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7 22:55:11

프레드 맥그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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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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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맥그리프
헌액 연도 2023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추천

프레드 맥그리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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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95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1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조지 브렛
(캔자스시티 로열스)
프레드 맥그리프
(토론토 블루제이스)
세실 필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2년 ~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윌 클락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프레드 맥그리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프레드 맥그리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제프 코나인
(플로리다 말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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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00003931.jpg
프레드 맥그리프
Fred McGriff
본명 프레데릭 스탠리 맥그리프
Frederick Stanley McGriff
출생 1963년 10월 31일 ([age(1963-10-31)]세)
플로리다 주 탬파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
신체 190cm / 90kg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1년 드래프트 9라운드 (NYY)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 (1986~199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1~199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3~1997)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1998~2001)
시카고 컵스 (2001~200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3)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200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역마살의 시작2.2. 애틀랜타 시절2.3. 말년
3. 은퇴 이후4. 연도별 성적5. 명예의 전당 입성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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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야구 선수. 충분히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은퇴했지만, 불행히도 그가 뛴 시대가 스테로이드 시대라서 폭증한 홈런 개수 때문에 임팩트가 완전히 잊혀져 버린 선수. 그리고 한 팀에서 오래 뛰지 못하고 이 팀 저 팀을 떠돌아야 했던 저니맨에 가까운 선수이기도 하다.[1]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타율 .284, 출루율 .377, 장타율 .509, 2490안타, 493홈런, 1550타점, BB/K 0.69, wRC+ 134를 기록했다.

2. 선수 경력

2.1. 역마살의 시작

지명은 뉴욕 양키스에서 받았지만, 1982년 양키스는 그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어차피 1루수 자리에 돈 매팅리가 건재한 상황에서 9라운드에 지명한 1루수에게 돌아갈 자리는 많지 않았다. 토론토에서 맥그리프는 꾸준히 성장하며, 마침내 1986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고, 1987년 20홈런을 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34홈런을 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9년에는 36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점차 전력이 강해져가던 토론토는 그러나 올스타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를 얻기 위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접촉했고, 마침내 트레이드가 성사돼서 토론토가 로베르토 알로마와 조 카터를 받고, 샌디에이고가 토니 페르난데스와 프레드 맥그리프를 받게 되었다. 토론토는 이 트레이드를 발판으로 1992년과 1993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손해 없이 트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샌디에이고도 초반에 트레이드로 잃은 것은 없었다. 샌디에이고에 온 1991년 31홈런을 친 맥그리프는 이듬 해인 1992년 35홈런을 기록하며 다시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그렇게 샌디에이고에서도 주포로 활약했는데, 문제는 샌디에이고가 곧 FA로 풀리는 그를 잡을 자신이 없어서 시즌 중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세 명의 선수는 모두 망했다. 딱 하나 도니 엘리엇만 기억에 남는데, 그가 잘 해서가 아니라 도니 엘리엇이 가진 체인지업 그립을 어느 야수 출신의 투수에게 가르쳐 준 것 때문에 그렇다.

2.2. 애틀랜타 시절

1993년은 샌디에이고와 애틀랜타 시절을 모두 합쳐 37홈런을 때려냈다. 이게 맥그리프의 생애 최다 홈런이었다. 1994년에는 단축 시즌 임에도 불구하고 34홈런을 쳐냈고,[2] 1995년 27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 1루수로서 충분히 실력을 보여줬다. 월드시리즈에서도 홈런 2개를 날리며 자기 몫은 충분히 다 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차지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당대 애틀랜타의 최고 스타였던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등 에이스 3인방의 몫이었다.

여하튼 PO에서도 꾸준히 자기 역할은 다 하는 선수였지만, 32세 시즌이었던 1996년을 기점으로 점차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7년 22홈런을 치는 것을 본 애틀랜타 구단은 상대적으로 노쇠화가 빨리 왔다고 판단하고, 맥그리프를 신생팀 창단을 위한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그를 지명한 것은 그의 고향 근처에 생긴 신생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였다.

2.3. 말년

탬파베이의 간판으로 지목되어 이적한 그였지만, 19홈런으로 노쇠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1999년 32홈런으로 부활하고, 2000년에도 27홈런을 치면서 다시금 살아나는 듯 했고, PO을 노리던 시카고 컵스가 2001 시즌 도중에 그를 트레이드 해 갔다. 2001 시즌 도중에 탬파베이에서 19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고, PO에 도전하기 위해 맥그리프를 선택한 것.

