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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라이벌 시리즈 | |
삼성 라이온즈 | 현대 유니콘스 |
1996년 ~ 2007년 |
종합 전적 총 222경기 | ||
삼성 라이온즈 | 무승부 | 현대 유니콘스 |
94승 | 6무 | 122승 |
1. 개요
과거 KBO 리그에 존재했던 라이벌전.2000년대 당시 잠실시리즈와 함께 KBO에서 손에 꼽히던 라이벌 매치로, 당시에는 오히려 달빛시리즈보다도 이 시리즈가 더 라이벌 매치로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까지는 삼성과의 별다른 접점이 없었으나, 1996년 당시 재계 서열 1위 현대그룹이 태평양을 인수하면서 재계의 영원한 라이벌 삼성과 현대의 맞대결이 프로야구에서 실현되었다. 그 전까지는 삼성과 LG 트윈스가 나름 재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삼성과 현대의 자존심 대결에 비할 수 없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2. 역사
2.1. 시리즈의 시작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자면 재계 순위 1, 2위를 다투던 삼성과 현대는 그룹 간의 라이벌 의식이 실로 굉장했고,[1] 사업 뿐 아니라 스포츠를 통한 대리전에 활용하기도 했다. 1970년대 현대전자 농구단의 아성에 도전한 삼성전자 농구단[2]을 시작으로 1994년에 삼성생명 탁구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대백화점 여자 탁구단[3], 1995년에는 프로축구 원년 팀인 울산 현대가 있던 축구판에 이운재, 박건하, 고종수, 이기형 등 스타급 선수들을 앞세워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같은 해에 현대자동차써비스 배구단이 있던 배구판에 김세진, 신진식 등 슈퍼스타들을 긁어 모아 출범한 삼성화재가 대표적인 사례다.당연히 삼성 라이온즈가 원년부터 참여한 KBO 리그에도 현대는 눈독을 들였으며,[4] 1990년대부터 야구단 창단 추진을 시작했다. 다만 현대의 움직임에 야구인들과 각 구단들의 반대가 이어졌고, 결국 현대그룹은 KBO 리그와는 독자적인 리그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현대 피닉스를 창단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고, 1995년 태평양을 450억 원이라는 거금으로 인수하며 야구판에서 삼성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2.2. 치열했던 라이벌리
모기업들의 경쟁만큼이나 정말 치열했다. 경기뿐 아니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상대팀보다 낫거나 최소한 동등해야 했을 정도. 당시 양팀의 라이벌과 관련된 일화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대가 처음으로 선수단 이동에 버스 3대를 동원하자 삼성도 이에 질세라 선수단 버스를 2대에서 3대로 늘렸다.
- 현대는 인수 첫 해인 1996년 선수들에게 삼성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당일에 보너스를 현금으로 모든 선수들에게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걸었고 당연히 이를 알게 된 삼성도 맞불 작전을 놓게 되었다.
- 1996 시즌 종료 후 삼성의 강기웅은 현대로 가는 트레이드를 거부하며 은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강기웅이 현대의 수준 낮은 선수들과 뛰는 걸 거절했다는 루머들을 언급하며 불을 지피기도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1996년은 현대가 인수 창단 첫 해에 바로 준우승을 한 해이며, 삼성은 창단 이래 최하위인 6위를 찍은 해라는 점이이었다. 그리고 이 6위라는 기록은 장장 20년을 버티다 2016년에 와서야 깨진다.
-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재정난에 시달리던 해태 타이거즈나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도 이 두 팀이다. 어차피 죽어나가는 건 다른 기업과 구단들이지 현대와 삼성에게는 남의 일이었던 것이댜.
- 1997년 현대그룹은 얼마를 들여도 좋으니 드림팀을 만들라는 지시를 구단 측에 내렸고 구단은 이에 따라 쌍방울에 선수 2명과 현금 4억을 내주고 박경완을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삼성은 이에 질세라 해태의 조계현을 현금 4억원에 데려왔다. 이후 현대는 이명수[5]를 데려 왔고, 이명수 영입 다음날에 삼성은 김형석과 정회열을 데려온다.
