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헬튼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토드 헬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350><table bordercolor=#33006f> | 콜로라도 로키스 영구결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토드 헬튼 | 래리 워커 | 재키 로빈슨 | 켈리 맥그리거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토드 헬튼 | |
헌액 연도 | 2024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9.7% (6회) |
2001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 ||||
J.T. 스노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데릭 리 (플로리다 말린스)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 ||||
데릭 리 (플로리다 말린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데릭 리 (시카고 컵스) |
2000년 ~ 200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0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행크 애런 상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20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20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마크 맥과이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17번 | ||||
데이비드 니드 (1993~1996) | → | 토드 헬튼 (1997~2013) | → | 영구결번 |
}}} ||
<colbgcolor=#33006f><colcolor=#c4ced4> 콜로라도 로키스 No. 17 | |
토드 헬튼 Todd Helton | |
본명 | 토드 린 헬튼 Todd Lynn Helton |
출생 | 1973년 8월 20일 ([age(1973-08-20)]세) |
테네시 주 녹스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센트럴 고등학교 - 테네시 대학교 |
신체 | 188cm / 99kg |
포지션 | 1루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8번, COL) |
소속팀 | 콜로라도 로키스 (1997~2013) |
기록 | 사이클링 히트 (1999.6.19) |
SNS |
[clearfix]
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활약한 前 야구선수. 또한 전 구단 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의 실질적인 첫 번째 영구결번자이자 프랜차이즈 스타.[1] 별명은 "The Toddfather".[2]쿠어스 필드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로 남아있다. 로키스에서 가장 많이 홈런을 친 카를로스 곤잘레스는 200개를 조금 넘겼다.
통산 성적(17시즌)
2,247경기 9,453타석 7,962타수 2,519안타 369홈런 1,401득점 1,406타점 1,335볼넷 1,175삼진
타율 0.316 출루율 0.414 장타율.539 OPS.953 OPS+ 133 wRC+ 132
fWAR 54.9 bWAR 61.8
2. 선수 경력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 둘 다 재능이 있었다. 미식축구 경기를 뛸 때는 쿼터백을 맡아 2772야드를 전진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야구 역시 고교 통산타율 6할 5푼의 고타율을 자랑했다. 하지만 미식축구는 테네시 대학교 입학 후 주전에서 밀려났는데, 이때 헬튼을 밀어내고 주전 쿼터백이 된 인물이 바로 페이튼 매닝.[3] 슬럼프를 겪으며 미식축구에서는 기량은 떨어젔지만 야구는 최고 유망주에게 주는 상인 딕 하우저 트로피를 수상할 정도로 일취월장을 거듭해 실력을 쌓았다. 그 결과 1995년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했다.본격적인 빅리그는 1997년부터 출장했다. 첫 풀타임인 1998년부터는 꾸준히 성장을 하며 3할 중반대의 타격과 30~40홈런을 기록하며 팀 동료인 래리 워커와 함께 팀의 주포로 자리 매김하였고 데뷔 해 신인왕 후보로도 선정되었으나 시카고 컵스의 케리 우드에 밀려 아쉽게 2위에 그쳤다. 2000년에는 커리어하이를 찍게 되는데 타율 0.372, 안타 216개, 홈런 42개, 147타점, 2루타 59개, 그리고 OPS가 1.162였고 타격 1위/ 홈런 공동 7위[4]/ 타점 1위/ 2루타 1위/ 최다안타 1위를 기록하며 웬만한 타격기록은 다 휩쓸었다. 하지만 직전해인 1999년 동료 래리 워커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까지 전부 리그1위를 하고도 MVP 후보 10위에 그친것처럼 2000년 토드 헬튼도 타출장오 전부 1위를 하고도 MVP 후보 5위에 제프 켄트가 MVP를 타는것을 지켜봐야했다. 이유는 항상 그러하듯 홈구장 쿠어스 필드가 타자에게 매우 유리한 환경이라는 것.
하지만 2000년 중반부터 노쇠화가 진행되어 홈런 생산이 줄기 시작하고 잔부상에 시달리지만 꾸준한 안타 생산능력은 시들지 않아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10년 연속 35개 이상의 2루타를 기록하기도 한다. 리그의 전형적인 더블머신. 그리고 알버트 푸홀스가 1루수로 정착하기 전까지 내셔널리그에서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1루수였고 골드글러브를 3회 수상했다.
