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물의 아들인 야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블라디미르 게레로 | ||||||||||||||||||||||||||
헌액 연도 | 2018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92.89% (2회) |
20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알렉스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안타왕 | ||||
리치 오릴리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 →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라이언 하워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 → | 저스틴 모노 (미네소타 트윈스) |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27번 | ||||
부치 헨리 (1993~1995)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1996~2003) | → | 잭 데이 (2006) |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등번호 27번 | ||||
트렌트 듀링턴 (2003)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2004~2009) | → | 마이크 라이언 (2010) |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27번 | ||||
프랭크 카탈라노토 (2000~2008)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2010) | → | 레오니스 마틴 (2011~2012) |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27번 | ||||
마크 헨드릭슨 (2009~2010)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2011) | → | 맷 린드스트롬 (2012) |
블라디미르 알비노 게레로 시니어 Vladimir Alvino Guerrero Sr. | |
출생 | 1975년 2월 9일 ([age(1975-02-09)]세) |
페라비아 주 니자오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형 윌튼 게레로 조카 가브리엘 게레로 |
신체 | 190cm / 106kg |
포지션 | 우익수, 지명타자[1]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3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MON) |
소속팀 | 몬트리올 엑스포스 (1996~2003)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04~2009) 텍사스 레인저스 (2010)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1) |
기록 | 30-30 클럽 2회 (2001, 2002) 사이클링 히트 (2003.09.14) |
[clearfix]
1. 개요
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외야수.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Vladdy'로 한국에서는 주로 '괴수'[2]라고 불린다.
2000년대 후반들어 지명타자로 전향하기 전까지는 우익수로 활약했었다. 뛰어난 툴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 공격과 수비, 주루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5툴 플레이어였고 특히 배드볼 히터로 명성을 떨쳤다.
통산 성적은 16시즌 2,147경기 9,059타석/8,155타수 2,590안타 449홈런 477 2루타 1,496타점 1,328득점 181도루 737BB/985K 250고의사구 .318/.379/.553 .931OPS/140OPS+ 136wRC+ 59.5bWAR. 200안타 시즌이 4번-40홈런 시즌이 2번 있었고 고의사구 1위 시즌이 5번(2000, 2005~2008)이었다.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3]긴 팔과 큰 체격조건, 강한 팔 힘에서 나오는 배트 컨트롤로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 어떤 볼도 노리면 맞혀서 필드 멀리 날려보내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배드볼 히터로 이거다 생각하면 배리 지토의 폭포수 커브나 원바운드성 투구도 후려갈겨 홈런(속칭 골프홈런)을 때려낼 정도. 따라서 게스 히터는 아니다. 게스 히터는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으나, 게레로는 볼삼비가 상당히 좋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컨택으로 꾸준히 3할을 마크하고 매년 30개 언저리의 홈런을 쳐 낼 정도로 펀치력도 수준급. 한국에서는 이런 배팅장면을 "게선생의 골프강좌"라 부르며 업로드를 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가끔 메이저리그 현지 중계에서도 강력한 드라이브 샷이라고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 야구에서 대부분의 타자들은 손의 보호 및 방망이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장갑을 끼고 타격하지만 게레로는 맨손타격을 고집한다. 맨손으로 도끼 후려패듯 스윙하는 모습이 그의 야수와 같은 이미지 구축에 한 몫 단단히 했다.[5] 그리고 워낙 컨택이 좋아서 별 희한한 공도 다 때려내는 재주까지. 대신 이런 타입의 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볼넷을 많이 얻지는 못한다. 다만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입도 아니다. 커리어 내내 세자릿수 삼진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6] 한 마디로 들어오는 공은 일단 다 쳐내고 보는 타입. 그런데도 기막힌 컨택과 파워를 바탕으로 전성기에는 정말 모든 투수들의 공포로 군림했다.[7]
게레로의 볼넷 비율은 8.1%로 아주 적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비슷한 수준의 다른 강타자와 비교하면 볼넷이 확실히 적은 편이다. 공갈포형 거포인 새미 소사도 볼넷 비율 자체는 게레로보다 많으며, 통산 홈런 400개 이상의 강타자들 중 볼넷이 게레로보다 적은 선수는 아드리안 벨트레, 후안 곤잘레스 정도. 동시에 삼진 역시 아주 적어서 홈런타자들 중에서 게레로의 10.9%보다 삼진 비율이 낮은 타자 역시 행크 아론, 앨버트 푸홀스 등 극소수이다.
