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23:19:57

정민철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파일:35장종훈.png 파일:23정민철1.jpg 파일:21송진우1.jpg
장종훈
(2005.09.15)
정민철
(2009.09.12)
송진우
(2009.09.23)


정민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1997 KBO 리그 탈삼진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3 KBO 리그 승률왕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1 [[틀:한화 이글스 주장|{{{#FFFFFF '''빙그레/한화 이글스 주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1986년 ~ 현재
1986~1990 1991 1992~1993 1994~1995 1996
? 유승안 이강돈 강정길 장종훈
1997~2000 2001 2002 2003 2004
강석천 장종훈 김종석 임수민 이영우
2005~2006 2007 2008~2010 2011~2012 2013
이도형 정민철 신경현 한상훈 김태균
2014 2015 2016 2017[(1)] 2018[(2)]
고동진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송광민 최진행
송광민(임시 주장)
2018~현재[(3)]
이성열

[(1)] 기존 주장 이용규의 부상으로 송광민을 정식 주장으로 임명.[(2)] 기존 주장 최진행의 부진으로 송광민을 임시 주장으로 임명.[(3)] 임시 주장 송광민의 부상으로 이성열을 정식 주장으로 임명.

}}}}}} ||
빙그레 / 한화 이글스 등번호 55번
김태민 정민철(1992~1999) 조규수(2000~2001)
조규수(2000~2001) 정민철(2002~2004) 윤규진(2005~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23번
엔젤 페냐(2004) 정민철(2005~2009) 영구결번[1]
한화 이글스 등번호 71번
유지훤(2005~2009) 정민철(2010~2012) 김성한(2013~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88번
후쿠하라 미네오(2012) 정민철(2013~2014) 다테이씨 미쓰오(2015)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500><table bordercolor=#d02c20><tablebgcolor=#FFFFFF><:> MBCMBC 스포츠+의 야구 중계진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진행자 MBC 소속 김나진
MBC 스포츠+ 소속 김수환, 김태우, 손우주, 신승대, 이정호, 정병문, 정용검, 한명재, 한장희
해설자 MBCMBC 스포츠+ 겸임 김병현, 김선우, 김형준, 송재우, 정민철, 허구연
MBC 스포츠+ 단독 박승현, 박재홍, 손건영, 심재학, 양준혁, 유선우, 이상훈, 한승훈
}}}}}} ||
MBC SPORTS+/KBO 리그 중계, MBC SPORTS+/MLB 중계

파일:external/thumb.mtstarnews.com/2015030808551931939_1.jpg 파일:2017110500802_0.jpg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72
파일:external/dimg.donga.com/25218314.1.jpg
{{{#FFD700 한화 이글스 No.23}}}
정민철(鄭珉哲 / Jung Min-Chul)
생년월일 1972년 3월 28일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대전광역시[2][3]
학력 신흥초-충남중-대전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신체 187cm 81kg[4]
프로입단 1992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빙그레)
소속팀 빙그레-한화 이글스 (1992~1999, 2002~2009)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0~2001)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0)
한화 이글스 1군 투수보조코치 (2011)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1~2012)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2~2013)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3~201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17~)
해설위원 MBC/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선수 경력4. 코치로서의 모습
4.1. 지도자 생활 초기4.2. 혹평과 함께 2군으로4.3. 2013 시즌, 1년만에 다시 1군으로4.4. 2014 시즌
5. 해설자로 변신6. 기타7. 팬 서비스8.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파일:external/file.mk.co.kr/20110112aa001.jpg
날 있게 해준 기반이다. 다이빙으로 치면 도약대고, 육상으로 치면 스타트 지지대 같은. 내 삶을 지켜준 발판이었다. 난 지금도 방송 부스를 나가면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자다. 그런 자긍심 하나로 살고 있다.
- 정민철에게 한화란.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자 투수코치, 現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등번호는 55→23번. 송진우와 더불어 독수리 군단의 마운드를 책임졌던 우완 에이스였다.

통산 다승 2위(161승)를 비롯하여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 연속 10승 이상, 평균자책점 2.80, 연당 평균 투구 이닝 188이닝, "퍼펙트 게임에 가장 근접했던 투수" 등의 기록을 가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이다.[5] 반면 단 한 번도 다승왕을 기록하지 못하는 등 은근히 '비운의 투수'이기도 하다.

꼴통쇼라는 정민철이 참여한 강연회가 있다. 정민철의 인생관과 유년 시절 그리고 깨진 퍼펙트 게임 에피소드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밑에서 언급될 정민철의 입담을 확인할 수 있다 겸손함의 아이콘

다만 아쉬운 건 이종범과 비슷하게 일본 진출 before/after 수준으로 차이가 심하다는 것. 정민철은 더 심한 수준.

2.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주무기는 빠른 공. 훗날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성기 시절 최고 구속은 152km/h였다고 하나, 실제 경기에서 찍히는 최고 구속은 145~8km 정도로, 강속구 투수이긴 했으나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라고 보기엔 살짝 애매했던 정도.

