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09:24:01

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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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
(韓有美 / Han Yoo-Mi)
생년월일 1982년 2월 5일 ([age(1982-02-05)]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오산시
학력 성호초등학교
수일여자중학교
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1]
경기대학교
가족 관계 부모님, 여동생 한송이
포지션 레프트
신체 조건 신장 180cm, 체중 61kg
성좌 / 지지 물병자리 / 개띠
배구 입문 초등학교 5학년
프로 입단 1999년 현대건설 그린폭스
소속팀 마산-수원 현대건설 그린폭스 (1999~2010, 2011)
대전 KGC인삼공사 (2011~2012)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4~2018)
해설위원 KBS N SPORTS 해설위원 (2018.5~)
별명 윰여신, 코트위의 여신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2006 KOVO컵 프로배구 여자부 MVP
대회 창설 한유미
(마산 현대건설 그린폭스)
정대영
(GS칼텍스)
V-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
2012 2016

1. 소개2. 선수 경력
2.1. 슈퍼리그 시절2.2. V-리그 초창기부터 휴식기2.3. 인삼공사 시절과 1차 은퇴2.4. 현대건설 2기와 2차 은퇴
3. 은퇴4. 은퇴 이후5. 여담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배구선수로, 현역시절 포지션은 레프트이다. 현재는 KBS N SPORTS 해설위원이다.

대한민국 여자배구계를 대표하는 미녀 중 한 명이다. 별명은 배구코트의 패션모델[2], 유미여신 혹은 윰여신,[3] 제빵의 명장[4]. 실제로도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걸로 유명한데, 레게머리, 탈색, 백발염색 등을 과감히 시도했다.

동생 한송이와 함께 여자배구에서 자매 선수로 유명했다.[5] 아무래도 자매인데다 포지션마저 동일해 자주 비교되는데, 한송이는 언니보다 여성적인 면이 부각되는 반면, 한유미는 털털한 스타일이다. 실제로 경기가 안풀릴 경우 한유미는 신경질을 부리는데 비해, 한송이는 무한 범실 루프에 빠지게 된다(...)

한유미-한송이의 고등학교 직속후배인 김연경이 가장 부러워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큰언니가 배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배구선수가 되었는데 정작 큰언니는 배구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정작 한유미 본인이 부러워하는 선수들은 이재영-이다영 쌍둥이인데, 한유미와 한송이는 둘 다 포지션이 레프트이기 때문에 국대에서 어느 한 선수가 부진해서 서로가 교체될 경우 둘 다 서로 서먹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재영과 이다영은 둘 다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에(이재영은 레프트, 이다영은 세터) 그럴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2. 선수 경력

2.1. 슈퍼리그 시절

수원 한일전산여고 출신으로,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한다. 입단 당시 81동기인 정대영과 함께 현대건설은 물론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에 증명이라도 하듯 200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주포로 활약, 한국 청대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슈퍼리그-V투어 시절 팀의 선배인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과 함께 현대건설의 5연패(1999-00 시즌~2004 시즌)를 이끌었다. 신인시절 구민정의 그림자에 가려 교체요원으로 출장했지만, 점차 성장하여 팀에서는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이 즈음 한국 여자배구 거포의 계보가 구민정에서 한유미로 넘어갈 것으로 보였는데...

2003년 여름 그랑프리 대회에서 왼쪽무릎 인대 파열로 1년 가까이 개점휴업했다.[6] 이 부상 이후 제 기량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2. V-리그 초창기부터 휴식기

2004년 V투어를 끝으로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이 은퇴하며 본격적으로 팀의 간판이 된다. 하지만 무릎부상 여파로 공격 중심의 플레이를 하게 된다. 무리한 플레이를 팀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많이 막고 보호하는 편이다.

노장 트리오가 은퇴한 뒤 현대건설의 전력은 많이 약화됐다. 센터 정대영이 서브리시브를 받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한유미, 정대영 이 둘이 팀의 간판으로 열심히 헌신한 끝에 2006-07 시즌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고 도로공사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끈다. 그러나 챔피언전에서 흥국생명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2006-07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는데, 결국 원 소속구단인 현대건설에 당시 최고 금액[7]을 받고 남게됐다. 반면 팀의 주축이었던 이숙자, 정대영이 FA로 풀려 GS칼텍스로 떠나게 되자 결국 한유미가 거의 혼자서 고군분투를 했다. 2007-08 시즌 현대건설은 꼴찌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한유미는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아직 한유미는 살아있다.'를 몸소 보여줬다.

한동안 팀이 어려운 가운데 있었으나 팀의 큰 언니로 2009-10 시즌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KT&G에게 밀리며 준우승하게 되지만. 그리고 계약 만료로 오프시즌에 FA 자격을 다시 얻었다. 그런데 우승 과정에서 외국인 선수 케니, 양효진, 황연주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한유미와 프론트와의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외국진출을 선언했다. 이탈리아 리그의 모 팀과 계약직전까지 갔으나 국내에 남기로 다짐한 한유미는 결국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고 무적 신분이 되고 말았다. KOVO 규정상 오프시즌에 연봉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선수는 다음 해에 뛸 수 없는 조항으로 1년 통째로 쉬게됐다. 개인적으로 안습적인 흑역사.

