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7:03:25

연습실 본좌

1. 개요2. 타 종목3. 원인4. 연습실 본좌의 계보(?)5. 특이 사례6. 하부리그의 본좌7. 관련 항목

1. 개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중 숙소에서 연습할 때는 좋은 성적을 올리지만, 막상 대회나 방송 경기에 나가면 OME급 경기를 펼쳐 시청자들을 실망시키는 선수들을 말한다. 즉, 이영호이제동과 같이 연습실, 실전 가리지 않고 잘하면 연습실 본좌라고 하지 않는다. 비슷한 용어로는 온라인 본좌하부리그의 본좌 등이 있다.

반대의 경우, 즉 소위 연습실 막장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연습실에서 죽을 쑤면서 방송 경기에서만 잘하는 경우는 없다는 말. 송병구가 연습실에서 상대할 때보다 실전에서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웠다는 선수로 유명하기는 하나 송병구는 연습실에서도 팀에서 1~2등을 번갈아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고 하니 사실 완벽한 예시가 되진 않는다. 그냥 상대적으로 연습실보다 실전에서 더 강한 선수 정도로 보는게 알맞다. 애당초 연습실에서 못하면 방송 경기에 내보내지도 않는다. 즉, 연습실 본좌라는 것은 방송 경기는 못하지만 본 실력은 어느 정도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헌데, 아프리카TV 개인방송에서 전 프로게이머들의 여러 썰을 통해 연습실 막장들도 꽤나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김윤중, 이경민, 박수범이 연습실에서의 실력에 비해 실전에서 잘 했다고 평가받는다. 이 셋은 모두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통산 승률이 5할이 넘는 주전급 프로토스였으며, 특히나 다른 둘에 비해 이경민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등에서 둘 보다도 한 수 높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연습실에서는 하위권을 도맡았다고 한다. 이들은 기본 실력이 부족함에도 방송 경기에서 남들보다 집중을 잘 하고 긴장을 덜 하며, 경기 준비를 잘 해온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후속작에서는 래더 MMR이 실력의 척도이고 대개 프로는 본계정이 래더에서 최소 6700 이상은 찍는데 이게 안 되는 현역 국내 선수가 있으니 바로 김대엽. MMR 6500이 간당간당하고[1] 심지어 5000대 이하의 아마추어에게도 지는 경우가 있는, 그야말로 연습보다 실전에서 빛을 발하는 타입. 전작의 연습실 막장 라인은 기본기가 딸린다는 나름의 개연성이라도 있었지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정파의 극의 그 자체인 김대엽이 래더에서 유독 죽을 쑤는 건 어찌보면 신기한 현상에 가깝다.

2. 타 종목

야구로 치면 2군 본즈, 불펜에서 몸풀 때만 잘한다는 '불펜 선동열', 패전처리 때만 잘한다는 '패동열' 등이 있으며,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사전 경기에만 잘 던지는 선수에게 오키나와 커쇼 같은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비슷한 표현으로 솔랭전사가 있다. 그리고 팀 단위로는 스크림도르라는 표현이 쓰이는 편이다.

카트라이더의 경우에는 이런 선수를 표현하는 단어는 딱히 없다. 대부분 신인들이 이런 특징을 가지지만 포텐이 못 터지면 미련없이 리그계를 떠나고 베테랑들은 일정 수준 이상 해주는 선수들만 남기 때문에 노망주가 드물어서 이런 단어가 정착이 못 된듯. 그리고 카트라이더의 경우는 다른 종목보다 이른바 "연습실 막장"의 경우가 꽤 많다.

일본 개그계에서도 비슷한 말로 '대기실 개그맨'(가쿠야게닌, 楽屋芸人, がくやげいにん)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도 사석에선 웃긴데 방송서 못 웃기는 코미디언, 예능인들을 비슷하게 부른다. 실제로 긴 연습실 본좌 시절을 거친 예능인이 바로 유재석. 실제로 유재석이 그 긴 무명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계속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바탕은 연습실에서의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였다.

