투저 양상을 띄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사항. 그리고 타격폼을 봐도 알겠지만 애초에 무릎에 무리가 엄청나게 가는 타격폼이다. 김상현이 홈런 치는 장면을 보면 무릎을 굽히면서 하체에 거의 모든 힘을 싣는 것이 보인다.

또 2009년 이후 부진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렇게 부진했던 2010년 ~ 2012년에도 찍히면 넘어가는 장타력은 여전했다.[50] 2009년 이후 부진한 이유는 타 팀에서 김상현의 약점을 분석하여 대처하기 시작했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 2011시즌 이범호의 영입으로 인한 수비 위치 변경 등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같이 중심 타자 역할을 해줘야 할 최희섭매년 땡깡부리느라 세트로 망해버린 게 한 몫 했다. 그리고 sk 시절에도 잠실구장 장외 홈런이 될 뻔한 비거리를 날리는 거 보면 힘 하나는 박병호와 더불어 현역 최고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KT 위즈 첫 해인 2015년 8월 말 현재 타율 0.272 22홈런 68타점을 기록 중인데 중심 타자로서의 클라스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2009년이 약물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플루크 시즌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댄 블랙 등 KT의 외국인 타자들의 활약이 더 유명하지만 팀 내 타격 지표를 보면 김상현이 1위다.

2015년 8월 현재 김상현의 통산 순장타율(장타율-타율)은 0.190인데 심재학 김성한 홍현우 김성래 한대화보다 높다. 정확한 타격이 문제지 힘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이 들어맞는 기록이다.

또한 선수 말년시절인 2016년도에는 수원구장에서 무려 비거리가 145m인 중앙으로 넘기는 홈런을 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제대로 된 물증도 없이 약물 복용자로 확신하고 까대는 건 곤란하다. 원래 갑자기 잘 하면 상대 팀에서 표적으로 검사를 요구하기 마련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도핑 테스트에서 문제된 적이 없다.

사실은 이통사를 바꿔가면서 분납포를 친다 카더라[51]

