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4 04:37:16

저니맨

1. 개요2. 내용3. 사례
3.1. 야구3.2. 축구3.3. 농구3.4. 배구3.5. e스포츠
4. 대표적인 예시5. 여담

1. 개요

Journeyman

프로 스포츠 용어. 해마다 혹은 자주 팀을 옮기는 방랑자 혹은 떠돌이 선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원래는 서양 중세 수공업에서 장인(master)과 도제(apprentice) 사이 단계에 있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단계에 있는 수공업자로써 번역하자면 '직인'을 일컫는 뜻이었다.

2. 내용

스포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니맨이 아무래도 실력도 떨어지거나 무명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러한 편견과 달리 정말 2군급까지 떨어지는 선수들은 팀을 자주 옮기지도 못한다. 실력이 없으면 받아주는 팀이 없으니까.

일반적으로 저니맨이 되는 선수들은 당연히 어느 팀에 가건 1군에서 써먹어볼 수는 있는 선수다. 축구로 예를 들때 이른바 빅클럽에서 방출하는 선수는 진짜로 팀 플랜에 없거나 롤플레이어로도 쓸모가 없는 선수이다. 반면 소유권을 두고 타 팀으로 임대 보내는 선수는 당장은 쓸 일이 없지만 일단 경기 감각만 유지하다 보면 발전 가능성이 있거나 싸게 사서 임대로 엄청 받고 보내는 그러면서도 이적은 안 시키고 혹시나 해서 묶어두는 선수인데, 이런 선수는 소속만 FC 바르셀로나 혹은 맨체스터 시티 FC지 실제로는 여기저기 파견가는 저니맨이다.[1] 이렇게 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순위를 끌어올려줄 정도의 실력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A급이나 S급의 선수라고 보긴 힘든 선수들이다. 예를 들어 1부리그 상위권 팀에서는 쓸 일이 없고, 중위권에서는 로테이션으로 돌릴 가치는 있으나 주전급으로 가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하위권이나 승격팀으로 가면 주전급은 보장되지만 대신 이적료나 주급 지출이 막대한 선수라면 저니맨이 된다. 그래서 승격팀 위주로 돌리고 이적료도 헐값인데 정작 그 승격팀에서 이적료 순위로 따지면 1, 2위를 밥먹듯이 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승격팀 경제력이라는 게 뻔한지라, 1년 잘 썼지만 지갑사정상 연봉을 올려주긴 힘들기에 다른 데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수들은 당연히 실력이 S급의 선수들은 아니므로 연봉이 비교적 저렴하지만, 어쨌든 팀에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만한 기량이 되므로 팀의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매우 좋은 선수들이니 제법 괜찮은 대우를 받긴 하지만, 팀의 상황이 바뀌게 되면 잉여 전력이 되므로 자연히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게 된다. 그러나 전술했듯 이런 선수들은 어느 한 가지 분야의 구멍을 메꿔줄 수 있는 실력은 되니까 어쨌든 찾는 팀이 꾸준히 나오게 마련이므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과 다시 계약을 하면서 의외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게 된다. 즉, 저니맨들은 사실 프로 선수들 중에서 나름 성공한 축에 드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저니맨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긴 하지만, 어찌됐든 이적하는 팀에서 그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입하는 것이고, 또한 그 선수가 잘하는 분야에 구멍난 팀이 리그에 하나만 있는 경우는 사실상 없으니까 영입 과정에서 경쟁도 붙게 마련이니까... 때문에 연봉 등에서 S급이나 A급 선수들 수준에야 못미치지만 고만고만한 1군 레벨 선수들보다는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또는 실력 여부와는 아예 상관없이 특정 전술에만 특화된 선수들 역시 저니맨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전술을 위해 이 저니맨을 영입했는데 그걸로 별 짭짤한 맛을 못보면 또 그 전술이 필요한 팀에게 이 저니맨을 넘기는 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어느 정도 실력과 희소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본인이 현역으로 오래 뛰는 것을 원할 때[2] 전형적인 저니맨 테크가 완성된다. 이런 선수들은 팀의 입장에서 볼 때 가성비만 밎춰주면(연봉을 적당히 싸게 주면) 어딘가 쓸모가 있는 만큼 꾸준히 수요가 있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게 된다. 예를 들면 야구에서는 좌완 중간계투[3], 왼손투수 킬러 대타요원[4], 내야 유틸리티, 외야 대수비, 백업 포수, 발 빠른 전문 대주자, 용규놀이 전용 타자라거나 어느 팀에 가도 로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특급은 아닌 선발투수[5] 같은 유형의 선수들이 있으며, 농구에서는 몸빵형 센터, 수비 스페셜리스트, 전문 3점 슈터 등, 종목을 불문하고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전술적으로 최소한 뭐 한가지는 확실히 잘하는 선수들이 저니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주전급 실력은 아니어도 어딘가 쓸모가 있어서 찾는 팀이 여기저기 바뀌는 거지 실력이 없거나 무명이어서 아무데나 막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다.