3. 원인

아마추어나 준프로 레벨에선 피지컬이나 타고난 센스, 기초적인 빌드 오더 등, 기본기나 재능만 우월하면 대체로 승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차피 게임이 직업이 아닌 취미에 불과하거나, 직업이긴 해도 프로 레벨의 체계적인 실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는 어설픈 전략이나 판짜기보단 이런 기본기들이 더욱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레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것 외에도 각종 전략과 판짜기, 빌드 간의 상성을 체계적으로 익혀야 하며, 피지컬과 컨트롤 능력도 훨씬 체계적인 프로들의 방식에 맞게 제대로 익혀야 한다. 게다가 방송 경기의 경우 상대가 사전에 예고되어 있으므로 그 선수의 플레이 방식이나 데이터까지 분석해서 맞춤 전략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 익숙치 못하거나 재능이 맞지 않는 선수들의 경우, 과거와는 다른 프로들의 경기방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2] 마치 길거리 싸움에 익숙했던 지하 파이터들이 프로 격투기에 몸담은 뒤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외에도 신인급 선수들이 방송 경기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거나, 지독히 운이 좋지 않아 이런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붙는 일이 많다. 이 경우 새가슴과 일맥상통한다.

연습실 본좌의 존재는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실력 외에도 극복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 한국이 외국인 용병에게도 적응 타령을 하는 편이지만, 실제로 방송 경기와 관중이 있는 경기를 맞는 선수의 자세가 달라지고 심리적 적응이 필요한 만큼 선수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4. 연습실 본좌의 계보(?)

초창기 프로게이머 중 연습실 본좌로 유명한 선수는 이재훈문준희가 있다. 그리고 이후에 이학주주영달 등이 '피씨방의 XXX' 시리즈를 양산시키며 새로운 연습실 본좌로 떠올랐다.

4.1. 이재훈

커리어: 양대 개인리그 8강 2회, 프로리그 1회 준우승, WCG 금메달 1회

가히 초대 연습실 본좌라 할 수 있는 선수이다. 당시에는 '온라인 본좌'란 명칭으로 불렸다. 배틀넷 상에서 수많은 상대를 압살하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의 투게이트 옵드라는 알고도 막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종족도 매우 잘해서 저그, 테란으로 GO 팀원들의 연습 상대가 되어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때 이재훈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연습 방법은 바로 "상대방 아이디로 연습 상대 해주기"로 특히 이재훈이 실제 상대의 플레이 스타일을 잘 따라해서 GO 팀원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인터뷰로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 경기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특기인 테란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종족전은 평이했으며 개인리그와도 인연이 없어 8강 2회가 끝이였다.

이재훈의 경우 앞서 언급된 연습실 본좌의 특성을 많이 따라간다고 볼 수 있다. 이재훈은 올드 중에서도 상당히 초기 세대의 인물이지만, 그때도 기본기 이외의 판짜기나 맞춤전략 등의 개념은 있었고 이재훈은 기본기는 매우 우월했으나 이런 면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때문에 2001년 3번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에서 모두 최종 예선까지 진출한 후 탈락했다. 전성기 시절인 2002~2005년, 한 번 떨어지면 지옥이라는 PC방 예선을 수차례 통과하고도 최종전이나 순위 결정전, 듀얼 토너먼트에서 수차례 탈락할 만큼 스타리그와 연이 없다. # 반대편 MSL에서는 리복배 KPGA 투어 2차 리그 8강 진출 이후 오랫동안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아예 하부리그인 서바이버 본선에 진출한게 9번 중에 단 두 번으로 그 중 한 번은 5차 마이너리그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통과하여 MSL 본선에 올랐지만 8차 서바이버 리그에서는 2라운드에서 박지호를 만나 세트스코어 0:2로 패하며 다시는 MSL 본선 무대에 복귀하지 못하게 된다.

당시 방송 경기에서 캐스터가 "아, 이재훈 선수 마우스 셋팅이 좀 이상한가 보네요.", "마우스가 휘휘 헛 돌아요." 이런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의 마지막 스타리그가 된 올림푸스 때는 스타리그 진출이 너무 기뻐서 스타리그 통과자한테 주는 이름표를 계속 달고 다녔다고 한다.

