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11:21:04

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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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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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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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1번
이문한(1984) 양상문(1985~1986) 이문한(1987~1988)
청보 핀토스 등번호 37번
오문현(1985) 양상문(1987) 팀 해체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3번
팀 창단 양상문(1988~1993) 공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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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감.jpg
이름 양상문(楊相汶 / Sang-Moon Yang)
생년월일 1961년 5월 8일[1]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남구[2]
학력 부산대연초 - 부산동성중 - 부산고 - 고려대[3]
신체 175cm, 82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5년 1차 지명 3순위
소속팀 한국화장품 (1983~1984)
롯데 자이언츠 (1985~1986)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7~1993)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1994~1997)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1999~2001)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2~2003)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4~2005)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06)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7~2008)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09)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10)
SK 와이번스 투수 인스트럭터 (2011)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13)
LG 트윈스 감독 (2014~2017)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9)[4]
해설위원 MBC ESPN 야구 해설위원 (2006)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 (2011~2014)
프런트 LG 트윈스 단장 (2018)
종교 불교(대한불교 천태종)
1. 개요2. 선수 경력
2.1. 부산고 - 고려대 - 한국화장품 - 롯데2.2.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3. 지도자 경력
3.1. 롯데 자이언츠 코치 1기 시절3.2. LG 트윈스 코치 1기 시절3.3. 롯데 자이언츠 감독 1기 시절3.4. LG 트윈스 코치 2기 시절3.5.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시절3.6. 롯데 자이언츠 코치 2기 시절3.7. 야인 시절3.8. LG 트윈스 감독 시절3.9. 롯데 자이언츠 감독 2기 시절3.10. 지도 스타일
4. 프런트 경력
4.1. LG 트윈스 단장 시절
4.1.1. 2018년
5. 해설위원 경력
5.1. 해설위원 1기 시절5.2. 해설위원 2기 시절
6. 평가7. 기타8. 연도별 주요 성적
8.1. 선수 시절8.2. 감독 시절

1. 개요

대한민국야구선수 출신 감독. 태평양 돌핀스의 레전드 선수 출신이며, 현재는 여러 팀에서 코치, 감독 등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선수로는 한국화장품, 롯데 자이언츠,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었다.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하여 2년간 활약한 후 이를 바탕으로 1985년 프로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롯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후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어 청보(1987)와 그 후신인 태평양 돌핀스(1988~1993)에서 7년간 활약하여 태평양 돌핀스의 레전드가 되었다. 지도자로는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감독을 지냈다. 2018 시즌에 LG 트윈스 단장을 지냈고, 2019 시즌에는 동년 여름까지만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았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고, 현장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2005년에 롯데 감독을 두 시즌 맡았고 2014년 5월 11일 김기태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LG에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롯데비밀번호를 끊는 기반을 다졌고, LG에서도 김기태 감독이 떠난 팀을 일으켜 세운 사령관이 되었지만 2015 시즌에 LG가 환승 역 없는[5] 9호선을 타는 신세가 되자 1년만에 (나쁜 의미로) 재평가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2016년에도 젊은 선수들 기용으로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결국 리빌딩을 하면서도 성적까지 얻어낸 기적의 시즌을 창출하면서 4위로 LG의 가을야구 진출을 만들어냈었다.

별명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롯데 감독 시절 널리 퍼진 양상치. 2011년 SK 와이번스 스프링 캠프에서 인스트럭터로 잠시 영입되어 고효준의 폼을 봐주다 시범경기에서 고효준이 3연속 폭투를 저지르며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자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당시 상하이 한국 영사 섹스 스캔들의 스파이 덩신밍에 빗대어 '양신밍'이라고 깠다. 2014년 LG 감독 부임 이후 최하위 나락에서 4위까지 극적으로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갈양상문, 양갈량, 잠실 부처, 양상타치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입동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확실히 전임 김기태감독에 비해서는 말이 많은 편이다. 다만 선수들 개별에 대한 인터뷰를 줄이고 감독에게 인터뷰를 몰리게 했다는 말도 있어서 평가는 유보됐다. LG 감독 부임 후로는 평소에 인터뷰를 많이 잘 해서 입동님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 그리고 양상문 부임후 LG의 성적이 2014년 일시적으로 오르자 위의 양상치의 파생 별명으로 갓상치, 잠실 부처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그러나 2015년엔 순위가 추락하고 분위기도 침체돼서 망했어요... 최근엔 다시 인기가 높아져 알파고에 빗대어 '양파고'라고 불리고 있다. 어느 감독이든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평이 요동치겠지만 잘하면 갓상문, 갓상치, 양파고, 못하면 양상문재앙, 돌상문, 양상치, 명장병자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많이 써서 까만 안경이라는 별명도 있다.

즉, 롯데와 LG 시절 코칭스태프 시절이나 LG 단장 시절 스타일 모두 롯데나 LG 팬들에게 그다지 좋지 않다는 얘기. 감독으로서는 롯데 시절 4년 연속 꼴지를 하던 팀을 2005년 5위의 성적으로 마감하며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LG 시절 2014년에 4위를 기록하며 가을야구에 성공하긴 하였으나 그 특유의 세대교체 형식이 자연스레 자리를 꿰차는 것이 아닌 베테랑 배척에 가까운 형식의 세대교체라 프렌차이즈 스타라는 스타 시스템에 열광하는 한국 야빠들 사이에서는 평이 좋지 않은 편에 속하며, 이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다.[6]

대한불교 천태종 신자라 생명나눔 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무엇보다도 LG 4년 감독 생활 동안 자팀인 LG를 리빌딩 안 시키고 오히려 SK리빌딩 시켜 버리며 정의윤, 신재웅, 강승호 등 주력 선수들을 죄다 퍼주고 임훈, 진해수, 문광은 등 쭉정이만 받아들이는 바람에 제 2의 탈쥐대란과 두산 베어스의 2018년 대 LG전 15승 1패, SK 와이번스의 2018 플레이오프 대약진을 초래한 감독이기도 하다. 또한 단장 시절에도 선수 병역 문제에 소홀하고 투수 유망주였던 유재유를 두산에 퍼주는 딜을 하는 등 리빌딩을 한다면서 다른 팀을 리빌딩시키는 최악의 선구안을 가진 감독. 그리고 그 결과는 2018년 SK의 우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진해수와 문광은이 터지고 강승호는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 처리 되면서 다시 좋은 의미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2. 선수 경력

청보 - 태평양의 암흑기 에이스
두뇌피칭, '양박사' 양상문
어디까지나 선수시절 한정이라는게 함정

2.1. 부산고 - 고려대 - 한국화장품 - 롯데

파일:Z5iCw7l.jpg

부산고 시절.

부산 출신의 안경잡이 에이스라는 것 때문에 최동원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았다. "한국야구사"에서는 1977년을 부산고등학교의 해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주역이 바로 양상문. 1977년 대통령배 준우승[7]을 이끌면서 이름을 알린 양상문은 1978년 정부 방침으로 출전 제한이 걸려 3개 대회만 나가게 된 상황에서 부산고가 출전한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대기에서 모두 우승을 이끌면서 부산 지역 야구 팬들에게 화려한 시절을 선사했다.

화려했던 고교 시절 성적과 명성을 바탕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 1학년 시절에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면 빼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을 당하여 2학년을 거의 통으로 쉬었다. 3학년 때 복귀했으나, 졸업반인 4학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3년 실업리그 한국화장품에서 입단하여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실업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1985년 1차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 첫 출발은 상당히 좋았다. 처음에는 구원으로 기용되었는데 승운도 따라주면서 4월까지 2승 무패 4세이브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후 선발로 전환되어 전반기에 4승3패를 거두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페이스가 떨어지며 전반기에 비해 신통치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6시즌에는 많이 출장하지 못하며 단 1승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임호균 등과 함께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파일:attachment/yangsangmoon.jpg

파일:attachment/yangsangmoon2.jpg

롯데 시절.

2.2.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l_2014051301000642100037871.jpg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86시즌이 끝나고 롯데와 청보간의 다대다 트레이드에 의해 청보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트레이드된 선수는 임호균, 양상문,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이상 롯데),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이상 청보)였다. 트레이드 핵심은 롯데의 '삼미 시절 활약했던 임호균 + 양상문'과 청보에서 가장 날렸던 2루수 정구선의 트레이드였다. 전반적으로는 청보가 좀 더 득을 많이 본 트레이드로 기록된다.