신인 시절에는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 불렸다. 장타력과 빠른 발, 강한 어깨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루 능력은 인조잔디였던 몬트리올의 홈구장에서 뛰면서 점차 줄어들었고 수비력의 발전은 없었다. 물론 어차피 코너 외야수는 어깨만 강해도 수비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상관없다고도 하지만.
적어도 송구능력은 당대에 '레이저' 소리를 듣던 스즈키 이치로와 더불어 리그 정상급을 자랑했다. 다만 몬트리올에서 뼈빠지게 고생한 결과 천사네 와서는 송구 정확도가 갈수록 안 좋아졌다는 게 문제지만... 2011년까지 현역 외야수 중 실책 1위와 보살 2위라는 기록을 동시에 가진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의 수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어깨가 대단히 좋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수비수치 자체는 나쁘게 나오는 편. 말년에는 그 덩치로 바닥이 딱딱한 인조잔디 구장에서도 물 불 안가리는 전력질주와 허슬 플레이를 펼치던 것이 누적된 대가로 무릎 부상에 신음하였고, 갈수록 지명타자 출장이 늘었다.
4. 수상 경력
수상 내역 |
MLB 명예의 전당: 2018 아메리칸 리그 MVP: 2004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2004, 2005, 2006, 2007 내셔널 리그 실버 슬러거: 1999, 2000, 2002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2004, 2005, 2006, 2007, 2010 내셔널 리그 올스타: 1999, 2000, 2001, 2002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2002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2004 아메리칸 리그 득점왕: 2004 올스타 전 홈런더비 우승: 2007 |
5. 게레로에 대한 언사
게레로는 맨손으로 스윙을 하기 때문에 손 여기저기에 늘 물집이 있었다(중략).
브라이언 슈나이더[9]
브라이언 슈나이더[9]
도무지 던질 곳이 없다. 그는 원바운드에 가까운 공도, 머리 높이로 날라오는 공도 모두 쳐낸다.
존 스몰츠
존 스몰츠
내가 본 최고의 배드볼히터.
칼 립켄 주니어
칼 립켄 주니어
[kakaotv(388743279)]
6.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 득표율(%) |
2017 | 71.7 |
2018 | 92.9 |
일단 2017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 처음으로 후보로 올랐는데, 71.7%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아깝게 첫 해 입성에는 실패했다.
이후 2018 명예의전당 투표인단의 투표 내역이 공개되었는데 공개된 투표에서 94.4%의 표를 받으며 두 번째 해에 들어갈 가능성이 유력해졌다.공개 중인 ‘2018 H.O.F.’ 투표… 존스-토미-게레로 유력(스포츠동아 기사) 그리고 1월 24일(현지시간), 최종적으로 92.9%를 득표하며 치퍼 존스, 짐 토미, 트레버 호프먼과 함께 입성에 성공했다. #
이제 남은 것은 무슨 모자를 쓸 것이냐였다. 데뷔하여 8년을 몸담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일지, 6년 동안 함께 다섯 번의 지구우승을 경험하고 개인적으로도 한 번의 MVP를 수상한 LA 에인절스일지. 2015년 1월 13일(한국 시각) 인터뷰에서는 엑스포스를 고르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에 명예의 전당 위원회의 권고로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입성한 게리 카터와 안드레 도슨과는 달리, 게레로는 스스로 엑스포스 소속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희망한 것이다.[11]
그러나 2016년 2월 27일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모자를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제 몬트리올에는 야구팀이 없으니, 에인절스이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 한편 이로부터 보름 후 본인이 트위터에 직접 "내가 명전에 입성하면 어느 팀 모자를 썼으면 좋겠냐"고 질문했는데, 약 25,000명의 응답자 중 81%가 몬트리올이라고 답했다. # 이 외에 게레로의 공식적인 입장발표는 없었다.
