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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6600><colcolor=#fff>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팀장 | |
정민혁 鄭敏爀 | Chung Minhyuk | |
출생 | 1983년 9월 14일 ([age(1983-09-13)]세) |
대전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대전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 연세대[1]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사우타 |
프로 입단 | 2003년 2차 9라운드 (전체 69번, 한화)[2]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2007~2015) |
지도자 | 충남중학교 야구부 코치 (2015~2017) |
프런트 |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2018~) |
병역 | 공익근무요원 (2008.11.10~2010.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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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한화 이글스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 現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팀 팀장.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1983년 9월 14일생으로 원래는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어야 하나, 대전고 시절에 투구 폼을 바꾸는 과정에서 1년 유급하였다.[3] 그 때가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이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잠재성 때문에 한화에 2차 9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바로 입단하지 않고 2003년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진학 후에도 투구폼을 바꾸는데 전력을 다하여 3학년때 마침내 투구 폼 교정이 완료되었다. (대학교 시절에 폼 교정을 했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이다.대전고 3학년 시절에 변경을 하였다. 유급 과정에서 당시 투수코치였던 진정필 투수 코치와의 상의 끝에 이루어졌다.바뀐 투구폼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인정 받아 당시 지역 연고 구단인 한화 이글스의 선택을 받았으며 연세대 진학 후 언더핸드 투구폼이 완성 되어 1학년때 부터 팀의 에이스를 맡게 된다. )원래 오버핸드 투수였는데, 투구 폼 교정 끝에 언더핸드로 바꾼 것이다. 이후 언더핸드의 위력을 대학 리그에서 보여주며 3, 4학년 시기 2년 연속 대학 리그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대학 대표팀에도 늘 선발되어 대표팀의 핵심 선수가 되었다.
이런 호성적을 바탕으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의 유일한 아마추어 멤버로 선발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리그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2억 5,000만원이라는 류현진과 같은 액수의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국가대표까지 선발되어 병역면제도 유력하니 앞날이 밝아보였지만 현실은 도하 참사. 가장 중요한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대선배와 후배가 삽을 펐으니, 아마추어인 정민혁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동메달만 들고 귀국.
2.2. 한화 이글스 시절
결국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팀에 합류하였으나, 2007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였다. 1군 13경기에 등판해 18과 2/3이닝 동안 1승 1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고 소화한 이닝도 적어서 좋은 성적이라 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기회 자체가 적었던게 문제지만. 2008년에는 아예 시즌 내내 2군에만 있었다가 어깨 수술을 받았다. 같은 시기, 김인식 감독 밑에서 동기인 안영명과 윤규진이 혹사당하며 망가졌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 할 지경.어깨 수술 이후 선수들 군대 안 보내기로 소문난 한화에선 드물게 입대를 결심,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보냈다. 동기인 안 모 투수, 윤 모 투수가 당시에 모두 미필이고, 군대 다녀오는 동안 새로운 감독이 부임했다는 것은 확실한 이점.
2.2.1. 2011 시즌
소집 해제 후 2011 시즌에 팀에 복귀하여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1군 불펜 투수진이 전멸하고, 그나마 쓸만한 불펜투수는 선발 로테이션으로 빠지고, 가장 믿음직한 불펜투수는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무너지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2군 내 다른 경쟁자에 밀려 1군 콜업의 기회가 없었다.그래도 2군에서 꾸준히 던지며 방어율 4점대의 평이한 기록을 남겼다. 이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게, 정민혁은 불펜 투수고 1경기에서 던지는 이닝이 많지 않은 편이다. 실제 그의 2군 기록을 보면 상당수의 경기를 잘 막으나 갑자기 어느 경기에서 신나게 쳐맞는 모습이 나온다. 즉, 가끔 털리는 날을 감안하면 비교적 준수한 성적.
이후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갔다 뺑소니 사망사고 내고 증발한 어느 투수와, 끝내 영점이 안 잡혀서 2군으로 도로 쫓겨난 투수 등으로 불펜진에 자리가 생기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사실상 1군 붙박이던 계약금 5억 5천만원짜리 분식점 사장님이 마침내 야왕의 분노를 사 2군으로 쫓겨나면서 그 자리에 전격적으로 콜업되었다.
1군 콜업 직후인 6월 14일 KIA전에서 9회초에 등판에 3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시즌 첫 1군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져서 세이브는 기록하지 못했고, 또 KIA 타자들이 의욕을 상실해 아무 공이나 막 건드린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한화 팬들의 반응은 '유전어보다 나으면 무조건 괜찮다!!!'이니. 불펜진 사정도 안 좋으니 당분간 중간계투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화 팬들은 2011 시즌 갑작스레 시작된 한화 투수진의 화수분 야구의 또 다른 열매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보았지만, 콜업되자마자 1주일 연속으로 등판하더니 도로 2군으로 사라져 버렸다.
