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01:52:33

송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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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장정석 [[감독#s-1.1|
]] · 70 김동우 · 71 나이트 · 72 허문회 · 73 오윤 · 74 조재영
· 75 권도영 · 76 오규택 · 77 강병식 · 78 홍원기 · 80 마정길 · 81 송신영
· 83 노병오 · 87 이건우 · 88 김태완 · 89 박도현 · 90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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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영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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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3 2004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4번
김갑중(1994~1998) 송신영(1999) 심재학 (2000)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9번
김형섭(1999) 송신영(2000~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9번
팀 창단 송신영(2008~2011) 장효훈(2011~2012)
한현희(2013) 송신영(2013~2015) 박종윤(2016~2017)
LG 트윈스 등번호 36번
오상민(2008~2011) 송신영(2011) 전호영(2012~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19번
정민혁(2011) 송신영(2012) 정대훈(2013)
허유강(2014~2015) 송신영(2016~2017.06.23) 이충호(2017.06.27~2017)
NC 다이노스 등번호 19번
김기현(2012) 송신영(2013) 박정준(2013~2014)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81번
정재복(2016~2017) 송신영(2018~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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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떡볶이가~ 왔어요~ 떡볶이~
뒤에서 박정진이 이상하게 쳐다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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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현역 시절.
키움 히어로즈 No.81
송신영(宋臣永 / Sin-Yeong Song)
생년월일 1977년 3월 1일[2][3]
출신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출신학교 재동초 - 중앙중 - 중앙고 - 고려대[4]
호서대 스포츠과학대학원 야구학과 재학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2차 11라운드 지명(전체 88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9~2007)
넥센 히어로즈 (2008~2011)
LG 트윈스 (2011)
한화 이글스 (2012)
NC 다이노스 (2013)
넥센 히어로즈 (2013~2015)
한화 이글스 (2016~2017)
지도자 키움 히어로즈 잔류군 투수•재활코치 (2018~)
등장곡 Side-B - 《Bom-Ba-Ye》[5]
병역 병역면제[6]

1. 소개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2.2. 넥센 히어로즈 시절2.3. LG 트윈스 시절2.4. 한화 이글스 시절2.5. NC 다이노스 시절2.6. 넥센 히어로즈 2기
2.6.1. 2013년2.6.2. 2014년2.6.3. 2015년
2.7. 한화 이글스 2기
2.7.1. 2016년2.7.2. 2017년
3. 연도별 성적4. 지도자 생활5. 기타

1. 소개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의 우완 투수. 現 키움 히어로즈의 코치

신인 시절 이후 쭉 중간계투로 활약하다가 2015 시즌부터 선발로 전환하였다. 현대 -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7]선수였지만 장사트레이드를 통해 2011년 시즌 중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바로 FA로 풀리면서 유니폼을 또 갈아입었다. 그리고 1년 만에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한 번 더 유니폼을 갈아입었는데, 2013년 4월 18일에 3:2 트레이드로 결국 친정 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20개월동안(2011.8~2013.4) 평균 5개월에 한번꼴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셈. 어쨌든 프랜차이즈 선수에서 순식간에 저니맨이 된 비운의 선수. ???:나만 그렇게된게 아니라고~

소속 팀을 옮기기 전인 넥센 시절에는 김수경 선수와 같이 이름이 여자같기 때문에 "신영언니"라고 불렸으며 그의 응원가인 봄바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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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현대 유니콘스 시절.

어떻게 보면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드래프트 지명 순위를 보면 2차 11순위(전체 88순위)인데, 이 얘기는 2차 지명 때 그의 앞에 87명이 불려 나갔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시절에는 1차 지명과 고졸우선지명도 있었다. 더군다나 송신영은 대학 졸업반으로 나왔을 때 이 순위로 지명되었다. 즉, 정말 아무도 그의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기다 사실상 신고선수로 입단했다.[8][9] 그런데 고려대 95학번 중에서 프로 무대에서 지금까지 롱런하는 선수도 송신영뿐이다.[10] 다만, 앞 뒤의 선후배들이 너무 쟁쟁해서 좀 이 학번이 약간 묻히는 감도 있다. 94학번이 김동주손인호,[11] 96학번이 김선우, 김상훈, 강봉규, 강병식[12] 등으로 화려했다.

중앙고 시절 홍성흔과 배터리를 이루었고 고2 때까지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초특급 유망주[13]였으나 고3 때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였고, 수술이 두려워 재활로 해결을 하려다가 결국 뼈가 기형으로 자라 제대로 된 피칭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후 고려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제대로 마운드에 선 적이 거의 없었기에, 낮은 순번이라고는 해도 그의 지명은 그 자체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999년에 입단한 선수가 1군 무대에 데뷔한 것이 2001년의 일이다. 2년간 2군에서 짱박혀 구른 후에 기어이 살아남아 1군에 등장했다.[14] 그리고 이 때 이후로 그는 내내 1군 주전 멤버로 살아남았다. 첫 해 무려 115⅓이닝, 이듬해인 2002년에 104⅔이닝을 던졌고 2003년 68이닝을 던졌다.그리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동안 단 한 번도 70이닝 밑으로 던져 본 적이 없다. 물론 성적이 초특급 불펜의 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70이닝 정도를 먹어줄 만큼 건실한 스태미너는 높이 평가해줄 만하다.

김시진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현대 시절 투수코치로 있을 때부터 김수경과 함께 제일 아끼던 애제자였다. 다만 쉽게 갈 수 있는 걸 어렵게 가는 단점이 있었다고. 이 점을 좀 고치라고 매번 충고했지만, 본인은 위험상황이 더 좋다고 해서 김시진 감독을 당황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7년에는 팀 마무리 투수 박준수가 부진한 사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까지 맡았다. 이를 도하 참사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을 좁힌 것이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박준수한테 불리하게, 거꾸로 커브가 주무기인 송신영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연장전에서도 많이 나왔다. 캘러웨이의 이탈을 메우느라 팀 투수진에 완전히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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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우리 히어로즈 시절.

팀의 재창단 이후 2008년에 새로 부임한 감독 이광환이 제대로 망가뜨려 놨다. 그리고 곧 다시 롱 릴리프 보직으로 돌아왔으나, 혹사의 영향으로 2008년과 2009년에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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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던, 그러나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넥센 히어로즈 1기 시절.[15]

그러나 2010년 부활, 꾸준히 롱 릴리프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계속 자신의 야구 인생을 펼쳐 나갔다.

