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12 14:08:49

청보 핀토스

파일:청보핀토스 새버전.png
청보 핀토스
Chungbo Pintos
인수년도 1985년 5월 1일
팀명 변경년도 1985년 6월 29일
매각년도 1987년 10월 31일
모기업 풍한방직
연고지 인천직할시(1985~1987)
홈구장 도원야구장(1985~1987)
구단명 변천사 삼미 슈퍼스타즈(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1988~1995)
현대 유니콘스(1996~2007)
해체
삼청태현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7)

1. 소개2. 역사
2.1. 역대 감독2.2. 구단 매각
3. 주요 선수4. 역대 성적

1. 소개

지금은 사라진 KBO 리그 옛 구단이며 삼청태현의 한 축을 이루던 구단. 연고지는 인천이었다.

2. 역사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신으로 조랑말을 마스코트로, 1985년 후기리그를 시작으로 창단했다. 장명부도 혹사의 후폭풍으로 인해 슬슬 삽질을 시작할 때고 해서 성적은 삼미 때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팀의 상징색은 빨강색이다.

파일:attachment/1986cbchangess-moonchase.jpg
투수교체시에 이 끄는 전차를 타고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불펜마차'도 오래 가지는 못했는데, '핀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두 말 중의 한 마리가 새끼를 낳다가 죽는 바람에 마차 세레모니는 중단됐다고 전해진다.

청보 핀토스의 모회사는 당시 중견 섬유업체였던 풍한방직이었다. 풍한방직이 식품산업에 진출하면서 "청보"라는 상표명을 썼는데, 마침 풍한방직 사장 김정우 씨가 경기고 후배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주 김현철 회장의 어려운 사정을 듣게되어, 후배의 어려움을 돕고,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 시작한 식품사업도 홍보할 겸, 전격적으로 프로야구에 참여한 것이다. 이 당시 삼미 구단의 매각대금은 60억원(당초 언론 보도엔 70억원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60억원 이었다고 한다) 이었지만 현금을 지불하는 대신 삼미의 부채를 청보가 대신 떠안는 형태로 청보는 삼미를 인수하였다. 정작 풍한방적은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실향민 출신이 세운 기업이었다. 상세는 청보식품문서 참조. 다만 야구단 창단 직전에 대전에 있던 공장을 팔았다고 한다. 대전 오류동의 삼성아파트 일대가 예전에는 풍한방적의 공장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청보식품은 갑툭튀에 가까운 과정으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나온 기업이었던 바, 루머가 굉장히 많았다. 군납업체에 선정되어 대량의 라면 납품권을 손에 넣은것을 두고 집권하고 있었던 전두환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의 소유라는 루머가 그럴듯 하게 퍼져 있었다. 당시에는 청보가 와대 물의 줄임말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또는 통일교의 투자라는 루머도 꽤 돌았다. 그러나 군납업체 선정 건은 청보식품 사장이던 장기하[1]가 예비역 장성에 하나회 출신으로 군 쪽엔 파워가 남아있던 양반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청보식품의 로고가 팬더였기 때문에 팀명을 팬더스라고 하려고 했으나, 당시 OB 베어스와 이미지가 중복된다고 판단, 김정우 구단주의 아이디어로 북미산 조랑말이란 의미의 핀토스(Pintos)로 바꾸었다. 팀의 마스코트가 로 정해진 데에는 김정우 구단주의 당시 상황과도 연결된다. 김정우 구단주는 당시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아무튼 모기업인 청보식품존재감이 없는 식품회사였던지라 당시 청보 핀토스는 홈 경기 때마다 자사 제품인 곱배기 라면과 영라면을 관중들에게 나눠줬는데, 성적도 안나오지, 라면은 맛도 없다 보니 뜯지도 않은 라면이 도원야구장 내에 버려진 채로 엄청나게 굴러다녔다고 한다.

당시 야구장에서 청보 라면을 받고 집에서 이를 끓여먹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야구도 못 하는 것들이 라면이라고 잘 만들리가 있나!" 혹은 "라면도 못 만드는 것들이 야구라고 잘 할리가 있나!"라는 욕을 들어먹었다.

