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9:04:50

김건한

김건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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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7.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2 2013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9 KBO 퓨처스 북부리그 최우수 평균 자책점

SK 와이번스 등번호 51번
김형규
(2000)
김희걸
(2001~2004)
윤길현
(2005~2009)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41번}}}
신용운
(2004)
김희걸
(2005~2006)
오준형
(2007~2009)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47번}}}
방동민
(2004~2006)
김희걸
(2007)
진민호
(2008~2009)
진민호
(2008~2009)
김희걸
(2010)
박경태
(2011~2014)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16번}}}
김종국
(1996~2010)
김희걸
(2011~2012. 6. 21.)
조영훈
(2012. 6. 22.~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
조영훈
(2012~2012. 6. 21.)
김희걸
(2012. 6. 22.~2012)
김성표
(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9번
정현욱
(2007~2012)
김희걸
(2013~2014. 6. 25.)
모상기
(2014. 6. 26.~201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9번
모상기
(2011~2014. 6. 25.)
김건한
(2014. 6. 26.~2016)
김성윤
(20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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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한[1]
金建翰|Kim Gun-Han
출생 1981년 3월 26일 ([age(1981-03-26)]세)
경상북도 포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포항초 - 포철중 - 포철공고
신체 182cm|82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1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1~2004)
KIA 타이거즈 (2005~2012)
삼성 라이온즈 (2012~2016)
지도자 금정구 리틀야구단 감독 (2019~)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7년 11월 25일~2009년 10월 22일)
등장곡 Linkin Park - One Step C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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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SK 와이번스 시절2.3. KIA 타이거즈 시절2.4. 삼성 라이온즈 시절
2.4.1. 2013 시즌2.4.2. 2014 시즌2.4.3. 2015 시즌2.4.4. 2016 시즌
3. 피칭 스타일4. 여담5. 지도자 경력6. 연도별 주요 성적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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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금정구 리틀야구단 감독.

개명 전 이름은 김희걸이었지만, 2014년 시즌 중에 김건한으로 개명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포철공고(現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의 에이스 투수였으며, 1년 후배인 권혁, 화교 출신의 유혜정과 함께 마운드를 지켰다. 박승종, 최준석은 타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전국대회에서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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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창단 당시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그것도 이대호거르고 지명되었고, 입단 첫 해에 2군 사상 최초 노히트 노런[2]을 기록할 정도로 상당한 유망주였다. 2003년부터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서 2년 연속 3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3.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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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시절의 좋은 활약으로 2004년 12월 KIA 타이거즈박재홍과 1:1 트레이드로 KIA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당시 박재홍은 FA 자격을 얻을 수 있었으나 부상과 슬럼프로 1군 등록일수를 못 채우면서 이 때문에 KIA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한 상태였고, KIA에서는 선발 최상덕이 부상으로 빠지고 중간계투 유동훈도 병역비리로 빠지면서 투수진에 공백이 생겼기에 전천후로 주목받던 김희걸을 영입한 것. 그러나 SK로 간 박재홍은 대활약하여 2007년 이후 SK의 대폭발의 주역이 되었지만, 김희걸의 경우에는 오히려 SK 시절보다 기록이 떨어져 11경기밖에 나오지 않은 2006년 외에는 모두 5점대 이상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2007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고, 2009년에는 2군 투수부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희걸은 2군 기록이 상당히 좋다. 좋은 구위를 가지고 있지만, 제구력과 멘탈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

2009 시즌 후 상무에서 제대하여, 2010부터 선발과 중간을 오가는 스윙맨 역할을 맡았다. 주로 선발 한 자리가 구멍이 났을 때 메우는 역할을 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분식회계가 매우 적었다.

2010 시즌 8월 롯데전에서 이대호의 세계 신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의 희생양이 되었다.

2011 시즌 후반기에 접어들어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팬들은 썩 잘 어울린다고 호평하는 중. 사실 KIA 선수들 중에서는 꽤나 잘 생긴 편이었다. 성적만 좋았어도 얼빠를 많이 불렀을 텐데...

파일:external/mlbpark.donga.com/1307939063.jpg

2011년 8월 4일에는 2007년 7월 21일 광주 삼성전 이후 1,484일만에 5이닝동안 3피안타 무실점하여 선발승을 거두었다![3] 8월 9일 LG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무실점으로 2연승을 거뒀다.