넥센의 손승락이 2010년 마무리로 자리잡기 전까지 넥센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하여 중요한 상황마다 등판하였다. 거기다 과거에도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에 팬들은 걱정이 태산.

2010년 6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중에 무등 야구장에서 벽돌에 발이 걸려 제대로 투구를 못한적이 있다.# 무등 야구장 양대사건인 벽돌출토 사건의 주인공인 셈.[16]

2010년 이후로도 넥센 히어로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줬다. FA를 포기한 대가로 2억이 넘는 연봉 계약을 확정, 낮은 지명 순위에서 출발해도 노력 여하에 따라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았다.

그리고 2011년 4월, 그 2억 몸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4월 28일 기준으로 초반 7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세이브 순위 1위까지 치고나간 것. 방어율은 0점대에다 승률까지 무려 10할이다. 같은 페이스로 잘 하고 있는 오승환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넥센의 철벽 불펜의 핵심으로 이대로면, 어깨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던 손승락이 돌아와도 손승락중간계투로 밀어낼 기세다.[17]

5월 3일에는 프로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으며 5월 5일 목동 홈경기에서 KIA 상대로 시즌 9세이브 달성. 5월 19일 대구 원정경기에서는 발빠른 강명구이영욱을 출루시킨 뒤 1사 2, 3루 상황까지 가며 흔들리다가 결국 박석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시즌 첫 패전+블론세이브를 기록하였다.

2.3.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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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3시간도 안 남긴 상황에서 극적으로 LG 트윈스박병호, 심수창를 상대로 당시 팀메이트였던 김모씨와 같이 2:2 맞트레이드되었다. 중간계투진의 부실로 고역을 치르고 있는 LG의 의도는 마운드 강화 차원인 것으로 보이는데, 장돌뱅이가 뒷구멍으로 또 한 건 했다는 의혹이 짙다. 야구팬들에게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18] 그리고 이는 이후 1년 8개월간의 저니맨 생활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8월 2일 SK 와이번스와의 문학 원정 경기에 등판했는데….


모든 야구팬이 한마음으로 울었다.(…) 넥센 여성팬분들 지못미 이사진은 3년후 재평가 된다

5:1로 LG가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윤진호의 무뇌수비와 이상열&김선규의 장작질이 더해지면서 5:4까지 쫒기는 위기를 맞았으나, 송신영이 8회 2사 후부터 등판하여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이적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네이버 중계창의 LG팬들은 기존 LG 불펜들의 동태눈빛에 불안해보이는 모습과 달리 등장시 눈빛부터가 남다르고 포스가 풍겨진다며 대찬양. 반면 넥센 히어로즈 팬들은 그저 눈물만...

경기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이적 후 잠도 제대로 못자고 긴장했다. 위가 아파서 트레이너로부터 약을 타서 먹었다. 이런 긴장감은 2004년 한국시리즈 이후 처음이다"라고 털어놓았고 이에 캐스터가 "오늘 이겼으니 긴장 풀고 잠 좀 푹 자길"이라며 훈훈한 한마디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이틑날인 8월 3일 경기에서 똑같은 상황에 등판, 8회 위기는 잘 막았으나 9회 이호준에게 끝내기 투런을 맞고 말았다. 로또를 두번이나 터뜨리다니

8월 21일 삼성전에서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8회부터 등판, 삼성의 중심타선을 막아내며 호투, 세이브를 올렸다. 선발승은 넥센에서 같이 이적한 김모씨.

8월23일 넥센전에서 등판. 1⅓이닝 1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오오 그것은 친정팀 사랑 1이닝은 완벽하게 틀어막았지만 1977년생 노장투수를 2이닝 던지게 하고 하루 쉬고 또 2이닝을 굴린 野石의 병크가 돋보이는 상황이기도 했다.

9월 1일 SK전에서 등판하여 ⅔이닝 2실점 2자책점 불질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LG 팬들은 오히려 쉴드 쳐주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게 1977년생 노장 투수를 3일 연투시키는 감독놈부터 까는 게 이치상 맞는데다, 4강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 9회말 2아웃 실점 위기 상황에서 경기 보며 덕아웃에서 쳐웃고 있는 선수놈들까지 나온 터라... 에라이 이 망할 새끼들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LG 프런트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가운데 나온 말이 모 선수는 100억을 주더라도 이 팀에선 못 뛰겠다더라고 해서 그 말을 한 선수가 누구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FA 자격을 얻는 이택근이라는 설이 돌았으나 이택근은 LG에 남아서 4강에 가고 싶다고 공언해서 송신영이 이 발언의 주인공이라는 설이 거의 굳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송신영은 "인터넷 상으로 '100억 줘도 LG에 못 있겠다'고 말한 선수가 나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리고 "서울 태생이라 MBC 청룡 팬에 어린이 회원이었다"며 "어릴 때부터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LG에서 꼭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립서비스?

11월 14일 이택근이 1차 협상에서 구단 제시액에 실망을 넘어 창피함을 느꼈다며 더 이상 우선협상은 없을 것이라 발언해서 100억 드립의 범인은 이택근으로 거의 굳혀졌다. 기사 빵 사건처럼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11월 19일 송신영도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LG팬들은 반 시즌 쓸려고 그 난리를 치고 데려온 거냐며 프런트를 까고 있다. 그리고 송신영이 다시 넥센으로 돌아오면 빌리장석머니볼의 신으로 추앙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카더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당시 심경을 본인이 직접 밝힌 기사 [이영미 人터뷰] 송신영이 그렸던 19년 야구인생 마무리 기사를 읽으면 당시 LG 트윈스의 프런트가 얼마나 병신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2.4.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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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1기 시절.

