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17:22:31

배리 본즈

배리 본즈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NY NY 3 4 11 20 24
크리스티 매튜슨 존 맥그로 빌 테리 멜 오트 칼 허벨 몬테 어빈 윌리 메이스
25 27 30 36 42 44
배리 본즈 후안 마리샬 올랜도 세페다 게일로드 페리 재키 로빈슨 윌리 맥코비
}}}||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
테리 펜들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2년 ~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테리 펜들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1년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제프 켄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1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행크 아론 상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행크 아론 상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앤드류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대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론 겐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데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론 겐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론 겐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레니 다익스트라
(필라델피아 필리스)
데이비드 저스티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레니 다익스트라
(필라델피아 필리스)
데이비드 저스티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모이세스 알루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레니 다익스트라
(필라델피아 필리스)
데이빗 저스티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모이세스 알루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단테 비셰트
(콜로라도 로키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단테 비셰트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리 셰필드
(플로리다 말린스)
엘리스 벅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리 셰필드
(플로리다 말린스)
엘리스 벅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그렉 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모이세스 알루
(휴스턴 애스트로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루이스 곤잘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루이스 곤잘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게리 셰필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게리 셰필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바비 아브레우
(필라델피아 필리스)
짐 에드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게리 셰필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바비 아브레우
(필라델피아 필리스)
짐 에드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미겔 카브레라
(플로리다 말린스)
카를로스 리
(밀워키 브루어스)
앤드류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0년 ~ 199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대런 루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대런 루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스티브 핀리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스티브 핀리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스티브 핀리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스티브 핀리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앤드류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앤드류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스티브 핀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앤드류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파일:MLB Logo.png 1996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 게임 홈런더비 우승자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티노 마르티네스
(뉴욕 양키스)

보유 기록
단일 시즌 최다 홈런 73개[1]
통산 최다 홈런 762개
단일 시즌 최다 볼넷 232개[2]
통산 최다 볼넷 2558개
단일 시즌 최다 고의사구 120개[3]
통산 최다 고의사구 688개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 0.609[4]
단일 시즌 최고 장타율 0.863[5]
단일 시즌 최고 OPS 1.422[6]
최다 MVP 수상 7회[7]
최다 실버슬러거 수상 12회[8]
최다 30-30 달성 5회[9]
500-500 클럽 메이저리그 역대 유일[10]

}}}||
파일:Barry_Bonds_SF.jpg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25
배리 라마 본즈
(Barry Lamar Bonds)
생년월일 1964년 7월 24일 ([age(1964-07-24)]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신체 188cm, 83kg
학력 주니페로 세라 고등학교 (졸업) (~1982)
애리조나 대학교 (학사) (1982~1986)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 PIT)
소속 구단 피츠버그 파이리츠 (1986~199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3~2007)
지도자 마이애미 말린스 타격코치 (2016)
수상 14× All-Star (1990, 1992~1998, 2000~2004, 2007)
7× NL MVP (1990, 1992, 1993, 2001–2004)
8× Gold Glove Award (1990~1994, 1996~1998)
12× Silver Slugger Award (1990~1994, 1996, 1997, 2000~2004)
3× NL Hank Aaron Award (2001, 2002, 2004)

2× NL batting champion (2002, 2004)
2× NL home run leader (1993, 2001)
NL RBI leader (1993)
기록 762 career home runs
2,558 career bases on balls
73 home runs, single season (2001)
0.609 OBP, single season (2004)
0.863 SLG, single season (2001)
1.422 OPS, single season (2004)
232 bases on balls, single season (2004)

1. 개요2. 본즈의 지인3. 선수 시절4. 약물 의혹에서 사법방해죄로
4.1. 그때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5. 그는 왜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가?6. 약물 파동, 그 이후7. 선수로서의 평가
7.1. 약물 이전7.2. 약물 이후7.3. 본즈 VS 주요 투수
8. 1위 기록9. 기록10.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11. 여담12. 코치 활동13. 연도별 기록14. 둘러보기15. 관련 문서

1. 개요

미국야구선수로 금지약물이 적발되기 전까지는 베이브 루스와도 견줄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선수였으며[11] 야구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불리우던 윌리 메이스에게 직접 인정받은 후계자로도 유명했다. 40-40을 기록한 메이저리그 4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 끝이 없는 논란 때문에 케빈 번즈의 야구 다큐멘터리 1994~2009편에서도 주인공 격 인물로 등장했다. 1990년대 스테로이드 시대로 대표되는 흑역사를 상징하는 선수. 현역 선수가 아닌, 은퇴한 타 야구선수라든가 약쟁이들에 비해 본즈 문서만 1년에 몇 차례 씩 수정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쿠퍼스타운 입성 여부 별개로 후대까지 계속 회자될 수밖에 없는 인물.

2018년 8월 11일 대부 윌리 메이스를 비롯한 많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설들, 동료, 감독, 동료들 앞에서 그의 등번호 25번을 자이언츠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5번은 그의 아버지 바비 본즈도 달았던 번호이다.

참고로 그는 사실 오른손잡이라고 한다. 다만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야구선수는 왼손이 유리하고 본즈의 대부였던 윌리 메이스 역시 왼손잡이였다며 좌투좌타로 키워냈다고.흠좀무[12]

2. 본즈의 지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였던 바비 본즈의 아들이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멤버이자 외야수 최다 골드 글러브 수상 기록자이면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5위의 전설적인 선수인 윌리 메이스[13] 대부-대자 관계이며, "10월의 사나이" 뉴욕 양키스레지 잭슨과는 이종사촌 관계이다.

이는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자기 아들을 키우기 위해 배리가 어릴 적부터 지인들과 꾸준히 만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스타[14]가 되는 것이라서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길러왔다고 한다.

바비는 아들 배리를 애지중지 업고 다니며 키웠다. 한시도 아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철저히 좌투좌타 기초부터 시작해서 야구의 모든 것을 전수한다. 아들의 모든 시합을 관람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인 배리에게 사람들의 사인을 받게 하고 대부인 윌리 메이스를 멘토로 그의 모든 것을 배우라고 교육시킨다.[15] 메이스와 본즈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본즈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식에 본즈가 메이스에 대한 존경을 표출하고 756호 홈런 신기록 경기에서도 함께 했다.

3. 선수 시절

파일:PAP20120209007001034_P2.jpg

커리어만 보면 야구 역사상 유일한 400-400을 넘어 500-500, 700-500을 달성하는 등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역대 최고의 홈런, OPS 타자.

배리 본즈/선수 경력 참조.

하지만, 후술할 약물 복용으로 인해 그의 명예는 전부 실추되었다.

4. 약물 의혹에서 사법방해죄로

2004년 10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랭스 윌리엄스와 마크 페이나루 와다 기자는 “배리 본즈가 2003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른바 ‘BALCO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캘리포니아 검찰당국은 전해인 2003년 빅터 콘티가 운영하는 베이만연구소(BALCO)가 기존 도핑 검사에 적발되지 않는 신종 스테로이드 제품을 운동선수들에게 불법 제공한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를 개시했다. 약품 제조에 관여한 본즈의 개인 트레이너 그레그 앤더슨의 집에서는 스테로이드와 함께 선수 명단과 전화 번호가 발견됐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의 두 기자는 앤더슨의 증언이 녹취된 테이프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두 달 뒤 이 신문은 “본즈가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했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본즈는 이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했지만 그에게는 ‘약물로 성적을 끌어올린 선수’라는 딱지가 영구히 붙게 됐다. 그리고 두 기자는 미공개 법정 증언을 입수해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지만 2009년 2월 기소가 취소됐다.

연도별로 본즈의 체중 변화다. 의혹 전과 후가 생김새부터 극명히 다르다.

파일:attachment/1986.jpg
데뷔시즌인 1986년 체중 91kg

파일:attachment/1997_1.jpg
13년이 지나 98kg가 된 1997~98년

파일:attachment/2002.jpg
10kg가 늘어난 108kg인 2002년

파일:attachment/2007_3.jpg
2007년 은퇴까지 108kg를 유지.

파일:attachment/1365426656.jpg
파일:attachment/1365426500.jpg
2002 월드시리즈를 기념한 2012년 샌프란시스코 행사. 같은 사람 맞아? 현역시절 빵빵하던 체격은 사라지고 홀쭉해졌다. 약물이 다빠져 홀쭉해졌다 보통 은퇴하면 살이찌는 운동선수들이 많은데 본즈는 정반대.

사실 약물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을 때 웬만한 야구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렸던 선수이긴 하다. 왜냐면 1년 사이 생김새가 너무 달라져서.

1998년까지만해도 그야말로 호타준족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법한 날씬하고 날렵한 몸매였지만 1년새 완전 보름달 얼굴을 한 헐크가 돼서 나타났다. 2000년 스프링캠프에 무려 근육으로 9kg이상 벌크업 해 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서 본즈와 약물에 관한 주요 논점의 사실관계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1938년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 처방약은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처방약에 포함됨.

2. 1970년 물질통제법(Controlled Substances Act) : 불법 약물 사용, 판매, 소지에 대한 형사 처벌 명문화. 코카인, 헤로인 등 마약 남용 현상을 막기 위해 제정.

3. 1988년 개정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의사 처방이 없거나 질병 치료용이 아닐 경우 처벌 대상 약물에 포함됨. 1990년 개정에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성장 호르몬에 대한 처벌을 강화.

4. 1991년 페이 빈센트 커미셔너는 비망록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금지약물 목록에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5. 1994년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약물 프로그램을 단체협약에 넣으려 시도했다. 의무 검사 조항이 없는 계획이었지만 선수노조는 거부했다.

6. 2002년 8월 30일 메이저리그 노사는 새 단체 협약에 합의했다. 이 협약에는 1년에 3회 무작위 약물 검사를 한다는 조항이 삽입됐다.

7. 2004년 언론기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본즈가 2003년에 연방대배심에서 금지약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계 물질을 사용했다고 증언했다는 특종 기사를 썼다.[16] 그리고 아나볼릭스테로이드통제법(Anabolic Steroid Control Act)을 통해 마크 맥과이어가 복용했던 안드로스텐다이온 등 스테로이드 전구물질이 규제 대상이 되었다. 또한 동년, MLB에서는 최초로 약물검사를 실시하였다. 다만 04년의 검사는 비공개를 전제로 하였다.[17]

8. 2005년에는 성장 호르몬이 처음으로 금지약물 목록에 올랐으며 첫 적발 때 10일 출전정지, 2번째에 30일 출전정지, 3번째에 60일 출전정지, 4번째에 1년 출전정지로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2005년 2월 호세 칸세코의 <주스드>가 출판되자 의회는 3월 17일 메이저리그 약물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한 달 뒤 메이저리그 노사는 스테로이드 첫 적발 때 50경기 출전정지, 2번째에 100경기 출전정지, 3번째에 영구제명으로 벌칙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9. 암페타민을 복용한 선수가 스프링캠프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2006년부터 금지약물로 분류[18]

10. 2006년 약물검사에서 본즈는 암페타민이 적발되었지만, 출장 정지 징계는 없었다.[19] 이에 대해 본즈는 "팀동료인 마크 스위니 라커에 있는 건강보조제를 먹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11. 2009년에 2003 혹은 2004년 본즈의 소변 샘플을 재검사해서 스테로이드를 적발했다.[20]

12. 2010년, 연방대배심에서 본즈는 위증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재판방해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21] 받았다.

13. 2015년, 재판방해죄에 대해서도 무혐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위증혐의의 무죄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약물을 한 적이 없다가 아니라 약물을 복용했지만 나(배리 본즈)는 그것이 약물인지 몰랐다. (어차피 도핑은 무과실책임이라 그가 알았든 몰랐든 약물이 들어간 것을 인정한다면 약물을 자백한 것이다.)[22]

애초에 본즈가 연방대배심에 소환된 건 본즈의 약물 복용은 그다지 상관이 없었고 발코연구소를 잡기 위한 증거와 증언의 확보가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즈는 "나는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 "나는 발코연구소와는 알지도 못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다"라고 증언을 했다. 하지만 트레이너였던 앤더슨의 가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본즈의 약물 복용 기록과 약물 검사 등을 기록한 일지가 발견되었고 이후 본즈는 "약물을 복용한 건 맞지만 트레이너가 준 것을 복용했을 뿐이고 나는 그것이 금지약물인지 몰랐다"라고 증언을 번복한다.[23][24]

즉 재판의 초점은 약물 복용이 아니라 복용한 약물의 제조와 유통과정, 그 모든 것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발코연구소를 노린 재판이었다.

