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02 14:32:32

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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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Heavy Industrie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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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국가 <colbgcolor=#ffffff,#2d2f34>[[대한민국|]]
설립일 1974년 8월 5일
업종명 강선 건조업[1]
본사/판교 R&D센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27번길 23 (삼평동)
거제조선소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3로 80 (장평동)
대덕연구센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217 (전민동)
신한내공장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연하해안로 825 (한내리)
오비자재창고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연하해안로 579 (오비리)
휴센터[2]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2로4길 11 (장평동)
대표 정진택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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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사장 정진택
해양사업본부장 · 부사장 김준철
경영지원실장 · 전무 배진한
(사외이사 제외)
기업규모 대기업
시가총액 4조 4,289억 원[3]
그룹 삼성
링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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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4ea2><colcolor=#fff> 매출액 <colbgcolor=#fff,#191919><colcolor=#373a3c,#ddd>6조 6,220억원 (2021년 기준)
영업이익 - 1조 3,120억원 (2021년 기준) #
순이익 - 1조 4,521억원 (2021년 기준) #
상장유무 상장기업
시장
정보
<colbgcolor=#034ea2>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1994년 ~ 현재)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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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010140 (보통주)
편입
지수
코스피
KOSPI200
직원 수 8,967명 (2021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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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1983~1998)4. 지배구조5. 역대 로고6. 역대 임원7. 사건사고8. 여담9. 둘러보기10. 참고/관련 문헌11. 신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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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db.kookje.co.kr/L20060728.22013220038i1.jpg
거제 조선소
삼성 계열 중공업, 조선, 건설업체.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27번길 23 (삼평동)에 있다.

삼성 계열사 중 가장 큰 좀비기업으로 2022년 현재 7년 연속 적자와 19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삼성전자신용자본이 아니었다면 유동성 부족으로 파산 및 회생절차로 가는게 정상인 기업이다.

2. 역사



19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설립하여 1977년 우진조선(진로주조 계열) 및 대성중공업을 인수했다. 1978년 창원공장을 준공하고 1979년 거제조선소 제1도크를 완공했다.

1983년 삼성조선 및 대성중공업 합병 후 한국중공업 중장비 부문도 양수했고, 1984년에는 미국 클라크와 지게차 기술제휴 계약을 맺어 지게차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해양플랜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1985년 선박/해양연구소 설립 후 1987년 중장비/지게차공장 및 중장비유압공장, 1988년 기계 주강공장, 1989년 정밀/표준기계공장, 1990년 중장비 동력전달장치 공장을 잇따라 세웠다. 1992년 세계 최초로 아프라막스급 이중 선체구조 유조선을 건조했다.

1993년 건설업 진출 후 기업공개를 단행했고, 199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 후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제휴로 상용차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하여 1996년 삼성자동차를 세우고 상용차부문을 삼성상용차로 분할시켰다. 다른 한편 본사는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크루즈선 LOI를 체결시켰다.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1998년에 중장비사업부를 매각하였는데, 지게차 사업부문은 미국 클라크, 지게차를 제외한 건설기계 사업부문은 스웨덴의 볼보건설기계로 쪼개져 매각되었다. 이후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국내 건설기계 분야에서 잘 나가고, 클라크는 다시 2004년에 국내 중견기업 영안모자에 인수되어 한국 기업이 되었다. 스크린도어 제작사로 알려진 삼중테크도 사실 이 회사의 주차설비 사업부였는데 1999년 분사하였다.

1999년 공작기계 사업부를 분사시켜 스맥이 나왔고, 발전산업 부문까지 한국중공업에 넘기고 2000년 선박엔진 부문을 떼어 한중과 합자해 HSD엔진을 세웠다. 이후 조선업에 집중하여 2000년 국내 최초로 대형 여객선 및 다목적 해양유전개발선(FDS)을 진수하고 2001년 전기추진 LNG선, 2007년 극지용 드릴쉽 및 쇄빙유조선, 2009년 친환경 LNG 재기화 선박(SRV) 등을 각각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전성기를 펼쳐 대우조선해양과 더불어 세계 조선업 시장을 꽉 잡았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업이 급성장하면서 입지가 많이 위태롭다. 리즈 시절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조선업 수주 물량 1위와 2위를 오갔으나, 2013년 이후 많이 위축되었다. 조선업이 위축되자 건설업 분야의 사업분야를 키워 풍력 발전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풍력발전 사업이 DTD를 시전하여 사업 전망이 많이 어둡다.

