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6 22:13:42

이형종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조선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도정궁 제8대 사손에 대한 내용은 이형종(1706)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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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No.36
이형종(李炯宗 / Hyung-Jong Lee)
생년월일 1989년 6월 7일 ([age(1989-06-07)]세)
체격 184cm, 87kg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화곡초 - 양천중 - 서울고
포지션 투수외야수 타격코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8년 1차지명 (LG 트윈스)
소속팀 LG 트윈스 (2008~2010, 2013~ 현재)
등장음악 박상민 - 너에게로 가는 길 (Crazy for You)[2]
응원가 마야 - 위풍당당[3][4][5][6]
연봉 1억 7000만원 (61.9%↑, 2019년)
LG 트윈스 등번호 35번
진필중(2004~2007) 이형종(2008) 이진영(2009~2015)
LG 트윈스 등번호 47번
봉중근(2007~2008) 이형종(2009) 서승화(2010~2011)
LG 트윈스 등번호 20번
서성종(2009) 이형종(2010) 박동욱(2011)
LG 트윈스 등번호 40번
김효남(2013~2014) 이형종(2014) 이승현(2015~2016)
LG 트윈스 등번호 36번
전호영(2012.~2013) 이형종(2014.3.~2014.4) 에버렛 티포드(2014.4.~2014.11)
박지규(2015) 이형종(2016~) 현역

1. 개요2. 선수 생활
2.1. 눈물의 에이스2.2. 프로 입단과 짧은 활약2.3. 임의탈퇴, 방황2.4. 복귀2.5. 2016년2.6. 2017년2.7. 2018년2.8. 2019년
3. 플레이스타일
3.1. 투수로서3.2. 타자로서
4. 트리비아
4.1. 고의성 배트 투척 논란
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LG 트윈스의 전 투수이자 현재 외야수. 우완 강속구 투수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고등학교 시절때의 혹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방황하다 임의탈퇴 공시되어 그라운드를 떠난 비운의 선수, 그러나 방황 끝에 2013년 다시 LG 트윈스에 복귀, 이젠 투수가 아닌 타자로 팬들에게 존재감을 어필하는 선수.

2. 선수 생활

2.1. 눈물의 에이스

서울고 출신의 우완 투수였다. 이형종은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특급 에이스감으로 주목을 받은 재목인데, 양천중학교에서 서울고로 진학하면서 연회비 전액 면제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7] 1년 선배인 임태훈, 이병용[8] 등과 함께 서울고의 마운드를 꾸려 왔으나,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당시 서울고 전력 덕분에 성적 자체는 안습. 그러나 고3이 된 후 2007년 봄에 열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7050419072660006100-001.jpg[9]

소속팀인 서울고를 결승까지 끌어올려 전통의 강호 광주일고를 상대로 9회 2사까지 리드를 지켜가지만, 끝내 역전을 허용하며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을 던진다.[10][11] 여담이지만 이 때 이형종은 거의 바닥이 다 드러난 상황이었다. 1회전부터 130개의 공을 던지며 많은 이닝을 소화한 이형종은 2회전에서는 무려 190구를 던지며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린 상황, 덕분에 이형종은 엄청난 피로가 쌓여있었고 결승전에서마저 2학년 투수 안성무가 난조로 무너지자 이형종이 중무리로 등판, 이 경기에서도 140구를 던졌다. 그야말로 이 악물고 던지고 있던 상황. 이 때 붙은 별명이 눈물의 에이스.
이것이 이형종의 이름이 제대로 알려진 바로 그 경기였다.

하지만 이 대회가 끝난 뒤 우승 팀인 광주일고의 정찬헌보다 먼저 LG와 계약을 체결하며 일찌감치 프로행 티켓을 거머쥔다. [12]

여담이지만 이 때 대통령배 결승전 심판은 심수창의 아버지인 심태석이다. 그리고 이형종에게 끝내기를 쳤던 광주일고의 타자는 2016년부터 2차 드래프트로 이형종과 같은 팀에서 함께하게 된 포수 윤여운이다. 감회가 남다를 듯했지만, 윤여운은 2016 시즌 후 LG 에서 방출당했고 포수난을 겪고 있는 NC 다이노스에 영입되어 2018 시즌부터 뛰게 되었다.