참고로 이 재판에서 로저 클레멘스는 팀 동료와 트레이너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당연한 것이다. 약물했다고 재판이 열린 것이 아니고 발코연구소와의 관계를 묻는 재판이니깐.).

본즈 건 클레멘스건 이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약쟁이들의 옹호논리에서 종종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드는 경우가 있는데, 애초에 본즈가 불법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건으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스테로이드를 불법적인 과정으로 복용했지만, 이것이 스테로이드인 줄 몰랐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건으로 기소된 것이다. 즉 법정에서 무죄가 나왔다는 것과 약쟁이가 아니란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무죄가 나와도 약쟁이는 약쟁이. 항상 염두하자 도핑은 무과실책임이므로 설사 몰랐다고 해도 약쟁이!! 몰랐다는 것도 상식과 증언에 따르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본즈에게 약물을 제공했던 개인 트레이너 앤더슨이 증언 거부를 하고 감옥으로 간 게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약물 복용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검찰은 배리 본즈에게 위증죄를 적용했고 이후 수사를 하면서 밝혀진 각종 정황을 근거로 위증죄가 아닌 한 단계 더 높은 사법방해죄를 적용하면서 사건이 커지게 된다. 즉 검찰은 배리 본즈가 약물을 알고 복용하고 위증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후 적극적인 가담, 조직적 은폐를 했다고 본 것. 발코연구소를 잡기 위한 재판이 엉뚱하게도 배리 본즈 vs 검찰의 사법방해죄 공방으로 변하고 당시의 배리 본즈의 위상과 겹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주종이 뒤바뀐 싸움이 시작되고 만다.

4.1. 그때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헛소리다.

일각에서는 MLB에서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로 지정된 것은 2005년이 되어서이니, 본즈는 약은 빨았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25]

그러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부터 이미 올림픽 금지약물이었으며, 따라서 그게 나쁜건 줄 모르고 빨았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스테로이드는 2005년에 MLB 금지약물로 지정된 것이 아니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약물들은 1991년에 금지 약물로 지정되었고, 그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페이 빈센트(Fay Vincent)는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불법적인 약물의 사용과 거래를 금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문서를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배포했다. 6년 후인 1997년에는 빈센트 커미셔너의 후임이었던 버드 셀릭(Bud Selig) 커미셔너 대행 또한 그와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스테로이드에 대한 본격적인 처벌이 시작된건 그보다 훨씬 지나고나서지만, 스테로이드는 본즈가 빨던 시절에도 명백한 금지약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까지는 본격적인 처벌이 없었다고 쉴드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까고말해 시험장에서 컨닝하다가 걸렸는데 감독관보고 "왜 이때까지 다른 놈들은 안 잡아갔으면서, 이제서야 ㅈㄹ하세요?"라고 변명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차라리 맥과이어가 대놓고 복용했고,[26] 이후 피아자가 복용했다고 자수했던, 안드로스텐다이온(속칭 안드로)이라면 경기력 향상 약물은 맞으나 2004년까지는 금지 약물이 아니었기에 명전 입성에도, 현역 연장을 통한 3000안타와 같은 기록 달성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이건 1991년도부터 금지 약물이었으므로 본즈는 빼박 약쟁이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도 제기된다.
위와 같은 사실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올림픽과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 규정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페이 빈센트의 공식서한 및 버드 셀릭의 주장 역시 조항(policy)화 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페이 빈센트 당시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서 약물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현황은 알지 못했으며, 단지 약물문제가 불거지는 타종목과 달리 야구계에는 약물 문제가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메이저리그 자체에서 구두로 규정화한 것에 불과하다거나, 성문의 규정을 둔 게 언제인가를 다투는 것은 선수 평가에 있어 큰 의미가 없다. 이미 약본즈가 스테로이드를 몸에 넣은 것 자체가 미국의 물질통제법에 어긋나서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법률 앞에 리그 규정 유무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어떤 변명을 해도 배리 본즈는 불법으로 금지 약물을 몸에 넣고 경기력을 향상시킨 약물 타자이다.[27][28]

5. 그는 왜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가?

본즈가 스테로이드에 손을 댄 이유에 대해선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본즈는 이미 96년에는 40-40 클럽에 가입하고, 98년에는 400-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400홈런-400도루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런 기록을 세운 선수가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8년 시즌에 메이저리그 팬들의 모든 시선은 마크 맥과이어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에 쏠려있었다. 최고라고 자부하던 본즈는 베이브 루스로저 매리스만이 기록했던 단일시즌 60홈런을 훨씬 상회하는 기록을 남긴 이들에게 질투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400-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도 마크 맥과이어의 시즌 최다 홈런기록 경신이 더 주목을 받자 배리 본즈는 호타준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무조건 홈런 많이 치는 게 장땡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이다.

<Game of Shadows>는 본즈의 약물 복용동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즉, 98년 마크 맥과이어의 열광적 인기에 질투하고 분노한 본즈가 스테로이드 전문가를 찾기 시작하면서 약물을 복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건강식품 구입말고 약물에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기술되어 있었고, 오히려 맥과이어, 소사가 분명한 약쟁이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분노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맥과이어의 인기를 AT&T 파크에서 직접 목격하고 광분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본즈에게 있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본즈는 맥과이어가 약쟁이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맥과이어와는 달리 본즈는 건강식품 가게에서 기껏해야 단백질 세이크를 살 뿐이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 중, 본즈는 맥과이어가 자신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경의와 인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걸 보고 결심을 굳혔다. 지금까지 말 그대로 개똥 취급해 온 그것, 약물을 복용하기로.

사실 논란의 시기 이전만으로 명예의 전당행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약을 안 먹었더라면 통산 커리어는 최종 스탯보다 (특히 홈런 면에서)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약 먹기 전인 90년대에 이미 완성한 400-400은 전인미답의 대기록이었다.[29] 게다가 오히려 약물 사용으로 인해 불어난 체중과 상식을 초월한 고의 사구 개수로 인해서 도루 개수, 안타 개수 등에서 손해를 봤던 것을 생각하면 500-500을 넘어서 600-600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고, 3000안타도 달성했을 지도 모른다.[30]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약물 스캔들로 인해 실패했다.

다만 약물 복용 시기와 이유는 어디까지나 예상일뿐이고, 그가 스테로이드를 손댄 시기가 과연 99년인지 그 이전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반칙을 사용해 잘 나갔기 때문에 똑같이 갚아줬단 말도 본즈의 팬들에게는 동정심을 일으키겠지만, 일반팬들에게는 결국엔 말도 안되는 핑계라 느껴질 수 있다. 참고로 맥과이어는 약물 복용을 시인했고, 소사는 본즈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약물 의혹을 부정했다.

다음 기사를 보면 베이브 루스에 대한 질투 때문일 수도 있어 보인다.
지난해 7월 20일 오클랜드의 맥카피 콜리세움 하늘에 714호 아치를 그려 ‘백인의 우상’ 베이브 루스와 나란히 하는 이정표를 세운 본즈는 이렇게 소감을 밝히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털어놨습니다. "엄청난 구원이다 ."
본즈에게 루스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와 어깨동무함으로써 비로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질투와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658홈런을 날리며 루스의 기록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2003년 이미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755는 내 눈을 사로잡는 숫자가 아니다.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숫자는 오직 714뿐이다. 나는 루스와 같은 왼쪽 타자로 시즌 장타율, 출루율, 볼넷 등 그의 기록을 모두 지워 버렸다.[31] 그런데 아직도 그가 야구의 모든 것이다. 좋다, 이제 마지막 남은 그의 홈런 기록을 깨 버리겠다.”
755개의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던 행크 애런보다, 더 뛰어넘고 싶은 질투의 대상이자 목표였던 게 바로 루스였던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흑인이므로 백인 루스에 대한 감정이 심했다.[32]
본즈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경신할 것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714)이며, 나의 우상인 행크 애런의 기록(755)은 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홈런 1위인 행크 애런은 흑인, 2위 베이브 루스는 백인.
"루스의 기록은 흑인이 메이저리그에 뛸 수 없던 시절에 작성됐으니 가치가 없다. 따라서 내가 지워버리겠다"는 것이 본즈의 변. 결국 행크 애런은 존경의 대상, 루스는 '사이비'라는 주장이다. 현재 643홈런으로 윌리 메이스(660개)에 이어 역대 홈런 랭킹 4위인 본즈는 "지난달 캔자스시티의 니그로리그 박물관에 다녀온 뒤 그 숱한 기록들이 인정받지 못하는데 분개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베이브 루스를 야구의 신으로 받들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백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33]

6. 약물 파동, 그 이후

2010 월드시리즈 관람 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격코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역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강하게 받은 마크 맥과이어가 현역 타격코치로 일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맥과이어는 타격코치 임명 전에 자신의 스테로이드 복용에 관해서 다 밝혔지만, 본즈는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모든 것을 밝힐 경우 2010년 3월에 예정되어있는, 2003년 연방대배심에서 고의로 스테로이드 복용을 하지는 않았다고 위증한 죄에 대한 재판에서 백프로 지게 되니까.

'2010년 3월에 열린 연방 대배심에서는 위증한 죄에 대해서는 무죄 평결이 났으나, 애매한 증언으로 재판을 방해한 죄가 인정되었다. 이에 따라 본즈의 의도적 스테로이드 복용은 법적으로 영원히 무혐의로 남게 되었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증죄'에 대한 무혐의지 본즈가 약물을 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본인이 지켜낸 것은 겨우 고의로 약물을 복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뿐, 스테로이드 사용했다는 객관적 사실은 본인도 자백한 것이고, 약물 검사에서도 적발되었으며, 추가로 금지 약물로 지정된 이후 암페타민까지 복용한 것이 약물 검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론 위증죄는 벗어났지만 재판과정에서 본즈의 수많은 치부가 까발려짐에 따라 이미지는 시궁창으로 떨어지게 된다.
본즈가 트레이너와 주사 주입에 대해 의논하는 통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관련자들에 대한 본즈의 협박과 욕설 및 트레이너에게 보내진 익명의 협박장(......) 등이 언론을 통해 낱낱히 까발려지고 스포츠 신문 1면을 연일 차지하게 된다.

이는 이후 약물혐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약물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다가도 본게임인 재판 혹은 조사회가 시작되면 얌전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34]

2011년 12월 17일에 열린 재판방해죄 재판에서 30일의 가택구금과 250시간의 사회봉사, 4천달러의 벌금과 함께 2년간의 보호관찰이 결정됐다. 2012년 02 월시 진출 기념한 레전드 초청에 제프 켄트와 더불어 모습을 드러내고 백수 모드를 유지 중.

이후에 스프링캠프에 간간히 샌프란시스코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2015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측에서 본즈를 정식으로 타격 코치로 영입할 가능성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본즈에 대한 시선이 영 좋지 않아서 구단 측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을 무릅쓰면서도 샌프란시스코가 본즈를 코치로 영입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잠깐이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본즈가 건드렸던 선수들은 성적이 상승했다. 때문에 본즈의 코칭 능력 자체는 기대해볼 수 있겠다. 약물 반성도 없는 작자가 코치를? 선수에게 약물 몰래 권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2015년 11월 말부터 마이애미 말린스가 본즈를 타격 코치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2월 4일 말린스가 본즈를 타격 코치로 공식적으로 선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마크 맥과이어의 선례에서 보듯 선수 시절엔 논란의 시기 이전부터 무시무시한 타격성적을 뽑아내던 괴물이었던 만큼, 스탠튼을 포함한 말린스 타선을 자신만의 메카니즘으로 개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3월 시범경기 도중에 말린스 타자들과 장난으로 홈런더비를 하더니 지안카를로 스탠튼과 크리스천 옐리치를 상대로 우승했다.

2016 시즌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단장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2018년 2월 5일 (현지시각) 그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썼던 25번을 공식 영구결번으로 처리되었다.[35] 영구결번식은 8월 12일 열린다.

본즈의 영구결번에 대해서 말이 많긴 하지만, 다른 구단에도 꽤 많은 약쟁이들이 영구결번을 받았으며, 이 작자하고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약쟁이 출신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일도 있기에(...) 여론을 의식하면서 10년간 영구결번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은 듯하다. 성적 자체로는 명예의 전당을 가고도 남는 성적이기 때문이다.