2011년 11월 20일, 한화 이글스와 3년 13억원[email protected]에 계약에 합의했다. [email protected] 옵션이 비공개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그리 큰 액수가 아닌 걸 보고, LG 트윈스에서 어떤 금액을 부렀기에 파토가 났느냐며 성토하는 여론이 많다. 2년에 7억 불렀단다. 그러면서 김기태 감독은 2012 시즌 마무리로 낙점했었다고 하니 이뭐병. 금액도 금액이지만, 한화는 20일 0시가 되자마자 이상군 운영팀장이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한 후 직접 차를 몰고 새벽에 강원도 산골짜기까지[19] 달려갔다고 하니 선수를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고 밖에.##[20] 결국 송신영은 한화로 이적하고, LG는 보상 선수로 나성용을 지명했다.

그 와중에 이런 기사가 발굴되었다.

12월 26일 한화 이글스 구단 사무실에서 입단식을 가졌는데, 배번은 19번#으로 한 동안 만나보지 못한 동갑내기 투수인 박정진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화로 간 후 분식회계의 달인이 되어 버렸다. 박찬호가 한화에서 선발로 처음 등판한 날 2점을 분식회계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까였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후로도 주자 있을 때 등판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분식회계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FA로이드?! 놀랍게도 5월 14일까지 기준으로 피안타율이 .360인데 득점권 피안타율은 .250.

5월 14일까지 전 경기 승계주자 실점률은 83%(5/6)였지만 자신의 평균자책점은 3.18로 준수하게 기록하며 분식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17일엔 8회 3점차에 간만에 주자없이 등판하여 2타자를 정리하고 박정진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나, 1이닝이 아닌 ⅔이닝을 막았기때문에 홀드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때까지의 모습을 보면 일단 볼넷은 별로 없지만 안타를 너무 많이 맞는게 문제. 거기에 실책이라도 나와서 비자책 상황이 되면 또 여지없이 얻어맞는다. 그나마 줄 점수 다 주면 급호투로 방어율 관리 중. 많은 한화팬들은 송신영을 주자 없을 때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치는중. 사실 송신영은 이전부터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 올라가는 스타일의 투수가 아니었다. 결국 한 박자 늦은 투수 교체가 송신영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것.

5월 20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7회초에 등판해 최정을 상대로 빈볼성 투구를 해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시즌 1호 퇴장 선수가 되는 불명예를 안았다.[21] 이미 초구부터 타자의 몸 뒤쪽으로 빠지는 폭투를 범해 심판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 3구째에 다시 다리를 맞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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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 명령을 받은 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글러브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22][23][24]

이후 KBO는 송신영에게 벌금 200만원 + 5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는 가중처벌[25]이라고. 이 때문에 안 그래도 빈약한 한화의 불펜에 크디큰 구멍이 뚫려 버렸고, 뒤이은 KIA 타이거즈와의 주중 3연전 스윕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어버렸다. 송신영이 특히 SK를 싫어하는 듯. 2009년이랑 같은 느낌?

이후 5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등판했으나 올라오자마자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았다. 이쯤되면 거의 뭐 FA잔혹사라고 불릴만 하다.

6월 1일 LG 트윈스전에서 7회 말 윤근영이 주자를 내보내고 강판을 당해 송신영이 등판을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7회를 잘 막았다. 뒤이어 8회에서도 볼넷 2개를 내주었지만 실점 없이 막아내었다.

한화 이적 이후 팔의 각도가 완전히 사이드암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버린 상태다. 작년의 혹사와, 본인이 몇 번 투구폼 변경을 생각해본다고 사이드암으로 던진 것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친 셈. 이걸 잡아줘야 할 정민철 투수코치는...

결국 6월 7일 자로 2군행.

이후 한 달여 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콜업되었다. 이 기간동안 퓨처스리그 13경기에 출전하여 1승 2홀드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경기에서의 피안타와 볼넷 허용이 크게 줄어들어 다시금 팬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근데 왠지 FA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입칰효과가 걸린 듯하다. 역시 LG는 또 하나의 삽을 퍼다 주었습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4경기 23⅔이닝 1승 3패 2홀드, 평균자책점 4.94. 경기당 1이닝도 채 소화해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명백한 FA로이드 부작용.

사실 12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3점대를 기록한 것이 단 4시즌에 불과했던 투수가 2011년에 갑자기 2점대 평균자책점을 보인 건, 반드시 플루크를 의심해봐야 했다. 그리고 2011년 후반기, 아웃카운트를 플라이볼로 많이 잡는 송신영의 투구 패턴이 잠실구장과 LG 외야진의 넓은 수비범위에 도움을 받아 방어율 플루크에 명백히 도움이 되었는데, 이것이 대전구장과 한화 외야진과의 결합을 만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송신영 같은 경우는 대전에서 혼자 지내는 방을 얻었는데 소음과 침수 때문에 3번이나 이사를 하고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는 등 컨디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그 뒤로 한화 이글스는 FA 선수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아파트를 알아봐주는 등 그 주변 관리도 시작하게 되었다. 정근우 이용규 등이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2.5.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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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시절. '''그러나 이 사진은 2013년 4월 18일부로 넥센에 복귀하면서 단 5개월짜리 사진이 되었다.
2013 시즌 중 단 20일 뛰다 간 꼴 코치 연수

결국 2012년 11월 15일, NC 다이노스의 20인 보호선수 외 지명을 통해 이적하게 되었다. 한화는 정말 모처럼만에 FA 시장에서 돈을 풀어 송신영을 영입했지만... 망했어요. 그래도 10억 원은 회수했다

2013년 4월 13일 마산 SK전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K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이적 후 첫 홀드를 챙겼다.

다음날 4월 14일 SK전에 2:2로 동점인 9회초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동안 2개의 볼넷과 3루수의 실책으로 인한 1실점을 하였으나, 9회말 이호준의 적시타와 박으뜸의 결승 스퀴즈 번트로 인하여 4:3으로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그리고 이 승리는 NC 다이노스의 창단 1호 구원승으로 기록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NC 다이노스에서는 상당히 잘 지냈고, 팀의 젊은 투수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NC의 특성상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그 선수들에게 의지가 되었다고. NC의 젊은 투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 송신영의 이름을 꽤 언급하고, 노성호는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송신영 사랑을 보여주어 송성애자, 송퀴벌레, 송리타 등의 별명을 획득했다.

2.6. 넥센 히어로즈 2기

2.6.1.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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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일 만에 다시 넥센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모습. 그 순간 전 넥센팬이 울었다.