이적 첫해인 1987년 청보에서 12승 13패 ERA 3.10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커리어와 팀내에서 갖는 상징성 등으로 명목상 임호균이 청보의 에이스였으나, 성적상으로는 양상문이 임호균보다 나은 활약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태평양 그룹이 팀을 인수하면서 태평양 돌핀스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다. 임호균의 급격한 노쇠화로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면서 9승 12패 ERA 3.83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파일:external/suxmedia.com/1405671511.jpg

태평양 시절 김성근 감독과 오대산 훈련. 앞에서 두번째, 즉 김성근 바로 뒤가 양상문.[8]

1989년 김성근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해에 소위 태평양 삼인방으로 불리는 신인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양상문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후 1993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김성근의 혹사에 시달리면서 제 역할을 했으나, 팀의 인기가 워낙 저조한데다가 삼인방에 가려 별로 제대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투수로서의 능력만 본다면 꽤 쓸 만한 기교파였으나, 팀이 안습의 절정을 달린 청보와 태평양이다 보니 까먹은 승수가 많아 통산 기록은 63승 79패 13세이브 40완투(10완봉) 평균자책 3.59에 불과하다.

프로시절 커리어 대부분을 청보-태평양에서 보냈고, 청보, 태평양의 역사에서도 한 시기를 대표할만한 선수이자, 암흑기 에이스였던 선수였다. 1987년~1988년 두 시즌 동안은 성적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고, 삼인방이 등장한 이후에도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에는 4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좌완투수 단일시즌 최다 완봉으로 남아 있다. 또 선수층이 얇은 청보-태평양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1987~1988 2년 연속 출장 경기수 2위를 할 정도로 혹사를 했고, 이러한 혹사는 김성근 재임기까지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면서 갑툭튀한 3인방으로 인해 일순간 에이스에서 3~4선발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출장경기수나 이닝은 1988시즌과 거의 차이 없었다. 다만 3인방이 양상문보다 더한 혹사를 당했을 뿐.

초기에는 팀에서 상징성이 컸던 임호균이 에이스로 대접받았고, 1989시즌부터는 삼인방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매스컴의 폭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임호균, 박정현, 정명원, 정민태 등이 짧게 반짝한 후 부침을 겪으며 명멸하는 동안 부상없이 스테디하게 태평양의 마운드를 지킨 이는 양상문이 유일했다. 어찌보면 비인기팀의 에이스였던 불운에다가 그 비인기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롯데에서 스테디하게 활약하며 장기적으로 팀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윤학길보다, 한 해 반짝했던 염종석이 훨씬 더 많이 기억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불운한 케이스다.

3. 지도자 경력

3.1. 롯데 자이언츠 코치 1기 시절

은퇴 직후 롯데의 투수 코치로 재직하다 1997년에 한번 잘리고 1999년에 돌아와서 2001년까지 투수코치를 했다. 이 시기에 신고선수 출신의 박지철과 삼성에서 이적한 박석진을 전천후 스윙맨으로 키워내면서 롯데의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소소하게나마 기여한다.

3.2. LG 트윈스 코치 1기 시절

그 후 2002년 LG 트윈스로 팀을 옮겨 김성근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맡았다.[9]

파일:external/photo.jtbc.joins.com/20140512150300347.jpg

이 시기 양상문은 그 전 시즌 팀 방어율이 5점대를 넘으며 막장이 된 LG 투수진을 개선시켜 팀 방어율을 3점대 중반으로 낮췄고, 류택현큰 승호, 심지어 엘팬 모두가 포기했던 김민기까지 각성시키며 LG의 좌투수난, 불펜투수난을 해소시킨 업적을 남겼다. 적어도 2002~2003년에는 뛰어난 투수코치라는 평판을 얻었다.

이 당시 김성근 감독도 투수코치로서 양상문의 능력을 거듭 높이 평가했으며 투수 관련 권한은 모두 양상문에게 일임했었다.

3.3. 롯데 자이언츠 감독 1기 시절

파일:/image/109/2005/05/26/200505262242421100_1.jpg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4051301001170600077422.jpg

손민한강민호.

파일:/image/poktannews/2010/12/31/201012310843778509_1.jpg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던 선동열과 함께.

백인천의 후임으로 2004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취임 당시 나이가 42세로 비슷한 시기에 LG 트윈스의 신임 감독에 부임한 이순철과 더불어 현직 최연소 감독이었다. 참고로 롯데 자이언츠 최초의 부산고 출신 감독이다. 그 전까지는 경남고와 부산상고 출신만 감독을 역임했다. 당시 롯데는 8888577의 절정기로 전년도 성적이 딱 3할을 간신히 찍었던 막장의 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2004년 시즌에 팀을 맡았던 양상문 감독 체제 하에서 롯데는 그 해도 꼴찌로 끝마치긴 하였지만, 막장이었던 전년도에 비해 50승을 기록했고 승률을 4할대로 끌어올리며 나름 고무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어 2005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4년 연속 꼴지의 사슬을 끊고 5위를 기록, 재계약이 유력해 보였으나 구단의 새로운 투자계획이 발표되면서 재계약이 무산되었다. 후임자로는 강병철 감독이 부임했다.[10]

사실 이 시절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투수코치 양상문과는 달리 상당히 호의적인 편인데, 일단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던 팀을 이듬해 5위로 끌어올렸고, 백인천 시절 트레이드당할 뻔하는 등 부진에 빠져 있던 에이스 손민한을 다시 일으켜 세워 2005년 MVP를[11] 타게 하기도 했으며, 이대호, 박기혁, 강민호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는 등 리빌딩에 꽤 공헌했다는 평가다. 여하튼 그의 재임기간에 롯데가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막장팀에서 그래도 미래가 존재하는 팀으로 바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로이스터 시절에 롯데가 상위권으로 도약한 데는 양상문 감독 재임 시절의 리빌딩이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 그의 뒤를 이은 강병철 감독이 다시 77을 기록한 것도 고평가에 한몫했다.

물론 어두운 면도 있다. 가장 큰 것은 리빌딩 과정에서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고참 선수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 때문에 팀 케미스트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더구나 그 본보기가 공교롭게도 박정태였던지라 당시 일부 롯데 팬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욕을 얻어먹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쾌조의 컨디션이었던 박정태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개막 엔트리에서 빼버리고 롯데 2루수급 자원들이 돌아가면서 줄부상을 당해도 끝끝내 박정태를 올려서 쓰지 않고 외면했다. 당시 롯데 주전 2루수였던 조성환이 4월 24일 LG전에서 사구를 맞고 손등 골절로 시즌 아웃되고 난 후, 대체 자원인 신명철박준서까지 죄다 줄줄이 부상으로 쓰러져 2루수 자원이 바닥인 상태에서마저도 끝끝내 박정태를 올려 쓰지 않고 그 해 입단한 대졸 신인 박진환을 올렸고, 또다른 베테랑 박현승 또한 양상문 감독 재임기간 중에는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았다. 꾸준히 1할대의 타율을 마크하던 박기혁은 전 경기를 선발로 기용하면서도 고참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자, 롯데팬들이 참다참다 5월달부터는 롯데 구단 홈페이지 갈매기 마당에 '박정태 1군 등록 릴레이'를 펼치고 심지어 홈경기 외야석에 '우리는 악바리 박정태를 원한다' 는 플랜카드를 걸고 시위까지 벌이며 농성을 벌였다. 결국 박정태는 8월 초에야 1군으로 콜업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양상문은 어쩌다가 한 타석씩 대타로만 기용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다.[12] 그러나 당시 팀을 장기적인 계획하에 리빌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노장 박정태를 배제하고 신진 선수들을 기용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팬들의 수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상문은 이 기조를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특히 감독 첫 해인 2004년 당시 아직 포텐이 터지지 못한 이대호, 김주찬, 박기혁 셋은 거의 전 경기를 선발출전해 양상문과 더불어 죽도록 까였다. 당시 이대호 기용에 대한 롯데팬들의 울분