2007 NLCS에서 마지막 송구를 포구하고 포효하는 헬튼 |
사람에 따라 헬튼의 기록을 '구장빨'이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홈구장인 쿠어스 필드에서 경기는 통산 타율이 3할 4푼을 상회하지만 원정경기는 2할 8푼으로 3할이 채 안된다. 통칭 '산사나이'. 헬튼의 성적이 타율에서 알버트 푸홀스, 스즈키 이치로, 조 마우어랑 비교되는 수준이고 콜로라도에서만 10년 넘게 뛰어서 대표적인 산사나이 취급을 당하지만, 콜로라도에서 뛰는 시절 홈과 어웨이의 타율 차이가 1할에 육박하는 맷 홀리데이와 래리 워커도 있었다.[6] 상대적으로 그리 심할 정도로 산사나이에 가까운 타입은 아니다.
록토버라는 기적같은 연승을 달린 팀과 함께 2007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이것이 토드 헬튼 커리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였다.
2011년에는 다시금 회춘해서 부활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홈런 생산은 나이 때문에 떨어졌지만, 고타율은 여전했다. 결국 12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02, 14홈런, 69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2012년에는 부상이다 뭐다 해서 말아드셨고, 2013년 초에는 음주운전 적발이라는 악재를 만나게 되었다.
본인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인 2013년에는 그냥저냥 통산 스탯 까먹지 않는 선에서 다른 선수들과 출전 기회를 나눠받으며 평범한 성적을 냈다. 필요할 때 대타카드로도 나오며[7] 시즌 최종 124경기 출전에 99안타 15홈런 61타점 41득점을 올렸다. 9월 1일 對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MLB 통산 85번째로 2500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지시각 9월 14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17년간의 선수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한다는 발표를 했다. 치퍼 존스나 마리아노 리베라처럼 떠들썩하게 작별하는 것보단 조용히 떠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 헬튼의 은퇴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느꼈다. 오랫동안 산신령으로서 산동네를 지켜오던 그도 오랜 산생활을 마치고 하산하게 됐다. 무슨 승부조작이나 약물 스캔들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8] 그의 등번호는 (재키 로빈슨을 제외할 경우) 로키스 프랜차이즈 최초의 영구결번 지정이 확실했다. #
9월 25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펼치는 인터리그 홈 경기에서 가족을 동반한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시구는 그의 딸이 맡았고, 헬튼은 시포를 맡았다. 경기 내에서는 홈런을 포함한 2안타 3타점으로 마지막 은퇴경기를 개인 유종의 미로 장식했다.
2014년 8월 17일[9] 신시내티 전에서 그의 등번호 17번의 영구결번식이 진행되었다. 윗 사진에서 보듯이 그의 가족들이 참석했고, 그와 6년간 선수생활을 같이했던 브래드 호프, 현역 콜로라도 선수인 벨라일이 그의 영구결번을 축하해주었다.
3. 연도별 기록
토드 헬튼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c4ced4>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7 | COL | 35 | 101 | 26 | 2 | 1 | 5 | 13 | 11 | 0 | 8 | 11 | .280 | .337 | .484 | .821 | -0.1 | -0.2 |
1998 | 152 | 595 | 167 | 37 | 1 | 25 | 78 | 97 | 3 | 53 | 54 | .315 | .380 | .530 | .911 | 2.9 | 3.2 | |
1999 | 159 | 657 | 185 | 39 | 5 | 35 | 114 | 113 | 7 | 68 | 77 | .320 | .395 | .587 | .981 | 3.0 | 2.9 | |
2000 | 160 | 697 | 216 | 59 | 2 | 42 | 138 | 147 | 5 | 103 | 61 | .372 | .463 | .698 | 1.162 | 8.3 | 8.9 | |
2001 | 159 | 697 | 197 | 54 | 2 | 49 | 132 | 146 | 7 | 98 | 104 | .336 | .432 | .685 | 1.116 | 7.1 | 7.8 | |
2002 | 156 | 668 | 182 | 39 | 4 | 30 | 107 | 109 | 5 | 99 | 91 | .329 | .429 | .577 | 1.006 | 5.5 | 6.3 | |
2003 | 160 | 703 | 209 | 49 | 5 | 33 | 135 | 117 | 0 | 111 | 72 | .358 | .458 | .630 | 1.088 | 6.6 | 6.3 | |
2004 | 154 | 683 | 190 | 49 | 2 | 32 | 115 | 96 | 3 | 127 | 72 | .347 | .469 | .620 | 1.088 | 7.0 | 8.3 | |
2005 | 144 | 626 | 163 | 45 | 2 | 20 | 92 | 79 | 3 | 106 | 80 | .320 | .445 | .534 | .979 | 4.1 | 4.6 | |
2006 | 145 | 649 | 165 | 40 | 5 | 15 | 94 | 81 | 3 | 91 | 64 | .302 | .404 | .476 | .880 | 1.9 | 2.3 | |
2007 | 154 | 682 | 178 | 42 | 2 | 17 | 86 | 91 | 0 | 116 | 74 | .320 | .434 | .494 | .928 | 4.2 | 4.5 | |