3. 사례

3.1. 야구

이 방면의 레전드MLB에서 46세까지 현역 선수로 뛰면서 1252경기에 등판해 통산 최다 경기 등판기록을 보유한 원 포인트 릴리프의 전설 제시 오로스코나 13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활동한 기록을 보유한 MLB 통산 최다 대타홈런기록 보유자 맷 스테어스가 있다.[6], 투수 중에는 김병현디백스 시절 동료로 알려진 마이크 모건[7]과 론 빌론(Ron Villone)[8] 두 선수가 총 12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출전하면서 이 부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에 도전장을 내는 선수로는 2013년 시점에서 현역이며 13개 팀에서 뛴 옥타비오 도텔이 있다. 13번째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출전하면서 맷 스테어스와 타이기록이 되었으나 이 이후 은퇴. 2019년 현재 현역 에드윈 잭슨이 14번째 팀을 찾으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는 40인 로스터의 ¼~⅓은 이렇게 단기 계약으로 뛰며 마다 새 팀을 찾아다니는 선수가 주를 이룬다. 바로 "스프링캠프 초청 마이너 계약"인데, 한 팀마다 25인 로스터 기준으로 내야 2~3명 외야 1~2자리 백업 포수 1명, 총 다섯 명(물론 게임데이 25인을 넘어 MLB 한 시즌 40인 로스터의 경우엔 대상자가 늘어나지만, 40인 로스터에 들고 트리플A 등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은 베테랑 뿐만 아니라 서비스타임 문제로 콜업이 늦어지는 유망주들도 다수를 차지한다.)을 뽑기 위해 스프링캠프마다 수많은 베테랑이나 저니맨들을 데려와서 경쟁시키는데, 높게는 3: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인다.(물론 이런 저니맨들 외에도 마이너에서 올라온 유망주들까지 합세한다.) 대개는 캠프 중간에 위약금도 못받고 방출당하며(당해 마이너 계약 선수가 정규시즌 전에 방출되는 경우엔 "당해 연봉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MLB 로스터에 진입하면 봉급이 크게 상승하는 형태로, 시애틀 팜에서 성장하여 2005년에 처음 콜업을 경험했던 추신수무릎팍도사에서 "몇 경기 벤치에만 앉아있는데도 마이너 한달 월급이 나온다"고 한 바 있다.

심지어 기존의 커리어가 빵빵해서 자존심이 있거나 MLB 로스터의 해당 포지션 경쟁이 치열한 경우는 마이너 계약을 하고 "일정 날짜(대개 5월 중순)까지 메이저 콜업을 못받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이런 선수들은 대개 선수층이 얇은 다른 팀으로 입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새 팀에서도 9월 확장 로스터에서나 콜업을 받거나 1년 내내 마이너 팀에서만 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포지션별로 본다면, 대개 유틸리티로서의 활용가치가 뛰어난 미들라인 수비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빅리그에 올라올 가능성이 부족한 투수나 코너 외야수, 1루수들은 MLB 팀들보다도 오히려 일본프로야구한국프로야구 등 동양 리그의 진출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금전적으로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국내에 온 저니맨 용병들 중 성적 안 나오는 선수에 대해 팬들이 비난을 퍼부으며 쫓아내라 꺼져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수의 가족, 특히 아이가 와 있는 가운데에 그런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다면, 말은 안 통해도 다 알아듣는다. 선수 입장에서 본다면 성적 안 나오는 것도 이미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 앞에서 쏟아지는 야유를 들으면 심정이 어떻겠는가? 야유를 하는 것이야 팬의 고유한 권리지만, 하더라도 정도껏 수위를 지켜서 하자. 외국인 선수들도 저니맨으로서 힘들게 선수생활 이어가다가 능력과 운이 좋아서 외국인 선수 대우 잘해주는 한국에 온 것이다. 대부분의 일부 몰지각한 해설자들이 외국인 투수들의 적응 과정에서 "꼴에 자존심만 세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물론 그 말이 항상 틀린 거는 아니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보니 굉장히 절박한 상황이라 오히려 자존심을 세울 입장이 못된다. 대개는 리그의 성향과 문화적인 풍토와 무엇보다도 언어 때문에 초반 적응에 고생하는 경우인데, 이를 건방지다는 식으로 대놓고 표현한다면….

