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4 01:35:58

박용택

  • 별명이 많은 선수이므로 별명은 리다이렉트 걸지 마시고, 별명은 별명택 문서에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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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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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민수 · 22 김현수 [[주장|
C
]] · 24 홍창기 · 32 이천웅 · 33 박용택
· 36 이형종 · 55 채은성 · 100 김호은 · 101 강구성 · 106 이재원 · 112 이진석 · 128 한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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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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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7년 연속 150안타 2012년 ~ 2018년[A]
통산 최다 안타 2,400안타[A]
10년 연속 3할 타율 2009년 ~ 2018년[A]

수상 기록
2009, 2012, 2013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201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2007, 2011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2002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2009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2005년 한국프로야구 득점왕
2005년 한국프로야구 도루왕
2013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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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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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틀:LG 트윈스 주장|{{{#FFFFFF '''MBC 청룡 / LG 트윈스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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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1986 1987 1988~1993
이종도 이해창 김재박 이광은 ?
1994~1997 1998 1999 2000 2001
노찬엽 김동수 송유석 김선진 양준혁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용빈
유지현(서용빈의 군입대)
이상훈 이병규 조인성 서용빈
2007~2008 2009 2010~2011 2012~2013 2014~2015
이종열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2016~2017 2018 2019~
류제국 박용택 김현수
}}}}}} ||
LG 트윈스 등번호 33번
홍현우(2001) 박용택(2002~ ) 현역
}}} ||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1 2,414안타[4] 2016년 -

파일:04_pyt_02_pc.jpg
2016년 8월 11일 2000안타를 친 직후 1루로 출루하는 순간
LG 트윈스 No.33
박용택(朴龍澤 / Yong-Taik Park)
생년월일 1979년 4월 21일 ([age(1979-04-21)]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강동구
학력 고명초 - 휘문중 - 휘문고[5] - 고려대[6]
신체 185cm, 90kg
포지션 외야수, 지명타자[7]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소속팀 LG 트윈스 (2002~2020)[8]
등장음악 김범수 - 나타나[9][10]
응원가 아리랑 목동 (신인 시절)링크[11][12]
박정아 - New Ways Always (2009~2017)링크[13][14][15]
구단 자작곡 (2018~)[16][17] 링크
가족 부모, 아내 한진영, 여동생, 딸 박솔비
종교 개신교
별명 너무 많아서 문서 참조
연봉 8억원(FA, 2019년)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별명5. 구설수6. 팬 서비스7. 여담8. 연도별 성적

1. 개요

파일:04_pyt_pc_4k_A-1024x576 2.jpg

LG 트윈스의 야구선수. LG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선수이며 LG 팬에게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LG팬덤이 LG의 혼이자 2002 한국시리즈의 산증인으로 여기는 존재. 그리고 2019년 기준 KBO 리그 현역 최고령 선수. 포지션은 기본적으로 좌익수중견수이며 2011년에는 지명타자로도 출장했다. 그리고 노화로 해가 갈 수록 지명타자 출장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공식 별명은 구단에서 응모전을 통해 붙여 준 쿨가이였으나 2009년 수위타자 관련 사건과 더불어 별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렸으며, 현재도 KBO 별명계의 핫한(?) 아이콘 중 하나이다. 자세한 사항은 박용택/별명 참조.

이래저래 팀의 암흑기동안 여러차례 산전수전을 겪었지만[18], 그 와중에도 팀을 꿋꿋하게 지탱해 준 LG 트윈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비밀번호 해제 직전까지 LG의 마지막 포스트 시즌 및 비밀번호, 비밀번호 해제를 전부 겪은 LG 트윈스 흑역사의 산증인. 이병규는 흑역사 진행 도중 일본에 진출한 적이 있다. 거기에 박용택은 팀이 비밀번호 찍고 있었기 때문에 팬과 구단에서 가치를 저평가받았고, 이 암흑기때 주장까지 맡아서 청문회도 당했다.

또한 콜로라도 로키스의 강타자였던 '산사나이' 토드 헬튼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헬튼 또한 박용택과 같이 팀의 암흑기와 전성기를 겪어보았기 때문.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LG 트윈스의 전성기는 1990년대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박용택이 전성기를 겪었냐는 말은 이해가 안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박용택은 사실 1998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이미 LG행이 결정되었고, 그 당시 LG는 한창 잘 나갈 때였다. 정식으로 입단한 2002년에도 2001년의 부진이 있긴 했지만 팀은 아직까지는 소위 '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때였다.

2. 선수 경력

파일:NISI20180411_0013982100_web.jpg

해당 문서 참조.