- 1998년 현대는 쌍방울의 좌완투수 조규제를 박정현과 가내영, 6억원의 현금과 맞바꿔서 데려왔다. 그리고 그 해 현대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에 빡친 삼성 수뇌부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조건 최상급 팀을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지며 한화 이글스에서 노장진을 트레이드로 데려온 후 곽채진, 황두성, 양준혁을 내주면서 현금 18억을 추가해 해태의 임창용을 영입, 또한 OB 베어스의 에이스 김상진을 현금 6억 5천을 주고 데려왔으며, 이어 쌍방울에 이계성, 양용모에 현금 20억까지 얹어준 뒤 김기태와 김현욱을 데려오기에 이른다.
- 1999년 현대는 안병원에 현금 7억을 얹어주며 LG 트윈스로부터 임선동을 데려왔고, 삼성은 포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상훈을 두산 베어스에 내주고 진갑용을 데려오는 선택을 한다.
- 1999 시즌 종료 후 삼성은 프랜차이즈 김상엽, 박충식을 보상 선수로 내주는 선택을 하고 FA 시장에서 김동수와 이강철을 데려왔으며, 현대는 심재학을 트레이드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 예정이던 마일영을 현금 5억 원을 주고 데려왔다. 이 일 이후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가 금지되었다.
이런 엄청난 돈지랄이 이어지자 리그의 전력 불균형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커졌고 야구계 안팎에서 두팀을 향한 쓴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런 돈지랄 레이스에서 현대가 삼성보다는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 현대는 이명수, 심재학, 박종호, 임선동, 마일영을 잘 써먹었고 삼성에서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 갔다가 방출당한 김동수가 현대에서 되살아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삼성은 이름값이나 돈에 비하면 다 먹튀가 되는 바람에 손해를 왕창 보았다. 그나마 건졌던 것은 임창용과 진갑용 정도였고, 나중에 기반이 흔들린 현대에서 박종호,
경기 또한 양팀이 치열했는데,
- 1996년 6월 2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정명원이 삼성의 빈볼에 대한 보복구로 이승엽에게 빈볼을 던지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이어졌고 이것이 패싸움으로 이어지는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7] 정명원이 이승엽에게 빈볼을 놓은 사연…현대와 삼성, 두 재벌의 대리전 이 사건을 보고 받은 현대의 고위 관계자는 그게 현대의 정신이라며 극찬했다는 카더라가 야구판에서 나왔다. 실제로 당시 벌금을 현대 구단에서 대납해주고 금일봉도 받았다고 한다. 정명원 문서 참조.
- 2002년과 2003년에는 양팀의 주포인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왕 경쟁이 치열했다. 홈런 레이스 결과는 각각 1개[8], 3개[9] 차이로 모두 이승엽의 승리로 끝났고, 시즌 MVP도 모두 이승엽이 차지했다. 2002 시즌에는 이승엽이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하면서 단독 홈런왕에 올랐고, 2003 시즌에는 두 선수가 모두 50홈런을 돌파하면서 오 사다하루의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하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홈런 경쟁이 벌어졌다. 다만 세부 스탯에서는 양 선수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3년의 경우 심정수가 OPS에서 이승엽을 크게 앞섰다.[10]
- 두 팀이 라이벌로 있었던 기간 내내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정작 포스트시즌 맞대결은 단 2번 밖에 없다. 그 중 한 번이 바로 9차전까지 치러진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9차전 빗속의 조용준은 KBO 한국시리즈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통쾌했던 장면은 오주원(당시 오재영)의 심판 헤드샷이라고 한다. 참고로 다른 한 번은 양대리그 시절인 2000년에 치러진 플레이오프로, 당시 드림리그 1위 현대가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삼성을 4-0으로 압살했다. 삼청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89년 당시 태평양 돌핀스와 삼성이 사상 최초의 준플레이오프를 치른 바 있으며, 결과는 2-1로 태평양의 승리. 결국 포스트시즌만 놓고 보면 삼성은 현대를 이긴 적이 없다.