2013년 4월 18일, NC와 넥센 간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에 트레이드되었다.# 이택근에 이어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급 스타가 돌아왔다![26]

같이 온 투수인 신재영이 2016년에 포텐이 터져서 신인왕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넥센이 큰 이득을 봤다. 지석훈은 그럭저럭 평타를 쳤지만 박정준, 이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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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발 빠르게 등번호 19번이었던 한현희를 63번으로 돌린 후 송신영에게 19번을 준 다음 공홈에는 이택근의 나이트 찌라시와는 비교되는 노란 손수건 환영인사를 올렸다.

다음 날, 바로 경기에 출전에 8회를 1삼진등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잘 막고 자신의 귀환을 화려하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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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1⅓이닝을 틀어막고 2011년 5월 5일 이후 2년만에 넥센 유니폼을 입고 세이브를 올렸다.

넥센의 불펜에서 스윙맨으로 자리를 잡았다. 승리조-추격조-대패조로 나눠지는 넥센 불펜에서 2이닝을 먹어줄 수 있는 송신영은 귀중한 승리조. 61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3.21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다만 10월 5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2점을 허용, 경기가 2:1로 끝나면서 플레이오프 직행 실패의 대역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안타를 1개밖에 치지 못한 깝깝한 타선이 더 문제이기는 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61경기 61⅔이닝 평균자책점 3.21로 이정훈과 함께 불펜 베테랑으로서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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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1⅓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6.2. 2014년

2014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5월 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말도 안 되는 실책을 하면서 난타당해 주자를 쌓고 내려와 손승락블론세이브의 빌미를 제공해 손승락과 함께 까였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좋지 않은 투구 내용을 보이면서 넥센 히어로즈 팬들의 비난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만 송신영이 마흔을 앞에 둔 노장투수라는 걸 감안하면, 은퇴할 시기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시즌 최종성적은 41경기 42⅔이닝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6.59로 타고투저 시즌이라지만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해 10년 만에 맞이한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27] 팀 내에서 한 번이라도 KS 경험이 있는 선수가 단 3명이었는데, 송신영이 부진으로 빠지고 KS 有경험자인 이택근, 오재영2014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했다.] 피안타율 .331, WHIP 1.72로 중간계투로써의 안정감은 전혀 보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피OPS가 2013년보다 2할7푼 정도 높아진 편이라, 팬들은 2015년에도 이러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였다.

결국 연봉이 3억 원에서 1억 5천만원으로 삭감되었다. 다만 지난 시즌 연봉은 FA로 받을 3년치 연봉의 마지막해인지라 어느정도 소폭의 삭감이 있을수도 있다는것이 중론. 또한 2014시즌의 방화가 어느정도 삭감폭이 큰 것에 영향을 미친듯 하다.

2.6.3. 2015년

넥센의 토종 1선발 어쩌면 그냥 1선발일지도
분식집은 잠시 휴업하고 초야에뭍혔다
2015년 3월 1일 송신영의 17년 야구 인생을 돌아보는 기사가 실렸다. 2014년에 147km/h까지 나왔다고. 그 난타당했던 걸 생각하면 진짜 의외다

4월 19일 광주 KIA 3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6⅔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며 3200일 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탈삼진 6개에 4피안타도 놀랍지만, 무사사구까지 보면 속이 대단히 시원해진다. 본인은 동생들이 1구 1구 던질때마다 화이팅 해주는 소리가 고마웠고 울컥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할 때 손승락이 일부러 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4월 25일 수원 KT 3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무실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경기 후 자신도 안 믿긴다며, 자신의 퀄리티 스타트는 4이닝 2실점, 선발로 나가면 알이 배기곤 한다고 말했다. 토종투수의 두 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는 2015시즌 넥센의 첫 기록이다. 40 드신[28] 어르신보다 못 던지는 넥센의 토종투수진 1회말 2사 만루의 위기를 송민섭의 좌익수 뜬공으로 막은 후, 별다른 위기 없이 KT의 타자들을 요리했다.

5월 1일 잠실 LG 1차전에서도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우리 어르신께서 어디서 산삼이라도 하나 자셨나 넥센에게 드디어 토종에이스가? 놀라운 것은 7이닝 동안 단 79개의 공만 던졌다는 것. 볼넷은 하나, 안타는 단 둘만 내주었다. 그 중 하나가 홈런. 하지만 그 홈런 이후로, 15타자를 연속으로 범타 처리했다. 삼진을 잡은 것은 많지 않지만, LG 타자들의 성급한 방망이가 그것을 도와줬다. 외야 펑고 하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7이닝 동안 11개의 외야 뜬 공을 잡아내었다. 경기 후 LG 좌타자들을 잡기 위해 포크볼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5월 7일 목동 삼성 3차전에서는 4⅓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2회에 제구난조로 볼넷을 남발하며 3실점하였고, 투구수도 급격히 늘어나 결국 강판되고 말았다. 팀은 13:4로 대파당했고 송신영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13일 사직 롯데 2차전에서는 1회부터 3실점하며 두들겨맞아 2회에 바로 교체되었다. 패는 먹지 않았지만 경기는 8:9로 패배.

5월 19일 목동 LG 1차전에서는 선발투수로 나와 5이닝 3실점 84구의 호투를 했다. 이후 불펜이 방화하면서 7실점을 더했지만 타선의 지원으로 최종 스코어 12:10. 승리투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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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초 정성훈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송신영의 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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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고 조상우와 노닥거리는 모습.

5월 24일 목동 NC 3차전에서는 2⅓이닝만에 내려간 선발투수 김택형의 뒤를 이어 2⅔이닝 동안 1실점하고 내려갔다. 팀은 12:11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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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대구 삼성 2차전에서는 등판하지는 않았으나 덕아웃에서 손승락과 포크볼 연구를 하며 소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5월 30일 문학 SK 2차전에서 선발투수로 출장, 4이닝 동안 8K를 잡아내는 위력투를 보여주었으나 4회초 앤드류 브라운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1실점, 그리고 5회에는 볼넷과 3루타를 연속으로 내주며 1실점하여 내려왔다. 3회에 석연찮은 합의판정 오심도 있었고 4회까지 86구를 던져 5회에는 힘이 떨어진 듯. 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6월 5일 목동 두산 1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6이닝 5실점 4자책이라는 넥리티 스타트를 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5회 병살이 되었어야 할 타구가 2루수 김민성, 유격수 김하성의 연속 실책으로 두번이나 병살되지 못하면서 투구수도 늘고 실점도 하게 되었지만, 기어이 6회까지 이닝을 먹고 내려와준 덕에 불펜을 아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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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초 민병헌을 삼진으로 잡는 마지막 공 로케이션.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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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으로 승리 후 문성현의 손길을 쳐내고 있다(...).

