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16:43:01

모창민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315288> 파일:NC_Emblem_Home.png NC 다이노스
2019 시즌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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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노진혁 · 63 김진형 · 65 박수현 · 92 최정원 · 95 서호철 · 100 조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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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민의 수상 이력 및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8

SK 와이번스 등번호 13번
이성우(2007) 모창민(2008~2010) 최윤석(2011~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나주환(2007~2010) 모창민(2012) 나주환(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16번
송수(2012) 모창민(2013~2014) 임시결번
김건태(2018) 모창민(2019~) 현역
NC 다이노스 등번호 3번
이창섭(2014) 모창민(2015~2018) 유영준(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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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모창민끝내기.jpg
NC 다이노스 No.16
모창민(牟昌民 / Mo Chang-Min)
생년월일 1985년 5월 8일 ([age(1985-05-08)]세)
체격 188cm, 89kg
출신지 광주광역시 서구
학력 광주화정초 - 충장중 - 광주제일고 - 성균관대
포지션 지명타자, 내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8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3번(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8~2012)
NC 다이노스 (2013~ )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1~2012)
등장곡 포미닛 - 이름이 뭐예요[2]
응원가 클론 - 쿵따리 샤바라 [3]
Handel - Joy to the world[4][5]
구단 자체 제작 - 작사/작곡 : M.H[6]
종교 개신교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프로 경력
3.1. SK 와이번스 시절3.2. NC 다이노스 시절
3.2.1. 2013 시즌3.2.2. 2014 시즌3.2.3. 2015 시즌3.2.4. 2016 시즌3.2.5. 2017 시즌3.2.6. 2018 시즌3.2.7. 2019 시즌
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NC 다이노스 소속의 내야수.

원래 포지션은 3루수[7]이지만 2016년 이후로는 지명타자1루수로 나오는 일이 많다. 또한 NC 다이노스의 1군 팀 1호 안타의 주인공.

2. 아마추어 시절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해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균관대 시절 단국대학교나지완과 함께 각종 대회 홈런왕을 다투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한다.[8][9]

대학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7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에서 열린 한미대학야구선수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전 경기에 4번 타자로 출장했다.[10]

고교-대학 통산 성적은 127경기 454타수 138안타 타율 .304 24홈런 93타점 27도루 50볼넷 70삼진. 초반에 빛을 못 보다가 갈수록 미친듯이 활약한 나지완과는 달리 고1을 제외하면 꾸준히 붙박이 주전으로 나와서 경기수가 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127경기에서 20-20을 기록하는 등 주루와 타격 모두 최상급이었고[11] 선구안도 나쁘지 않았다.

3. 프로 경력

3.1.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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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올해는 모창민 포텐 터진다!

2008년 SK 와이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12] 당시는 기존의 SK 내야구도를 흔들 선수로 주목받았고 시즌 초에는 실제로 나주환을 제치고 유격수로도 출장했지만 타격이 기대에 못 미치고 수비력도 국가대표급의 주전 내야수들보다 부족해 곧 주전 경쟁에서 밀려 내야 유틸 요원으로 출장했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에 비해 더딘 성장으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해 결국 2010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과 동의 없이 신청하여 구단과 김성근 감독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13]

별명은 모리아노[14], 에너자이저[15], 모잉여, 모레기, MCM, 몿칠놈(…) 등. 도깨비불 현상에 의해 이름을 치다가 나오는 몿도 그냥 별명으로 불리는데 모창민의 포텐이 터질 거라면서 '몿터진다 두고봐라'라고 하는 설레발이 발음 때문에 '못터진다'(…)로 들린다. 비슷한 포지션의 툴플레이어였고 모창민보다 후순위로 지명된 롯데 전준우의 포텐이 먼저 터져버리면서 2008년 SK의 신인 지명은 몿으로도 불린다(…). 1차 지명자인 황건주는 아예 써 먹지도 못하고 방출당했는데

툴플레이어의 자질을 가졌다. 성균관대학교 시절 보여 준 파워와 더불어 제법 빠른 발을 가졌으며, 내야 전 포지션과 외야수까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은 선수지만, 수비력이 주전 선수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백업 수비요원으로 김연훈, 조동화에 밀린다. 결국 공격력으로 어필하여 주전경쟁을 해야 하는 타입. 2군 본즈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1군에서 별 성적이 없는 것에 비해 퓨처스리그에 내려가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다.

