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9 04:20:58

이종열

파일:SBS로고.png 야구 중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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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 이순철 이승엽 안경현 이종열 최원호 김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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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첨자1: 단기 연수로 인한 잠정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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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9시즌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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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회 위원
이종열(李鍾烈 / Jong-yeul Lee)
생년월일 1973년 1월 28일 ([age(1973-01-28)]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길동초-장충중-장충고
포지션 내야수, 외야수[1]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91년 고졸연고 자유계약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1~2009)
지도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비코치 (2019~ )
해설위원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
응원가 훌랄라 폴카[2]링크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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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1986 1987 1988~1993
이종도 이해창 김재박 이광은 ?
1994~1997 1998 1999 2000 2001
노찬엽 김동수 송유석 김선진 양준혁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용빈
유지현(서용빈의 군입대)
이상훈 이병규 조인성 서용빈
2007~2008 2009 2010~2011 2012~2013 2014~2015
이종열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2016~2017 2018 2019~
류제국 박용택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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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선수 경럭3. 지도자 경력4. 해설자 경력5. 논란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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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 단 한 명 프랜차이즈 선수가 있다면 이종열이다."[3]
이상훈
LG 트윈스의 순정남이자 영원한 프랜차이즈

LG 트윈스 소속의 내야수이자 코치. 現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선수 시절에는 특출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LG의 소금 같았던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LG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산 증인이기에 더더욱. 시즌 초반에는 팀 내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밀려 보이지 않다가 후반으로 가면 2군이나 부상 등으로 사라진 그 스타플레이어들을 대신해 내야 어딘가에서 꼭 활약을 보였다는 면에서 LG 내야의 단추 구멍들을 막아준 선수였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19년간 오로지 LG에서만 뛰다가 은퇴했는데, 장기간 한 팀에서만 하는 선수 생활은 21년의 송진우 선수에 이어 2번째이고, 야수로는 으뜸이다.[4]

대표적인 별명은 단추. 눈이 단추구멍만큼 작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또한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맡아가며 묵묵히 활약하는 모습으로 아래에서도 소개될 변신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8년 10월부터 유튜브DC 베이스볼이라는 채널을 개설해서 야구 관련 영상들을 올리고 있다. DC는 현역시절의 별명이었던 단추로부터 나온 것이다.

2. 선수 경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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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장충고를 졸업하고 바로 LG에 입단했다. 당시로서는 고졸 선수가 대학이 아닌 프로로 직행하는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하필 이종열과 함께 LG에 입단한 선수가 동대문상고의 우승 주역이자 당시 청소년대표팀 주장이었던 이우수였기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입단 초엔 존재감없는 그저 그런 내야수였지만, 그나마 수비에 강점을 보였기 때문에 백업 2루수, 3루수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다가 주전 3루수였던 윤찬의 부진을 틈타 본격적인 레귤러 멤버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입단 당시 이종열보다 훨씬 주목을 받았던 이우수가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본 포지션인 유격수를 포기하고 2, 3루 백업을 서며 잡초처럼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던 이종열과는 달리, 프로에 와서도 전문 유격수로 길러지던 이우수는 나중에 데뷔한 유지현의 맹활약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잃게 된다.[5]

문제는 타격이었는데, 주전 3루수가 되고 나서도 2할 5푼도 힘든 수준이었다. 게다가 94년에는 한대화까지 입단하며 주전에서 밀려났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 이종열은 1995년, 김용달 코치의 조언에 따라 스위치 히터로 변신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그가 스위치 히터를 선택한 건 단순히 타격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2번 타자로서 작전수행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우직하게 내야 전 포지션을 넘나들며 붙은 별명이 '변신 괴물'.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로 다양한 활용도를 자랑하게 된 그에게 썩 어울리는 별명이다. LG 암흑기(...) 시절에는 외야수를 본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투수, 포수를 제외한 7포지션 플레이어 타이틀 획득!

99년엔 타율 0.291, 9홈런 55타점으로 타격도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2002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영광도 누린다. 이후 감독추천으로 2005, 2007년에 올스타에 뽑힌다.