3. 플레이 스타일

공격에서는 한 시즌 150안타 언저리와 두 자릿수 홈런, 3할 타율은 보장해줄 수 있는 선수로서, 전성기 시절에는 매년 두 자릿수 홈런, 30~40도루도 너끈하게 찍는 빠른 발로 도루왕도 차지한 적도 있다. 선구안(출루율)이 좋은 편이라 삼진도 잘 당하지 않으며, 장타 능력과 클러치 능력 또한 좋아 암흑기 시절 1번과 중심타선을 오갔으며, 나이가 들며 도루 능력이 감소한 2014년 즈음부터는 3번타자로 주로 출장.

수비에서는 신인 시절에는 어깨가 매우 좋았으나 지속적으로 우익수로 출장하면서 어깨를 혹사당한 결과 어깨가 망가지며 송구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수비 포지션을 중견수로 전환했다. 중견수 전환 이후에도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범위로 송구의 제약을 만회했으나 나이가 들며 수비범위도 좁아지며 좌익수로 나서다가 2016시즌부터는 붙박이 지명타자로 나서는 중.

2010년대 후반 들어 KBO 현역 최다 안타 등 기록 중심으로 평가 받고 있어 박한이장원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한 선수"라는 인식이 있지만 커리어 로우 시즌인 2008년을 제외하고 박용택의 커리어는 충분히 화려하다. 당장 상술했듯 데뷔시즌부터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고 데뷔 4년차인 2005년엔 도루왕과 득점왕을 동시에 수상하고 2009년엔 (논란이 많지만) 타격왕도 되보고 3할 시즌이 11번[19]이고 타격 순위권에도 4번이나 들어봤다. 저평가 받는 원인은 아마 이 성적 찍을 때 팀은 흑역사 비밀번호를 창조하는 데다 이승엽이나 이대호처럼 타팀 간판 타자들의 커리어 하이 시즌에 비해 한끗 모자란 활약 때문인듯. 일단 본인이 홈런 타자도 아니고...

물론 선수로서 꾸준함은 엄청난 강점이다. 그 덕에 데뷔시즌부터 지금까지 팀을 대표하는 간판타자이자 강타자로 활약중이고. 다만 MVP에 가깝게 가 본적이 없다는 것이 마이너스. LG에서 영구결번이 거론되고 실제로 되었던 선수 중에서 김용수와 이병규는 MVP를 획득하거나 아슬아슬하게 놓친 경험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아쉬운 점.

4. 별명

김별명 못지않게 별명이 늘어나서 결국 항목이 분리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5. 구설수

역시 가장 대표적인 건 상술한 2009년 수위타자 논란. 이 때문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데다 팀이 한창 DTD이론을 입증하던 2010~11시즌 주장을 맡아서 많이 힘들었는지 구설수가 그 때에 상당히 편중되어 있다.[20] 하지만 꾸준히 선행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연탄 나르기 봉사를 팀 연례 행사로 정착시키는 등 꾸준한 노력으로 현재는 악질 악플러를 제외하고 프로야구 팬들에게 이미지가 좋은 선수로 남고 있다.

2002년 데뷔하자마자 라뱅 이후로 오랜만에 1군에서 풀타임으로 뛰는 신인타자로서 각광을 받았으나, 시즌 후반부를 달려가던 9월 중순경 어느날, 세수를 하다가 난데없이 세면대를 잡고 팔굽혀펴기를 시도(!)했었다. 운동선수의 무게를 세면대가 이길 리는 없고 결국 와장창……. 이런 식으로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한동안 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었으며 당시 김성근으로부터 "선수도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본인조차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을 만큼 흑역사 중 하나.

아는 사람만 아는 2011년 8월 8일 청문회(라 쓰고 10명 정도가 모여 "정신 차리고 야구해라" 시전)에서 썩소를 짓고 팬들 좀 힘들게 하지 말라는 말에 당신 몇 살이야? 내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야, 아니면 당신이 날 힘들게 하는 거야?라며 응수, 이후에 버스에 타지 않고 마지막까지 청문회단을 바라보았다고 후기에 나와있는데, 막상 증거 자료로 올라온 영상엔 잘려있다.[21]

그런데 2차 청문회에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주차장에 버린 채 다른 비상 출입구로 분노한 팬들을 피해 도망갔고 원정 버스를 타야되는 관계로 어쩔 수 없다시피 나온 3차 청문회에서 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얼마나 응원을 많이 하는지 알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선수들 너무 많이 부담스럽습니다는 내용을 말하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부담택 저 장면은 1차 때와 달리 당시 아이폰으로 촬영하던 유저가 아프리카 플레이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생중계하던 터라 확실하게 들린 상황.

