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00:25:03

유지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만화 짱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유지현(짱(만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미스코리아에 대한 내용은 유지현(미스코리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C30452> 파일:Twins_logo.png -1 [[LG 트윈스|{{{#FFFFFF '''LG 트윈스'''}}}]]
2019 시즌 코칭스태프
}}} ||
{{{#!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000000"
''' 6 유지현 · 9 이병규 · 70 임훈 · 71 최일언 · 72 김재걸 · 73 김정민
· 74 경헌호 · 75 류중일 [[감독#s-1.1|{{{#!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C30452; font-size: .8em"
}}}]] · 77 이종범 · 78 가득염 · 79 황병일
· 80 세리자와 · 81 김호 · 82 안상준 · 83 곽현희 · 84 박용근 · 86 신경식
· 89 유동훈 · 92 김동수 · 93 장진용 · 96 김우석 · 97 김현욱 · 99 김광삼'''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1 [[틀:KBO 리그 팀별 명단 둘러보기 틀|{{{#C30452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유지현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4

1988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김선영
(북일고등학교)
유지현
(충암고등학교)
위재영
(동산고등학교)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1998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9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 KBO 리그 신인왕

파일:5p4rcEr.png KBO 포스트시즌
1998 플레이오프 MVP

파일:5p4rcEr.png 1997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 ||
유지현의 역대 등번호 /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Twins_logo.png
-1 [[틀:LG 트윈스 주장|{{{#FFFFFF '''MBC 청룡 / LG 트윈스 주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1982~1983 1984 1985~1986 1987 1988~1993
이종도 이해창 김재박 이광은 ?
1994~1997 1998 1999 2000 2001
노찬엽 김동수 송유석 김선진 양준혁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용빈
유지현(서용빈의 군입대)
이상훈 이병규 조인성 서용빈
2007~2008 2009 2010~2011 2012~2013 2014~2015
이종열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2016~2017 2018 2019~
류제국 박용택 김현수
}}}}}} ||
LG 트윈스 등번호 6번
민경삼(1992~1993) 유지현(1994~2004) 박경수(2005~2011)
장준원(2018) 유지현(2019~) 현역
LG 트윈스 등번호 76번
김성근(2001~2002) 유지현(2005~2007) 차명석(2008)
차명석(2008) 유지현(2009~2018) 결번
}}} ||

파일:/image/020/2008/10/23/200810230274.jpg
선수 시절. 오른쪽에 선수는 입단 동기이자 친구인 서용빈.

파일:external/dimg.donga.com/58293336.2.jpg
수비코치 시절

파일:external/ph.spotvnews.co.kr/19235_27613_5809.jpg
다시 작전/주루 코치로!
LG 트윈스 No.6
유지현(柳志炫 / Jihyun Ryu[1])
생년월일 1971년 5월 25일
신체 176cm, 70kg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구로구[2]
출신학교 충암초 - 충암중 - 충암고 - 한양대
포지션 유격수 ,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1차 지명 (LG)[3]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04)
지도자 LG 트윈스 1군 수비·주루코치 (2005~2007)
LG 트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08~2011)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12~2015)
LG 트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15~2017)
LG 트윈스 1군 수석·작전코치 (2018)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루코치 (2017~2018)
LG 트윈스 1군 수석·수비코치 (2019~)
응원가 닐리리 맘보[4][5][6]

1. 소개2. 선수 시절3. 트리비아
3.1. 연도별 주요 성적
4. 지도자 시절5. 평가6. 관련 문서

1. 소개

LG 트윈스의 수석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6번. 충암고-한양대 출신.

2. 선수 시절

파일:/image/295/2013/06/05/094310629_20021109005247907.jpg

어깨만 빼면 모든것이 빼어났던 4툴 플레이어

서울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유격수로서 두각을 나타내어 리틀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혔고, 이종범과 함께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김재박이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된 뒤 자타공인 LG 트윈스 최고의 유격수로 아직까지도 많은 이에게 각인되어 있으며, 그의 은퇴 후 권용관, 박경수, 박용근, 오지환 등이 유격수를 맡았으나 그만큼의 임팩트와 스탯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파일:external/tpholic.com/20080522122306.274.0.jpg

