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0:57:48

김현욱(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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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66 강성우 · 70 유재신 · 72 김민호 · 73 정상호
· 74 이재율 · 76 김민재 · 77 김광수 · 81 주형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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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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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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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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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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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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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베어스 / 24승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30승
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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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김일융
삼성 라이온즈 / 25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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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23승
윤학길
롯데 자이언츠 / 18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1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2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9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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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빙그레 / 19승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승
이상훈
LG 트윈스 / 18승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8승
이상훈
LG 트윈스 / 20승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승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 18승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20승
김용수
LG 트윈스 / 18승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20승
김수경·임선동·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8승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5승
신윤호
LG 트윈스 / 15승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키퍼
KIA 타이거즈 / 18승
정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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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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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
KIA 타이거즈 / 17승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7승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8승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승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 22승
김광현
SK 와이번스 / 16승
로페즈
KIA 타이거즈 / 14승
윤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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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롯데 자이언츠 / 14승
김광현
SK 와이번스 / 17승
윤석민
KIA 타이거즈 / 17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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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 17승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세든
SK 와이번스 / 14승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 20승
해커
NC 다이노스 / 19승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2승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헥터
KIA 타이거즈 / 20승
후랭코프
두산 베어스 / 18승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20승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20승
뷰캐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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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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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베어스 / 1.82
하기룡
MBC 청룡 / 2.33
장호연
OB 베어스 / 1.58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70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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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 0.89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21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17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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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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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2.33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78
정민철
빙그레 이글스 / 2.15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1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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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1.88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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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성
한화 이글스 /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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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라
삼성 라이온즈 / 2.50
바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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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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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2.46
류현진
한화 이글스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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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
두산 베어스 / 2.07
윤석민
KIA 타이거즈 / 2.33
김광현
SK 와이번스 / 2.80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2
윤석민
KIA 타이거즈 /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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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넥센 히어로즈 / 2.20
찰리
NC 다이노스 / 2.48
밴덴헐크
삼성 라이온즈 / 3.18
양현종
KIA 타이거즈 / 2.44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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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밴드
kt wiz / 3.04
린드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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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KIA 타이거즈 / 2.29
요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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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두산 베어스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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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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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
OB 베어스 / 0.857
이길환
MBC 청룡 / 0.682
황규봉
삼성 라이온즈 / 0.833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0.833
윤석환
OB 베어스 / 0.833
최일언
OB 베어스 /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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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75
윤석환
OB 베어스 / 0.813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75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786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26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오봉옥
삼성 라이온즈 / 1.000
정민철
빙그레 이글스 / 0.813
김홍집
태평양 돌핀스 / 0.800
이상훈
LG 트윈스 / 0.800
구대성
한화 이글스 /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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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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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한화 이글스 / 0.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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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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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삼성 라이온즈 / 1.000
정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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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 0.895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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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 0.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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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
두산 베어스 / 0.815
채병용
SK 와이번스 / 0.815
김광현
SK 와이번스 /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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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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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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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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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 0.857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0.870
알칸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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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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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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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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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투수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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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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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1983~1992)
1987년 / 124승
최동원
(1983~1990)
1990년 / 103승
선동열
(1985~1995)
1990년 / 146승
장호연
(1983~1995)
1993년 / 109승
윤학길
(1986~1997)
1994년 / 117승
정삼흠
(1985~1996)
1996년 / 106승
이강철
(1989~2005)
1996년 / 152승
조계현
(1989~2001)
1996년 / 126승
송진우
(1989~2009)
1997년 / 210승
김용수
(1985~2000)
1998년 / 126승
정민철
(1992~2009)
1999년 / 161승
김상진
(1989~2003)
1999년 / 122승
이상군
(1986~2001)
2000년 / 100승
한용덕
(1987~2004)
2000년 / 120승
정민태
(1992~2008)
2000년 / 124승
김원형
(1991~2011)
2005년 / 134승
임창용
(1995~2018)
2007년 / 130승
김수경
(1998~2012)
2007년 / 112승
이상목
(1990~2009)
2008년 / 100승
손민한
(1997~2015)
2009년 / 123승
이대진
(1993~2012)
2009년 / 100승
박명환
(1996~2015)
2010년 / 103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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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 138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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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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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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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준
(200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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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
(2011~2018)
2018년 / 102승
차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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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 112승
유희관
(2009~2021)
2021년 / 101승
류현진
(2006~)
2024년 / 108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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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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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2005~)
2021년 / 400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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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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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1989~2009)
2008년 / 2048탈삼진
양현종
(2007~)
2024년 / 2076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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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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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3번
결번 <colbgcolor=#228b22><colcolor=#fff> 김현욱
(1993~1995. 5. 9.)
김종대
(1996)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46번
최한림
(1991~1995. 5. 9.)
김현욱
(1995. 5. 10.~1998)
비아노
(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6번
정회열
(1998)
김현욱
(1999~2005)
박세웅
(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6번
조범현
(2000~2002)
김현욱
(2005~2009)
결번
결번 김현욱
(2011~2017)
이영수
(2018~2022)
LG 트윈스 등번호 97번
최정우
(2015~2017)
김현욱
(2018~2020)
모창민
(202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92번
윤성빈
(2022)
김현욱
(2023~)
현역
}}} ||
파일:23APBC 프로필_김현욱.jp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74
<colbgcolor=#041e42><colcolor=#fff> 롯데 자이언츠 No.92
김현욱
金玄旭 | KIM Hyun Uk
출생 1970년 7월 6일 ([age(1970-07-06)]세)
경상남도 마산시[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옥산초[2] - 대구중 - 경북고 - 한양대[3]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 입단 1993년 2차 3라운드 (전체 23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3~1995)
쌍방울 레이더스 (1995~1998)
삼성 라이온즈 (1999~2005)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불펜코치 (2005~2006)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07)
삼성 라이온즈 재활군 투수코치 (2008~2009)[4]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009)[5]
요미우리 자이언츠 연수코치 (2010)
삼성 라이온즈 1군 트레이닝코치 (2011~2012)
삼성 라이온즈 1군 트레이닝·불펜코치 (2013~2014)
삼성 라이온즈 1군 트레이닝코치 (2015~2016)