전 세계적으로 조선 경기가 불황을 맞으면서 경쟁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과 마찬가지로 조선산업보다는 해양산업 쪽에 비중을 많이 두며 드릴십(Drillship)으로 대박을 터뜨려 잠깐이나마 업계 2위로 치고 나가기도 했다. 다만 2014년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조선 경기가 활성화되고 일반선 쪽에 강한 경쟁력을 가진 대우조선해양과 다시 한번 2, 3위 싸움을 하고 있다.[4]

2010년 테크윈에코를 합병하고 2014년 9월 1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회사 측은 시너지 효과를 노린 모양이지만, 시장에서는 쓸데없이 혹만 붙였다는 듯한 냉소적인 반응만 돌아왔다. 노무라증권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삼성중공업은 불확실한 사업을 추가하게 됐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하나대투증권에서도 "삼성중공업은 실력보다 외형이 과도하다. 합병으로 규모를 늘려도 기업가치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래저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 확실히 합병이 능사는 아니다.[5]

2014년 11월 19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은 주식매수청구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3.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1983~1998)

삼성중공업은 1983년 9월에 건설기계 사업 진출을 목적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귀현동 한국중공업 창원공장(現 두산중공업)내 건설중장비 생산공장[6]을 인수합병하였다. 모태는 현대양행으로 1962년 현대양행을 설립한 한라그룹 창업주 정인영은 1970년대에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에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을 세움과 동시에 경남 창원시 귀현동에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을 세웠고 프랑스 POCLAIN, 미국 American Crane, 이탈리아 FIAT-ALLIS 와 제휴하여 중장비를 면하생산하였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현대양행 창원 종합기계공장을 뺏기게 되어 대우그룹에 넘어가게 되었다. 대우그룹은 이 회사를 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꾸고 경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대우의 부실경영 문제로 제5공화국 정부가 사들여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2000년 모기업은 두산그룹에 매각 후 민영화되어 이듬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파일:삼성중공업 창원2공장.png
삼성중공업 창원2공장(現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7][8][9][10]

파일:Samsung-Poclain 60P .png
해당 사진은 삼성이 생산했던 60P 굴착기, 브레이카로 암석을 뚫는 모습이다.[11]

이후 1985년 3월에 중장비연구소를 세우고, 11월에 일본[12] 코마츠 제작소와 불도저, 휠로더,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 기술 제휴하였다.

1986년 5월 미국 클라크지게차 OEM(주문자 상표 부착) 수출 계약을 맺었다.[13]

7월에 미국 J.I.CASE와 불도저, 휠로더 수출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86년 9월에 중장비 1만호기가 출하되었다.

1987년 일본 코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로 모터 그레이더[14] SG15를 생산, 시판에 들어갔다.
파일:삼성중공업 SG15.png[15]

1987년 7월에 삼성은 굴삭기 고유모델 MX 시리즈를 개발하였다. 이후 MX10, MX8, MX6W 등의 굴삭기 모델들을 개발하여 국내 건설현장에 진츨, 해외시장에도 수출하였다.[16]
파일:삼성중공업 MX8W.png
MX8W 타이어 굴착기
파일:삼성중공업 MX6W.png
MX6W 타이어 굴착기(사진 속 덤프트럭은 현대자동차 91A 15t 덤프트럭이다.)
파일:삼성중공업 MX8.png
MX8 크롤러타입 굴착기

같은 해 11월에 유압공장을 준공하였고, 1989년 4월에 다목적 중형 타이어 굴삭기 MX8W를 개발, 본격 시판에 들어갔다. 뒤이어 일본 타다노(TADANO)와 기술제휴로 25톤 유압크레인 SC25H, 50톤 유압크레인 SC50H를 개발, 시판에 들어갔다.[17][18][19]

파일:삼성중공업 SC25H.png
[20]
파일:삼성중공업 SC50H.png
[21]
파일:Samsung SC25H-2 1993.png
[22]
파일:삼성중공업 SC50H-2 Hydraulic Crane.png
[23]
파일:삼성중공업 SC25H-2.png
[24]
파일:삼성중공업 SC50H-2.png

1989년 11월 공업진흥청[25]으로부터 89 우수품질관리업체상 수상을 받았다.