또 끝내기 안타 뒤 껑충 뛰며 홈을 밟고 있는 선수는 다름 아닌 서건창이다.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는데, 이 때 이형종에게 슬쩍 화를 내는 모습도 중계에 잡혔다.서건창 앞 타석에서 9회말 두번째 아웃을 당한 선수는 현재 두산에서 뛰는 허경민이다.

2.2. 프로 입단과 짧은 활약

2007년 드래프트 1차 지명자인 이용찬과 마찬가지로 4억 5,000만 원(첫 해 연봉 포함)에 계약을 체결하고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지만, 부상으로 첫 시즌은 1군 데뷔도 못하고 끝낸다.[13]

그리고 2010 시즌에는 팀에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새로 부임한 박종훈 감독이 이형종을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자 이에 반발, 미니 홈페이지에 "너랑 싸우고 싶다. 1군도 2군도 가기 싫고 군대나 가겠다"는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14] 당시 이상훈이 구단에 엿먹은 일을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사건, 봉중근 2군행에 대한 봉중근의 와이프의 미니 홈페이지 쌍욕(...)과 함께 그 해 LG의 시즌 초 3대 인터넷 전쟁(...)으로 보도되었다. 이 두 사건이 시즌 개막 후 한 달 내의 일임에 비해 이형종의 일은 개막전을 전후한 일이었는데, 같이 묶이면서 결국 꽤 오래 회자되었다. 안습.

하지만 곧 오해를 풀고 2010년 5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 선발로 등판,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탈삼진 2실점으로 데뷔 후 첫 승리를 따내며 꽤나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최고 구속은 152km/h. 2010시즌 초반 박종훈 감독의 선발진 구상이 '봉중근+에드가 곤잘레스+박명환+심수창+미지의 5선발'이었기 때문에 대뜸 유력한 5선발 후보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5월 23일 두산전에서는 4⅔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였기에 곧바로 선발자리는 꿰차지 못했다. 그 후 5선발 자리는 김광삼에게 돌아가지만 심수창이 똥같은 구위를 보이면서 선발진은 커녕 투수도 아닌(...) 활약으로 완전히 이탈하여 또 선발 한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로는 선발이든 뭐든 전혀 등판을 하지 못했다.

파일:file2206350_9823.jpg
여담으로 첫 승을 올린 2010년 5월 16일 경기에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 첫 승 축하를 벤치 클리어링을 펼치는 장면이 나왔다. 승리 투수와 패전 투수 모두 2017년 현재 타자로 전향했다가 패전 투수는 다시 투수로 전향했다.[15]

2.3. 임의탈퇴, 방황

실은 2번째 등판 이후 부상이 도져서 2군으로 내려가 재활조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재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본인은 너무 아파서 못 던지겠다고 주장하고, 구단은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형종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결국 또 그 놈의 미니 홈페이지에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리고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2010년 8월 10일 임의탈퇴 공시되어 최소 1년 간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 LG 팬들은 1차 지명 잔혹사를 다시 떠올렸다(...).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인정받았고 실제로 1군 기록이 양은 적지만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팀 내에 이런 선수도 있어서 비교가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형종의 재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안타깝다고 하였다.

이후 또 그 놈의 싸이월드에 다른 운동을 시작한다는 뉘앙스의 코멘트가 올라오고 지인드립까지 합쳐져서 골프로 전향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야갤이 잠시 술렁이기도 했다.

자신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팔이 정말 좋아진다면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스포츠조선의 기사(링크)에서 야구선수로서의 복귀가 아닌 골프 선수로 전향을 하기 위해 훈련 중이고 9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를 한다고 밝혀졌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와 팬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심경의 변화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도 있지만 너무 생각없이 내뱉고 말바꾸고 한다고 까이기도 했다.