다만 상술했듯이 의도적으로 박정태박현승 등 베테랑들을 배제한 것이 이듬해 패착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욕을 먹어가며 키운 어린 선수들이 시즌 초반 선전해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5월부터 연패를 거듭하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양상문 체제 하에 베테랑들이 정리되거나 부진한 롯데로서는 위기에서 중심을 잡고 이끌어 줄 리더십이 부재했다. 결국 다시는 상위권으로 올라갈 탄력을 받지 못하고 5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4강 탈락이 확정된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선 선수단 분위기가 감독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해졌고, 그 와중에 투수조의 모 고참선수와는 기자 등 외부인들이 지켜보는데서마저 서로 언성을 높이는 불미스러운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4년 연속 꼴찌팀을 5위로 끌어올린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양상문과 재계약하지 않고 신임으로 강병철 감독을 재영입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덤으로 후임 강병철 또한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는 편이라,[13] 강민호를 전 경기 선발출전시키며 밀어줬고, 전역한 김주찬 또한 죽도록 욕을 먹어가며까지 끝까지 기용했으며, 정보명이나 이승화, 이인구 등의 젊은 선수들을 발굴해 기회를 주면서도, 전임 양상문과는 달리 고참을 기준없이 홀대하지 않고 최소한 공정한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양상문 재임 기간 동안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해 은퇴 위기에 내몰렸던 노장 박현승은 강병철 감독 밑에서 다시 기회를 얻어 2007년 0.325의 타율을 기록하며 가까스로 부활할 수 있었다.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팀 성적을 전년도 꼴찌에서 5위로 끌어 올리는 등 리빌딩의 성과가 보이자 프런트는 상위권 전력이라고 오판을 하게 되었고, 양상문 감독과의 재계약 대신 롯데의 2회 우승을 이뤄낸 강병철을 다시 데려 오게 된다. 당시 야구인들은 양상문의 재계약 가능성을 높게 보는 편이었고 실제로 2005시즌 종료 후 팀의 마무리훈련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강병철로 교체되는 바람에 롯데구단은 전임 감독에 대한 예의도 없다고 언론에서 두들겨맞기도 했다.

총평을 하자면 비록 연차가 많은 선수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과정 가운데서 잡음이 있었고 선수단 관리에도 헛점을 드러내어 본의 아니게 롯데 감독 생활을 일찍 마무리하긴 했지만, 전임 백인천에 의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롯데를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5위로 끌어올리며 미래가 기대되는 팀으로 만들었던 부분은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평가들은 엘지감독 시절에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3.4. LG 트윈스 코치 2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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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2008년까지 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첫 해인 2007년에는 2년 연속 꼴찌를 달리던 팀 방어율을 6위로 끌어올렸으나, 2008년 도로 꼴찌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사실 이 시기는 이순철이 팜부터 1군까지 팀을 싸그리 초토화시킨 이후 후폭풍을 맞고 있던 시기라 코치 입장에서 뭘 어찌할 도리조차 있었을 리 만무하고 2007년만 해도 제대로 된 선발은 봉중근, FA로 데려온 박명환 외에는 없는 수준이었다.

3.5.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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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는 정영기 감독을 이어 롯데 2군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정영기 감독시절에 비해 2군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듬해인 2010 시즌에도 롯데 2군은 퓨처스(구 2군) 남부리그 4위를 기록하였다.

3.6. 롯데 자이언츠 코치 2기 시절

2010년에는 아로요 코치의 뒤를 이어 롯데의 1군 투수코치를 지냈다. 2010년 양상문 코치 하에서 롯데 투수진이 폭망했다고 평하는 팬들도 있지만 이전 시즌 혹사로 인해 조정훈, 손민한 두 에이스가 동시에 이탈한 점을 감안하면 아로요 시절보다 2단계 떨어진 팀방어율 6위를 기록했던 2010년이 객관적으로 나빴다고 보긴 어렵다.

2010년 양상문 투수코치 시절을 비판하는 이들에 따르면 2007 시즌에 팀 세이브 최하위였다가 아로요 투수코치 하에서 2008, 2009 시즌을 거치며 안정적으로 변해왔던 불펜진의 경우 2010 시즌 들어서 양상문 코치가 오자마자 문자 그대로 사망 상태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2010년 롯데 투수진 자원 자체가 썩 좋지 않았고 부상이 많았다. 특히 손민한조정훈 두 에이스의 동시 이탈은 뼈아펐다. 이는 선발야구를 하고 있던 롯데에게는 엄청난 악재였다. 2009년 다승왕을 차지하며 맹활약했던 조정훈은 급격한 이닝 증가로 부상의 우려가 컸었는데, 역시나 2010년 초부터 부상으로 고전하더니 결국 이탈하여 이듬해에 공익으로 훈련소에 입대하고 말았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의 이탈 역시 타격이 컸다. 부상으로 2009년 WBC에서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던 손민한은 부상 와중에도 2009년 14경기에 등판하며 팀에 기여했다. 그러나 손민한은 2010~2012 세 시즌 동안은 아예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또한 외국인 용병 두 명 모두 투수인 경우가 많았던 당시 타 팀에 비해서, 투수 사도스키와 타자 가르시아를 용병으로 쓰던 롯데는 상대적으로 투수력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2010년에는 선발진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지다보니 불펜 투수들의 출장 수가 늘어나며 혹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고, 전반적으로 투수 운영에 큰 어려움에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선수보는 눈이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 주장은 다소 편파적이다. 조정훈을 뽑은 스카우터진에게 왜 쟤를 뽑았냐고 조정훈이 보는 앞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근데 양상문의 말도 틀린 게 아닌 게, 당시 타팀에서는 윤석민, 오승환 등을 뽑았던 것 비해 롯데는 상위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훈을 선택했던 것이다. 조정훈 선택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롯데 팬들 사이에 말이 말았다. 조정훈이 2009년 팬들과 전문가들의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포크볼을 뿌려대며 공동 다승왕[14]을 차지할 때는 롯데의 선택이 옳고 양상문의 판단이 틀린 듯 하기도 했으나... 김수완은 원래 양상문이 2군에 있을 시절 방출하려고 했었으나 박정태를 위시한 2군 코칭스탭들이 뜯어말려서 방출은 면했다.[15] 이후 김수완이 잠깐 반짝했을 때 김수완을 방출하려 했던 양상문이 까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시즌 초 양상문이 직접 선발후보가 될 수 있다라고 했던 진명호의 경우 2009년 3경기 선발로 나와 3경기 동안 7⅓이닝 동안 16실점 하면서 평균자책점 19.64라는 아름다운 성적을 기록하면서 진명호를 추천한 양상문까지 같이 까였지만, 2011년에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오히려 팬들로부터 혹사 걱정을 받고 있다.

가장 간단하게 납득하고 싶다면 LG와 롯데의 경기를 보자. 양상문이 투수코치를 넘어 감독까지 하는 곳투수코치를 넘어 감독까지 했던 곳의 대결을 보면 확연히 이해가 될 것이다.

2010년 8월 13일 라이언 사도스키가 볼넷으로 만루를 채웠을 때 양상문이 올라왔었는데, 그 후 이종범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양상문 디버프, 양상문 왜 올라왔냐!면서 까댔다. 사도스키는 결국 퀄리티 스타트를 했으니 까일 여지가 적었을지도 모른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연임 지지 광고가 팬들에 의해 올라왔는데, 고작 사흘만에 천만 원을 찍었다. 이에 롯데 프런트는 당혹감을 보였는데, 이에 대해 팬들은 '계획이 들통나서 당황했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름아닌 양상문이 로이스터의 후임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설이 퍼진 이후였기 때문이다. 2010년 롯데의 성적을 보면 문제는 불펜진인데 롯데의 블론세이브가 2010년 16개인데[16] 이 중 절반만 세이브 했어도 시즌 2, 3, 4위 싸움은 혼전이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롯데의 엄청난 공격력을 고려해본다면 1위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임을 첫 번째가 감독이 져야 된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는 투수코치다. 그런데 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로 감독을 잘라 놓고 역시 책임을 져야 할 투수코치가 차기 감독이 된다면... 이 광고는 롯데 팬들이 구단을 얼마나 불신하는지 잘 보여주며 만약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많은 팬을 잃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결국 롯데 구단이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3년 연속 고배를 마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 박영태 수석코치, 한문연 배터리코치와 함께 세트로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함에 따라 롯데에서의 코치 생활을 마감했다. 로이스터 연임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롯데에 관심있는 이들은 대체로 박영태, 양상문 해임에 한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17]