그렇게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대한배구협회 소속의 선수로 간간이 국제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겨울에 무적신분으로 조용조용 살아갈 줄 알았는데...라곤 하지만, 쉬는 틈틈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 공부도 충실히 하면서 선수생활 마무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2010-11 시즌 중 농구선수 이승준과 함께 여자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열애설 드립이 있기도 했다.

2.3. 인삼공사 시절과 1차 은퇴

2010-11 시즌을 백조로 보내다 2011-12 시즌에 현대건설과 FA 계약을 맺은 후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대전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몬타뇨 혼자 가빈놀이를 하느라 대각에서 제대로 해줄 선수가 없던 KGC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고 결국 2011-12 시즌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8]에 큰 공을 세웠다. 본인에게는 프로 첫 우승 경험.

한유미는 V-리그 컵대회를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유는 결혼 때문이라고. 이미 구단 관계자와 런던 올림픽 때 같이 뛰었던 선수들에게 은퇴 결정을 전했다고 한다.[9] 그래서 그런지 런던 올림픽에서는 주전이 아니라 동생 한송이가 부진할 때 교체되어 들어가는 조커 역할을 했다. 출전한 경기 중에서는, 터키와의 조별 예선전 때 C속공 등의 빠른 공격으로 그날 지쳐보였던 주전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줬던 경기가 백미. 다만 경기는 2:3으로 져서 승점 1점을 얻는데 그치긴 했지만 국가대표팀이 모처럼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는데 보탬이 되는 활약을 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이로써 한유미는 13년 간의 프로생활(실업시절 포함)을 마감했다.

다만, 배구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잠시간의 미국 유학 후에 2013년에 실업리그 부산시체육회에서 뛰었다. 부산시체육회 소속의 몇몇 선수와 함께 비치발리볼로 전향하여 2013년 해운대에서 열린 FIVB 세계비치발리볼 코리아 투어에 참가했다.

2.4. 현대건설 2기와 2차 은퇴

2014년 5월 27일 친정팀인 현대건설로 복귀한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2013-14 시즌 팀의 외국인 잔혹사도 당연히 있었지만 황연주의 커리어 로우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세 번째 공격 옵션의 부재와 최선참급 선수가 없어서 너무 어린 선수들이 즐비한 현대건설의 상황 때문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상기됐듯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감을 찾는 데는 어렵지 않을 듯싶다. 코보컵에서는 그나마 활약을 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실업리그와 프로리그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감독의 요상한 용병술처럼 불안한 공격과 리시브로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김주하, 황연주, 폴리 등의 체력안배를 위해 들어가는 형식의 백업이 되버렸다. 대신 폐습을 끊은 것이 가장 큰 업적. 이때 한유미가 폐습을 끊은 이유는 자신이 비록 여자배구 쪽에서는 최고참에 속하지만 그것만 믿고 후배에게 막대했다가는 그 후배가 동생인 한송이에게 그대로 내리갈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폐습을 끊어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2015년 청주 코보컵부터는 플레잉코치로 전환되었다.

15-16 시즌에 들어서는 장소연처럼 주전 출전을 하지 않는 대신 주 임무는 팀 상황이 개판이거나 황연주의 부진시[10] 시간벌이 혹은 팀 최악의 로테이션[11]정미선을 대신해 들어가 공격력 강화를 목적으로 나온다. 이다영, 김주하와 더불어 현대의 더블 스쿼드 운용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 준결승(플레이오프) 1차전 2차전 흥국생명 전에서 자신의 손에서 끝내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며 그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게 해준 덕분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화 이후 현대건설에서의 우승을 이뤘다.

15-16시즌 후 은퇴를 고려했지만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설득에 1년 더 뛰기로 했다. 그리고 왜 설득시켰는지 알 만한 답이 없는 후배 윙들 덕에 세자르급 강제 전성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백발마녀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허당끼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계신다. 16-17시즌 흑역사(...)로 길이 남을 배시브 후보 선수의 부재, 그리고 팀 전술의 부재로 인해 16-17시즌에는 고군분투하고 최근 7시즌 중 11-12시즌 다음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8년만에 한 경기에 20점을 넘게 올리는 등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삼공사의 돌풍 속에 결국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막지는 못했다.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GS칼텍스로 팀을 옮겼으나 하루만에 김유리와 맞트레이드되어 현대건설로 돌아갔다. 보상선수 지명 우선권이 있던 현대건설이 먼저 염혜선의 보상선수로 김유리를 지명한 다음 GS가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한유미를 지명했고 이 둘을 맞트레이드하는 형식이었다.응?[12] 이로써 동생인 한송이와 2012년 올스타 이후 5년만에 같은 팀이 되었지만[13] 하루만에 도로 없었던 일이 되었다.(그리고 한송이는 그 직후 대전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되었다.)