사실 정민철의 강점은 구속보다도 구위 자체 였다. 테일링이 좋은, 소위 말해서 공 끝이 좋은 타입. 즉, 원조 돌직구. 동시대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구위로 평가 받는다. 특히 박경완이종범이 본인이 경험한 최고의 공으로 정민철의 공을 꼽았고, 전성기 정민철의 볼끝은 임창용오승환보다 더 좋다고 평가하였다.임창용과 오승환 둘다 서른 넘어서 구위가 더 좋아진건 잠시 잊자 둘다 불펜이라는 것은 잊지 말자

슬라이더와 커브, 포크볼 등 당시 언론에서 설레발 언급되었던 변화구의 레퍼토리 자체는 다양했으나, 어느 하나 주무기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빠른공 위주로 던지되 유인구로 슬라이더를 써먹던 전형적인 투피치 스타일. 제구력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칠 테면 쳐보라고 가운데로 팡팡 꽂아 넣었던 탓에 볼넷이 상당히 적었다. 스태미너도 좋아서 완투를 밥 먹듯이 한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파이어볼러 이닝이터 선발투수.

커브볼러로 유명한 김원형과 비교를 하자면, 김원형은 직구와 커브의 구속-궤적이 비슷한 것을 이용했다면 정민철은 확실한 직구와 그 직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커브를 사용했다는 것.

다만 2000년대 이후로 직구 구속과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 탓에 커브와 커맨드(제구력)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폼을 바꿔야 했다. 선수시절 후반기에 사용한 주무기는 커브였는데, 본인 스스로가 너클커브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탓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3.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민철/선수시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내가 받아 본 직구[6] 중 최고는 정민철
- 박경완
선수시절 정민철은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우완 정통파 투수였다.

4. 코치로서의 모습

4.1. 지도자 생활 초기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401271532772219_52e5fdd34ab35.jpg[7]

은퇴 이후 2010년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 바로 코치진으로 이동했으며 코치로서 한화 마운드를 볼 때마다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한 명 잘하면 다음 날 바로 털리는 선발진… 물론 루헨진은 제외

2010년 당시엔 불펜코치인데다가 별다른 언급도 없어서 그냥 평범한 투코로 1년을 보냈으나, 특이한 투구폼으로 10여 년간 코치들에게 투구폼을 변경해야 한다는 강요와 투구폼을 변경하면 오는 어깨의 통증 때문에 투구폼을 바꿔야하나하는 고뇌와 자괴감에 빠져있던 박정진에게 네가 정말 던지고 싶은 투구폼으로 던져라라는 조언과 신뢰를 보내줘서 2010년 그의 각성을 이끌어내 한화 이글스불펜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2011년 1군 서브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하여 한용덕 코치와 함께 장민제, 안승민을 성장시키고 양훈을 부활시켰다! 2011년 5월 2군으로 내려간 한용덕 코치 대신 1군 메인코치(?)가 되었다.

한화 투수들에게 자신이 현역시절 즐겨 던졌던 슬로커브[8]를 전수시켰으며 실제로 2010시즌에 유원상이 슬로커브를 장착하면서 꽤나 재미를 봤다. 그래봤자 5승. 지못미 ??:한화에 슬로커브를 잘 던지는 재미있는 투수가 있다

2011년 시즌이 지나가면서, 투수 교체가 서툰 한대화 감독을 대신해 투수교체 전권을 잡았다.[9] 그래서 생긴 별명이 바람돌이, 정간신(…). 선발 투수를 한계 투구수까지 던지게 하면서 최대한 긴 이닝을 먹게 했다. 이런 방향성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투수가 양훈. 조금 투구수를 많이 가져가게 하면서 완봉승을 하게 된 뒤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10이닝 연장전에서 선두 타자에게 2루타를 맞으면서 무사 2루의 위기를 처하게 되었음에도 한대화 감독을 설득해 양훈 스스로 이닝을 끝내게 하였고, 이후 양훈은 기복이 심했지만 퐁당퐁당 2경기에 한 경기꼴로 류현진에 버금가는 성적을 내주게 되었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는데, 이렇게 어지간한 상황은 선발 투수에게 맡긴 탓에 투수교체가 계속 한 타이밍씩 늦어져 결국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날려먹은 경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정민철의 투수 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팬들도 다수.

그래도 이 때까지는 박정진, 양훈, 김혁민,[10] 안승민을 키워낸 명코치라고 찬양받았다.

4.2. 혹평과 함께 2군으로

2012년 들어 이해할 수 없는 투수 교체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줄줄이 말아먹으며 돌민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고, 선수시절 그를 사랑하던 팬들도 한대화와 세트로 물러나기를 바라는게 현실이 되었다.

2012년 5월이 되자 2년동안 팀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던졌던 박정진을 5월 25일에 2군 가기 전까지 21경기 중 14경기에 올리는 백정질을 하였다. 박정진이 정상이 아닌 상태로 콜업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때마다 두들겨 맞으며 몸과 멘탈이 함께 붕괴되었고 결국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2년 6월 7일 류현진 선발 경기에서는 7: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불펜 정민혁이 흔들려 연속 안타를 맞았는데도 바꾸지 않고 기어이 무사 만루를 만들어 3점을 내주고 볼넷머신으로 전락한 바티스타를 9회에 올려 결국 경기를 내지고 에이스의 승리까지 날려먹는 최악의 투수교체를 보여주었다.

2012년의 정민철의 투수 기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원칙이라 할 수 있으며, 필승조 역할을 하는 선수를 대패하는 경기에 무조건 연투시켜 정작 이기고 있는 경기에 내보낼 필승조가 없거나 지친 상태로 내보내게 하여 망친 사례가 끝도 없다.