1994년 LG에 1차지명으로 입단하게 되는데, 리틀야구부터 아마 시절 내내 이종범과 함께 최고의 내야수로 각광받았음에도 프로행 직전인 한양대 4학년 당시 어깨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성적이 추락하고 이것이 핸디캡으로 작용해 자신의 가치만 못한 7천5백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연세대행이 확정됐음에도 온갖 공을 들여 가로채어 온 입단 동기 김재현의 계약금은 1억원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부분. 그러나 그는 신인 데뷔와 동시에 주전 리드오프를 꿰차며 LG의 돌풍을 주도했고 그 해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이 해 .305-15홈런-51도루를 기록하며 신인 최초 20-20클럽의 김재현, 타율 3할1푼, 신인 최초 사이클링히트의 서용빈을 제치고 94년 신인왕에 등극했다.[7]

1990년대 전성기를 달리던 LG 타선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전성기의 유지현은 1번 타자의 교과서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정말 죽이고 싶도록 얄미웠던 선수. 꾀돌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특히 고 하일성 위원 등 대부분 해설위원이 유지현의 야구 지능에 대해서는 칭찬 일색이었을 정도로, 김재박과 같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영리한 야구를 했던 선수. 약해진 어깨로 10시즌을 유격수-1번타자 역할을 했으니 체력이 마냥 약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을 오래 보고 투구수를 늘리기 위해 초구는 그냥 흘려보내곤 했는데 이를 의식한 상대 배터리가 초구를 대충 던지면 그대로 잡아당겨서 잠실 좌측 펜스(유지현존이라고 불린다)를 살짝 넘겨버리는가 하면, 출루해 놓고 도루를 할듯 안할 듯 하면서 상대 투수를 괴롭히는 등의 영악한 플레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차라리 아예 이종범처럼 도루해 버리는 게 상대 입장에선 편했다고 한다.

작은 체구 덕분에 적용되는 스트라이크 존도 좁았고 타격시 몸을 웅크리는 버릇 덕분에 존은 더 좁아졌고 거기에 훌륭한 선구안[8]과 발군의 커트 실력이 갖춰져서 2스트라이크 노볼의 볼 카운트를 2스트라이크 3볼로 만들던 건 예사였다. 이른바 용규놀이의 원조격. 또한 장타력도 출중하여 두자릿수홈런도 곧잘 칠정도였으니.. 상대투수는 피할수가 없었다. 덧붙여 잠실에서 오히려 원정경기보다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9] 선두타자 홈런 하면 이종범 또는 이순철을 떠올리기 쉬우나 유지현도 만만치 않았던 것. 그 덕분에 클린업도 아닌 선수가 한 시즌 평균 볼넷이 60여개에 2할 후반대인 통산 타율에 비해 통산 출루율은 3할 중후반대였다. 유격수 수비도 준수했다. 다만 어깨가 약한 편이여서 훌륭한 1루 수비를 자랑했던 서용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 마디로 리드오프로서 필요한 장점은 모두 갖춘 선수로, 그의 높은 출루율과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볼 때 LG의 "신바람 야구"라는 팀 컬러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주로 출전한 1994-2002 9시즌 중 LG는 1996,1999,2001년을 제외하고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1회 우승, 3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94년 신인왕을 수상했음에도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는 그해 84도루와 0.393을 기록한 바람같은 분에게 내주고 만다. 1995년에도 매 경기 1994년 이상의 활약을 보여 주었으나 방위 복무[10]로 인해 일부 홈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던 탓에, 골든 글러브는 그해 우승 팀인 OB의 김민호에게 돌아갔다. 1997년, 감독추천으로 출장한 올스타전에서 MVP가 되었고, 이종범이 떠난 1998년과 1999년에 드디어 KBO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이처럼 전성기에 이종범이라는 벽에 가려 그의 천재성은 늘 2인자라는 수식어로 점철되어야만 했다.