이윤열과의 경기에서 일명 '50게이트 사건'이라 불리는 드라마틱한 역전패를 당한 적이 있다. 또한 '일부는 시즈모드 됐고 일부는 퉁퉁퉁퉁퉁퉁!'으로 유명한 기요틴에서의 대 임요환 전 역시 유명하다. 어째서인지 패배한 경기의 임팩트가 크다.[3]

그래도 후술될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확연히 커리어가 나은 편이며, 선수 생활 막바지에 2005년 WCG[4]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을 따냈다.[5] WCG를 제외하고 공식 개인리그 성적만 감안해도 연습실 본좌가 8강씩이나 간 것도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이후에는 공군 ACE에 입대하다가 은퇴하여 코치로 활동하다가 그만두었다. 거기에 팀리그에서는 12승 10패(54.5%)로 팀리그 통산 다승 10위를 기록하였다.

4.2. 문준희

커리어: 양대 리그 본선 1회

연습실 본좌의 전설. 아마추어 시절 이윤열과 온라인 대결을 펼쳐 5전 전승을 거둔 일화는 유명하다.[6] 이후 프로가 된 문준희는 잘 생긴 외모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았고, 나름 POS 팀의 프로토스 카드로도 활약했으나 본인의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 발목을 잡아 방송 경기 성적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통산 5승 27패. 데뷔 해에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 리그에 진출해서 엑스트라 매치[7]에 배정됐는데 9전 전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두고 광탈.

그후 3년만에 처음으로 온게임넷 PC방 예선을 뚫고 올라간 문준희는 다음 다이렉트 듀얼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김정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생애 첫 스타리그 진출 기회를 잡았으나, 이어지는 승자전에서 임요환의 채팅 러시[8]에 완전히 낚여 패배[9], 그리고 이어진 최종전에서 삼성준에게도 지며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다.

2004년, 팀리그 예선에서 POS가 SK텔레콤 T1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때 선봉으로 출전하여 7전 4선제에서 3연승을 거둔 적도 있다. 상대가 이창훈, 임요환, 박용욱. 그러나 최연성에게 역올킬 당했다.

임요환의 채팅 러시에 당한 이후 다시는 개인리그 문턱을 밟지 못했으며, 프로리그에서도 지지부진한 활약을 보였다.[10] 그러다가 본인의 생일이었던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결승전에서 깜짝 출전하여 박태민과 맞붙는다. 본인의 생일을 맞아 초반에는 그 동안의 방송 경기 울렁증을 무색하게 하는 모습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이 경기에서도 드라군사업을 안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며 박태민에게 승리를 헌납하고 팀도 1:4로 패배해 우승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두 번 다시 방송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훗날 T1의 감독이었던 주훈은 이 날 생일을 맞은 문준희의 출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미리 준비를 했다고 하며 PGR21포모스에서 활동하던 유명 스타 논객 'Judas Pain'은 이 경기를 평하며 "사격은 우수하되 사람은 죽인 적 없는 저격수의 냄새가 난다"라며 문준희의 불운을 안타까워했는데, 애석하게도 이 평가는 너무나도 정확하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4.3. 이XX

WCG 2003 금메달리스트. 완전 무명에서 WCG 금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하며 스타판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 이후로 어떠한 커리어도 보여주지 못했다.[11] 증언에 의하면 게임 실력은 발군이였는데 인성에 하자가 너무 커서 팀에서 방출되었다고. 이후에는 아마추어 대회에서만 간간히 보이다가 잊혀졌고, 급기야는 절도 사건으로 검거되어 범죄자로 전락하였다.