손노예를 대신하여 기아 불펜에서 김노예 모드로 기용되었다. 2011년 후반기의 김희걸의 등판 일정과 투구수를 생각하면 손영민 시즌2 수준. 거기다 주자 남겨놓고 내려가면 꼭 뒤에 올라오는 투수들이 분식회계를 저질러 평균 자책점도 손해다.

2012 시즌 1군에서 6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2군행.

2.4. 삼성 라이온즈 시절

6월 22일에 시망 분위기인 KIA 타선의 보강을 위해 조영훈과 트레이드되면서, 고향 연고인 삼성 라이온즈에 들어오게 되었다. 조영훈은 바로 1군에 합류해 선발 라인업에도 포함되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김희걸은 경산행.

삼성 이적 이후 첫 등판인 6월 28일 상무와의 2군 경기에서 4이닝 5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필이면 이 날 반대 급부였던 조영훈이 1군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하면서 조영훈의 활약과 비교되어 까였다(...).

7월 18일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팀이 8:1로 크게 이기던 6회 말 1사 1,2루 상황에서 선발 장원삼에 이어서 등판. 이양기는 2루수 뜬공으로, 오선진은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후 안지만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 날은 ⅔이닝 9투구수 2타수 무피안타 무탈삼진 무실점을 기록. 이후 경기에서도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의 투구를 선보이며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 팬들 사이의 갈등 해소 역할도 겸했다.[4]

삼성 이적 후 큰 점수차로 승패가 확정지어지면 뒷처리를 하기 위해 이따금씩 등판하고 있다. 삼성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패전처리 투수로 뛰면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지만, 패전조라는 특성상 잘 던지면 본전이고, 못 던지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모습. 다만 지는 경기보다는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경기에 좀 더 많이 등판하는데... 8월 26일 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는 11:0으로 앞서던 9회 말에 등판하여 2실점을 시전하여 11:2로 부진하였지만 어쨌든 막아냈다.

9월 20일 무등 야구장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5:0으로 크게 이기던 8회 말 1사 1,2루 상황에서 등판. 2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아웃시키며 이닝을 깨끗하게 마무리짓고 홀드를 따냈다. 경기는 5:0으로 끝나며 삼성이 승리했다.

김희걸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경기 1이닝 2피인타 무사사구 1피홈런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김희걸은 2003년 SK 와이번스 소속이었을 때에는 200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팀이 준우승했었고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 소속이었을 때에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본인이 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2012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개인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되었다.

2.4.1. 2013 시즌

정현욱의 이적과 권오준의 수술로 인해 삼성 불펜진에 간만에 공백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주로 선발로 등판하였다. 5월 22일까지 2군에서 6경기에 등판해 26⅔이닝 평균자책점 6.08 탈삼진 11개, 4사구 13개로 영 좋지 않았다.

5월 22일 자로 1군에 등록되었으며 바로 당일 대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3이닝 3실점 이후 조기강판된 장원삼을 대신해서 4회 초에 등판하였으나 3⅓이닝동안 10피안타(1피홈런) 3탈삼진 3볼넷 6실점을 기록하며 아주 그냥 탈탈 털렸다.

5월 31일 대구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도 4이닝 6실점으로 조기강판된 릭 밴덴헐크를 대신해서 5회 초 무사 2루 상황에 등판 후 5회 초를 3타자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는 등 2이닝을 잘 버텨놓고선 7회 초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2이닝 6피안타 3탈삼진 4실점으로 이번에도 말 그대로 그냥 탈탈 털렸다. 그리고 6월 1일자로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2군으로 내려간 이후 이우선김현우 등 다른 1.5군급 불펜들이 죽을 쑤는 사이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어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고 6월 28일 친정 KIA 타이거즈전에서 팀이 3:5로 뒤진 9회 초 무사 1루 상황에서 패전처리로 등판해 1이닝 1볼넷(고의사구) 무실점으로 잘 막아낸 뒤 팀이 9회 말 상대 마무리 투수 앤서니 르루를 먼지나게 털어버리며 6:5로 역전하며 행운의 시즌 첫 승을 올렸다.