이날까지 8경기에 선발로 나와 5승 1패를 기록했다.

6월 13일 수원 kt 2차전에서는 7이닝 97구 무실점 1볼넷이라는 엄청난 호투를 하여 전날 에이스 밴헤켄이 무너진 후 불안하던 마운드를 진정시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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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수원과 좋은 인연이 있었음을 설명하는 자막. 이날도 좋은 인연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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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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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초 김하성이 호수비로 아웃을 잡아주자 1따봉을 시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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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동원과 궁합이 아주 잘 맞았으며 박동원이 앉아있으면 코너워크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배터리에게 공을 돌렸다. 또한 상대 타자들이 노림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스윙해오는데에 맞서 노리는 코스로 더 정확히 던지려고 노력했다고. 기사 그리고 이날 선제 투런을 날리며 활약한 김하성을 "막둥이가~" 라는 표현으로 예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6월 19일 목동 LG 1차전에서 1이닝 만에 미세한 어깨 통증으로 LG의 1번 타자인 박용택만 상대하고 강판되었다. 결과는 선두타자 홈런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결국 급히 김동준으로 교체됐고 송신영은 큰 부상은 아니였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휴식 겸 치료차 1군 엔트리에 말소됐다. 단 완전히 2군에 간 것은 아닌지 21일 경기에서 박동원이 극적인 스퀴즈로 역전에 성공하자 덕아웃에서 박동원을 격하게 칭찬하는 모습이 잡혔다.

7월 7일 목동 KIA 1차전에서 근 2주만에 등판해 선발투수로 나섰으나, 1회에 1점을 내주고 5회에 손가락 부상으로 내려갔고, 팀은 타선의 부진으로 패배했다. 그리고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7월 29일 목동 kt전에서 7월 7일 이후 처음으로 오랜만에 올라왔으나 부상 여파가 아직 남은건지 오랜만에 올라와서 감이 떨어졌던 것인지 3이닝 6피안타(1홈런) 4K 1사사구 4실점으로 조기강판되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8월 4일 목동 KIA전에서 6⅔이닝 2실점으로 다시 보란듯이 호투. 팀도 11:6로 이겼다. 상대투수가 양현종이였기에 더 두드러졌던 투수전이였다. 이 경기로 시즌 7승을 찍게 되었다.

그러나 8월 11일 NC전에서는 2이닝 7피안타(1홈런) 1K 1사사구 4실점으로 처참히 두들겨맞으며 지금까지의 호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털리고 내려가버렸다. 염경엽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나름대로 상대전적이 썩 안좋은 NC에 송신영 카드를 내밀어본건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8월 18일 수원 kt전에서는 ⅓이닝 4피안타 1볼넷 5실점으로 또 조기 강판당했다. 수원 참사라는 제목을 쓴 기사가 있었을 정도.

7월 말부터 엔트리에 다시 들면서 컨디션 관리차였는지 7일 간격으로 등판하고 있으나 아직 결과가 썩 좋질 않다. 7일 로테이션상으로 등판해야 하는 8월 25일 kt 넥센전은 우천으로 걸렀으나 우천이 아니였어도 피어밴드로 예고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6월 부상여파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할 듯 하다.

그리고 9월 23일 목동 SK전에서는 하영민 포텐셜 대폭발의 날 오랜만에 등판해서 릴리프로 7이닝부터 8이닝까지 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무실점피칭 후 배팅찬 배힘찬과 교체되었다.

올해 주로 기아/kt/LG 상대로 선발출장을 하다 오랜만에 나와서 여전히 2이닝정돈 꿀꺽해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팀은 무려 영봉승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혀갤러들은 살다살다 영봉승도 다본다고 감격해서 우는중

2.7. 한화 이글스 2기

2.7.1. 2016년

2015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한화에서 보내게 되었다. 살려조의 혹사로 투수가 부족한 한화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부분. 넥센 입장에서는 유망주 묶기도 벅찬데 송신영까지 묶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2차 드래프트 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엠팍에서는 2차 드래프트로 지명되면 보통 최고참이 인터뷰를 하는데 어째서 송신영은 인터뷰를 하지 않느냐며 비판했고, 이후 송신영이 넥센을 떠나기 싫어서 연락 두절 후 잠적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김성근 밑에 있기 싫어서 은퇴할 것이다, 고려대 코치로 내정되었다 등의 온갖 소문이 돌면서 졸지에 송신영만 죽일 놈을 만들었다. 그러나 며칠 후 기사로 위 소문들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났다. 송신영은 친구들이 보내 준 엠팍 찌라시의 캡처들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여전히 19번을 단다고 한다. 정진아, 내가 다시 돌아왔다!

6월 11일 LG전에서 선발투수로 나가게 되었다. 부상으로 빠진 로저스를 제외하고 윤규진, 송은범, 장민재, 이태양 순으로 현재 돌고는 있으나, 이태양이 일단 꽤 불안한 피칭을 보이는 상황이라 현재 빈 로테이션을 채우는 겸, 작년 선발 7승으로 나름대로 깜짝 호투를 보였던 송신영을 써보려는것으로 보인다. 4⅓이닝 1실점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7월 12일 LG전에서 선발로 나섰지만, 1회 정성훈의 땅볼 타구를 잡고 1루로 뛰어가다가 종아리에 통증을 느끼고 ⅓이닝만에 강판당했다. 그리고 장민재가 급히 등판해야 했고, 팀은 4:5로 패하였다.

9월 18일, 드디어 콜업됐다.

20일 LG전에 올라와 ⅔이닝 동안 1피안타 1K로 무난히 던지고 내려갔다.

28일 두산전에 9회초 등판하여 1이닝 10구 2피안타 1실점 1자책으로 무난히 막았다.

