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16:17:32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부산·제주
파일:smPNVat.jpg 개성고등학교 파일:Ag2Mzmf.jpg 경남고등학교 파일:nEeEqjt.jpg 부경고등학교 파일:RvEMWdh.jpg 부산고등학교
파일:IPlh5G8.jpg 부산공업고등학교 파일:4eIbhZ8.png 부산정보고등학교 파일:J0dlCj9.jpg 제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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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고등학교 야구부[1]
(Bukyeong High School)
창단 1945년
소속 리그 부산권
감독 김재상[2]
연고구단 롯데 자이언츠
우승 기록[3] 3회
홈페이지 페이스북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2회(1991, 98) - 1회(1990)
청룡기1회(1991) - 1회(1997)
황금사자기 - 1회(1994) 1회(1971)
봉황대기 - - 2회(1987, 94)
협회장기 - - -
1991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충암고등학교 경남상업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
199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경남상업고등학교 공주고등학교
1998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경남상업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

1. 연혁2. 출신 선수

1. 연혁

1945년 창단하였지만, 30년 가량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팀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기지개를 펴는데 비록 서울에서 열리는 메이저 무대에서는 1971년 황금사자기 4강만 기록했지만, 고향인 부산에서 열린 화랑대기에서 최동원경남고를 누르고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고교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메이저 무대에서는 이름은 날리지 못하고, 어쩌다 8강 정도에 드는 정도였지만, 1987년에 또 다시 화랑대기 우승과 봉황대기 4강을 기록하면서 조금씩 경남상고 야구부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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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43년만에 팀에 우승기를 선사한 에이스 곽재성[4]
그리고 1991년, 이른바 전설의 92학번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한국야구 최고의 올스타들이 총 집결하여 격돌하던 그 해에 경남상고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에이스 곽재성, No.2 좌완투수 차명주를 위시한 투수진에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말 단단한 팀을 구축하여 고교 무대의 정상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나 쟁취했다. 그 해 첫 대회인 대통령배에서는 화려한 스타군단이었던 신일고를 일축하고 우승했고, 청룡기에서는 박재홍이 날뛰던 광주일고를 잠재우고 우승하면서 2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1994년 고교 무대 최고의 투수이자,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인 김건덕을 앞세워 봉황대기 4강과 황금사자기 결승에 올라갔지만, 아쉽게도 두 번 모두 덕수상고에게 패하면서 정상을 밟지 못했다. 이 해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고 대회 MVP가 된 김건덕은 고교 무대에서 입은 혹사의 영향으로 대학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가운데[5]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하고 사라지며 혹사로 스러진 비극적인 고교 에이스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이후 김건덕은 춘천고와 모교인 이곳 부경고를 거쳐 부산 사상리틀야구단 감독을 맡다가 2016년 11월 17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40세. 하늘 그라운드로 떠난 ‘비운의 천재’ 김건덕 [6]

그래도 경남상고의 전력은 강해서 1998년 김사율이택근의 배터리를 앞세워 다시 대통령배 결승에 올랐고, 동향의 경남고에게 연장 12회초 7:6으로 뒤졌지만, 극적인 끝내기 2점 홈런[7]이 나오면서 우승을 차지하며 1990년대를 풍미한 자신들의 영광어린 기억을 하나 더 남겼다.

하지만 이 1990년대의 영광어린 시대를 끝으로 경남상고 야구부는 흔들렸다. 학교는 일반계로 전환하여 부경고로 변했지만, 스카우트 경쟁에서 경남-부산 양 학교에 밀리더니, 급기야 김응룡 사장을 위시한 막강한 동문의 파워를 앞세운 개성고에게도 스카우트 싸움에서 패하면서 학교의 기량이 급속도로 무너졌다. 2007년에는 해체 직전까지 갔지만, 간신히 해체는 막았는데, 여전히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2013년 대통령배 8강 진출이 2000년대 들어서 가장 좋은 성적일 정도. 2009년에는 구리인창고김태훈에게 고교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대회 본선 퍼펙트 게임을 당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여기에 2000년대 후반 두 차례 왕중왕전을 평정하며 고교무대의 강호로 떠오른 축구부에 조금 더 지원이 가는 추세라는 것도 야구부 입장에서는 선수수급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대목이다.