덧붙여 청보의 모회사인 풍한방직은 "핀토스"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청바지 브랜드에도 활용했다. 감독 시절의 허구연이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1985년 후기리그 부터 리그에 뛰어든 청보는 그 해 후기 4위로 나름 선전했다. 시즌이 끝난 후 청보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코치진을 비롯한 선수단에 변화를 줬다. 김진영 감독이 물러나고 허구연 해설위원이 새롭게 감독이 되었다. 당시 나이 34세 7개월로 역대 프로야구 최연소 감독 기록이다. 힘을 잃은 장명부는 방출하고 또 다른 재일 동포 억대 팔 김기태를 영입했다. 정구선(2루수) 정성만( 투수) 우경하(외야수)를 임호균, 배경환, 이진우, 양상문(이하 투수), 김진근(내야수)로 받는 대형 트례이드를 성사 시켜 마운드 보강에 힘썼다.

그러나 야구는 기대대로 되지 않는 법. 1986년 개막과 함께 7연패에 빠지는 등 삼미 시절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의 기초공사(?) 덕분에 최하위는 면했다.[2] 그러나 이듬해인 1987년 기어이 최하위로 떨어지며 모기업에 대한 심각한 역 홍보효과를 우려할 수준까지 이르렀다. 허구연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너무 부족한 점과, 자신에겐 감독에게 필요한 단호하고 냉혹한 면모가 부족한 점 등이 컸다고. 이 때 심하게 데인 허구연은 청보 감독 시절을 흑역사로 여기며,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1987~1989년 동안 코치 생활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지도자 자리를 맡지 않고 있다.

또한 OB 베어스의 마지막 대전 홈경기의 상대이기도 했다. (1985년 8월 18일~20일. 당시 OB의 위닝시리즈)

2.1. 역대 감독

  • 김진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말년이던 1985년 전기리그 도중 18연패의 책임을 물어 해임됐다가 팀이 청보로 바뀌면서 다시 돌아와 후기리그에서부터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그러나 1985년 시즌이 끝나면서 또 다시 해임됐다.
  • 허구연: 김진영 감독의 후임으로 1986년 딱 한 시즌 감독을 맡았는데 이 당시 나이가 불과 35세다. 그것도 코치 경험 없이 임명된 것이었다. 그러나 1986년 한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하고 후기리그 중도에 사임. 청보에서의 감독 생활은 그의 야구 인생 중 유일한 감독 경험이다. 15승 2무 40패의 매우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해임되었다. 당시 타 구단들은 허구연의 청보를 상대로 더 기를 쓰고 이기려고 했는데, 이는 '약체팀의 승수 자판기화'라는 점 외에도, "코치 경험도 없는 감독에게 지면 망신"이라는 인식도 한몫했기 때문이라고.[출처]
  • 강태정: 훗날 팀이 태평양 돌핀스로 바뀐 후에도 사령탑 자리를 유지한다. 그러나 태평양이 1988년 시즌 초반 1승 13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자 중도 사임했다.

2.2. 구단 매각

게다가 앞서 서술했듯 청보식품의 라면 사업이 생각보다 확장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 후반 섬유업계의 구조적 불황까지 겹치며 야구단 운영은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결국 1987년 시즌 후 태평양화학(현 아모레 퍼시픽)에 50억원에 구단을 매각하여 태평양 돌핀스로 바뀌었다.[4]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VN19872308-00_01274603.jpg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VN19872130-00_01400122.jpg

