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맥그리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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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맥그리프 | ||
헌액 연도 | 2023년 | |
헌액 방식 | 베테랑 위원회 추천 |
프레드 맥그리프의 수상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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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브렛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프레드 맥그리프 (토론토 블루제이스) | → | 세실 필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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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클락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프레드 맥그리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 → | 프레드 맥그리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 | 제프 코나인 (플로리다 말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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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 66 | No. 12 | No. 13 | |
<rowcolor=#092c5c> 돈 짐머 Donald William "Don" Zimmer 1931.01.17~2014.06.04 with Rays 2004~2014 Inducted in 2023.04.02 | 웨이드 보그스 Wade Anthony Boggs 1958.06.15~ with Rays 1998~1999 Inducted in 2023.07.09 | 칼 크로포드 Carl Demont Crawford 1981.08.05~ with Rays 2002~2010 Inducted in 2023.08.26 | |
| | <nopad> | |
<rowcolor=#ccac00> No. DW | No. 29 | ||
<rowcolor=#092c5c> 데이브 윌스 David Herbert "Dave" Wills 1964.03.13~2023.03.05 with Rays 2005~2023 Inducted in 2024.04.14 | 프레드 맥그리프 Frederick Stanley "Fred" McGriff 1963.10.31~ with Rays 1998~2001, 2004 Inducted in 2024.09.01 | ||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일자 순서대로 배치하였으며, 같은날 헌액될 경우 낮은 등번호 순서대로 정렬합니다. 영구결번 된 선수의 등번호는 황금색, 아닐 경우 하얀색으로 표기하며, 영구결번이 아닌 선수는 구단이 지정한 대표 등번호 하나만 기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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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맥그리프 Fred McGriff | |
본명 | 프레데릭 스탠리 맥그리프 Frederick Stanley McGriff |
출생 | 1963년 10월 31일 ([age(1963-10-31)]세) |
플로리다 주 탬파 | |
국적 |
|
학력 |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 |
신체 | 190cm / 90kg |
포지션 | 1루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81년 드래프트 9라운드 (NYY) |
소속팀 | 토론토 블루제이스 (1986~199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1~199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3~1997)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1998~2001) 시카고 컵스 (2001~200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3)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2004) |
1. 개요
미국의 전 야구 선수.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저니맨이었다는 점과[1] 뛴 시대가 스테로이드 시대였기에 폭증한 홈런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
2. 선수 경력
2.1. 역마살의 시작
지명은 뉴욕 양키스에서 받았지만, 1982년 양키스는 그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1루수 자리에 돈 매팅리가 건재한 상황에서 9라운드에 지명한 1루수에게 돌아갈 자리는 많지 않았다. 토론토에서 맥그리프는 꾸준히 성장하며, 마침내 1986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고, 1987년 20홈런을 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34홈런을 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해 1989년에는 36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그러나 점차 전력이 강해져가던 토론토는 올스타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를 얻기 위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접촉했고, 마침내 트레이드가 성사돼서 토론토가 로베르토 알로마와 조 카터를 받고, 샌디에이고가 토니 페르난데스와 프레드 맥그리프를 받게 되었다. 토론토는 이 트레이드를 발판으로 1992년과 1993년에 연이어 우승하면서 손해 없이 트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샌디에이고도 초반에 트레이드로 잃은 것은 없었다. 샌디에이고에 온 1991년 31홈런을 친 맥그리프는 이듬 해인 1992년 35홈런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그렇게 샌디에이고에서도 주포로 활약했는데, 맥그리프가 곧 FA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트레이드한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에서 받은 세 선수는 모두 망했다(...)[* 정확히는 딱 한 명 도니 엘리엇만 기억에 남았는데 그가 잘 해서가 아니라 도니 엘리엇이 가진 체인지업 그립을 훗날 내셔널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에게 가르쳐 준 것 때문에 그렇다.
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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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PO에서도 꾸준히 자기 역할은 다 하는 선수였지만, 32세 시즌이었던 1996년을 기점으로 점차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7년 22홈런을 치는 것을 본 애틀랜타 구단은 상대적으로 노쇠화가 빨리 왔다고 판단하고, 맥그리프를 신생팀 창단을 위한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그를 지명한 것은 그의 고향 근처에 생긴 신생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였다.
