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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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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송산(宋山 / San Song)
생년월일 1982년 7월 22일 ([age(1982-07-22)]세)
출신학교 수영초 - 대천중 - 경남상고 - 단국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2차 5라운드 (해태)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5~2013)
응원가 The Crack - 전력질주[1]

1. 개요2. 선수 생활
2.1. 2012 시즌 및 그 이후
3. 연도별 성적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KIA 타이거즈포수. 본의 아니게 KIA 암흑기의 상징이었던 선수.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2000년 세계 청소년대회 우승 멤버 중 1명이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하고 있다.

2. 선수 생활

경남상고를 졸업했고[2] 2001년 드래프트 당시 2차 5라운드로 지명[3]을 받았고, 2005년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입단하여 주로 백업 포수로 활약하였다. 단국대 동기로 오승환, 윤요섭, 최훈락 등이 있으며, 송산은 주로 포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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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능력이나 도루저지를 위한 어깨는 최상으로 평가를 받으나, 문제는 포수 리딩 능력. 당시 주전포수였던 김상훈에 비해서 포수로서의 능력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다 보니 주로 지명타자로 많이 나왔다. 그것도 당시 타선이 김기아 시절이었던 2007년에는 '그나마' 공격 능력이 좋았기 때문에[4] 통산 홈런이 10개도 안됨에도 불구하고 4번 타자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 때 포수로서의 수비능력이 떨어짐에도 안 쓰기에는 공격력 포텐이 있었던 상황이라 우익수로 출전하기도 하였다. 흔히 송산이 4번 치던 시절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시기에 522 대첩에서 마지막 이종범끝내기 몸에 맞는 공득점한 주자이기도 하다.

그러다 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었던 조범현 감독의 부임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격력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는 포수 리딩 능력이 늘지 않자 경기에 중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전 포수였던 김상훈이 부상당했을 때 주전 자리를 꿰찬 선수는 차일목이었다. 하지만 김상훈이 빠진 상황에서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포수 자리에서 차일목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송산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결국 2008년 5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조공 트레이드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성우를 데려왔어야 했다. 결국 2008년 시즌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

2011년 소집해제 이후에도 여전히 늘지 않는 포수 리딩능력 때문에 외야수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2012년 캠프에서 다시 포수 훈련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리그 복귀 후에도 포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2.1. 2012 시즌 및 그 이후

차일목의 백업으로 비교적 자주 출장하였다. 기존의 평가대로, 차일목과 김상훈보다 송구가 좋아 도루저지는 간간히 하고 있지만 그 외의 포수로서의 능력은 미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기대받던 타격능력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KIA 포수들이 다 마찬가지라..

어린이날에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희한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연장 10회말 1사 만루 2:2 동점 상황에서 대타로 출장하여 3루쪽 병살성 땅볼을 쳐냈는데 넥센 내야진이 이것을 병살로 연결시키지 못하고[5] 1루수 박병호가 포구에 실패하면서 끝내기가 되었는데, 이것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대타 연장 끝내기 땅볼이 되었다. 관련 기사 재미있는 것은 이틀 전 차일목도 똑같이 연장 12회말 1사 만루 6:6 동점 상황에서 송산과 같은 코스의 타구로 승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김상훈, 차일목과 함께 병맛포수 3인방으로 욕을 먹었다. 국민볼배합 김상훈, 소녀어깨 차일목, 포구몰라요 송산. 김차송만 보면 질식

5월 22~24일 한화 이글스 3연전 중에는 6타수 2안타 1볼넷을 얻었으며 수비도 예전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등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5월 25~27일 LG 트윈스 3연전에서는 풀타임 선발로 출전, 이종범의 은퇴식 경기에서 결승 타점을 올리고 도루시도 2개 중 1개를 잡아내었다. 의미있는 것은 서재응과도 배터리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서재응 등판 시에는 아무리 부진해도 고교 동창이자 배터리로 호흡이 꽤 맞는 김상훈이 나왔었기 때문. 5월 말에는 김상훈을 완전히 밀어낸 듯하다.