1990년 5월 신 생산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1990년 8월에 굴삭기 고유 모델 MX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한 MX-2시리즈를 개발하였다.[26]

1990년 12월에 동력전달 부품공장을 준공했고, 1991년 5월에 휠로더 고유 모델인 LX 시리즈[27][28]를, 6월에 불도저 고유 모델 DX 시리즈를 각각 개발하였다.
1992년 5월에 소형굴삭기 고유 모델을 개발했다.[29]

파일:삼성중공업 세계중장비 선정 트로피.png
1992년 '컨스트럭션 이큅먼트'지가 삼성중공업 SE280LC 굴착기를 'TOP 100 NEW PRODUCTS'로 선정했다.

1993년에 삼성중공업의 굴삭기, 휠로더, 불도저 등 3개 기종 10개의 모델이 미국 중장비전문잡지 '컨스트럭션 이큅먼트'지에 의해 세계 1백대 우수중장비로 선정되었는데 굴삭기 MX 시리즈 6개 모델, 휠로더 LX 시리즈 3개 모델, 불도저 DX25 1개 모델 등 총 3개 기종 10개의 모델로 삼성중공업이 미국 시장에 수출한 건설기계 전 기종들이다.[30]

1994년 초대형굴삭기 MX452LC를 개발하였다.[31]파일:MX452LC.png

파일:Samsung SM510 DUMP, CARGO, MIXER 1994.png
같은 해 1994년 4월에 일본 닛산디젤(現 UD트럭스)과 기술제휴로 빅 썸(Big Thumb)을 들여와 한국 시장에 걸맞게 약간 수정한 삼성 SM트럭(덤프, 카고, 믹서)을 시판하였다. 트럭 엔진은 닛산디젤 UD 신형 RF8엔진.[32][33]

1995년에 삼성 SM트럭을 하부주행체로 기반한 콘크리트 펌프카를 자체 개발 및 시판에 들어갔다.[34][35][36]파일:PX281S.png

같은 해에 휠로더 고유 모델 LX-2 시리즈를 개발했다.[37]

이후 유럽 시장 진출[38]과 유럽의 중장비 생산 및 공급기지를 목적으로 영국 노스요크셔 플랙스비에 중장비 생산공장을 준공하였다.[39] 이 영국 중장비 공장에서 4개 모델의 굴삭기 생산을 시작으로 1996년에 6개 모델 650대 생산, 1998년 1200대로 확대, 2000년에 9개 모델, 2천대를 생산해 총 1200억원의 매출을 계획했으나, 1997년 영국 파운드화의 강세와 무리한 부품 현지화 비율로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영국 중장비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 철수하게 되었다.

1996년, 험지용 크레인(모델명 CX300R)을 개발, 시판했다.[40] 같은 해 8월 상용차사업부가 삼성상용차로 분사했다. 파일:CX300R.png
1997년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목적으로 동유럽 최대 중장비업체 체코 유넥스사와 전략 제휴해 굴삭기, 지게차 등 건설중장비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 계약을 체결했다.

1997년 2월에 휠로더 시리즈 LX-3[41]을 개발했고, 동년 3월에 굴삭기 MX-3 시리즈를 개발했다.[42]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1998년에 스웨덴 볼보트럭(VOLVO)이 경상남도 창원의 삼성중공업 중장비 생산 부문을 인수하여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설립되었다. 이후 삼성 로고를 단 굴삭기 및 중장비를 생산하다 볼보 브랜드를 달고 볼보굴삭기를 생산, 판매한다.