7. 선수로서의 평가

약물 선수는 커리어를 통째로 부정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지만, 배리 본즈 문서이므로 본즈에게 유리하게 약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물 복용 시점을 추정해 봐야 한다. 디 고든의 경우와 같이 멸치도 약물인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또 본즈는 스테로이드 외에도 온갖 약물을 섭취했다는 점에서 의심스럽지만, 본격적으로 근육돼지가 된 1999년을 약물 복용 시점으로 잡는 견해가 우세하다. 참고로 본즈의 옛 애인인 킴벌리 벨은 "본즈가 1999년 팔꿈치를 다치자 '스테로이드 때문에 근육과 힘줄이 더 빨리 자라면서 관절이 감당할 수 없어 팔꿈치가 터진 꼴이 돼버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7.1. 약물 이전

약물 이전이라고 평가받는 1986년부터 1998년까지의 평균 성적은 타 .290 출 .411 장 .556 OPS .967 32홈런 94타점 34도루 wRC+ 159 fWAR 7.6를 기록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선수인 알버트 푸홀스의 아름다운 10년(2001~2010)과 1990년대 최고의 선수인 본즈의 전성기 10년(1989~1998)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본즈 순위[36] 항목 푸홀스 순위
1491 2위[37] 경기 1558 3위[38]
6391 3위[39] 타석 6782 5위[40]
5119 14위[41] 타수 5733 11위[42]
1529 10위[43] 안타 1900 3위
313 7위[44] 2루타 426 1위
346 2위[45] 홈런 408 1위[46]
778 37위 삼진[47] 646 116위
1166 1위 볼넷 914 6위[48]
1.50 8위 볼삼비 1.41 3위[49]
360 5위 도루[50] 75 90위
99 55위 병살[51] 203 2위
1051 1위 타점 1230 1위[52]
1096 1위 득점 1186 1위
.299 34위[53] 타율 .331 1위
.429 2위 출루율 .426 2위[54]
.581 2위[55] 장타율 .624 1위[56]
1.009 2위 OPS 1.050 1위[57]
168 2위 wRC+ 169 1위[58]
85.1 1위[59] fWAR 77.5 1위

본격적인 전성기는 1990년 첫 MVP를 수상하면서부터다. 약물을 복용 시점으로 추정되는 1999년 이전에 이미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역대급의 괴물로 평가받았다. 날렵한 몸매로 3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면서[60] 1993년엔 46홈런으로 홈런왕도 기록할만큼 파워 또한 출중했고 따라서 90년대 본즈는 거의 매년 30+홈런과 30+도루를 기록했다.[61] 본즈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일화 몇개를 소개하자면....

사례1
본즈는 2회 만루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상대팀 콜로라도 2루수 에릭 영에게 "다시 올게"이 분?라는 말을 했다. 다음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영에게 정말 다시 와서 "볼넷을 얻어낼게"라 말했고 정말 다음 타석에서 해냈다.

사례2
본즈는 상대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귀신같이 예측했다. 한번은 대기타석에 준비하고 있는 투수 제프 쥬든에게 "처음에 몸쪽 직구, 2구는 체인지업을 던지고 나는 그걸 골라낼 것이고 다음으로 던질 직구를 쳐서 좌익수쪽에 보낼 것이다". 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상대투수 스티브 민츠는 본즈의 예언대로 직구, 체인지업을 던졌고 본즈는 3구로 날아온 직구를 받아쳐 440피트짜리 대형 홈런을 날려버렸다.

첫 MVP를 수상한 1990년 34홈런-52도루로 30-50을 달성했으며, 1996년 42홈런-40도루로 역사상 2번째로 40-40 클럽에 가입했으며, 1997년에는 40홈런-37도루로 또다시 40-40에 근접한 기록을 보여주었다.[62]

거기에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간 .305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함도 보유했고, 매년 .400 이상의 출루율을 찍으며 선구안 또한 단연 발군이었다. 지금처럼 볼넷과 출루율의 가치를 높게보지 않던 90년대였음에도 한 시즌 150개의 볼넷을 골라내던 괴물.[63] 거기에 홈런왕을 기록할 정도의 장타력까지 갖추었으니 이 무슨..... 이런 괴물과 상대하고 싶지 않은 상대팀 투수와 감독들은 본즈를 연신 고의사구로 출루시켰고, 훗날 120개의 인간을 벗어난 기록 이전에도, 당대 고의사구를 가장 많이 얻어내는 상대팀의 공포였다.

가장 충격스러운 일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냈던 사건. 얻어맞는 것보다 한점만 주자는 극한의 전략으로 1998년 5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벅 쇼월터 감독이 마무리 투수 그렉 올슨에게 8:6의 상황에서 본즈를 고의사구하라 지시. 1점을 내주고 다음 타자인 브랜트 메인을 범타로 잡아내며 승리를 쟁취했다. 이전까지 없었던 충격적인 일이자 본즈가 어떤 레벨인지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천재적인 주루 능력과 더불어 외야수로서 통산 8번이나 골드 글러브(본즈는 좌익수다!!! 골드 글러브를 대부분 가져가는 수비 괴물들이 포진해있는 중견수도 제친 것이다[64]) 를 수상할 정도의 수비까지 완벽한 선수였다. 본즈는 당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화려함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수비수였다. 단적으로 본즈는 89년부터 92년까지, 95, 97, 98년에 좌익수 자살 1위에 올랐으며, 89~91년, 94, 95, 04년에는 보살 1위에 올라 역대 좌익수 자살 1위, 보살 6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팬그래프의 역대 수비 지표에서 좌익수 역대 2위이며, 레퍼런스의 Total Zone Runs에서도 1위를 점하고 있다.

참고로 1989~1998까지 외야수들의 팬그래프 수비 점수는 다음과 같다.[65]
파일:본즈외야수비점수.png

이런 본즈는 90년대 최고의 선수라는 말이 가장 익숙했었고, 인기에서 그리피에게 밀리긴 했어도 실력으론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의 No.1 이었다. 명예의 전당이야 98년에 은퇴했어도 당연한 일이었고...
거기에 1998년 역사상 최초로 400홈런-400도루 고지를 점령하고, 98년까지 거의 2000개에 육박하는 안타를 쳤기 때문에 이미 정점을 찍은 상태였다. 미국의 일부 야구 전문가들은 본즈가 논란의 이전 시기와 같은 스타일을 유지했을 시, 600홈런과 함께 전무후무한 600-600 클럽도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66] 400-400은 말할 것도 없고, 300홈런-30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인물도 본즈를 제외하고 고작 7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소가치가 높은 기록이다. 2017년 현재까지 달성자는 그의 대부 윌리 메이스(660홈런, 338도루)[67][68]와 아버지 바비 본즈(332홈런 461도루)를 비롯, 안드레 도슨, 레지 샌더스, 스티브 핀리, 알렉스 로드리게스, 카를로스 벨트란.

그야말로 본즈는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잡고 잘 넘기고 잘 골라냈다. 그의 대부이자 MLB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로 꼽히는 윌리 메이스 이후 최고의 야구선수라는 말에 누구도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메이스보다 부족한 것은 오로지 인성(혹은 매력)이라는 야구 외적인 요소일 뿐.[69]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의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야구가, 자신이 경멸하던 약물 돼지들의 단순한 홈런 개수보다 초라하게 취급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7.2. 약물 이후

약물 이후라고 평가받는 1999년부터 2007년의 평균성적은 타 .316 출 .505 장 .712 OPS 1.217 39홈런 87타점 8도루 fWAR 7.2 최전성기를 달리던 2001년부터 2004년의 평균성적은 타 .349 출 .559 장 .809 OPS 1.368 52홈런 109타점 8도루 fWAR 11.9를 기록했다.

클래식 스탯이라든가 타출장은 확실하게 올랐지만 정작 fWAR가 그 이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1. 평균 자체를 07년까지로 잡았기 때문
본즈는 05년에 부상으로 14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하였으므로 평균을 내면 굉장히 깎이게 된다. 06, 07년 경기수가 조금 줄은 것은 그냥 늙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보통의 모습이다. 또한 1999는 부상으로 434타석 밖에 서지 못했다.

2. 세이버 메트릭스 자체가 완벽하지 않음
세이버 메트릭스란 결국 응용 통계학의 한 분야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계학에서 완벽함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신뢰도는 잘 쳐줘야 99%일 따름이며, 예외의 경우가 통계인 이상 당연히 발생한다. 그런데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시즌 볼넷 20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예외의 경우에 속함은 당연한 것 같다.

풀어 말해, 현재의 세이버메트릭스는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원초적 결함을 안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볼넷과 홈런의 가치는 다르며 따라서 WAR 수치에서도 다르게 반영된다. 73홈런을 때려낸 01시즌 이후, 02시즌부터 04시즌까지 본즈는 기껏해야 45홈런 언저리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기록의 까닭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 무수한 고의사구 때문이었다.[70] 본즈의 고의사구 비중이 상식적인 수준이었다면, 그가 70+홈런을 02~04시즌 중에는 언제라도 기록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할 때 본즈의 실력, 본즈의 가치가 변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고의사구 비중이 얼마가 되었든 본즈는 본즈일 따름이며, 그는 단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플레이했던 것일 뿐이다. 얼마든지 홈런을 때려낼 수 있지만,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은 볼넷으로 걸어나가야 해서, 선수의 가치와 팀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결론은 실로 괴상하기 짝이 없다.[71] 현재 WAR의 기준이 되는 wRAA의 기반이 되는 wOBA는 고의사구는 분자와 분모에서 모두 빼버린다. 이는 고의사구 자체가 그리 많이 나오는 일이 아닐 뿐더러 선수 자체의 위상보다는 작전의 경향이 강하다고 보기 때문인데,[72][73] 본즈는 선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시즌에 세 자리수의 고의사구를 기록했던 유일한 선수라는 점에서 이러한 wOBA 계산법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특정인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안에서만 논해야 함은 실로 당연하다. 예컨대 법률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상식을 받아들여 위법성 조각 사유[74] 따로이 마련해 놓고 있다. 본즈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 무수한 볼넷들은 본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대 고의사구 랭킹 2, 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알버트 푸홀스행크 애런의 경우, 개별 시즌을 놓고 볼 때 해당 기록 수치들이 시즌 전반의 통계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만 고의사구가 120개인 경우는, 현재의 세이버 메트릭스로써는 도저히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간단히 스탯으로 말한다. 당시 본즈는 타격 3할이 기본에 맘만 먹으면 볼넷이 많이 줄었을지는 몰라도 4할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근거가 있나? 과연 그럴까? 타격이란 그렇게 엿가락처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없을텐데? 약이 장타는 팍팍 올려줘도 타율은 그만큼 올려주는 약이 없어서 당연히 약을 하면 타율도 올라간다. 늘어난 근력의 힘으로 뱃 스피드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만큼 공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선구안이 향상되고, 빠른 스피드와 향상된 근력으로 더 정교한 뱃 컨트롤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컨택트도 향상된다. 또한 향상된 장타력으로 외야플라이가 될 공도 홈런을 만들 수 있고 라이너성 타구에 힘을 실어서 유땅이나 2땅이 될 공을 외야수앞 안타로 만들 수 있어 약물로 인해 근력이 상승하면 당연히 타율이 올라간다.[75]

흔히 4할 출루율이라고, 출루율이 타율보다 1할 정도 높으면 매우 뛰어난 선구안을 가졌다거나 위압감이 강력한 타자라 칭하지만, 본즈는 그 갭이 2할을 넘나들었다.[76] 흔히 순수장타율(ISO)이 2할이고 컨택도 괜찮아서 장타율이 5할을 찍으면 수준급의 슬러거라 하지만, 본즈는 절대장타율이 5할이었다. 3-4-5 타자는 OPS가 못해도 0.900을 찍는 법이고 3-4-5가 아니더라도 흔히 강타자를 평가할 때 OPS 9할을 기준으로 삼는데, 본즈는 장타율만 7~8할이었다. 리그 평균 OPS가 7~8할 사이를 오가는데, 본즈의 커리어 하이 OPS는 2004시즌의 1.422였다.[77] 참고로 2004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OPS 2위가 토드 헬튼의 1.088였고[78] 전체 100위는 칼 크로포드의 0.781이었다.(메이저리그 평균 OPS는 0.763)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2위와 100위의 격차보다 더 컸다(...).