와중에 2011년 8월을 기점으로 박종훈 감독의 무능&혹사&삽질&안 좋은 얘기 등이 더해지며 이형종 & 서승화 등이 왜 박종훈 감독에게 반발을 했는지 동정론이 늘기도 했다.

2011년 12월 21일 복귀를 원한다는 인터뷰 기사가 떴다. 실제로 골프를 준비했었던 모양. 조브 클리닉에서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16]

그 후 공익근무로 복무하였으며, 공익 퇴근 후에는 류제국과 함께 몸을 만들고 있다는 페이스북이 올라왔으며, 류제국이 이형종의 멘탈을 잡아주는 훈훈한 풍경이 페이스북에 잡히기도 했다.

2.4. 복귀

팔꿈치 수술이 성공하여 이형종이 시속 150km/h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본 LG는 이형종을 2013년 6월 18일에 정식 선수로 등록했다. 원래는 2014시즌에 정식선수 등록을 할 계획이었지만 차명석 투수코치의 요청으로 등록이 빨리 이루어졌다.

역시 빙빙 돌아(...) LG로 오게 된 류제국이 2013년에 선발로 출장하며 야잘잘을 몸소 보여주면서, 이형종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2014 시즌에는 신고선수로 전환되었고, 시즌 중반에 김효남이 방출되면서 공석이 된 40번을 가져가게 되었다.

2014 시즌이 끝나고 타자로 전향한다는 기사가 나왔다.기사 타격과 외야 수비 훈련을 받고 있다고. 그리고 등번호도 다시 107번으로 바꿨다.

2015년 2군 3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5, 13타점, 14득점, 5도루를 기록했다.

2.5. 2016년

2016년 1월 6일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배번은 서울고 시절에 달던 36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으며, 애리조나에서 열린 팀 내 청백전 두 차례 경기에서 첫 번째 경기에는 결승타 포함 2안타, 두 번째 경기에는 3안타를 쳤다. 기사

2월 22일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임훈 타석에서 대타로 출전한 뒤 3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경기 중 타순을 착각하여 손주인의 타석에 서는 해프닝이 있었다. 영상

3월 13일 롯데와의 시범경기에서 정대현을 상대로 홈런을 떄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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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개막전 로스터 진입에는 실패하였다. 따라서 2016 시즌 시작은 2군에서 하게 되었다.

4월 10일 SK전을 앞두고 1군으로 올라왔고 이 날 7번타순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게 되었다. 첫 타석과 두번째 타석은 모두 범타로 물러났지만 세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면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했다.

4월 12일 엘꼴라시코에서 역전 적시타 포함 2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인생경기를 했다.

4월 24일 넥센전에 1번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선발투수 라이언 피어밴드에게 꽁꽁 막혀 한 번도 출루하지 못했다. 하지만 8회 초, 무사 13루 찬스에서 김상수에게 안타를 뽑아내면서 타점을 기록했다.

5월 11일 삼성전에서 6회말 데뷔 첫 홈런(쓰리런)을 때려냈다!!! 팀도 16:2로 대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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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공은 경기장에 있던 어떤 한화(?!)이 잡았으나, 구단에선 그 팬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보상을 해주고 공을 받아왔고, 양상문 감독이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를 공에 적어주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12일 임훈이 콜업되면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양상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팀 구성상 어쩔 수 없다는 듯. #

그러다가 7월 23일 두산전을 앞두고 두 달만에 1군에 등록되었다.

7월 26일 롯데전 7번타자로 나와 2안타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7월 28일 롯데전에서 이천웅의 대타로 나와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3루타 하나에 단타 하나. 그리고 오늘 경기까지 올 시즌 현재 롯데전 타율이 무려 .818이다.(!!!) 꼴나쌩

9월 11일 롯데전에서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맞는 2사 만루상황에서 윤길현을 상대로 2타점 결승 적시타를 작렬, 결정력을 보여주고 롯데 상대로 엄청난 강세를 이어갔다. 역시 로나쌩