민훈기 기자가 취재한 브랜든 나이트브라이언 코리의 이야기를 보면 아주 파란만장하다. 독립리그까지 갔다가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웨이버 공시로 풀렸으면서도 테오 엡스타인에게 계속 계약을 제시받으면서 마이너와 트리플A를 오르내리며 정신없이 뛰다가 미국 북동부에서 멕시코 국경도시로 트레이드까지 되고 일본야구 진출도 트라이아웃에서 겨우 계약하는 등, 미국도 미국이지만 특히 도미니카 공화국 같은 중남미 출신 선수들은 이렇게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금전적 문제 등으로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고 우울증에도 시달린단다.

아무래도 저니맨들의 경우엔 이곳 저곳 다 옮겨다니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고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표적으로 전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맨이었던 최익성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1998년 이후 거의 매 해 타 팀으로 이적하며 스토브리그를 순탄하게 보낸 경우가 없다시피 했다. 최익성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프로야구의 저니맨 중 하나였던 이동수 역시 삼성에서 롯데로, 1년만에 다시 쌍방울로, 쌍방울 해체 뒤 선수단을 인수한 SK에서 해태로, 또 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기는 등 엄청나게 옮겨다녔다. 최향남의 경우는 아예 인생이 저니맨. 또한 투수 김영수김경태는 좌완불펜투수로서의 가치 때문에 방출되고도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고, 그 외에도 손지환 역시 5가지 유니폼을 입으며 최익성의 기록을 위협하는 저니맨이 되었다. 손지환의 경우 아쉬운 타격에 비해 좋은 수비를 가졌기 때문에 내야에 구멍이 난 이팀 저팀 다니며 내야를 땜빵하는 케이스. 이에 비해 송신영은 특이한 경우. 원래는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적통으로써 프랜차이즈로의 길을 걷고 있었으나 트레이드 마감 기한을 4시간 남겨놓고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반 시즌 뛰고 FA 제도 대박을 터트려 한화 이글스로 떠났지만, 2012년 분식회계하며 끔직하게 부진... 결국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11년, 12년, 13년 모두 제각기 다른 팀에서 뛰게 되었다. 떠돌아다니는 신영언니를 보는 넥센빠들은 그저 피눈물만 짓고 있었는데… 2013년 4월 18일 뜬금없는 트레이드로 인해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로 컴백하며 프랜차이즈 선수로 복귀하였다. 즉, 프랜차이즈 선수와 저니맨을 모두 겪은 흔치 않은 케이스. 하지만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40세의 나이에 한화 이글스로 또 팀을 옮기게 된다. 2019년 현재 최근에는 오준혁이 한화-KIA-KT를 거쳐 SK로 이적함으로써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에 저니맨의 길을 가고 있다.
트레이드웨이버 공시가 국내보다 훨씬 활발한 해외의 경우엔 대형 트레이드들이 엄청나게 많이 터지는데, 해외의 저니맨은 셀 수 없이 많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A급으로 꼽히는 선수라도 FA 시점이 다가오면 각 팀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대박 계약으로 겨우 정착하는 경우도 있다.[9] 극단적인 경우가 리그 최고의 선발 중 하나로 꼽히면서도 FA 2시즌 전부터 FA 계약때까지 4번이나 팀을 바꿔야 했던 클리프 리. 물론 그 과정에서 팀을 옮기는 선수들 중에는 빅마켓 팀의 유망주들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저니맨 생활이기에 선수 본인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일본프로야구의 저니맨으로는 투수로는 쿠도 키미야스[10] 에나츠 유타카[11] 등이 꼽히는데, 이들은 영입한 팀마다 리그 우승 등에 꼬박꼬박 공헌해 '우승 청부사'라는 명예로운 별명으로 불리는 케이스. 타자로는 일본에서만 5개 팀(+LA 다저스)에서 뛴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꼽힌다.[12]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에도 FA 제도가 생기고 포스팅 시스템 등으로 일본인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길이 생기면서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저니맨들이 여럿 생겼는데, 일본인 메이저리거의 선구자 노모 히데오도 말년은 저니맨이었고 메이저리그에서 7개 팀을 거쳐간 아오키 노리치카, 메이저리그 5개 구단에서 뛴 사이토 타카시, 일본 4개구단-메이저 3개 구단에서 뛴 요시이 마사토, 일본 4개-메이저 2개 구단에서 뛴 오카지마 히데키 등 많은 저니맨들이 있어왔다. KBO 리그를 거쳐간 이리키 사토시, 카도쿠라 켄, 다카쓰 신고 등의 일본인 선수들도 충분히 저니맨이라 할 수 있는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