천재가 약물의 힘을 빌어 야구의 상식을 초월한 괴물이 되어버렸으니 투수들은 더 이상 스트라이크 존 어디에도 던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2002년 47삼진 198볼넷, 2003년 58삼진 148볼넷, 2004년 41삼진 232볼넷이라는 그야말로 정신나간 볼삼비를 기록했다. 약물에 의해 선구안이 좋아진 게 아니라 약물에 의한 스윙스피드와 파워의 조화를 유지하고,[79] 이를 바탕으로 모든 코스의 공을 다 때려낼 수 있게되는 바람에, 투수들이 도저히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80] 아예 2002년부터 현대야구에서 상식을 벗어난 고의사구를 기록한 이후, 2004년 고의사구 120개라는 야구 기록의 파괴를 극한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고의사구가 120개일 뿐, 투수들은 아예 대놓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않기 시작했으며, 사실상 고의사구는 200개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81][82] 게다가 2004년에는 41삼진 45홈런으로 홈런이 삼진보다 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그나마 2001년에는 170개가 넘는 말도 안되는 볼넷을 얻었지만, 그래도 투수들은 본즈와 맞서야할 때는 최선을 다해 승부했으나....[83] 그 결과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록이라던 마크 맥과이어의 70개를 3년만에 갈아치워버린 73개의 홈런이었다. 그 후 본즈와 상대하는 팀들은 아예 상식을 초월한 존재로 대하면서 당연히 거르고, 나머지 선수들만 모아서 경기하는 것과 같았다.[84] 이런 인식은 갈수록 극에 달해, 본즈가 타석에 서면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 않는 투수가 정상으로 보였다. 한 예로 2004년 4월 본즈는 2번이나 4타석 4고의사구 경기를 치뤘다. 4월 마지막 3연전에서는 첫날 홈런 하나, 안타 2개, 볼넷 2개, 고의사구 1개를 기록했는데, 이후 2경기에서 볼넷 7개와 고의사구 5개를 얻었다.[85]

이처럼 본즈의 기록은 '당대 최고'나 '역대급'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본즈와 함께 하는 경기장 안의 선수들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너무나 큰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야구의 본질이 흔들리고 야구의 역사가 쌓아온 업적을 허무하게 파괴하는 등, 상식선에서 감내할 수 있는 한계치를 멀찌감치 초월해 버렸다.

약본즈의 기록, 특히 01~04년의 기록은 체격과 기술의 발달로 실력의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현대야구에서는 야구의 신이 현세에 강림한다고 해도 금지 약물 복용이라는 cheating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기록이었다.

참고로 상식 있는 야구팬들을 위한 위로를 하나 하자면 약본즈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한 투수는 그렉 매덕스였다.
파일:약본즈가약한투수.png

또한 본즈는 커리어 내내 병살타가 상당히 적은 편인데(22시즌 165개, 시즌 평균 7.5개) 기본적으로 좋은 공만 치는 선구안으로 나쁜 타구를 만들지 않았고 커리어 초중반에는 빠른 주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3개의 병살을 친 94년 단축 시즌을 빼면 특히 99~04년에 병살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 한 자리수 중반에 불과했다. 노쇠화와 약물로 주력이 떨어졌음을 생각하면 병살이 될만한 타구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약으로 인해 타구의 질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다.[86]
  • '2.'에 대한 반론
2항에서 나온 자료에 기반하지 않은 상상(예: 마음만 먹으면 타율 4할 도전 가능, 실질적 고의사구 약 200개)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자료로써 증명할 수 있는 것들만 살펴보면 2항은 다음에 기인해 약물 본즈가 wOBA나 WAR에서 아웃라이어인 것처럼 기술한다.
가. 고의사구가 너무 많아서 너무 손해를 많이 봤다. WAR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wRAA의 기반이 되는 wOBA는 고의사구는 분자와 분모에서 모두 빼버린다.
나. 볼넷이 너무 많았다. 본즈는 얼마든지 홈런을 때려낼 수 있지만,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은 볼넷으로 걸어나가야 해서, 선수의 가치와 팀 기여도가 떨어진다. 즉 고의사구나 볼넷으로 거르지만 않았으면, 약본즈는 항상 70홈런 이상을 뻥뻥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므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가'항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고의사구가 wOBA, wRAA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 wOBA는 비율 수치이다. wOBA를 계산할 때 고의사구는 분자와 분모에서 모두 빼버리는데 이게 약본즈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때 통계의 예외를 이야기할만큼 불리할까?
그렇지 않다. 고의사구는 wOBA의 수치를 전혀 변동시키지 않은채 타석 수를 늘려주기 때문에 wOBA가 높은 선수일수록 고의사구로 얻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WAR의 기준이 되는 wRAA가 누적 수치임을 상기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요소이다. 즉 고의사구는 WAR에서 전혀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타석수를 늘려주므로 약본즈의 역대급 wOBA의 성과를 더욱 극대화시켜준다.
평범한 MVP급인 wOBA .400의 고의사구 1개와 .500를 가볍게 넘는 약본즈의 고의사구 1개는 비율 스탯인 wOBA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그렇지만 누적 수치인 wRAA는 고의사구를 당한 타석이 늘려주며, 전자보단 후자가 더욱 늘려주기 때문에 같은 누적 스탯인 WAR도 더욱 차이가 난다. 약본즈는 고의사구 당할수록 오히려 다른 타자들보다 이득을 보는 것이다.[87]
고의사구가 너무 많아 wOBA가 상정하지 못한 아웃라이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시즌 첫타석에서 삼진 아웃을 당한 베이브 루스테드 윌리엄스 같은 대타자를 이후 시즌 끝날때까지 고의사구로 거르는 경우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어야 하므로, 시즌 100홈런보다 더욱 비현실적인 일이다. 참고로 본즈가 얻은 고의사구를 모두 평범한 볼넷으로 치환하여 2004 시즌의 WAR를 계산하더라도 13.2 정도이지 상상할 수 없는 20, 30 정도의 수치는 아니다.[88]
위의 논의는 고의사구가 wOBA를 가감하지 않지만, 타석을 늘려준다는 점에서 본즈에게 손해가 아님을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가'항의 주장이 고의사구들을 당하지 않았으면 그 타석들에서 무조건 자신이 가진 기존의 wOBA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는 취지였다고 주장한다면 위와 같은 논의가 무의미해진다.
그런데 2001~2004년의 본즈는 2볼이나 3볼, 3볼 1스트라이크에서도 꽤 많은 고의 사구를 받았고, 2004년 한 해만 보아도 20번이 넘으며 심지어 1볼에서 고의사구를 받은 타석도 5번 정도 있었다. 2볼이나 3볼, 3볼 1스트라이크, 1볼에서 타자가 자신의 평균적인 wOBA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짐은 당연하다. 물론 대부분의 타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고의사구들은 시즌 전체로 보았을 때 거의 무시할 수 있겠지만, 본즈 입장에서는 2004년 한 해만 20번이 넘는 유리한 카운트에서 선 타석을 최종적으로 고의사구로 날려버리게 된 것이다.[89] 물론 위에서 이야기했듯 120개의 고의사구가 모두 볼넷이더라도 wRC+나 WAR의 증가폭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며, 2볼이나 3볼, 3볼 1스트라이크, 1볼에서는 평균적인 wOBA보다 좀더 높은 wOBA를 가질 뿐이고(가장 높은 3볼이 0.730이며 유일하게 볼넷의 wOBA 계수보다 높은 상황이다) 타석 수도 20여차례에 불과하다. 다만 고의사구를 당하지 않았다면 유리한 카운트에서 타석을 끝마침으로써 자신이 가진 기존의 wOBA보다 조금 높은 생산성을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도 통계의 예외를 논할 정도의 것은 아니다.

'나'항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약본즈가 wOBA에서 아웃라이어가 되려면 볼넷이 가진 wOBA보다 나머지 타석에서 발생한 모든 이벤트를 합한 wOBA가 더 높아야 한다. 즉, 볼넷을 제외한 타석에서의 생산력이 볼넷을 얻은 타석의 생산력보다 더 높아야 볼넷을 많이 얻을수록 생산력이 더 감소되기 때문에 wOBA로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는 아웃라이어라고 지칭할 수 있다.
2004년 약본즈의 wOBA는 .537이고, 당해 시즌의 볼넷에 대한 wOBA 계수(wBB)는 .707이었다. 즉 약본즈도 베이브 루스를 포함한 모든 타자들이 그랬듯 볼넷을 얻어낼수록 wOBA가 높아지고 높아졌다. 약본즈의 어마어마한 타격 능력에 혼이 빠진 사람들은 볼넷만 없으면 배리 본즈가 더욱 높은 생산성을 보였을 거라 착각하지만 현실은 반대인 것이다. 약본즈의 압도적인 wOBA와 wRC+ 그리고 WAR는 볼넷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다. 볼넷이 없었으면 그의 비율스탯인 wOBA는 5할을 넘기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90]
참고로 위에서 든 예시처럼 2004 본즈의 고의사구를 모두 평범한 볼넷으로 치환해도 wOBA는 .570이다. wOBA 올타임 기록을 보면 1, 2, 3위 베이브 루스가 .598, .575, .571이고, 4위인 테드 윌리엄스가 .568이다.[91]

마지막으로 약본즈가 어마어마한 타격 성적을 보였음에도 생각보다 WAR가 저조한 이유를 살펴본다.[92]
파일:올타임fWAR싱글리더본즈용.png
결론은 타석수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한 수비가 좋지 않으며, 주루가 탁월하지도 않았다. WAR로도 루스를 넘고 싶었다면, 고의사구나 볼넷에 투덜거릴 게 아니라(게다가 고의사구를 포함한 볼넷은 오히려 약본즈에게 이득) 약을 더 챙겨 먹어서 700타석쯤 소화하며(이것만 했어도 2002 시즌 본즈 정도면 올타임 2나 3위 정도는 했다), 수비는 피츠버그 시절처럼 했으면 넉넉하게 올타임 1위에 올랐을 것이다. 솔직히 1923 시즌 루스의 수비 수치는 사기로 보인다. 아무리 싱글 시즌이라지만..

7.3. 본즈 VS 주요 투수

본즈와 NL 리그를 비롯한 주요 투수들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톰 글래빈 85타수 28안타 4홈런 14타점 ops 1.031
팀 허드슨 27타수 11안타 5홈런 7타점 ops 1.5
커트 실링 80타수 21안타 8홈런 21타점 ops 1.048
그렉 매덕스 130타수 34안타 8홈런 18타점 ops .855
로저 클레멘스 2타수 무안타 6볼넷 ops .750[93]
페드로 마르티네즈 34타수 11안타 1홈런 3타점 ops 1.064
랜디 존슨 49타수 15안타 3홈런 12타점 ops 1.003
존 스몰츠 67타수 19안타 8홈런 14타점 ops 1.168
박찬호 47타수 13안타 8홈런 14타점 ops 1.283
김병현 11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ops .925

1). 본즈 vs 랜디 존슨

좌투수와 좌타자의 대결이니만큼 존슨이 유리한 것이 정설이다. 시야 확보와 공의 회전 등의 이유 때문이다. 랜디 존슨은 좌타자 상대로 살인적인 피안타율을[94] 기록하며 홈런도 잘 맞지 않는다. 2000년 본즈가 약으로 군림하기 전에 랜디 존슨은 본즈를 상대하여 4타수 무안타로 가볍게 마무리 지었다. 2000년의 주인공은 단연 랜디 존슨이었다. 그러나 이후는 다르다.

2001년에 본즈는 73개의 홈런을 경신하였고 존슨 역시 막강 성적을 거두며 3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였다. 본즈는 존슨과 4게임을 치렀고 10타수 2안타(2루타1개), 2타점, 3볼넷을 얻어냈다. 삼진은 3개. 존슨의 피안타율은 2할이지만 본즈의 출루율은 0.385였다.

2002년에 또 다시 4게임에서 만난 둘. 본즈는 9타수 4안타(2루타 1개, 2홈런), 5타점, 4볼넷을 얻어내며 4할 타율과 6할 출루율 및 12할 장타율을 기록하며 약빨로 랜디 존슨을 KO 시켰다. 삼진은 불과 1개. 놀라운 안타까운 사실은 2002년은 랜디 존슨의 4년 연속 사이영상 시즌이자 내셔널리그(NL) 트리플 크라운 시즌(24승, 334K, 2.32방어율)이었다는 것.

2003년은 존슨이 부상과 부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해이다. 본즈는 존슨을 상대로 2타수 2안타(1홈런) 1볼넷을 얻어냈다. 3번의 대결에서 타율, 출루율 100%, 장타율은 25할. 말하자면 감기에 걸린 존슨을 상대로 본즈가 핵주먹을 날린 셈이다.