2.7.2. 2017년

4월 2일 모든 필승조를 투입하다 선발 후보인 안영명까지 투입하였음에도 12회말 1사 1, 2루 위기가 오자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였으나, 민병헌에게 끝내기 중전안타를 허용하면서 분식회계로 시즌을 시작하고 말았다. 당연히 패전 투수는 안영명.

4월 23일 kt위즈 전에서는 9회말에 등판하여 삼자범퇴로 게임을 끝냈다. 팀이 14대 1로 완승했기에 큰 의미는 없다.

4월 26일 롯데전 1⅓이닝 무실점.

4월 28일 넥센전에서 4⅓이닝 4실점한 송은범의 뒤를 이어 등판, 분식회계 후 본인도 책임주자를 실점하여 둘이 8실점을 합작했다. 전날까지 분식회계 덕에 평균자책점은 0점이었으나 이날 20.25를 찍음에 따라 시즌 평균자책은 단숨에 4점대를 돌파했다.

전반적으로 추격조 혹은 패전조로 기용되고 있으며 패전조로서는 무난한 활약을 하고 있는 편이다. 의외로 김성근답지 않게(...) 송신영에 한해서는 등판간격도 그럭저럭 지켜줘서 혹사도 당하지 않고 무난히 던지는 중. 최후의 양심은 있었나 보다

4월 29일 무릎 통증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가게 됐다. 대신해서 콜업된 것은 이동걸.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후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이 예고된 상황에서, 2017년 6월 23일 조인성, 이종환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됐다. 확실한 추격조로 낙점받은 이동걸, 강승현이 분전하고 있고 육성선수들 역시 성장 중이라 부상에 시달리는 베테랑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는 해석. 선술한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공을 김성근 감독[29]에게 주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애석하게도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30] 팬들은 대체로 영입 이후 크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아 사실 한게 거의 없지 수고했고 안타깝긴 하지만 야구를 정으로 하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

3. 연도별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현대 유니콘스 47 115⅓ 4 2 3 2 0.667 4.21 113 9 51 80 59 54 1.396
2002 42 104⅔ 6 2 0 4 0.750 4.39 109 14 37 67 52 51 1.347
2003 25 68 5 4 0 0 0.556 4.63 76 8 30 39 37 35 1.500
2004 59 81⅔ 8 0 1 6 1.000 3.53 85 9 35 64 37 32 1.384
2005 40 74⅔ 1 4 0 5 0.200 3.74 71 2 40 53 32 31 1.406
2006 43 95⅓ 6 5 0 1 0.545 4.53 95 8 43 60 52 48 1.322
2007 55 77⅔ 3 3 14 4 0.500 3.01 67 5 32 56 29 26 1.2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 히어로즈 53 72⅓ 2 8 4 9 0.200 5.23 82 6 42 63 47 42 1.604
2009 히어로즈 58 75⅔ 3 3 4 6 0.500 5.23 84 13 41 68 50 44 1.507
2010 넥센 히어로즈 65 77 5 5 1 14 0.500 4.21 75 5 43 63 38 36 1.49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넥센 / LG[31] 62 72⅓ 3 3 19
(3위)
7 0.500 2.24 67 4 25 57 19 18 1.20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한화 이글스 24 23⅔ 1 3 0 2 0.250 4.94 37 3 12 17 16 13 1.90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3 NC/넥센[32] 61 61⅔ 4 3 1 15 0.571 3.21 52 1 42 43 22 22 1.378
2014 넥센 히어로즈 41 42⅓ 2 1 0 2 0.667 6.59 57 7 20 28 33 31 1.724
2015 18 69 7 4 0 2 0.636 5.35 77 12 24 46 42 41 1.43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6 한화 이글스 11 14⅓ 0 1 0 0 0.000 5.02 24 1 3 7 8 8 1.81
2017 5 6⅓ 0 0 0 0 0.000 4.26 6 0 2 6 3 3 0.95
KBO 통산(19시즌) 709 1132 60 51 47 77 0.540 4.25 1177 109 543 817 576 535 1.42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6년 1완투
(7위)
1완봉
(3위)

4. 지도자 생활

현역 연장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으나,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애초에 2017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로 한화 구단과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고. 일단 호서대학교 야구학과 석사 과정을 마저 마치고 아마추어 야구 인스트럭터로 경험을 쌓은 후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2017 시즌 후 친정 팀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선임됐다. 한화 이글스 구단과의 계약 문제가 있어서 본격적인 합류는 2017년 12월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송신영, '넥센 코치' 된다