상무에서는 4번 타자, 3루수로 출장하며 2011년 야구 월드컵 국가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53 11홈런 61타점이란 성적을 남기고 2012년 9월 3일에 제대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 야수진의 부상으로 인해 상무 입대 동기인 포수 이재원과 함께 1군에 복귀해 9월 7일 KIA전에서 교체 멤버로 전역 신고를 했다. 이 때문에 결국 한국시리즈를 마친 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다. 이게 나중에 SK 프런트의 대실책으로 끝난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 5차전은 선발 1루수 겸 7번타자, 2, 3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5타수 2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모창민은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은 선발 1루수 겸 7번타자, 6차전은 선발 1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모창민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9타수 2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222를 기록했다.

3.2. NC 다이노스 시절

2012년 시즌 후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 훈련을 받다가 이적 통보를 받게 되었다. 2012년 11월 15일NC 다이노스의 전력보강선수 지명을 받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SK 프런트와 스태프들은 SK 팬들에게 욕을 좀 먹었다. 왜냐 하면, 모창민과 이재원은 2012년 전역하여 1군에 등록되지 않았다면 은퇴선수 신분이라 특별 지명에서 자동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때문에 전역 후 1군에 등록되었을 때도 굳이 등록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다.[16] SK 팬들 사이에선 우리 팀에선 안 터지지만 타 팀에 가면 터질 선수 1순위가 모창민이었는데...

3.2.1. 2013 시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3년 4월 2일 NC 다이노스의 1군 정규시즌 첫 경기인 마산 롯데전에서 첫 안타와 첫 볼넷을 기록했다. 거기에 경기 당일에 득녀하는 겹경사를 맞이했지만 팀은 져서 약간은 아쉽게 되었다. 더 아쉬운 건 6회 2번째 안타로 출루한 후 주루 중에 허벅지에 통증을 호소했고, 경기 후 2군으로 내려갔다.#[17]

NC로서도 안타까운 것이 부상당한 모창민 대신 1루수로 나온 조영훈이 타격, 수비 모두 부진하기 때문.

4월 21일 목동 넥센전에 1군에 올라왔었으나 주루플레이 도중 부상을 입으면서 다시 4월 22일에 1군서 말소되었다. 이번에는 약지 골절이라고한다. 타선의 강화와 수비의 안정화를 기대하고 있던 NC 입장에서는 날벼락.

5월에는 부상에서 회복되고 마침 돌아온 나성범과 4번 타자인 이호준과 함께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하며 타선에서 활약중. 주로 3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1루수 주전인 조영훈이 빠지면 1루수를 보기도 하지만 5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지옥같은 1루 수비를 보여줬다.

5월 21일부터 23일 친정인 SK와의 원정 3연전에서 쏠쏠히 활약했다. 특히 5월 23일에는 2번이나 홈런을 쳐 주며 친정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기에 그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던 SK팬들은 모창민을 NC에 넘겨준 이만수를 다시 깠다. 친정에 대몿을 박은 모창민

6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선 연타석 홈런을 쳐냈다.

7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5호 홈런을 쳤다. 이 날 1회의 뇌주루로 까이는가 했으나 6회의 호수비와 함께 8회 솔로홈런을 포함 3타수 3안타의 활약을 펼쳐 팀의 2:0 승리에 일조경기를 지배했다. 참고로 3번인 나성범도 함께 홈런을 치는 덕에 이때 친 홈런은 백투백 홈런이었다.

최근에는 2번 타자로 주로 출전하고 있다가, 7월에 장타가 터지면서 이호준 뒤를 받치는 5번으로도 자주 출장하기 시작했다. 또거몿 현실화

7월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유동훈으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쳤다. The 'MO'ment 다음날인 27일에도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쳐서 팀의 위닝 시리즈를 확정지었다.