또한 김인식 감독 밑에서 배웠는지 불펜투수를 무조건 혹사시키는 것에 재미를 들려 박정진, 정민혁, 안승민, 마일영한화에서 얼마 남지 않은 쓸만한 불펜들이 모두 맛이 갔다.

결국 2012년 7월 6일 자로 2군으로 내려가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반대급부로 1군 투수코치를 맡은 이는 다름아닌 송회장님. 그리고 송회장님도 마찬가지로 말아드셨다

4.3. 2013 시즌, 1년만에 다시 1군으로

전반적으로 투수 육성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실전에서 굴리는 데에는 서투른 듯. 그러니까 투수코치판 박종훈 2013년 조지훈, 송창현, 이태양 등의 신인투수들이 2군을 다녀온 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육성능력을 다시금 주목받았다.

2013 시즌 전반기가 종료된 7월 18일 자로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되었다. 팀의 전면 리빌딩, 그리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1군과 2군 코치간의 보직이 맞바뀐 것. 이로서 1년 전 보직을 맞바꿨던 송진우 코치와 다시 한 번 보직을 맞바꾸게 되었다.

4.4. 2014 시즌

1군 투수코치직을 맡게 되긴 했지만 경기 중 잠깐잠깐 보여지는 덕아웃 광경으로는 실제 실권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5이닝 63구밖에 안 던진 앤드류 앨버스를 강판시킨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민철은 퀵후크를 좋아하는 투수코치가 아니다. 선발투수를 조금이라도 더 믿고 조금이라도 더 지켜보는 스타일. 그러다가 털리고 나서야 바꿔줘서 문제지만 팬들은 투수 교체는 김응용 감독이 실질적으로 다 하고 있으며 정민철은 불펜에 전화거는 셔틀에 불과하다고 대체로 생각하고 있다.

5월 8일에는 선발투수 송창현이 7이닝 2실점 호투를 이어가고 있던 터라 8회에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감독 쪽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던 송창현을 돌려보내고 어깨를 툭툭 쳐 주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를 탔다. 이로써 투수교체에 관해 투수 코치가 전혀 권한이 없음을 인증했다. 사실상 투수교체에 있어 전권을 쥔 한대화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기에 현재 본인에게 향하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는 셈.

그리고 밑에 나오는, 그의 선수시절 등번호인 55번을 달 정도로 그를 존경하는 이태양윤규진. 속칭 "정민철 키즈"가 이번 시즌 각성해 각자 팀의 에이스와 마무리로 자리잡음에 따라. 정민철의 대한 평가와 기대치가 올라갔다. 송창현유창식의 볼질까지 잡는 데 성공한다면 투수코치로의 역량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즌이 흘러감에 따라 정민철 역시 팬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한화의 투수진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리그 최악인 관계로 투수코치인 정민철이 집중포화를 받게 되었다. 특히 투수교체 절대 만능론(...)을 펼치는 대다수의 팬들은 2014년도의 투수교체의 책임자가 정민철이라는 논리로 극렬 비판하고 있는 상황.

그나마 일부 코어팬들에게선 "그래도 엉망징찬 수준의 한화 코치진 중에서 정민철만은 그럭저럭 쓸만하지는 않냐?"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였다. 그래도 성실함과 선수들과의 인간 관계, 선수 관리 측면에서 정민철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
프런트도 비슷하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인지, 신생 김성근 체제 출범 하에서 수많은 칡무원 코치들이 옷을 벗게 된 와중에도 이상군, 장종훈과 함께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레전드 출신 코치가 되었고, 29일 마무리 훈련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10월 30일 결국 자진사퇴하였다. 팀에서 물러나 좀 더 경험을 쌓을 계획이라고. 정민철의 코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절친한 박찬호가 직접 해외에 자리를 알아봐주고 있다는 기사가 흘러나오는 등 해외연수를 가능성이 타진되었으나...

11월 6일 MBC SPORTS+ 해설위원 확정. 같은 팀 주루코치였던 이종범 코치와 함께 가게 되었다.

솔직담백한 인터뷰로 코치로서의 실패와는 별개로 훈훈한 반응을 얻고 있다.

5. 해설자로 변신

2014시즌 종료 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영입되면서 해설자로 변신하게 된다.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성공 가능성을 높게 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부터 선수 출신 가운데 외모와 언변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탓에, 꽤 오래전부터 방송계나 팬들로부터 해설가로 전향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꾸준하게 흘러나왔었기 때문. 하지만 이분을 보면 무조건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정민철이 코치직에서 물러나자 방송 3사 모두에게서 해설위원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2015년 3월 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LG 트윈스의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이종범과 함께 해설위원 데뷔를 했다. 3월 28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한화 이글스의 개막전에서 첫 중계를 맡았다. 대체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 젊은 선수 출신 해설자 중에서는 박재홍 위원의 뒤를 이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친정팀이었던 한화는 12회말 서건창에게 끝내기를 얻어맞고 5:4로 패배를 당했다