코치로서의 연봉은 4,500만원. 1군 불펜 코치로 있는 마정길과 동일한 연봉이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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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라는 별명이 가지는 부드러운 인상[35]에, 다른 성깔 레전드들(?)과 비교해 전과(?)가 없고 임팩트가 부족한 면이 있어서 부각이 잘 되지 않는데, 굉장히 한 성깔 한다고 한다. 여러 카더라에 의하면 現 KBO 투수들 중에서 제일이라는 말까지 있다. 홍성흔의 인터뷰에 의하면 중앙고 배터리 시절에 서로 한 번 다툰 적이 있었는데, 말싸움 끝에 송신영이 날린 펀치에 홍성흔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절정은 2009년에 나타나는데, 7월 30일 SK와의 목동 홈경기에서[36] 6회 초 송신영은 박재상의 몸에 공을 맞췄다. 6회 말 고효준황재균을 맞추자[37], 7회 초 송신영은 다시 나주환을 맞췄다. 나주환도 달려드는 모션을 취했고, 송신영은 똑같이 싸울 기세로 달려갔다. 결국 이는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고, 송신영은 퇴장당했다. 그리고 그 성깔은 짧았던 LG 시절, 2011년 10월 2일 7회말에 이택근이 일으킨 벤치 클리어링 사건에서 증명되었다[38]
    2014년 4월 8일 목동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8로 지던 9회초에 등판한 손승락이 1사 1루 상황에서 김주찬을 상대하던 중 손승락의 투구에 김주찬이 맞았는데, 김주찬이 순간 욱하며 마운드를 향하자[39]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손승락이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를 했는데도 송신영 본인이 더 과하게 반응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40][41] 손승락이 2014년 개막 후 블론세이브를 두 개 기록하는 등 부진했기 때문에 손승락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던 듯하다. 그리고 시비건 것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김주찬도 배트를 놓지 않고 마운드를 향하는 상황이었기에[42] 송신영이 과하게 반응할 법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양 팀이 서로 오해를 풀면서 4월 8일의 일은 어느 정도 무마되었다.
    다만 벤클때 보여주는 성깔과는 안 어울리게 심각하게 낯을 가리는 편이다. 과거 LG 시절 붙임성이 좋은 박현준이 송신영한테 알랑거리자 몇번 모르는 척 하다가 마지못해 응해주는 걸 보면 사람을 꽤 가리는 성격이다. 박조작이 송신영에게도 접근했는데 송신영이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겨우 악수했다(…). 저 뻘쭘함의 극치를 보라
  • 본인의 말에 따르면, 히어로즈 이외의 팀의 유니폼을 입고 목동에서 출장한 적이 없다고 한다. 출장대기하면서 몸은 푼적이 있어도 마운드에 오른 적은 없는 듯.[43] 2016 시즌부터 다시 한화에서 뛰지만, 공교롭게도 히어로즈도 홈구장을 옮기면서 이 기록(?)이 깨질 일도 사실상 없게 되었다.
  • 그의 2012년 한화 시절 대먹튀 흑역사 때문에 류현진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뒤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귀신처럼 분식회계를 하는[44] 로날드 벨리사리오에게 벨신영이란 별명이 붙어버렸다. 넥센팬들 중에는 왜 신영언니 이름을 방화범에게 붙이냐며 발끈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화팬들이나 그 외 야구팬들에게는 이미 벨신영은 방화범의 상징적 별명으로 낙인됐다. 그리고 넥센팬들도 이제 벨신영이라고 부른다.
  • 자신의 별명 '신영언니'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한다. 다만 팬들끼리 부르는건 괜찮지만, 본인 앞에서 대놓고 별명으로 부르는건 자제해 달라고. 그러면서 강정호의 별명을 예로 들었다
  • 넥센의 어린 투수가 어디서 보도못한 구종을 들고 나왔을 때, 출처를 물어보면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플레잉 코치 구종계의 도라에몽
  • 엘넥한 세팀에서 전부 뛴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짧은 기간이나마 NC 다이노스에서 뛴 적도 있었다. 이제 KIA 타이거즈만 가면 서군 올스타(현 나눔 올스타)의 모든 팀에서 뛰는 그랜드슬램 달성,,,이지만 아쉽게도(?) 나이가 많아 기량도 떨어지고 해서 이제 KIA로 갈 일은 없어졌다.
  • 재평가류 甲으로 평가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NC 다이노스 시절 좌완투수 아담 윌크에게 경기장 내에서 팬들한테 안 좋은 소리를 했다는 썰이 퍼져서, 당시에는 상당히 욕을 먹고 처음 온 외국인 선수한테 너무하는거 아니냐는 비난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언론에 보도된 바도 없고 가려 들을 필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해당 시즌 중반 이후 아담막장스러운 인성으로 인해 재평가의 분위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아담이 사실상 퇴출된 후 트위터로 신나게 김경문 감독과 NC 구단에 대해 뒷담을 까대버리는 통에 송신영은 용병 멘탈 감별기라고 불리기도 하고 제대로 재평가를 받으면서 평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송신영이 그 당시 그 소리를 한 게 맞다고 해도 NC에 있을 당시에도 후배들이 많이 따랐을 정도며, 넥센에서도 인망이 높은 고참선수임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다 이유가 있었던 셈. 아담이 보이는 모습과 달리 NC 구단 분위기를 제대로 해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전술했듯이 노성호는 송신영을 잘 따랐다.
  • 배번인 19번과 꽤 인연이 있는 편이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 입단 당시에는 14번을 달았으나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꾼 게 19번인데, 아주 잠깐 몸담았던 LG 시절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쭉 19번만 달았다. 공교롭게도 1군 데뷔일이 2001년 4월 19일, 2011년에 500경기 등판 달성이 KBO 리그 역대 19번째, 3,200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던 게 2015년 4월 19일, 결혼기념일은 2004년 12월 19일, 동갑내기인 부인의 생일은 5월 19일이라고 한다.
  •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 때 밝혀진 사실로 LG 트윈스가 송신영을 영입하기 위해 박병호, 심수창 뿐만 아니라 뒷돈으로 15억원을 내주었다는 사실이 제대로 밝혀졌다. 원래는 삭제된 기사나 풍문으로만 돌던 이야기였으나 넥센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송신영도 이를 알고 있었는 듯, FA 신청 후 LG 운영팀장과 면담에서 "나를 고작 두 달 쓰려고 현금 15억에 박병호, 심수창까지 넘긴 것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다시 숙고해 달라 요청했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으나 삭제되었다가 재발굴되었다. 송신영 말대로 LG 입장에서는 FA 신청을 앞둔 35살 불펜 투수를 박병호, 심수창에 15억원이나 주고 데려온 셈이기에 정말 LG 프론트에 개 호구딜이 조명되었다. 박병호가 터진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서도 FA로 잡지도 않을 송신영을 15억이나 줬으며, 또 그렇게 어렵게 데려온 투수를 홀대하여 떠나게 만든 것도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 한화 이글스 1기 시절 원룸등에서 지냈는데 대한민국 원룸의 막장스러운 공사를 생각해본다면 다들 공감할 층간소음에 벽간소음으로 잠을 매번 설친 상황을 겪은 일이 있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일반인 뭐시기도 아니고 직업 체육인인데다 야구계에서도 현피 실력, 성깔 알아주기로 유명한 송신영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알면서도 층간소음, 벽간소음을 일으킨 이웃이 누구이며 참 겁도 없고 베짱도 좋다며 혀를 내두르는중. 헌데 대한민국 원룸 사는 사람들 수준을 생각해보면 상식 밖의 막장인간들이 수두룩하긴 하다.