2.3. 사라진 시리즈
해태 이후 막강한 왕조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예상과 달리 현대는 2000년 모기업이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계열 분리를 겪은 데다 야구단에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던 정몽헌이 2003년 여름에 투신자살하면서 지원이 점차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2004 시즌에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팀의 기둥들(심정수, 박진만)을 FA로 삼성에 내주는 모습이 나타나며 재계 라이벌 이미지가 퇴색되었다. 당시 야구계와 야빠들은 경악할 정도의 대사건이었는데, 돈이라면 밀리지 않았던 현대가 돈싸움에서 밀렸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맞대결에서 유독 강한 현대
'재계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어색해졌지만, 다른 배경을 빼고 맞대결의 경기내용만 놓고 보면, 두 팀은 여전히 라이벌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삼성 입장에서는 현대와의 만남이 악연일 것이다.
2007년 기사 중.
'재계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어색해졌지만, 다른 배경을 빼고 맞대결의 경기내용만 놓고 보면, 두 팀은 여전히 라이벌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삼성 입장에서는 현대와의 만남이 악연일 것이다.
2007년 기사 중.
그러나 현대는 유독 삼성만 만났다 하면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역대 전적 중 삼성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때는 단 3번, 특히나 현대의 몰락이 가속화되던 2004년 이후로, 현대가 해체하기 전까지 한 번도 상대전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지 못했다.[11] 그래서 올드 삼성팬들 중 삼성 상대로 우위를 찍고 날아다녔던 현대 유니콘스를 악마 취급하고 아예 이 팀 자체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꽤 많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하고 모기업이 아예 없는 형태인 우리 히어로즈로 재창단하면서 KBO 리그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재계 라이벌 시리즈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범현대가 구단이자 사실상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을 잇는 현대자동차그룹의 KIA 타이거즈가 있기에 넓은 범위에서의 재계 라이벌 시리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12]
한편 현대가 수원을 떠난 후 7년 뒤에 수원에서 KBO 리그에 참가하게 된 kt wiz가 2020년대 이후로는 삼성과 라이벌 의식이 생기고 있는데, 2021년 타이 브레이커와 이강철 감독의 삼성과의 악연, 그리고 2024년 박병호 이적으로 팬덤간의 신경전이 발생했다. 단, 이숭용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13] kt는 순전히 연고지만 같은 것이고 이마저도 현대는 재정난 탓에 임시로 계약 위반을 하며 수원에 잠시 있었던 것뿐이다. 현대 유니콘스의 공식적인 후신은 키움 히어로즈인데, 그 쪽은 오히려 삼성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다.
3. 여담
- 프로야구 매니저에도 현대와 삼성 선수들로 덱을 꾸리면 재계 라이벌이라는 이름의 팀컬러를 장착할 수 있다.
- KIA의 경우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구단이기 때문에 넓은 범위에서의 재계 라이벌 시리즈라고도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삼성 vs KIA 역시 상당한 라이벌 관계이다.[14] 2010년대 이후로는 LG 트윈스가 모기업의 자금력으로는 다른 기업들 저리가라 할 수 있는 데다 역시 모기업간의 라이벌 의식이 강하고 한때의 삼성처럼 현질을 엄청한 적도 있어서 삼성과 LG의 대결을 재계 라이벌 시리즈라 보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 현대와 삼성은 지금은 해체되어 존재하지 않는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맞대결 경험이 있는 유이한 구단들이다.