그리고 1월 26일(한국시간), 게레로는 에인절스를 선택했다. 평소에도 몬트리올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냈지만, 몬트리올이 그 후신(後身)인 워싱턴 내셔널스와는 아무 접점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듯. 이로써 게레로는 에인절스 구단이 배출한 첫 명예의 전당 선수가 되었다.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를 비롯한 에인절스 팬덤은 첫 명예의 전당 입성자 배출로 기쁨에 찼지만, 상당수 팬들은 "몬트리올 시절 누적성적이 훨씬 좋았다", "키워준 팀 버리고 돈 많이 준 팀 선택한 거냐" 하며 2년 전의 압도적인 설문조사 결과만큼이나 실망감을 드러냈다.
다만 에인절스에서 영구결번은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에인절스에서 썼던 27번을 마이크 트라웃이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12] 물론 마리아노 리베라의 경우처럼 트라웃의 27번을 유지한 채 게레로의 27번을 영구결번 시키고 트라웃이 은퇴할 쯤 그도 역시 같이 영구결번 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찬반여론이 갈렸다.
6.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블라디미르 게레로 | 6 | 166 | 209 | 58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21st)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블라디미르 게레로 | 59.4 | 41.2 | 50.3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2.7 | 42.9 | 57.8 |
7. 이모저모
- 그의 형 윌튼 게레로도 메이저리거였다. 박찬호 풀타임 초기에 다저스에서 내야 유틸리티로 뛰었던 그 사람 맞다. 다만 형은 동생보다 체격이 작고 신인시절 신인왕 후보에서 코르크뱃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동생에 비해 그저 그런 선수가 됐다. 현재는 도미니카에서 공장 여러 개를 돌리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조카인 가브리엘 게레로 역시 야구선수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 유망주인데, 삼촌을 닮아 역시 맨손 타격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AAA에서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9월 4일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을 입고 MLB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9월 22일 마이애미전에서 MLB 첫 홈런을 터뜨렸다. 1993년생. 2018 시즌 끝나고 마이너리그 FA 자격을 얻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와 외야수.
[13]
- 그의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도 야구선수이다. 1999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파워 포텐과 건장한 체격으로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카우터들이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유망주였고, 2015년에 390만 달러 규모의 국제 계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했다. 입단 이후 엄청난 타격 포텐셜로 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가 될 정도. 2018년 3월 27일, 시즌을 앞둔 토론토의 프리시즌 몬트리올 시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내 몬트리올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아들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맨손타격을 하지 않는 듯.
2021년 9월 1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 경기에서 아들이 시즌 45호 홈런을 때려내며 2000년 아버지의 44개 홈런 기록을 뛰어넘으면서 아버지를 뛰어넘는 아들로서 극찬을 받았다.
- 2014년 3월 31일, LA 에인절스의 홈에서 열린 개막전 겸 은퇴식에서 시구를 했는데, 나쁜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게레로가 던진 공을 에인절스의 타격코치인 돈 베일러가 받아주기로 했는데, 게레로의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베일러가 잡으려고 하다가 그만 베일러의 다리가 꺾이면서 부러져 버린 것. 이후 게레로는 베일러가 장난치는 걸로 알고 해맑게 달려갔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화면에 잡히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 한편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몬트리올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 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시범경기에서 옛 동료인 올랜도 카브레라와 드니 코드르(Denis Coderre) 몬트리올 시장과 함께 시구를 했다.[14]
- 2023년 4월 8일 LA 에인절스 대 토론토 블루제이스 홈 개막전에서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보는 앞에서 시구를 했다. 시포는 마이크 트라웃이 맡았다.
- 무시무시한 외형 때문에 본의 아닌 오해를 많이 샀지만 실제 함께했던 선수들의 증언으로는 의외로 상당히 온건하고 신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스페인어 권에 속한 선수들과 함께 클럽하우스 내에서 주말마다 꼬박꼬박 성경읽고 묵상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홀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한다. 생계 때문에 떨어져서 메이드 등으로 여러 나라에서 일해 얻은 돈을 블라디가 거주하던 도미니카로 꼬박꼬박 보내며 뒷바라지를 했고, 이후 엑스포스에 진입한 아들을 따라가 꾸준히 마인드컨트롤을 시켜주고 신앙심을 잃지 않도록 교육시켰다고 블라디가 다큐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한 언론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경기장에서 투수를 공포에 떨게하는 괴물이 실제로는 예수쟁이 마마보이라 카더라'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15] 이와는 별개로 2012년도에 본토 디스코클럽에서 일행이랑 놀던 중 경찰과 충돌해 잠시 체포된 흑역사가 존재한다.