[1] 여담으로 둘 다 76년생으로 동갑이다.박정진이 송신영 아들인줄[2] 실제로는 1976년생이라고 한다.[3] 음력 1977년 1월 12일[4] 체육교육과 1995학번[5] 대구의 한 야구단투수교체 노래인 그 봄바예 맞다(...). 과거에 힙합 그룹 사이드 비가 샘플링한 곡의 도입부를 사용중.[6] 사유 추가바람.고등학교 때 팔꿈치 뼈가 기형으로 자라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7] 현대에서 프로데뷔한 이후 (팀이 중간에 재창단되긴 했지만)타팀 이적없이 현대-히어로즈 한팀에서만 뛰었던 프랜차이즈 선수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에 투수 500경기 출장을 달성한건 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이적없이 한팀에서만 이룬 기록이라 더욱 의미있는 기록이었다.허나 이후 저니맨이 되었다.... 얼마안가 친정팀으로 복귀했지만 다시 한화로 갔다...[8] 흔히 프로 지명 말번은 그냥 로또 식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예외도 있겠지만.[9] 참고로 이 해 현대의 말번 지명자는 당시 대졸이었던 윤상원 현 KBO 심판이다.[10] 전체 95학번(편의상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진출한 선수도 학번으로 지칭) 출신 중에서도 그나마 프로에서 성과를 보인 선수는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 박정진, 황두성, 조성환, 정수근 뿐인 수준이다.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다른 연도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11] 손인호는 프로와서 별 활약을 못해서 그렇지, 고교와 대학 시절에는 최고 스타였다.[12] 사실 강병식도 프로 입단 후에는 백업과 대타요원으로 전락해서 그렇지 고교, 대학시절엔 아마야구 기대주였다.[13] 이승엽의 절친이었던 고교 유망주 김건덕(작고)의 인터뷰에도 나온다.[14] 당시 현대의 1군 중간계투진이 신철인, 마일영, 전준호 등의 준수한 불펜이 많았다는걸 생각해 보면 송신영이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정명원의 은퇴, 조웅천,김홍집의 트레이드로 인한 공백도 있긴 하지만.[15] 모자위에 있는 숫자는 각각 이숭용, 정수성, 송지만 등 히어로즈 배테랑들의 등번호이다.[16] 나머지 하나는 그 유명한 무등경기장 물방개 사건[17] 부상에서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잠시 동안은 불펜 생활이 필수겠지만.[18] 트레이드 기사가 어느 언론매체에서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 LG 프런트 관계자 지인이 정확하게 심수창+박병호[email protected]김모씨+송신영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는 글을 썼다. 이후 [email protected]의 정체는 15억인 것으로 밝혀졌다.[19] 그러나 송신영의 말에 의하면 잠깐 갔다온 거라고 한다[20] 심지어 모 야구 팬사이트에 올라온 카더라에 따르면, 한 팬이 한화 2군 경기 직관을 갔다가 송신영에게 싸인을 받으며 "왜 LG를 떠났나요"라고 물어보니 LG 프런트가 그에게 욕을 했다고 송신영이 대답했다 한다. 팀을 위해 뼈빠지게 던졌는데 프런트란 놈들은 욕이나 하니 누가 그 팀에 남고 싶었을까? 게다가 돈도 후려치는데? 은퇴 이후 모교인 고려대 잡지 인터뷰에서 협상 담당자가 협상 당시 아주 개떡같이 대접했다는게 드러났다 #.[21] 사실 2012시즌 1호 퇴장의 주인공은 한대화 감독이다. 유헤드빙빙[22] 퇴장 명령에 불복하여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을 던지지 못한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변명을했다.[23] 하지만 시즌 초 한화의 팀 사정, 그리고 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홈팬들 앞에서 글러브를 내던진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 행동이 빌미가 되어 구단 자체 징계는 물론 후술하는 KBO의 징계 또한 받게 되었다.[24] 이때 심판이 송신영을 퇴장시킨 이유가 압권인데 송신영의 제구력이면 고의가 아닌이상 저런 빈볼이 나올수가 없으므로 퇴장을 결정했다고 한다.[25] 이미 2006년 현대 시절, 2009년 히어로즈 시절에 빈볼을 던져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26] 참고로 이 트레이드에 대한 비화가 있는데 2013 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넥센과 NC의 시범경기를 가졌을때 송신영이 넥센 덕아웃에 죽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김경문 감독이 염경엽 감독에게 "저놈 넥센으로 보내야겠네"라고 우스개 소리를 던졌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27]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28] 실제 생년이 1976년이라 한국 나이로 정말 마흔이다.[29] 고교 시절 커브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30] 사실 2군에 내려간 뒤 공부를 하며 미리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데려올 때 마흔이 넘었다는 걸 알고 미안해했다니 양심은 있었던 모양[31]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32] 2013년 4월 16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33] 근데 이 짤의 심판은 강광회다. 현대-넥센에 악의적으로 심판하기로(?) 유명하다.[34] 타자는 동무. 그걸 골라낸 북한의 선구안[35] 이름은 그렇긴 하지만 실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듯 눈매가 날카롭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인상이라 사람에 따라 무섭게 보일 수도 있는 얼굴이다. 사인요청 했다가 눈빛이 지려 도망간 사람도 있을정도이다. 권혁과 비슷한 느낌. 이것 때문에 얼굴로 보는 야구선수 직업 짤방으로 결혼 사기꾼(…)과 닮았다는 농담이 돌아 스타일을 살짝 구긴 적도 있다.[36] 7회까지 8:14라는 엄청난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고, 몸에 맞는 공이 난무한 경기였다.[37] 황재균도 고효준에게 항의를 하며 달려드는 모션을 보여주었다.[38] 벤치 클리어링에서 탱커이자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김동주를 상대로 기죽지 않고 맞섰다.[39] 공이 팔 쪽으로 붙었던 데다, 김주찬은 이미 2013년 초에 손목에 공을 맞고 부상으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발끈할 만했다.[40] 여기에 같은 투수조 고참이었던 서재응도 맞서서 눈을 부릅떴다.[41] 한편 이 때 송신영이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건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서재응과 정근우의 다툼때 흥분해서 정근우에게 달려들던 김종국도 점퍼를 입었다는것이다(...).[42] 설령 항의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더라도 배트는 두고가는게 불문율이다. 배트는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물건이다.[43] 2013년 5월 15일자 베이스볼 워너비 방송에서 담벼락 토크 인터뷰 중에 직접 말한 내용.[44] 멀리 갈 것도 없이 2012년 한화 개막전 경기를 보면 된다.(...)




* 경기수가 유난히 많다. 실력도 그저그렇고 그래서 쓸만했는지 경기를 많이 내보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