이후 7월에는 7월 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2이닝 3실점, 7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0⅔이닝 2실점, 7월 25일 NC 다이노스전에서 1이닝 1실점 등 7월에 등판한 5경기 중 3경기에서 실점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이동걸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이동걸에게 밀려 8월 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김기태가 1군에서 영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8월 13일 김기태를 대신해 10일만에 1군에 올라왔다. 이미 1군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내려간 선수들 때문에 2군 투수 중에서 올릴만한 투수가 없었기에 김희걸이 올라온 것. 같은 날 9회 초에 등판해 2실점을 하면서 클래스를 보여줬다. 사실상 성적이 좋아서 1군에 올라가기보다는 이우선과 심창민의 부상과 김현우, 백정현의 부진 등에 따라 엔트리가 비면 땜빵하러 가는 수준.

그런데 8월 9일 LG 트윈스와의 2군 경기에서 최승준의 머리를 맞히는 공을 던져 뇌진탕을 입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문선재-조동찬의 충돌 사고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시끄러워졌다. 다만 최승준은 김희걸에게 공을 맞은 바로 다음날인 10일 대수비로 나왔고 15일부터 다시 2군 주전으로 복귀했다.

8월 17일 1군에 복귀한 이후 등판할 때마다 실점을 한 끝에 8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을 앞두고 이흥련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그 8월 24일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2군으로 내려간 이후 2군에서도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삼팬들은 또다시 멘붕에 빠졌다.

그러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 팀이 스코어 7:1로 뒤진 8회 초에 등판해 2이닝 18투구수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그래도 패전조로써 이닝은 먹어줬다. 삼성 팬들은 불펜 누수를 최소화했다는 안도와 함깨 류중일 감독이 이 날 투구를 보고 김희걸을 박빙 상황에 올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7차전까지 가면서 그렇게 큰 점수차가 난 경기가 나오지 않으면서 김희걸은 더 이상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고, 팀이 극적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3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자 반지 하나를 추가했다.

2013 아시아 시리즈에선 2차전에 퉁이 라이온즈를 상대로 등판했는데, 다름 아닌 선발 등판. 모든 팬들은 경악했고 걱정했지만 2회까진 무실점으로 잘 막아서 걱정을 당황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3회에 2실점을 기록하며 클래스는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이 날 성적은 3⅔이닝 2실점. 그리고 정작 1+1 작전으로 올라온 박근홍이 좋은 구위를 보였다.

2.4.2. 2014 시즌

전반기 한정[5] 걸레멘스, 걸랜더, 걸래인키로 진화. 2013 아시아 시리즈 퉁이 라이온즈전[6]을 계기로 자신감을 찾은 듯.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많은 삼팬들이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역시나 시즌 초부터 패전처리 투수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4월 2일 한화 이글스 상대로 1이닝 3실점을 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또 보여주고 말았다[7]. 그런데, 그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는 모두 무실점 중. 가끔 1점 정도를 내주지만 1이닝을 꾸준히 소화해주면서 4월 중순에는 삼성 불펜 중에 김희걸이 제일 낫다는 이야기가 농반진반으로 나오는 중.

4월 15일에는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릭 밴덴헐크# 견갑하근염좌로 갑자기 강판된 상황에서 올라와 3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막았다. 비록 포수 이흥련의 포일과 호르헤 칸투에게 맞은 적시타 하나(+ 차르 봄바의 불질과 유희관의 몬스터 피칭) 때문에 패전을 뒤집어썼지만 몸도 제대로 못 풀고 나왔음에도 무려 3이닝을 무자책점으로 굉장히 잘 막았다.

4월 한 달 동안 등판 횟수가 많았다. 류중일 감독이 상대적으로 중간계투를 덜 혹사시키는 편이라 심한 혹사는 아니지만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임창용의 1999년과 비교하여 애니걸이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다. 대구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올 시즌 잘 던지는 이유는, 류중일 감독이 2013년 시즌이 끝난 후에 "올해처럼 하면 짤린다"고 말해서 김태한 코치랑 엄청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희걸에서 김건한으로 개명하였다. 6월 24일 법원으로부터 개명신청 허가를 받았고, 6월 26일부터 새 이름을 달고 등번호도 19번에서 49번으로 교체했다.

차우찬한테 묻혔지만, 34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삼성안에서는 혹사지수 2위다.