- K리그에서도 재계 라이벌 더비는 존재하는데, 바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울산 HD FC[15]의 맞대결. 또한 공교롭게도 수원 삼성의 연고지 수원시는 과거 현대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지였다.[16]
수원과 울산의 재계 라이벌 더비는 1996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이 가장 유명하다. 1차전 수원의 외국인 공격수 데니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일궈 내자 수원에서 열린 2차전에서 양팀간의 격렬한 난투가 벌어지며 수원에서 3명, 울산에서 2명이 퇴장당하기도 했다. 수원 쪽에서 "야! 짐싸라!"라며 선수단 철수라는 강경 대응까지 내놓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던 이날 경기는 울산이 3:1로 승리를 거두며 최종 우승을 울산이 가져갔다.
- KBL에서도 한때 재계 라이벌 더비가 있었다. 대전 현대 걸리버스와 수원 삼성 썬더스 간의 라이벌 매치. 자세한 내용은 재계 라이벌 더비 참조. 현재는 클래식 더비로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클래식 더비가 생긴 이후로는 창원 LG 세이커스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맞대결을 재계 라이벌 더비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이 매치는 주로 전자 더비라고 불리지만.
- V-리그에서는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넓은 범위에서의 재계 라이벌 매치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여기는 로컬 더비인 충남 더비도 겸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V-클래식 매치 참조.
-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두 팀의 상징인 사자와 유니콘이 왕위를 두고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4. 역대 전적[17][18]
연도 | 삼성 라이온즈 | 현대 유니콘스 | 상대우위 | 포스트시즌 |
1996년 | 5승 13패 | 13승 5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1997년 | 7승 1무 10패 | 10승 1무 7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1998년 | 4승 14패 | 14승 4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1999년 | 10승 8패 | 8승 10패 | 삼성 라이온즈 우위 | |
2000년 | 7승 1무 11패 | 11승 1무 7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플레이오프[19] |
2001년 | 8승 11패 | 11승 8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2002년 | 11승 1무 7패 | 7승 1무 11패 | 삼성 라이온즈 우위 | |
2003년 | 12승 7패 | 7승 12패 | 삼성 라이온즈 우위 | |
2004년 | 7승 2무 10패 | 10승 2무 7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한국시리즈[20] |
2005년 | 8승 1무 9패 | 9승 1무 8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2006년 | 8승 10패 | 10승 8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2007년 | 7승 12패 | 12승 7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
총 전적 | 94승 6무 122패 | 122승 6무 94패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현대의 통산 삼성전 기록은 210승 13무 260패 0.447로 현대가 크게 밀리는 편이나, 현대 시절로만 한정하면 122승 6무 94패 0.563으로 오히려 현대가 크게 앞서고 있다.[21][22] 역대로 봐도 99, 02, 03만 삼성이 우위이고 나머지는 죄다 현대가 우위를 가져갔다.
5. 역대 위닝 시리즈
연도 | 상대전적 | ||
1996년 | 0번 | 6번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1997년 | 2번 | 3번 | |
1998년 | 0번 | 6번 | |
1999년 | 4번 | 2번 | 삼성 라이온즈 우위 |
2000년 | 2번 | 3번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2001년 | 2번 | 3번 | |
2002년 | 3번 | 1번 | 삼성 라이온즈 우위 |
2003년 | 4번 | 2번 | |
2004년 | 1번 | 4번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2005년 | 3번 | 2번 | 삼성 라이온즈 우위 |
2006년 | 3번 | 2번 | |
2007년 | 1번 | 4번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총 전적 | 25번 | 38번 | 현대 유니콘스 우위 |
6. 양 팀을 오갔던 선수ㆍ지도자들
지도자로서 옮긴 경우는 ●표시.참고로 현대의 경우에는 태평양 돌핀스 시절까지도 포함하며, 키움 히어로즈와는 별개의 구단으로 할 것.
강기웅- 현대로의 트레이드가 성사되자 이적을 거부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현대 소속으로 뛴 경기는 없다.- 김동수
- 김시진●
- 김성갑
- 김성근● - 태평양 감독에서 경질된 후 삼성 감독으로 부임.