2.3.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신생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간판으로 지명되어 입단했지만, 1998년은 151경기 .284 19홈런으로 아쉬운 시즌을 보낸다.[3]하지만 1999년 144경기 .310 32홈런 104타점을 기록하면서 다시한번 부활하며 팀 타선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2000년 158경기 .277 27홈런 106타점을 기록했고,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또 시즌 중 통산 400홈런 달성, 그리고 양대리그에서 200홈런을 기록한 두번째 선수라는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2001년, PO을 노리던 시카고 컵스가 2001 시즌 도중에 맥그리프를 트레이드 해 갔다. 2001 시즌 템파베이에서의 성적은 97경기 .318 19홈런 61타점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템파베이 데블레이스의 창단 초기의 절대적인 파워히터이자 팀의 공격력을 이끄는 중심타자로써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99년과 2000년에는 팀의 에이스로써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꾸준하게 뛰어난 생산력을 선보였다.
2.4. 시카고 컵스
컵스에서도 자기 역할은 충실히 다 했다. 2001년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되서 49경기 .282 12홈런 41타점을 기록했다.[4] 컵스는 그래 NL 중부지구 우승 경쟁을 했지만, 후반기 힘이 빠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2002년 145경기 .273 30홈런 103타점을 기록했다. 이 시즌 통산 10번째이자 마지막 30홈런 시즌을 기록한다. 홈런 친화적인 구장을 등에 업고, 38세 나이에도 팀 내 최상위 파워히터로 활약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의 평가는 박했는데, 수비력이 좋지 않았고 돈만 밝힌다는 이유로 까였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컵스는 세대교체와 팀 리빌딩 기조 때문에 맥그리프와 작별하게 된다. 특히 컵스가 기대하돈 유망주인 최희섭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컵스는 맥그리프를 잡지 않았다.
2.5. 말년
500홈런 고지까지 남은 개수는 불과 22개였지만, 불혹에 가까운 나이였기에, 노쇠화가 온 맥그리프는 끝내 이 고지를 넘지 못했다. 200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겨우 13개를 기록하는데 그쳤다.이후 은퇴를 위해 친정팀이자 고향팀인 탬파베이에서 마지막을 보내며 길고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은퇴하게된다.
3. 은퇴 이후
고향 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자문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역시 탬파지역의 야구 관련 프로에 종종 나가고 있다. 탬파베이의 개국 공신으로 창단 초기 뛰어난 활약을 했던 선수이기 때문이다.4. 연도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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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86 | TOR | 3 | 5 | 1 | 0 | 0 | 0 | 1 | 0 | 0 | 0 | 2 | .200 | .200 | .200 | .400 | -0.1 | -0.1 |
1987 | 107 | 356 | 73 | 16 | 0 | 20 | 58 | 43 | 3 | 60 | 104 | .247 | .376 | .505 | .881 | 1.3 | 1.4 | |
1988 | 154 | 623 | 151 | 35 | 4 | 34 | 100 | 82 | 6 | 79 | 149 | .282 | .376 | .552 | .928 | 6.6 | 6.2 | |
1989 | 161 | 680 | 148 | 27 | 3 | 36 | 98 | 92 | 7 | 119 | 132 | .269 | .399 | .525 | .924 | 6.4 | 6.6 | |
1990 | 153 | 658 | 167 | 21 | 1 | 35 | 91 | 88 | 5 | 94 | 108 | .300 | .400 | .530 | .930 | 5.5 | 5.2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1 | SD | 153 | 642 | 147 | 19 | 1 | 31 | 84 | 106 | 4 | 105 | 135 | .278 | .396 | .494 | .890 | 3.6 | 3.4 |
1992 | 152 | 632 | 152 | 30 | 4 | 35 | 79 | 104 | 8 | 96 | 108 | .286 | .394 | .556 | .950 | 5.5 | 5.2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3 | SD/ATL | 151 | 640 | 162 | 29 | 2 | 37 | 111 | 101 | 5 | 76 | 106 | .291 | .375 | .549 | .924 | 4.5 | 4.2 |