삼성 라이온즈 BBArk 투수코치 (2017)
LG 트윈스 1군 트레이닝코치 (2018~2019)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20)
롯데 자이언츠 1군 컨디셔닝코치 (2023)[6]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23)[7]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투수코치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 (2023 / 2024)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투수 코치.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세계 최초로 중간계투로만 등판하면서 시즌 20승[8] 거두며 팀의 간판 선수가 되었고, 데뷔팀인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온 후에도 핵심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간판선수가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마산 양덕초등학교에서 4학년때 시작하여 전학을 가서 대구옥산초등학교 시절 야구부가 창단되었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야구부원으로 뽑힌 뒤 3루수로 주로 뛰었고 경북고등학교 야구부도 3루수로 들어갔다. 그러나 3루 자리에 당시 80kg가 나가던 4번 타자 정기창에 밀렸고 1루수, 포수, 외야수 등 여러 포지션을 맡았으나 지나치게 말랐던 탓에 공을 알루미늄 배트로 쳐도 내야를 넘기지 못했고 이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방학에 감독을 찾아가 의논 후 오버핸드 투수로 전향했다. 그러나 독학으로 투수 훈련을 한 탓인지 구속이 120대에 머물렀고, 친구 정기창과 함께 야구부가 있는 하버드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구대성, 정민태 등에 밀리자 생존을 위해선 팔을 내리는 게 맞다고 판단해 2학년 말부터 언더핸드 투수로 전향했다. 4학년 초반 어깨 부상을 당했으나 민간 요법 등을 통해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2.2. 삼성 라이온즈 1기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9], 입단 첫 해인 1993년 1군 6경기에 등판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허리 부상을 입어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2.3. 쌍방울 레이더스

파일:쌍방울 김현욱.jpg

이후 1995년 5월 류명선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최한림[10], 윤혁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트레이드됐다. 거기서 김성근 감독을 만나며 인생이 바뀐다. 김성근 감독은 김현욱을 버릴까 했지만, 김현욱이 자신을 붙잡고 봐달라는 것을 보고 팀에서 가장 성실하게 훈련하는 모습에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11] 이윽고 1996년부터 드디어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는데, 김성근 감독의 믿음에 기량이 급상승했고, 성영재, 김기덕 등 잠수함 투수 군단을 앞세운 쌍방울 레이더스의 투수진에서도 중간계투진의 중심을 차지했다.