2008 | 83 | 361 | 79 | 16 | 0 | 7 | 39 | 29 | 0 | 61 | 50 | .264 | .391 | .388 | .779 | 0.6 | 1.0 | |
2009 | 151 | 645 | 177 | 38 | 3 | 15 | 79 | 86 | 0 | 89 | 73 | .325 | .416 | .489 | .904 | 2.6 | 3.3 | |
2010 | 118 | 473 | 102 | 18 | 1 | 8 | 48 | 37 | 0 | 67 | 90 | .256 | .362 | .367 | .728 | -0.5 | 0.2 | |
2011 | 124 | 491 | 127 | 27 | 0 | 14 | 59 | 69 | 0 | 59 | 71 | .302 | .385 | .466 | .850 | 2.3 | 2.2 | |
2012 | 69 | 283 | 57 | 16 | 1 | 7 | 31 | 37 | 1 | 39 | 44 | .238 | .343 | .400 | .743 | 0.0 | 0.1 | |
2013 | 124 | 442 | 99 | 22 | 1 | 15 | 41 | 61 | 0 | 40 | 87 | .249 | .314 | .423 | .738 | -0.5 | 0.1 | |
MLB 통산 (17시즌) | 2247 | 9453 | 2519 | 592 | 37 | 369 | 1401 | 1406 | 37 | 1335 | 1175 | .316 | .414 | .539 | .953 | 54.9 | 61.8 |
4.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 득표율(%) |
2019 | 16.5 |
2020 | 29.2 |
2021 | 44.9 |
2022 | 52.0 |
2023 | 72.2 |
2024 | 79.7 |
가장 발목을 잡는 문제는 2가지였다. 첫번째론 1루수라는 포지션치고 아쉬운 누적스텟인데 통산 비율스텟만 보면 3-4-5라는 아름 다운 성적이지만 누적 스텟으로 들어간다면 통산 2519개의 안타와 369개의 홈런은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두번째로는 로키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야수들에게 늘 붙어다니는 홈구장 쿠어스 필드 논란인데 홈원정 편차가 당연히 심하다 보니 홈빨이 아니냐라는 의문부호가 붙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래리 워커의 경우에도 쿠어스 필드에서 9년을 뛴 영향인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크게 손해를 보고 들어간 케이스다보니 헬튼의 전망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하지만 도핑테스트에 걸린적이 없는 청정타자라는 점, 한 팀에서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명전투표에서 좀 유리하다는 점도 있었고 냉정하게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제공하는 통계로 따지자면, 헬튼의 명전입성은 못가는게 이상할정도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점도 호재 Hall of Fame Career Standard 지수에서 59point를, Hall of Fame Monitor 지수에서 175point를 기록하고 있다.[10] 두 수치 모두 명전 100% 확정지었다는 아드리안 벨트레나 짐 토미보다 높다. [11]
명예의 전당 1회차(2019년)에는 득표율 16.5%를 기록했다. 2회차(2020년) 득표율은 29.2%.
한 동안은 래리 워커의 명전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 여겨졌기에 헬튼이 만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면 최초로 로키스 모자를 쓰고 갈 선수가 될 뻔했지만, 2020년 1월 21일 래리 워커가 마지막 10회차에 약 76% 득표율로 극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 로키스 모자를 선택하면서 최초의 타이틀은 워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워커가 쿠어스빨이라는 오명을 벗고 당당히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에 헬튼의 명전행만 놓고 보면 워커의 명전 입성은 매우 긍정적인 소식이다. 실제로 워커의 명예의 전당 헌액 이후 많은 언론과 팬들이 헬튼에게 주목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2019년 3월 27일에 음주운전이 걸리면서 명전 입성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여기에 1년 뒤인 2020년 4월 7일에 다시 음주운전이 적발되면서 체포되었고, 이틀간 감옥에 구류되었다. 이미 2013년에도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벌써 음주운전만 3번째[12][13]라 명전 입성에 정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가뜩이나 쿠어스빨이라는 시선 때문에 명전 투표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이 계속 터지면 곤란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번째 투표에서는 무려 44.9%, 4번째 투표에서는 52.0%의 고득표율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득표율을 높여가고 있다. 이 정도 추세면 7~8번째 투표쯤에서 명예의 전당에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점쳐졌다. 그런데 5회차인 2023년에 무려 72.2%를 기록하며[14] 무려 20%나 끌어올렸다. 이변이 없는 한 2024년 입성이 확실시되는 분위기.