하지만 6월 초 등록된 신고선수 출신의 한성구라는 걸출한 신인 포수가 등장하면서 다시 자리를 위협받게 되었다. 일단 타격과 근성 측면에서 한성구에게 밀리고 있으며, 그나마 괜찮은 수비도 검증이 완료된다면 백업이나 2군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6월 18일, 2군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22일 차일목이 재등록되면서 한성구도 따라 내려갔다.

이후 2군에서 계속 머무르더니, 고관절 부상으로 재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즌이 끝난 11월 30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방출은 아니고 부상에 따른 신고선수 전환이다. 관련 기사

하지만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가 힘들었는지 2013 시즌 도중 구단 공식 홈페이지의 선수단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 이후의 근황은 알 수 없었다가 스포츠 에이전트 업체인 스포츠 인텔리전스에서 에이전트로 종사하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으며, 2013 시즌 중 조용히 은퇴를 했다고 언급했다. 참고로 이 회사는 오승환의 해외 에이전시 회사이며, 임창용도 이 에이전시를 이용했다.

이후로는 일본에 가 있는 오승환의 개인 매니저를 맡아서 선수의 케어를 하며 송산의 돌직구 통신이라는 칼럼을 통해 간간히 오승환의 근황을 국내에 알리는 일을 했다. 선수 출신답게 글솜씨는 별로 매끄럽지 않지만, 반대로 선수출신답게 현장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의 야구에 대한 시선을 잘 담아낸 칼럼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특히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의 인터뷰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국내에선 귀중한 자료.

이후에는 셀렉원스포츠라는 회사에서 이사로 재직 중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2018년 채태인롯데 자이언츠 계약을 이끌어낸 수완을 발휘해 엠엘비파크에서는 아 그때 4번치던 그 송산이 이런 훌륭한 에이전트가 됐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에는 김진우의 에이전트로 멕시코 리그 팀 입단을 이끌어내는 등 어찌 보면 선수 시절보다도 더 알찬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야구인.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5 KIA 75 .264 33 4 0 3 19 14 2 10 1 27 .324 .368 .692
2006 43 .225 9 2 0 0 8 4 0 2 2 9 .296 .275 .571
2007 76 .245 39 3 0 4 16 13 3 10 1 33 .292 .340 .632
2008 14 .053 1 1 0 0 1 0 0 2 0 3 .143 .105 .248
2009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10
2011
2012 39 .163 13 2 0 0 11 6 0 5 1 25 .221 .188 .408
2013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5시즌)
247 .225 95 12 0 7 55 37 5 29 5 97 .282 .303 .584

4. 여담

  • 2011년 복귀 당시 LG 트윈스로 떠난 이대진의 배번이었던 45번을 잠시 받았다가 2012년 배번을 42번으로 새로 달았다. 2012년 KIA의 45번은 넥센 히어로즈에서 건너온 박준수가 달았다.
  • 야구에 흥미를 잃었던 시절 배우를 꿈꿨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이대호, 추신수와는 부산 수영초등학교 동창. 무릎팍도사 이대호 편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 단국대학교 재학 시절 동기 오승환과 배터리를 이뤘으며, 굉장한 절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절 그에게 밀려 주로 1루수나 지명타자를 봤던 동기가 윤요섭. 이 인연으로 은퇴 이후 오승환의 개인 매니저를 하기도 했으니 친구는 잘 두고 볼 일이다.

5. 관련 문서




[1] SBS ESPN 야구 중계에 나오는 노래이다. 송산 오오오오오 송산 기아의 송산 으로 부른다.[2] 동갑내기 프로야구 선수들이 부산에 많았다. 추신수, 김백만, 정근우(이상 부산고), 이대호, 장민석(이상 경남고), 채태인, 이우민, 차정민(이상 부산상고), 김덕윤, 송산, 김경언(이상 경남상고)[3] 당시에는 해태 타이거즈.[4] 당시 이용규는 다리부상, 장성호 부진, 4번타자였던 이재주 부상, 홍세완 부상, 심재학 노쇠화 등 악재가 제대로 끼었던 상황이었다.[5] 3루수 지석훈의 불안한 송구가 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