3.7. 야인 시절

퇴진이 발표된 후인 2010년 10월 6일, 롯데 자이언츠 사이트의 팬 게시판인 갈매기 마당에 작별 편지(?)를 올렸다. 투수코치에서 물러남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한 마디로 간추리면 자기는 다 잘했고 실패는 전부 다 제리 로이스터 때문이라는 자기변명이다. 아무리 외국인이라지만 일개 코치가 공개적으로 상관인 감독을 비판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사례로 이 당시 야구팬들에게 엄청나게 까였고, 언론으로부터도 적절치 못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같이 짤린 박영태 前 수석코치가 그나마 허심탄회하게 소감을 밝히고 쿨하게 물러나는 인터뷰를 한 것과 대비되어 더더욱 까였다.[18]

이후 롯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물러난 양승호 감독의 빈 자리를 찾고 있는 고려대학교와 접촉 중이라고 전해졌으나, 고려대에서는 일단 길홍규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승격시킨 채 대학리그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창원시를 연고로 한 제9구단 엔씨소프트의 감독 선호도 조사에서 선동열, 제리 로이스터 다음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가을의 전설 최동원보다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기사 롯데 감독 시절 4년 연속 꼴찌였던 막장팀을 일으켜 세워 리빌딩을 하면서 동시에 성적도 어느정도 냈던 감독으로써의 역량이 크게 반영된 듯 하다. 반면 최동원 감독은 한화 2군 감독 시절의 성적 때문에 감독으로써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2011시즌 SK 와이번스의 투수 인터스트럭터 코치를 맡았다.

김성근 SK 감독은 양상문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했으나, 3월 17일 시범경기에서 놀라운 양상문 매직의 힘, 월미도 바이킹 제구! 하지만 이때 임팩트가 엄청나서 그렇지, 막상 정규 시즌에 들어왔을 때는 고효준은 전년에 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탈삼진과 승수가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좌완 롱맨 보직도 꾸준히 등판했고, 전지훈련을 못 간 것치고는 준수한 시즌을 보낸 편이었다.

3.8. LG 트윈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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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감독 시절.

3.8.1. 2014년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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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감독 취임식에서.

2014년에도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해설위원으로 계속 활동하던 중 5월 11일 김기태 전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LG 트윈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3.8.2. 2015년

2015년 시즌 후에는 이진영이병규가 40인에서 제외되었고, 이진영의 40인 제외가 양상문의 강력한 의중이라는 카더라가 돌면서 일부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이진영은 kt wiz의 지명을 받고 이적하게 되었다.[20]

3.8.3.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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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7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역전승 직후의 모습.

항목 참조.

3.8.4. 2017년

LG는 경기 초반 득점 상황에서 자주 작전을 낸다. 그때 1, 2점으로 막으면 경기 중반 이후 뒤집을 기회가 온다. 상대가 그렇게 나오면 상대하기 편하다.
기사에서 모 감독 발언[21]

양상문 감독 부임 후 첫 5할 승률 이상의 전반기였으나, 후반기는 끝없는 추락 중.[22]

리빌딩이 3년째인데도 다른 팀 주전만큼 포텐을 터뜨리는 선수들도 나오지 못했고, 소포모어 징크스를 직통으로 맞으며 퇴보하는 선수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채은성 등 몇몇 선수들의 편파적인 우익수 기용 및 9회 1사에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대타문제, 무의미한 이닝쪼개기로 인한 투수혹사 및 출첵야구로 인해, LG팬들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고 있다.[23][24] 이 상태라면, 재계약은 안 될것으로 보이며, 팬들은 감독과 서용빈 타격코치 동시 퇴진이 희망사항이다. 사실 양상문 감독은 외부 인사라 짤리면 그만이지만 서용빈은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되어[25] LG 팬들은 걱정 중.

팀의 타격이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타격팀 중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몰락하고 있는데 인터뷰에서 입만 열면 투수 얘기뿐이라 엘지팬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자신이 투수 전문가(?)라는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서용빈의 분야를 건드릴 수 가 없어서 그런 지는 몰라도.

투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야수분야는 정말 처절하게 망가져서 거의 사회인 야구급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모든 타격지표가 kt와 아웅다웅하는 수준. 거기에 양상문이 강력하게 밀어준 양아들들인 채은성, 강승호 등은 타격은 둘째치고 수비에서도 연일 실책을 반복하면서 LG팬들의 복장을 터지게 하고 있다. 유연성없는 야수 운영과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가 손에 꼽히게 만든 극단적 좌우놀이, 서용빈의 무능한 코칭이 더해져 지금의 LG 타선은 다른 팀의 신인 데뷔 전용, 천적 투수들의 승수 올리기용으로 전락했다.

해당 문서로.

3.9. 롯데 자이언츠 감독 2기 시절

2018년 10월 19일 LG 트윈스 단장직에서 사임 의사를 밝힌지 불과 몇분 뒤 롯데 자이언츠의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이로써 2010년 이후 9년만에 고향팀으로 돌아왔으며, 감독으로는 2005년 이후 14년만에 돌아온 셈. 다만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환영과 비판이 엇갈리고 있으며, LG의 팬들은 양상문이 아예 LG에서 나가게 됐다며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 미묘한 분위기이다.

양상문은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이 확실한 사람이고, 리빌딩을 병행하면서도 나름 5위라는 성적을 이끌어내며 롯데의 암흑기를 끝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는다. 투수 조련 능력이 좋으니 취약한 불펜에 힘을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유망주에게도 기회가 많이 갈 것이라는 전망. 롯데에서도, LG에서도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많이 줬던 만큼 리빌딩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2018시즌 LG 투수의 몰락에 양상문이 감독 시절 행한 이닝 쪼개기와 이른바 '출첵야구'도 한 몫을 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26] 또한 '투수는 몰라도 타선 운영에는 별 재능이 없다, 공격에서 구시대적 스몰볼을 선호했다[27], 베테랑들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도 꽤나 존재하는 편. 다만 팀 내 최고참인 이대호부터 양상문의 양아들이었으며, 주장인 손아섭 또한 2009년 2군에 있을 당시 양상문 밑에서 지도를 받아 이후 롯데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잡은 것을 감안하면 이전 롯데나 LG 감독 시절 같은 베테랑 배척이 일어날 확률은 훨씬 낮다.

우선 감독이 되고 나서 NC에서 짤린 최기문 코치와 야인으로 있던 윤재국 코치를 영입하고[28] 그 이후 경찰청에서 투수코치를 맡고 있던 강영식 코치와 개성고에서 코치를 하던 이우민 코치, 두산에서 작전코치를 하던 공필성 코치를 다시 롯데로 불러들였다. LG에서 엄청난 욕을 먹던 강상수를 데려오지 않았고[29] 예전에 강민호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최기문을 다시 영입해오며 평가가 조금 올라갔다. 그 외 강영식과 이우민도 현역 시절부터 성실성이 높다는 호평을 많이 받아 왔기에 이 부분 역시 평가가 좋다.

그리고 2019년 다시 감독이 되면서 10개 구단 감독 중 최고령 감독(만 58세)이 되었다.

3.9.1. 2019년

해당 문서로. 약 13년만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지만 창단 최초 10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취임 272일인 2019년 7월 19일 이윤원 단장과 함께 동반 사임했다. 올시즌 불명예 최초 기록을 여러번 쓴 롯데 자이언츠는 감독 부임 첫 해 사퇴라는 KBO 역사상 최초의 기록 또한 쓰게 됐다.