7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 초 적시타를 쳐서 2루에 있던 김종호를 홈으로 불러들였고, 5회 초에 솔로 홈런을 쳐서 결승타를 만들어냈다.

8월 21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내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8월 21일 경기 설명 이후 2014년 2월까지 이 부분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맞이한 풀 타임 시즌이라 그런지 후반기에 들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1군 108경기 395타수 109안타 12홈런 51타점 16도루 타율 .276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3할을 노릴만 했는데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 아쉬울 뿐.

3.2.2. 2014 시즌

4월 11일 양 팀의 투수들이 화려하게 불을 지르는 411 대첩에서 결승 솔로 홈런 포함 5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결승 솔로 홈런으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개인 통산 최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24일 SK 와이번스전 8회초에서 친정사랑 쐐기 3점 홈런(시즌 3호)을 쳤다.

5월 현재 타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한 3루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지석훈에게 밀리고 있다.

5월 27일 한화 이글스와의 1차전에서 선발 이태양을 상대로 시즌 5호 솔로 홈런을 쳐냈다.

5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2차전에서 조지훈을 상대로 시즌 6호 3점 홈런을 쳐냈다.

5월 29일 한화 이글스와의 3차전에서 6타수 5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하지만 같이 6타수 5안타에 만루 홈런을 쳐낸 에릭 테임즈에게 묻혔다. 이 날 활약으로 타율을 3할로 끌어 올렸으며 다시 주전 3루수로 기용되고 있다.

6월 10일 두산 베어스와의 1차전에서 정재훈을 상대로 시즌 7호 솔로 홈런을 쳐냈다.

6월 14일 한화 이글스와의 2차전에서 송창현을 상대로 시즌 8호 솔로 홈런을 쳐내는 등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벌써 타율이 0.311로 작년 타율 상위권을 맴돌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그럼 좀있으면 떨어진다는건가 다만 잘 치는 날은 몰아치고 못몿치는 날은 삽만 푸는게 함정.

6월 15일 한화 이글스와의 3차전에서 송창식을 상대로 시즌 9호 3점 홈런을 쳐내는 등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또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홈런치거나 활약한 날이 이상하게 한화전이 많다. 대한화 최종병기

6월 25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에버렛 티포드를 상대로 시즌 10호 2점 홈런을 쳤다. 이로써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였다.

7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여건욱을 상대로 친정사랑포 시즌 11호 3점 홈런을 쳤다.

7월 1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오재영을 상대로 2회초 시즌 12호 솔로 홈런, 4회초 시즌 13호 솔로 홈런으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에릭 테임즈에 가려져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인데, 모창민이 홈런을 친 게임에서는 팀이 모두 승리하였다!! 7월 기준으로 에릭 테임즈의 공식은 깨지고 모창민의 공식이 이어지는 중.

7월 18일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로 선정되어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웨스턴 리그 선수로 참가하였다. 광주 출신인 그에게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인 셈. 초구를 때려 홈런을 날리며 올스타 무대에 신고식을 했다.

더불어 장녀 모하은의 모습이 많은 NC 팬들에게 귀염사를 선사해줬다.

파일:uam1ECz.png
공교롭게도 하은 양이 입고 있던 유니폼에 '모하율'이라는 마킹이 되어 있어, 이 아이의 정체(?)를 놓고 디씨인사이드 엔씨 다이노스 갤러리에서 격론이 일기도 했다. 뫃으로 본 붕당정치

3.2.3. 2015 시즌

시즌전 등번호를 16번에서 3번으로 변경했는데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4월 16일에 그 이유가 공개되었다.# NC 다이노스구단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등번호 4과 16번을 비워두게 되면서 등번호가 이동된 것이라고 한다.

시즌 전에는 김경문감독이 모창민에게 골든글러브에 도전하라라고 할 정도로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했으나 타어강처럼 저주를 받았는지 시즌 개막 후 5경기 4실책으로 최악의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4월 23일 이후로는 대타로만 출전하다가 5월 19일에 노성호와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1군에 올라온 선수는 조평호민성기.

