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8 00:16:05

강철민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예명이 강철민인 헬스트레이너에 대한 내용은 양치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external/center.lgtwins.com/200962847436.jpg
이름 강철민(姜喆珉)
생년월일 1979년 7월 22일
출신지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학교 순천효천고-한양대 [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8년 해태 고졸우선지명
소속 팀 KIA 타이거즈 (2002~2009)
LG 트윈스(2009~2011)
한화 이글스 (2013)
지도자 진흥고등학교 코치 (2015~2018)
화순고등학교 코치 (2019~)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2002~2007)[2]
이호성(1990~2001) 강철민(2002~2007) 호세 리마(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2008)
이인철(2007) 강철민(2008) 정성철(2009~2010)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2009)
호세 리마(2008) 강철민(2009) 김상현(2009~2013)
LG 트윈스 등번호 26번(2009~2011)
김상현(2009) 강철민(2009~2011) 양승진(2011~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41번(2013)[3]
최우석(2012) 강철민(2013) 엄태용(2013~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46번(2013)
이영기(2012) 강철민(2013) 펠릭스 피에(2014)

1. 소개2. 프로 이전3. 프로 경력
3.1. KIA 타이거즈 시절3.2. LG 트윈스 시절3.3. 한화 이글스 시절
4. 은퇴 이후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였다.

2. 프로 이전

순천효천고 출신으로, 고교 시절에는 조용준과 함께 활약했다. 이후 1998년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지만 한양대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에 지명된 선수로는 최희섭[4], 이현곤 등이 있다. 대학 시절 리그 최우수 선수, MVP 등을 수상했고 그 활약 덕분에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어 금메달을 획득, 병역특례를 받기도 했다.[5] 대학을 졸업하고 무려 5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자신을 지명했던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다.

3. 프로 경력

3.1. KIA 타이거즈 시절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것과는 달리 프로 입단 후 잦은 부상과 수술의 연속으로 별 활약을 못 보였다. KIA에서 5년간 1군 117경기 등판에 그치고 성적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2004년에 그나마 선발 로테이션을 돌며 규정이닝을 돌파했으나 10승에는 실패했고 무엇보다도 평균자책점이 5점대에 다다르는 등 아마 시절의 명성에 비해서는 프로에서 그렇게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2006년 시즌 초부터 그나마 포텐이 터지는 듯 싶었지만 얼마 뛰지도 못하고 팔꿈치 부상으로 드러누운 뒤 그대로 시즌 아웃되었고,[6] 이후 재활하느라 2007년과 2008년은 1군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다. 덕분에 호세 리마에게 등번호를 빼앗기기도 했다.[7]

3.2. LG 트윈스 시절

2009년 4월 19일 KIA가 김상현박기남을 받는 2:1 트레이드로 강철민은 LG 트윈스로 이적됐다. 김상현이 이적 첫 해 홈런왕과 MVP[8]를 차지했고, 대수비 요원으로 활약하던 박기남도 2010 시즌 들어 김상현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커리어 통산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가운데, 강철민은 2010년 7월 18일 대구 삼성전에서야 1군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랑해요 LG가 울려퍼지게 된 촉매.

마지막으로 1군에 등판했던 때가 2006년 6월 7일인데, 계산해보면 무려 49개월만의 등판.(…) 그 정도로 1군 무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얼굴 보기가 정말 힘들어 실존인물인지 의심된다는 이유로 사이버 투수라고 불렸다.

190cm가 넘는 장신이다 보니 KIA에 있을 시절 주로 상체로만 투구를 했다고 한다. 2군에서 투구 폼 자체를 뜯어고쳤으며, 2010년 7월 4일 경찰청과의 경기에서 5이닝 3실점 2자책으로 LG 유니폼을 입고 2군에서 첫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상대 패전 투수는 당시 복무 중이었던 우규민이었다.

7월 18일 삼성전에서 처음으로 등판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으며 150km/h에 육박하는 속구로 4이닝 1피안타 1피홈런 1실점을 기록하며 비교적 준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석민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차우찬의 데뷔 첫 완봉승의 희생양이 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2010 시즌 막판 체력 저하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구속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11년 다시 도진 어깨 부상으로 5월 20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면서 정말로 사이버 투수로 거듭나고 말았다.