3.10. 지도 스타일

롯데와 LG 시절 모두 투수 코치로서의 평가가 박한 편인데 양상문의 투수 코칭은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변화구는 슬라이더로 통일하고 스트라이드는 무조건 좁혀서 상체위주의 투구를 한다. 양상문의 투구 철학은 스트라이드를 좁혀 각을 날카롭게 한 횡 슬라이더와 포심 패스트 볼의 투 피치.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양상문의 투구 이론은 일단 스트라이드 되는 오른발의 내딛는 위치를 조정해 축이되는 왼발과 스트라이드되어 뻗는 오른발의 위치를 좁게해서 상체의 반발력과 회전 반경을 크게 해서 공의 구력을 높이고 적절하게 릴리스 포인트를 조절해 즉시전력으로 만들어 써먹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를 전혀 못잡아 탄착군 형성이 불완전한데다 이를 획일적으로 뜯어고치는 방식이다보니 투수들이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

게다가 이런 투구폼은 당장 급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동양인의 체구적 특성에는 맞지 않는다. 일단 하체 힘의 전달력이 좋지 못하니 상체의, 특히 어깨의 반발력에 기대는 점이 커서 온 몸을 이용해서 던질 때보다 어깨에 충격이 더해져 장기적으로는 부상을 야기시킨다.[30]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투수들의 신체적 특성이나 스타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투구폼을 획일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나마 상체 위주 투구폼이 맞았던 선수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투수들은 해맨다. 롯데 감독으로 재임하던 시절 장원준의 투구폼을 제대로 못 가르쳐서 4번이나 폼을 바꿔가며 해맨 일화가 있다.
LG 트윈스 투수코치로 있던 시절 봉중근, 이범준, 정찬헌의 투구폼을 전부 똑같이 뜯어고쳤고 2010년 롯데 투수코치로 부임하자마자 송승준, 장원준 등 롯데 투수들의 스트라이드가 전부 좁아졌다. 더구나 2009년 롯데 2군 감독으로 있는 동안 2군 투수진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해 결국 선발 대체 요원들은 로이스터 감독이 직접 찾아낸 이재곤김수완.[31]

구질 면에서도 현대 야구에서 중시되는 종으로 떨어지는 구질이나 옆구리 투수에게 필수적인 잠기는 구질을 못 가르친다. 양상문이 자신의 장기인 슬라이더 외의 브레이킹 볼에 대해 얼마나 이해도가 떨어지는지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 중 했던 한마디로 드러난다. 이날 클레이튼 커쇼의 커브를 보고 양상문은 커브는 안 좋은데 패스트 볼이 좋아서 커브도 먹힌다라는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를 한 적이 있으며, 투수코치로서 현대야구에 대한 공부가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코치 시절엔 은근히 투수 혹사 논란도 있는데, 2004년 임경완은 한 경기 84구를 던지는 등 시즌 내내 혹사당하다 허리가 부러진 채로 군에 입대한 뒤 언더핸드 수준으로 스트라이드를 내리고 나서야 간신히 재기할 수 있었고, 신인이었던 조정훈을 고교 시절 혹사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급하게 올렸다가 강병철 감독 2년 내내 2군에 머물게 만들었다.

자신이 점찍은 유망주는 얼만큼 욕을 먹더라도 터질 때까지 꾸준히 기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롯데의 이대호, 강민호, 장원준, 그리고 LG의 채은성이 있다. 그리고 롯데에서는 부산고 후배인 윤성빈을 KBO 최초로 시즌중 해외연수를 보내면서까지 키우려 하고 있다.

LG 감독 부임 후 임정우에게 스플리터를 가르쳤는데, 과연 양상문이 그간의 오해와 달리 종 변화구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인가의 평가 척도가 될 확률이 높았다.그리고 임정우는 이 스플리터를 제1 변화구인 커브에 이어 제 2~3 구종으로 쓰고 있다.[32]

4. 프런트 경력

2017 시즌 마지막 날인 개천절, 삼성 라이온즈 왕조 시절 감독이었던 류중일을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고, 양상문 감독은 단장으로 승격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최종일 경기 시작 전이어서인지 구단의 공식 발표는 아직은 없는 상태. LG는 사직에서 열린 최종전이 끝난 후 류중일 감독과의 3년 계약 및 양상문의 단장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송구홍은 자연스레 단장에서 물러났다.

엘지팬들 사이에서는 송구홍이 물러난 것은 환영하지만 양상문이 단장을 하는 것도 영 믿음이 안 간다는 어정쩡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세세한 선수기용을 제대로 하거나 건곤일척의 승부를 거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마운드 ERA 1위를 달성하고 팀 평균 연령대를 낮추었듯 큰 그림은 잘 그린다는 옹호의견과, 잠실 거포배제 및 번트/도루 지시를 보면 그 큰 그림도 뭔가 잘못 그리고 있던 감독이었기에 단장이 되어 봐야 나아질 것이 없다는 비판적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롯데 시절 감독에서 짤리고도 로이스터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한 것처럼 엘지에서도 감독에서 물러나면서도 단장을 하게 되는 독특한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망했다.

4.1. LG 트윈스 단장 시절

4.1.1. 2018년

11월 22일 정성훈을 아무런 미래보장도 없이 방출을 통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LG 팬들은 단체로 멘붕중. 이진영에 이어 아무 대책없이 팀내 레전드를 내친것을 보고 순페이가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을정도.[33]

2차드래프트로 손주인, 백창수, 유원상, 이병규가 이적했다는 소식이 드러났다. 2017년에 되도 않는 리빌딩이랍시고 강승호를 밀어주었더니 2016년에 커리어하이 찍은 주전 2루수를 드랲으로 풀어버린것. 위의 정성훈 소식과 맞물려서 LG팬들은 분노를 넘어서 해탈할 정도이다. 점점 LG의 신금지어로 가고있다. 물론 기회를 줄만큼 줬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나이만 먹은 이병규을 내보낸 것은 LG 팬덤에서도 수긍할만 했지만, 정성훈과 손주인을 내보낸 것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뱅 풀어준 것은 의미가 없다. 급기야 단장 퇴출 시위가 있었고, 직구와 조크볼에서도 를 깠을 정도.

이후론 안익훈, 이형종, 채은성을 키워야 해서 FA 데려오기 힘들다는 언플을 하고 있다. 안익훈이야 96년생이고 24세 이하로 이뤄진 선동렬호 1기에도 뽑혀간 선수지만 채은성, 이형종은 각각 빠른 90, 89년생인데 낼 모레 서른인 이 둘이 과연 안익훈과 같은 유망주 패키지로 묶여야 할 선수들일까? 김현수와 손아섭이 88년생으로 양상문이 유망주 딱지붙여서 애지중지하는 이 둘과 한 살 차이 밖에 안난다. 언플의 제왕답다.

12월 초 휴대폰 전화번호를 바꿨다. 누군가 양상문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하자 이를 양상문 반대 측에 퍼트렸고, 온갖 욕설 문자와 전화에 시달린 양상문은 결국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다.[34]

선수 키운다고 무작정 고참 내치다가(김재현, 이상훈) 팀 암흑기를 열어버린 이순철과 계속 비교가 되고 있다. 엘지팬들은 보통 정말 웬만한 일 아니면 저 금지어 이름을 안 꺼내기 때문에 팀과 팬들 사이의 갈등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니다.

그 와중에 허프까지 놓쳤다는 기사가 떴다.기사 FA는 전부 놓치고 베테랑들은 찬밥으로 풀어버리고 잘 던지는 외국인 선수도 다른 팀 보내고.. 이 쯤 되면 단장으로서 뭘 협상한건지 알 수 없을 지경. 현재 양상문이 이끄는 프런트 측은 2017시즌 연봉과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허프가 200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며 헥터 노에시급을 요구하였다 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결국 리즈-허프 체제로 가려는 것이 실패하여 버리려고 했던 헨리 소사에게 재계약 콜을 부랴부랴 넣는 상황 + 새 외인을 찾는 상황이 되었고 모든 구단 중 유일하게 외인 계약 성사를 하지 않자 엘지 팬들은 소사에게 차갑게 대해놓고 잘도 계약하겠다며 양상문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소사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지나치게 비싸게 계약했다며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15일 엠스플에서 LG와 같은 조건으로 일본행? 이라는 기사를 통해 실제 허프와 계약 협상 테이블을 차린 일본 구단 스카우트가 귀띔해 준 내용으로는 LG구단이 제안한 금액과 일본 구단이 제안한 금액이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는 말과 허프도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잔류를 하고 싶어했다는 말에 가뜩이나 이번 겨울 양상문의 행동에 불만이 엄청 쌓인 LG팬 일부는 이 기사를 보고 사실이라면 양상문이 엄청 일을 못 하는 것이라며 비난했고 신중론은 어쩌면 금액은 똑같지만 보장금액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라는 반응도 보였다.