1987년 9월 30일 MBC전에서 홈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으며 동년 10월 04일 빙그레와의 대전 원정이 청보 핀토스라는 이름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성적은 667. 뒤에서 121이다. 1986년의 6위 역시 이 해부터 리그에 참가한 신생 제7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최하위를 깔아줬기 때문에 기존 6개 구단 중에서는 꼴찌였다. 쉽게 말해 3년 내내 꼴찌 근처만 헤맨 셈. 더구나 창단→667→인수 라는 점이다. 이 당시 청보의 매각대금은 50억원(청보가 삼미를 인수한 금액보다 10억원이 싸다!) 이었는데 삼미 인수때와 마찬가지로 청보의 부채 50억원을 태평양이 떠안고, 대신 그 부채를 8년 거치-7년 분할상환 한다는 조건으로 구단을 인수하였다. 기가 막히게도 거치기간이 종료된 1996년에 태평양은 현대그룹에 야구단을 매각했는데 당초 청보로부터 인수한 부채 50억원에 8년간 붙은 이자 포함하여 총 70억원을 현대에 넘기고 별도 매각대금 으로 무려 400억원(!)을 받았다. 말하자면 태평양은 8시즌 동안 거의 현금 한푼 안들인 채 인수한 야구단을 운영하며 회계상으로는 적자였겠지만 막대한 홍보효과를 얻었고, 게다가 거액을 받고 구단을 팔았으니 태평양으로선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이후 풍한방직은 풍한산업을 거쳐 풍안방직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김정우 구단주는 홈 경기때 매일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야구광 이었는데, 야구단을 매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하며,[5] 인천 시내의 한 호텔에서 선수단과 송별회 겸 해단식까지 마련해 줬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그의 야구단 운영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이후 김정우 구단주는 폐암 투병 중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2005년 7월 13일 61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대재벌 그룹이 아닌 중견회사의 자회사였던 만큼 야구 역사에서도 가장 적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 있는데, 전신인 삼미가 워낙 임팩트있는 불명예 진기록(한 시즌 최저승률, 최다연패, 특정구단 상대 전패, 장명부의 427이닝 혹사 등)들을 많이 남기는 바람에 삼미는 한국 야구계에서 최악의 팀의 대명사격으로 현재까지 야구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이 형편없는 성적을 냈음에도[6] 삼미와의 인지도는 천지차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청보가 2시즌 반 동안 거둔 성적은 271경기 97승 169패 5무 승률 0.365, 전신인 삼미가 3년 반 동안 거둔 335경기 120승 211패 4무(.365)와 별로 다르지 않다.(...)

3. 주요 선수

4.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85[8]6위/6팀[9] 6위삼미 / 청보110397010.358
19866위/7팀[10] 6위 청보 핀토스 108327420.302
19877위/7팀[11] 7위108416520.389
이후 역사는 태평양 돌핀스


[1] 가수 장기하와는 동명이인[2] 이 당시 소년중앙에서 허구연 감독과 빙그레 배성서감독의 대담을 성사시키는 환상적인 일도 있었다[출처] 스포츠서울의 이종남 전 기자가 쓴 프로야구 비화집 <사람 좋으면 꼴찌>(1992).[4] 풍한방직은 야구단은 매각했지만 야구와 완전히 발을 끊은 것은 아니어서 당시 유일한 야구전문지였던 '주간야구'를 계속 후원하였다. 그러나 기업이 회생 기미를 보이지 않은 데 이어 스포츠신문들의 증면경쟁에 따른 기자스카웃이 이어지면서 1993년 11월말 지원을 끊었고 주간야구는 발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주간야구는 2006년 2월 복간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복간 6주만에 폐간되었다.[5] 바로 1985년 여름에 삼미가 청보로 매각될때도 삼미 김현철 구단주는 아쉬움에 눈물로 밤을 보냈었다. 역사는 반복된셈..[6] 두 팀은 똑같이 3시즌 동안 존재했는데 사실 삼미는 1983년 전,후기 2위의 성적을 내긴 했다. 삼미의 전설적인 투수 장명부의 원맨쇼에 힘입은 기록.[7] 전준우의 장인이다. 본명은 김용윤이었으나, 김용운과 혼돈을 피하기 위해 개명했다.[8] 전기리그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활동.[9] 전기 6위, 후기 6위[10] 전기 6위, 후기 7위[11] 전기 7위, 후기 6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