공격력은 이종범보다 부족했지만, 수술로 인해 약해진 어깨에도 불구하고 수비력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약한 어깨를 풋워크와 한박자 빠른 타구 판단으로 커버했고 특히 2루쪽으로 쏠리는 타구의 경우 슬라이딩 후 역모션 송구 등 서커스에 가까운 명장면들을 자주 연출했다. 수비 측면에서는 어깨에 의존하는 이종범보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김재박-류중일의 계보를 있는 정통 유격수라고 볼 수 있다. 1995 한일 슈퍼게임이 마지막이었으나, 유지현과 이종범은 국가대표로 함께 나갈 경우 공수주를 모두 겸비한 최고의 키스톤 콤비로 꼽혔다. 유지현-이종범-박정태가 아마에 공존하던 시기에는 3루 유지현-유격 이종범-2루 박정태의 포메이션이 나오기도 했다. (이때는 유지현 부상 전으로 강견 시절임) 유격수 수비로는 전문가들도 이종범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유지현에 대해서는 간간이 힘에 부치는 3-유간 상황의 원바운드 송구만 빼면 타구 판단에 이은 풋워크, 다이빙, 글러브질 등 극찬하는 편이며 논란의 여지가 적은 편. 오히려 본인이 아닌 이종범 항목에 유지현과의 수비력 비교에 대한 언급이 더 많다.

사실 LG가 리그를 평정하던 1994, 1995년 후 해태가 1996, 1997년에 살아나면서 자연스레 양팀간 더비가 리그 최고 빅매치가 되었고, 이 둘은 같은 포지션에 둘 다 야구 지능이 높았고 각 팀의 리드오프로서 항상 비교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유지현과 이종범은 2006년 WBC에서 이들은 대표팀 코치와 주장으로서 재회하게 된다.

이종범이 주니치로 떠나기 무섭게 골든글러브 2연패를 했고, 박정태와 키스톤 콤비를 이룬 1999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훌륭한 호흡을 자랑하며 나란히 베스트 포지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때 획득한 출전권으로 이듬해 열린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 유격수로 출전이 예상되었으나, 대회 직전 대표팀 감독이 주성로에서 김응용으로 변경되며 주전 유격수로 박진만, 내야 백업으로 김태균을 대신 선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11][12] 결과적으로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며 이런 논란은 자취를 감췄고, 유지현은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분풀이 맹활약을 펼치며 2승1패로 두산에 리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이기는 날은 스포츠신문 1면에 나왔다. 그러나 엘지는 마무리 장문석의 연이은 블론 세이브로 이후 3연패하며 허망하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이광은 감독의 해임 및 김성근 감독의 부임 후 2001년부터 2루수-유격수를 보기 번갈아 보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완전히 2루수로 전향해 3할1푼의 타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여전히 준수한 리드오프 역할을 수행하여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아마 시절부터 실력으로 국가대표 고정 멤버였던 덕에 유독 포스트시즌같은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것이 유지현 존으로 날려보낸 1997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의 역전 만루홈런(상대투수 성준), 02년 한국시리즈 2차전 6회 임창용 상대 안타 및 도루 시전으로 역전 시발점 역할, 5차전 6회 2사에서 전병호 상대 2루타 및 3루 도루, 패스트볼로 득점 등 팀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 깨알같은 안타와 도루를 시전하며 팬들로 하여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통산 홈런은 적지만 특히 중요한 순간에 잡아당기는 2루타 코스의 타구를 잘 쳐냈다.

참고로 입단 동기인 김재현과는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하다. 안그래도 등번호(김재박의 7번), 계약금 등 문제로 입단 때부터 자존심 차원의 갈등을 빚어 사이가 좋다고는 말 못하는 관계였다가, 김재현선수협에 적극적으로 가담을 할 때 유지현은 구단 편을 들어서 크게 틀어진 것. 정작 유지현도 LG 구단이 선수협에 가담한 선수들의 연봉 삭감, 징계성 트레이드를 보다 못하여 LG선수 전원을 선수협에 가입시키고, 본인도 2001년에 가입했다. 선수협 가입, 뒤이은 2002년 연봉조정 승리[13]는 유지현이 구단과 틀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파일:external/img.mbn.co.kr/012183205000.jpg