4일 후 19일 김현수를 우여곡절 끝에 4년 115억원(계약금 65억, 연봉 50억)에 영입했다. 11월부터 영입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로서 정성훈 방출 등으로 그를 보는 눈이 비우호적이었던 LG 팬덤의 마음을 돌릴 계기가 마련되었다.[35]

김현수 영입을 기점으로 경질 시위도 지지가 약해졌으며, 오히려 왜들 저러냐는 말까지 듣고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양상문 경질 시위에 공감하거나 가담하지 않으면 프런트 알바, 양상문 가족이나 사생팬으로 몰아붙이다보니 그냥 광신도라는 평가도 받는 중.

그리고 2018시즌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영입을 타일러 윌슨, 아도니스 가르시아로 마무리 지으며 깔끔한 일처리를 보여주면서 스토브리그 한정이지만 논란을 가라앉히는데 성공했다. 적어도 전임자 송구홍이 운영팀장과 단장으로써 4년이나 외국인 스카웃과 FA 영입을 망친 것을 생각해본다면, 양상문의 일처리는 송구홍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됐다는 평. 더불어 앞서 노장들의 정리와 정성훈 방출건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납득이 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는데,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한 손주인, 이병규와 방출된 정성훈은 새팀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5월 6일 현재 엘지의 2루수 쪽은 손주인을 대안없이 내보낸 결과 강승호, 박지규의 1할대 타율과 매경기 실책으로 인해 8연패에 이르렀다. 4월에 이뤄놓은 연승을 다 까먹고 말았다.

5월 중순에 들어서도 엘지는 팀전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모습을 보이며 온갖 팀에 두들겨맞고 있다. 30년 내내 육성에 답이 없던 팀을 젊은 선수 키우겠다고 그나마 사온 선수들도 다 내보내니 팀이 될 리가 있나.

5월 24일 기준으로 2016년 밀어주던 정주현이 안정적으로 2루에서 손주인을 완벽히 대체하며 공백을 지워버렸고 양아들로 입적된 양은성은 사실 그 양이 양상문이 아니라 양준혁이라는 말을 들으며 LG타선을 이형종, 김현수와 함께 이끌며 자신을 폄하하던 LG팬들에게 무력시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채은성은 KBO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으로 타율 11위, 최다안타 4위, 득점 9위, WAR 7위, 타점은 이대호에 이은 공동 2위를 기록하며 김현수에게 묻혔지만 KBO를 폭격하고 있다. 팀내에서는 모든 타격지표가 김현수와 함께 선두권을 달릴정도. 정주현도 비록 지표는 적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더불어 LG팬들이 강승호에게 기대하던 타격쇼마저 보여주며 3할 1푼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다.

단장으로서 실수는 지금까지는 아도니스 가르시아. 4월에 드러눕더니 월드컵 다 보고 올 기세로 먹튀짓을 실시 중이다. sns 관종짓까지 더해 팬들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것은 덤. 엘지에서 타자 용병이 이런 적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양상문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주목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결국 복귀 이후에도 실책남발을 하다가 또 허벅지가 터진 놈을 교체하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발표하면서 양구홍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방화신기를 재탄생시킨 강상수의 억제기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은근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돌중일이 선수빨, 오승환빨의 민낯이 폭로되면서 팀이 끝없이 DTD하자 양상문의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재평가되었다. 타격코치로 10년 팀킬 중이던 서용빈을 데리고서도 플옵에 2번 갔기 때문. 거기에 양상문이 있던 시즌에는 김현수도 없었고 외국인 타자도 16년 전반기 히메네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었다.

10월 19일 성적 부진 책임을 이유로 사퇴했다. 이후 신임 단장에는 LG 트윈스 투수 코치, 해설위원 경력이 있던 차명석이 부임한다.[36]

10월 21일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공식발표가 났다. 만세~!

5. 해설위원 경력

5.1. 해설위원 1기 시절

롯데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2006년에는 MBC ESPN에서 해설을 했고, 도하 아시안 게임 국대 투수코치를 맡아 도하 참사의 공범이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5.2. 해설위원 2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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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손혁, 양상문, 허구연, 차명석.

해설위원 양상문의 능력 자체는 자신의 대학원 석사 과정 동안 접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미 2006년에 해설위원을 하면서 그 탁월함은 인정받았기 때문에 평가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양상문의 지나치게 편협하고 노골적인 편파해설은 늘 항의를 받았다. 박성화 감독과 비슷하다.[37] 그러나 지나치게 롯데 위주로 해설을 한다는 롯데 출신 해설위원들의 단점을 그대로 장착했다. 그래서 다른 구단 팬들에게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었다.

거기에 SK 팬들에게는 SK가 치르는 경기의 해설로 배정될 때마다 상대 팀을 일방적으로 띄워주는 새로운 편파해설의 거성으로 떠오르면서 눈엣가시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화 이글스가 LG 트윈스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자 "이 장면은 정말, 사실은 나와서는 안되는 장면입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에는 호의적이다. 넥센에 호의적인 해설가를 손가락에 꼽을만 했던 시절에[38] 양준혁과 함께 거의 유이하게 넥센 편을 들며 혀갤러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마 구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약했던 것 때문에 팀이 해체 후 재창단하였어도 애정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스포츠동아에 이런 것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뭐? 누가? 누구를? 그래서 지금까지 그러셨어요?

넥타이를 놀린 죄로 장성우에게 고자킥을 날린게 사진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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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에이스급 좌완투수들의 집단 부진에 대해 진단을 했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도 가끔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할 때마다 어이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발언과 틀린 정보를 많이 퍼뜨린다. 대표적인 예가 클레이튼 커쇼를 두고 커브는 그다지 쓸만하지 않은데 속구가 좋아서 선수들이 커브에 당한다고 한 것.[39] 그것 외에도 맷 하비를 두고 놀란 라이언 이후 강속구 투수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강속구 투수가 다시 나타났다 라면서 하비의 95마일 패스트볼을 두고 '정말 빠른 공이죠' 라고 말했다. 정작 95마일은 하비의 패스트볼 평균 속도. 하비의 패스트볼은 가장 빠를 때 100마일을 넘어간다. 거기에 당연하지만 성공 여부가 아닌 강속구만 놓고 본다면 놀란 라이언과 맷 하비 사이에는 마이너리그만 쳐도 세 자리수를 넘어가는 투수들이 등장했다. 그냥 '저 놀란 라이언 이후 미국 야구 안 봤어요 헤헤헤' 라는 소리로 알아들으면 편하다.[40]

또, 새벽 중계에서는 메이저리그 포수들의 프레이밍을 보며 "포수 프레이밍 능력은 한국 포수들이 세계 최고죠? 허허허"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거기다 시도때도 없이 동양야구 예찬을 자주 하는데, 부진에 빠진 히스 벨을 두고는 '투구폼이 살짝 안 좋은데, 한국 투수 코치들에게 코칭을 받으면 더 좋아질 수 있다. 분명한 건 메이저와 한국 투수 코치들 사이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라는 발언과 ''미국 포수보다 한국 포수들의 미트질이 더 좋다."는 발언까지 했다. 2013년에는 LA 다저스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자 양상문이 보스턴 레드삭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를 현지중계하러 가는 참사가 발생하며 뭇 야구팬들의 고막을 고문했다.[41] 월드시리즈에서도 주옥같은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도루 시도가 2013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8위였던 세인트루이스를 기동성이 무기라고 하지를 않나, 우에하라의 1루 견제구 끝내기를 두고 '동양야구가 미국야구에 비해 저런 게 좋죠' 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42], 존 래키가 불펜 등판한 것을 두고 동양 야구의 영향이라고 하질 않나[43] , 2013년 행크 애런 상미겔 카브레라가 탔다는 말을 캐스터가 하자 '홈런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라는 기본적인 지식조차도 결여된 소리를 작렬하지 않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행크 애런 상은 홈런왕이 아닌 가장 훌륭한 타자에게 주는 상이며, 애초에 2013년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은 카브레라가 아니라 크리스 데이비스다. 이렇듯 메이저리그 해설로서 받는 평도 좋지 못한 편이다. 해설로서는 현장의 감뿐만 아니라, 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 등을 통해 정확한 데이터도 숙지해야 한다.