웃긴 건 주장이란 사람이 깔끔하게 사과만 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에 그동안 열심히 자신들에게 응원해준 팬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고작 너무 부담스럽습니다[22]라고 했단 거다. 재밌는 건 8월 18일 3차 청문회에서 저 이야기를 한 이후 20일간 LG는 홈경기 승리가 없다가 두산을 정성훈의 홈런으로 간신히 이겼단 거다. 박용택의 타격도 찬물의 향연 뿐. 벤치 클리어링 때도 전혀 나서질 않는 태도 때문에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박용택이 다시 FA가 될 경우 조인성처럼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용택의 경우 조인성과는 다르게 첫 번째 FA에서 소속팀 우선 협상기간 때 구단이 엄청난 옵션을 걸었음에도 군말하지 않고 곧바로 도장을 찍었다. FA의 경우 보통 시장에 나가는 걸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올린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이며 그만큼 구단에 충성도가 높다. 향후 LG 감독까지 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며 어깨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열심히 뛰어준 공로도 있는 선수다. 반면에 조인성의 경우 이미 전 FA에서 돈을 더 받기 위해 협상 기간을 질질 끌은 적이 있으며 SK에서 더 큰 금액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동한 것이지 구단 윗선과 관계가 나빠서 간 것은 아니다. 결국 2014 시즌 후 FA 재계약 성공.

그리고 2013년 2위 확정이 되자 참았던 눈물이 폭발 눈물택, 콧물택 별명이 추가되었다.

2018년 시즌 종료 이후 4차 회의까지 갔는데도 좀처럼 FA 재계약 협상이 안 되고 있다. 구단은 박용택의 불혹을 앞둔 나이도 문제거니와 2018 시즌에 프로 통산 현역 선수 최다안타 경신을 제외하면 박용택이 보여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수비도 안 되는 지명타자일뿐만 아니라 이 해 팀이 또 완벽한 DTD 시즌을 보내면서 LG의 주장으로서의 자격ㆍ리더십 부재 논란이 지난 2011 시즌보다 더 크게 부각되었던 터라 큰 계약을 주기가 어려운데다가 시즌 중후반 팀의 극적인 추락으로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부각된 박용택의 리더십 부재ㆍ주장 자격 논란으로 일부 LG 팬들의 박용택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지금 상황인데, 박용택은 진짜 4년 계약을 원하는지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으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박용택이 욕심을 부린다는 의구심이 생겼으나 구단과 2년 계약에는 합의를 봤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봉 협상에서 또 문제가 터지면서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나이가 마흔을 앞둔데다가 지명타자 아니면 나올 수가 없는 수비 못 하는 선수에게 2년 계약이면 대우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는데도 난항을 겪자 엄청 까였다. 2019년 1월 20일 LG와 2년 총액 25억원(계약금 8억원, 연봉 8억원, 옵션 1억)에 계약 체결했다. 우호적인 팬은 지난 2번의 FA 계약 때 적게 받았다는 평을 받았는데 말년에 보상받은 느낌이라는 평을 하고 부정적인 팬들은 노장에게 많이 줬다고 했다.[23] [24]