10월 11일 열린 KIA와의 와일드카드 2차전에서 좌익수로 선발출전하여 생애 첫 포스트시즌 경기에 출전하였다. 결과는 3타수 무안타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이후 작뱅, 이준형, 정주현 등과 함께 미야자키로 출국, 남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올라오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타구의 질도 좋고 장타력도 있는 모습을 보인다. 김용의채은성의 재발견으로 팀의 외야 라인업이 안정되다 보니 팀과 팬, 선수 모두 성적에 부담감을 갖지 않고 장기적 육성을 도모하는 모습이다. 이 팀은 원래 무턱대고 주전 준다고 해서 유망주가 터지지는 않는다는 게 증명된 팀이다 보니, 이형종과 그 동료들에겐 이런 성장 환경이 유리할 수도 있다.

2.6. 2017년

파일:Screen Shot 2017-10-11 at 1.17.55 PM.png

타자로서의 풀타임 첫 시즌. 그리고 그는 광토마라는 별명을 얻으며 데뷔 첫 세자리수 안타까지 쳐냈다.

이형종/2017년 문서 참조.

2.7. 2018년

광토마의 계속 된 질주. 첫 3할, 두 자릿수 홈런, 규정타석을 기록하며 트윈스의 톱타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체력 문제로 후반기는 너무나도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팀의 DTD를 막지 못했다.

이형종/2018년 문서 참고.

2.8. 2019년

2019년 3월 23일 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펼쳐진 KIA타이거즈와의 원정 개막전에 나와 양현종을 상대로 1회초 1번 타자로 나와 올해 첫 안타를 기록했다. 이어 2019년 3월 24일 KIA 타이거즈와의 6타석에서 5번이나 출루를 했다.

4월 2일 현재, 자신의 큰스윙에 공이 맞지 않으며 찬스를 끊어먹고 있다. 애초에 이형종의 작년 성적은 플루크로 봐도 무방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부상으로 4월 6일 이후 2군으로 내려갔고 30일에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3. 플레이스타일

투수출신으로 타자로 전향하여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년 확연하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서 장타력과 기본기를 좀 더 보완한다면 중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손색없을 정도의 플레이어이다.

3.1. 투수로서

152km/h의 강속구를 뿌릴 수 있는 우완 정통파 파이어볼러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때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아 무리한 결과 고3 이미 그의 팔은 제대로된 공을 뿌릴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프로 입단 후에도 제구가 잡히지 않았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연속으로 부상이 겹치며 토미존 수술만 두 차례 받았음에도 어깨와 팔꿈치가 계속 아팠고, 끝내 투수를 포기하고 외야수로 전업했다. 그야말로 투수로선 끝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비운의 선수.

3.2. 타자로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3할을 칠 수 있는 컨택, 장타력, 투수 출신의 강견, 주루 능력을 갖춘 4툴 플레이어이나 이 모든 것을 기본기 부족으로 다 까먹는 타자이다.

주로 중견수로 출장하고, 좌익수우익수도 무리없이 소화한다. 투수 출신답게 외야 송구가 굉장히 날카롭고 강하다. 타자로서는 강한 파워가 눈에 띄며, 타구질도 좋아 2루타 이상의 장타를 곧잘 생산한다. 주자로서는 주루 능력[17]뿐만 아니라 순수한 주력 자체도 좋다. 경험 면에서(견제) 미숙한 점이 보이기도 했으나[18] 점점 개선되는 중.

이병규의 대표 별명인 '적토마'를 사실상 물려받았는데 자신의 피부가 하얗다보니 '백토마'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미친 적토마'라는 뜻의 '광토마'가 되었다. 이는 실제로 본인도 인정한 별명으로 해당 영상 대선배의 위명을 이을 만큼의 활약을 기대하는 팬들이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다만 지나치게 열심히 훈련을 하는 게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 덕에 슬럼프를 겪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하여 팬들의 걱정을 사는 편.