2002년까지의 활약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2003년 급격한 하락세를 타게 되는데, 타율이 2할대 초반에 머무르는 등 극도의 슬럼프의 빠지게 된다. 은사인 이광환감독은 유지현을 2루수로 전향시켜가며 안정시키려고 했으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고 하필 이 슬럼프 시점에 찾아온 FA계약 때 1년 4억원이라는, 유지현이라는 존재 가치에 너무도 격에 맞지 않는 처우를 받기에 이른다. 유지현은 은퇴 이후, FA 계약 당시 원인불명의 신경통으로 고생하고 있었음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유지현의 은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는데 이순철이 유지현을 쓸모없는 선수로 취급해 결국 반강제적인 은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유지현은 2004년 안좋은 몸상태에 슬럼프까지 맞은 상황이었음에도 2군에서 재활 및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 조차 받지 못하고 1군 선수단을 따라 다니면서 배팅볼이나 던져주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때 컨디션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갑자기 무리하게 유격수로 기용하여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핑계로 도태되게 만드는 식의 운영을 하였다. 특히 신인 내야수 박경수에게 사실상 반 강제로 주전 자리를 내주고 인스트럭터 역할을 코칭스태프와 구단으로부터 사실상 강요받으며 그해 가을 현역 은퇴 선언을 하였고, 10월 5일 롯데전 클리닝타임 때 약 20분 간 은퇴식을 가졌다. 은퇴식에서 김재현과 조우하는 장면은, 둘 사이의 관계를 떠나 동병상련에 처한 두 사람의 화해와 같이 비춰졌고, 많은 LG 팬들의 안타까움과 공분을 샀다. 이처럼 불운한 선수 말년으로 인해 본인의 가치와 재능에 비해 이후 끊임없이 저평가되는 계기가 된다. 유지현의 은퇴 직후 한화에 부임하여 팀 리빌딩 중이던 김인식 감독이 유지현을 안타깝게 여겨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현역 복귀 오퍼를 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본인은 엘지에서 현역을 마감하고 싶다며 고사하였다. [14]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열린 그의 은퇴 경기는 LG 트윈스 프런트와 팬들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 워낙 갑작스러운 유지현의 은퇴에다 김재현 각서 건까지 겹쳐 은퇴식 내내 관중석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은퇴식 때 경기 상대 팀인 롯데 덕아웃으로 걸어가 박정태 선수와 포옹하는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원래 유지현과 박정태는 아마시절부터 대표팀 생활을 같이 하여 친분이 있었고 심지어 은퇴식 당일날도 박정태와 점심을 같이했는데 이때도 서프라이즈에 대해서 일체 말이 없었기에 박정태가 더 놀랐다고 한다. [15]

여러 인터뷰나 행적을 돌이켜보면 성격이 유하고 선후배 선수나 구단 관계자들과 각 세우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스스로를 김기태, 김태형처럼 군기반장으로 포지셔닝하지 않았다. 반면 팀 내에서 주장일 당시 리더쉽은 본인의 실력이 받쳐줘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강했던 것으로 보이며, 선수협 문제에서도 엉뚱하게 친 선수협 멤버가 아닌 김기태와의 충돌로 팀원들이 그를 따라 단체로 가입 철회를 하여 같은 팀 양준혁, 김재현을 비롯한 친 선수협의 디스를 감수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두고두고 리더십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부분.. 나중에 본인이 주도하여 팀원을 선수협에 전원 가입시켰던 것과 구단과의 연봉협상 조정 신청 등을 봐서는, 본인의 소신은 있으나 말년에 LG 이외의 팀으로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구단의 지도자 연수 제의를 수용하는 것을 봐서 친정팀에 대한 로열티가 우선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처럼 주변, 특히 구단과 마찰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어설프게 프런트와의 구원(?)이 있어서 LG 감독으로 앉을 수 있을 지 관전 포인트다. 류중일, 염경엽 등 선배들의 감독 데뷔 시점을 고려하였을때,[16]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데다가 실력만 놓고 보면 이미 감독 후보로 언급되고도 남았어야 하지만, 런기태 사태 때에도 언론지상에 후임으로 언급이 되지 않은 점은 생각해봐야 할 일. 양상문 감독 밑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입지를 굳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6년 WBC 국가대표팀 코치, 2007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은 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LG 트윈스의 작전주루 코치를 담당하였다.