99년 이후 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팬들 사이에서 철밥통이라고 까이기도 했는데[6], 2007시즌에 타율 0.285, 4홈런 53타점의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8월 29일에 한 이닝에 양타석에서 안타를 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이종열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2008시즌에 타율 0.232의 부진한 성적을 내고, 2009시즌엔 베테랑 박종호를 비롯해 박용근, 김태완 등에게 밀리면서 거의 2군에만 머무르게 된다. 결국 2009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LG 육성군 코치로 지도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47, 1175안타, 52홈런, 131도루. 비록 화려한 기록은 아니지만 그가 2018시즌 종료 시점에서 역대 LG 야수들 중 누적 WAR 12.65로 17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그의 가치를 증명한다. 커리어의 상당 부분을 수비 백업 전문으로 뛰면서 누적된 공헌도가 이정도까지 쌓인 사례는 흔치 않다. [7]

2011년경, LG에 서동욱이 등장해 이종열의 뒤를 잇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8] 이종열이 내야의 어느 포지션을 봐도 평균 이상의 수비를 해줬던 점에 비해 서동욱은 수비고 타격이고 유틸리티 플레이어라고 보기엔 여러 모로 어중간했다. 결국 서동욱은 이후 넥센을 거쳐 기아로 트레이드 된 후에야 리그 상위권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거듭나게 된다.

3. 지도자 경력

2011시즌 후 김기태로 감독이 바뀌면서 김영직, 최계훈, 허문회 등의 코치들과 같이 해임되고 2년간 미국 대학야구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되었다. 미국에서 리틀야구 코치부터 시작.

2013년부터 미국의 고교 야구 팀에서 코치를 맡게 되었다. 오하이오 주 블링그린 하이스쿨 야구 팀 타격코치 이종열

2014년 11월에 자신의 페이스북 메인사진을 LG 트윈스에서 뛰던 현역시절 사진으로 바꿔서 팬들이 코치 복귀하는거 아니냐고 이래저래 설왕설래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디시 쥐갤엠팍에서 코치 복귀설이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라 복귀한다면 제발 최태원 좀 1루나 다른 코치로 보내고 3루 코치 맡아달라고 할 정도.

4. 해설자 경력

그런데 결국 두 자리나 공석이 생긴 SBS Sports 해설을 맡게 되었다. 주로 현장 중계때는 최원호와 파트너를 이뤄 3인 중계로 참여하고 있고 간간히 단독으로 해설하는 경우도 있다. 이순철과 함께 해설하며 중계를 한 적도 있는데, 참고로 이종열-최원호는 이순철이 LG 감독일때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때 3명이 한솥밥을 먹었다는 뜻. 감동니뮤와 선수생활도 해설도 함께하는 뗄수 없는 인연의 끈[9]

해설 도중 최원호와 싸우는 듯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팬들은 재밌다고 하는 쪽도 있고 무섭다고 하는 쪽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전혀 연출이나 짜고 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퍼센트 본인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언쟁이라고 한다. 정말 두 사람이 야구를 보는 눈과 분석 성향이 다른 부분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둘 다 선수 출신치고도 이론 공부를 많이 하고 해설자가 된 경우라 더더욱 깊이 있는 충돌이 많다. 심지어 두 사람은 LG 트윈스 시절 무려 10년이나 같은 팀에서 함께한 1년 차이[10] 팀 선후배 사이임에도 친하기는 커녕 오히려 껄끄러운 느낌이다.[11] 이종열의 말로는 선수시절 자신이 주장일때도 선수 모임때 주장으로써 본인이 이야기하는 상황이 올때마다 최원호의 (항의성) 질문이 많았다고 하고, 게다가 집에 가서 부인에게도 최원호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소연을 하다가 "내가 최원호만 설득할 수 있으면 이 세상 사람 다 설득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해설자 하기 전 선수시절에도 이미 이런 사이였다는 것 이는 마치 진보와 보수처럼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관계인 듯. 20년을 이어지는 앙숙 대신 최대한 논리 싸움으로만 가려고 하고 감정 싸움이나 주먹(?) 싸움으로는 안 가려고 노력한다고 한다.[12]

사실 LG에서만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LG에서 코치로 부르지 않는 이유가 이종열이 구단 측과 좋지 않게 헤어져서라는 설도 있긴 하다.

2015년에는 프리미어12 전력분석관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대만에서 열렸던 조별예선 잔여경기와 8강전까지 최원호 해설위원과 함께 SBS 중계를 맡았다.

이후 사실상 국제대회 전력분석관 팀장으로 2018 아시안게임까지 현재 맡고 있다.

간혹 중계 버릇이 있는데 "경기전 제가 만난.." / "제가 중계할때.." 이 멘트는 항상 한다.