같은 해에 은퇴해 영구결번을 받고 같은 해부터 해설을 시작한 선배투수가 구설수에 오르고, 친정팀으로 부터 거부받은 것과는 달리 다행히 선방하고있다. 현재 네이버 스포츠에서 송출 중인 라디오볼에서도 해설을 맡고 있다.
  • 주로 박재홍과 함께 해설을 맡는데 퀄리티 높은 해설로 호평을 받고 있다.
  • 기본적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해설을 하고 선출 특유의 볼배합, 투수의 심리전에 대한 해설에 능하다.
  • 투구이론에 능통한 모습을 보인다. 구위가 떨어지거나 제구에 난조를 보이는 선수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낸다.[11]
  • 알려진 바 대로 기본적으로 언변이 좋아서인지 한번 말을 시작하면 더듬거나 비문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 톤과 억양이 좋다. 지방 출신임에도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없는것이 다른 선출 해설들과 비교된다. 보이지 않는 분이라던가... '어-예'로 굳어진 이 분이라던가...[12]
  • 다소 투수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해설을 박재홍의 타격 중심의 해설로 적절히 밸런스를 맞춰 박재홍, 정민철, 한명재 조합은 3사 최강이라고 불릴 정도.
  • 중계 도중 가끔 깨알같은 개드립을 시전할 때가 있다. 김인식 감독과의 공동해설 때는 성대모사로 터뜨리거나 박지영 아나운서가 벌에 습격당했을 때 양봉드립을 친다던가...
  • 경기중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역시 좋은 편이다. 공수교대 중 한명재 캐스터가 화장실을 갔다가 볼일이 늦어져서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는데 "지금 한명재 캐스터가 없어서 제가 캐스터를 해야겠네요... (허겁지겁 들어온 한명재에게) 한명재 위원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능청스럽게 넘어간 적이 있다.
  • 다만 한화와 타팀간의 경기의 해설을 맡을 때는 친한화 성향의 해설을 하는 경향이 종종 있어서 그 경우에는 까인다. 초창기에는 한화 투수들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비교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분처럼 대놓고 편파중계하지는 않는다
  • 메이저리그 해설도 하고 있는데 2016년에는 MLB 올스타전 중계를 위해 정용검 캐스터와 함께 샌디에이고로 가게 되었다. 지상파 MBC에서는 류현진 등판일에 손혁 해설과 번갈아 참여했고 최근에는 김선우, 김병현과 번갈아가며 출연해 해설에 참여한다. 또 2019년 클리블랜드에서 펼쳐질 MLB 올스타전 중계 해설을 맡아서 미국으로 출국했다. 두 번째 MLB 올스타전 중계이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한국시간 2019년 7월 5일 열린 류현진 선수의 시즌 10승 경기를 관전했다.
  • 2015년 5월 30일 울산에서 중계된 MBC의 지상파 해설에 처음 투입됐다. 이후 2017년까지 이종범과 번갈아 가면서 MBC 지상파 중계의 서브 멤버로 활약하다가 2018년 이종범이 LG 코치로 영입되어 하차하면서 사실상 허구연 해설과 같이 KBO 지상파 중계 고정 멤버가 되었다.
  • 2018년 4월에는 한화경기를 해설하면서 선수시절 같이 활약한 한용덕 감독, 송진우 코치 등을 보면서 무언가 느낀 것이 있는지 "언젠가 현장으로 돌아가 해설자로써 배운 것 을 활용해 지도자 시절 못했던 것을 만회하고 싶다" 등의 멘트를 날리며 한화 투수코치시절을 회상하며 언젠가 현장으로 돌아올 것을 희망하였다.
  • "2015년 시즌부터 MBC Sports+ 해설위원을 첫 시작한만큼 5강 후보로 매년 한화 이글스의 우승 예측을 계속 점쳐왔다. 2017년 시즌까지.. 그래도 2018년 시즌 11년만에 가을야구 초대권 준플레이오프 티켓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친정팀 사랑 예측을 잘 선택한듯 싶다." 정민철 베투
  • 2019년 류현진/2019에 맞추어서 10승을 거둔 류현진이기에 사실상 아내인 배지현을 소개시켜준것도 정민철 위원 덕분인셈..
  • 201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프로그레시브 필드에 취재차 MBC팀과 함께 미국 현지로 가서 MBC 김나진 아나운서랑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이날 올스타전은 류현진/2019 투수가 올스타전 첫 선발투수로 확정되었다.

6. 기타

파일:/listimglink/6/2013113014462244960_1.jpg
2013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슈퍼 매치에서 한국 대표로 역투하는 모습.
  • 한화 구단이 영구결번한 번호는 23번. 문제는, 정민철이 전성기 동안 달았고 가장 오랜 기간 달았던 번호는 55번이라는 점이다.[13] 23번의 경우, 2004년 부진한 성적 탓에 다음 해인 2005년 기분 전환으로 바꾼 번호[14]. 원래 번호인 55번은 후배 윤규진이 물려받았다가 윤규진이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2012년에는 신인 이태양이 이 번호를 달았다. 때문에 정작 23번을 달고 제대로 활약한 건 2007년 밖에 없으며 55번을 달던 전성기 시절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정작 전성기 시절 포함, 선수생활 내내 달다시피했던 55번이 아닌 23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다보니 정민철의 영구결번은 논란이 많은 편.