그리고 그의 최대의 약점은 기본기 부족. 2017 시즌 초와 2018시즌 부상 복귀 후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주었지만, 수비와 주루플레이, 그리고 타석에서의 수싸움 능력 등 야수 및 타자로써의 기본기가 떨어지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2018년 7월들어 바깥 쪽 체인지업에 무조건 엉덩이가 빠진 채 헛스윙하는 것도 그렇고. 위에 컨택이 좋다고 적혀있지만 컨택이 매우 좋지 못하다. 거기에 2018 시즌 후반으로 갈 수록 뇌주루가 늘고 뇌수비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

잘맞을땐 박재홍이 부럽지 않으나 그 기간이 매우 짦다. 타석에서 매우 극단적인 풀스윙을 가져간다. 선구안이 좋지 못하고 수싸움도 약하기 때문에 항상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시작하며 볼넷이 적다. 공을 오래보는 타입이 아니라서 4구이내로 아웃되는 편.

극단적인 풀스윙을 가져가지만 컨택이 좋지 못하고 파워는 괜찮지만 밀어칠 수 있는 능력이 많지 않아서 바깥쪽 공엔 헛스윙 떨어지는 공은 빗맞은 땅볼 가운데 직구는 내플 혹은 얕은 외플을 생산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오히려 스타일 상으로는 1번보단 클린업 트리오에 맞는 타자.

야수로써의 경력이 짧은탓일수도 있지만 주루나 수비시 너무 힘을 쓰는 경향이 있어서 잔부상에 자주 시달린다는점이 약점이기도 하다.

4. 트리비아

  • 2006년 10월 3일에 발생한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때,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한다.아마 그의 멘탈이 망가진 이유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것일 수도....오버 트레이닝의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19]
  • 임의탈퇴 시절 골프 입문 한 달 만에 싱글 핸디 캐퍼가 된다.[20] 스포츠에 있어서는 타고난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김동수 전 LG 2군 감독은 "형종이는 농구를 해도 성공했을 것이고, 배구를 해도 성공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을 정도. 그 후 프로 골퍼에 도전했으나 1타 차이로 세미프로가 됐다고.
  • 2013년 LG 재입단 당시 감독이었던 김기태 감독이 이형종의 임의탈퇴 당시 파장이 컸던 점 등을 고려해 재입단을 반대했다고 한다. 오랜 설득 끝에 입단은 하게 되었지만 사람이 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백넘버 지정은 당장은 안해줬고 그 다음해에 40번을 부여 받았다. #
  • 뒷머리를 기르고 있는데, 2019년 KBO 리그 미디어데이 때 뒷머리를 우승 때까지 기르게 하겠다고 김현수가 공언하였다.

4.1. 고의성 배트 투척 논란

파일:이형종논란.png
2018년 10월 2일 KT전에서 이형종이 8회 말 KT 투수 주권의 자신의 몸 뒤로 향하는 빈볼성 투구 이후 솔로포를 쳐낸 뒤 상대 포수인 장성우를 대놓고 겨냥한 배트플립이 논란이 되었다.

링크는 논란의 장면이다.

'묘한 분위기' 몸 쪽 공 이후 터진 이형종의 솔로포

이 날 경기에서는 양 팀의 비신사적인 보복성 플레이가 수차례 나와 모든 야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날은 경기가 많이 없어 이 경기로 포커스가 집중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결국 다음 날 경기 시작전 비신사적인 경기의 논란의 주인공들이었던 선수들 끼리 화해를 하며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형종 본인으로서도 빈볼성 투구 이후 기분이 언짢았겠지만 동업자 정신이 결여된 이 행동은 나와서는 안될 장면이였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점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10 LG 트윈스 2 9⅔ 6.52 1 0 0 0 11 1 5 5
통산 1시즌 2 9⅔ 6.52 1 0 0 0 11 1 5 5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도루 타점 득점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6 LG 트윈스 61 124 .282 35 4 2 1 1 14 14 17 0.371 0.366
2017 128 377 .265 100 18 0 9 11 44 57 51 0.385 0.351
2018 118 437 .316 138 27 0 13 6 42 83 43 0.467 0.377
통산 3시즌 307 938 .291 273 49 2 23 18 100 154 111 0.421 0.365