4.4. 김윤환(T)

KTF 매직엔스에서 랭킹전 1위를 도맡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 경기만 나오면 자꾸 패하며 유망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2007년 들어서는 곰TV MSL 시즌3에 본선에 진출하였고[12], 에이스 결정전에도 출전하는 등 신뢰받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이후 출전 기회를 잃어 STX SouL로 이적해 재기를 꾀했지만 순탄치않아 은퇴 후 KT 코치로 재입단했다. 하지만 테란 코치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해냈다.[13]

4.5. 박종수

PC방의 혁명가, PC방의 김택용이라 불리는 인물. 이학주주영달에 비하면 인지도가 조금 낮다. 송병구의 데뷔 동기로 스타리그 36강[14]을 포함한 통산 하부리그 성적은 2승 12패. SKY 프로리그 2004에서 신인왕을 수상하고 팀플레이에서도 여러모로 활약하는 등, 프로리그에서는 STX SouL의 토스카드로 꽤 활약했지만 개인리그 포텐셜은 터지지 않은 선수. 그래도 빌드나 판짜기 능력은 뛰어나 소울팀의 토스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덕에 코치로 보직전환했다가 은퇴했다.

4.6. 주영달

'PC방마에스트로'라 불리며 이학주와 대극을 이룬 선수. iTV 신인왕전에서 다른 선수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위엄을 보이며 실력을 알렸고[15][16], 이후 온게임넷 오프라인 예선에서는 하부리그(챌린지리그, 듀얼 토너먼트 등)조차 진출하지 못할 정도로 부진했지만 MSL의 하부리그인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꾸준히 출전하며 피재윤, 피에스트로 등의 별명을 얻는다. 통산 서바이버 토너먼트 성적은 9승 14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MSL 진출을 하지 못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년 가까이 하부리그에 머물며 그가 거둔 성적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학주와 마찬가지로 프로리그에서도 딱히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2011년까지의 통산 전적이 29승 45패.

4.7. 이승훈

자기의 증언에 의하면 아마추어 시절부터 알아주는 고수이자 재능러였다고 한다. 신인 시절에는 본좌 시절의 마재윤이 연습 상대로 구했고, 심지어 그 연습 경기를 이겼다고. 참고로 개인리그는 곰TV MSL 시즌2 딱 한 번 출전하여 32강을 기록한 것이 전부이며, 한술 더떠서 온게임넷에서는 아예 하부리그조차 진출한 기록이 없다.

4.8. 이영호(P)

이영호는 위메이드 폭스 시절에 주성욱과 1~2위를 다툴 정도로 연습실 최강이었다고.[17] 그리고 특이사항이 있다면 MSL에서는 2번이나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한데 비해[18], 스타리그본선은커녕 하부리그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4.9. 고강민

연습실에서는 그 이영호와 대등하게 맞붙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으나 방송무대에서 저 실력이 제대로 안 나왔다고 한다. 개인리그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 36강을 기록한 것이 유일하며[19], MSL에서는 하부리그인 서바이버 토너먼트에만 5번 진출한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프로리그 포스트시즌에서는 14승 6패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달성했다.

4.10. 정윤종

당연하지만 스1 프로 시절 한정. SK텔레콤 T1 내부전에선 1군 상대로 정윤종이 승률 80% 이상 나왔었고, 스타1과 스타2 병행시즌 전까지 내부 랭킹전 순위가 1.정윤종, 2.김택용, 3.정명훈 아니면 1.김택용, 2.정윤종, 3.정명훈 주로 이렇게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T1 팀 동료였던 임홍규가 개인 방송에 프로 시절 썰을 풀었는데, 브루드 워 말기 시절 1군 내부 랭킹전에서 정윤종이 거의 항상 1등을 찍었다고 한다. 또 이경민과의 합동 방송에서 T1 팀 동료였던 도재욱이예훈도 썰을 풀었는데, 이예훈의 경우 당시 정윤종과 붙을 땐 이름을 떼고 보면 팀에 김택용이 둘 같았단 느낌을 받았다고. 도재욱도 한 번은 타 팀과 이름을 가리고[20] 풀리그를 했었는데, 실제론 정윤종이 출전하여 플레이 하였음에도 당시 상대팀에서 김택용이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현역 시절에 프로리그에서는 신인치고는 나름 괜찮은 활약을 했으나[21], 연습실에서의 평가와 달리 결국 개인리그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마저도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2번 진출한 것이 전부. 물론 정윤종이 막 빛을 보던 시기에는 이미 스타리그의 끝물이었기에 스타리그가 좀 더 지속되었으면 개인리그에서도 호성적을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 이후 정윤종은 끝내 기량이 만개해 전성기를 맞이했고, 연습실 본좌란 오명을 떨쳐내며 온게임넷 스타리그GSL에서 양대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은퇴 이후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을 하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 진행되는 ASLKSL에서 양대리그 우승을 차지, 결국 게이머 최초로 스타1, 스타2 양대리그 우승이란 대업까지 달성하였다.[22]