    다만 일이 이렇게 된 것이 프런트의 책임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윤규진에게 번호를 물려준 것이 정민철 본인의 의사였기 때문. 윤규진은 정민철의 초-중-고 직속 후배로 어렸을 때부터 55번을 달았다고 한다. 은퇴 당시 프런트에서 영구 결번으로 55번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지만, 그 경우 후배가 사용 중인 번호를 뺏는 셈이 되기 때문에 정민철 스스로 포기, 결국 23번을 선택했다. 어찌 되었건 정민철 본인의 선택이기에 존중해야 하고, 번호를 물려받은 윤규진 선수를 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 손가락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파일:/image/020/2010/09/04/30966740.1.jpg
    데뷔 때부터 화제가 되었을 정도. 특히 선동열이 "내 손가락이 정민철만큼 길었으면 슬라이더를 더 잘 던질 수 있었을텐데..."라며 부러워한 것도 꽤 유명한 이야기. 거기서 더 잘 던지면 얼마나 더 잘 던질려고? 이 때문에 손가락이 길어서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변화구를 잘 던질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선수 생활 내내 들어야 했다. 물론 크다고 다 정력이 좋은 게 아니듯 손가락이 길다고 변화구를 잘 던질 것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도 야구계 일각에 존재하고 있는 대표적인 편견. 정민철 본인은 코치 시절에 이런 견해를 밝혔다. 기사 [15]
  • 선수 생활 동안 맞은 홈런 중 본인에게나 당시 팬들에게나 가장 임팩트가 컸던 홈런은, 1996년 8월 23일 이종범에게 바깥 높은 공을 던져 허용한 홈런. 9회초 2사 만루 4대 1로 앞서던 중 맞은 역전 만루 홈런이었기 때문. 이날 정민철은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혼자서 2병이나 깠다고(...). 기사 한편 이 홈런이 나온 경기가 바로 이종범이 9회말에 포수마스크를 쓴 경기이다. 즉, 9회초에 총력전을 펼치느라 포수가 교체 되었는데 역전 만루홈런을 치고 9회말에 포수가 없어서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갔다. 사실 이런 역전패의 결과가 나오게 만든 최고 원흉은 다름 아닌 감독 강병철이다. 애초에 정민철은 이 경기 선발이 아니었다. 송진우가 8회까지 1실점으로 던지고, 9회에 힘이 떨어져 연속해서 주자를 내보내자 갑자기 정민철을 구원 등판시켰던 것. 그리고 구원 등판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이 경기에 패한 후 강병철의 인터뷰가 그야말로 걸작. "정민철 정도의 베테랑이라면 알아서 거를 줄 알았다"라나 뭐라나... 정민철은 통산 BB/9가 2.81에 불과할 정도로 볼넷을 꺼리는 타입으로 유명했으며, 1996년은 패스트볼 구위가 하늘을 찌르는 전성기 때였다. 그런 정민철이, 아무리 상대가 전성기 이종범이라고 해도 밀어내기를 감수하며 2사 만루에서 유인구로 승부한다? 그야말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 정말로 강병철이 2사 만루에서 이종범을 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명확하게 사인을 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경기 끝난 후에 선수탓으로 돌리며 입을 털어서는 안 되었던 일. 사실 강병철이나 정민철이나 설마 만루홈런 맞을 줄은 몰랐을 게다 그렇다해도 강병철은 그런 식으로 선수탓으로 돌리면 안됐던 거고
  • 서울 삼성 썬더스이상민 감독과는 대전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홍대부고 재학중이던 이상민이 매년 대전고로 전지훈련을 오게 되면서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홍대부고 얼짱이 누구냐? 난 대전고 얼짱이야
  • 특이하게도 결혼식(1999년 3월 14일)을 계룡대 내의 한 군인회관에서 올렸다고 한다. 장인어른이 군장교라서 그런 듯. 직속 상관은 아니었다고 한다. 부인인 김경아씨와의 만남은 극적인데, 1993년 군부대에서 단기사병(방위)으로 근무할때 한 여고생이 매일 위병소앞을 지나가서 안면이 있었다가 5년뒤인 1998년, 대전에서 포켓볼 치는데 누가 다가와서 "아저씨, 나 몰라요?" 하길래 봤더니 그때 그 여고생이었다고... 유튜브 채널 서경석TV에선 방위때는 말도 못걸고 있다가 우연히 커피숍에 만나서 열심히 대쉬했다고 한다. 당시에 정민철은 팔꿈치 부상으로 6,7월을 날리고 재활중이었는데 낮에 재활을 마치고 저녁엔 시간이 나서 자주 만나다가 복귀후 후반기에만 9승을 거두며 7년연속 10승을 달성했고, 이듬해 스프링캠프 다녀오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 선 굵고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모난 데 없는 순한 성격에 특유의 눈웃음과 선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선남형 미남인데다 대전 최고의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에 연고지에서의 인기가 대단하였다. 은퇴 직전인 2009년에 살이 엄청 불어버렸지만 코치 선임 이후 마음고생 때문인지 다시 살이 빠져 예전의 모습을 많이 되찾았다.
  • 지역의(정민철-대전, 김원형-전주) 프랜차이즈에 커브가 주무기[16]인 미남 투수라는 점에서 김원형과 비견되는 경우도 꽤나 있었다.
  • 선동열의 후계자라는 별명답게 선동열이 아끼는 선수였다. 정민철이 결혼을 전후로 해서 체격이 불자[17] 타팀 선배인 선동열이 따로 불러 몸 관리 안 하냐고 타박을 주었다.[18]
  • 박경완이 평생에 잡아본 최고의 직구로 꼽았다. 기사 선동열의 직구가 돌덩어리를 잡는 느낌이라면 정민철의 직구는 공을 잡아도 그 안으로 파고드는 독수리 같다고... 역시 이글스의 상징다운 독수리 직구. 사실 박경완의 발언이 2000년대 후반의 팬들에게 유독 널리 알려졌을 뿐, 애초에 정민철은 90년대 초중반부터 계속해서 이런 식의 평가를 받아왔다. 포수 바로 뒤에서 공을 보는 심판들이 뽑은 최고의 직구로 정민철과 당시 OB 베어스의 김상진을 꼽는 기사도 있었고, 이종범 역시 최고 직구로 정민철의 공을 뽑으며, 오승환, 임창용보다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사

