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1 13:14:57

이현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C70125> 파일:KIATIGERS_1.png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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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곤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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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수상 기록
2007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2007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

KIA 타이거즈 등번호 6번
정성훈(1999~2001) 이현곤(2002) 서동욱(2003~2004)
KIA 타이거즈 등번호 31번
이병석(1998~2002) 이현곤(2002~2012) 이대환(2013~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31번
노진혁(2012) 이현곤(2013~2014) 이승재(2015)
NC 다이노스 등번호 85번
진종길(2014) 이현곤(2015~2019)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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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현곤프로필.jpg
KIA 타이거즈 No.
이현곤(李賢坤 / Lee Hyun-Gon)
생년월일 1980년 2월 21일 ([age(1980-02-21)]세)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송정동초-무등중-광주일고-연세대
포지션 유격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 우선 지명 (해태)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2~2012)
NC 다이노스 (2013~2014)
지도자 고양 다이노스 수비코치 (2015~2016)
NC 다이노스 1군 수비코치 (2017~2018)
NC 다이노스 2군 타격코치 (2019)
KIA 타이거즈 1군 주루코치 (2020~)
응원가 KIA 시절 : 김종국 - 따줘[1][2][3]
노브레인 - Make It Big[4][5]
Cliff Richard 'Early in the Morning'[6][7]
'Ole Ole Ole - The Fans'[8][9]
NC 시절 : 산울림 -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10]

1. 소개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KIA 타이거즈 시절2.3. FA2.4. NC 다이노스 시절
2.4.1. 2013 시즌2.4.2. 2014 시즌
3. 지도자 경력4. 광고본능
4.1. 2009년4.2. 2010년4.3. 2011년4.4. 2012년4.5. 2013년
5. 여담6. 연도별 주요 성적7. 관련 문서

1. 소개

KIA 타이거즈, NC 다이노스 소속의 내야수. 전 NC 다이노스의 수비코치.

온갖 잔부상과 질병을 달고 사는 일명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그랬던 선수가 바로 2007 시즌 타격왕과 최다안타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른 바 아직도 미스테리라 불려지는 2007년도 타격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11]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파일:NJQfUbR.jpg
1995년 청룡기 우승 후. 유니폼을 입은 윗줄에서 네번째가 최희섭, 앞줄에서 세번째가 이현곤이다.

광주일고에서 1루수 최희섭 - 2루수 송원국 - 유격수 정성훈 - 3루수 이현곤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내야진[12]을 구성했으며, 1998년 고졸우선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된 후 연세대학교로 진학했다. 연세대학교 시절에는 제2의 이종범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99년에는 권윤민 등과 함께 대륙간컵 국가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external/pds.joins.com/200904252021251101_1.jpg
KIA 타이거즈 시절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발돋움한 시기는 2003년. 김성한 감독은 그를 믿고 3루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던 정성훈현대박재홍을 상대로 트레이드하는 강수를 두었으며, 자연스레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2003 시즌 성적은 1군 129게임에서 .263 5홈런 43타점.[13] 허나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프로에서는 좀 헤매는 모습을 보여 주다가 2004 시즌 도중에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5년에 입대했다가 고질적인 갑상선 질환[14]으로 2006년에 의가사제대하게 된다. 의병 제대 후, 부상 중이던 홍세완의 공백을 메우며 활약했다.

그리고 2006 준 플레이오프(한화vs기아) 2차전 6회말 1:1 동점 상황.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현곤은 한화 선발 류현진의 4구째 직구를 받아쳐서(!) 만루 홈런을 만들어냈다. 이 홈런과 이후 도하 참사 동안 맞은 일명 '택배포' 등으로 인해 류현진은 한동안 큰 경기에 약하다는 오명을 썼다.


감상하도록 하자.