1997년에는 구원으로만 20승을 올리며 다승왕, 평균자책점 1위(1.88), 승률 1위(0.909) WHIP 1위 피안타율 2위(.204), 탈삼진 4위(135개)등 리그를 정복하며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올랐지만, 다승왕 밀어주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안타깝게 이대진에게 투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빼앗기고 말았다.[12] 당시 김성근 감독이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도 선발 투수를 5회 종료 이전에 내리고 두 번째 투수로 김현욱을 등판시켜 승리하는 식의 운용이 많았고 이에 대해 승수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13][14][15] 이 탓에 김현욱의 20승은 '억지로 만들어 낸 기록'이라는 인식이 강해 골든글러브 투표에서 외면을 받은 것. 시즌 MVP 투표에서도 이승엽에게 밀리고 말았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내긴 했지만, 중간계투로 70경기 157⅔이닝을 던지는 역대 최고급 혹사의 여파로[16] 연말에는 무릎 수술을 받았다. 무릎을 크게 사용하는 사이드암 투수였기 때문이다. 이 때 받은 무릎 수술이 제대로 회복되기 전에 복귀한 바람에 무릎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김현욱의 남은 선수 생활 기간 내내 그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17]

이듬해인 1998년에는 무릎 부상에서 미처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복귀하여 그 해에도 선발 등판 없이[18] 13승 7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3.34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68경기 129⅓이닝을 던지는 등 여전히 혹사에 시달렸다. 두 해 동안 합쳐서 287이닝을 던졌다. 그것도 중간계투 투수가.[19]

2.4. 삼성 라이온즈 2기

파일:삼성 김현욱.jpg

이러한 활약 덕분에 김현욱의 몸값은 엄청나게 수직상승해 있었고, 1999년 시즌을 앞두고 김기태와 함께 현금 20억에 트레이드되면서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였다. 당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선수 영입을 해오던 삼성 라이온즈였던데다 반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는 IMF 이후 모기업이 부도나버리며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팔아 운영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트레이드가 가능했다.[20]

이후 1999년 93이닝, 2000년 109이닝, 2001년 95⅔이닝을 던지며 삼성의 주축 중간계투 요원으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1군 64경기에 등판해 76⅔이닝 동안 10승 2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2.11[21] 승률 1위 (1.00)[22]의 기록을 세웠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다만 예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았고 혹사를 당했던 선수를 김응용 감독이 필승조라고 신나게 굴려먹은 점은 비수가 되어서 후에 조기 은퇴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2003년에도 초부터 심한 무릎 통증으로 스프링캠프에서 중도 하차하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복귀에 성공하며 63경기에 등판하여 85⅔이닝을 소화하며 작년보다도 더 낮은 2.00의 평균자책점[23]에 8승과 13홀드를 기록하며 불펜진이 부실했던 삼성의 투수진에서 제 몫을 하였다.[24]

2004년 4월 22일 수원 현대 유니콘스전에서는 역대 7번째로 500경기 등판의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 내내 악화되었던 무릎이 치명적으로 악화된 데다가, 오른쪽 팔꿈치 인대 부상까지 겹쳐 FA를 눈앞에 둔 2004 시즌 중반에는 공을 던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25][26] 결국 FA를 포기하고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았지만[27], 재활에 실패하고 2005 시즌 중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05년 6월 2일, 류중일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은퇴식을 치렀다. 은퇴를 하기엔 나이가 너무 이르다는 아쉬움이 나오는 생각.[28] 당시 그의 나이는 36세였다. [29]

13년 간 519경기에 출장, 총 883⅓이닝을 소화하며 71승 31패 22세이브 54홀드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했다.[30]

3. 지도자 경력

3.1. 삼성 라이온즈 코치

은퇴 후 곧바로 삼성 라이온즈 1군 불펜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2군에서 투수코치로 있다가 2009 시즌 막판에는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2군으로 내려간 조계현을 대신해 잠시 1군 투수코치를 맡기도 했다.

201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그런데 투수코치가 아닌 트레이닝 파트 쪽에서 연수를 받는다고 한다. 인터뷰를 봐도 트레이닝 쪽을 공부한 모양. 아무래도 본인이 부상으로 보다 일찍 은퇴를 선언했던 것 때문에 트레이닝 파트에 더욱 관심을 가진 듯 하다.