여담으로 홈으로 사용한 잠실에서 친 홈런이 원정경기 홈런보다 오히려 많았다. 당시는 95m로 5m 팬스를 당겼었는데, 폴대쪽으로 최대한 잡아당겨 살짝 넘어가는 홈런을 많이 쳤던 것. 신인시절 커리어하이인 15홈런을 기록했는데 이 중 11개가 잠실에서 넘긴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팬들과 기자들은 좌익수 쪽 폴대 옆 5m의 빈 공간을 '유지현 존'으로 불렀고 우익수 쪽 폴대 옆 5m의 빈 공간을 '정수근 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유지현에 비해 정수근의 홈런은 손에 꼽는 수준이라...

3. 트리비아

개봉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지만, 리틀야구대회에서 충암초교 야구부 곽성렬 감독의 눈에 띄어 충암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신바람 트리오로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 하루에 팬레터를 3~40통씩 받았다고 한다.

방위병 시절에는 유류관리병으로 복무하였다.

상기에도 나왔지만 김재현과는 선수 시절부터 서로간의 성향이 너무나도 안 맞아서 LG 시절 내내 견원지간이었으며, 김재현이 LG 코치로 오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김기태가 LG 감독으로 있었을 때, 김재현이 해설위원 자격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 대놓고 언짢은 표정을 지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김재현이 LG 코치를 하려면 유지현이 LG를 떠나야 한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단 2017년 LG 트윈스의 홈 개막전 후 94년 우승멤버들의 회식에는 함께 자리하긴 했다. 그러다가 2017 APBC에서 국가대표 코치로 (잠깐이지만) 한 팀이 되었는데 형동생해도 될 연차인데도 서로 지현씨 재현씨 하고 불렀다고... 아직도 서먹하다. 물론 그 후에 김재현이 경기 해설 도중 선수에 대한 캐스터의 질문에 대해 유지현 코치에게 물어보니깐 이라고 밝힌걸 보면 외부팬들이 보는거만큼 나쁜 사이가 아닐수도 있다. 2019년 1월 9일 94년 우승멤버 모임때 김재현과 자리를 함께 하기도 했다. 기사참조
2017년 현재 한국 나이로 47세임에도 불구하고 은퇴 직전 당시 얼굴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상당한 동안급 외모를 지니고 있다.

3.1.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4 LG 트윈스 126 482 .305 147
(3위)
20 0 15
(8위)
51 109
(2위)
51
(2위)
64
(2위)
.440 .391
(4위)
1995 64 236 .305 72 8 0 1 17 44 33
(5위)
44 .352 .423
1996 100 385 .249 96 15 3 4 26 56 24 59 .335 .363
1997 125 479 .269 129 24 2 3 45 78 44
(4위)
61 .347 .364
1998 126 476 .277 132 36
(1위)
1 12 61 94
(2위)
40
(3위)
71
(5위)
.433 .377
1999 93 356 .303 108 19 5 11 45 67 14 50 .478 .392
2000 129 495 .281 139 24 1 7 38 97
(4위)
25
(4위)
73 .376 .373
2001 129 448 .283 127 26 2 9 53 90 21 96
(2위)
.411 .411
2002 91 326 .310 101 14 3 1 25 51 21 38 .380 .381
2003 109 334 .234 78 7 0 1 16 30 23 31 .263 .306
2004 16 33 .152 5 0 0 0 2 3 0 3 .152 .222
통산 11시즌 1108 4050 .280 1134 193 17 64 379 719 296 590 .383 .377
역대수상
연도 수상내용
1994년 최우수 신인상 수상
1997년 올스타전 MVP 수상
1998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1999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4. 지도자 시절

선수 때의 센스있는 플레이에 비해 주루코치로서의 능력은 상당한 논란이 있었는데, 2011 시즌 유지현의 삑사리 주루 유도로 득점할 거 못하고 돌려야 할 때 주자를 안 돌리고 돌리면 안 될 때 주자를 돌려 대서 주자 횡사를 여러번 시켜서 이래저래 까였다. 아마 유지현 입장에선 "아니 왜 이걸 못 뛰어" 일지도 모른다.[17]

박종훈의 뒤를 이어 김기태LG 트윈스 감독이 되면서 최태원KIA 타이거즈 코치가 주루코치로 임명되었고, 그 결과 2011년 10월 14일 LG 트윈스의 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수비코치로는 비교적 평가가 좋다. 오지환에게 지옥의 펑고를 쳐 주면서 2013년부터 오지환의 실책 개수가 비교적 줄어들고 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7회말 적시타를 지우는 수비는 그의 위치 선정 덕분이다. 2014-2016 오지환의 수비만큼은 리그에서 확실히 인증받은 모습이다. 멘도사 라인임에도 수비장면만큼은 허구연 이효봉 등 해설자들의 극찬을 받고 있으며 ML 스카우터들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고. 이는 반박의 여지없는 유지현의 작품이다.