애초에 약빨았으면 부작용때문에 딸상사되기도 힘들다

6. 기타

'빠던이 굉장히 맛깔스럽기로(?) 유명하다.다른 빠따도 너무 잘 던져서 문제 배트 플립은 보통 투수나 상대팀을 자극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상대팀 팬들은 불쾌해 하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상현의 배트플립같은 경우는 너무 자연스럽고 맛깔스러워서 타격의 연결동작으로 보인다고 하는 의견도 있어 선호하는 팬도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싫어하는 팬 역시 굉장히 많다. 설마 배트를 안던지는거 아닌가 물론 배트플립 자체가 상대팀에 대한 실례로 보일 수도 있고 배트가 날아가다가 다른 선수가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맛깔스럽다고 다 좋은 행동은 아니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파일:김상현빠던.gif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타이거즈 16 20 .150 3 0 0 1 4 2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LG 트윈스 31 32 .313 10 0 1 1 6 7 0 10 .469 .476
2003 55 182 .269 49 9 1 7 28 24 7 23 .445 .346
2004 100 277 .242 67 10 2 9 35 37 7 35 .390 .326
2005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군복무
2006
2007 121 378 .235 89 27 0 7 41 44 6 43 .362 .311
2008 75 214 .243 52 9 2 8 18 28 2 22 .416 .31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KIA 타이거즈 121 448 .315 141 30 2 36
(1위)
127
(1위)
77 7 47 .632
(1위)
.379
2010 79 288 .215 62 5 1 21 53 44 3 41 .458 .312
2011 101 357 .255 91 15 0 14 64 38 8 46 .415 .338
2012 32 116 .259 30 9 0 4 17 17 1 9 .440 .31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SK 와이번스 113 322 .236 76 17 0 7 37 39 8 33 .354 .304
2014 42 80 .263 21 3 1 5 20 8 1 6 .513 .31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kt wiz 134 475 .280 133 20 0 27 88 71 4 58 .493 .354
2016 62 222 .225 50 5 0 11 32 29 0 22 .396 .293
통산 1082 3411 .256 874 159 10 158 570 465 54 373 .448 .33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KBO_League.svg.png
KBO 리그 역대 홈런 1위
역대 타율 1위 | 역대 최다안타 1위 | 역대 홈런 1위 | 역대 타점 1위 | 역대 득점 1위 | 역대 도루 1위 | 역대 출루율 1위 | 역대 장타율 1위 | 역대 승리타점 1위
{{{#!folding 【펼치기·접기】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px; margin-top:-1px; margin-bottom:-1px"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김봉연
해태 / 22개
이만수
삼성 / 27개
이만수
삼성 / 23개
김성한
해태 / 22개
이만수
삼성 / 22개
1986년 1987 1988년 1989년 1990년
김봉연
해태 / 21개
김성래
삼성 / 22개
김성한
해태 / 30개
김성한
해태 / 26개
장종훈
빙그레 / 28개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장종훈
빙그레 / 35개
장종훈
빙그레 / 41개
김성래
삼성 / 28개
김기태
쌍방울 / 25개
김상호
OB / 25개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박재홍
현대 / 30개
이승엽
삼성 / 32개
타이론 우즈
OB / 42개
이승엽
삼성 / 54개
박경완
현대 / 40개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이승엽
삼성 / 39개
이승엽
삼성 / 47개
이승엽
삼성 / 56개
박경완
SK / 34개
래리 서튼
현대 / 35개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이대호
롯데 / 26개
심정수
삼성 / 31개
김태균
한화 / 31개
김상현
KIA / 36개
이대호
롯데 / 44개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최형우
삼성 / 30개
박병호
넥센 / 31개
박병호
넥센 / 37개
박병호
넥센 / 52개
박병호
넥센 / 53개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에릭 테임즈
NC / 40개
최정
SK / 40개
최정
SK / 46개
김재환*
두산 / 44개
}}}}}} ||