요미우리에서 1년간 연수를 받은 뒤 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트레이닝 코치로 선임되어 복귀했다. 그는 같은 트레이닝 코치인 코야마 진 코치와 역할을 분담했는데, 재밌는 것은 내야수 출신[31]코야마 진 코치가 투수 쪽 트레이닝을 맡았고 투수 출신인 김현욱 코치가 타자 쪽 트레이닝을 맡고 있다는 것.

2012 시즌을 끝으로 오치아이 에이지가 귀국하면서 트레이닝 코치와 1군 불펜코치를 겸직하게 되었다. 메인 투수코치는 김태한이 담당.

2015 시즌부터는 다시 트레이닝 코치만 전담하며, 빈 자리가 된 불펜코치 자리는 2군에서 카도쿠라 켄이 올라와 맡게 되었다.

트레이닝 코치로서 훈련을 매우 강도높게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얻은 별명은 "독사". 그럼에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코치 중 한 명이었다고 하며, 한 때 삼성의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 10일 부친상을 당했다.

2016년 시즌 후 김한수 타격코치가 삼성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며 삼성을 떠날 거라는 소문이 돌았으나,[32] BB Ark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하며 삼성에 잔류했다.

3.2. LG 트윈스 코치

그러다가 2017 시즌 후 류중일LG 트윈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때, LG 트윈스에서 그를 코치로 영입한다고 발표하며 18년만에 삼성을 떠나 LG 코치로 옮기게 되었다. 2018년~2019년은 1군 트레이닝 코치를 맡았고, 2020년에는 기존 최일언 메인 투수코치를 보좌하며 투수코치까지 겸직하였다.

2020 시즌 종료 후 김동수 코치와 불화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 때문에 LG에서 나온 이후 서울 둔촌동에 유소년 야구 아카데미 '몸 편한 야구'[33]를 열었다.

3.3. 롯데 자이언츠 코치

2022년 10월 14일, 롯데 자이언츠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한다는 기사가 떴다.# 이후 10월 20일, 배영수, 최경철 등과 함께 롯데의 코치로 영입됐다. 보직은 1군 컨디셔닝 코치.

자이언츠 TV에서 공개된 괌 스캠영상에서 드러난 훈련 모습은 런닝을 중요시하는 모습. 놀랍게도 현역시절 김현욱 코치의 코칭을 받았던 배영수 코치에 말에 의하면 그나마 많이 약해진거라고 한다.

그리고 여태까지 게으른 천재라 불리던 두 사이드암 투수인 한현희서준원을 전담마크하고 있다. 특히 서준원을 5선발 감으로 여기며 체중 감량과 체력훈련에 사활을 걸었으나 시즌 시작도 전인 2023년 3월 23일, 서준원이 성추문에 시달리며 이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6월 27일부로 배영수 투수코치가 2군 총괄코치로 보직이 변경됨에 따라 잔여 시즌동안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됐다.

시즌이 끝난 뒤 2023 APBC 대표팀의 불펜코치로 합류했다.[34]

2023년 시즌 종료 후 김태형 감독 부임과 동시에 이뤄진 코칭스태프 개편 과정에서 1군 투수코치는 주형광, 1군 불펜코치는 권오원이 맡는 게 확정되면서 2024년부터는 잔류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병준같은 여러 선수들을 육성군에서 육성해내며 제구를 잡는데 성공하는 등 성과도 보여주고 있다.