불펜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박근홍과 함께 맹활약해주고 있다. 이제는 버리는 경기, 가비지타임인 경기 외에 제법 박빙인 상황에서도 등판하고, 잘 막아주는 편. 추격조의 역할을 매우 잘 수행했다. 그러나 7월에만 6경기에서 5실점을 기록하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7월 17일 2군으로 내려갔다. 거기에 7월 14일 잠실 LG전에는 작뱅을 거르고 최경철을 만루상황에 맞았는데, 보기 좋게 싹쓸이 2루타를 맞았는데, 그 후 보인 표정이 완전 멘붕.

8월 27일 심창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그런데 전날 경기에서 류중일 감독은 심창민을 내리고 박근홍을 올린다고 했음에도 박근홍이 아닌 김건한을 올리면서 삼성팬들은 의아했다. 박근홍이 2군에서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있던 반면, 김건한의 평균자책점은 9점대였다. 아니나 다를까 롯데전에서 아웃카운트를 1개도 못 잡고 5실점하면서 하루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이 날 부진했던 게 골반 부상 때문이었는데, 아시안 게임 휴식기간이 지난 10월에도 1군에 복귀하지 못했다.

2.4.3. 2015 시즌

스프링캠프 이전부터 괌에서 몸을 만들어 왔으며, 김현우가 허리 부상으로 DL에 오르고 임진우도 상태가 완전치 못하여 셋업 안지만, 마무리 임창용을 받쳐줄 투수 중 우완이 부족한 삼성의 현실상 중용될 예정이다. 3월 31일 kt전에서 백린탄과 오줌갑이 불지르는 와중에 2이닝 호투로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고 결국 642일만에 승리 투수가 되었다.

5월 들어서는 3경기 밖에 나오지를 못했고, 그 중 14일 한화전과 20일 두산전에서 실점했다. 결국 5월 27일 백상원이 콜업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투구수를 늘리는 것으로 보아 클로이드의 출산휴가기간 중 대체 선발로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6월 19일 클로이드 대신 1군에 등록됐고, 6월 20일 SK전 선발로 내정됐으나 경기가 우천 순연됐다. 21일 선발은 윤성환으로 내정되면서 삼성 이적 후 첫 선발 등판은 미뤄졌다. 6월 24일 롯데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1⅔이닝 6피안타 3볼넷 4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다. 김건한이 이닝을 못 먹어주면서 불펜진에 무리가 갔고, 결국 타자들이 선발 전원 안타를 치고도 졌다. 6월 26일 백정현이 복귀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31일 신용운 대신 1군에 올라왔다. 8월 5일 kt전에서는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10일 넥센전에서는 0⅔이닝 2실점을 기록하면서 14일 1군에 합류한 정인욱을 대신해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25일에 다시 1군에 올라왔으나, 8월 29일 LG전에서 이미 승부가 기운 7회에 등판해 0⅔이닝 1실점으로 1이닝도 못 막으면서 8월 30일에 다시 1군에서 말소되었다. 1군에서 말소된 후에는 2군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2.4.4. 2016 시즌

시범경기 4경기에 등판해 ERA 6.00을 기록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18일 어깨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심창민을 대신해 19일 1군에 올라왔다.

콜린 벨레스터가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가며 4월 21일 KIA와의 경기에서 땜빵으로 선발로 오르게 됐는데, 기대하지 않던 호투를 보여 주며 5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4삼진 무실점으로 KIA 타선을 막으며 기아 시절이던 2011년 8월 9일 LG전 이후 1,717일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김건한이라는 이름으로 올린 첫 선발승이기도 한 셈이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으나 5월 4일 팔꿈치 통증으로 조기 강판되었고, 다음날 DL에 올랐다.

애초에는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고, 원래는 안지만과 같이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안지만이 5월 24일에 복귀한 것과 달리 아무런 소식도 없다. 8월 4일자 기사에 언급된 바로는 재활 속도가 더뎌 시즌 내 복귀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2016 시즌 후 김태완, 이정식, 서동환과 함께 보류명단에서 제외되며 방출되었다. 선수 본인은 현역 연장을 원한다며 개인 훈련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나이도 나이인데다가 쉽지 않은 상황. 결국 팀을 구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무리지었다.