2004년은 랜디 존슨이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시즌이다. 본즈는 이런 존슨을 상대로 11타수 3안타(0.273) 2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존슨이 홈런을 맞지는 않았지만 본즈도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출루율은 0.467.

2). 본즈 vs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이전에도 에이스 급이긴 했지만 2001~2002년은 확실히 뛰어난 해였다. 존슨이 아니었다면 사이영상을 수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적. 2년(2001~2002) 동안 평균 22.5승과 304.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1년 실링과 본즈는 맞대결에서 12타수 3안타 1볼넷을 기록한다. 삼진은 2개. 본즈의 타율은 0.250이고 출루율은 0.308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실링이 존슨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3개의 안타는 모두 홈런이었고 타점은 6개.

2002년에 두 선수의 대결 결과는 10타수 2안타 2볼넷, 2삼진. 그러나 안타 2개는 홈런과 2루타였다. 본즈를 상대로 실링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높지 않지만 장타 허용율이 매우 높다. 실링이 매덕스에 비해 WHIP과 피안타율이 낮음에도 방어율이 높은 예외적인 현상을 보인 원인으로 피장타율이 높았고 그 현상이 본즈와의 대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실링의 배짱 두둑한 정면 승부 기질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을 낮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강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장타를 허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링의 자존심과 배짱도 대단하지만 역시 장타율 면에서 본즈의 약물의 압승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또한 본즈는 +250이닝 동안 33개의 볼넷만을 내 준 커트 실링으로부터 불과 12타석(즉 4이닝or 3.1이닝)에서 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3). 본즈 vs 박찬호

박찬호는 2000~2001 2년간 당대 에이스들과 경쟁하던 선수였고, 탈삼진과 피안타율 및 퀄리티 스타트 횟수가 리그 2~3위였다. 한때 좌타자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2000년부터는 몸 쪽으로 떨어지는 슬러브와 커브로 제법 재미를 보기도 했다.

2000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3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한다. 삼진도 없이. 그러나 박찬호도 볼넷을 주지는 않았다.그냥 볼넷 3개 줄 각오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으면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꼭 본즈를 아웃으로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01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4타수 4안타(0.286타율), 3홈런, 3타점, 5볼넷 1삼진을 기록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박찬호는 허리 부상을 짊어진 마지막 경기에서 본즈에게 기념비적인 2개의 홈런약런(71호, 72호)을 헌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뺀다면(즉 불필요한 마지막 등판이 없었다면)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2타수 2안타(1홈런) 5볼넷 1삼진을 기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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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시즌 중에 박찬호는 성향 그대로 피안타율이 낮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주었다. 전성기적 박찬호 조차 유인구가 먹히지 않는 본즈에게 볼넷을 무더기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등판을 제외한 2001시즌 동안 박찬호도 10번이나 본즈를 잡아낸 만큼 위력을 뽐내던 시기인데다 71, 72호 홈런 후 헌정 동영상에도 본즈는 "그(박찬호)는 나를 상대해줄 줄 알았다" 라고 하니까. 박찬호에게 좋게좋게 생각하자면 저 상황에서 정면승부를 걸어도 스태프가 가만 있을 정도로 대단한 투수이긴 했다...

4). 본즈 vs 에릭 가니에

에릭 가니에의 2003년은 특별하다. 마무리 투수로서 드물게 사이영상까지 수상했다. 블론 세이브가 하나도 없었고 2002시즌 중반부터 2004시즌 중반까지 “84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2003년 가니에의 성적은 2승 3패 1.20의 방어율과 55세이브(성공률 100%)였다. 동점 상황에서 승리 혹은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팀이 앞서고 있는 세이브 상황에서는 모두 승리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2003년 가니에의 WHIP(이닝당 피출루율)은 0.69다. 단일시즌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 역대 2위(1위는 2008년 마리아노 리베라 0.67 “AL 사이영상의 향방” 05/9/2매니아 분석 참조)이며 9이닝당 삼진수(K/9)는 14.98개로 역대 최고였다. 39세이브를 올린 빌리 와그너의 14.95개를 능가했다. 가니에가 기록한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대 최고의 ‘선발 시즌’인 2000년 페드로의 0.74도 능가하는 대단한 기록이다.

가니에는 2002년과 2004년에도 12.46개의 K/9를 기록했다. 3년(2002~2004)간 에릭 가니에는 2 이닝을 책임지면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구구절절 최고 기록을 남긴 가니에에 대한 칭찬을 마쳤다.

마무리 투수이다 보니 같은 서부지구임에도 가니에가 본즈를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방이 있는 본즈와 최고의 탈삼진율을 보여준 가니에와의 대결은 매 타석이 승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2002년에 가니에는 본즈와 3번 격돌했다. 본즈는 가니에를 상대로 1타수 1안타(2루타) 2볼넷을 기록했다. 그리고 1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10할. 장타율 20할.

2003년 세이브 성공률 100%와 최고의 탈삼진 및 최고의 WHIP을 남긴 가니에는 본즈와 4번 만났다. 가니에는 본즈를 상대로 2타수 무안타로 선방하였으나 볼넷을 두개 내줬다. 경악스러운 것은 두 번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에서 본즈는 모두 도루를 성공했고 득점을 했다. 본즈는 가니에에게 단 한 번의 삼진도 당하지 않았다. 2003년 0.199의 피출루율을 남긴 가니에를 상대로 본즈는 출루율 5할 2도루 2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대 본즈가 90년대 본즈를 흉내 낸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2004년에 본즈는 가니에와 4번 상대하여 2타수 2안타 2볼넷을 기록한다. 역시 삼진은 하나도 당하지 않았고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모두 10할, 장타율 25할. 그야말로 가니에 킬러였다. 최고의 좌완 랜디 존슨마저 버거운 상대이기에 우완 가니에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본즈는 3년간 11번 가니에와 상대하여 9번 출루하였고(3안타 6볼넷) 홈런을 하나 뽑아낸 반면 삼진은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가니에는 그 당시에 11타자를 상대한다면 5~6명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2명의 출루만 허용해야 정상(평균)이었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시프트가 본즈 상대로 빈번히 행해졌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특정 구질이나 코스에 약점을 노출하면 좋은 타자가 되기 어렵다. 본즈 쉬프트나 윌리엄 쉬프트가 통했다면 그토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음은 당연한 것.

제프 켄트는 (비록 나중에 싸우고 헤어졌지만) 본즈의 우산효과 덕분에 MVP에 오를 수 있었고 안드레스 갈라라가, 리치 오릴리아, 노장이 된 산티아고까지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만큼 본즈의 앞뒤 타자들이 누린 '본즈 효과'도 대단했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특히 압권은 월드시리즈에서 본즈와 대결한 애너하임 에인절스 팬들의 반응으로 보통 강타자라도 '이 타자만 잡으면'이지만, 본즈는 '아, 몇 타석 다음에 또 본즈'라는 말이 나오게 했으니 그 압도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5) 본즈 vs 그렉 매덕스

본즈를 가장 많이 상대하였고(157타석), 그만큼 가장 많은 홈런과 볼넷을 허용하였지만 위의 통산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즈에게 강한 편이었다. 매덕스의 평균 볼넷 허용률은 겨우 4.9%인데 본즈에게는 15.2%였으니 절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약먹기 전(으로 추청되는) 본즈는 매덕스에게 좀 강한 편이었지만[95], 약물 복용 후 타격 능력이 대폭발한 2000년 이후에는 오히려 매덕스에게 농락정의구현당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2000~2007년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34타석 29타수 4안타 .138/.235/.138/.373 0홈런 2타점 4볼넷 2삼진

이 시기의 본즈가 10타수 이상 상대한 투수들 중에선 독보적인 천적이었다. 본즈의 전성기인 2001~2004년으로 범위를 좁혀도 18타석 2안타 4볼넷 .154/.333/.154/.487로 공을 제대로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 때는 전성기가 지난 매덕스의 하락세가 시작된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더 놀라운 기록이다. 그 동안 상대한 경험이 축적되어 본즈에 대한 자신만의 완벽한 공략법이 있었던 걸지도.

8. 1위 기록

  • 통산 홈런 (762호*)
  • 단일시즌 홈런 (2001, 73호*)
  • 통산 볼넷 (2558개*)
  • 단일시즌 볼넷 (2004, 232개*)
  • 통산 고의볼넷 (688개*)
  • 단일시즌 고의볼넷 (2004, 120개*)
  • 단일시즌 장타율 (2001, .863*)
  • 단일시즌 출루율 (2004, .609*)
  • 역대 좌익수 자살 (5225회)

9. 기록

  • MVP 7회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96]
  • 500-500 클럽[97]
  • 13년 연속 30홈런 (1992~2004)
  • 시즌 40-40 클럽 [98] (1996)
  • 18경기 연속 볼넷
  • 통산 446명을 상대로 홈런[99]
  • 메이저리그 올해의 선수 3회 (1990, 2001, 2004)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올해의 선수 5회 (1998, 2001, 2002, 2003, 2004)
  • 올스타 14회 (1990,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 골드 글러브 8회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 1998)
  • 실버 슬러거 12회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2000,2001, 2002,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회 (2001,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내셔널리그 올스타 7회 (1993,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 행크 아론 상약쟁이로 수상이 더렵혀진다 3회 (2001, 2002, 2004)
  • 메이저리그 홈런 1위 2회 (1993, 2001)
  • 메이저리그 장타율 1위 8회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
  • 메이저리그 장타 1위 3회 (1992, 1993, 2001)
  • 메이저리그 전체 출루율 1위 6회 (1992, 2001, 2002, 2003, 2004, 2007)
  • 메이저리그 타수당 홈런 1위 8회 (1992, 1993, 1996, 2000, 2001, 2002, 2003, 2004)
  • 내셔널리그 타율 1위 2회 (2002, 2004)
  • 내셔널리그 타점 1위 1회 (1993)
  • 내셔널리그 득점 1위 1회 (1992)
  • 내셔널리그 출루율 1위 10회 (1991, 1992, 1993, 1995, 2001, 2002, 2003, 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볼넷 1위 12회 (1992, 1994, 1995, 1996,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고의볼넷 1위 12회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2, 2003, 2004, 2006, 2007)

실로 악마약마같은 기록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위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그의 등번호 25번을 비공식 영구결번화하여 기리고 있다. 약물 복용이 드러나 명예가 실추된 마당에 구단 이미지를 의식해서 공식적으로는 아직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지 않는듯하다. 그러나 비록 약물이었지만 그의 존재는 너무나 컸기에 그리고 데이비드 오티즈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2018년 2월 6일 공식적으로 그의 번호 25번은 영구결번이 되었다.

10.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

일단 2013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는 백지표를 던진 기자들의 영향 때문인지 로저 클레멘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클레멘스 37.6%, 본즈 36.2%) 세간에서는 똑같이 투타 역대급 레전드의 커리어를 가졌지만 약물 의혹이 있는 판이라 차별대우를 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일단 첫 투표에서는 둘 다 적당한 선에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큰 차이가 없는 수의 표를 받았다.

2년차인 2014년 투표에서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더해지면서 득표율이 34.7%로 오히려 하락했다(로저 클레멘스는 35.4%). 인터넷에서 선행공개된 수치에서 40%를 상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로, 인터넷에서 공개하지 않는 보수적 기자들은 여전히 약물문제와 엮인 선수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5년은 명예의 전당 첫회 입성자들이 이어질 것으로보이고, 그로 인해서 입성이 밀리느니 크레익 비지오 같은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약물 관련 인물들의 득표율 상승은 난항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도 역시 전년도와 비슷한 36.8%의 득표율을 보였으나, 2016년에는 44.3%로 뚜렷한 상승곡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건 투표인단 숫자가 줄어든 영향이라는게 중론. 실제로 자세히 따져보면 투표율은 올랐다지만, 투표자 총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본즈 자신은 스스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면서 기고만장한 모습양심이 있는 건가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약물 복용자인 마이클 피아자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본즈나 클레멘스와 같은 복용자들에게도 서광이 비치는 모습. 특히 피아자의 경우 약물복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나 논란이 전혀 없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 때문에 이제는 약물복용이 명예의 전당 입성에 장애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피아자가 복용한 안드로스텐다이온은 2004년 이전까지는 법적으로도 메이저 규정상으로도 금지약물이 아니였고 2004년 이후[100] 피아자는 약물 검사에서 걸린 적이 없기 때문에 '금지'약물은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니 경우가 다르다.