6월 3일 LG와 홈경기를 앞두고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6월 한달동안 주로 대타로 나와 0.167의 월간 타율을 기록.

7월 11일 넥센전에 9회초 무사 1루에 대타로 나와서 안타를 치긴 했지만 다음 타자인 조영훈이 2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힌뒤 2루 주자였던 용덕한과 1루 주자였던 본인이 차례대로 귀루에 실패하여 아웃당하면서 삼중살을 당했다. 팀이 대승을하여 욕을 먹진 않았고 본인의 잘못으로 당한 삼중살이라고 할순 없지만 안타를 치고도 마무리가 아쉬웠다.

7월 21일 롯데전에 7회초 이호준의 대타로 나와서 첫 타석에 삼진을 당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의 경기에서 보여준 내용때문에 납득할만한 모습이었지만 9회초 1:1의 팽팽한 국면에서 1사 1, 2루의 상황에서 타석에서 초구에 몿난 병살타를 쳐 순식간에 이닝을 종료시켰다. 결국 9회 말 이사미노 이민호의 볼질 끝에 팀은 패배.

9월 13일 SK전에서 대타로 나와서 1볼넷 1뜬공으로 큰 활약이 없긴 했지만 포지션 경쟁 중인 지석훈이 끝내기 홈런을 치자 제일 먼저 뛰어나와 좋아해 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9월 20일 넥센전에서 6회 대타로 나와 바뀐투수 김대우의 초구를 노려쳐서 솔로 홈런을 기록하였다.

중반기 까지 2할 초반대 타율을 기록하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후반기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이며 2할 9푼으로 시즌 마감.

그러나 완전히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팀을 나갈수도 있다는 썰이 있다. 만일 그가 트레이드 카드가 된다면 롯데나 LG가 가장 유력한 팀.[18]

결국 구단은 2015 시즌 후 FA 시장을 나온 박석민을 4년 96억원으로 영입했다. 이로 인해 모창민의 입지는 더욱 위험해졌다.

시즌 후에 펼져진 야구대제전에서 고척 스카이돔 개장 이후 프로선수 첫 홈런의 주인공이 된다.

3.2.4. 2016 시즌

2016년 3월 11일 왼쪽 무릎 외측 반월판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외야(좌익수)로 포지션 변경을 준비하다 부상이 생겨서 김경문 감독은 외야 변경을 취소할 계획. 외야가 아무리 포화라도 모자라보이는 달감독

박석민이 기복있는 모습을 보이고 지석훈도 타격에서 죽을 쑤면서 아무래도 모창민의 부상이 더욱 안타까운 상황.

5월 복귀를 점치고 있으나 5월 말까지도 잠잠한것으로 보아 복귀가 조금 더 미뤄질 듯하다.

7월 7일 복귀 첫 안타를 때렸다. 팀은 이 날 8:4로 승리.

8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7번 지명 타자로 나서 무려 5타수 5안타를 때려내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한 경기 5안타는 자신의 한 경기 최다안타 타이 기록이며, 공교롭게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화전에서 달성했다.

8월 14일 kt 위즈전에서는 3회 밴와트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쳐냈다.

9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5회 무사 1,2루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하여 5-5 동점을 만드는 쓰리런 홈런을 쳐냈다. 그 다음 날에도 솔로 홈런을 쳐냈다. 0:1로 이겼기에 결승타가 된 건 덤.

9월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선발 3루수 5번 타자로 나서 솔로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로 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3타수 40안타 5홈런 20타점 .331 .370 .504 wRC+118.4. 비율 스탯은 나쁘지 않았지만 무릎 부상으로 6월 말이나 되서야 1군에 합류한 것이 아쉬울 따름.

3.2.5. 2017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127956_155948_2922.jpg

총 136경기 527타석에 나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7개의 홈런과 148안타 90타점을 기록했으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공격 면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부상에서 벗어나 타선의 중심으로 돌아오는데 성공.