2007 시즌엔 팀은 장타자 하나 없는 눈물나는 심각한 물타선으로[15] 그야말로 개발살이 났지만, 이현곤은 서정환 감독에게 망치 타법이라는 타법을 전수받아 타율 .338, 안타수 153개로 타격왕과 최다안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 와중에 김동주[16]와 3루수 KBO 골든글러브 경쟁을 했지만, 결국 KBO 골든글러브는 김동주가 가져갔다.[17]

그 이유로 다음 시즌에도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고질적인 갑상선 문제와 족저근막염, 간염 등의 지병으로 성적 하락과 함께 풀타임 출장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갖 잔부상과 지병을 달고 사는 몸 덕에 3할은 커녕 2할 8푼도 넘어본 적 없는 방망이였던지라 타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2007년은 일명 이현곤 미스터리라 불리며 KBO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더더욱 미스터리한것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선수가 "전경기 출장"으로 타격왕에 오른 것이다. 심지어 신문에서도 언급했을 정도. 이해는 흔히 포수였던 송산이 4번치던 시절로 불리우며 전년도까지 주축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공격면에서 최악을 달리던 시기였다. 이때 이현곤의 활약은 그야말로 암흑기 한줄기 빛이였고 침체된 타선의 활력소였다.

그리고 2007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할은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의 스탯 중 하나인 BABIP를 계산해본 결과 이현곤의 2007년 BABIP는 .379로, 개인 커리어 평균이었던 .308, 리그 평균 .311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았다. 쉽게 말해서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입장은 천운을 타고난 시즌"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7게임 모두 출전, .316 1홈런 1타점의 시리즈 성적을 남겼다. 특히 4차전에서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으며, 이 장면을 보고 기아팬들은 "타격왕 시절로 귀환하는 것이냐" 라며 행복해하기도...

2010 시즌에는 잔부상 때문인지 타선은 물론 수비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노출..주전유격수 자리를 김선빈에게 사실상 내주고 3루수로 다시 돌아섰다. 김상현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로는 대수비 혹은 대주자로 뛰었다.

2010 시즌을 마치고 제법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1 시즌에는 최단신 선수로 인하여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하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타로, 2, 3, 4차전에서는 선발 9번타자로 출장하여 8타수 2안타 1볼넷 타율&장타율 .250,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012 시즌에는 좋지 않은 몸 상태 때문인지 거의 2군에만 있었다.

2.3. FA

2012 시즌이 끝난 후 FA를 신청했지만, NC 다이노스의 20인 보호선수 외 선수 지명을 피하기 위한 전략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수비력 좋은 베테랑이란 점에서 NC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선수였고, 게다가 NC는 FA영입시 보상선수를 주지 않고 보상금으로 원 소속팀에 연봉의 3배만 지불하면 되는데, 이현곤은 연봉도 비싼 편이 아니라 3억 1500만원만 지불하면 영입할 수 있었다.

결국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FA시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11월 18일 예상대로 NC 다이노스와 3년간 총액 10억 5천만원[18]계약을 마쳤다.

2.4.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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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013 시즌

그저그런 타격에다가 신인인 노진혁이 유격수 주전 자리를 꿰차고, 3루수 자리에는 모창민이 고정이 되면서 주전 자리를 못잡고 대타나 대수비 등 백업 요원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러나 7월 1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노진혁이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자 선발 출장했고, 무려 11타수 8안타 4타점 타율 0.727이라는 활약을 펼쳤다. 특이하게도 초구를 많이 노려 쳤지만, 그것이 거의 안타로 연결되었다.

2.4.2. 2014 시즌

6월 17일 기준으로 단 2경기 출장이 전부다. 박민우가 포텐이 터지고 손시헌이 들어오고 지석훈도 한층 기량을 올리면서 사실상 자리가 없어졌다. 6월 4일에 등록되었지만 출장을 거의 못하다 박민우의 10일 등록제한이 딱 풀리는 날짜인 14일이 되자 말소되었다.

결국 8월 21일, 선수 은퇴 후 코치 전향을 선언한다. 단, 바로 전향하는 건 아니고, 9월 확대엔트리 때 1군에서 몇 경기 더 뛰어서 통산 1,000 경기는 채우고 은퇴한다고. 다만 다소 이른나이에 은퇴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9월 9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1,000번째 경기를 출장함으로써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김경문 감독의 배려로 대주자, 대수비가 아닌 선발로서 출장했고, 중간교체 없이 연장 11회까지 모든 이닝을 다 뛰었다.#. 다행히 동갑내기 이종욱이 11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면서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시즌 최종 타율은 .091.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구단 지원을 통해 샌디에이고에서 코치 연수를 했으며 이후 고양 다이노스 수비코치를 맡았다.

