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3 14:51:41

김홍집(야구)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이인인 개화기의 정치인 김홍집에 대한 내용은 김홍집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zip.jpg
이름 김홍집(金弘集 / Hong-jep Kim)
생년월일 1971년 1월 3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중구
학력 축현초-상인천중-인천고-단국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3년 1차 지명(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1993~2001)
한화 이글스(2001~2003)
지도자 부평구 리틀야구단 감독 (2008~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8
1994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정민철(빙그레 이글스) 김홍집(태평양 돌핀스) 이상훈(LG 트윈스)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1번
박준태(1989~1992.06.29) 김홍집(1993~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1번
팀 창단 김홍집(1996~2001.06.15) 이상열(2001.06.16~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20번
이상열(1996~2001.06.15) 김홍집(2001.06.16~시즌 종료) 유혜정(2002)
한화 이글스 등번호 27번
브랜든 리스(2001 시즌 중~시즌 종료) 김홍집(2002~2003) 조영민(2004~2005)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기타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대한민국의 야구인이다.

2. 선수 경력

1971년에 출생했으나 빠른 생일인 관계로 1993년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2천만원을 받고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다. 당시 좌완으로서는 드문 140km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기 때문에 구대성, 이상훈과 함께 '좌완 빅 3'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태평양 돌핀스는 물타선이었기 때문에 첫 해 116이닝을 던지며 7승 8패(4완투) 2세이브를 거두는 데 그쳤다. [2] 입단 2년차인 1994년에 팀 내 에이스로 거듭나, 방위병으로 복무한 관계로 인천 홈에서만 등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경기에 등판하여 12승 3패(5완투) 3.20의 호성적으로 승률 1위에 오른다. 1993년 6월 20일 LG전에서 연장 13회까지 187구를 던지며 16탈삼진 3실점으로 완투승을 기록했는데, 경기가 끝난 후 인천고등학교 선배라는 사람이 100만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그에게 건네고 갔다고 한다.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11회 말 1사 동점 상황까지 투구하다가,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을 맞고 141구 완투패를 당했다. 이어진 3차전 정민태의 퍼펙트 투구 이후 정명원이 불을 지르자, 자진 등판하여 추가 실점을 저지했으나 아쉽게도 태평양은 패배하고 한국시리즈를 스윕으로 내주게 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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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현역 선수시절. (출처: 포토로)

프로 초년부터 혹사에 허덕이던 김홍집은 1996년에는 부상으로 몇경기 나오지 못했고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하나, 아쉽게도 박재홍의 솔로홈런 이후 2점을 내주며 결국 팀은 패배한다. [4] 그리고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중간투수로 등판하여 해태의 무명선수인 이경복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된 점도 아쉬울 따름...

팀이 현대로 바뀌면서 주로 좌완불펜으로 등판했지만, 부상이 재발했고 재활로 다시금 시간을 날리게 된다. 그래도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등판하여 우승반지는 챙겼으니 다행이랄까?... 결국 2001년 6월에 최영필과 묶여 한화의 좌완투수인 이상열을 상대로 트레이드 되었다. 트레이드 조건은 이상열+현금↔김홍집+최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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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되어버린 한화 이글스의 현역 선수시절. (출처: 포토로)

한화에서의 첫 시즌은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 뛰면서 2.45라는 방어율을 찍고 부활한다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2002시즌 들어 방어율이 4점대로 올라가더니, 결국 2003년 평균자책 10점대를 찍고 방출되어 그대로 은퇴했다.

한편 2003년 SK 와이번스에서 좌완 계투요원으로 활약하던 '가을까치' 김정수가 은퇴하자, 인천 야구 팬들은 김홍집을 영입해 달라고 구단 사이트에 호소한다. 이에 김홍집은 입단 테스트를 치렀으나, 실제 입단은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3. 지도자 경력

현재는 부평구에서 리틀야구단을 맡고 있다.

4. 기타

프로 통산 커리어를 본다면 그저 그런 선수였고 10승 이상을 거둔 것도 1994년 시즌이 유일하지만 인천야구를 본 사람, 특히 태평양 돌핀스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지는 선수다. 인천 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에이스. 오마이뉴스의 자유기고가인 김은식이 쓴 책 '야구의 추억' 1권의 부제인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는것은 바로 김홍집이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때 던졌던 투구수를 의미한다.

사실 김홍집은 단지 141구만으로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투수였다. 단국대 시절 빼어난 제구력을 앞세워 구대성 이상훈과 함께 좌완 투수 3총사로 평가됐고 프로 입단 첫 해에는 시즌 후반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김상엽 선동렬과 탈삼진 1위 경쟁을 펼쳤다. 입단 2년차에는 방위병 복무로 인천 홈경기에만 주로 나오면서 12승을 따는 활약을 보였다. 전문가 중에는 강속구를 던지는 이상훈보다 오히려 김홍집을 투수로 한 수 위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았다.

인천야구를 이끌 좌완 에이스로 주목받던 김홍집을 가로막은 건 고질적인 어깨부상이었다. 1994년부터 방위병에 복무하며 이틀에 한번 꼴로 밤샘보초를 서는 상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인천 홈경기에 출전하고 휴가 때는 혼자 기차를 타고 지방구장으로 이동해 원정경기에 등판했다. 제대로 몸 관리를 하기 힘든 여건이었다.

2010년 실제로 김홍집을 만나 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은 분이 있다.

2015년까지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동했다. 2016년은 활동 기록이 없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3 태평양 21 116⅓ 7 8 2 0 0.467 3.64 113 5 60 109
(10위)
54 47 1.453
1994 20 126⅔ 12 3 0 0 0.800 3.20 112 8 44 89 49 45 1.200
1995 16 94 6 7 0 0 0.462 3.64 80 7 49 56 40 38 1.35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6 현대 10 7 0 0 0 0 0.000 5.14 6 1 6 3 4 4 1.714
1997 8 29⅓ 1 4 0 0 0.2 6.14 32 3 19 19 24 20 1.636
1998 26 21⅓ 0 1 0 0 0.000 5.48 19 0 12 19 14 13 1.359
1999 59
(6위)
52 2 2 4 0 0.500 5.02 51 6 21 45 31 29 1.365
2000 13 6 0 0 0 1 0.000 9.00 12 0 6 7 9 6 3.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한화 28 18⅓ 1 0 0 2 1.000 2.45 20 0 9 14 5 5 1.582
2002 39 26⅓ 0 0 1 4 0.000 4.44 30 4 15 17 15 13 1.481
2003 15 7⅔ 0 0 0 4 0.000 10.57 11 3 6 5 9 9 2.087
KBO 통산
(11시즌)
255 505 29 25 7 11 0.537 4.08 486 37 247 383 254 229 1.406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3년 4완투 0완봉
1994년 5완투
(9위)
0완봉
1995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10완투 0완봉


[1] 1989학번[2] 93시즌 전반기 LG전 13회 완투이후 건초염으로 인한 후반기 결장이 컸다. 결국 건초염이 선수생명을 짧게 만든다.[3] 그래도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하나가 있다.[4] 5회 수비의 결정적 실수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