[1] 원래 3루와 가끔 1루를 보는 코너 내야수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외야수로 뛰다 2015년 kt로 오면서 장성호와 같이 1루수로 뛰게 할 계획이었고 본인이 1루는 부담을 느낀다고 했지만 팀에 1루 거포가 마땅치 않아 1루수로도 종종 출장하고 있다. 댄 블랙이 있을 때는 본래대로 좌익수지명타자 자리에 서기도 한다.[2] 공연음란 혐의로 불구속 입건 후 이에 대한 팀 자체 징계안에 따른 임의탈퇴[3] 프로야구 초창기 MBC 청룡 백인천의 경우처럼 선수 겸 감독이다.[4] 날려라 날려라 김상현~ (x4) 이 응원가는 김재현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5] 타이거즈 김상현~ 기아의 김상현~ 날려라 안타 김상현~ (안타!)[6] 이 응원가는 트레이드로 기아에 온 직후 바로 제작된 응원가로, 외모가 까만 것도 있고, 다시 고향 팀에 돌아온 게 마치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같다고 붙여진 응원가였다. 그래서 별명도 김상사 획득! 하지만 호응도가 망..이라서 몇달 못 쓰고 폐지했다. 현재는 딸상사로 응용..[7] KIA의 해결사 김상현 오오오 (x4)[8] 이 응원가는 추후 이적한 모든 팀에서 응원가로 쓰인다.그냥 앞의 팀명만 바꾸고 동작도 거의 똑같다. 복붙[9] 기아의 해결사~ 기아의 김상현~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기아의 해결사~ 기아의 김상현~ 승리를 위하여 워어어어[10] 여담으로 SK 와이번스의 팀 응원가 '투혼의 와이번스'와 같은 곡이다[11] 기아의 해결사 김상현~ 시원한 한 방 쳐주세요~ 언제나 우린~ 김상현 응원해요~ 워우워~[12] SK 김상현 오오오 오오오 (x4)[13] kt wiz의 김상현 오오오 (x4)[14] kt 위즈 해결사 김상현 kt 위즈 김상현 (x4)[15] kt 김상현 워워워~ x4 홈런~ 홈런~ 홈런~ 김상현 홈런~ 홈런~ 홈런~ 홈런~ 김상현 홈런 홈런! 여담으로 이 노래는 김상현의 아들이 아빠 응원가로 써달라고 특별히 부탁한 노래라고 한다. 효자네 효자야[16] 참고로 타이거즈에서 27번은 김봉연전직 선수 이모씨가 사용했던 번호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유명한 번호.[17] SK로 이적하면서 본래 27번을 쓰던 우완투수 백인식이 김상현에게 번호를 양보하고 본인은 송은범의 46번을 가져갔다. 그리고 백인식 이전 27번 번호의 주인은 인생의 승리자.[18] 라도 [19] 비슷한 사례로 KBO 대표 대두 이진영윤요섭이 있다(SK -> LG -> KT).친구따라 강남간다[20] 통산 vs우투 0.266 60홈런, vs좌투 0.224 21홈런. 커리어하이인 2009시즌의 기록은 더 심해서 vs.우투 0.354 32홈런, vs.좌투 0.220 4홈런. 이를 반영했는지 프로야구매니저에서 09 김상현의 교타력을 보면(노말카드 기준) 표면적인 교타력은 66이지만 히든 능력치로 보면 우교타 85, 좌교타 48이라는 아름다운 능력치를 받았다.[21]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고교 졸업 당시까지만 해도 키도 작고 파워도 약한 편이었는데, 프로에 입단하면서 급성장했다고 한다.[22] 하지만 정성훈은 시즌 종료 후 박재홍을 얻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로 보내진다. 대신 3루를 맡게 된 선수는 바로 이현곤.[23] 문제는 김성근방동민의 부상을 숨겼다는 점. 때문에 이후 김성한이 야구계 선배가 이럴 수 있냐고 화를 냈다. 통산 1패뿐인 방동민은 2006 시즌 후 KIA에서 방출당했다.[24] 이 장면은 당시 지상파 스포츠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다. 관중들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게 인상적.[25] 이 점에 대해서는 이광환 감독이 김성근 감독 재임시절 데려온 김상현을 좋지 않게 봐서 그랬다는 음모론도 존재하긴 한다. 김성근 감독과 이광환 감독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기 때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모론이니 섣불리 믿는 건 위험하다.[26] 자세히 보면 조인성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김상현과는 하지 않고 들어간다.[27] 그나마 많이 친 것도 아니었지만[28] 더군다나 김재박은 역대 최고의 유격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박진만을 키워낸 인물이다[29] 중간에 한 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적이 있다.[30] 이 별명은 최훈이 소개하기 며칠 전부터 야구 사이트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했다.[31] 2005년 KIA는 LG에 투수 이원식과 소소경을 주고 이용규를 받았다. 2004년 엘지에서 52경기 출장, 0.129의 저조한 타율을 보여주던 이용규는 기아에서의 첫 시즌인 2005년부터 30도루를 찍더니 2006년에는 타율 3위-.318 도루 38개의 몬스터 시즌을 보여주기도... 