한편, 2015 시즌 중 최태원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3루코치로 보직변경 되었다. 동시에 박종호가 2군에서 수비코치로 올라왔다. 이후 엘지 경기에서 홈 주루사는 확연히 줄어든 모습인데(괜히 죄태원이 아님) 아직도 박용택의 경우 감히 유 코치의 신호를 종종 무시하고 뛰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아마 때부터 본인의 발을 믿고 엽기 주루플레이를 하도 시전하던 터라.. 선수시절 의외로 준족이 아니었음에도 쇼트트랙식 효율적 주루플레이를 시전했던 터라 선수들에게 전파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10월 10일 와일드카드전에서 8회말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어이없는 주루지도를 했다.

10월 16일 준PO에서도 어이없는 주루지도가 또...

2017년 8월 10일,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내야 및 작전코치로 선임되었다.

2017년 팀의 성적 부진으로 양상문 감독이 최종전을 마치고 물러남에 따라, 사실상 감독으로 확정된 분위기에서 언론지상 및 각종 게시판에 후임자로 언급되었으나 구단이 막판에 류중일 감독으로 급선회하며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하게 됐다. 이유인즉슨 아직 감독으로서 준비가 덜 됐다는 것. 코치 생활 12년차에 아직도 준비가 덜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본인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감독을 조용히 후방에서 잘 보좌하기보다는 이제 리더십 측면에서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에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며 존재감을 보여준 것도 있고, 류중일 감독과는 한양대학교 선후배 사이에다 국가대표팀에서 코칭스태프로 오래 같이 일한 만큼 중한 보직을 맡게 될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맞춰 2018 시즌을 앞두고 류중일 체제의 1군 수석코치를 맡게 됐다. 이제 LG에서 확고부동한 차기 감독 No.1이 된 셈이다. 프런트에서도 LG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류중일 감독과 선수, 코치진의 가교로 최적의 인물이라 판단한 듯 보인다.

1994 LG 신인 삼인방 중 마지막까지 팀에 남은 인물이 되었다. 김재현은 팀과 최악의 형태로 헤어지면서 LG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서용빈은 2017년에도 팀 타선을 홀라당 말아먹으면서 결국 사퇴했다.

2018년 역대급 DTD의 영향으로 코치진에 칼바람이 불어 절반 가까이가 해임될 때도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차기 감독 후보로 유력하긴 하지만 감독 시킬려고 데려왔던 김동수가 2군에서 깽판을 치고 꿔다논 보리자루가 된 처지라 유지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2019년 수석 코치 및 수비 코치로 시즌을 출발했으나 4월 20일 부친상을 당하면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 되었다.[18] 수비 코치직은 김우석 코치가 대신한다.

5. 평가

이처럼 LG의 레전드로써 손색이 없는 선수이지만, LG팬을 제외한 나머지 야구를 잘 아는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우선 선수협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엄청나게 까인다. 김기태, 이호성이 그랬듯이 구단 측 편을 든 것이 원인으로 일명 선수협 오적 중 한 명으로 취급된다. 정작 본인은 연봉조정 갈등에서 구단에게 뒤통수를 맞았으니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면도 있다. 유지현이 처음에 구단 선수협 결성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구단들이 선수협 주동자들을 방출/트레이드하며 악질적으로 대응하자 이에 대한 항의로 LG 선수 전원을 선수협에 가입시킨 사람도 유지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LG 구단은 유지현을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했다. 다만 프랜차이즈 스타였기 때문에 흑역사화까지 되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LG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다.