이 와중에 롯데 투수들의 기량에 주형광,이재율이 도움이 안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김현욱을 그리워 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3 삼성 6 11 0 0 0 - 0.000 2.45 13 1 4 5 4 3 1.55
1994 1군 기록 없음
<rowcolor=#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5 삼성/쌍방울 1군 기록 없음
1996 쌍방울 49
(4위)
99⅓ 4 1 3 - 0.800 2.63 96 1 43 74 31 29 1.30
1997 70
(1위)
157⅔
(7위)
20
(1위)
2 6 - 0.909
(1위)
1.88
(1위)
111 5 40 135
(4위)
40 33 0.89
(1위)
1998 68
(3위)
129⅓ 13
(7위)
7 4 - 0.650 3.34 114 13 45 93 50 48 1.14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9 삼성 54 93 6 4 1 - 0.600 3.97 95 12 36 55 47 41 1.34
2000 63
(3위)
109 4 7 2 10
(5위)
0.364 3.14 101 7 35 105 43 38 1.19
2001 54
(8위)
95⅔ 6 6 4 14
(2위)
0.500 4.42 90 9 36 97 49 47 1.28
2002 64
(8위)
76⅔ 10 0 2 9
(8위)
1.000
(1위)
2.11 62 4 20 71 20 18 1.04
2003 63 85⅔ 8 2 0 13
(4위)
0.800 2.00 63 7 24 73 23 19 0.96
2004 28 26 0 2 0 8 0.000 5.88 24 3 10 28 18 17 1.15
KBO 통산
(10시즌)
519 883⅓ 71 31 22 54 0.696 2.99 769 62 293 736 325 293 1.14

5. 여담

  • 출생지는 경상남도 마산시고 마산 양덕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지만, 초등학생 시절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대구옥산초등학교에서 전학와서 자랐다고 한다.
  • 스톡킹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어깨 부상을 당한 뒤 회복을 위해 지네 즙까지 마셔봤다고 한다.
  • "김현욱의 맛있는 야구"라는 네이버 카페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해당 카페는 팬카페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야구 커뮤니티에 가깝지만, 본인도 자주 글을 올리기도 한다. 또 비시즌마다 팀 후배들이나 야구계 지인들에게 애장품이나 유니폼, 글러브 등을 기증받은 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를 통해 경매에 내놓아 그 수익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야구 유망주들을 돕는 등 선행도 하고 있다.#
  • 학창 시절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야구부 회비조차 제대로 낼 형편조차 되지 않아 매번 회비 독촉에 시달려야 했고 야구부 식사당번 때도 돈이 없어 다른 부모들이 쇠고깃국을 끓일 때 김현욱의 어머니는 된장국을 끓여야 했을 정도였다. 경북고 재학 시절 야간 연습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없는 형편에 곰국을 끓이고 계시는 걸 보고 야구를 못하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 엉엉 운 적도 있다고 한다. 프로 입단 후에도 받은 계약금 대부분을 집안 빚 갚는데 썼고, 연봉도 자신의 생활비 일부를 제외하고는 죄다 부모님에게 보냈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야구 애장품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야구 유망주들을 돕는 선행 역시 과거 자신이 가난하게 자라왔다 보니 후배들에게는 그런 설움을 덜어주고 싶어 시작했다고 밝혔다.
  • 마구마구 2014에서 97 김현욱 엘리트는 중계가 빈약한 팀덱[35]스카우트 용병 1순위. 실제로 2014년 8월 31일 포스팅[36]에서 97 김현욱 엘리트카드가 무려 2818마구볼에 낙찰되었다.
  • 2021년 7월, 스톡킹에 출연해 근황 및 현역 시절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풀었다. 입담이 나름 괜찮은 편이다. 풀버전 보기
  • 자티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김성근 감독 밑에서 있었던지라 그런지 펑고를 굉장히 잘 친다. 오죽하면 문규현보다 잘 친다는 말도 나올 정도.