컵스에서도 자기 역할은 충실히 다 했다. 2001년 이적해서 12홈런을 쳤고, 2002년에는 다시 30홈런을 때려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의 평가는 박했는데, 수비력이 좋지 않았고 돈만 밝힌다는 이유로 까였다(...) 그리고 이 시점에 컵스는 최희섭에게 더 큰 기대를 걸던 시점이라... 결과적으로 최희섭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컵스는 맥그리프를 잡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500홈런 고지까지 남은 개수는 불과 22개였지만, 진짜로 노쇠가 온 맥그리프는 끝내 이 고지를 넘지 못했다. 2003년 다저스에서 겨우 13개를 때려내는데 그쳤고, 최후의 기회를 준 고향팀 탬파에서 친 홈런의 개수도 고작 2개, 타율은 0.181에 그치며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3. 은퇴 이후

고향 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자문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역시 탬파지역의 야구 관련 프로에 종종 나가고 있다. 탬파베이에서는 그래도 상당한 활약을 한 선수이기 때문.

4.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프레드 맥그리프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6 TOR 3 5 1 0 0 0 1 0 0 0 2 .200 .200 .200 .400 -0.1 -0.1
1987 107 356 73 16 0 20 58 43 3 60 104 .247 .376 .505 .881 1.3 1.4
1988 154 623 151 35 4 34 100 82 6 79 149 .282 .376 .552 .928 6.6 6.2
1989 161 680 148 27 3 36 98 92 7 119 132 .269 .399 .525 .924 6.4 6.6
1990 153 658 167 21 1 35 91 88 5 94 108 .300 .400 .530 .930 5.5 5.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1 SD 153 642 147 19 1 31 84 106 4 105 135 .278 .396 .494 .890 3.6 3.4
1992 152 632 152 30 4 35 79 104 8 96 108 .286 .394 .556 .950 5.5 5.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3 SD/ATL 151 640 162 29 2 37 111 101 5 76 106 .291 .375 .549 .924 4.5 4.2
1994 ATL 113 478 135 25 1 34 81 94 7 50 76 .318 .389 .623 1.012 4.8 4.6
1995 144 604 148 27 1 27 85 93 3 65 99 .280 .361 .489 .850 2.2 1.4
1996 159 691 182 37 1 28 81 107 7 68 116 .295 .365 .494 .859 2.8 1.7
1997 152 641 156 25 1 22 77 97 5 68 112 .277 .356 .441 .797 1.4 0.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8 TB 151 649 160 33 0 19 73 81 7 79 118 .284 .371 .443 .815 3.1 2.9
1999 144 620 164 30 1 32 75 104 1 86 107 .310 .405 .552 .957 3.6 4.0
2000 158 664 157 18 0 27 82 106 2 91 120 .277 .373 .452 .826 0.1 0.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1 TB/CHC 146 586 157 25 2 31 67 102 1 66 106 .306 .386 .544 .930 3.6 3.7
2002 CHC 146 595 143 27 2 30 67 103 1 63 99 .273 .353 .505 .858 2.4 2.1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3 LAD 86 329 74 14 0 13 32 40 0 31 66 .249 .322 .428 .750 0.4 0.4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4 TB 27 81 13 3 0 2 7 7 0 9 19 .181 .272 .306 .577 -0.7 -0.6
MLB 통산
(19시즌)
2460 10174 2490 441 24 493 1349 1550 72 1305 1882 .284 .377 .509 .886 56.9 52.6

5.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득표율(%)
2010 21.5
2011 17.9
2012 23.9
2013 20.7
2014 11.7
2015 12.9
2016 20.9
2017 21.7
2018 23.2
2019 39.8
통산 성적은 .284/.377/.509 493홈런 2490안타 1550타점 1305볼넷 1882삼진 74도루. 슬러거로써 삼진을 많이 당했지만 볼넷도 많이 얻어냈고 볼삼비가 인식보다는 좋은 선수였다.[3] 의외로 노쇠화가 오기 전까지는 도루도 몇 개씩 하고 있었다.

투표를 통한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처음부터 별로 높지 않았다. 1루수로서 수비력이 은근히 좋지 않았다는 평가는 둘째치고 가장 큰 문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홈런왕을 두 차례 차지하기는 했지만 40홈런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고, 수상은 올스타 5회와 올스타전 MVP 1회, 실버슬러거 3회가 전부다. 누적 스탯 역시 입성 컷인 500홈런에 아깝게 그치지 못하며[4] 결정적으로 뛰던 시대가 약쟁이들의 천국인 스테로이드 시대와 다소 겹치는 바람에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뛴 기간이 5년에 불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의 속성이 약한 저니맨이라는 점 역시 단점. 실제로 그와 가장 유사한 커리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윌리 맥코비, 윌리 스타젤, 카를로스 델가도는 모두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는 이미지가 강한 선수들이다.[5]

그나마 2000년대 후반 약물 스캔들로 인해 평가가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비록 500홈런은 넘기지 못했지만, 깨끗한 홈런왕이라는 이미지와 꾸준한 면모를 어필한다면 약물에 대한 반감을 등에 업고 명예의 전당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첫 해 21.5%의 지지를 받았는데, 두 번째 해에는 17.9%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유력 후보가 전무한 2012년 투표에서 득표율이 대폭 오르는지 여부에 따라 그의 입성 여부가 결정될 듯. 만일 대폭 오른다면, 10수 이상 해서 기어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2년의 득표율은 후보에 오른 이후 가장 높은 23.9%를 마크했지만 2013년에는 20.7%에 머물렀고, 2014년에는 11.7%로 뚝 떨어졌다. 2015년에는 12.9%로 다시 올라가기는 했지만 이제 단 4번[6]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사실상 매우 힘들어졌다. 2016년에는 20.9%로 다시 20%대를 넘었지만 2018년 23.1%에 머물며 사실상 헌액은 물 건너갔다. 마지막 10회차인 2019년의 득표율은 39.8%로 결국 비슷한 득표율대에서 와리가리만 하다가 떨어졌다.