파일:attachment/정민철/2014-04-12-17-22-51-1.jpg
  • 마구마구 2015의 정민철(가명: 윤지현) 레전드카드는 유니폼은 빙그레인데 한화 소속 선수로 적용되는(...) 오류가 있었으나 2014년 4월 20일 현재는 제대로 한화 유니폼 착용 상태. 그리고 커리어 하이는 1999년인데 1994년이 엘리트카드로 되어 있다.[19][20]
  • 유머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송진우에 따르면,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웃긴 사람이 바로 정민철이라고. 안타깝게도 팬들이 이런 정민철의 면모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2008년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한 것이 거의 유일무이한 예능 출연. 이 때, 프로 선수가 던진 몸에 맞는 공이 얼마나 아프냐는 질문에 김태균이 "민철이 형 공은 맞아도 안 아프다"라는 말을 하자 정민철은 "태균이는 살이 쪄서 공에 맞아도 괜찮다"라고 받아쳤다(...). 은퇴 당시 감독이었던 김인식은 정민철의 성격이 좋고 유머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도자로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 실력과 외모, 인성을 겸비하고도 이래저래 팀이 암흑기를 거친 데다 비인기팀이었고, 정민철 자신이 임팩트 있는 시즌이 없어서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은 투수라 마구마구에서도 상대적으로 쓰는 사람이 적다. 덕분에 오랫동안 특이구종도 없었다가, 나중에 구종 패치에서 재평가 받아 MC투심이 추가되었다.
  • 2000년대 초중반, 1972년생이라 다른 팀 가면 최고참 급이지만 소속팀이 노인정 한화 이글스라서(…) 커피 심부름을 했던 사진도 있다. 흠좀무. 물론 기자들 앞에서 장난 삼아 한 것. 류현진한테 시켰으면 되니까 리그 최고 에이스들이 커피 나르게 만드는 한화의 클래스 정민철 이후에는 현대에서 수혈한 새로운 한화의 영건이 이러한 기믹을 물려받기도 했었다(…).
  • 리그 구조상 프랜차이즈가 많은 한국프로야구,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랜차이즈 스타가 많은 한화 이글스지만, 대전광역시만으로 따졌을 때 한화에서도 보기 드문 대전 사람.[21] 그런 걸 떠나서 2014년까지 평생 동안 대전을 벗어나 살아본 것은 단 2년뿐이다. 대전성애자 요미우리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2000년, 2001년을 제외하고는 남들처럼 대학에 진학하느라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코치 연수한다고 외국으로 나가 생활한 적도 없다.
  • 국가대표와 별로 인연이 없었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 출전한 경험이 전무. 처음으로 프로가 아시안 게임 등에 출전하게 된 것이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인데 이 때는 엔트리가 100% 미필자로만 채워졌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은 일본 진출 첫 해라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2007년 추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 전부. 다만 시드니 올림픽의 경우, 올림픽 예선전인 1999 서울 아시아 선수권 대표로 출전했었다. 또한 한일 슈퍼게임에도 1995년과 1999년 2회에 걸쳐 출전하여 호투했다.
  • 상복하고도 담을 쌓았다. 신인 시절 염종석에게 신인상에서 밀린 것은 유명하지만, 그 이후로도 KBO 골든글러브 수상을 한 적이 없다. 두 자리 숫자 패전 때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기 때문.
  • 팬서비스와 관련해서 역대 최고의 수준'이다. 신인 시절부터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며, 늘 친절하고 웃는 낯으로 대했다고 한다. 그밖에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훈훈한 일화들이 잔뜩 존재하고 있다. # 201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의 저질 팬서비스 수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자, 이런 정민철의 역대급 팬서비스가 인터넷 상에서 새삼스레 화제가 되었다.관련기사
  •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 여자아이돌 SPEED의 팬이라 카더라. 그래서 요미우리를 갔었나 AKB48 팬이 아닌 게 어디야
  • 위에도 언급했지만 방위병 출신인데 32사단에 입소해서 훈련 받았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32사단의 슈퍼스타였다고 하는데 옆에 있던 고유라 기자가 취재차 갔을때 32사단 근처에서 박찬호 얼굴 봤다고 자랑하는 슈퍼마켓 주인만 봤다고 디스했다
  • 2016 시즌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중계 당시 을 발에 묻히고 중계석에 들어온 적이 있다. 당시 같이 중계를 했던 박재홍은 이를 회상하며 "해설 4년 하면서 똥을 밟고 중계실에 와서 중계실 바닥에 묻힌 사람은 정민철이 처음일 거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에서 골프 치던 도중에 똥을 밟아서 잔디에다 똥을 닦아낸 적도 있다고(...).
  • 허구연의 말로는 선수 시절 잘 생겼었기 때문에 정민철이 젊었을 때 TV에서 전 경기를 중계했었다면 여성팬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 정수빈보다 더 많았을 거라고.
  • 선수가 없다면 키워서 쓰면 된다,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며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한다, 투수마다 체력이 다르니 코칭스태프가 잘 판단하여 기용해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김성근의 투수 운용을 정면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22][23] 이 때 시범으로 양쪽 팔을 모두 굽혔는데, 공을 계속 던졌던 오른쪽 팔이 완전히는 구부러지지 않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감독 팬들이야 '정민철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이글스 팬으로서 감독님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팬 게시판에서 하며 난동을 부렸지만... 감독따라 팀을 세탁해왔으니 한화의 영구결번 선수에 대한 애정이 있을 리가...
  • 2017년 5월 21일, 1박 2일에 출연해서 "이 방송 보시는 10개 구단 단장님들, 제 눈 살아있습니다" 라고 본인을 어필하였다. 현직 복귀를 꿈꾸고 있는듯. 이날 야구공으로 인형 맞추기 게임에서 25구를 던진 끝에 인형을 맞췄으나 뒤이은 이향 아나운서가 단 1구만에 인형을 뽑으며 안습이 되었다.
  • 나 혼자 산다에 한때 팀 후배였던 윤현민이 고정으로 합류하면서, 준레귤러 멤버 수준으로 자주 등장한다. 상기의 1박 2일 촬영 당시에도 1박 2일 스케쥴이 끝난 후 곧바로 나 혼자 산다 촬영을 소화했을 정도. 단순히 같은 팀의 대선배였던 점도 있겠지만, 정민철이 MBC SPORTS+의 해설위원이기 때문인 듯 하다.
  • 류현진배지현 아나운서를 소개시켜 줬다. 본인 말로는 차분한 두 사람 성격이 잘 맞을거 같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둘은 그 뒤 결혼했다.
  • MBC 스포츠플러스 엠스플 텔레비전에 출연해, 현역시절 외국인 선수와 이종범을 상대로 뽕커브를 던졌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외국인 선수의 입에서는 "FXXK"이 나왔고 이종범은 힘없이 투수앞 땅볼로 물러난 뒤 정민철에게 "아야? 실업야구냐? 시럽실업야구선수여?"라고 따졌다고 한다.
  • 2019년 3월 서경석TV에 출연하여 2019시즌 한화 이글스의 전망을 했다. 끝에 서경석과 손바닥 크기 비교도 했다. 서경석 TV 영상