[1] 2017년 7월 21일 삼성라이온즈전에서 투수정찬헌지명타자가 소멸되고 타석에 들어기전에 초구 직구를 노려서 치라고 조언하였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보통 일부러 지켜보고 삼진을 당하거나 기껏해야 번트를 대거나 하는 점을 역이용한 것. 결국 정찬헌은 2사 만루에서 2타점 적시타를 뽑아냈다. 원래는 잘빠지는 타구라 2루 주자까지 들어오긴 힘들었으나, 박한이가 당황한 나머지 공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2루주자도 들어올 수 있었다. 게다가 이형종 자신도 다음 타석에서 스리런을 날린다.[2] 50초-1분10초, 2분14초-2분34초 구간[3]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전광인 응원가 원곡과 같다.[4] Edward Elgar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Op. 39을 샘플링한 곡이다. 원래는 이 곡이 아닌 Hey(해이)의 Je t'aime를 응원가로 썼지만 2017 시즌 부터는 저작권 문제로 대괄캡틴의 응원가를 물려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 노래는 야잘잘 전용 응원가인가 그리고 굉장히 얄궂게도. 또 이진영에게는 잔인하게도, 하필이면 KT와의 수원 원정 경기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단, 이형종이 이 응원가를 물려 받는건 팬들이 원한 일이었다.[5] 오 LG 이형종 오 LG 이형종 오 LG 이형종 워워 워워워워 힘차게 달려가라 LG 이형종 (X2)[6] 두 번 째로 반복하기 전에 한 번 더!를 외치는게 어느샌가 응원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이건 이진영의 응원가 시절 때도 마찬가지.[7] 중학교 시절 구속이 130km/h 정도였다[8] 2007년 삼성에 지명받았으나 방출된 후 원더스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으나, 2015 시즌 이후 쫓겨났다.[9] 백색 운동화를 신은 투수는 장민재. 당시이름은 장민제[10] 패배가 결정된 뒤 운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울면서 투구. 소년만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11] 이때 눈물을 흘린 이유가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당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때문이라고 한다.[12] 그 후 당초 당연히 연고 팀인 KIA의 1차 지명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 정찬헌이 낙마함에 따라, 2006년도에 최하위(...)를 기록한 LG는 정찬헌마저 2차 1순위로 지명하여 입단시킨다. 당시 KIA가 정찬헌을 버리고 선택한 카드는 군산상업고등학교의 사이드암 투수 전태현이었지만.... 전태현은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13] 얼핏 이닝과 투구수만 봐서는 혹사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문제는 짧은 등판 간격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대통령기에서 무리한 후의 이형종은 그 전의 이형종과는 확연히 다른, 지친 모습을 보였다.[14] 여담으로 우규민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으로 유명한 신족지가 덧글로 또 한 번의 족지레터를 시전한 바 있다. 링크 최동환 의문의 1패[15]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이유는 이렇다. 1루 주자 문규현이 2루에서 포스 아웃 당하며 경기가 끝나는데 이 과정에서 스파이크를 박용근에게 들이대며 슬라이딩을 하였다. 그리고 문규현은 사과도 없이 롯데 덕아웃으로 가는데 박용근이 매우 빡친 나머지 욕설을 하면서 문규현에게 다가갔고 이에 양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왔던 것이다.[16] 여담으로 이 당시 이형종은 한창 방황하며 욕을 먹던 시절이었고, LG의 어수선한 상황까지 겹쳐서인지 댓글들이 하나같이 험하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이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17] 베이스 런닝이나 주루센스, 가속력도 포함.[18] 그 예로 2016년 9월 17일 잠실 삼성전에서 드러났는데, 당시 삼성 선발은 차우찬이었고 1회말 1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선두타자 안타를 치고 나갔는데, 한 경기 3견제사를 잡아낸 적이 있는 차우찬에게 견제사를 당하고 만다.[19] 큰 충격을 겪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를 잊기 위해 자신의 일에 미친 듯 열중하거나 방황하는데 이를 둘 다 겪은 경우.[20] 싱글 핸디 캐퍼는 사회인 골퍼들의 최종 목적이며 일반인들은 1년을 쳐도 되기 어려울 만큼 난이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