6. 팬 서비스

  • KBO 리그에서 팬 서비스가 좋기로 손꼽히는 선수. 각종 행사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잘 해주기로 유명하며, 팬들에게는 사인받기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일례로, 러브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그의 사인을 받지 못한 팬들에게[25] "끝나고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행사가 끝난 후에 거의 한 시간을 사인해 주고 있었다. 결국 구단 관계자가 팬들의 양해를 구하고서야 사인회가 종료되었을 정도. 또한 2014년에 있었던 두번째 FA에서는 협상을 기다리던 팬들이 구단 사무실 근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26] 박용택은 계약이 끝난 후, 사무실 바깥에서 기다리던 팬들에게 제일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사인을 해 주었다고. 이후 있었던 인터뷰에서는 "팬 여러분 덕택에 계약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했고, 덕분에 팬덕택이라는 훈훈한 별명이 하나 더 늘어났다. 또한 누구와는 정 반대로 "누가 내 사인을 비싸게 판다고 하면, 내가 팬들에게 사인을 남발해서 희소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발언으로 야구팬들의 찬양을 받기도 했다.[27] 2017년 말 류중일 감독의 취임식 직후 몰려든 팬 중 한 명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라고 부탁했는데 이를 거절하면서 갑분싸 되는가 싶더니, 바로 "사진 대신 사인 해 드릴께요" 라고 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오오 팬덕택 오오 원래 그 반대 아닌가[28] 혹시 사인덕후? 아니 상식적으로 싸인 적힌 상품을 사지 쌩판 모르는 남이랑 찍은 사진이 박힌 상품을 살까? 그리고 또한 퇴근 후 팬 사인 도중 새치기 하는 팬에게 "뒤로 가"라고 하면서 뒤로 보냈다.
  • LG 트윈스 경기를 직관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만나봤을 법 한 달마아저씨(故 박제찬씨)[29]가 2014년 6월 13일 돌아가시자, 비보를 듣고 직접 빈소에 찾아 조문을 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작은 파장을 남겼다.[30]입관식에도 참석하셨으며, 입관 때 본인이 쓰던 배트를 함께 넣어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가 나온 당일 박용택은 홈런포함 4타수 3안타 2타점의 맹타를 치며 보답을 했다. 참고로, 달마아저씨의 빈소에는 구단 관계자들이 찾아와 장례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며, 유지현 코치도 조화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LG 프런트가 칭찬받은 드문 사례들 중 하나.
  • 사랑의 골든글러브 2회 수상(최다 수상자)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야구 선수 중 대표적인 선행 천사로 알려져 있으며, 팬들과 함께 자신의 야구용품을 경매에 내놓아 거둔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가 하면 2011년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 소감으로 팬들과 같이 연탄봉사를 제안해 사비를 털어 행사를 시작했고, 2011년부터 시작된 연탄 봉사는 팬들과 LG 선수단 대부분이 참여하는 연례 행사로까지 정착되었을 정도이다.

7. 여담

  •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긴 버퍼링 시간으로 유명한 박한이보다 더 버퍼링 시간이 긴 타자가 바로 박용택이다. 세팅박다만 박용택은 처음에 타석에 들어설 때만 하지만 박한이의 경우엔 매 투구 1구 1구마다 하므로 실질적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는 쪽은 박한이 쪽. 재미있게도 둘 다 1979년생에[31] 백넘버가 33번이다.
  • 부상으로 인해 어깨가 좀 약하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할 단점이 없는 호타준족인데도[32] 이상하게 저평가 받는 경향이 있다. 아마 활동 시기가 암흑기를 관통했고, 거기에 수위타자 논란까지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 2009년 11월 즈음에 LG 트윈스 갤러리에 본인 인증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인증글에 달린 댓글로 그날 박용택이 어쨌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일명 쥐갤실록으로, 쉽게 말해서 박용택의 그날그날 성적에 따라 리플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이다. 박용택이 잘할 때는 '메느님 찬양' 같은 댓글이 주로 달리지만, 찬물이라도 끼얹는 날에는 '찬물이 콸콸콸' 같은 찬물드립부터 시작해서 '마무리 투수 출격' 이라든가, 심지어 '또 그러면 집에 김동주( or 이호성)찾아간다'는 차마 못 할 말까지 달릴 정도.그래도 비시즌 동안에는 박용택 응원 댓글이 많이 달린 걸 보면 LG팬들의 박용택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5, 6월달의 현기증 나는 찬물질로 인해 미칠 듯한 십자포화를 맞고 결국에는 공지에서 내려가버리고 말았다. 현재는 개념글 첫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2013년의 용암택 모드로 쥐갤러들의 재평가를 받으며 2013년 시즌 이후 당당히 공지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1월 17일, 갑자기 인증글이 삭제되어 버렸다. 쥐갤.. 카오스행.. 삭제 사유는 본인이 직접 지우셨다고. 이에 야갤럼들은 박용택이 광역 고소미로 적금을 받아서 세 번째 FA를 챙기려 한다는 드립이 흥했다. 박용택이 못 할때마다 욕댓글을 하나둘 적던 쥐갤럼들은 단체로 패닉 상태.