1994 | ATL | 113 | 478 | 135 | 25 | 1 | 34 | 81 | 94 | 7 | 50 | 76 | .318 | .389 | .623 | 1.012 | 4.8 | 4.6 |
1995 | 144 | 604 | 148 | 27 | 1 | 27 | 85 | 93 | 3 | 65 | 99 | .280 | .361 | .489 | .850 | 2.2 | 1.4 | |
1996 | 159 | 691 | 182 | 37 | 1 | 28 | 81 | 107 | 7 | 68 | 116 | .295 | .365 | .494 | .859 | 2.8 | 1.7 | |
1997 | 152 | 641 | 156 | 25 | 1 | 22 | 77 | 97 | 5 | 68 | 112 | .277 | .356 | .441 | .797 | 1.4 | 0.2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8 | TB | 151 | 649 | 160 | 33 | 0 | 19 | 73 | 81 | 7 | 79 | 118 | .284 | .371 | .443 | .815 | 3.1 | 2.9 |
1999 | 144 | 620 | 164 | 30 | 1 | 32 | 75 | 104 | 1 | 86 | 107 | .310 | .405 | .552 | .957 | 3.6 | 4.0 | |
2000 | 158 | 664 | 157 | 18 | 0 | 27 | 82 | 106 | 2 | 91 | 120 | .277 | .373 | .452 | .826 | 0.1 | 0.2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1 | TB/CHC | 146 | 586 | 157 | 25 | 2 | 31 | 67 | 102 | 1 | 66 | 106 | .306 | .386 | .544 | .930 | 3.6 | 3.7 |
2002 | CHC | 146 | 595 | 143 | 27 | 2 | 30 | 67 | 103 | 1 | 63 | 99 | .273 | .353 | .505 | .858 | 2.4 | 2.1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3 | LAD | 86 | 329 | 74 | 14 | 0 | 13 | 32 | 40 | 0 | 31 | 66 | .249 | .322 | .428 | .750 | 0.4 | 0.4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4 | TB | 27 | 81 | 13 | 3 | 0 | 2 | 7 | 7 | 0 | 9 | 19 | .181 | .272 | .306 | .577 | -0.7 | -0.6 |
MLB 통산 (19시즌) | 2460 | 10174 | 2490 | 441 | 24 | 493 | 1349 | 1550 | 72 | 1305 | 1882 | .284 | .377 | .509 | .886 | 56.9 | 52.6 |
5.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 득표율(%) |
2010 | 21.5 |
2011 | 17.9 |
2012 | 23.9 |
2013 | 20.7 |
2014 | 11.7 |
2015 | 12.9 |
2016 | 20.9 |
2017 | 21.7 |
2018 | 23.2 |
2019 | 39.8 |
투표를 통한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처음부터 별로 높지 않았다. 1루수로서 수비력이 은근히 좋지 않았다는 평가는 둘째치고 가장 큰 문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홈런왕을 두 차례 차지하기는 했지만 40홈런 고지를 넘긴 적은 한 번도 없고, 수상 기록은 올스타 5회와 올스타전 MVP 1회, 실버슬러거 3회가 전부이다. 누적 스탯 역시 입성 컷인 500홈런에 22개 차이로 아깝게 그치지 못하며[6] 결정적으로 뛰던 시대가 약쟁이들의 천국인 스테로이드 시대와 다소 겹치는 바람에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뛴 기간이 5년에 불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의 속성이 약한 저니맨이라는 점 역시 단점. 실제로 그와 가장 유사한 커리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윌리 맥코비, 윌리 스타젤, 카를로스 델가도는 모두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는 이미지가 강한 선수들이다.[7]
그나마 2000년대 후반 약물 스캔들로 인해 평가가 올라간 것이 큰 장점으로, 비록 500홈런은 넘기지 못했지만, 약물 의혹이 깨끗한 홈런왕이라는 이미지와 꾸준한 면모를 어필한다면 명예의 전당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첫 해 21.5%의 득표를 받았는데, 두 번째 해에는 17.9%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유력 후보가 전무한 2012년 투표에서 득표율이 대폭 오르는지 여부에 따라 그의 입성 여부가 결정될 듯. 만일 대폭 오른다면, 10수 이상 해서 기어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2년의 득표율은 후보에 오른 이후 가장 높은 23.9%를 마크했지만 2013년에는 20.7%에 머물렀고, 2014년에는 11.7%로 뚝 떨어졌다. 2015년에는 12.9%로 다시 올라가기는 했지만 이제 단 4번[8]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사실상 매우 힘들어졌다. 2016년에는 20.9%로 다시 20%대를 넘었지만 2018년 23.1%에 머물며 사실상 헌액은 물 건너갔다. 마지막 10회차인 2019년의 득표율은 39.8%로 결국 비슷한 득표율대에서 와리가리만 하다가 떨어졌다.