이후에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주전급 활약으로 전국구 스타로도 발돋움 했다.[32]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하면 트레이시 샌더스의 40개다.[33] 김상현뿐만이 아니라 내야수의 1루 송구 에러가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수비섭최희섭의 공이 크다. 그의 신체 사이즈와 포구 실력은 확실히 메이저리거 급이다.[34] 김상현 79표, 김현수 7표, 박용택 3표, 김광현 1표[35]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거냐면 이 해 깝깝하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인 이대형이 기록한 출루율이 0.333이다.(...)[36] 이와 같은 부상을 당한 선수들로는 이종범, 심정수, 조성환 등이 있다. 조성환의 경우 39일 만에 경기에 출장했고, 심정수는 약 2달이 걸렸다.[37] 제목은 '얼굴없는 강타자'로, 7월 13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김상현이 두산 투수였던 페르난도 니에베의 강속구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는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어 선정되었다고 한다. 흠좀무. 근데 다들 이종범인 줄 알더라[38] 2015년 중간에 윤요섭이 온데다가, 최근 이진영마저 이 곳에 와버리는 바람에 유일한 순수 통신사 저니맨은 윤요섭이지만, 그래도 순수는 아니지만 김상현과 이진영도 통신사 저니맨이다.[39] 계약 자체도 옵션이 있는 데다가 세부옵션도 공개되지 않았다.[40] 7월 12일 마이데일리 기사에 따르면 실명이 공개되자 마자라고 한다.[41] 운전석 차문을 열고 여대생을 뒤따라가며 자위행위를 했다고 한다.[42] 하필 당시 운전하던 차도 장인어른의 자동차였다. 신고를 받고 차번호를 확인한 경찰이 며칠 뒤 등록된 차주인의 집에 방문하자, 장모님이 있었고 경찰이 장모님에게 사건 발생일 차를 남편이 운전했냐고 물었더니, 사위가 익산 지역에 있을 때면(2군가는 경우 때문에 올 때를 말하는 듯) 남편 차를 빌려줄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사위에게 빌려줬다고 말했다. 그래서 경찰이 그 사위를 찾아가보니 김상현이었다.[43] 형법상 무죄는 죄가 없다는 말보다는 죄가 입증되지 않았음을 뜻한다.[44] 물론 해당 인물인 경우가 파장은 심하지만 법정에서는 기껏해야 명예훼손에 그치는 반면, 이 사건은 파장은 약했지만 성범죄라는 것이 징계를 강력하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45] 부인이 인천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SK 이적 이후에 생활했던 곳 역시 인천의 처가였다고 전해진다.[46] 아주 농담은 아닌 것이, 김용달은 LG 시절 제대로 키워낸 장타자가 거의 없다. 박병호, 이성열 등 수준급 슬러거 유망주들이 있었음에도 김용달은 이들을 키워내기는 커녕 자기 의견을 안 듣는다거나 아무리 해도 답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47] 심리적 안정감이 아주 설득력 없는 건 아니지만 고작 1년 잘 한 걸 생각하면 큰 의미는 없다.[48] 2009년에 LG에서는 새로운 3루수로 정성훈을 FA로 영입하면서 그간 3루수를 맡고 있던 김상현은 팀내 입지가 좁아졌다. 반면 당시 KIA는 내야 기근으로 골머리를 앓던 상황이었다. 당장 1군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내야수가 이현곤이나 은퇴를 앞둔 김종국 정도밖에 없었고, 김선빈이나 안치홍은 아직 검증이 덜 되었던 신인이었다. 다만 트레이드 이전까지만 해도 김상현은 LG의 주전 3루수였다. 흔히 이때 기회가 적었다는 언플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회는 숱하게 주어졌다. 이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가 이적 후 장타력이 증가하는 경우로 해석하는 편이 옳다.[49] 2011시즌 넥센으로 넘어가 1루 주전 보장된 사례도 있다.[50] 2010년에도 타율은 .215에 불과했으나 홈런이 21개나 되었다. 또 이 당시 부상으로 79경기밖에 뛰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갈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당시 출루율은 이대형보다도 낮았으며, 장타율도 결코 높은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득점권에 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더 쉽게 말해서 공갈이라고 까였던 2013년 이범호보다 못 하면 못 했지 나을 게 없었다고 할 수 있다.[51] 해태/KIA를 제외하고 김상현이 거쳐간 팀이 모두 모기업이 통신업체를 갖고있는 구단들이다. LG 트윈스LG U+, SK 와이번스SK텔레콤, kt 위즈KT. 덤으로 해태/KIA를 제외하고 김상현이 거쳐간 팀들이 셋 다 수도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