    이 후 박용택 마이너 갤러리가 새로 생기면서 실록은 이 곳에서 편찬되고 있다. 여전히 실록은 욕이 반 사랑이 반이다.
  • 야갤에서는 그의 응원가와 조인성의 응원가를 합친 무적엘지 조인성이 퍼졌는데 미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자 이거야말로 진정한 잉금님의 응원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본래 응원가는 졸렬한 응원가라고 까였다.
  • 특이하게 30세 이후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타자 중 한 명이다. 보통 신체적 능력이 전성기인 27세 이후로 점점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고[33] 30세 전후로 성적이 떨어지면 몰락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박용택은 이를 정면으로 깨뜨리고 있다. 당장 밑의 통산 성적을 봐도 알 수 있다. 20대에는 .280정도 치는 적당한 중거리 히터였다가, 만 30세 시즌에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후, 타율면에서 단 한 시즌도 3할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이를 두고 혹자는 농담삼아 20대 때는 2할을, 30대에는 3할을 기록하고 있으니 40대가 되면 4할치는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30대에 타고투저 시즌을 많이 만나서가 아니고 할지 모르지만 조정 타격수치를 봐도 30대 > 20대가 맞다. 물론 30대에 들어서 지명타자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지며 타석에 집중할수 있게 되어 타격에 버프를 먹은점이 있긴 하다.