- 메이저리거 생활을 오래했음에도 영어를 전혀 안 쓰는 선수로 유명했다. 사실 북미 지역에 많이 거주하는 히스패닉 때문에 스페인어를 사용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그리 이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다만 트위터에서는 영어를 쓰긴 하는 듯.
- 그의 사생활은 현역 때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사실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타블로이드 지 TMZ에 따르면 무려 5명의 여성에게서 8명의 자식을 보았을 정도로 난잡한 사생활의 보유자라고 한다. 2012년 기사에 따르면 8명의 자식에게 나가는 양육비만 월 25000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게레로 주니어가 화제가 되면서 한 명의 아버지로서 게레로의 인간적인 면모가 종종 언론에 회자되곤 하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 국내 한 언론에서 주니어의 동생 파블로 게레로의 계약 사실을 언급하면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
[1] 2009년 이후 주로 지명타자 출전[2] 그를 상징하는 별명 중 하나로, 강한 어깨힘과 존을 무시하는 어마어마한 타격 등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데에서 비롯되었다.[3] 움짤의 투수는 에인절스의 전 투수 제러드 위버이다[4] 어떤 기자가 "당신은 왜 그렇게 다 쳐낼라고 합니까?"라고 물어보자 "볼넷으로 걸어나가기 싫어서요"라고 답했다는 카더라가 있다.[5]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맨손 스윙선수는 거의 없지만 메이저리그에는 꽤 있다. 게레로 이외에는 뉴욕 양키스의 포수였던 호르헤 포사다가 대표적. 참고로 배팅장갑 없이 맨손으로 방망이를 잡고 스윙하다가 공을 잘못 맞힐경우 손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맨손 스윙 선수는 박석민이 있으나, 이쪽도 잦은 손가락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6] 첫 풀타임인 1998년 95개가 최다. 풀타임 시즌 삼진 48개를 기록한 적도 있다.[7] 박찬호도 신급으로 변신한 본즈보다 게레로가 더 무섭다고 했다. 박찬호의 텍사스 시절을 본 사람들이라면 오클랜드와 에인절스의 개럿 앤더슨-게레로는 아직도 악몽으로 남아있다.[8] 2001년 당시[9] 과거 엑스포스 팀 동료였고 2016년에 말린스에서 포수 코치로 활동하였다.[10] WAR도 의외로 60 언저리에 그친다. 이는 게레로보다 더 나쁜 누적을 가진 체이스 어틀리보다도 낮은 수치다.[11] 도슨의 경우 웨이드 보그스 건과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소멸 때문에 시카고 컵스의 모자를 쓰고 명전에 헌액되고 싶은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못해 다소 억울한 사례지만, 카터의 경우에는 엑스포스와 뉴욕 메츠 모자 반반씩을 쓰고 명전에 들어가고 싶다는 의견을 표해 도슨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12] 정확히는 영구결번을 하냐 마냐가 애매한 것이 아니고, 영구결번 자체는 당연히 해주는거지만 트라웃 은퇴하고 나서 둘을 같이 할지 그 전에 게레로 먼저 해줄지가 애매한 것이었다.[13] 게레로 주니어가 3살 때이다.[14] 2013년 몬트리올 시장에 취임한 드니 코드르는 몬트리올에 메이저리그 팀을 재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래서 2014년부터 시범경기 시즌 때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홈으로 하는 2연전 경기를 유치했다. 마침 2014-15 오프시즌에 탬파베이 레이스가 탬파·세인트피터스버그 지역에 신축구장을 짓지 않는다면 연고지 이전도 고려하겠다는 발언이 나온 상태라 몬트리올 야구팬들로서는 신생팀이든 연고이전이든 메이저리그 팀을 다시 유치하기를 바라고 있다.[15] The man many American League pitchers dread most is, at heart, a God-fearing, Bible-toting mama’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