3.2.6.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좋지 않은 타격감으로 시즌을 시작하더니 5월 중순에는 족저근막 파열이라는 부상까지 당하며 팀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하지만 8월 초 복귀전부터 홈런포를 터뜨리더니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멀티 홈런을 쳐내는 등 복귀 이후에만 12개의 홈런과 .604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물오른 장타력을 과시했다. 지난 시즌보다 213타석에나 덜 들어섰음에도 홈런수는 똑같이 17개를 맞췄다.
3.2.6.1. FA
3루 자원을 노리는 팀들은 많으나 1985년생이라는 나이, 부족한 수비력이 걸림돌이 되어 타팀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갈 확률은 낮다. 사실 구단이나 본인 모두 잔류를 희망하는 상황. 2018년 11월 22일 김종문 단장은 "모창민은 우리 팀에 공헌도도 크고 꼭 필요한 선수다. 빠른 시일 내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히면서 연내에 협상을 마칠 것임을 알렸다.

2018년 11월 28일 3년 최대 20억에 계약을 완료하면서 NC에 잔류하게 되었다. 구단과 선수 모두 강한 잔류 의지를 드러내면서 FA 시장 1호 계약을 맺게 되었다. 6년 전 이호준이 FA로 NC에 이적할 때와 똑같은 기간과 똑같은 금액의 계약.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019년 FA 시장이 예상 외로 얼어붙으면서 조용히 제일 먼저 도장을 찍은 모창민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이 야구팬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실력은 특급 선수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고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당한 기간인 3년을 보장받았고, 20억이라는 거액도 챙겼기 때문이다. 모창민 본인은 현 FA 상황에 대해 KBO가 FA 상한제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선수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단과 선수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

3.2.7. 2019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플레이 스타일

컨택 능력/장타력/주력을 고루 갖춘 타자. 풀 타임만 소화한다면 10개 이상의 홈런과 3할 근처의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타격 능력과 두 자릿수의 도루는 해낼 수 있는 발을 가졌다. 하지만 컨택 능력에 비해 선구안이 좋지 못해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낮다.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는 고작 5푼 차이.

선구안이 좋지 않고 지나치게 빠른 승부를 좋아해서 흐름을 깨먹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초구 사랑이 대단한데, 문제는 결과가 좋지 못하다. 2017 시즌 기준 초구 타격은 80번으로 리그 8위인데 초구 타율은 뒤에서 5등(...).

가장 큰 약점은 수비. 어쩌다 주전의 부상이나 컨디션 관리 차원으로 백업 역할은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어지간히 돌글러브라서 주전 3루수로는 무리가 있다. 1루수도 가능하나 역시 크게 안정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다. 필딩율이 겨우 9할 초중반에 그치고, 송구 능력도 안정적이지 못하며 범위도 좁다. 그래서 2015 시즌부터 서서히 수비 시간을 줄이다가 2016 시즌부터는 부상까지 겹치면서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2019년부터는 3루수로 기용되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며 1루수와 지명타자로만 주로 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은근히 부상을 자주 당한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2017년만 뺴고 부상으로 재활군에 한번씩 내려가는 것이 문제. 특히 다리 쪽을 많이 다치기 때문에 주루 툴이 죽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똥차라 불릴 정도로 발이 느리지는 않지만 부상 때문에 주루를 자제해야 할 필요가 많다는 것이 아쉬운 점.