2018년 시즌 시작 전 최원호와 함께 한화 이글스를 4강권 바깥으로 분류했는데 전반기를 한화가 2위로 마감하면서 초등학생 한화팬에게 스브스뉴스 주최로 청문회를 당하기도 했다(...). #

5. 논란

2015년 5월 1일 롯데 VS 한화 전 SBS Sports 중계 해설을 하는 동안 롯데의 타자들이 아웃을 당하거나 한화 타자들의 세이프 등의 상황 즉, 롯데에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지속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등 상당한 편파 해설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에 등재되었다.

당시 중계 방송을 본 KBO 팬들은 이종열 해설에 대해 "편파왕 이종열", "이졸렬" 등의 비난과 항의를 했고 결국 캐스터 정우영이 중계방송을 마치며 "이종열 해설이 탄식을 내뱉는 건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이번 경기의 중요도 때문에 부각되는 것 같다며 양해 바란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그런데 이종열을 나름 커버쳐준다고 한 이 멘트[13]가 이종열이 그전부터 편파해설을 해왔는 데 하필 오늘 부각되어서 사과하는 뉘앙스라 오히려 역효과만 낳고 말았다. 해설 입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편파해설 논란[14](...)

이 후 위키백과가 "역대 최고의 편파해설 이종열" 등으로 반달[15]되는 등 또다른 곤욕을 치뤘다.



[1] 주 포지션은 2루수나 3루수지만 경기 후반 좌익수로 이동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99년과 07년 좌익수 출장 기록도 남아있다.[2] 이종열 안타! 이종열 안타! 이종열 안타! 타! 타! 타! 훗날 박지규가 이 응원가를 물려받는다.[3] 과거에는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도 많았고 이병규처럼 해외에 진출했다가 돌아온 케이스 등이 있어 100% 순수 프랜차이즈는 이종열 하나라 할만 했지만, 지금은 다른 팀 이적이나 해외진출도 안 하고 2002년부터 계속 LG에 버티고 있는 박용택이 40대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려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긴 했다. 통산성적도 박용택이 비교도 안 되게 좋으니[4] 팀 후배 박용택이 LG에서만 16년째 선수생활을 하고 있어 이종열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기에 기대받고 있다.[5] 물론 신문기사에서도 나왔지만 이우수가 실패한 결정적 사유는 바로 멘탈 문제였다. 재활훈련 때도 너무 힘들다며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잦았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 탓도 컸다.[6] 물론 이 시기는 LG의 암흑기였으며 그가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김상현안재만 등이 2군으로 사라지면 그 자리를 채워야 했던 팀의 상황이 더 문제였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이 시기에 3루를 주로 봤던 안상준은 이종열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물방망이였고 2루수 주전으로 키우던 박경수 또한 안 터지긴 매한가지인데다 유리몸이라 걸핏하면 부상으로 사라졌다. 매년 구멍이 생기던 내야에 이종열의 땜빵이 없었다면 가뜩이나 우울한 팀에서 LG내야는 더한 지옥을 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7] 예를 들어 비슷한 유형의 원클럽맨이면서 수비 백업 전문이었던 김재걸의 누적 WAR는 3.87이다.[8] 2011년 활약이 이종열을 닮았다 해서 트랜스포머2라 불리기도 했다.[9] 주간야구에서 이종열과 최원호는 선수시절 얘기하다가 '그때 (이순철 위원님을 가리키며) 우리 감독님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10] 사실 동갑이지만, 이종열이 1,2월생이라 야구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빠른 나이를 인정하는 한국 스포츠계 규율상 1년 선배이며 이종열도 최원호에 대해 얘기할때 '그래도 (내가) 형인데 왜 그래 히잉'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11] 물론 어떤 팀이건 원래 투수조와 야수조 사이는 같은 팀인 것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성향이 다른 부분이 많다.[12] 이종열 말로는, 자기가 아무리 화나도 최원호한테 폭력으로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는데, 그 이유는 진짜 주먹으로 붙으려고 했다간 자기가 일방적으로 더 맞을 거 같다고(...). 최원호가 실제로 체격이 좀더 크긴 하다.[13] 타자 출신인 이종열에게는 타자 중심의, 투수 출신인 최원호에게는 투수 중심의 분업 형태 해설이라고 해명했다.[14] 물론 초보라는걸 이해하야만 한다.[15] 그 외에도 이와 같은 반달들이 자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