3. 피칭 스타일

원래부터 구위 하나는 괜찮은 선수. 구속도 150km까지 나오고 이닝 소화능력도 준수한데다 연투도 가능하여 긁히는 날에는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변화구도 제구도 기대 이하여서 이러한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때문에 2군에서조차 탈탈 털릴 때에도 구위에 매료된 감독들이 꾸준히 1군에 콜업하고 얻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14 시즌 투구폼을 교정한 이후 원래부터 괜찮았던 구위와 이닝이팅 능력에 제구와 변화구도 괜찮아지면서 팀의 롱 릴리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4. 여담

묵직한 공을 가져 예전 이름 때문에 별명은 로저 클레멘스에서 따온 '걸레멘스'. 줄여서 걸레로 불린다. 덕분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걸레가 되듯 까인다(...). 만약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 수건으로 상승. 하지만 2013년의 부진으로 인해 말 그대로 걸레류희걸[8]이라는 별명만 남았고, 그럼에도 201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당당히 합류, 1차전에 패전처리조로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활약을 선보이며 별명이 하나 더 늘었다. 우승반지 도둑놈.

하지만 2014 시즌 초반의 마당쇠로서의 괜찮은 활약으로 애니걸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개명과 활약이 겹쳐지면서 걸레에서 수건으로 정식 승격했다. 2014년 4~5월에는 제법 이닝도 먹고 호투를 보여줌으로써 비단으로 승격됐다.

2012년 말 결혼하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삼성 라이온즈KIA 타이거즈 간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조영훈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다.

5. 지도자 경력

2018년 부산 금정구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SK 22 42⅔ 2 2 0 0 7.17 49 9 28 24 38 34 1.59
2002 5 5⅓ 0 1 0 0 3.38 7 0 7 6 2 2 2.25
2003 35 60 2 1 0 3 3.45 58 6 37 44 29 23 1.50
2004 47 99 3 3 1 6 3.55 99 10 53 53 42 39 1.4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KIA 27 31⅓ 1 3 0 3 7.18 39 5 22 19 28 25 1.76
2006 11 18 0 1 0 0 4.50 23 1 10 7 12 9 1.83
2007 19 33 2 2 0 0 5.73 35 3 20 17 22 21 1.58
2008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9
2010 57 77 3 5 1 3 5.26 87 5 41 61 53 45 1.57
2011 35 67⅓ 2 5 0 3 5.08 67 5 39 42 39 38 1.4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KIA / 삼성 31 34 0 0 0 2 5.29 41 2 18 27 23 20 1.65
2013 삼성 11 14⅓ 1 0 0 0 12.56 31 1 11 12 20 20 2.93
2014 34 36⅓ 0 1 1 0 5.45 42 2 17 23 27 22 1.40
2015 16 16⅓ 1 1 0 0 6.06 26 1 9 6 11 11 2.08
2016 3 9⅔ 1 0 0 0 3.72 9 1 4 7 5 4 1.24
KBO 통산
(14시즌)
353 544⅓ 18 25 3 20 5.20 613 51 316 348 351 313 1.60

7. 관련 문서


[1] 개명 전 이름은 김희걸.[2] LG 트윈스 2군과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기록하였다.[3] 참고로 이 날 경기는 KIA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주전 키스톤 콤비인 안치홍-이현곤이 빠지게 되자 3루수 박기남-유격수 이범호-2루수 홍재호-1루수 김주형이라는 괴랄한 수비 포지션을 선보였던 경기였다. 특히나 이범호는 7년만의 유격수 선발 수비였던 것.[4] 원래 사이가 좋지 않다가, 2012시즌 중반 조영훈-김희걸 맞트레이드 이후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러나 7월 15일 경기에서 진갑용-김선빈 충돌 및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면서 다시 벌어졌다가, 이 경기 덕분에 어느 정도 풀렸다고. 이후로는 그냥저냥 서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5] 사실 전반기에 박근홍과 함께 차우찬 못지않게 굴러서 후반기에 사이좋게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다.[6] 3⅔이닝 2실점[7] 1실점을 한 후 주자 2명을 내보낸 상태에서 임현준으로 교체되었는데, 연속 안타를 맞아서 김희걸이 내보낸 주자들이 들어왔다.[8] 류중일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뜻. 특히 안티 류중일 성향이 강한 사자 사랑방에선 인간 취급 못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