5. 특이 사례

5.1. 허영무

패왕라인 시절 한정. 팀의 박봉과 불합리한 대우로 게임을 거의 놓고 살아서 성적이 지독하게도 안 나왔지만, 이 시절에도 연습실에서는 날라다녔다고 한다. 이것을 모종의 계기로 극복하고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 우승을 차지해 탈출, tving 스타리그 2012마저 우승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얻는다. 스1 역사상 모든 연습실 본좌중에서도 가장 해피엔딩으로 끝난 경우.

패왕라인 이전에도 2연속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내서 그렇지 연습실의 무적 포스에 비하면 이 역시 초라한 커리어였다. 즉, 초반에는 연습실보다 실전에서 다소 약한 수준이였다가, 중반에는 빼박 연습실 본좌로 추락했다가, 후반에는 실전에서도 본좌급인 커리어를 남긴 나름의 여정을 지닌 선수이다.

5.2. 김명운

커리어 초반 저저전 한정. 초반에는 저저전에서 죽을 쑤는 저막으로 유명했으나, 연습실에서는 저저전이 승률이 80%가 넘었다고 한다. 공식전 저저전 승률이 6할대나 되는 저저전 강자 한상봉웅진 스타즈로 이적한 후 김명운의 저저전에 놀랐다고 할 정도.[23] 한때 스타리그 8강 승률이 전패로 유명했는데 이 중 절반이 저저전이였을 정도로 저저전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어 최종저막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1합 승부가 되는 경우가 절대다수인 저저전의 특성상 그의 새가슴 성향이 더욱더 크게 반영된 걸지도. 다만 커리어가 지나서 저저전을 어느 정도 극복해 8강에서 김윤환(Z), 4강에서 이제동을 전부 5전제에서 꺾고 완전히 탈출한다.

사실 저저전이 워낙 죽을 쒀서 그런거지, 여러 증언에 따르면 선수 자체가 연습실보다 실전에서 매우 약한 유형의 선수였다. 그 약했다던 실전의 커리어가 무려 준우승 1회, 4강 3회이니 흠좀무.[24]

6. 하부리그의 본좌

연습실 본좌와 비슷한 개념. 듀얼 토너먼트, 서바이버 토너먼트 등의 하부리그에서는 맹활약하여 메이저 리그에 종종 오르나 이후 광탈하여 다시 하부리그를 지배하는 순환을 반복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 안기효가 가장 유명하며, 그밖에 고인규, 진영수도 이름 높다.

6.1. 안기효

유명한 하부리그의 제왕. 하데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온게임넷의 챌린지리그와 듀얼 토너먼트 통합 전적이 38승 25패(60.3%)이고 그 중 테란전 전적은 무려 27승 7패(79.4%)이다. 게다가 저그전 전적도 저프전의 밸런스를 생각하면 12승 13패(48%)로 나쁜 편이 아니다. 2007년 스타 챌린지에서 보여준 리쌍 격파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25] 사실 안기효는 8강도 여러번 찍었기에 하부리그에서만 성공한건 아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다만 MBC GAME에서는 본선 진출조차 없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부진하였다.