3.2. 축구

축구계에서 정말 오래 뛰기 위해 팀을 여러 번 옮긴 저니맨의 대표적인 선수는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등을 거쳤으며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공격수로 뛴 왼발의 달인 히바우두가 있다. 수상경력 중 굳이 하나만 꼽자면 1999년도 발롱도르가 있다. 1972년 생으로, 43세까지 현역이였다. 이때 마지막으로 뛰었던 2부리그에서 코치겸 선수도 아닌 구단주겸(...) 선수로써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골을 넣으며 무릎 문제로 진짜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팀의 리그 성적을 올리는데 이바지하였다.

무려 19개 국가를 옮겨다닌 일본 축구선수도 있다. 이 선수는 다양한 리그 경험을 위해 한 리그에 오래 적을 두지않고 계속 옮겨다니면서 뛰고 있고, 2017년에는 동티모르리그로 옮겼다. 현재 소속팀은 28번째 소속팀.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아직 은퇴 생각 없고 다음 목표가 중앙아시아카더라. 곧 30회 이적을 기록할 꺼 같다. 그러나 2018년 8월 기준으로 삿포로에서 축구교실 코치로 활동 중이다가 2019년 사커 리그의 로버스 FC에 입단하여 다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있다.

어두운 일면으로, 브라질이나 동유럽에서는 상기한 이유 뿐만 아니라 소속사나 에이전트가 계약금을 뽑아내기 위해 선수를 저니맨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선수들은 제대로 정착하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팀을 옮겨다니며 성장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제대로 된 소속팀에 정착해서 늦게야 빛을 보기도 한다. K리그에서 성공한 브라질, 동유럽 선수 중 과거에 팀을 자주 옮겨다닌 기록이 있다면 상당수가 이런 케이스.

3.3. 농구

NBA에서는 2017년 기준으로 역대 최다 이적기록(12회)을 자랑했던 처키 브라운, 조 스미스, 토니 마센버그 3인방과 크리스 개틀링, 그리고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한때 3J[13]로 유명했던 짐 잭슨이 이 분야의 레전드이다.

특히 처키 브라운은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출신으로 1989년 NBA 드래프트 전체 43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어 2002년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무려 12개 구단에서 활약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와 CBA 구단에서 뛴 걸 합산하면 토니 마센버그(16개)에 이은 2위(15개)이다.

그러나 1994~1996년까지 휴스턴 로켓츠에서 뛴 걸 빼면 브라운은 정규시즌 초반부터 함께 하는 경우가 없었다. 대신 늘 어느 구단에서는 부상자가 생겨 긴급히 베테랑을 수혈할 필요가 있으면 팀은 늘 브라운을 불러왔다. 그의 성적은 통산 평균 5.9 득점에 3.1 리바운드로 안습한 모습을 보였으나, 10짜리 계약이든 남은 시즌이든 뭐든 간에 성실함을 바탕으로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기 때문이다.

크리스 개틀링의 경우, 버지니아 주의 무명 학교인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출신이었지만, 대단히 성실하고 파워포인트 포지션에서 꾸준히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플레이로 백업 멤버에서 주전으로 천천히 올라가 1996/97 시즌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뛰던 시절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한 곳에 눌러앉지 못하고 2002년까지 모두 9개 구단에서 뛰었다.