2017 시즌부터는 1군 수비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허나 NC 팬들에게 좋은 평은 듣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19 시즌에는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김상엽, 정진식 코치와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9년 10월 23일, KIA 타이거즈에 1군 주루코치로 7년 만에 고향으로 복귀한다.

4. 광고본능

파일:attachment/AD_LHG.jpg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저 평범한 유리몸 선수에 불과하겠지만, 이현곤의 진가는 따로 있다.

4.1. 2009년

2009 시즌 초반, 이현곤은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그런데 타이밍이 좋게도(?), 이현곤이 타격을 할 경우 투아웃 상황이거나, 원아웃에서 병살을 치거나, 살아나가기라도 하면 투수교체 타이밍에 걸리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19] 쓰리아웃이 되고 이닝 종료가 될 경우나 투수교체시에 케이블에서는 얄짤없이 광고를 봐야하기 때문에, 기아팬들 및 타팀팬들 사이에서 광고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별명이 광고니라고 들은 이현곤은 처음엔 廣告니가 아니라 고니인줄 알았다고 인터뷰했다.

다음은 이현곤의 광고율(?)

파일:NcGCErM.jpg
이 정도면 광고를 부르는 사나이라고 봐도 무방.

참고로 이현곤의 광고 소환 기술은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다. 2사에 안타를 쳐도 선행주자가 주루사하면서 광고를 소환할 정도.

4.2. 2010년

2010 시즌 들어서도 광고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2사에 주자 나가있으면 100% 보는 듯. 5월 8일 잠실 LG전에서는 타석 앞뒤 광고라는 신기원(?)을 이룩하고, 5월 23일 광주 넥센전에서는 안타를 치고도 광고를 소환하더니, 심지어 주자로 나가 있어도 견제사로 광고를 소환하기도 한다. 8월 6일 9회말 2사 2, 3루의 찬스에 나와 광고를 적립했다. 그러나 8월 8일 9회 2:5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폭풍 3점 홈런으로 이용찬을 강판시키며 광고를 적립한다.

4.3. 2011년

2011 시즌 4월 14일 경기, 3회말 원아웃 2루에서(병살이나 아웃카운트 등으로는 무리) 안타를 치고 투수교체로 인해 광고를 할 뻔도 했으나 투수가 그냥 던지겠다고 하면서 무산될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타자의 희생플라이 이후 히트앤드런 작전으로 보이는 것의 실패로[20] 광고를 소환.

5월 8일 SK와의 경기에서는 11회말 2사 1루에서 안타를 치고 출루하여 광고를 소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 타자 김주형의 중견수 앞 적시타 때 무리하게 3루까지 주루플레이를 하다가 아웃당해서 광고를 적립. 삼중살로 경기가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지 만약 역전당했으면 역적취급을 당할 뻔 했다.

6월 2일 지명타자로 나왔다. 4회 투아웃에서 유격수 땅볼 아웃이야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6회 투아웃 1,2루에서 볼넷을 골라 나가서 광고를 회피하나 싶었으나... 투수교체로 광고를 소환. 이쯤되면 본능이다.

7월 1일 8회 투아웃 1,2루에서 대타. 그리고 광고 후 9회초로 이어집니다.

7월 6일 넥센전에서 김선빈의 부상으로 인해 교체선수로 투입 4회 2사 만루에서 광고소환, 7회 2사에 적시타를 날렸으나 이용규의 주루사로 또 광고소환. 이젠 점점 광고 소환하는 스킬이 발전하였다! 김선빈이 장기결장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당분간은 선발라인업에 올라올 것 같은데...

전반기 마지막 즈음까지 유격수 수비에서 안정감을 보여주며 수비부분에서 김선빈의 공백을 잘 메꿔주었다. 공격시에는 주로 하위타선에 위치하고 있고 투아웃 상황에서도 곧잘 안타를 쳐낸다.