6. 관련 문서


[1]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이후 성장은 대구광역시에서 했다.[2] 마산 양덕초에서 전학[3] 1989학번.[4] ~9월 13일[5] 9월 14일~[6] ~6월 26일[7] 6월 27일~[8] 다승 기록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지표도 훌륭했으며, 다승왕과 평균자책점, 승률 부문에서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하며 3관왕을 하는 등 MVP급 시즌을 보냈다.[9] 여담이긴 한데 양준혁이 없었으면 1차지명이 될 뻔 했다.[10] 최초의 좌완 사이드암 투수다.[11] 사실 김현욱은 김성근 감독 부임 이전, 그러니까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된 직후 시즌 끝나고 야구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12] 여담으로 KBO 리그에서 20승 이상 + 다승왕을 한 시즌에 기록한 투수 중 당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사례는 투구내용이 아닌 수비율이 수상 기준이었던 원년의 박철순, 공동 다승왕이었던 1985년의 김일융과 2017년의 헥터 노에시를 제외하면 1997년의 김현욱이 유일하다.[13] 후에 스톡킹에서 회고하기를, 5회가 끝나기 이전에 이기고 있는 경기에 등판해 승리를 챙긴건 많아야 3게임이고, 대부분은 비기고 있거나 지고 있을 때 타자들이 역전해줘서 챙긴 승리라고 한다.[14] 일단 당시 신문을 살펴보면, 5월 15일 롯데 더블헤더 1차전 5 - 2 3회말 무사 1, 2루에 등판, 8회까지 던져 승리를 얻었고, 8월 19일 OB전 4회초 4 - 2 1사 1루에 임창식 - 김민국 다음으로 등판해 승리를 얻은 적이 있으며(다만, 임창식 선수와 김민국 선수의 기록이 나오지 않고 대부분 스코어보드만 있기 때문에 밀어주기용으로 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8월 29일 5회말 5 - 0 무사 1, 2루 에서 선발 오상민을 내리고 김현욱을 올려 승리를 얻은 일이 있다. 6월 28일 OB전 3회 3 - 1 에서 등판해 승리를 가진 적도 있는데, 이 경우 처음 나온 투수가 누구인지, 왜 강판당했는지에 대한 기사가 없어 애매하다. 5월 15일 경기 전 기사에서 '선발급 미들맨'으로 불린다거나, 9월 10일 기사에서 '나왔다 김현욱, 이겼다 김현욱'이라는 구호가 있었다는 걸로 보아, 경기가 박빙일때 중계투수 중 성적이 뛰어난 김현욱이 많이 등판하고 그 경기에서 결승점이 나와 승수를 쌓은건 맞지만, 시즌 후반인 8월 29일의 오상민 강판으로 얻은 승리 때문에 논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5] 김성근 감독이 대놓고 "다승왕은 김현욱이 될 것", "김현욱은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이다." 등등의 말을 하고 다녔던지라. 다만 김현욱이 말하기를 김성근이 치바 롯데 마린스에 있던 시절 '이 선수가 나 때문에 20승을 하고도 상을 받지 못했다.'란 말을 한 적은 있었다고 한다.[16] 본인의 증언으로는 6연투도 해보고 1주일에 4승도 올려 봤다고[17] 정작 본인은 혹사 논란에 대해서 아직도 자신은 노하우가 있어 혹사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인터뷰하지만, 과연 아직 김성근 감독이 기사를 늘 체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대놓고 혹사라서 힘들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18] 하지만 마구마구에서는 선발투수로 나와있었다. 지금은 수정된 상태.[19] 무릎 부상 후 너무 일찍 복귀해버린 것은 결국 조기 은퇴의 요인이 되었고, 선수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애로사항이 꽃피고 만다.[20] 이는 역시 모기업이 부도나버린 해태 타이거즈도 주축 선수들을 팔아 운영비를 마련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당시 우승을 갈망하던 삼성 라이온즈의 현질을 통한 선수 영입은 엄청났다. 한 해 전에는 해태에서 조계현을 4억에 데려왔고, 김기태와 김현욱을 20억에 데려온 것도 모자라 해태에 양준혁+현금 20억을 내주고 임창용을 영입했다. 여기에 1999년 시즌 종료 후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이강철김동수를 영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당시 막강한 자금력을 가졌던 삼성 라이온즈현대 유니콘스 두 구단의 현질을 통한 선수 영입 경쟁은 팀당 전력 불균형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리그 흥행 저하의 큰 원인이 되었다.[21] 심지어 8월 중순까지만 해도 시즌 평균자책점이 무려 1.19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다. 8월 말 이후 패넌트레이스 종료까지 실점하는 경기가 좀 있어서 최종 2점대 초반으로 마감했을 뿐, 세부 지표를 보면 97시즌 다음으로 낮은 WHIP인 1.04와 97시즌 다음으로 좋은 ERA+ 200 이상을 넘긴 리그 탑급 철벽계투였다.