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21:47:33

이정길(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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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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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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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people.mygo.co.kr/uni_13763_0.jpg
이정길
李廷佶 | Lee Jeong-Gil
출생 1973년 3월 19일 ([age(1973-03-19)]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배재고 - 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1차 지명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6~2000)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LG 트윈스2.3. 4억의 계약금, 그리고…2.4. 1군 등판, 그리고 은퇴
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1996년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전 LG 트윈스 소속 투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좋은 체격에 150km/h에 가까운 빠른 공을 던졌던 우완 정통파였다.

1990년 2학년 당시 이정길과 곽현희가 마운드를 분담하면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심재학을 중심으로 한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의 강타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결승전에서는 보기 힘든 13:0이라는 점수차로 준우승을 거뒀다.[1]

1991년 3학년 당시 팀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으로 이끌면서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연세대로 진학했다. 대학 4학년 때 한미친선야구대회 MVP를 수상했다.

2.2. LG 트윈스

2.3. 4억의 계약금, 그리고…

파일:1416641466.jpg
그리고 1996년, LG 트윈스는 그를 1차 지명하며 당시 역대 최고액인 4억 원(계약금 3억 8천만 원+연봉 2천만원)을 쥐어주는 모험을 하는데, 물론 이정길이 실력이 모자란 투수는 아니었지만 연세대 내에서도 1년 선배 문동환, 동기생 임선동의 그늘에 가려진 2인자에 지나지 않았고 보여준 성적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입단 계약 후 이정길 본인조차 제시 계약금을 되물어보며 귀를 의심했었다고 할 정도로 뜬금없는 오버페이였다.[2][3]

이정길이 이토록 상상 이상의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일단 당시 거대 실업야구현대 피닉스가 국가대표급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거 쓸어담는 바람에 아마추어 신인들의 몸값 거품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던 데다가, LG가 이미 휘문고 시절에 1차 지명해 두었던 임선동일본프로야구(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진출을 선언하며 LG 입단이 불투명해지자 결국 LG는 꿩 대신 닭이라고, 임선동을 잡기 위해 모아둔 돈을 이정길에게 쏟아부은 것이다.[4]

그래도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고 들어온 투수에게 LG 팬들은 제법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입단하자마자 어깨 부상으로 오키나와 전지훈련지에서 돌연 귀국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무려 3년의 세월을 재활군과 2군에서 보낸 것이다. 언론과 팬들의 반응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임의탈퇴 처리되기까지 했다.

2.4. 1군 등판, 그리고 은퇴

파일:PV22PMP5IW7WBARJQ73VZWIVHY.jpg
1999년에 드디어 입단 후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 6월 1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감격의 첫 승을 거두는데, 이때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떠올랐는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후 또 다시 부상이 도졌고 그는 결국 쓸쓸히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99년에 기록한 5경기 10⅔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12.66이 이정길이 프로에서 남긴 성적의 전부였다.

어쨌든 이정길은 이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LG 트윈스에 있어서도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된 선수. 분명 큰 기대를 걸 만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큰 금액을 지불한 건 LG 트윈스 구단의 무리한 투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는 건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참담한 성적은 덤. 차라리 이영우를 1차 지명하는 게 낫지 않았겠냐는 말도 있으나 이미 전년도에 심재학을 뽑았고 다음 연도에 이병규가 있는 상황에서 외야수를 또 뽑기는 어려웠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3. 관련 문서


[1] 8년 뒤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대구상고가 순천효천고에게 13:0 대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2] 이정길 본인은 자신이 네임밸류는 떨어져도 1차지명이니 입단 협상에서 일단 호기롭게 3억을 부를 생각이었다고….[3] 93년 당시 구대성, 김홍집의 부상 때문에 최대어로 가치가 올라간 이상훈 입단 과정에서 LG의 파격 행보와, 현대 피닉스의 영향으로 인한 1차지명 선수들의 계약금 인플레 등으로 억대 계약금의 상징성은 옛말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당시 이정길의 계약금은 후하게 쳐줘도 2억 내외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4] 임선동은 1년 후인 1997년 계약금 7억원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