8월 19일 병신같은 수비 2개로 팀을 5연패에 빠뜨렸다. 공, 수 모두 병신같은 모습으로 왜 한참어린 김선빈의 백업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9월 17일 LG전에서 김광삼을 상대로 시즌 첫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쳤다. 그리고 김광삼은 바로 교체되면서 광고 클라스는 여전하다는걸 보여주었다.

4.4. 2012년

3월 17일 SK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출장. 6번 타자로 나와 첫 타석부터 1구에 깔끔하게 병살광고를 불러오더니, 8회초 1사 만루 후 나지완이 아웃된 상황에서 또다시 타석 앞뒤 광고를 불러오면서 4타수 5광고로 마무리.

3월 18일 세번째 타석 1아웃에서 안타를 치고 나갔다. 다음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난 후 견제사로 광고.

5월 11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 경기에서 0:0 2회말 2사 만루 득점 찬스 상황에서 2루수 땅볼로 또 광고를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점수가 나지 않은 5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뜬금없이 안타를 터뜨렸다.

좋지 않은 몸상태 때문이었는지 5월 중순경 2군으로 내려갔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FA로 NC 다이노스로 이적.

4.5. 2013년

NC에서는 처음에는 주전 유격수로 나왔으나 3루수인 모창민이 내야 수비 안정을 목적으로 1루수로 나가게 됨에 따라 3루수로 나오기도 했다.

4월 3일 롯데전에서 김태군의 안타때 홈을 밟으며 팀의 창단 첫 득점을 기록했다. 같은 경기에서 9회 말 1사 3루에서 좌익수 쪽에 플라이를 날렸으나 3루 주자가 김문호의 정확한 홈 송구와 용덕한의 적절한 위치선정 때문에 홈에서 아웃, 끝내기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광고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별도의 광고 없이 바로 10회초 방송으로...

이후 팀 내 주전 유격수인 노진혁의 수비가 상당히 안정해짐에 따라 주로 3루수나 유격수 백업으로 나오는 중.

7월 13일. 5회 타석에 들어서자 투수교체 광고, 7회 타석에 있었을 뿐인데 주자가 도루 실패로 광고.

5. 여담

  • 파일:yiRTMGV.jpg
    KIA 시절 팀 동료였던 최희섭과는 불알친구 사이. 최희섭 덕분에 결혼까지 했다. 2020년 시즌부터 같이 코치로 KIA에 돌아왔다.
  • 스포츠 2.0과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중학교시절 야구부 부장님이 이종범의 외삼촌이라서 어릴때 종종 이종범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어렸을적 그에게 테이프를 주면서 "너도 나처럼 야구 잘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 조경택의 명포수와 더불어 재미있는 대목.
  • 잘 안 알려져 있지만 B형 간염 보균자다. 기아 타이거즈 시절의 팀 동료였던 김원섭이 A형 간염 보균자인지라 간염 보균자 2명이 한꺼번에 한 팀에 있었던 것.
  • 아마추어 시절 국제대회참가전 도핑테스트를 거부한 적이 있다. 이유는 아직도 마스테리....정황 상 타고난 지병이 많아 여러 약을 복용해서 괜한 덤터기를 쓸것같아 그런게 아닌가 싶다. 향간에는 조용준과 둘이 도핑 테스트인지 모르고 테스트 전날까지 신나게 노는 바람에 도핑 테스트 당일 거부했다는 루머도 있다. (...) 조용준 항목에 좀 더 자세한 사유가 서술돼있다.
  • 아버님께서 여전히 일을 하시는 모양.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경험담이 모 사이트에 올라와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2 KIA 52 113 .257 29 7 1 3 12 11 3 9 .312 .416
2003 129 350 .263 92 15 0 5 43 42 8 28 .316 .349
2004 68 116 .276 32 9 0 1 10 17 3 16 .364 .379
2005 공익근무요원 복무
2006 77 247 .243 60 14 1 5 27 27 2 14 .281 .368
2007 126 453 .338
(1위)
153
(1위)
31
(2위)
0 2 48 63 4 46 .393 .419
2008 112 393 .257 101 19 2 2 40 33 5 33 .312 .331
2009 120 363 .253 92 15 0 2 33 35 11 44 .329 .311
2010 108 260 .262 68 13 1 2 28 27 0 22 .314 .342
2011 104 222 .266 59 10 1 1 17 24 1 22 .329 .333
2012 6 5 .200 1 0 0 0 0 0 0 1 .333 .2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3 NC 91 139 .273 38 7 0 0 9 10 2 19 .361 .324
2014 7 11 .091 1 0 0 0 0 0 0 0 .091 .091
KBO 통산
(12시즌)
1000 2672 .272 726 140 6 23 267 289 39 254 .332 .354