7. 팬 서비스

팬 서비스 관련 미담이 많은 편이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2 빙그레 33 195⅔
(5위)
14 4 7 - 0.778
(3위)
2.48
(2위)
141 15 71 145
(2위)
61 54 1.068
1993 18 148⅓ 13 3 1 - 0.813
(1위)
2.24
(5위)
117 10 46 110 40 37 1.058
1994 한화 28 218
(1위)
14 10 0 - 0.583 2.15
(1위)
156 6 63 196
(1위)
59 52 0.972
1995 22 162⅔ 13 7 0 - 0.650 3.21 152 12 50 127 65 58 1.180
1996 32 219⅔
(1위)
13 12 1 - 0.520 3.03 173 16 57 203
(2위)
81 74 1.006
1997 31 208⅔
(2위)
14
(3위)
11 0 - 0.560 2.46
(4위)
172 11 49 160
(1위)
69 57 1.040
1998 23 148⅓ 10 7 0 - 0.588 3.16 133 12 37 97 55 52 1.133
1999 32 201⅔
(2위)
18
(2위)
8 1 - 0.692 3.75 179 22 69 151
(5위)
92 84 1.17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요미우리 4 18⅔ 2 0 0 - 1.000 4.82 21 4 4 16 10 10 1.286
2001 8 40⅔ 1 2 0 - 0.333 4.65 43 8 18 28 22 21 1.45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한화 26 138 7 13 0 0 0.350 5.35 144 19 48 116 83 82 1.326
2003 26 139⅔ 11 10 0 0 0.524 4.00 132 18 55 73 65 62 1.310
2004 13 54 0 6 0 0 0.000 7.67 76 11 21 22 50 46 1.741
2005 25 115⅔ 9 3 0 0 0.750 4.82 124 14 32 56 70 62 1.297
2006 25 130⅔ 7 13 0 0 0.350 3.93 142 18 47 62 68 57 1.408
2007 26 155⅓ 12
(5위)
5 0 0 0.706
(4위)
2.90
(3위)
155 11 40 66 58 50 1.204
2008 25 127⅓ 6 10 0 0 0.375 5.23 144 13 45 56 78 74 1.445
2009 8 31 0 6 0 0 0.000 9.87 54 7 18 21 36 34 2.323
KBO 통산
(16시즌)
393 2394⅔
(2위)
161
(2위)
128 10 0 0.557 3.51 2194 215 748 1661
(4위)
1030 935 1.190
NPB 통산
(2시즌)
12 59⅓ 3 2 0 - 0.600 4.70 64 12 22 44 32 31 1.399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2년 10완투
(5위)
3완봉
(1위)
1993년 10완투
(4위)
0완봉
1994년 9완투
(3위)
4완봉
(2위)
1995년 8완투
(5위)
2완봉
(6위)
1996년 9완투
(3위)
4완봉
(1위)
1997년 10완투
(1위)
4완봉
(1위)
1998년 2완투 0완봉
1999년 2완투 1완봉
(2위)
2000년 1완투 1완봉
2001년 1완투 0완봉
2007년 1완투
(5위)
1완봉
(2위)
KBO 통산 60완투 20완봉
(2위)
NPB 통산 2완투 1완봉
보유 기록
최연소 100승 27세 3개월 2일