6. 평가

자세한 내용은 양상문/평가 참고

7. 기타

  • 선수 시절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석사 출신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두뇌파, 학구적이란 이미지에 비해 실제 지도력은 너무나 형편없다는 혹평을 받으며 학벌로 생명을 이어가는 불사조라고 코치 시절 내내 까였다.
  • 고려대 재학 시절,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자는데 혼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점을 높이 사서 구타로 유명한 최남수 감독이 집합에서 양상문만 열외시켰을 정도.
  • 프로야구 선수 시절에는 구단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혼자서 철도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열악한 철도환경을 생각하면 흠좀무.
  •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당시 KBS 일요일 오전에 방송된 인기 프로그램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온갖 관문을 통과하고 최종 관문인 마법의 다리까지 도전했지만 다리 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열전 용사에 오르는 데 실패하였다. 운동 선수로서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 출연 하여 최종 관문까지 도전한 두 명 중 하나.[44]
  • 태평양 돌핀스에서 한솥밥 먹었던 김성근은 양상문을 높게 평가한다. 김성근의 책 중 하나인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를 보면 양상문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도 하며 양상문을 믿으며 제대로 된 리더로 키우고 싶었다는 말까지 한다.
  • 이래저래 욕 많이 먹은 지도자였지만 롯데에 대한 애정만큼은 확실했다. 롯빠아재로 유명한 송승준 이전에 성공한 롯빠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2011년 해설위원으로 컴백했을때 롯데팬들의 반응은 "이제 마이크 잡았다고 과거 이야기하면서 롯데 무진장 까겠군." 이라며 견제했지만 오히려 해설내용은 친 롯데. 그 때문에 롯데팬들은 타팀 출신의 마음에 안 드는 스태프가 있을 경우 양상문은 롯데를 사랑하기라도 했지라며 깐다.

    게다가 2012년 시즌 예상에서 롯데를 4강 후보로 꼽았던 몇 안되는 인물이며 유일하게 4강 진출팀을 모두 맞췄다. 그래서 의리의 양상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3년 시즌 예상에서도 유일하게(!) 롯데를 4강후보로 꼽았다. 다만 이 예상은 이번에는 빗나갔다.
  • 2014 시즌 후 과열된 FA 시장의 거품 논란을 잠재우려면 FA 선수를 공개입찰을 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비웃음을 들었다. 이는 FA 제도 목적이 뭔지 모르는 발언인데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자유롭게 팀을 골라 선택할 자격을 주지 않으면 FA의 근본적인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지극히 선수에게 불리한 방법이다. 자유계약선수(Free Agent)가 아니라 자유경매(Free Auction)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양상문 감독과 비슷한 생각으로 실행했다가 비웃음을 들으며 꼬리를 만 경우가 있는데, KESPA가 예전 E-스포츠에서 이런 식의 FA를 했다가 질타만 들었다.
  • 2014 시즌 후 FA를 선언한 차일목이 2년 4억 5천만 원에 계약하자 44년 4억에 계약해도 안 데려올 거라고 고유라 기자에게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다른 팀 선수[45]에게 쓸데없이 비난을 했다는 평이다. 물론 차일목의 기량, FA 계약 후 발언 등으로 차일목이 어그로를 끌었지만 굳이 저런 발언을 할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있다.
  • 김경문 감독과 막역하다. 김경문을 따라 공주고에 진학할 뻔 했다. 결국 김경문이 먼저 있던(경영학과 78학번)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 동기로는 양승호(사회교육학과 79학번), 대학에서 같이 뛰었던 후배들은 김광림(무역학과 80학번), 정삼흠(경제학과 81학번), 선동열(경영학과 81학번), 박노준(경영학과 82학번)이 있다. 대학시절 활약상 롯데 감독으로 선임 되었을 때에도 당시 두산 코치였던 김경문을 수석코치로 영입하려 했었고, 또 김경문 본인도 롯데로 이적할 결심을 굳혔으나, 며칠 후 김경문도 두산의 감독으로 승격되서 김경문의 롯데 이적이 무산 되었던 비화가 있다.
  • 염경엽 감독과도 사이가 좋은 편. 웹에서 검색하면 대개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46]이 눈에 띄는데, 대학(고려대) 선후배 사이에다 태평양 선후배 사이인 것이 크다 .2016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 후, 염경엽 감독이 갑작스런 사퇴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가 끝난 후, 직접 염 감독에게 찾아가 포옹하며 위로해 주는 모습이 팬들에게 포착되었다.
  • 선수들과의 관계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 2013년 스프링캠프에서 이동현 선수가 양상문 당시 MBC+ 해설위원의 패션 등을 두고 놀리면서 "아저씨, 전화하면 씹지 말고 좀 받으세요"라고 디스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는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만큼 선수들과 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2016년 포스트시즌에서 덕아웃에 붙어있는 선수 명단에 누군가가 "양상문 짱"이라고 낙서한 모습이 캡쳐되었는데, 팬들은 양석환이나 임찬규 아니냐며 의심(?)을 하는 중.[48] 2016년에 LG 트윈스의 덕아웃 분위기가 바뀐데에는 주장 류제국의 공이 컸지만, 그만큼 양상문 감독이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LG 감독 시절에, 롯데 (출신) 선수들과도 친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가장 친분있는 모습을 보인 건 친목질의 대가. 정수근 역시 평이 갈리는 자이언츠 1기 시절의 양상문을 좋게 평가하는 듯.[49]
  •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이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8.1. 선수 시절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5 롯데 33 101 6 3 4 - 0.667 3.83 120 7 30 58 57 43 1.436
1986 21 37⅓ 1 2 0 - 0.333 1.93 27 2 14 21 8 8 0.96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7 청보 36
(2위)
209⅓
(3위)
12 13 0 - 0.480 3.10 188 18 71 84 87 72 1.21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8 태평양 38
(2위)
169⅓
(5위)
9 12 3 - 0.429 3.83 185 12 56 68 89 72 1.411
1989 35 161⅔ 8 11 4 - 0.421 3.28 131 12 77 91 60 59 1.249
1990 34 162⅓ 11 9 1 - 0.550 3.22 151 10 57 68 72 58 1.269
1991 25 123⅓ 6 9 1 - 0.400 3.50 122 6 46 80 54 48 1.354
1992 28 144⅓ 7 8 0 - 0.467 4.55 134 22 78 83 78 73 1.455
1993 22 101 3 12 0 - 0.200 4.46 110 9 50 46 62 50 1.545
KBO 통산
(9시즌)
272 1209⅔ 63 79 13 - 0.444 3.59 1168 98 479 599 567 483 1.335

8.2. 감독 시절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4 롯데 자이언츠 133 50 72 11 8위 -
2005 126 58 67 1 5위 -
통산 259 108 139 12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4 LG 트윈스 94 52 41 1 4위 4위[50]
2015 144 64 78 2 9위 -
2016 144 71 71 2 4위 4위[51]
2017 144 69 72 3 6위 -
통산 526 256 262 8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9 롯데 자이언츠 94 34 58 2 10위[52]
통산 94 34 58 2
총계 879 398 459 22