5. 기타

  • 팀 동료들 인터뷰를 보면 한결같이 평이 좋다. 성실하고 재미있다는 듯. 안경현이 중계에서 말하길 SK시절부터 굉장히 성실한 선수였고, 지금도 하루에 공 1000개정도는 쉬지도 않고 치는 것 같다고 한다.
파일:/image/109/2013/07/30/201307301955778510_51f79ca521a2d_59_20130730200101.jpg*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그래서 홈런을 치면 티보잉 세레머니를 한다. 본인 말로는 상무에서 복무하던 시절 교회에서 티보잉 영상을 보고 따라하게 됐다고.
  • SK 팬들에게는 평이 좋지 않다. SK에서 주어진 기회에 비해 안습한 플레이를 보였었고, 이적 후에는 SK에서 기회가 없었다고[19] 인터뷰 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척을 지고 있는 상황. 뭐 이미 떠난 사람이니 뭔 상관이냐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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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C 다이노스 스프링캠프에서 모자에 카메라를 달고 내야 펑고를 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색다른 팬서비스라며 프런트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 힘듭니다! 이야아앗!! 수고하십니다 코치님! 힘들지 않아! (헥-헥)
  • 상당한 대식가라고 한다. SK 시절 채병용이 "학창 시절에는 밥 12공기 정도 먹어서 자신의 별명이 밥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모창민을 따라갈 수 없다. 내 별명이 밥통이면 모창민 별명은 식신이다"란 말을 한것을 보면 맘먹고 먹으면 그이상을 먹는듯하다.
  • 2015~16시즌 스토브리그에서 박석민이 FA로 영입됨에 따라 트레이드설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트레이드설은 잠잠해졌다.
  • 2017년 NC가 가을야구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주전으로 등극한 모창민의 응원가도 크게 불려졌는데, 중계중이던 국내야구 갤러리 유저들이 모창민의 응원가중 "안타를 쳐주세요" 부분이 "환타를 쳐드세요"(...)로 들린다는걸 알아내고 환타맨으로 등극했다.
  • 2018년 왕웨이중 선발 경기에서 중요한 타점을 뽑아주고, 두 번째 경기에선 홈런까지 치며 왕웨이중 경기에서 활약한 덕에, 대만 현지에서는 대만의 친구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생겼다. 왕년에 한국에서 게리 셰필드라울 몬데시박찬호 도우미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과 비슷한 뉘앙스의 별명. 한국에도 가생이닷컴 등 해외반응 번역 사이트를 통해 이 별명이 역수입되었고, 이름에서 유래한 '몿'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히 인상깊은 별명이 있던 선수가 아니다 보니 한국에서도 이 별명이 쓰이기 시작했다.
  • NC 다이노스의 홈 구장에 관련된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의 첫 안타와 첫 볼넷[20], 마지막 끝내기 홈런과 마지막 아웃, 창원 NC 파크의 첫 도루와 첫 끝내기 홈런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NC 다이노스의 첫 홈 구장의 마지막 끝내기새로운 홈 구장의 첫 끝내기를, 그것도 모두 끝내기 홈런으로 기록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부분.
  •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는 '갤주'로 불리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갤주의 특징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타격 포텐이 있었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모창민을 까는 별명이었는데, 베테랑으로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2017년부터는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8 SK 와이번스 91 130 .223 29 5 0 1 20 30 10 12 .287 .285
2009 92 114 .237 27 5 2 4 17 31 5 10 .298 .421
2010 65 60 .183 11 2 0 1 2 14 5 5 .246 .267
201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2 15 32 .250 8 2 0 1 2 7 2 2 .294 .40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3 NC 다이노스 108 395 .276 109 24 3 12 51 57 16 38 .339 .443
2014 122 419 .263 110 15 0 16 72 62 14 37 .320 .413
2015 103 214 .290 62 14 0 6 35 23 5 18 .340 .439
2016 63 133 .331 44 8 0 5 20 16 3 10 .370 .504
2017 136 474 .312 148 25 3 17 90 64 9 43 .361 .485
2018 81 287 .279 80 10 1 17 62 38 2 23 .328 .498
KBO 통산
(10시즌)
876 2258 .278 628 110 9 80 371 342 71 196 .332 .441