다만 리 스미스해롤드 베인스, 잭 모리스 등처럼 베테랑 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나중에 헌액될 가능성도 남아있었고 2022년 12월, 베테랑 위원회 추천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6명의 투표인단 모두에게 표를 받아 기준 득표인 12표를 가볍게 넘겼다.

맥그리프가 워낙 여러 팀에서 경력을 쌓았다 보니 어느 팀의 모자를 쓰고 들어갈지도 관심사다. 커리어 하이를 찍은 곳도, 가장 많은 WAR을 쌓은 것도 토론토 블루제이스긴 하지만 올스타에 3회 선정되며 임팩트를 남겼고 커리어 유일한 우승반지를 얻은 팀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고, 그렇다고 이 두 구단에서의 활약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수준은 아니라서 고향팀이고 현재도 구단과 인연이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 모자를 쓸 가능성도 충분하다. 만약 탬파베이 모자를 택한다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레이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탬파베이 모자를 쓰고 쿠퍼스타운에 헌액되는 선수가 등장하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맥그리프의 29번이 레이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7]

이후 맥그리프는 빈 모자를 쓰고 가기로 결정했고[8] 영구 결번은 사실상 무산된 분위기다.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프레드 맥그리프 9 105 100 48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First Base (32nd)
career WAR7yr-peak WARJAWS
프레드 맥그리프 52.6 36.0 44.3
1루수 HOF 입성자 평균 66.4 42.7 54.6

6. 관련 문서


[1] 그 덕에 메이저리그 30개 팀 모두의 홈구장에서 홈런을 쳐 본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2] 이 시즌에 데뷔한 박찬호 첫 상대타자이기도 하다. 결과는 볼넷. 결국 후속타로 홈을 밟으며 첫 자책점도 안겨주었다.[3] 동세대 슬러거들과 비교해도 타석 대비 볼넷과 삼진 모두 많은 선수였는데 역으로 볼넷을 조금만 덜 얻어내고 타격을 더 많이 했다면 500홈런과 2500안타 모두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4] 노쇠화가 일찍 와서 500홈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30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다소 부침을 겪은 적은 있다. 그러나 맥그리프는 30대 후반까지 30홈런을 치는 등 고령의 나이에도 선수생활을 지속하며 기량을 꾸준하게 유지한 케이스에 속한다. 엄연히 따지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시기인 1994년과 1995년에 메이저리그 파업 사태로 인해 적지 않은 게임을 날려먹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실제로 1994년에 멕그리프는 34홈런을 치며 커리어 하이를 향해 기세 좋게 달리던 중이였으나 파업 때문에 113게임 출전에 그쳤는데, 역시 파업 여파로 18게임이 단축된 1995년 시즌과 합치면 총 67게임을 손해본 것이다. 만약 파업 없이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갔다면 맥그리프 입장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40홈런 시즌을 보낼 가능성이 높았고, 500홈런도 어렵지 않게 달성했을 것이란 부분에 대해선 거의 이견이 없다. 참고로 이 때 맥그리프와 함께 가장 큰 손해를 본 선수가 같은 팀이었던 그렉 매덕스로, 매덕스 역시 그 두 해가 최전성기였다. 하지만 매덕스는 그 두 시즌을 날림으로써 임팩트가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보다 아쉽다는 말만이 나올 뿐 명전 입성 가능성에 피해를 입히진 않았다.[5] 차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모두 한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력을 갖고 있다. 참고로 이들 중 맥코비(MVP, 홈런왕 3회)와 스타젤(MVP, 홈런왕 2회)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나, 다른 사람들보다 커리어가 뒤쳐지는 델가도(타점왕 1회)는 첫 해에 득표율 3.8%를 받고 탈락했다.[6] 원래 최대 15회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2015년부터는 이미 10회를 넘긴 은퇴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일괄적으로 10회로 단축되었다.[7] 참고로 2023시즌 기준 레이스의 29번은 피트 페어뱅크스가 사용하고 있다.[8] 본인의 커리어를 시작했던 토론토,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애틀랜타, 고향 팀인 탬파베이, 그리고 두 번째 팀 샌디에이고까지 모두 다 본인에게 소중한 팀들이라 한 팀만 선택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빈 모자를 쓰게 된 이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