2024년 입성자 벨트레, 헬튼, 마우어 |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토드 헬튼 | 16 | 143 | 175 | 59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First Base (15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토드 헬튼 | 61.8 | 46.6 | 54.2 |
1루수 HOF 입성자 평균 | 65.0 | 41.8 | 53.4 |
5. 여담
- 로키스의 리더답게 선수들은 물론 구단 직원들에게도 살갑게 대하기로 유명했다. 그 일화로 김병현이 로키스로 이적을 했을 때 선수로서는 가장 먼저 다가가서 반겼다고 한다.
다만 알몸으로 맞이했다는게 에러...
-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헬튼 버거를 팔고 있다.
- 미모의 아내 덕분인지 산신령이 되어버린 본인과 달리 딸들의 외모는 어머니를 닮아 출중하다.
훌륭한 유전자 몰빵
전설적인 1루 견제 페이크 장면. 해당 움짤에서는 이 뒤를 보여주지 않아서 빈 글러브로 페이크 태그하는 걸로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아웃 선언 후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는 장면이 생략되어있다.
- 2012년에 콜츠에서 덴버 브롱코스로 오게된 페이튼 매닝은 1년 대학 선배인 헬튼을 응원하기 위해 쿠어스필드를 찾았고 헬튼이 2013년에 은퇴하자 은퇴식에도 참석하는 등 돈독한 우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 후 매닝은 2016년 브롱코스에게 슈퍼볼 우승을 안기며 은퇴하게된다.
- 2018년 12월 중순에 기재된 마이크 햄튼의 잔여 연봉 분할 지급 관련 기사에 따르면 로키스가 헬튼에게도 분할 지급 방식을 택해 2023년까지 연간 1.3M을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 2018-19시즌 개막 직전에 음주운전으로 걸려 곤욕을 치렀다. 본인은 수면제인 졸피뎀을 복용했다 주장했지만 경찰이 그의 트럭을 조사하자 술이 든 플라스틱컵을 발견하여 음주운전임을 알아냈다. 은퇴했다 하더라도 아직 30년이 되지않은 구단의 대표격인 인물이니만큼 구단도 팬들도 실망이 큰 듯. 명예의 전당 입성에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 추가되었다. 2020년에도 또 음주운전을 해서 체포되었다. 거기다가 2013년에도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만큼 벌써 3번째로 걸린 것이라, 실로 굉장히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강정호그러나 실제 명전 투표에서는 음주운전 삼진아웃 적발 직후 투표에서 득표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했고 4년 뒤에는 입성이 확정된 것이 킬포.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2000년 5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제프 켄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2000년 8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리차드 이달고 (휴스턴 애스트로스) |
2002년 5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제프 켄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2003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브라이언 조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 그의 뒤를 이어 원클럽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 있었던 트로이 툴로위츠키는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고, 중간에 트레이드 되지 않는 한 장기계약을 맺은 놀란 아레나도가 뒤를 이어서 원클럽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듯 했으나, 2021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남은 트레버 스토리도 FA로 팀을 떠나 보스턴 레드삭스로 가고 팀 자체가 리빌딩을 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하며 한동안은 그를 넘을 프랜차이즈 스타는 나오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찰리 블랙몬이 끝까지 로키스 소속으로 남아있다 은퇴하긴 했지만 헬튼과의 성적 차이가 꽤 나는 편.[2] <대부>(The Godfather)에서 따온 별명으로, 로키스의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클럽하우스 리더였던 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할 수 있다.[3] 이 후 페이튼 매닝이 선수 말년에 로키스의 연고지인 덴버에 위치한 미식축구팀 덴버 브롱코스에 영입되어 슈퍼볼 50에서 팀을 우승시킨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인연이다.