- 김용국
- 노병오
- 박종호
- 박진만 -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다.
- 심정수
- 오재일 - 현재 양팀에서 모두 뛴 유일한 현역 선수다.
- 이정호
- 이해창 - 타카피의 노래 MBC 청룡은 어디로에 나오는 그 선수 맞다. MBC 청룡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여 삼성을 거쳐 태평양 돌핀스에서 은퇴했다.
- 장원삼
- 정구왕
- 정민태●
- 정현발
- 차화준
- 황두성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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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 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 | 2군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스프링캠프 온나손 아카마 볼파크 | 재활 삼성 트레이닝 센터 | 이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
주요 정보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마스코트 블레오 | 사건 · 사고 | 프랜차이즈 스타 | 삼성 왕조 | 암흑기 (2차) | 통산 기록 일지 | 상대 전적 | |
관련 정보 | 삼적화 | 여름성 | 이마양 | 채최박 | 조원수박차 | JOKKA 라인 | 곤규엽 | 굴비즈 | 삼나쌩 · 삼상바 클럽 | 기롯삼한 | 라떼동맹 | 임김오 | |
라이벌리 | vs KIA 달빛 시리즈 | vs 롯데 클래식 씨리즈 | vs 두산 싸대기 매치 | vs 현대 재계 라이벌 시리즈† | |
영구 결번 | 10 양준혁 | 22 이만수 | 36 이승엽 | |
최종 우승 | 1985 | 2002 | 2005 | 2006 | 2011 | 2012 | 2013 | 2014 | |
현재 시즌 | 삼성 라이온즈/2024년 | |
팬덤 정보 | 응원가(구단 · 선수)|디시인사이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유튜브 LionsTV | 네이버 카페 사자 사랑방 | 팬 게시판 | |
지역 연고 | 경북고 | 대구고 | 상원고 | 포철고 | 경주고 | 강릉고 | 설악고 | 도개고 | 예일메디텍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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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보 | 구단 역사|역대 시즌|실업 현대|연고 이전 1994년 한국시리즈|1996년 한국시리즈|1998년 한국시리즈 (V1)|2000년 한국시리즈 (V2)|2003년 한국시리즈 (V3)|2004년 한국시리즈 (V4) 역대 감독|역대 주장|역대 1차 지명 선수|사건 사고 | 암흑기 | ||||
세부 정보 | 선수단|등번호|유니폼|재계 라이벌 시리즈 | ||||
경기장 | 숭의야구장(1996~1999)|수원종합운동장 야구장(2000~2007)|춘천공설운동장 야구장|원당 야구장(제2 홈구장) |
삼청태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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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
1982년 2월 ~ 1985년 5월 | 1985년 5월 ~ 1987년 10월 | |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 |
1987년 10월 ~ 1995년 9월 | 1995년 9월 ~ 2008년 1월 |
[1] 삼성전자와 후발주자 현대전자 간의 라이벌 의식, 현대가 먼저 선점한 중공업(현대중공업)과 자동차(현대자동차) 시장에도 삼성이 삼성자동차, 삼성중공업을 설립하며 뛰어든 것도 대표적인 예.[2] 일명 재계 라이벌 더비. 1980년대에는 현대를 대표하는 이충희와 삼성을 대표하는 김현준의 슛 대결로 유명하다.[3] 2003년에 해체했다.[4] 알다시피 현대그룹에는 창업주 정주영부터 시작해서 축빠가 많아서 축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실제로는 야구도 축구 못지않게 그 전부터 많이 신경을 써 온 편이라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한일은행 야구단과 제일은행 야구단을 합병해 현대건설 실업야구단을 만들 계획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제일은행 쪽의 반발로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야구와 관련된 시도는 이전부터 쭉 이어져 왔다. 