실력으로써도 고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나 잡고 KBO 당대 최고의 유격수를 말하라고 하면 김재박, 류중일, 이종범, 박진만, 손시헌, 강정호를 말하지 유지현을 말하는건 엘지팬 뿐이다. 당장 데뷔시즌이자 커리어하이였던 1994년에는 이종범이라는 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이종범이 일본으로 떠나자 이번에는 박진만이라는 또다른 벽이 나타나고, 전성기가 지날때쯤엔 2루 전향을 하는 바람에 원탑의 자리는 이종범이 떠나고 박진만이 자리 잡기 전의 그 짧은 순간밖에 지키지 못 했으니.. 동시대에 천재 2명이 같은 포지션에 존재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선수.ㅋㄲㅈㅁ

6. 관련 문서



[1] WBSC 공식 등록명.[2] 출생 당시 영등포구였다. 국민학생 때 은평구로 이사했다.[3] 1994년 드래프트 당시 OB 고위층에서 유지현, 류택현 두 선수 중 누구를 지명할 지 고심하다가 류택현을 1차 지명하였다. 하지만 류택현OB에서 전혀 성장하지 못하다가 LG로 이적한 후에야 빛을 보게 됐다. OB-두산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4] 날려라 날려라 유지현~ 안타 유지현~ 안타!x2[5]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유지현 은퇴 후 제 2의 유지현이 되어주리란 기대를 받던 특급 신인, 박경수에게 갔으나, 응원가에 걸맞지 못한 성적만 내고 KT로 이적했다.[6] 컴투스 프로야구 2016에 유지현의 응원가가 있는데 해당영상(소리만 나온다)에서 따온듯하다. https://kakaotv.daum.net/embed/player/cliplink/25363508[7] 다만 신인 3인방 중 김재현, 서용빈과는 달리 그 해 골든글러브는 수상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알다시피 그 해 4할 200안타 100도루에 도전했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당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것이 신인왕 수상에 도움이 되었다. 신바람 삼총사 중 유지현 혼자 골글을 못 받으니 동정표를 좀 받았기 때문.[8] 통산 출루율 0.377로 역대 3000타석 이상 선수들 중 3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투고타저 시대에 투수에게 경원당해 자연스럽게 출루율이 높아지는 슬러거 타입의 선수가 아니면서 체력 부담이 큰 유격수를 주로 소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출루율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전준호의 통산 출루율이 .375, 이종범의 통산 출루율이 .369다. 키스톤 내야수로 유지현보다 높은 통산 출루율을 기록중인 선수는 서건창정근우뿐이다. 활약한 시대가 다름을 감안하면 유지현의 출루능력은 당대에선 독보적인 수준이었다.[9] 신인시절 커리어 하이인 15홈런을 쳤으며, 그중 11개가 잠실에서 나왔다.[10] 서용빈을 제외한 유지현, 박종호, 송구홍 셋 모두 방위로 갔다.[11] 2000 시즌은 공교롭게도 박진만이 타격 부분에서도 포텐이 터지는 등 멘도사 라인을 탈출한 시즌이며 팀도 우승하고 골글을 받은 해. 다만 김태균의 경우에는 수비는 박진만, 유지현보다 아래였고 타격도 이따금씩 터지던 뜬금포를 제외하면 별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논란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12] 다만 이 당시 박정태와 유지현이 선수협 사태에 연루되어 있어서 최종 명단에서 빠진 거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13] 유지현은 연봉조정에서 승리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다.[14] 당시 한국나이로 34였지만 타격, 주루가 리그 상위권에 2루수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대로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삼성에 남으려 했던 강기웅의 은퇴상황과 유사하다.[15] 박정태는 나중에 방송에서 유지현에게 너무 고마운 동생이라며 애정을 표현했고 이 은퇴식 상황이 안타까운 마음에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도 결국 몇달 지나지 않아 후배와 마찬가지로 원하지 않는 은퇴식을 치러야 했다.[16] 류중일은 48세, 염경엽은 45세에 감독직에 올랐다. 유지현 코치는 2017년 현재 46세.[17] 흔히 스타플레이어가 명코치, 명감독이 못된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현역시절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코칭을 하거나 작전을 지시하는데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차범근의 경우 자신의 작전지시를 선수가 못 따라하자 스스로 실행해 보였는데, 그게 크루이프 턴에 논스톱 크로스.[18] 이례적으로 상을 당했는데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을 보면 2019년 신설된 경조사 휴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