6.2. 이학주

일명 'PC방의 최연성'. 오프라인 예선에서는 마치 최연성과 같은 패기를 보였기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를 줄여 피중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피씨방의 괴물, 피연성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다. 통산 성적은 25승 51패. 개인리그 전적의 대부분이 듀얼 토너먼트와 서바이버 토너먼트와 같은 하부리그에 집중되어 있다. 하부리그 통산 전적은 10승 17패.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거진 2년간 오프라인 예선과 하부리그 탈락을 반복하였다. 결국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스타리그MSL의 본선 문턱을 밟아보나 양 리그 모두 광탈하였다.

이 선수는 개인리그는 물론 프로리그 성적도 딱히 좋지 않았다.[26] 오로지 오프라인 예선에서만 뛰어났던 특이 케이스. 'PC방 본좌' 정도의 표현이 적절할 듯. 그리고 이 선수도 이제동의 언급에 따르면 내부 랭킹전 성적이 매우 좋았다고 하며, 이제동이 포텐 터지기 전 소속팀에서 내부랭킹전 1~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6.3. 고인규

MSL의 하부리그를 제패한 자. 서바이버 토너먼트의 황제를 줄여 서황이라고 불린다. 주영달이 iTV 신인왕전에서 활약했다면, 이쪽은 스카이라이프 신인왕전[27]에서 대활약하며 기대를 받은 케이스. 한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17연승을 질주하며 무패를 자랑했으며[28], 그 다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승 1패로 MSL을 진출하며 서황의 위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7번째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1승 2패로 탈락하며 연속 진출에 실패한다. 세 시즌만에 다시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올라간 고인규는 2010년 11월 11일에 있었던 피디팝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또 한 번 1승 2패로 고배를 마시며 MSL 진출에 실패한다. 2011년 3월 17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2연패로 광탈. 그리고 서황의 칭호는 서바이버 토너먼트 18연승을 달성한 염보성에게 내줬다.[29] 그래도 이쪽은 2009년에 연속으로 양대리그 8강에 갔긴 했다.

어쨌든 초대 서황답게 서바이버에서의 전적이 무려 20승 7패(74%), 테란전 8승 1패(88.9%), 저그전 8승 3패(72.7%)[30]라는 아주 높은 고승률을 기록하였다.

연습실 본좌 케이스에도 잘 부합했는데 아마추어 시절부터 엄청난 테란 유망주로 평가받았고, T1에 입단한 후에도 연습실에서 좋은 기량을 보였다. 타팀과의 교류전에서도 엄청난 경기력을 보였다고 한다. 방송 경기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음에도 동료들과 타 팀 선수들은 본인의 잠재력을 제대로 터뜨리지 못한 선수로 평가할 정도.

6.4. 진XX

MSL 32강의 최강자로 고인규보다 한 단계 위 리그의 지배자다. 32강은 듀얼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뤄지는데, 그는 10회 연속으로 32강을 돌파했다.[31]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는 리쌍을 연파하고 16강에 오른 전적도 있었다. 통산 32강 성적은 18승 3패. 그 외에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36강 시스템[32]이었던 시절에 36강에서 강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상위 라운드에서는 계속 패하는 등 한계가 있었고[33][34],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영구제명되면서 기록이 말소되었다.

6.5. 윤찬희

은퇴 이후의 아프리카TV로 넘어간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반트 포함 17번의 ASL 중 16번 본선진출을 가지고 있으며, ASL 사상 최초 10회 연속 본선 진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8강 이상은 단 1번뿐이며, 예선에서의 압도적인 포스에 비해 본선 성적은 좋지않다.

6.6. 장윤철

아프리카 세대에서 2019년 이후에 해당한다. ASL 본선이야 빠짐없이 진출했고, 그것도 모두 예선 1일차에 진출했을 만큼 예선에서만큼은 무적의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본선에서는 8강이 상한선이 되었으며[35], 온라인에서 프로토스 본좌가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만큼의 기량을 보여줌에도 ASL 본선에서는 물음표가 나올만큼의 졸전을 보여주면서 탈락하기 일쑤. 즉 온라인 본좌 + 하부리그 본좌이다.