1998년, 지게차 부문이 미국 클라크사에 인수합병되어 회사명이 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로 변경되었다.[43] 2003년에는 미국 본사가 영안모자에 팔리자 한국법인도 같이 팔렸다. 현재 클라크 지게차의 대주주는 한국의 영안모자다.[44]

4. 지배구조

2019년 7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전자 15.9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국민연금공단 8.0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자사주 4.1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우리사주조합 3.4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생명 3.0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전기 2.1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SDI 0.3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제일기획 0.1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성물산 0.12%

5. 역대 로고

파일:삼성중공업 신문광고(1991).png
파일:삼성중공업 로고.svg
<rowcolor=#ffffff> 1991 ~ 1993[45] 1993 ~ 현재

6. 역대 임원

  • 회장
    • 조우동 (1987 ~ 1992)
  • 대표이사 회장
    • 조우동 (1978 ~ 1984)
    • 최관식 (1990 ~ 1992)
  • 부회장
    • 김징완 (2010)
  • 대표이사 부회장
    • 최관식 (1989 ~ 1990)
    • 경주현 (1992 ~ 1995)
    • 이대원 (1995 ~ 1997)
    • 김징완 (2009 ~ 2010)
  • 대표이사 사장
    • 이은택 (1974 ~ 1983)
    • 안병휘 (1978 ~ 1980/1982 ~ 1983)
    • 최관식 (1977 ~ 1979/1980 ~ 1983/1985 ~ 1989)
    • 김영진 (1979 ~ 1980)
    • 경주현 (1984 ~ 1985)
    • 장경환 (1988 ~ 1989)
    • 김연수 (1990 ~ 1993)
    • 이해규 (1994 ~ 2001)
    • 유상부 (1995 ~ 1996)
    • 권상문 (2001 ~ 2002)
    • 김징완 (2001 ~ 2009)
    • 노인식 (2009 ~ 2012)
    • 박대영 (2013 ~ 2017)
    • 남준우 (2018 ~ 2020)
    • 정진택 (2021 ~ 현재)
  • 대표이사 부사장
    • 안병휘 (1980 ~ 1982)
    • 장경환 (1986 ~ 1988)
    • 김연수 (1989 ~ 1990)
    • 이용길 (1989 ~ 1990)
    • 이해규 (1990 ~ 1994)
    • 안재학 (1991 ~ 1992)
    • 최훈 (1993)
    • 김무 (1994 ~ 1996)
    • 김순택 (1997)
    • 장효림 (1997)
    • 안복현 (1998)
    • 한행수 (1998 ~ 1999)
    • 김징완 (1999 ~ 2001)
    • 권상문 (2000 ~ 2001)
  • 대표이사 전무
    • 안병휘 (1977 ~ 1978)
    • 김징완 (1998 ~ 1999)

7. 사건사고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소속 예인선이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 호와 충돌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가 났다.[46] 자세한 내용은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참고.

2017년 5월 1일 거제조선소 야드 내 7안벽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하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일이 터진 이유가 가관인데, 본래 크레인을 하나만 운용해야 할 상황에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두 기를 운용하다 생긴 일이기 때문.[47] 또한 근무자들 일부가 쉬는 시간이라 큰 인명피해가 안 날 수도 있었지만 휴식시간이 너무 짧아 현장 내에 있다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근로자의 날에, 그것도 파견직 노동자들이 근로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생긴 사고라는 점이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2017년 6월 17일 본사 직원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7월 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다뤘으며[48] 방송 내에는 어떤 회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방송을 보다보면 한국 사람인 이상 어느 회사인지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 명문대를 졸업한, 나름대로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모욕을 받았으며 초과근무는 예사로 했다고 한다. 특히 생산관련 부서는 선박의 인도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존재하는데 대중교통이 없는 새벽에 퇴근하여 택시로 귀가하더라도 교통비 청구를 할 수 없다.[49] 사측은 필사적으로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변명했다.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만도 못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

2017년 12월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주가가 28%나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7년 4분기와 2018년 한 해 동안 7,000억 원가량의 적자가 날 것이라 공시했다. 이에 열 받은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50] 같은 시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며 차츰 회복세를 보이던 조선업계 전반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2018년 2월 삼성중공업 조선소장이 교체되면서 불합리한 인사 파문이 있었다고 한다.

2020년 4월 대표이사 남준우의 아들(2014년 입사)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전환배치된 게 <뉴시스>에 단독 보도된 후 금수저 발령이라는 빈축을 샀으며, 임직원들 사기는 당연히 감소했다. 블라인드 앱에서는 "난파선에서 아들 구해준 거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 상황이며[51] 결국 논란이 불거지자 남준우 아들은 퇴사했다고 한다.