7. 관련 문서


[1] 오오오 이현곤 안타 이현곤 안타 날려버려 이현곤~ 이현곤 안타 이현곤 안타 날려버려 이현곤.[2] 물론 가수 김종국의 노래다[3] 문 모 씨와 같다.[4] 이현곤! 이현곤! 이현 곤!곤!곤! Everybody! 이현곤! 이현곤! 이현곤! 이현 곤!곤!곤! 타이거즈 워우워다터져[5] 이현곤이 NC로 간 이후 이 응원가를 쓰지 않았다가 2014 시즌 이종환이 이 곡을 다시 쓰게 되었다가 이종환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후, 박찬호가 물려받게 되었다.[6] 오오 기아타이거즈 워워워워 이현곤 이현곤 워어어어 내야의 종결자 워어어어 이!현!곤![7] 참고로 이 곡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응원가로 쓰고 있기도 하다.[8] 나나~나 나나나나나 날려라~ 이현곤~ 나나~나 나나나나나 날려라~ 이현곤~[9] 축구 응원가로 쓰는 그 응원가 맞다. 하지만 이 응원가만 틀면 이현곤 본인이 집중이 안되서 성적이 잘 안나온다하여, 잘 쓰이지 않았다.[10] 이현곤! 안타안타치자!(이!) 이현곤! 안타안타치자!(현!) 이현곤! 안타안타치자(곤!) 이현곤! 안타안타치자치자![11] 2017년 김선빈이 타격왕을 차지할 때까지 10년이 넘도록 기아의 마지막 타격왕이기도 했다.[12] 서재응(3학년), 김병현(2학년,빠른 1979년생이다.), 최희섭(1학년)의 광주일고는 50회 청룡기 우승을 달성했다. 이 내야진은 해체 후 각양각색의 야구인생을 보냈다. 먼저 졸업 후 최희섭은 고대 중퇴 후 메이저 진출해 끝내 형저메가 됐고, 송원국은 OB로 지명, 데뷔 첫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큰 인상을 주었으나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이현곤은 후술. 그나마 2000안타도 치고 성적도 꾸준한 정성훈만이 프로에 길게 살아남았다.[13] 그 해 정성훈은 .343 17홈런, 부상이 있었지만 규정타석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장외타격왕에 등극한다.[14] 갑상선이 제 기능을 못 한다. 박명환도 가지고 있는 질환으로, 특히 여름철에 체력 문제가 심각해지는 게 특징. 이시찬갑상선 질환을 가지고 있다.[15] 타격 30걸 안에 든 선수는 타격왕인 1위 이현곤과, 22위의 장성호(0.281), 24위의 이용규(0.280) 셋으로 팀 당 대체로 3~4명 정도가 30걸에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리 심각해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홈런의 경우 공동 22위의 장성호(11개)빼곤 30위안에 든 선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한화 이글스 팀타율이 KIA 타이거즈 장타율과 맞먹는다는 농담이 나왔을까...[16] 그해 타율 0.322, 19홈런, 78타점을 기록.[17] 2홈런이라는 낮은 홈런수와 더불어 안습했던 KIA테이블 세터 덕에 48타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점이 크다. 그해 김동주는 .322와 더불어 19홈런에 그에 어울리지 않는(?) 11도루를 기록했다.[18] 계약금 3억, 연봉 1억5천, 옵션 4억[19] 보통 이현곤이 9번타자인데 우타자고, 좌타자인 이용규가 1번타자로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나 좌타자에 강한 투수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0] 타석에서는 스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