17-18시즌 들어서는 시즌 초반 허리부상으로 인해 출전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3. 은퇴

결국 2018년 3월 19일, 한유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는데, 당일 현대건설이 IB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예정되어 있었고, 1세트에 고유민이 부진하자 세트 중후반부터 투입되었다. 한유미의 투입으로 1세트 후반눈에 띄는 반전을 보여준 현대건설은,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리시브와 디그에서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격까지 활로를 뚫어내는 데 성공, 경기 끝까지 선발 라인업을 지켰다. 특히 2세트와 3세트 결정적인 장면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10점을 기록. 스스로 자신의 은퇴 시점을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3차전에서는 기업은행의 승리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이 날의 경기가 은퇴 경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18년 3월 28일 구단에서 한유미 선수의 공식 은퇴발표를 하였으며, 18년 11월 2일 현대건설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가 끝난 후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한유미 "배구 담 쌓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국대 감독이 꿈"

4. 은퇴 이후

2018년 네이션스리그 부터 KBS N SPORT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현대건설 배구단 유소년 배구교실(2018. 5~7월, 2019. 1~)과 OK저축은행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5. 여담

남자부의 김상우와 더불어 V-리그 최초의 득점자이다.[14] 한유미는 1999년에 데뷔했고 김상우는 1995년에 데뷔했다.

동생과는 인상이 정반대다. 한유미의 경우에는 목소리에서도 느껴지듯 털털한 인상이 강한반면, 동생인 한송이는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차분한 인상이 강하다.


[1] 이후 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2013)→한봄고등학교(2019)로 개명.[2] KBS N 스포츠의 허주 옹이 한유미 데뷔 시절에 붙여준 별명이다.[3] 디시인사이드에 배구갤러리가 생긴 이래 제일 먼저 인증했다. 이 덕택으로 배구갤러리에서는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물론 디시 배갤 인증 이전부터도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여신으로 통했다.[4] 이것은 짤이 하도 많아서 알 사람은 다 아는 별명이다. 김연경과 함께 한때 제빵의 2대 지분 보유자 중 하나였다. 현대건설에 복귀하고 나서는 거의 볼 수 없다.[5] 한때 한유미-한송이 사이에 있는 작은언니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자매의 극성팬이 퍼트린 유언 비어로, 실제로는 한유미-한송이 두 자매이다.[6] 한유미가 국가대표팀 전력에서 이탈될 때 임유진(당시 도로공사), 이정옥(당시 LG정유) 등의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했으나 임유진 역시 무릎인대 파열 부상으로, 이정옥은 포지션상의 문제(윙리베로에 가까운 플레이스타일)로 한유미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던 구민정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7] 1억 2천만원. 지금 최고 연봉자인 후배의 반도 안 되지만.[8] 인삼공사의 지난 2번의 우승은 정규리그 성적이 1위가 아니었다.[9] 그러나 본인 트윗에서 약혼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미 결혼 날짜를 잡아놨지만 끝내 결혼 실패한 거라고. 이 때문에 다음에는 결혼이 확정나기 전까지는 결혼 날짜도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10] 2015-16 시즌부터 라이트 연습을 했다고 한다. 오오...[11] 정미선-염혜선-김세영이 다 전위면 김세영의 헛방과 정미선의 안습한 공격력 때문에 메인 옵션인 황연주와 에밀리 하통의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 후위공격말고는 답이 없다. 양효진은 후위는 기대 못 하는데다가 그 땐 벤치에 있을 테고...[12] 이는 황연주김연견을 뺏기지 않기 위해 현대건설측에서 머리를 쓴 것으로 보인다. 보호선수 구성상 둘 중 하나는 풀리기 마련이고 둘중 하나라도 뺏긴다면 전력상 큰 손실이 있을수 밖에 없으니 지금 당장 GS가 급한 센터를 지명한뒤 이를 트레이드 형식으로 GS에 보내는 식으로 사전 협상이 끝난듯 하다. 이로써 현대는 황연주, 김연견을 지키는 동시에 한유미의 은퇴도 친정팀에서 할 수 있고 GS는 즉전감 센터를 얻어 고생하던 센터문제를 해결했으니 윈-윈 트레이드인 것. 그러나 결국 끝끝내 한유미는 동생 한송이와 한 팀에서 뛸 기회를 잃게 된다.[13] 배구 자매들은 대부분 적이 되지만 흥국생명 김수지&김재영이 한팀이었지만 김수지가 기업은행으로 가면서 적이 되었다. 그러나 김재영은 복귀한 시즌이 끝나고 다시 은퇴했으며 이후 2018-19시즌부터 IBK기업은행 통역으로 채용되면서 선수-스태프 사이지만 다시금 한 팀으로 되었다.[14] 김상우는 V리그 창설 이후 세 시즌만에 강제은퇴 당했으나 한유미는 한 번 은퇴한 후 다시 현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