[1] 음력 3월 24일.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학교를 1년 빨리 들어가서, 1960년 생들과 동기가 된다.[2] 출생 당시엔 직할시 승격 이전이자 자치구가 아닌 일반구였기에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출신이다.[3] 석사과정 포함.[4] 시즌 중도사퇴[5] 7월 14일 하루 제외.[6] LG 트윈스 구단 공식 캐스터였던 안준모도 운영 관련해선 양상문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 또한 정수근도 인터뷰에서 그다지 좋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나마 롯데를 북한에서 남한으로 바꾸려 했던 사람이었다고 했지만 정수근이 뛰던 시절과 양상문의 롯데 감독 임기는 다르다.[7] 결승전에서 1년 선배 김경문공주고와 대결했다. 김경문은 대회 최우수선수상 및 타격상을 수상했다. 공주고는 36년후인 2013년에 대통령배를 다시 품에 안았다.[8] 물론 저 사진은 광고를 위한 컨셉이었고, 실제로 김성근은 숙소에 있었고 훈련에는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9] 이 때문인지 김성근 감독은 의외로 양상문의 코칭 능력을 준수하게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훗날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아직 병역을 필하지 못해 해외 전지훈련에 가지 못한 고효준의 전담 인스트럭터로 양상문을 붙여준 적도 있다.[10] 당시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는 팀을 상위권 전력이라고 오판해서 우승을 내부목표로 정하고 순조롭게 리빌딩을 진행중이던 양상문을 짜르고 우승 경험이 있는 강병철을 영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1] 프로야구 역사상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팀에서 시즌 MVP가 나온 것은 2005년의 손민한과 2012년의 박병호 단 두 명뿐이다.[12] 당시 롯데의 베스트 라인업 가운데 2할 5푼 이상을 치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 했음에도, 타격감 유지가 힘든 대타 포지션에서도 출루율이 5할을 넘을 정도로 감이 좋았던 박정태를 그토록 철저하게 외면한 점에서 어떻게 보면 선동열양준혁에게 했던 짓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13] 롯데 감독 2기 시절 김시진이나 장효조 등의 노장을 배제하고 전준호, 박정태, 김응국 등의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한화 감독 시절에도 욕을 먹어가며 이정훈, 이강돈 등을 정리하고 송지만, 이영우, 홍원기를 신인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밀었다. SK 감독 시절에도 무수한 욕을 먹어가며 채종범, 이호준, 이진영을 밀어주었다. 자세한 건 강병철의 양아들 항목 참조.[14] 두 명도 아니고 로페즈, 윤성환과 3인 공동 다승왕이었다.[15] 김수완은 인터뷰 때 유독 양상문에게는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게다가 구단이 그 건 이후 언론플레이까지 했으니...[16] 주자가 루상에 있는 상태에서 블론세이브되는 터브 블론세이브는 절반인 8개.[17] 다만 한문연 코치해임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호불호가 갈렸다. 그래도 박영태, 양상문이 잘린 것에 대해 대부분 기뻐한 것은 사실이다.[18] 하지만 로이스터 안티 성향인 갈매기 마당의 일부 팬들은 글 내용에서 보다시피 투수코치 말도 안 듣는 로이스터야말로 막장 감독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양상문을 무능한 감독 덕에 함께 휩쓸린 희생양으로 몰았다.[19] 취임 직후 선수단에게 이 메시지를 강조하며 덕아웃에 해당 문구를 써 놓은 플래카드를 붙여놓기까지 했다.[20] 그러나 세대교체 측면에선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분위기.[21] 김경문으로 추측된다는 서술이 있었다.[22] 그런데 끝없는 추락 중이라고 말은 하지만, 까보면 올 시즌 최저 승패마진이 -2밖에 안된다. 이게 다 하위권 3팀이 거의 승점자판기 수준으로 못해서...사실 7월도 노 루징 시리즈로 잘했는데 8월 이후 다 까먹어 버린 게 제일 컸다.[23] 그 김성근도 이렇게까지 투수를 쪼개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참고로 2017시즌 LG 불펜진의 평균 소화이닝은 0.96이닝. 굳이 변명을 하자면 마무리 임정우가 어깨 통증으로 전반기 다 끝나서야 복귀하게 된지라 신정락, 정찬헌, 이동현 등 여러 투수들을 돌아가며 마무리를 맡게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만, 결국 이 집단 마무리의 부작용은 8월부터 대폭발하고 말았다.[24] 그래서인지 쥐갤 등 커뮤니티에서는 김성근이 팔꿈치를 쪼개는 동안, 양상문은 이닝을 쪼갠다는 비난이 흥하고 있다.[25] 선수 폭행을 하고도 안 짤린 타격코치다.[26] 투수코치였던 강상수의 합작도 있었지만. 그래도 강상수 코치는 KIA 타이거즈 투수총괄로 갔다가 5월 김기태 경질과 함께 강등되었다.[27] 이는 2019 시즌에 구시대적 레벨스윙 및 스몰볼을 고수하는 1군 타격코치 김승관을 그대로 선임하는 행보로 현실화되었다. 당장 두산 베어스정경배 코치도 메이저리그를 벤치마킹하고 공부하려는 자세와 대조되는 부분.[28] 그러나, 윤재국 코치는 김성근 사단으로 분류되어 능력에 의문표가 붙고 있다. 김성근이 2017년 경질된 이후로 김성근 사단의 코치들은 재취직이 힘든 상황.[29] 강상수는 이후 2019 시즌 초 서재응 코치로 교체되었다.[30] 실제 김시진은 2000년대 들어서 매년 즉시전력감 수준급 우완불펜을 찍어내서 명성을 얻었지만, 이 선수들은 하나같이 짦은 전성기 뒤에 부상으로 사라졌다.[31] 특히 김수완의 경우 케이블로 롯데의 퓨처스 리그 경기를 본 로이스터 감독이 왜 이런 투수가 있다는 것을 여태 보고 안 했냐고 심하게 화를 냈다는 일화가 있다. 제리 로이스터 항목 참조.[32] 슬라이더와 간혹 체인지업도 사용한다.[33] 이에 대한 불만 및 비판을 가진 일부에서는 노장이 되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정성훈도 예외는 아니지만 떠나보낼 때는 떠나보내더라도 저렇게 선수에게 모멸감을 들게 떠나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 중론으로 나오고 있다. 더구나 정성훈도 엘지에서 9시즌을 뛰는 동안 FA 자격이 2번 더 주어졌는데 2번 모두 본인의 가치보다 엘지측에 훨씬 싸게 사인해주었다는 이야기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반 분위기에 비해 비교척 영입 시장을 차분히 마무리 했지만 선수 대우에 대한 태도 만큼은 아직도 큰 비판거리.[34] LG 트윈스에서도 2010년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35] 그러나 양상문 안티 세력은 김현수는 당연히 영입했어야하는 선수인데 뭔 이미지 포장이냐며 계속 투덜거리고 있다.[36] 차명석 또한 MBC SPORTS+ 해설위원이였다는 것이 같다.[37] 참고로 양상문처럼 이론은 잘 아는데 실전에서 망했었고 편파해설을 자주하는 해설위원이 하나 더 있다. 허구연 참조.[38] 2013년 현재는 구 현대 시절 해설가들이 많이 생겼다. 이숭용, 박재홍, 조용준 등등[39] 아예 두고두고 까려는 모양인지 포스트시즌에서 탬파베이 경기를 중계 하다가도 깐다.[40] 하비 이전에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만 봐도 너도나도 괴물이라 이야기하던 마당에.... 박찬호만 해도 전성기 LA 다저스 시절 95~6마일 포심을 잘만 뿌렸고, 저스틴 벌랜더는 선발투수임에도 경기 후반에 100마일 공을 뿌릴 정도로 강속구 투수로 유명하다. 구원 쪽에서는 아롤디스 채프먼100마일을 우습게 찍는다.[41] 다저스가 진출했다면 그나마 나은 허구연이 해설할 가능성이 높았다.[42] 한국 프로야구가 2008년 봉중근이 견제사 6개로 1위, 2개의 호세 리마가 2위를 차지하는 동안 메이저리그는 그렉 스미스가 15개로 1위, 앤디 페티트가 9개로 2위였다. 그 밑에 자잘한 선수들이 수십 명씩 3~4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43] 어차피 오늘 이기지 못하면 내일이 없는 단기전에서 선발을 불펜 등판시키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한 일이다. 당장 한국에도 잘 알려진 2001 월드 시리즈 7차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구원투수는 전날 선발투수였던 랜디 존슨이었다. 게다 앞서 등판한 미겔 바티스타도 선발이었다.[44] 나머지 한 사람은 농구 선수 故 한만성으로 허재용산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아농구단(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입단했다. 당시 기아 농구단 선수 전체가 출연할 때 나왔다.[45] 44년 4억이라는 말을 양상문이 언급한 시점은 FA 협상 기간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공식적으로는 무적이긴 했다. 고유라 기자가 LG가 아닌 넥센 담당 기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사석에서 던진 농담일 가능성이 높다.[46] 양상문 감독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대개 선배에게 후배가 먼저 인사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예의를 갖추는 면이 양상문 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47] 04학번, 부산고 시절 장원준박근홍의 뒤를 받치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였다.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했다.[48] 저 둘은 충암고가 아님에도 성격이 충암고 출신들과 비슷하다는 게 팩트인지라...[49] 박명환의 방송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북한을 남한으로 바꾸려던 감독'이었다고 한다. 다만 정수근은 강병철과 매우 사이가 나쁜만큼 어느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 한다.[50]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패배하여 3위가 아니라 4위[51]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패배하여 3위가 아니라 4위[52] 중도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