이처럼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를 트레이드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시는 트레이드될 수 없다."며 조급한 나머지 자신의 기록에만 열중하다 주가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올스타가 된 댈러스 때부터 득점에만 연연하다 팀 플레이를 망쳐 결국 뉴저지로, 그리고는 밀워키로 옮겨져야 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식스맨 이상의 역할은 맡지 못한 채 리빌딩이나 트레이드를 위한 카드로 사용되며 덴버, 클리블랜드, 마이애미 등을 떠돌아다니다 2002년에 러시아CSKA 모스크바를 거쳐 2003년에 이탈리아의 빅토리아 리베르타스 피사로를 끝으로 은퇴했다.

짐 잭슨은 일반적인 저니맨과 달리 한때 올스타에 버금가는 실력자였다. (비록 부상으로 풀시즌을 소화는 못했지만 커리어 하이가 25점-당시 리그 5위-에 달한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인해 댈러스가 3J를 해체하고[14] 나서부터는 이상하게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팀동료 키드는 피닉스, 뉴져지 등에서 레전드가 되어가고 매쉬번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샬럿(훗날 뉴올리언즈로 이전)에서 스타가 되가는 동안 잭슨은 역대 최다인 12개의 팀을 옮겨다니며 선수생활을 해야했다. 말이 12개지 그 넓은 미국땅에서는 동부와 서부, 중서부, 남부 등이 서로 문화조차 다른점이 많은데, 그는 6개 디비젼을 모두 경험했다. 그와 타이기록을 갖고 있는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후보급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억울할지도 모른다. 실력도 괜찮고 성격이 그렇게 모난것도 아닌데[15] 심할 정도로 일이 안 풀린 편.

한편 레전드나 MVP급 중에서는 샤킬 오닐이 팀을 많이 옮긴 편이다. 오닐은 총 6개의 팀에서 뛰었는데 이중 피닉스, 캐벌리어스, 셀틱스는 말년에 옮긴거지만, 슈퍼스타급 기량을 가지고 있을 때는 팀을 자의로 2번이나 옮겼다. 올랜도에서 데뷔한지 4년만에 레이커스로 옮겨서 충격을 줬는데, 당시 오닐은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나 팀내 또다른 슈퍼스타 페니 하더웨이와 에이스 역할을 놓고 갈등에 휩싸이다 가버린 것. 재밌게도 오닐은 8년 후 코비와 비슷한 상황에 휩싸였는데, 팀의 경영진이 젊은 코비를 선택하자 히트로 가버렸다. 당시만 해도 오닐은 MVP급 (실제로 이적 직후 MVP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이었기에 리그를 한바탕 뒤집어놓은 바 있다. 또한 윌트 체임벌린 역시 팀을 여러번 옮겼는데 필라델피아 워리어즈로 데뷔했다가 이적하진 않았지만 팀이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하는 바람에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즈가, 이후 고향 필리로 가고픈 마음에 필라델피아에서 새롭게 옮겨간 세븐티식서스(시라큐스 내셔널스에서 이름을 바꿈), 마지막으로 LA로 이적해 레이커스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직 만 30세가 안 됐으며 (1984년 12월 생) 역대급 선수로 이름을 남길것이 확실시되는 르브론 제임스는 2019년 기준으로 팀을 세번 옮겼는데 (물론 두번째는 원 소속팀으로 복귀. 즉, 클리블랜드 -> 마이애미 -> 클리블랜드 -> 레이커스) 비슷한 '급'의 선수들의 해당 나이대에 비하면 상당히 자주 옮긴 편이다. NBA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찾아보기가 예전보다 힘든데, 많은 젊은 선수들이 이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당연히 오닐, 르브론, 체임벌린같은 경우는 저니맨이라기보단 "우승청부사"의 느낌이 강하다.

국내 프로농구에도 저니맨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전형수황진원으로, 특히 황진원은 처음에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받아 입단했으나 첫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창원 LG 세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나마 그 시즌 도중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적, 그 다음 또 서울 SK 나이츠로, 코리아텐더에서 바뀐 부산 KTF 매직윙스로, 안양 KT&G 카이츠로, 원주 동부 프로미로, 서울 삼성 썬더스로 여러 군데 옮겨다녔다. 황진원 역시 수비력이 괜찮고 한 방이 있기 때문에 자주 옮겨다녔다. 그리고 김영만도 기아 소속으로 뛰다가, 기아의 프렌차이즈로 자리잡았으나, 최희암 감독의 병크 때문에 저니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대협과 정종선도 팀을 자주 옮겨다녔던 대표적인 저니맨들이다.