2.2.2. 2012 시즌
특히 12회말 2아웃 상황에서 박용택과 이병규를 차례로 고의4구로 걸러 만루를 채운 후 윤요섭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짓는 장면은 이 날 경기의 백미.[4]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던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를 대신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금 재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한대화 감독과 정민철 투수코치는 2011시즌부터 정민혁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연투는 기본에 오랜 이닝까지 소화하게 하면서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2.2.3. 2013 시즌
4월 3일 KIA전 8회에 등판했으나 이미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었고, 팀은 12:1로 대패했다. 이 해에는 1군 3경기에 그쳤다.2.2.4. 2014 시즌
2.2.5. 2015 시즌
1월 고치현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린 홍백전에서 2이닝 퍼펙트를 기록하며 희망을 밝혔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1군에 오르지 못했고, 2군에서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지 못했다. 결국 시즌 전 육성선수로 등록됐던 임익준이 정식 선수로 전환되면서 2015년 6월 28일에 웨이버 공시됐다.[5]2.3. 방출 이후
방출 이후 그간의 소회를 담은 인터뷰가 나왔다. 박동희의 야구인 -'전력 외 통보'를 받은 남자, 정민혁이후 뚜렷한 거취가 보이지 않다, 충남중학교 투수코치로 속초 전지훈련을 지휘한 것이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되었다.
같은 팀에서 뛰었던 김태완이 웨이버 공시로 한화에서 방출된 이후 충남중학교에서 개인 훈련을 할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기사
3. 프런트 경력
2018 시즌부터는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팀에 합류하여 프런트 생활을 시작했다. 기사 첫 해에 큰 역할을 했는데, 10라운드에서 누굴 뽑을지 정해야 되는 상황에서 유신고 김진욱을 뽑자고 강하게 주장해서 결국 픽했는데, 바로 구속을 크게 늘리는데 성공하여 10라운드에서 기대해볼만한 유망주를 건지는 실적을 만들어냈다.2020년 9월에 열린 신인드래프트 이후 이글스tv에 출연했다. 직함은 대리.
2021년에는 이상군 스카우트팀 팀장이 북일고 감독으로 취임하고, 임주택 차장이 운영팀으로 부서가 바뀌면서 스카우트팀을 총괄하게 된 정민철 단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스카우트 팀의 팀장이 되었다.[6] 그동안 그가 참여한 드래프트의 결과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팬들도 호의적인 반응이다. 충청 지역, 호남 지역 등을 종횡무진하며 1차지명 후보 선수들을 관찰하러 다니고 있다고 한다.
2022년 12월 1일 공식적으로 스카우트팀 팀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지난 2021년에 파트장이란 직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팀장급 위치에서 한화 스카우트팀을 이끌었고 얼리픽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 2023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지명자 문현빈의 활약을 확신했던 혜안과 독립리그 출신 윤산흠 발굴 등 최근 1~2년 사이 팀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성공적인 신인 드래프트를 성공시킨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팀장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이는 구단 최초의 대리급 팀장 승격이란 파격적인 대우로 한화 프런트 내부에서 정민혁의 높은 기여도 뛰어난 업무 능력 평가 등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202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향후 팀의 미래와 가야할 방향에 맞춰 균형 있게 지명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일부 극성 칰팬의 원성도 자자한 2024 드래프트였지만 팬들 사이에서 정민혁은 믿어 보자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과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칰무원 또는 한화 5적 등에 포함된 무능한 스카우트팀과 프런트들의 실패한 지명과 달리 확실히 2018년 전/후로 정민혁이 스카우트팀에 합류 후 보이는 퍼포먼스 차이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며 특히 실권을 잡았다 볼 수 있는 최근 1~2년 사이의 지명에서는 분명 과거와 달리 뒷목 잡게 하는 홍대픽을 남발하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4. 피칭 스타일
구질은 비교적 묵직하게 미트로 꽂히는 게 매우 좋아 보이지만, 사이드암치고는 공의 무브먼트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공은 좀 가벼워 보여도 무브먼트가 더 좋은 신주영과 조금 반대되는 모습이다.5. 여담
- 기혼자이며, 자녀는 2남이 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2007 | 한화 | 13 | 18⅔ | 1 | 1 | 0 | 0 | 3.86 | 16 | 1 | 8 | 4 | 15 | 1.286 |
2008 | 1군 기록 없음 | |||||||||||||
2009 | 군복무(공익근무요원) | |||||||||||||
2010 | ||||||||||||||
2011 | 12 | 9⅔ | 0 | 0 | 0 | 0 | 8.38 | 20 | 3 | 2 | 0 | 3 | 2.276 | |
2012 | 25 | 30⅔ | 1 | 1 | 0 | 2 | 6.16 | 34 | 6 | 7 | 1 | 19 | 1.337 | |
2013 | 3 | 3 | 0 | 0 | 0 | 0 | 12.00 | 5 | 0 | 3 | 3 | 3 | 2.667 | |
2014 | 1군 기록 없음 | |||||||||||||
2015 | ||||||||||||||
KBO 통산 (7시즌) | 53 | 62 | 2 | 2 | 0 | 2 | 6.10 | 75 | 10 | 20 | 8 | 40 | 1.532 |
7. 관련 문서
[1] 체육교육학과 03학번[2] 연세대 진학으로 데뷔는 2007년에 했다.[3] 때문에 나이가 1살 어린 팀 동료 안영명, 윤규진, 정현석(당시 정형순)과 동기가 됐다. 원래 동갑내기로는 박희수가 있다.[4] 참고로 이 날 정민혁의 3볼넷은 모두 고의4구였다.[5] 5월말 정식선수 규정 정원을 채워 웨이버 공시됐던 추승우와 같은 사례다.[6] 공식적인 직함은 "파트장"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