[1] 2015 시즌까지는 주로 3루수로 나섰으나 기본적으로 수비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고, 이후에는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1루수지명타자로 나서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급할 때는 2루도 소화 가능.[2] 이름이 뭐예요? (모창민!) 전화번호 뭐예요? (모창민!) 이름이 뭐에요? (모창민!) 시간좀 내줘요 (모창민!) '뭐'와 '모'가 비슷하게 들리는 것에서 착안한 듯.그리고 What's your name할 때 잘 들어보면 모창민으로 들린다.[3] 환타를 쳐드세요 원장님~ 안타를 쳐주세요 모창민~ 안타를 쳐주세요 모창민~ x2[4] 날려라 안타 모창민 안타 안타 안타~ 우워어어어 (헤이!) 우워어어어 (헤이!) 안타 모창민~ 안타 모창민 안~타 날린다 모창민. 2절은 안타를 홈런으로 바꿔서. 응원가 듣기.[5] 우리가 아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 노래 맞다. 4월 2일 라디오볼 인터뷰에서는 너무 분위기가 쳐진다고 깠다(...). 외국인 선수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같다고...[6] 아 NC의 모창민 (모!창!민!) 힘차게 거침없이 홈런 (모!창!민!)(x2)[7] 그런데 하필 소속된 두 팀의 3루수가 모두 리그 정상급 선수인 최정박석민. 최정을 건너 NC 이적 이후 3년만에 박석민이 영입되며 또다시 주전에서 밀리는 불운을 겪었다(물론 부상도 있었지만). 그러나 본인이 지명타자로 전환되고 박석민의 2017시즌 부진과 함께 이제야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8] 리틀 김성근이라 불리는 이연수 감독이 부임한 2001년부터 강도 높은 지옥훈련 아래 성균관대학교 야구부는 황금기를 열게 된다. 당시 성균관대에는 모창민 외에도 넥센 히어로즈김태완SK 와이번스김연훈도 있었다. 투수 중에는 이우선, 허유강, 황재규 등이 포진.[9] 다만 성대 4학년 때는 나지완과 차이가 많이 벌어졌다. 나지완이 11홈런을 친 반면 모창민은 단 2개.[10] 이 때 대학 대표팀에 같이 갔던 선수로 전준우, 허도환 등이 있다.[11]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가 프로처럼 나무배트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라는데 모창민은 나이가 좀 되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만 나무배트를 썼다. 고교 시절에는 알루미늄 배트를 썼다.(한국대학야구는 2000년부터, 한국고교야구는 2004년부터 나무배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12] 추후 김성근 감독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모창민과 나지완 중 누구를 먼저 뽑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사전 테스트 당시 나지완의 인상이 좋지 않아서(...) 모창민을 먼저 뽑고 나지완은 2픽으로 뽑을려고 했다고. 그런데 KIA 타이거즈가 1픽으로 물어가더니 2009년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크리. 그러나 실상은 나지완은 당시 대학 최고의 타자로 모창민보다 높게 평가받으며 리그 초토화시켜서 1라운드가 아니면 지명할수 없었다. 기아가 패스했어도 삼성이 지명했다는게 정설.[13] 김성근 감독이 알았다면 성향상 입대를 막았을 거겠지만....지금 보자면 잘 갔다 왔다.[14] 모창민의 롤 모델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대표적 돌글러브 호타준족인 알폰소 소리아노다.[15] 지칠 줄 모른다고 해서 당시 이광길 2군 코치가 지어준 별명. 문학구장 가로전광판의 선수별 닉네임에도 이 별명이 반영됐다.[16] 군보류 선수는 제대해도 선수로 등록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보호선수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1군에 등록하면 해당 등록선수도 보호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같은 해 시즌 막바지에 두산 베어스에서 정수빈의 부상으로 민병헌이 등록된 경우도 마찬가지다.[17] 방송 중 해설자는 모창민이 만지는 부위를 보고 햄스트링 부상인것 같다고 추측했으며, 그렇다면 부상이 오래 갈 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18] 롯데는 황재균의 이적 가능성 때문에 한 시즌을 맡길 수 있는 3루수가 필요하기 때문. LG 역시 정성훈의 노쇠화 등으로 3루수가 필요하다. 히메네스가 있다곤 하지만 문제는 백업 3루수. 히메네스의 일시부재시 밑고 맡길 3루수가 정성훈밖에 없다는게 문제다.[19] SK의 철벽 내야진 속에서도 김성근감독은 모창민을 믿고 당시 능력에 비해 많은 기회를 주었다. 백업이나 대수비로 들어간 경기가 많긴 하더라도 군입대 전 3시즌 동안 SK에서 출장경기수 248경기 출장은 적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본인이 주어진 기회를 차버린 적이 많았다.[20] NC 다이노스의 1군 입성 이후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