2020년 6월 우선주 주가가 갑자기 10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상한가가 15%에서 30%로 바뀐 뒤 가장 많은 연속 상한가를 친 사례로 이로 인해 5만원대의 주가가 무려 약 80만원까지 올랐다.

8. 여담

조선해양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는 조선업계에서도 높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조선공학을 공부하다보면 여러가지 특허 기술들이 많은데 대부분 삼성인 실정.

하지만 조선해양 빅3 회사 모두 기술력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며,[52] 얼마나 더 원가를 절감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FPSO 건조에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빅3는 모두 할 수 있다(실제로 건조 실적은 삼성중공업보다 타 회사가 더 많다). 그래서 삼성중공업 역시 조선업 위기를 함께 겪는다.

특이하게도 해군에서 운용하는 구축함을 비롯한 함정 건조에는 참여한 적이 없으며 그룹 차원에서 무기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고자 계열사 삼성탈레스와 삼성테크윈을 한화에 매각한 점으로 보아 앞으로도 군함 건조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사업에서 해양플랜트의 비중이 조선 3사 중에 가장 높다. 방산은 경기변동을 많이 타는 조선업에서 유일하게 업황을 타지 않는 선종이다. 반대로 해양플랜트는 상선보다도 업황을 많이 탄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구성 때문에 삼성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보다 업황 사이클을 많이 탄다.

삼성의 오랜 무노조 경영 때문인지 본사의 노동자 대표단체로 노동조합 대신 '노동자협의회(구 사우협의회)'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협의회는 실질적 노조의 기능이 약하여 1987년 이후 일반 노조 설립의 시도가 다수 있었으나 사측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였다.# 다만 2021년에야 사무직 노동조합이 생겼다.

럭비단을 운영했으나 조선업 불황을 이유로 2014년을 끝으로 해체했다. 소속 선수들은 대부분 신생팀 현대글로비스로 이적했다.

아파트 브랜드로 삼성 쉐르빌과 라폴리움이 있었으나 2013년을 끝으로 아파트에서 손을 땠다.

주식 시장에서는 대기업 계열 주식 중 최악으로 평가되며 이름값 못하기로 유명하다. 장기투자할수록 손해가 난다고. 감자와 유증의 연속

1990년대 초반에 전기차 개발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테스트카들은 전국 곳곳에 버려졌다. 자세한건 삼성 SEV 프로젝트 문서 참조.

9. 둘러보기

파일:현대중공업 로고.svg 파일:대우조선해양 CI.svg 파일:삼성중공업 로고.svg

10. 참고/관련 문헌

11. 신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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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중공업 신문광고-2.png