[1] 이 영구결번은 논란이 좀 있다. 자세한 건 밑의 내용을 참조.[2] 한화 이글스가 배출한 영구결번 선수 중에 유일한 대전광역시 출신. 장종훈송진우는 나란히 충청북도 출신으로 둘 다 청주 세광고를 졸업했다.[3] 네이버 프로필에서 한때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잘못 기입된 적이 있었다. 정민철 본인은 좀 어이없어했다고. 애초에 고향이 충청도 토박이인데 전라도로 날조되는게 기분 나쁘지 그 뒤로는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제대로 나온다.[4] 선수시절 프로필이고 은퇴 후에는 살이 불어서 그런지 95kg라고 언급했다.#[5] 1990년대 선발 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2.80), 완투 1위(59), 완봉승 1위(19)이며, 정민철이 데뷔한 1992년도부터 1999년까지 다승, 탈삼진, 이닝, 평균자책점, WHIP, 완투, 완봉승 모두 정민철이 1위이다.[6] 포심 패스트볼[7]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시절의 모습.[8] 현역시절 정민철의 커브는 '백팔번뇌 커브'라고 할 정도로 위력이 좋았다. 150Km/h에 육박하는 직구를 던진 후 낙차폭이 큰 100km/h대의 슬로커브를 던져서 타자들을 많이 고뇌시켰다(…). 이 슬로커브 말고도 12시에서 6시로 낙차 크게 떨어지는 파워커브도 보유했다.[9] 표면상으로만 한대화 감독이 투수 교체 타이밍을 정민철 코치에게 물어보고, 대게 그의 의견을 거의 따랐다.[10] 김혁민은 2군에서 갑자기 달라져서 돌아와서 당시 2군 코치였던 송진우의 공이라는 말이 많았다.[11] 코치때 욕먹은걸 생각해보면,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가르친 대로 다 잘 배우면 다 명코치되겠지...[12] 참고로 대전은 사투리를 거의 쓰지않는 지역 중 하나이다. "~겨", "~여" 같은 충청도 사투리가 잔재하긴 하지만, 도시로서의 역사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시작할 정도로 역사가 짧다는 점과 철도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였다는 특징 때문에 표준어 구사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13] 1992년 입단할 때, LA 다저스의 에이스 오렐 허샤이저를 좋아해서 달았다고 전해진다.[14] 본인이 마이클 조던을 좋아해서 그의 등 번호인 23번으로 했다고 한다.[15] 다만 포크볼 등의 일부 체인지 오브 페이스 계열 구종구사에 있어서 긴 손가락은 대단한 메리트를 가지는 건 사실이다. 짧은 손가락으로는 구사 자체가 힘들기 때문. 실제로 불미스러운 일로 야구계를 떠난 사이드암 투수 박현준은 일반인들에 비해 손가락이 마디 하나 정도 더 길어서 포크볼 구사가 힘든 사이드암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포크볼을 선보인 바 있다.[16] 전성기 정민철의 커브는 주무기였던 돌 같은 직구를 받혀주기 위한 부무기였고 전성기 김원형의 커브는 희대의 마구인 주무기였던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17] 솔직히 배가 나오기 시작(...).[18]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때 선동열은 팀을 가리지 않고 좋은 투수가 나오면 애착을 갖는 듯하다. 인터뷰를 봐도 자기와 같은 케이스인 직구-슬라이더를 잘쓰는 김광현, 심지어 같은 팀 후배 겸 제자인 윤석민보다 타팀 에이스 류현진을 더 아끼는 발언이 있다.[19] 다승을 기준으로 하면 1999년이 커리어 하이이나, 1994년의 평균자책점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1999시즌은 심각한타고투저시즌 이였기에, 1999년을 커리어 하이로 뽑아도 무방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1994년 이닝,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에 WAR도 1999시즌인 5.9보다 2.8높은 8.7이지만 정명원의 KBO 최초 40세이브 때문에 골든글러브 수상실패등으로 1994년이 가려져 1999시즌이 커리어 하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20] 1994시즌 WAR 1위는 이종범(11.7), 3위는 정명원(8.0)[21] 한화의 레전드 중 대전 출생은 정민철과 강석천, 구대성 세 명뿐이다.[22] #[23] 그런데 정민철의 저 발언들은 김성근 감독이 야인으로 있을 때 "한화 투수들은 지옥에서 던지는 것이다"는 평과 함께 한화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했던 발언과 거의 비슷하다. (...)[24] 이에 대해 정민철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해당 일화에서 언급된 아파트에서 살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어느 한화 레전드가 어린 팬들에 한 만행(?)',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