3.4. 배구

한국프로배구에서도 역시나 존재한다. 없는 게 이상하지! 다만, 리그 규모가 워낙 작은 터라 사례가 많지는 않다. 특이한 점이라면 유독 주전 세터들의 이적이 잦단 것이며, 대표적으로 황동일, 강민웅, 한수지에 심지어 10주년 전설 중 한명인 김사니가 대표 사례.

세터 포지션이 아닌 선수들 중에 대표적인 저니맨은 바로 한송이. 여배판 김영만이라 봐도 될 정도로 첫 소속 팀인 도로공사에서 뛸 당시 첫 FA를 맞았는데, 그 당시 프런트의 황당한 병크로 인해 저니맨이 된 사례. 남자부에서는 주상용이 대표적이다. 공격은 그럭저럭인데 수비가 잘 안 되는 윙스파이커라 컵대회에서는 기대치가 높아지는데 외국인 선수가 합류하는 리그에서는 뛰는 기회가 없어서 결국 떠돌아다닌 경우.

3.5. e스포츠

e스포츠의 경우에는 오버워치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 교체가 힘들다는 특성 때문에 다른 종목들과 달리 특정 부분의 강점 때문에 저니맨이 되는 경우는 드물고, 몇몇 대기업 팀들을 제외하면 불안한 운영 구조, 혹은 2부리그나 주요 강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로의 잦은 이적 때문에 저니맨이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e스포츠 저니맨 분야의 레전드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활동하는 안순호, 한왕호 선수 정도가 대표적인 선수로 들 수 있는 상황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애매한 기량 때문에 점점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로 이적하며 저니맨이 된 경우고, 후자는 기량면에서 부족할 게 없는데도 팀이 불안정해서 자주 이적을 한 경우다.

4. 대표적인 예시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하나라도 포함된다면 기재가 가능하다.

5. 여담

반면 실력이 매우 뛰어나고 팀에서도 계속 쓰고싶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한 팀에 오래 엉덩이 붙이고 못 사는 선수들이 있다. 이런 선수들은 보통 좋지 않은 성격 문제 때문에 한 팀에 오래 못 있는 경우가 태반으로, 지금까지 무려 12번이나 이적한 과거 뉴캐슬 시절 앨런 시어러와 영혼의 투톱으로 유명한 크레이그 벨라미와 더불어 현재까지 이적 횟수 16번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루카 토니와 14번의 이적 횟수를 가지고 있는 니콜라 아넬카, 그리고 은퇴한 크리스티안 비에리, 미도 등이 이 방면의 레전드. 국내에서는 노장진이 그나마 비교대상이 될 만하다[16]. 이천수도 이런 식으로 선수 생활한 것을 보면 참으로 안습... 그렇긴 한데 축구선수들은 1부리그 선수로 한 팀에 발 붙이기 전까지는 2, 3부리그 여러 팀을 임대 등을 통해 뛰는 경우가 많아서 이적 횟수 자체만으로도 저니맨이라고 평가받긴 어렵다. EPL, 세리에 A, 분데스리가, 라리가 등 유럽 빅리그 명문팀들의 주전급 기량이 검증되었는데 저니맨이 된 루카 토니나 아넬카, 비에리 등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 그와는 반대로 너무 못해서 방출과 입단을 자주 반복하던 선수도 있었다. 김경태가 그런 케이스.

한국 아이돌에서도 연습생이 데뷔 전 소속사를 여러 번 옮겨 다니면 이게 되기도 하는데, 이전 소속사에서 데뷔할 확률이 적어질 경우 기회 확보를 위해 다른 기획사로 인력이 이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DSP에서 데뷔하기 전에 드림티, 예당, 코어, 키이스트를 거친 허영지. 그러나 보통 연습생 경력은 아무리 연습생을 오래 했다고 해도 정식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새 그룹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아니라 기존 그룹에 합류하는 경우 다른 신인 그룹들에 비하여 방송국에서 받는 대우(대기실 및 음방 출연 순서 배정 등) 측면에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속사는 그대로인데 4 에 소속을 두었던 윤채경도 있다.

또 연습생은 아니고 현역 가수지만, DJ DOC도 일종의 연예계의 저니맨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들은 소속사와의 잦은 불화로 인하여 그동안 자주 이 소속사 저 소속사 자주 전전하였다고 한다.