2. 출신 선수[8]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권두조 내야수 1982년 원년멤버 중앙대-제일은행-롯데(1982~1983)-삼미/청보(1984~1987)
이문한 투수 1984년 1차지명 동국대-롯데(1984~1988)-삼성(1989~1991)
강성우 포수 1992년 1차지명 단국대-롯데(1992~2000)-SK(2001~2005)
차명주 투수 1996년 1차지명 한양대-롯데(1996~1998)-두산(1999~2004)-한화(2004~2006)
장문석 투수 1997년 2차 1라운드 동아대-LG(1997~2005)-KIA(2006~2009)
채종국 내야수 1998년 2차 3라운드 연세대-현대(1998~2007)-SK(2007)-LG(2008)
김사율 투수 1999년 2차 1라운드 롯데(1999~2014)-kt(2015~2018)
이택근 외야수 1999년 2차 3라운드 고려대-현대(2003~2007)-히어로즈(2008~2009)-LG(2010~2011)-넥센|키움(2012~)
김경언 외야수 2001년 2차 2라운드 해태/KIA(2001~2010)-한화(2010~2017)
송산 포수 2001년 2차 5라운드 단국대-KIA(2005~2013)
백승룡 내야수 2001년 2차 5라운드 경성대-한화(2005~2013)-넥센(2014~2015)
정대훈 투수 2008년 2차 5라운드 동의대-한화(2008~2017)
정우람 투수 2004년 2차 2라운드 SK(2004~2015)-한화(2016~)
전유수[9] 투수 2005년 2차 8라운드 현대(2005~2007)-넥센(2008~2012)-SK(2012~2018)-kt(2019~)
진해수[10] 투수 2005년 2차 7라운드 KIA(2006~2013)-SK(2013~2015)-LG(2015~)
김동준 투수 2012년 9라운드 넥센/키움(2012~)
박진우 투수 2013년 육성선수 건국대-NC(2013~2015)-두산(2016~2017)-NC(2018~)
홍성무 투수 2015년 kt 특별우선지명 동의대-kt(2015~2018)-NC(2019~)
강로한 내야수 2015년 2차 7라운드 경남대-롯데(2015~)
김재유 외야수 2015년 육성선수 동의대-롯데(2015~)
안주형 내야수 2016년 육성선수 영남대-삼성(2016~)
강정현 투수 2019년 2차 4라운드 강릉영동대-원광대-LG(2019~)
하준수 투수 2019년 2차 6라운드 NC(2019~)


[1] 경남상업고등학교 야구부(1954~2003)에서 2004년 일반계 전환과 동시에 교명 변경.[2] 롯데의 84년 우승멤버중 한 사람으로 2004년도까지 경남상고의 감독을 맡아 이끈적도 있었고 중학교 감독을 거쳐 2016년에 다시 교명이 바뀐 모교를 이끌게 되었다.[3] 4대 메이저 + 협회장기[4] 그러나 그는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코치진의 파벌주의와 술집에서의 폭행 건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인터뷰.[5] 한양대 진학 당시 지친 몸을 추스리기 위해 1년 동안은 마운드에 서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나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시 공을 던진 것이 결국 몸에 탈을 일으켰고 이후로는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게 되었다.[6] 어찌된 상황이냐면 사망일인 17일 오전 11시쯤에 가슴통증을 호소해 스스로 구급차에 몸을 실었는데 갑작스레 악화되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7] 홈런을 친 선수는 김호영, 홈런을 허용한 투수는 송승준이었다.[8]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9] 전승윤에서 전유수로 개명.[10] 2009년 말 진민호에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