약본즈나 약켓이 소사, 매니같은 다른 약쟁이들보다 득표율이 높은 이유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통산약빨성적 때문이고, 둘째는 이 둘이 약을 빨기 시작했다고 의심되는 년도 이후의 기록을 전부 삭제해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약켓의 경우에는 매니 라미레즈처럼 선수 생활 도중 적발되어 출전 금지 징계까지 받은 것이 아니라 은퇴 후 적발이라는 이유도 있다.

명전 투표 사전집계 사이트인 BBHoFTracker에 따르면, 12월 21일까지 공개된 명전 투표용지 82표(전체 투표 중 18.7%)에서 본즈는 무려 7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보다 높거나 같은 득표율은 제프 배그웰 90%, 팀 레인스 89%, 이반 로드리게스 83%, 트레버 호프만 76%, 블라디미르 게레로 71%, 그리고 로저 클레멘스 71%이다. 사전집계가 실제 득표율보다 다소 높게 집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실제로 본즈와 클레멘스는 사전집계 대비 5~7%낮은 실제 득표율을 기록하곤 했다.) 첫 턴 후보로도 거론되던 게선생과 동급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꽤나 충격적이다.

2017년 1월 19일 명전 결과 발표에 따르면 배리 본즈의 득표율은 53.8%이다. 이는 버드 셀릭의 영향[101]으로 거의 20%가량 상승한 것이지만, 비슷한 수치로 꼽히던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71%를 거의 그대로 가면서 2018년 명예의 전당 입성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20%가량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원래 사전집계로 잡히는 사람들은 좀 더 긍정적이고, 세이버매트릭스나 언론 등에 개방적인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집계에서 득표율이 더 잘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집계에서 거의 20%나 떨어졌다는 것은 사전 공개를 하지 않은 기자들의 상당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약물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의 성향이 그대로라면, 2018년 또 다른 버드 셀릭 특수가 없을 경우에는 명예의 전당 초기 투표 결과가 뚜렷한 상승없이 지지부진 했던 것처럼 딱히 상승폭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14년 20%에서 출발해서 꾸준히 상승해 결국 51.8%까지 올라온 마이크 무시나와 비교하면 오히려 입성 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2018년 1월 24일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56.4%를 득표, 지난해 대비 2.6% 상승에 그쳤다. 이 추세라면 마지막 해 극적 입성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1월 레지 잭슨은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먼스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한다"며 "때가 됐다"고 했다. 잭슨은 2012년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본즈와 클레먼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는 둘 외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바 있다. 그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잭슨이 이제는 태도를 바꿨다. 잭슨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전설적인 외야수 윌리 메이스가 "본즈와 클레먼스에게 투표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MLB.com은 소속 기자 6명의 투표 현황도 공개했다. 클레멘스와 본즈 모두 6명 전원으로부터 '헌액돼야 한다'는 지지를 받았다. 이들 6명은 모두 본즈를 1순위, 클레멘스를 2순위로 꼽았고, 리베라와 할러데이, 마르티네스, 무시나에게도 모두 표를 던졌다. MLB.com의 존 폴 모로시 기자는 '매년 그랬듯 난 본즈와 클레멘스에게 투표했다. 적어도 약물과 관련된 선수들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메이저리그에 약물 관련 규정이 생긴 200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징계를 받은 선수에게 난 투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전 매우 복잡한 시대에 뛴 최고의 선수들은 지지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커트 실링은 “명예의 전당과 약물 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배리를 MVP로 뽑았던 기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이제 와서 그에 대한 투표를 거부하고 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다”고 물었고, 빌 제임스도 이 의견에 동조해 “그가 약물을 사용했음을 알고도 3~4차례 MVP를 준 뒤 이제 와서 그가 명예의 전당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대 견해도 만만치 않다. ‘팬 크레드 스포츠’ 존 헤이먼은 “6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LA타임즈’ 빌 샤이킨은 “본즈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사표를 만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보스턴 글로브’의 원로 기자인 댄 쇼네시는 “그들은 속임수를 썼다. 그들이 명예의 전당 선수였다는 것을 안 믿는다. 마스터스 골프 대회에서 10타 차이로 이기고 있지만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부정행위를 하면 실격된다”며 현상을 요약했다. 하지만 쇼네시 기자는 ESPN에 “나는 스테로이드 시대에 있었다. 지금은 점점 냉정해진다. 본즈와 클레멘스에 투표한 이들 모두 이해한다”면서 “데이빗 오티즈가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 첫 해에 기회를 잡았을 때, 본즈와 클레멘스는 10년 차가 된다. 재밌을 것이다”며 운을 뗐다. 오티즈 역시 통산 541홈런의 강타자이지만, 약물 복용 전력이 있다. 다만, 본즈와 클레멘스처럼 불명예스러운 은퇴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논란이 증폭될 수밖에 없음을 예견한 것. 쇼네시 기자는 이들에게 기꺼이 투표할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고 ESPN은 설명했다.

2019년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득표율 60%대를 넘을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미국 디어슬레틱에 따르면 7번째 도전 안에 60%를 넘은 선수 24명 가운데 23명이 남은 3번의 기회 안에 75%를 넘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전례를 따른다면 본즈와 클레멘스의 현실적 목표는 2019년 헌액보다는 60%를 넘는데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59.1%에 그쳤다. 작년보다 2.7%만 오르면서 얘기가 나온 것 만큼은 상승하지 못했다.

11. 여담

  • 2012년에는 사이클에 맛을 들인 듯 하다. 사이클 행사에서 팬들에게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선수시절부터 겪어온 무릎 통증을 다스리는 수단인 듯. 지금 보면 선수시절 벌크업한 것이 다 빠져서 홀쭉해졌다.
  • 그런데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 스캔들에 대해서 암스트롱을 옹호하기도 했다고. 가재는 게 편



이 영상은 딱히 본 항목과 관계가 없을지도...[102]
  • 사우스파크 시즌 8 에피소드 3 Up the down steroid 에서 '모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없애주세요. 왜냐하면 전 존나 비열한 계집애 새끼이며, 스테로이드나 복용하는 병신이니까'라고 까였다(...).
  • 더 팬의 주인공인 미치광이 야구팬인 길 레너드가 자신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야구선수 바비 레이번에게 배리 본즈가 아니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 유명한 야빠 만화가 최훈이 배리 본즈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프로야구 카툰의 전신격인 MLB 카툰을 보면 배리 본즈가 작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기록들만 보면 소재로 안쓰는 게 이상하다만(...). 여하튼 그가 은퇴한 2007년 이후 불과 1년만에 MLB 카툰을 관두고 프로야구 카툰으로 연재방향을 변경한 걸 보면 의미심장하긴 하다. 샌프팬도 아니고 의미심장할게 뭐가 있나?
  • 블레스 증후군에 걸려 은퇴한걸로 유명한 릭 엔키엘에게는 약했는데 릭 엔키엘을 상대로 3타수 3삼진을 한 경기에서 당했다(.....)
  •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다. 실제로 시계를 왼손에 찬다.
  • 본즈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했던 fWAR은 46.6인데 이는 같은기간의 뉴욕 메츠(46.6) 밀워키 브루어스(45.3) 캔자스시티 로열즈(31.5) 디트로이트 타이거즈(30.9) 몬트리올 엑스포스(29.5)보다 높다
  • 제레미 곤살레스라는 573이닝동안 방어율이 4.95를 기록한 투수가 본즈를 6번 상대해서 한 번도(!!!) 출루시킨 적이 없었는데, 2008년에 번개를 맞아서 사망했다. RIP.
  • 윌리 메이스, 배리 본즈, 윌리 맥코비가 기록한 홈런 수의 합은, 1888년부터 기록된 샌프란시스코의 팀 전체홈런의 12.3%를 차지한다
  • 야구게임 MLB 더 쇼 시리즈에서는 라이선스 문제로 레지 스토커(Reggie Stocker)라는 가명으로 등장했었다.
  • 카를로스 벨트란이 쓴 글에 벨트란과 본즈와의 인연이 자세하게 적혀있는데 AT&T 파크의 클럽하우스에서 남들은 한개, 팀의 프랜차이즈나 리더, 베테랑 같이 팀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들이 많아야 두개 배정받는데 본즈는 그런 로커를 5개나 배정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벨트란이 "배리, 언젠가 타격에 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자,본즈는 벨트란보다 앞서 클럽하우스를 나가서 (배팅)케이지로 향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번역] 고맙습니다, 야구 여러분 (Muchas gracias, béisbol.) - 카를로스 벨트란
  • 래퍼 카녜 웨스트가 3집 Graduation에서 배리 본즈의 이름을 곡의 제목으로 썼다.

12. 코치 활동

2016시즌 마이애미 말린스의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은퇴한 이후 계속해서 지도자를 꿈꿔왔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꿈을 이룬셈이다. 그리고 마이애미가 이번시즌 핵타선을 만들어 내면서 지도자로서 첫 걸음을 순조롭게 하고있다.

크리스티안 옐리치나 마르셀 오수나야 잠재력 있었다지만, 이전 세 시즌 2할8푼대로 내려갔던 올스타 출신 3루수 마틴 프라도의 타율을 다시 3할 위로 올려놓고, 데릭 디트리치가 3할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것을 보면 분명 코치로서 본즈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역시 전반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데 본즈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누구나 약물을 복용했다고 해서 본즈처럼 한 시즌 73개의 홈런을 때려낸다던지 120개의 고의사구를 얻어낼 수는 없다. 나아가 논란의 시기 이전만으로 본즈는 이미 MVP 3회를 수상하고 역대 유일의 400-400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위대한 선수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서 분명 본즈는 괴물같은 타격재능을 가지고 있다.
결국 1시즌만에 해임되었다. 팀 타율이 메이저 전체에서 4위였고 팀 OPS+도 15년 전체 23위(NL 9위)에서 16년 전체 18위(NL 6위)로 상승하였기 때문에 의문일수 있는데 해고 이유는 다름아닌 팀 득점으로 전체 27위에 그쳤다고 한다. 참고로 말린스는 15년에도 팀 득점이 전체 29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현지 반응은 팀 타율이 4등인데 득점이 저 모양인건 타격코치보다는 감독의 작전문제가 더 큰거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103][104]

2017년부터는 구단 특별보좌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복귀한다.

13.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86 PIT 113 484 92 26 3 16 72 48 36 65 102 .223 .330 .416 .756 3.3
1987 150 611 144 34 9 25 99 59 32 54 88 .261 .329 .492 .821 5.3
1988 144 614 152 30 5 24 97 58 17 72 82 .283 .368 .491 .859 5.4
1989 159 679 144 34 6 19 96 58 32 93 93 .248 .351 .426 .777 7.1
1990 151 621 156 32 3 33 104 114 52 93 83 .301 .406 .565 .970 9.9
1991 153 634 149 28 5 25 95 116 43 107 73 .292 .410 .524 .924 7.8
1992 140 612 147 36 5 34 109 103 39 127 69 .311 .456 .624 1.080 9.6
PIT 통산
(7시즌)
1010 4255 984 220 36 176 672 556 251 611 590 .275 .380 .503 .883 48.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3 SFG 159 674 181 38 4 46 129 123 29 126 79 .336 .458 .677 1.136 10.5
1994 112 474 122 18 1 37 89 81 29 74 43 .312 .426 .647 1.073 6.0
1995 144 635 149 30 7 33 109 104 31 120 83 .294 .431 .577 1.009 7.7
1996 158 675 159 27 3 42 122 129 40 151 76 .308 .461 .615 1.076 9.2
1997 159 690 155 26 5 40 123 101 37 145 87 .291 .446 .585 1.031 8.9
1998 156 697 167 44 7 39 120 122 28 130 92 .303 .438 .609 1.047 8.5
1999 102 434 91 20 2 34 91 83 15 73 62 .262 .389 .617 1.006 3.3
2000 143 607 147 28 4 49 129 106 11 117 77 .306 .440 .688 1.127 7.6
2001 153 664 156 32 2 73 129 137 13 177 93 .328 .515 .863 1.379 12.5
2002 143 612 149 31 2 46 117 110 9 198 47 .370 .582 .799 1.381 12.7
2003 130 550 133 22 1 45 111 90 7 148 58 .341 .529 .749 1.278 10.2
2004 147 617 135 27 3 45 129 101 6 232 41 .362 .609 .812 1.422 11.9
2005 16 57 17 1 0 7 12 14 0 9 6 .286 .404 .667 1.071 0.7
2006 130 493 99 23 0 26 74 77 3 115 51 .270 .454 .545 .999 3.2
2007 127 477 94 14 0 28 75 66 5 132 54 .276 .480 .565 1.045 3.2
SFG 통산
(15시즌)
1976 8351 1951 381 41 536 1555 1440 263 1947 949 .312 .477 .666 1.143 116.0
MLB 통산
(22시즌)
2986 12606 2935 601 77 762 2227 1996 514 2558 1539 .298 .444 .607 1.051 164.4