다만 리 스미스나 해롤드 베인스, 잭 모리스 등처럼 베테랑 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헌액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2022년 12월, 베테랑 위원회 추천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6명의 투표인단 모두에게 표를 받아 기준 득표인 12표를 가볍게 넘겼다. 사실 그마저도 운이 없어서 원래대로라면 2년 뒤인 2021년에 들어가야 맞았으나, 4년이나 밀려 들어갔는데, 이 때 명전 선정 위원회가 바뀌어 맥그리프의 활동기간에 따른 구분이 변경되어버려 다른 해에 심사를 받아야 되었기 때문이다.
맥그리프가 워낙 여러 팀에서 경력을 쌓았다 보니 어느 팀의 모자를 쓰고 들어갈지도 관심사다. 커리어 하이를 찍은 곳도, 가장 많은 WAR을 쌓은 것도 토론토 블루제이스긴 하지만, 올스타에 3회 선정되며 임팩트를 남겼고 커리어 유일한 우승반지를 얻은 팀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고, 그렇다고 이 두 구단에서의 활약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수준은 아니라서 고향팀이고 현재도 구단과 인연이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 모자를 쓸 가능성도 충분하다. 만약 탬파베이 모자를 택한다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레이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탬파베이 모자를 쓰고 쿠퍼스타운에 헌액되는 선수가 등장하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맥그리프의 29번이 레이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9]
이후 맥그리프는 빈 모자를 쓰고 가기로 결정했다.[10] 영구 결번은 사실상 무산된 분위기지만, 대신 2024년 9월 1일에 레이스 구단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됐다.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프레드 맥그리프 | 9 | 105 | 100 | 48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First Base (32nd)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프레드 맥그리프 | 52.6 | 36.0 | 44.3 |
1루수 HOF 입성자 평균 | 66.4 | 42.7 | 54.6 |
6. 관련 문서
[1] 그 덕에 메이저리그 30개 팀 모두의 홈구장에서 홈런을 쳐 본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2] 이 시즌에 데뷔한 박찬호 첫 상대타자이기도 하다. 결과는 볼넷. 결국 후속타로 홈을 밟으며 첫 자책점도 안겨주었다.[3] 이 기록조차 팀 내 최다 홈런, 타점, 볼넷이다.[4] 2001시즌 합계 146경기 .306 31홈런 102타점[5] 동세대 슬러거들과 비교해도 타석 대비 볼넷과 삼진 모두 많은 선수였는데 역으로 볼넷을 조금만 덜 얻어내고 타격을 더 많이 했다면 500홈런과 2500안타 모두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6]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시기인 1994년과 1995년에 메이저리그 파업 사태로 인해 적지 않은 게임을 날려먹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실제로 1994년에 멕그리프는 34홈런을 치며 커리어 하이를 향해 기세 좋게 달리던 중이였으나 파업 때문에 113게임 출전에 그쳤는데, 역시 파업 여파로 18게임이 단축된 1995년 시즌과 합치면 총 67게임을 손해본 것이다. 야만없이라지만, 파업 없이 정상적인 진행으로 기세를 계속 이어갔다면 40홈런 시즌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고, 통산 500홈런도 어렵지 않게 달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때 맥그리프와 함께 가장 큰 손해를 본 선수가 같은 팀이었던 그렉 매덕스로, 매덕스 역시 그 두 해가 최전성기였다. 하지만 매덕스역시 그 두 시즌을 날림으로써 임팩트가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보다 아쉽다는 말만이 나올 뿐 명전 입성 가능성에 피해를 입히진 않았다.[7] 차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모두 한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력을 갖고 있다. 참고로 이들 중 맥코비 (MVP, 홈런왕 3회)와 스타젤 (MVP, 홈런왕 2회)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나, 두 선수들보다 커리어가 뒤쳐지는 델가도 (타점왕 1회)는 첫 해에 득표율 3.8%를 받고 광탈했다.[8] 원래 최대 15회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2015년부터는 이미 10회를 넘긴 은퇴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일괄적으로 10회로 단축되었다.[9] 참고로 2023시즌 기준 레이스의 29번은 피트 페어뱅크스가 사용하고 있다.[10] 본인의 커리어를 시작했던 토론토,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애틀랜타, 고향 팀인 탬파베이, 그리고 두 번째 팀 샌디에이고까지 모두 다 본인에게 소중한 팀들이라 한 팀만 선택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빈 모자를 쓰게 된 이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