파일:/image/111/2014/10/15/1370349482908_1_213700_99_20141015221504.jpg
파일:external/social.phinf.naver.net/tumblr_nucgxeJmLn1ut6iqpo1_1280.jpg
  • 전 야구선수 이재우와 상당히 닮았다. 특히 이재우가 2013년 들어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거의 도플갱어 수준. 그렇다보니 이재우는 돡용택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소위 팬들은 이 맞대결을 미러전이라 칭한다. 사회인 야구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 유영태도 이런 개그를 써먹었는데 이재우가 사회인 야구 코치로 오게 되었다며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박용택(...) 뭐 그냥 대놓고 노린 개그다.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6961030431.jpg
실제로 박용택과 이재우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6년 시즌 들어 박용택만 왕따당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2015-16 오프시즌에 심수창이 FA로, 이재우가 방출 후 이적으로 이 팀에서 모두 만났기 때문.
파일:untitled1.png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edhxhw261sqk8veo4_r1_400.jpg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풋풋하던 시절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11110149759_60400020.jpg 파일:200507161900111100_1.jpg
청룡 유니폼을 입은 모습
파일:2014-09-10_01;07;43.jpg 파일:1363092828.jpg
  • 사실 2010년대 들어와서 안경 쓰고 콧수염을 기르고 살을 불린 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아랍, 인도 이미지 또는 일본순사 이미지가 붙어서 그렇지 20대 시절 박용택은 90년대 LG의 훈남선수였던 현재 말많은 엘무원캐넌의 뒤를 잇는, 아니 동시대 LG의 꽃미남듀오였던 슈퍼소닉, 심수창과 함께 크보 대표 미남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잘생긴 선수였다. 그래서 2010년대에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은 박용택이 이런 시절도 있었냐 하면서 놀라는 경우도 있다. 사실 지금도 또래 선수들에 비하면 잘 생긴 편이다. 2017년 골든글러브를 탔을때 나지완보다 내가 잘생겨서 받은건가 농담조로 말한거 보면 본인도 나름 외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파일:attachment/박용택/2014-04-27-20-31-27.jpg
  • 마구마구2014에서는 모마만의 고유한 엘리트 중 하나로 나왔는데,[34] 그 성능이 심히 사기스럽다. 당장 컨택트만 봐도 82 백인천[35] 엘리트와 똑같다. 그리고 2014년 12월 3일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나왔는데, 컨택은 모바일 버전보다 2가 낮지만 수비와 스피드가 똑같이 84로 강화되었고 퀵스로잉이 잠재로 달렸다.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qt34HEbh1sqk8veo1_500.jpg
사나의 아버지
  • 트와이스일본인 멤버 사나가 아버지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야구팬덤에서는 박용택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들이 돌았다.
  • 2016년 KBO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손을 잡고 구단별로 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뽑았는데 LG에서는 박용택이 뽑혔다.
  • OPS 1.000을 한번도 넘겨본 적이 없다. 심지어 타격왕 시즌인 2009년에도 0.999라는 충격과 공포의 숫자를 남겼다... 물론 지나치게 크고 아름다운 통산성적을 보면 OPS에 크게 눈이 안 가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통산성적이나 시즌성적들이 좋기 때문에 놀라운 기록이기도 하다.
  • 찬물 이미지 때문에 득타율이 낮은 선수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통산 득타율 0.309(!)지난 10년 동안 프로야구 득타율 3위에 랭크될 정도로 높은 득타율을 기록했다.
  • 도루 성공률이 굉장히 좋다. 260번 성공에 57번 실패로 82.44%를 기록할 때도 있었다. 역대 크보에서 200도루 이상한 선수들 중에는 가장 성공률이 높았다. 하지만 세월에 따른 주루 능력의 하락은 어쩔 수 없는지 성공률이 큰 폭으로 떨어져 2017년 종료 기준으로 305성공 86실패(78.0%)를 기록 중이다. 물론 이도 충분히 높은 성공률로, 박용택보다 높은 도루 성공률을 기록중인 선수는 이종범(81.9%, 은퇴), 김상수(79.8%), 김민호(78.9%, 은퇴) 이종욱(78.8%, 은퇴), 김종국(78.4%, 은퇴) 5명에 불과하다.
  • 흡연자라는 말이 있다.한 팬이 이진영과 함께 흡연하는 걸 봤다고.
  • 다만 부인 못할 약점이라면 리더쉽 문제. 그가 LG의 주장으로 있을 때 언제나 팀은 덕아웃 리더 부재로 신음했다. 처음 주장을 달았던 2011시즌의 후반기도 똑같았듯이, 다시 주장을 단 2018시즌도 팀이 부진에 빠졌을때 선수들이 팀 성적이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분위기를 바로잡아준다거나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선수들을 격려해주고, 선수들에게 경기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심어주는 등의 그런 모습들, 즉 주장들이 주장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자세와 역할들, 그리고 그 모습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덕아웃에서도 덕아웃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 비록 이 점이 덕아웃에서 선수단 전체가 시종일관 경직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는 LG 트윈스라는 팀 자체에도 해당되는 일이라지만 현 팀의 최고참이자 주장인 그조차도 그런 부분에서 부족함을 드러냄과 함께 아쉬움을 남기고 있고, 결국 그것이 그의 약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제아무리 박용택이 비록 선수로서는 훌륭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주장으로서의 약점을 많이 드러내왔던 그가 정말 과연 LG의 주장으로서 가장 적합할까라는 의견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덕아웃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두산 출신 김현수가 사실상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맡아 어린 선수들을 챙기는 모습이 주장인 박용택의 다소 소극적인 행동과 비교되며 더 심해졌고, 이는 결국 2019시즌 주장직을 김현수에게 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사실 당연한 게 강한 리더쉽으로 LG 선수단을 휘어잡았던 유지현은 구단에 팽당해 2004년 10월 은퇴했다. 코치로서 팀에 계속 남았으나 선수 시절과 입장이 같을 수는 없었고 이미 쓴맛을 제대로 본 뒤라 윗전 심기 거스르지 않기 위해 처세에 힘썼다. 술먹고 놀기 좋아하는 선수였지만 팀을 위해 절뚝절뚝 거리며 경기에 나서는 투혼을 보여줬던 김재현은 2004년 11월 고관절 부상 관련 각서를 들이민 LG 프런트의 박대에 실망하고 SK로 떠났다. 골칫거리 풍운아였지만 누가보다 LG를 사랑해 기꺼이 자신의 팔을 바쳤던 이상훈은 2004년 1월 내쫒기듯 SK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차마 LG에 공을 던질 수 없어 6억이 보장된 상황이었음에도 그 돈을 포기하고 은퇴했다.
    LG의 고참들이 모두 팽당한 2004년에 박용택은 겨우 데뷔 3년차였다. 그리고 1999년부터 시작된 선수협 파동으로 박용택의 데뷔 시즌인 2002시즌에는 이미 고참 선수들과 구단 사이는 살벌해져 있었고 LG 프런트는 온갖 졸속행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새파란 박용택이 보고 배울 게 없었다. 박용택은 초년병 시절부터 남일 신경끄고, 총대 메는 일 없이, 자기 할 일만 신경쓰는 분위기 속에서 야구를 한 것 이다. 데뷔해서 한 번도 야구를 현재의 두산과도 같은 분위기 아래 야구를 한 적이 없다. 그런 선수에게 총대 메고 나서는 고참, 덕아웃 리더 역할을 기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 같은팀의 이병규가 KBO 영구결번중 유일하게 우승경험이 없는 영구결번인데 2020년 예고 은퇴를 선언한 박용택이 2020년안에 우승을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면 유이한 우승경험 없는 은퇴 선수가 되며 둘다 같은 LG 트윈스 라는 점이(...)
  • 응원가가 바뀐 뒤로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노쇠화가 극심하게 왔다. 응원가가 New ways always[36]이던 시절에는 엘지 최고의 타자이자 리그 최고의 타자였지만 응원가가 바뀐[37] 2018년부터 귀신같이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응원가가 바뀐데에 실망한 박용택은 잠적하고 이재우가 대신 뛴다고..