개그계에서는 박준형[17]최국[18]이 저니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계에서는 철새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이인제김한길이 당적 변경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향이 다른 정당으로 이동한 것에 가중을 두면 이인제가 더 저니맨에 가깝다.


[1] 이런식의 장기 임대를 많이 쓰는 팀으로 악명 높은 팀이 첼시 FC.[2] 슈퍼스타 선수들은 나이 때문에 자신이 주전에서 밀려난 경우 자존심 때문에 바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고액연봉자라 이미 도 많이 벌어놨고, 팀에서도 해외코치연수, 은퇴식 등을 조건으로 명예로운 은퇴를 권유하기도 한다. 반면에 자존심 버리고 현역 연장하려는 마인드거나, 혹은 돈이 필요해서 억지로 선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저니맨이 되는 경우가 저니맨 테크트리의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아들 병원비 때문에 여러 리그를 떠돌면서 2017년까지 뛴 카림 가르시아.[3] 요즘은 좌완 선발보다도 좌완 A급 불펜투수가 워낙 귀해지는 바람에 몇몇 괜찮고 나이도 적당한 선수들은 2~3년 장기계약을 제시하여 독점하기도 한다. 물론 제레미 아펠트나 맷 손튼, 궈홍치(…) 같은 강력한 좌완 릴리버들의 경우는 웬만한 클로저급(그러나 막상 클로저로 기용하면 대부분의 좌완은 실패하기 때문에 그냥 셋업맨/원포인트로 기용한다.)의 대우를 받는다. 저니맨계의 슈퍼 을. 국가대표급 불펜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삼성 라이온즈도 그 권혁 하나 없어졌다고 몹시 고생했는데, 그간 잘해오던 맷 손튼과 궈홍치의 2011년처럼 털리고 다니거나 DL에나 올라있으면 그 팀의 성적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특히 경기 후반에 투수 자리에 투입할 대타가 필요한 내셔널리그에서는 상대 투수가 우투수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외야나 1루 대수비를 겸할 수 있다면 좌타자도 우타 빅뱃 못지 않게 인기가 많다.[5] 대표적 예로는 류현진과 비교되는 데이비드 웰스라던지, 유리몸으로 유명한 리치 하든, 댄 해런 같은 선수들. 혹은 선발이 부족한 팀에서 전성기가 지나 기량이 다소 저하된 왕년의 슈퍼스타 선발투수를 저렴한 몸값 또는 짧은 계약기간으로 영입하는 사례도 여기에 해당된다.[6] 심지어는 일본에서 뛴 적도 있다. 1993년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1년을 뛰었다.[7] 78년 데뷔해 2002년까지 선수 생활을 해서 70,80,90,2000년대의 4-decade를 모두 뛰어본 선수로도 유명하다.[8] 이 투수는 좌완 셋업맨으로, 커리어 내내 단 한 팀에서도 3년 이상 뛴 적이 없는 진짜 저니맨이다. 길어야 2시즌 뛴 게 전부.[9] 보통 리빌딩을 계획하는 팀이 FA를 앞둔 팀의 주축 선수를 포스트 시즌을 노리는 팀에게 유망주 패키지와 트레이드한다.[10] 단, 쿠도는 세이부 라이온즈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두 차례 FA로(세이부->다이에->요미우리) 이적한 뒤 전성기가 확연히 지난 40대 이후부터 FA 보상선수로 요코하마에 이적한다던지 하는 등 본격적인 저니맨 생활을 했다.[11] 이쪽은 이미 전성기 때부터 수뇌진과의 불화 등의 문제로 이 팀 저 팀 자주 옮겨다녔다.[12] 이쪽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긴테쓰 구단이 소멸하면서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메이저 진출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후신 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었지만 부진을 보인 끝에 1년만에 방출되고 저니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3] 나머지 2J는 제이슨 키드, 자말 매쉬번.[14] 가수 토니 브랙스톤을 둘러싸고 키드와 잭슨간의 마찰이 있었다.[15] 상기된 여자문제 제외하곤 큰 스캔들이나 팀내 불화에 휘말린 적도 없다. 오히려 키드가 가정폭력으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16] 한화 이글스 - 삼성 라이온즈 - 롯데 자이언츠.[17] 개그 콘서트, 개그투나잇,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하였다. 방송사는 모두 다르다.[18] 개그 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 개그공화국에 출연하였다. 5개의 방송사에서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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