[22] 1992년 오봉옥의 13승 무패 2세이브에 이은 2번째 10승-승률 10할의 대기록이다.[23] 심지어 ERA+ 면에서는 2003시즌이 타고투저가 뚜렷하다보니 97시즌의 213.1을 능가하는 218.6을 기록하기도 했다.[24] 그 중에서도 2003시즌에는 말이 구원등판이지 사실상 선발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 날도 있었는데, 9월 24일 기아전 원정 경기는 평일 더블헤더로 진행되는 바람에 오후 3시부터 DH 1경기가 열렸고, 여기서 선발로 나왔던 당시에는 프로 2년차였던 유망주 권혁이 타선이 3점이나 내주고 1회 말 등판했음에도 1이닝 만에 5실점이나 하는 대참사급 피칭을 해버렸다. 그런데 2회 초 바로 삼성 타선이 또 3점을 추가하며 6:5로 바로 역전을 하자 이 경기 만큼은 질 수 없었던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의해 3일을 쉬고 등판한 김현욱이 무려 6이닝이나 소화하는 경이적인 투구 내용을 보였다. 심지어 2회 말 선두 타자였던 2번타자 김종국을 볼넷으로 출루시킨 이후 무려 7회 말까지 18타자 연속 범타처리하는 노히트 피칭을 해냈고, 8회 말에도 등판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그만 선두타자였던 장성호에게 중월 솔로포를 맞으며 결국 6이닝 1피안타(1피홈런) 1볼넷 7탈삼진 1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정현욱에게 넘겨주고 내려왔다. 더 안타까운건 삼성 타선이 1, 2회 이후 또 침묵해버리면서 이게 6:6을 만들어버리는 동점 허용포 였다는 점. 결국 DH 1경기는 최종 6:6으로 종료되면서 무승부를 기록하긴 했으나, DH 2경기는 5:4로 삼성이 한 점차 역전승을 거두긴 했다.[25] 2004년 당시 김현욱의 무릎 상태는 하도 많은 투구로 무릎 연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팔꿈치도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심각했다. 스톡킹에서는 서울의 구단 지정 병원에서 인대 완전 파열을 진단 받았다고 한다.[26] 결국 김현욱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자 당시 신예 사이드암 투수였던 권오준이 필승조로써의 기회를 잡으며 전천후로 활약했고, 동시에 롯데에서 재활하다가 노장진을 상대로 트레이드된 사이드암 투수 박석진이 기회를 얻게 된다.[27] 재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대 접합 수술 대신 뼛조각 제거 및 신경 이전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28] 이라지만 잘 던지다가 부상이 악화되어 은퇴한 것 때문에 그렇지 그 당시 30대 중반에 은퇴면 생각보다 이른 편은 아니다. 김현욱과 동기인 이상훈이 2004년, 2살 어린 홍현우는 2005년 은퇴했다. 사실 서른도 안 되어서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은 수도 없이 많다.[29] 떠밀려 은퇴하지 말자고 생각해왔으며, 이 상태로 선수 생활을 지속해봐야 1군 자리만 차지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은퇴결정은 본인이 내렸다고 스톡킹에서 밝혔다[30] 아마 97년도에 선발 등판 없이 구원승으로만 20승 한 것이 와전되어 1군 통산 선발 등판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듯 하다. 스탯티즈에서는 데뷔 시즌인 93년과 1군 무대 2년차였던 96년도에 각 1회 씩 선발 등판한 것으로 남아있다.[31] 대학 시절까지 선수로 뛰었다.[32] 그도 그럴 것이, 김한수 감독 부임 직후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며 김성래, 김평호, 김용국, 장태수, 양일환 등 김한수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코치들이 팀을 떠났다. 당장 김현욱 코치도 김한수 신임 감독보다 1살이 많다.[33] 아이러니하게도 김현욱은 선수 시절 지옥훈련으로 몸 성할 날이 없었다. 은퇴 후 프로팀 지도자로 있을 때는 정형화된 트레이닝 루틴으로 이를 막았다고. 스톡킹에 나와서 밝히길, 투수가 좋은 기술을 가지고 던진다면 부상 없이 롱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34] 원래 대표팀 불펜코치는 정대현이 맡았으나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 가면서 생긴 공백을 김현욱이 맡은 것이다.[35] 롯데올스타, 타이거즈올스타, 기아올스타, 해태올스타, 이글스올스타 등. 그나마 중계 플래티넘들의 추가로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36] 마구볼(엘리트포스팅)이나 골드(플래티넘포스팅)를 일정량 입찰해서 가장 많은 금액을 입찰한(최고금액이 똑같으면 좀 더 오래 한 유저에게) 유저에게 낙찰되는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