8.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2 LG 112 375 .288 108 28 6
(3위)
9 175 55 68 20 38 .467 .359
2003 133
(1위)
494 .257 127 21 6
(1위)
11 193 51 68 42
(2위)
40 .391 .321
2004 109 393 .300 118 15 2 16 185 58 51 10 32 .471 .357
2005 126
(1위)
472
(2위)
.280 132 25
(4위)
1 15 204 71 90
(1위)
43
(1위)
43 .432 .344
2006 126
(1위)
476
(3위)
.294 140
(4위)
26
(4위)
3 16 220
(2위)
64 69 25
(4위)
50 .462 .361
2007 126
(1위)
479
(1위)[38]
.278 133 24 4
(5위)
14 207 66 69 20 43 .432 .335
2008 96 334 .257 86 12 2 2 108 32 39 16 34 .323 .325
2009 111 452 .372
(1위)
168
(2위)
31
(3위)
5
(4위)
18 263
(3위)
74 91
(5위)
22 36 .582
(5위)
.417
2010 107 370 .300 111 21 0 9 159 45 62 19 38 .430 .372
2011 115 414 .302 125 21 1 15 193 64 57 13 26 .466 .347
2012 127 499
(2위)
.305 152
(2위)
34
(1위)
3 11 225 76 82
(4위)
30
(5위)
42 .451 .362
2013 125 476
(5위)
.328
(4위)
156
(2위)
22 4 7 207 67 79
(5위)
13 52 .435 .393
2014 124 464 .343 159
(4위)
24 2 9 214 73 71 11 75 .461 .430
2015 128 487 .326 159 28 2 18 245 83 66 11 34 .503 .370
2016 138 509 .346
(5위)
176 24 0 11 233 90 84 6 58 .458 .412
2017 138 509 .344
(5위)
175 23 2 14 244 90 83 4 72 .479 .424
(5위)
2018 134 524 .303 159 38 1 15 244 76 89 3 47 .466 .362
KBO 통산
(17시즌)
2074 7727
(1위)
.309 2384
(1위)[39]
442
(3위)[40]
45 210 3519
(3위)[41]
1177 1218
(5위)
312 807 .453 .370