[1] 중장비제조업은 외환위기 당시 볼보에 매각.[2] 사외기숙사, 장학교실[3] 2021년 1월 13일 기준[4] 이렇게 된 이유는 상당히 간단하다. 중국이 자국 조선인력에 대한 임금인상을 연 10%로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는데 이 때문에 중국이 자랑하는 저가수주를 더이상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5] 여담으로 같은 플랜트 업계일지라도 실무자 레벨에서는 육상플랜트에서는 해상플랜트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은 편이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공법 자체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실무자 선에서는 경력이 도움도 안 된다.[6] 現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7] 이 공장 말고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공단로에 삼성중공업 제1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방산장비[53] 및 선박엔진, 기계설비 등을 생산하던 곳이다. 현재는 HSD엔진 창원공장, 한화디펜스 창원사업장으로 변경되었다.[8] 합병 이전에 한국중공업에서 생산한 굴삭기, 휠로더, 크레인 모델에 KHIC-POCLAIN(굴삭기), KHIC-AMERICAN(크레인), KHIC-FIAT ALLIS(휠로더, 모터 그레이더) 로고가 부착되었다.[9] 합병 이후 SAMSUNG-POCLAIN(굴삭기), SAMSUNG-AMERICAN(크레인) 로고로 바꾸고 나서 건설중장비를 생산했다.[10] 현대양행 창원종합기계공장(現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은 한라그룹 시절 완공되었으며 모기업은 각 사업부가 분할 매각되었고 메인이던 발전설비와 선박엔진부문이 최종적으로 두산에 매각되었다. 이후 선박엔진은 두산엔진으로 분사 후 사모펀드에 매각해 HSD엔진이 되었다.[11] 프랑스의 POCLAIN사의 장비를 삼성중공업이 조립 생산한 것이다.[12] 동시에 일본 사카이(SAKAI)사와 기술제휴로 도로 장비를 생산, 판매했다. 타이어 롤러부터 로드롤러까지. 기술제휴 계약이 종료되면서 삼성이 SAKAI 도로 장비를 수입, 판매했다.[13] 1990년대 초반 클라크와 결별하면서 삼성 고유의 지게차 모델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FX 시리즈가 탄생, 수출명은 'SF(Samsung Forklift) Series'[14] 땅을 고르는 도로장비[15] 삼성이 한국중공업 창원 중장비공장을 인수하기 이전에는 한국중공업에서는 현대양행부터 FIAT-ALLIS사와 기술제휴해 FG85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했다. 삼성이 인수 이후에는 후속 모델 FG85A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했다.[16] 내수 모델은 MX 시리즈고 해외 수출명은 SE 시리즈다. SE의 약자는 Samsung Excavator다.[17] 하부캐리어(트럭섀시)는 닛산디젤.[18] 삼성 인수 이전에는 한국중공업이 미국 GROVE 사와 기술제휴해 유압크레인을 만든 적도 있다.[19] 이외에도 미국 AMERICAN사와 기술제휴로 앵글크레인을 제작, 판매한 전력도 있다.[20] 초기형 모델, 상부는 타다노 TG250E를 기반으로 한다. 하부 캐리어는 닛산디젤, 엔진은 닛산디젤 PE6 모델.[21] 역시 초기형 모델로 상부는 타다노 TG500E를 기반으로 한다. 하부 캐리어도 동일하게 닛산디젤, 엔진은 닛산디젤 RE8 모델[22] 중기형 모델, 삼성 로고와 데칼이 새로 부착되었으며, 엔진은 닛산디젤 PE6. 엔진출력은 230ps, 2300rpm 6기통 수랭식이다.[23] 닛산디젤 RE8 디젤 엔진을 장착.출력은 315ps, 2300rpm, 8기통에 수랭식이다.[24] 후기형 모델, 하부캐리어 라디에이터 그릴에 NISSAN DIESEL 대신 SAMSUNG이 새겨졌다.[25] 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26] 이 굴삭기 모델은 새로운 스타일로 설계되어 기존 MX 시리즈에 비해 성능이 우수한 장점이 있다. 세계 최초 라운드 스타일로 코스믹 타입 캡으로 설계되었는데 작업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전면 대형 라운드 창문은 상하 슬라이딩 방식으로 완전 개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전면 상부까지도 유리창으로 설계해 상부 작업 시야가 획기적으로 넓다는 장점도 있다. 굴삭기 캡 디자인을 에어로 다이나믹하게 설계해서 그런지 헬리콥터와 비슷하다고 해서 헬기 운전탑이라고들 한다. 운전석(시트)은 당시 영국 보스트롬사의 최고급 운전석을 채택하였다고 한다. 거기에 삼성이 개발한 CA-MAX 시스템[54]을 도입해 전 굴삭기 기종마다 CA-MAX 시스템이 달렸다.파일:삼성굴삭기 캐빈.png[27] 코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해 생산.[28] LX15, LX18, LX25, LX30.