14. 둘러보기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번호 7번
밥 로버트슨
(1970~1976)
배리 본즈
(1986)
[105]
앤디 반 슬라이크[106]
(1987)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번호 24번
대니 곤잘레스
(1985)
배리 본즈
(1986~1992)
[107]
대니스 몰러
(199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25번
마이크 펠더
(1991~1992)
배리 본즈
(1993~2007)
[108][109]
영구결번[110]

15. 관련 문서




[1] 2001시즌[2] 2004시즌[3] 2004시즌[4] 2004시즌[5] 2001시즌[6] 2004시즌[7]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시즌[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시즌[9] 아버지 바비 본즈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대 유이한 기록[10] 400-400 클럽 역시 본즈가 유일하다.[11]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최전성기 5년을 조사한 결과 베이브 루스의 1920~1924년 WAR이 59.0으로 1위, 배리 본즈의 2000~2004년 WAR이 53.0으로 2위이다. 물론 약물로 이룬 기록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 없다.[12] 비슷한 케이스로 우리나라엔 이종범이 있다. 다만 이종범은 왼손잡이었으나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교정된 케이스이다.[13] 2015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넘어섰다.[14] 아버지인 바비 본즈는 14년동안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을 10시즌, 그리고 30-30을 5번이나 기록했다. MVP투표에서 2번 5위 안에 들었고, 골드 글러브도 3차례 받았다. 통산 성적은 타율 .268, OPS .824, 302홈런, 461도루로 HoF급까지는 아니어도 대스타급 선수임엔 충분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바비 본즈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술 마시고 경기에 출장한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바비는 부족한 자신이 아닌 윌리 메이스를 배리의 대부로 부탁해서 아들의 멘토가 되도록 했다. 바비의 마음을 배리는 충실히 따라 야구에 대한 자문은 아버지가 아닌 메이스를 먼저 찾아갔다. 부자가 자주 언급했던 유명한 이야기. 배리는 그 아버지보다도 더 괴물같은 성적을 냈다. 아예 본즈 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15] 본즈는 7세부터 메이스의 등번호 24번을 달고 뛰었고, 24번이 영구결번인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25번으로 바꿔 달았다. 본즈의 24번 집착은 대단해서, 피츠버그 입단하고 벤치워머인 대니 곤잘레스의 24번을 반강제로 스틸해갔다(...).[16] 이 신문은 “본즈가 자신의 트레이너인 그레그 앤더슨으로부터 합성스테로이드(THG)계 약물 ‘클리어’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함유된 연고 형태의 ‘크림’을 제공받아 썼다고 인정했다”면서 “하지만 ‘스테로이드계 약물이란 사실은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본즈 증언의 진실 여부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16%만이 “모를 수도 있다”고 답했을 뿐 나머지 84%는 “정확히 알고 한 짓일 것”이라고 답했다.[17] 이 당시 103명의 약물복용이 적발되었다고 하며, 그 103명 중 검사결과가 유출된 것은 데이빗 오티즈를 비롯한 극소수이다.[18] 참고로 2003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투수 스티브 베클러가 에페드라 사용 후유증으로 스프링캠프 도중 사망한 뒤 에페드라의 판매가 법적으로 규제되었다.[19] 이 당시 암페타민에 대한 징계는 스테로이드에 비해 경미하다. 스테로이드는 1차 적발로 50경기 출장정지가 내려지지만 암페타민은 징계없이 6개월동안 6번의 테스트를 받도록 돼 있다. 두 번째 적발되면 25경기 세 번째 적발 때 80경기 출장 정지가 내려진다.[20] 본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한 약물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2004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그의 샘플이 정부 당국에 의해 재조사 되었다고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가 이 사건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21] 30일 가택구금 / 벌금 4천달러 / 사회봉사 250시간 / 보호감찰 2년[22] 금지약물을 알면서 투약하지 않았다는 본즈의 항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이 있다. 본즈의 쇼핑 도우미 캐시 호스킨스는 2011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열린 본즈의 위증 혐의 공판에서 본즈가 개인트레이너 앤더슨의 도움으로 약물을 맞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캐시는 "앤더슨은 내가 보는 것을 꺼렸지만 본즈가 '괜찮다'고 말해 볼 수 있었다. 본즈가 앤더슨과 방에 들어가며 "안 걸린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안 걸린다'는 본즈의 말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피할 수 있는 '디자이너 스테로이드'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23] 검찰이 공개한 앤더슨의 일지에 기록되어있던 내용의 일부 2000년 11월 29일과 2001년 2월 6일 체취한 소변 샘플에서 각각 메테놀론과 낸드롤론, 메테놀론이 검출됐다. 2001년 2월 20일 제출한 샘플에서도 본즈는 메테놀론과 낸드롤론에 양성반응을 보였고, 2003년과 6월 5일 샘플에서는 THG와 클로미펜과 외인성 테스토스테론이, 2006년 6월 8일 샘플에서는 D-암페타민이 검출 이 내용대로라면 이미 예전부터 약물을 복용해 왔던 것이고 2004년 사무국이 실시한 도핑검사에서도 무사통과는 언감생심. 사무국이 약물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이다. 또한 제이슨 지암비는 본즈의 개인 트레이너이던 그레그 앤더슨에게 본즈의 활약 비법을 계속 캐물으니 '크림과 클리어'로 불리는 스테로이드와 주사용 스테로이드, 주사기를 보내왔다고 주장했다.그는 크림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고 클리어는 에피테스토스테론인데 메이저리그 약물검사는 두 물질 비율을 따져 도핑 선수를 적발하기 때문에 두 수치를 한꺼번에 높이면 걸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앤더슨에게서 들었다고 덧붙였다.[24] 홈런 기록을 지키려고 금지약물과 관련해 위증을 이어갔다고 관련 재판에서 검찰은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열린 최종변론에서 본즈가 말할 기회를 모두 얻었지만 끝내 진실을 털어놓지 않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제프리 네드로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스테로이드 사용이 메이저리그 홈런기록을 포함한 그의 성과에 오점을 남기기 때문에 본즈는 위증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심원들은 상식적으로 봐달라"며 "1년에 1천700만 달러(약 185억원)를 버는 선수가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약물을 개인 트레이너에게서 받아 사용하겠느냐"고 말했다. 본즈는 미국 체육계 도핑파문을 조사하려고 2003년 열린 연방 대배심에서 경기력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금지약물을 먹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그의 공판에는 옛 여자친구, 쇼핑 도우미, 동업자, 전·현직 선수, 스포츠용품업체 관계자, 미국 반도핑 기구 전문가 등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본즈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본즈 측에서는 증인을 한 명도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참고로 증언들을 살펴본다. 본즈의 옛 애인인 킴벌리 벨은 검찰의 질문에 따라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추정될 수 있는 본즈의 신체 변화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는 본즈가 고환이 모양이 변하면서 쪼그라들었고 발기불능에 시달렸으며 가슴에 털도 계속 깎아냈고 등에 여드름이 나서 고생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벨은 스테로이드의 정신적 부작용인 듯 본즈가 점점 난폭해지면서 자신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본즈가 나에게 '목을 잘라 하수구에 버리겠다'고 위협했고, 내 가슴확대 수술비를 자기가 댔으니 주입물을 도려내겠다는 말까지 했다"며 울먹거렸다. 본즈의 변호인은 벨이 본즈와 헤어지고 나서 보복을 하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배심원들에게 항변했다. 또한 스티브 호스킨스가 연방대배심 조사에서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과 이로 인한 성격파탄 증세까지 폭로했다. 호스킨스는 1998년 본즈의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고 사인볼과 기념품 사업에도 파트너로 나섰던 친구. 호스킨스의 여동생이 본즈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줄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2003년 본즈가 호스킨스를 ‘사인 도용’ 혐의로 고발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에 본즈의 개인변호사는 “호스킨스가 예전에 사인 도용을 문제삼을 경우 본즈의 혼외정사와 탈세·약물복용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수사관들이 지나치게 호스킨스와 본즈의 예전 여자친구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25] 2019년에도 현지의 일부 기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26] 이 인간은 스테로이드도 복용했으며, 스테로이드는 약맥이 약을 빨던 그 시기에도 이미 금지 약물이었다. 약맥이 괜히 명전 못 가는게 아니다.[27] 물론 미국 법률상 의료 목적 등으로 허가를 받으면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허가받지 않았으므로 금지 약물. 이는 허가를 받았으면 에더럴을 섭취할 수 있었고 섭취했던 크리스 데이비스가 중간에 허가 없이 에더럴을 먹어 사무국으로부터 금지 약물로 처벌받은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28] 이 점에서 마이크 피아자와 본즈는 경우가 다르다. 피아자가 복용했다고 자백한 안드로는 국가의 법률상으로도 2004년에야 금지약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드로도 스테로이드와 비슷한 것이란 점에서 피아자는 규정의 헛점을 피해간 간사한 놈이라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법률상으로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29] 본즈가 은퇴한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본즈의 500-500은 고사하고 400-400도 본즈밖에 없다. 300-300클럽도 본즈 포함 8명밖에 없다. 마이크 트라웃이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지만 17시즌 현재 25살에 불과한 트라웃에게는 아직 갈길이 멀고....[30] 약먹기 전 본즈는 높지 않은 타율과 많은 볼넷을 기록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장수를 했어야 3000안타가 가능했다.[31] 이런 기록들을 세우자 본즈는 2003년 올스타전에서 루스를 향해 'Wipe Him Out!(난 이미 루스를 넘어섰어!)'이라고 말해 백인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샀다.[32] 배리 본즈 역시 그라운드 밖에서는 내성적인 편이었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종종 주위 사람들을 당황시켰다고 한다. 바비 본즈는 아들이 경기에 집중하려다 오해를 사는 것이라 변호했지만 주위의 생각은 달랐다. 팀의 승패보다 자신의 기록을 중시하는 선수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본즈는 당시 동료 외야수 앤디 반 슬라이크가 '미스터 피츠버그'로 불리며 팀의 간판으로 대접받는 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다. 반 슬라이크를 '위대한 백인들의 영웅'이라 부르며 시기심을 드러낸 적도 있다. 본즈는 90년부터 3년 연속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기도 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크게 부진해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이처럼 그는 스포트라이트에 집착했고, 백인을 질투했다.[33] 그러나 본즈가 약빨임이 드러나며 오히려 베이브 루스가 반대급부로 더욱 추앙받는 역효과가 났다.[34] 언론 플레이는 거짓이라도 문제가 안 되지만 재판이나 조사회에서 헛짓하면 위증, 사법방해죄에 걸려들 수 있다. 미국에서 이는 정말 한 순간에 훅 갈 수 있는 큰 죄.[35] 사실 그의 은퇴이후 25번을 쓰는 선수는 없었으니 언론을 의식해 영구결번 처리를 못하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약쟁이이기는 하지만 다른 구단에도 약쟁이 영구결번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36] 해당 기간의 ML 전체에서의 순위. 본즈도 약먹기 전으로 의제했으므로 청정으로 분류해서 약쟁이를 지운 순위로 적시.[37] 3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2위.[38] 4위이지만 미겔 테하다 제외시 3위.[39] 4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3위.[40] 6위이지만 미겔 테하다 제외시 5위.[41] 16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켄 캐미니티 제외시 14위.[42] 12위이지만 미겔 테하다 제외시 11위.[43] 11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10위.[44] 8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7위.[45] 3위이지만 마크 맥과이어 제외시 2위.[46] 2위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외시 1위.[47] 삼진은 둘 다 순위가 약쟁이 제외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적시.[48] 7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6위.[49] 4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3위.[50] 도루는 약쟁이 제외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적시.[51] 병살은 약쟁이 제외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적시.[52] 2위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외시 1위.[53] 37위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게스, 모 본, 매니 라미레즈 제외시 34위. 