지금도 범현대가 구단이자 정주영 회장 시절의 현대를 실질적으로 계승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KIA 타이거즈가 있다.[5] 당시 OB 베어스 측에 현금을 주고 방출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김인식 당시 OB 감독도 구단 운영 방침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6] 박진만의 전성기는 06~07시즌이고 07은 커리어 하이, 06은 한국시리즈 MVP를 받을 정도로 삼성에서의 활약도 뛰어났었다. 08~10시즌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저하되긴 했었으나 저 2년간의 활약만 보더라도 이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진 못했다는 말은 틀린 얘기다.[7] 사실 이날 경기의 MVP는 훗날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 되는 장정석이었지만 이 벤치 클리어링이 장정석의 결승 대타 만루홈런을 묻어버리면서 장정석의 활약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8] 2002 시즌 이승엽 47홈런, 심정수 46홈런.[9] 2003 시즌 이승엽 56홈런, 심정수 53홈런.[10] 2003 시즌 OPS 심정수 1.198, 이승엽 1.127[11] 이 시기 삼성의 저승사자로 군림했던 선수가 바로 미키 캘러웨이다. 캘러웨이는 2005 ~ 2007년까지 현대에서 뛰면서 삼성전 8승 무패를 기록했다.[12] 다만 이 시리즈의 경우 두 팀의 모기업보다는 두 팀의 연고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삼성-대구 및 영남, KIA-광주 및 호남) 그래서 이 라이벌 매치는 대구와 광주를 잇는 ‘88고속도로= 달빛 시리즈’로 재편되어 활용되고 있다.[13] 이숭용은 선수 시절 내내 이적을 전혀 한 적이 없으며 태평양에서 시작해 선수 생활을 히어로즈에서 마감했다. KT 단장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은퇴하고 나서 연고지만 수원인 다른 팀으로 간 개념에 가깝다.[14] 이 쪽은 달빛 시리즈라는 이름의 라이벌 매치로 자리잡았다.[15] 현대중공업이 모기업.[16] 현대가 주장한 연고지는 서울특별시였지만, 잠실 입성이 무효화 되면서 임시로 수원에 눌러 앉은 케이스이기 때문에 정식 연고지는 아니다. 정식 연고지가 없는 구단이었기에 현대는 인천광역시를 떠난 2000년부터 KBO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이 박탈되었으며, 현대 역시 수원을 진정한 연고지로 생각하지 않아서 수원시 일대 지역 마케팅에 소홀히 했다. 그 덕에 관중수는 늘상 바닥을 찍었고, 또한 K리그 관중 동원 최고의 팀 수원 삼성의 관중수와 비교되면서 야구의 암흑기 때 KBO 리그를 놀리는 주 소재로 사용된 1순위 팀이었다.[17] 시범경기 전적 제외.[18] 현대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1996년부터. 그 이전은 라이벌 매치라는 의미가 부여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19] 현대 4승 한국시리즈 진출[20] 현대 4승 3무 2패 우승[21] 다르게 말하면 태평양이 삼성에게 엄청나게 약했다는 것도 나타낸다. 태평양은 삼성 상대로 89승 7무 166패 0.349로 거의 더블스코어 수준으로 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은 우승은 못해도 항상 상위권에 위치한 팀인 반면 태평양은 매년 최하위권을 맴돌았다.[22] 참고로 현대가 가장 고전했던 팀은 의외로 LG. 어느 팀이든 상대전적 5할은 넘기는 현대인데 LG에게는 상대전적이 1승 밀릴 정도로 전력 차이에 비해 유난히 고전했다. 02까지야 LG도 강팀이었으니 그렇다고 해도 03부터의 LG는 66685를 찍는 약팀이었는데도 연도별로 보면 99, 04, 06은 현대가 크게 우위를 가졌고, 반대로 97, 98, 05는 LG가 크게 우위를 가졌으며 나머지 해들은 많아야 3승 차이일 정도로 팽팽했다. 심지어 그 사기였던 2000년에도 LG 상대로는 10승 9패(이마저도 막판 2경기에서 2연승을 해서 간신히 우세를 기록했다)로 고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