[29] MX3W, MX3A[30] 수출명은 SE SERIES(굴삭기), SL SERIES(휠로더), SD SERIES(불도저)[31] 해당 모델은 작업용량 45톤, 해외 수출명은 SE450LC.[32] 1990년 6월에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7월에 삼성중공업 대형트럭 기술도입 정부인가를 취득, 같은 해 중장비 산하조직 상용차사업부를 발족했다. 1992년 10월에 삼성중공업과 일본 닛산디젤 실행각서가 조인되어 1993년 시험생산, 성능 내구성 시험을 영국 밀부룩에서 치뤄진다. 그리고 1993년 8월에 창원 삼성중공업 중장비공장 내에 삼성트럭 조립라인이 준공되어 시제차량 1호차가 생산완료 되어 테스트 착수, 1994년 4월에 양산 및 수주, 1994년 5월에 15톤 덤프트럭과 믹서트럭을 출시했다.[33] 당시 국내 최대 배기량을 자랑하는 16,991cc였고, 내구성이 뛰어나 작업현장에서 호평이 자자했다. 트랜스미션의 경우, TPS 시스템을 도입해서 고급 승용차처럼 기어 변속이 부드러웠다는 장점이 있다.[34] PX281S, PX321S, PX361S.[35] 이전 콘크리트 펌프카 하부차체는 아시아자동차(現 기아자동차)의 AM트럭이었다.[36] 기아 AM트럭 후속 모델 기아 그랜토에도 삼성 콘크리트 펌프(붐, 배관, 호퍼) 장비가 탑재되었다. 모델명은 PX122c-1,PX422S, PX432S, PX472S.[37] LX232, LX282, LX352.[38] 1990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중장비 현지법인을 설립.[39] 이곳은 영국의 건설회사 테일러 우드로우사의 철구조물 공장이었는데 삼성중공업이 이곳을 사들여 중장비 생산공장으로 개조했다.[40] 그러나 이 장비는 희귀장비가 되었다. 중고 사이트에 간간히 보일 정도.[41] LX173, LX233, LX283, LX373, LX473[42] '인간을 닮은 굴삭기 탄생'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신문 광고가 발행되었다. 출시 당시 해당 모델은 MX225LS, MX255LS. 파일:삼성굴삭기 신문광고.png[43] 변경 이후에도 삼성 로고를 단 지게차를 생산하다 삼성과 관계 청산 이후 클라크 자체 브랜드로 지게차를 생산한다.[44] 영안모자는 버스제조사 자일대우버스도 보유한다.[45] 1991년 4월부터 제정되었으며 흰색 별을 중심으로 회색 줄무늬(첨단 신소재를 의미)와 청색(기존 소재를 의미)의 평행사변형을 겹친 형식으로 신소재분야에서의 도약 의지를 담았다. 1993년 삼성그룹이 그룹 전체 CI를 통일하면서 단 2년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했다.[46] 공교롭게도 KBO 리그에서 삼성 라이온즈싸대기 동맹을 맺은 두산 베어스의 모기업 두산그룹의 계열사 두산전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하천 오염사고를 저질렀다.[47] 다만, 이 이전에도 크고 작은 크레인 관련 사고가 현장 내 잦았으며 크레인 운전수 보직의 특수성(1인 탑승으로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구조) 때문에 근무태만이 극에 달하던 시기여서 예정된 사고라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음주가 깨지 않은 상태로 크레인 운전을 한 문제가 화두가 되어 출근시 탑승전 음주 측정 의무화를 도입했다.[48]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유족 측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 20곳에 보도를 부탁했으나 보도가 안 됐고, 그알 보도 뒤에야 파장이 커졌다.[49] 회사 내규에 교통비 청구 규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청구하면 욕먹고 반려된다.[50] 이 시기가 2016년에 유상증자 때 우리사주로 강제 참여한 임직원들이 우리사주를 팔 수 있는 때였는데 보호예수 풀린지 1주일 만에 이런 일이 터져 임직원들마저 빅엿을 먹었다. 특히 이때 대형 해양공사 프로젝트 마무리하는 임직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바빠서 못 팔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참고로 이때 금액은 복구하지 못했다. 2020년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전세계적 석유수요감소 및 사우디와 이란의 미국 셰일가스 죽이기를 위한 석유증산으로 유가가 대폭 떨어지면서 2016년 당시 구매 가격의 반타작이 나버렸다.[51] 삼성중공업은 몇 년째 적자 중인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흑자를 봐 상황이 천지차이다.[52] 통상적으로 LNG 운반선은 대우조선, 컨테이너선은 현대, 탱커나 플랜트는 삼성이라고 하지만 아주 큰 차이는 없다. 특정 조선소와의 유대관계가 깊은 소수의 선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주들은 자기가 원하는 시점까지 저렴한 가격에 납품이 가능한 조선사를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