[A] 현재 진행 중[A] 현재 진행 중[A] 현재 진행 중[4] 진행중.[5] 문과[6] 경영학과 1998학번[7] 입단 당시에는 원래 어깨가 강해 중견수와 우익수를 봤으나 김성근의 훈련 방식에 따른 어깨 혹사로 송구력이 급격히 떨어져 우익수를 포기하고 중견수로 출장했고 나이가 들면서 좌익수로 이동했으나 2016년부터는 웬만한 경우가 아닌 이상 거의 지명타자로 나오고 있다.[8] 2020시즌 종료후 은퇴한다고 말했다.#[9] 내 눈앞에 나타나~ (박 용 택!)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박 용 택!) 두 눈을 감고 누우면 왜 니가 자꾸 떠올라~ (L~G! 박 용 택!!)[10] 시크릿 가든 OST 곡이다. 시크릿 가든이 유행하던 시기에 구단측에서 꽃미남으로 밀고 가기 위해 골라준 곡이라고 한다. 본인은 처음 들었을때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고. 반주는 "왜 내 눈 앞에 나타나"에서 왜를 빼고 부르는게 포인트.[11] 안타~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박용택~[12] 녹음자의 말에 의하면 2003시즌까지는 확실히 썼다고 한다. 정확한 사용시기를 아시는 분이 수정바람.[13] 무적 L!(L!) G!(G!) 박용택!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오오 X4. 원래는 무적 L!G! 박용택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추임새가 들어갔다.[14] SBS 스포츠가 만든 '야구본색 2' 다큐멘터리 '택의 기억' 편에서 LG 골수팬으로 유명한 가수 홍경민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LG팬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노래를 언급했다. 본인이 콘서트를 하고 있다가 무심결에 야구 얘기가 나왔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LG팬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 후 홍경민이 즉흥적으로 박용택 응원가 도입부를 부르자 앞에 있던 일부 팬들이 본능적으로 '오오 오오오오~'를 이어부르며 특유의 율동을 해서 홍경민도 놀랐다고 한다.[15] 2018 시즌부터 작곡가 방시혁과의 저작권 협상 실패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응원가는 KBO 최고의 응원가 5손가락안에 들을 수 있는 명곡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쉽다.[16] 팬 공모전을 통해 나온 곡 중 박용택이 직접 골랐다. 전상규의 야잘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강승호에게 주기 위해 만든 곡이며, 그렇기에 방정맞고 발랄하게 만들었지만 엘런트에서 후렴구까지 전부 잘라먹고 도입부만 반복한다고 한다.근데 박용택에게 줄 곡을 방정맞게 만들수는 없으니 이해가 아예 안 가는건 아니다[17] 오오오~ 엘지 박용택~ 오오오~ 엘지 박용택~x4[18] LG 트윈스 한 팀만 뛰며 8 만나는 중이고 감독대행만 2이나 만났다.참고로 라뱅2더 만났다.[19] 2004년, 2009~2018년[20] 그런데 그래봤자 2011년 아는 사람만 아는 청문회 정도가 끝이다.[21] 이 부분에 대해 동영상 올리는 이는 애초에 영상 자체에 큰 내용이 담겨져 있진 않다고 언급되어 있다.[22] 사실 팬들이 부담스럽다는 말 때문에 먼저 욕먹은 이가 있는데 바로 롯데공필성 코치. 08~10시즌에 사직이나 마산에 좌석이 만원이 되면 롯데는 거의 져버리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었는데 공필성이 이를 두고 "팬들이 너무 많으면 부담스럽다."라고 쉴드를 쳐서 롯빠들이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팬들이 이렇게 많이 왔으니 더 잘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 하지만 그 심정을 팬들이 알아서 이해하게끔 한다면 몰라도 팬들앞에서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확실히 별로 옳지 못한 행위.[23] 차후 밝혀진 바로는 금액과 기간은 꽤 빠르게 합의했으나 은퇴 후 조건을 맞추는게 시간이 좀 걸렸고 심지어는 어차피 안 가기에... 그냥 몇달동안 느긋하게 진행한것으로 밝혀졌다.[24] 사실 프런트들은 전지훈련지 섭외,구장관리,연봉협상으로 인해 오프시즌 때 더 바쁘다.거기에 인사이동도 팀워크에 해 끼친다고 연말에 하기에...남는게 거의확정인 선수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25] 러브 페스티벌은 선수들을 몇 개 조로 묶어놓는다. 행사에 참가할 때면 특정한 조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박용택이 참가한 조가 아니면 사인을 받지 못하는 것.[26] 당시 분위기는 급박했다. 구단 공홈에서는 팬들의 FA 계약 요청 서명운동과 영상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박용택의 이름은 수 시간 동안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27] 하지만 본인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사인 거래가 문제면 종이에 미리 해서 뿌리면 되지 않나? 그런데 직접 말로 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28] 보통 야구선수 들은 사인 대신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그러니 사진보단 사인이 희소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29] 뇌병변 지체 4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면서도 LG 트윈스의 경기를 잠실, 문학, 목동, 멀리는 대전, 창원까지도 따라다니시던 열혈 LG팬.[30] 서술 초기에는 생면부지라고 되어 있었지만 그건 아니며 팬사인회에서 수줍어 했다던 사연을 공개했으며 잠실로 보이는 곳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31] 다만 박한이는 빠른 1979년생이라 1978년생과 동기이다. 그리고 음주사고로 시즌 중반에 박한이가 은퇴를 해서 이제 박용택이 KBO 현역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32] 통산 16시즌 동안 195 홈런과 305 도루로 리틀쿠바에 이어 2번째 200-200기록, 역대 최초 200-300을 기록했다. 박재홍이 통산 17시즌 동안 기록한 성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33] 메이저리그 이야기지만 신체능력만 놓고 보면 만 27세도 아니고 만 18세가 피크라는 연구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뼈가 다 굳는 나이는 만 24~25세 정도가 맞으며, 20대에는 아직 신체능력이 빠르게 감소할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경험에서 오는 이득까지 고려하면 만 26~27세가 가장 성적이 좋다는 통계가 있다.[34] 온라인 마구마구에는 2014년 12월 3일 추가 전까지 그의 엘리트가 없었다. 사실 초기 모바일 출시 당시에는 00년도 선수까지 업데이트 되어있었기 때문에 00년 이후에 엘지는 엘리트 카드가 없어서 덱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온 카드였다. 08봉중근 엘리트 카드 역시 같은 이유.[35]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 기본 컨택트 91.[36] 무적 L!G! 박용택 워어어어어어어 워어어어어어어어 x4[37] 워어어 엘지 박용택~ 박용택! x2[38] 박한이와 동률.[39] 양준혁 (2318 안타)의 1위를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롯데와의 11차전 4회말 1아웃 고효준을 상대 4구를 쳐 우측을 완벽히 가르는 2루타를 만들었다. 이 안타와 함께 동시에 1100타점을 넘긴건 덤[40] 1, 2위는 각각 이승엽(464개)과 양준혁(458개).[41] 1, 2위는 각각 이승엽(4077루타)과 양준혁(3879루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