마이크 피아자제프 배그웰은 제외하지 않았다.[54] 3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2위.[55] 3위이지만 마크 맥과이어 제외시 2위.[56] 2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1위.[57] 2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1위.[58] 2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1위.[59] 푸홀스와 세이버 상으로 비슷한 타격 생산력을 보였지만, 수비와 주루 성적의 차이로 넉넉하게 fWAR에서 앞섰다.[60] 전성기적 도루 성공률이 77.39프로로 최정상급 준족이라 보긴 힘들었다. 통산 도루 성공률은 78.473프로이지만, 약빤 이후인 34~42살 동안 69도루, 11도루자로 스탯 세탁을 한 덕분이다. 참고로 세이버메트릭스의 선구자인 빌 제임스는 “도루 성공률이 70% 이하라면 절대로 시도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또한 톰 탱고의『더 북(The Book)』에서는 성공률 72.7%를 도루의 손익분기점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메이저리그 기록을 토대로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에서 도루를 성공하면 평균 0.175점을 더 얻을 수 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 0.467점이 깎인다고 봤다. 따라서 손익분기점(실패시 기대득점/(성공+실패시 기대득점)X100%)은 72.7%라는 설명이다.[61] 1990~98까지 9번의 시즌 중 30홈런 이상은 8회, 30도루 이상은 6회 기록.[62] 다만 이시즌에는 본즈가 이미 40-40을 기록한 이후인지라 상당히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해서 달리면 40-40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결국 37도루 8도루실패 도루성공률 82%라는 좋은 성공률로 시즌을 끝냈다. 가진 자의 여유[63] 150개 이상 볼넷은 1996시즌 한 번이다. 참고로 100볼넷 이상은 1986~1998 동안 7번.[64] 이 시기에는 외야수 전체를 대상으로 3명의 골드 글러버를 뽑았다. 좌익수-중견수-우익수 각각에서 1명씩 뽑은건 한참 뒤의 일[65] 앤드류 존스의 경기수를 보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66] 빌 제임스의 예측 도구에 따르면 33세 당시인 1998 시즌을 마친 본즈의 600홈런 가능성은 24.8프로였다. 수정 전 나무위키 서술은 아무런 근거 자료도 없이 600-600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하는데 매우 의문이다.[67] 단, 윌리 메이스는 도루를 극도로 자제하여 도루 개수가 폭락했던 50년대에 최전성기를 보낸 바람에, 도루 기록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메이스를 최고의 주자로 평가했으며, 주루 센스 역시 엄청나게 뛰어났으므로, 본즈가 활동했던 시대였다면 그도 500도루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엄청난 주력을 바탕으로 사상 최고의 중견수 수비를 보였음을 감안한다면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윌리 메이스의 도루 성공률은 76.644퍼센트로서, 행크 애런의 76.677퍼센트보다도 낮다. 도루하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 도루 능력이 아주 뛰어나 도루에 목매달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의 주루 센스가 엄청나게 뛰어났다는 점은 추억팔이가 아닐까.[68] 또한 메이스는 흑인에게 문호가 개방되지 않아 니그로 리그에서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후에야 메이저리그에 올 수 있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최전성기의 2년을 거의 뛰지 못했다는 점에서 주력이 최정점에 있는 20대 초반에 이런 공백기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도루를 극도로 금지하던 시대라도 400도루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윌리 메이스는 21~22살(34경기 출장)에 군복무를 하느라 누적 기록에서 상당한 손해를 본 점을 감안하더라도, 34경기에 출장한 21살 시즌을 포함한 20~23살의 세 시즌동안 19개의 도루에 그쳤으므로, 피해가 막심하진 않았다고 보인다. 또한 19살에 자이언츠 마이너에 입단하여 86경기 OPS .863을 기록했고, 20살 시즌에 마이너를 학살하자 콜업되어 메이저에서 121경기를 뛰었으므로 그 전에 니그로 리그에 뛴 것이 억울할 게 없다.[69] 친구 뒤통수 치고, 경쟁 선수 깎아 내리는 등 인성이 나빴다. 오죽했으면 톰 버두치가 "나 역시 팩트를 뻔뻔하게 외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 언론을 폄하하는 건방진 야구선수를 존경하지 않는다"라고 디스했다.[70] 포수가 일어나서 받지만 않았지, 실제로는 고의사구나 다름없이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난 볼넷들도 엄청나게 많았다.[71]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즈라는 거의 유일한 예외의 선수에게만 적용되는 괴상한 결론이다. 홈런치고 싶다고 해서 시도때도 없이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는 사실상 본즈가 유일하기 때문.[72] 그것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고의사구의 기대 득점 가치(Run value)는 볼넷의 약 55% 수준이며, 반면 기대 승리 가치(Win value)는 볼넷의 겨우 24% 수준이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면 wOBA가 .350 이상인 선수의 경우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이를 타자의 생산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으며, 차라리 현재와 같이 미반영하여 wOBA를 계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73] 일반적으로 고의사구의 기대 득점 가치와 기대 승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2, 3루가 채워진 상황에서 1루를 채우는 용도로 쓰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즈의 경우 굳이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툭하면 고의사구로 걸어나갔다는 것.[74] 책임 조각 사유로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법성 조각 사유는 법률에 의한 행위나 정당방위 등을 말하는 것이고, 개인에 대한 기대가능성은 책임의 문제이다.[75]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약 먹기 전 4년(95~98) 동안의 타율인 .299와 약 먹은 후 최전성기 4년(2001~04) 타율 .349를 비교해 보면 그는 30대 후반임에도 당연히 상식대로 약물로 타율을 껑충 끌어올렸다. 정확한 비판론은 약물의 도움으로 이미 뻥튀기된 타율을, 맘만 먹으면 설사 볼넷을 줄더라도, 혁신적으로 한 번 더 껑충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 비판하여야 할 것이다. 존 설정 능력이 뛰어나 볼에 스윙을 하지 않았던 그리고 배드볼 히터도 아니었던 본즈가 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홈런을 포함한 안타는 십여개 더 치겠지만, 볼넷은 당연히 바이바이요, 타율은 오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떨어진다. 게다가 타율을 3할에서 3할 5푼으로 올리는 것보다 3할 5푼에서 4할로 올리는 것이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다.[76] 투수들이 그야말로 공포에 떨었던 것. 다만 주루 툴이 감소한 탓에 볼넷 내준다고 크게 위협이 되는 주자는 아니었기에 고의(성) 볼넷을 많이 얻어낸 영향이 크다.[77] 얼마나 무서운 수준인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승엽의 커리어 하이 OPS가 1.190(1999년 타율 .323 54홈런)이고 타격 7관왕을 차지한 2010년의 이대호의 OPS가 1.111 더 나아가서 베이브 루스도 커리어 하이가 1.379이니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성적인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78] 홈구장이 타자친화구장으로 유명한 쿠어스 필드인데, 배리 본즈는 투수친화구장인 AT&T 파크를 사용하면서 저런 성적을 냈다. 하지만 약본즈의 홈 성적이 원정 성적보다 훨씬 좋았던 게 아이러니.[79] 약물의 힘으로 스윙스피드가 더 빨리지니 공을 더 오래볼 수 있으므로 선구안이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라 약물로 파워가 올라가니 금상첨화가 이뤄진 것이다.[80] 이것도 스탯을 보지 않고 그냥 느낌으로 주장한 것이다. 팬그래프에 의하면 당시 약본즈 타석에서 스트 존 안에 쑤셔 넣은 공은 매시즌 항상 40프로가 넘었다. 2018시즌에는 40프로 미만이 15명이나 된다. 물론 약본즈가 당시 가장 피해가는 타자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도저히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다는 표현은 오버를 넘어 거짓말이다. 전체적으로 이 항목은 과장이 매우 심하게 들어갔다는 걸 주의해야 한다.[81] 본즈에게 내준 사사구는 대부분 포수가 일어서지만 않았을 뿐, 배트가 닿지 않는 위치로 공을 4개 던지거나, 그냥 노골적으로 몸에 맞춰버렸다.[82] 또한 이렇게까지 고의사구를 당한다면 타격사이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기에 본즈처럼 엄청난 성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83] 이 해 고의사구는 35개로 90년대 초,중반에도 3,40개 고의사구를 기록하던 것과 비슷했다. 즉 투수와 치열한 승부 끝에 선구안으로 얻어낸 볼넷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84] 이렇게만 보면 나머지 선수들은 쩌리인 것처럼 표현하지만, 정작 배리 본즈 아니더라도 당시 샌프는 괜찮은 팀이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자이언츠가 기록했던 승수가 90승-95승-100승-91승인걸 생각하면...[85] 3연전 마지막 날 4번 타석에 들어가 4번 모두 고의사구[86] 물론 약을 먹었으므로 타구 질이 더 좋아졌겠지만, 그것보다는 고의사구를 포함한 많은 볼넷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87] 이렇게 고의사구는 홈런이나 안타 등 다른 이벤트들이 어느 선수나 (파크 팩터와 리그 팩터를 제외하면) 동일 시즌을 뛰었다면 같은 수치로 WAR가 올라가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88] 이것은 본즈를 위해 뻥튀기를 해준 것이고 고의사구 없이 정면 승부를 했으면 모든 타석 볼넷으로 출루한 것보다 생산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나'항 분석에서 살핀다.[89] 이와 같은 고의사구는 승부를 도중에 포기했으므로 볼넷과 같은 효과를 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중에 승부를 포기하고 거른 경우는 고의사구를 금지하더라도 방망이가 닿지 않는 곳에 투구할 것이므로 볼넷 이상의 효과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90] 약본즈 스탯을 부풀리려는 사람들은 볼을 던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해줬으면 훨씬 더 생산력 있을 거란 말도 하지만, 타자에게 정면 승부만 하는 리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타자나 볼 안던지고 스트라이크만 던져주면 더 잘한다.[91] 물론 wOBA는 파크팩터 등의 보정이 안되어 있으므로 선수 비교에서는 wRC+를 써야 더 적합하다.[92] 이것 때문에 본즈팬들의 볼넷이 손해라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약본즈의 소위 위압감은 자신들이 눈으로 확인한 선수 중 가장 압도적인 것이었으나 그의 WAR는 고대인들 특히 루스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93] 8타석 6볼넷이면 ops는 낮아도 woba는 0.5가 넘는다[94] 통산 .199. 이마저도 선수생활 말년에 많이 깎아 먹은것으로 전성기때는 이보다 낮았다.[95] 그에게 강할 때와 약할 때의 기복이 좀 있었다. 1986년~1999년 120타석 30안타 8홈런 19볼넷 (.297 / .408 / .584)[96] 4회 이상 수상자는 오직 배리 본즈밖에 없다.[97] 사실 클럽이라는 말도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 클럽 가입자가 배리 본즈 단 한명뿐이기 때문이다. 500-500은 커녕 심지어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전세계 어떤 프로야구 리그에서도 아직 400-400을 기록한 선수가 없다.물론 약이지만[98] MLB에서 약물 없이 청정하게 40-40을 달성한 선수는 알폰소 소리아노 뿐이다.[99] 배리 본즈 상대로 피홈런이 가장 많은 투수들은 8개의 피홈런를 기록하고 있다.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 커트 실링, 테리 멀홀랜드, 박찬호)[100] 04년 이후는 활약이 미비했기 때문에 약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101] 버드 셀릭은 본즈와 클레멘스가 약물하던 시기의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로, 사실상 야구 흥행을 위해서 약물 사용을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버드셀릭이 단지 커미셔너라는 이유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서, 약물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에서 배제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약물관련 선수들의 투표율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102] 영화 슈퍼 히어로 중 한장면. X-MEN, 스파이더맨 등 온갖 영화들을 패러디한 패러디 무비이다.[103]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말린스가 스타트를 끊어준 이상 본즈의 타격코칭 커리어가 뚫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즈는 원래 자이언츠의 코치를 맡고 싶어했고, 반대로 자이언츠는 물론이요 본즈를 코치로 앉히고 싶어했던 팀들은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즈의 약물 의혹때문에 찜찜해서 고용하지 못 했던 것이었고, 이제 말린스가 한 번 액땜해주며 써 봤었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본즈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이와 같이 흘러갈지 지켜보자.[104] 실제로도 돈 매팅리 현 마이애미 말린스 감독과 배리 본즈는 코칭스태프로 한솥밥을 먹던 한 시즌 내내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105] 메이저리그 데뷔 후 아주 잠깐 달았던 번호이다.[106]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던 외야수 스캇 반 슬라이크의 아버지[107] 대부 윌리 메이스의 등번호이다.[108] 자이언츠에서 24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어 25번을 단다.[109] 참고로 아버지 바비 본즈가 자이언츠 시절 달았던 번호이기도 하다.[110] 원래 그의 은퇴 이후 구단 내 결번으로 남겨두기만 하고 영구결번으로 제정을 안하다가 2018년 2월 6일 공식적으로 영구결번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