3.3. 한화 이글스 시절

헌데 2012년 10월 15일, 뜬금없이 신고선수로 한화 이글스로 입단이 결정되었다. 탈쥐효과 vs. 입칰효과?[9]

그러나 구속을 회복하지 못해 사이버 투수가 되고 말았다. 2013년 한화의 투수난 덕에 한 번쯤 1군 콜업이 될 법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한화에서서도 사이버 투수

결국 재활군에서도 구속은 물론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6월 27일 은퇴를 선언한 외야수 오재필과 함께 방출되었다. 고질적인 부상에 나이도 적지는 않은 편이라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시즌 후 보류명단 제외자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신고선수 계약을 해지한 듯.

4. 은퇴 이후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 트위터를 통해 2013년 12월 6일 열린 타이거즈 OB 모임에 참석했음이 밝혀졌다.

2014년 12월 13일에 결혼했다고 한다. 2016년 말에 올라온 이영미 칼럼에서 오랜만에 근황을 알렸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광주진흥고 코치로 활동했으며 2019년 화순고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KIA 타이거즈 26 77⅔ 5 6 0 1 0.455 5.68 100 9 22 2 46 51 49 1.571
2003 27 90⅓ 6 7 0 1 0.462 4.88 82 16 44 9 44 54 49 1.395
2004 31 145⅓ 8 12 1 0 0.400 5.33 159 14 61 13 86 94 86 1.514
2005 23 92⅓ 3 8 0 0 0.273 4.68 99 14 52 11 68 52 48 1.635
2006 10 58⅔ 3 2 0 0 0.600 2.76 54 5 36 1 32 19 18 1.534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LG 트윈스 1군 기록 없음
2010 3 11⅔ 0 1 0 0 0.000 5.40 8 2 8 1 10 7 7 1.371
KBO 통산(9시즌) 120 476 25 36 1 2 0.410 4.86 502 60 223 37 286 277 257 1.523


[1] 1998학번[2] 전에 27번을 달던 이호성과 강철민 본인, 후임자인 김상현 모두가 흑역사로 전락해버렸다. 이호성은 타이거즈 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전락했으며, 강철민 본인은 사이버투수, 김상현은... 물론 27번 자체가 흑역사는 아니어서 호세 리마, 이홍구타이거즈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러 선수들도 27번을 거쳐갔으며 현재는 이명기가 27번을 달고 있다.[3] 입단 직후의 배번은 41번이었으나, 시즌 시작 전에 엄태용에게 넘기고 46번으로 변경했다.[4] 1998년 해태의 지명을 받았으나 얼마 안 가 미국으로 건너가거리며 지명권이 사라졌다. KIA 입단은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이뤄졌다.[5] 여담으로 당시 대표팀 최연소 선수였다. 같은 79년생인 박한이김병현은 빠른 79년생이라 강철민보단 1년 선배다.[6] 2006년 스프링캠프에서 코치들이 훈련량이 적다는 얘기를 자주하였다고 한다. 투구수를 늘려야 아픈 부위에 내성이 생긴다며 매일 100개에서 150개의 공을 던졌고 결국 전반기 10경기로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 감독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 참고로 강탈(…)당한 27번의 전 주인은 김봉연이호성일 정도로 27번은 타이거즈에서 꽤 비중있는 번호였다. 그런데 2008년에 그 번호의 전 주인대형사고를 쳐서 방송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바람에 망했어요. 그런데 어쩌면 실은 강철민이 등번호를 빼앗긴 게 아니라, 그 번호의 전 주인 때문에 일부러 그 번호를 안 쓰고 용병에게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호성 살인 사건이 이슈가 되었던 때는 2008년 2~3월이다. 무튼 김봉연의 번호라서 그런지 강철민은 어쨌든 2009년에 도로 27번을 돌려받았다.[8] 트레이드된 당해에 MVP를 수상한 것은 KBO 사상 최초다.[9] 한화 이글스LG 트윈스 선수 영입을 엄청나게 했지만 2014년까지 성과가 처참한 수준이다. 예를 들면 추승우, 김재현(투수), 김준호, 이학준, 김광수, 송신영. 추승우, 김재현은 반대 급부는 전혀 없이 영입한 것이어서 성과 운운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기는 했고 강철민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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