[4] 투고타저인 2010년대 후반 내셔널 리그라면 여유 있게 홈런 1위였겠지만 이 해의 내셔널리그에는 배리 본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제프 배그웰, 새미 소사, 게리 셰필드 등의 슬러거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갑툭튀 플루크 시즌을 보낸 리차드 이달고에게까지 밀렸다.[5] 이후 등부상으로 고생하던 헬튼은 2008년 최종적으로 디스크 판정을 받은 후 확연한 하락세를 타게 된다.[6] 이 두 명은 모두 산을 내려왔고, 공교롭게도 (가장 표준적 구장이라 불리는 부시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2명 모두 활약하면서 산동네 임팩트는 그냥 홈빨이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결과적으로 산에서 내려오기 전이나 후나 잘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던 것. 대체적으로 선구안으로 바탕으로하는 라인 드라이브형 타자들의 경우는 산을 내려와도 무난한 성적을 찍어주는 경향을 보였다. 본문의 토드 헬튼 역시 마찬가지의 경우. 반면 얻어 걸려라 방식의 어퍼 스윙 위주의 타자들은 모두 시망이었는데, 이 경우의 대표적 타자는 비니 카스티야.[7] 대표적으로 5월 31일에 LA 다저스 전에서 브랜든 리그 상대로 날린 동점 투런포를 들 수 있겠다.[8] 게다가 이런 경우조차도 결국 해당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받았다.[9] 17년을 뛰었고 등번호 17번에 17일로 맞춘 의미있는 영결식이었다.[10] 앞의 수치는 실제 명전에 입성한 선수들 평균을 50이라 봤을 때 비교할 만한 수치라는 것이며, 뒤의 수치는 대충 말해 100정도는 되어야 명전급이라는 것.[11] 물론 커리어 전체를 1루수로만 보낸 헬튼과 달리 아드리안 벨트레는 3루수로 커리어를 보냈고 짐 토미의 경우에도 1991~1996년까진 3루수를 봤었다. 누적 기록의 경우에도 아드리안 벨트레의 경우에는 3000안타 짐토미의 경우에는 600홈런이라는 마일스톤이 있었다.[12] 당장 강정호는 음주운전 삼진아웃으로 인해 야구계에서 매장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헬튼이 대한민국 사람이었으면 명전은커녕 아예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당했을 것이다. 거기다, 미국은 음주운전 측정 자체가 매우 널널해서 술 냄새가 나거나 취한 것으로 확인되는 상태가 아니라면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까지 가지도 않는다. 물론 강정호가 걸렸던 시기에는 음주운전을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훨씬 가볍게 여기기는 했었으니 강정호가 몰락한 진짜 이유는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에 물피도주, 그러면서도 KBO로 복귀하려는 모습 때문이다. 음주운전 2번에 플레이오프 직전에도 음주운전을 했던 서장훈이 2020년대에도 방송계에서 잘만 활동하고 있으므로 그냥 강정호 개인의 처신 + 인격 문제 때문에 매장당한 거로 보는 게 맞다. 강정호 팬들이 '강정호가 미국 사람이었으면 문제없이 뛰었을텐데 한국 사람들이 음주운전에 너무 과민반응 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짓말에 민감한 미국 사람들 정서상 강정호 식으로 뺑소니를 치고 친구한테 음주운전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는 행동을 했다가는 한국 사람들 이상으로 뭇매를 때렸을 것이다. 더구나 헬튼은 은퇴 시즌에 한 번, 은퇴 후에 두 번 해서 총 세 번 음주운전에 걸린 건데, 강정호는 한창 선수로 뛰던 중에 음주운전을 한 거라서 파급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음주운전에 관대한 미국이어도 계약기간 중에 세 번이나 음주운전을 해서 재판에 불려다니는 선수를 좋게 보지는 않는다.[13] 그리고 애초에 미국의 경우, 대중의 인식 자체는 음주운전에 상대적으로 관대하지만, 처벌 자체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세다. 당장 헬튼은 초범인 2013년에도 음주운전에 걸리자마자 체포되었는데, 우리나라는 대중들의 인식은 실제 추돌 사고와 단순 적발을 완전히 동등한 선으로 취급하지만 실제 형벌로는 사고를 내지 않는다면 대부분 저 상황에서 훈방조치를 한다. 미국인들이 음주운전자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대한 인식을 보이는 것도 애초에 미국의 음주운전자 처벌이 상대적으로 강한 영향이 카며, 그에 따른 처벌을 합당하게 받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있다. 거기다가 단순 면허 정지라 할지라도 애초에 미국의 면허 정지와 한국의 면허 정지는 동등한 선에서 놓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14] 입성 기준인 75%와는 11표차이다.[15] 1995년 포스트시즌에는 로키스 소속이었지만 빅리그 경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