7. 관련 항목



[1] 보통 스타2 프로의 마지노선이 6300인데 6500이면 그야말로 최저 기준 충족 바로 윗선이라는 의미. 이것조차 안 되는 해외 선수가 있긴 한데 바로 후안 로페즈. MMR 6200대에 그치는데 전태양의 증언에 따르면 대회마다 판짜기를 기가 막히게 준비해오는 스타일이라고.[2] 그간 익숙했던 자신의 스타일을 상당부분 포기하고 하나하나 지적받으며 뜯어고치는 일은 당연히 엄청난 노력과 스트레스를 요구한다.[3] 그래도 그 토스 킬러 박성준을 3전제에서 KO 시킨 적도 있는 등 이재훈이 승리한 명경기도 분명히 존재한다.[4] 그런데 이 해 WCG는 생방송으로 하지 않고 나중에 녹화 방송으로 주요 장면을 방영하였다.[5] 당시까지만 해도 WCG의 위상은 제법 높은 편이었다. 전성기 ITV처럼 3번째 개인리그 취급. 전신인 WCGC까지 포함해 스타1이 종목으로 있었던 11개 WCG 시즌 중 스타1에서 금메달 11개 중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것은 단 3번(2003년의 이용범, 2005년의 이재훈, 2008년의 박찬수) 뿐이며, 그 중 1명인 박찬수는 공식 개인리그인 MSL 우승자였다. 이걸로 유추해 봐도 최정상급 선수들이 경쟁하고 만만히 볼 커리어는 절대 아닌 셈.[6] 이때 자존심이 상한 이윤열은 리매치를 제안하고 다시 벌어진 경기는 이윤열이 5전 전승을 거두며 끝난다.[7] 당시 KPGA 투어는 전 대회부터 메가 매치와 엑스트라 매치로 나뉘었는데, 각 매치에서 1위를 한 선수가 결승에 진출하고 2위는 3·4위 결정전을 치르는 방식이었다.[8] 소위 '좁아ㅠㅠ' 사건. 이 사건 이후 경기 중 채팅이 일체 금지되었다. 임요환 항목 참조.[9] 다만 이것은 이런 얕은 꼼수에 낚여 선수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인 몰래 멀티 체크를 잊은 문준희의 초보적인 실수라고 보는게 합당하다. 물론 그거와는 별개로 채팅 러시에 대한 도덕성은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10] 무엇보다 Plus에서 박지호가 들어온 것과 드래프트로 데뷔한 김택용이 점점 떠올라 자리가 좁아진 것이 컸다.[11] 그나마 마지막 iTV 랭킹전7차 iTV 랭킹전에 진출했지만, 이마저도 비공식전으로 격하되었다.[12] 그러나 32강에서 광탈했으며, 이것이 김윤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선에 진출한 개인리그로 남게 되었다.[13] 실제 이영호가 각성하고 난 이후 EVER 스타리그 2009에서 두 번째 개인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돌아온 뒷담화에서 언급하기로 김윤환이 코치로서 인게임 및 전략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잘 코칭을 해주었다는 언급을 했다. 이영호의 각성과 김윤환의 코칭능력의 시너지가 좋은 결과를 나타낸 것.[14] 기존의 듀얼 토너먼트 제도를 본선에 편입한 것이다.[15] 그 중에 무려 오영종이 끼어 있었다! 심지어 오영종과 6번이나 붙어서 5:1로 캐발라버렸다.그러나 그 후 현실은...[16] 또한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MBC GAME 팀리그에 출전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가 아닌 탓에 팀이 몰수패된 일화가 있었다. 사실 그 전만 하더라도 준프로나 아마추어들이 종종 팀 단위 대회에 참가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로만 참가할 수 있게끔 변경되면서 팀이 몰수패를 당한 것.[17] 단, 당시 주성욱은 위메이드 시절이 첫 본인의 데뷔 시즌이었음에도 8승 6패로 박세정의 부진을 메움과 동시에 사실상 토스라인의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이영호는 5할이 안되는 승률 및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이영호는 팀 해체와 동시에 은퇴.[18] 곰TV MSL 시즌3, Arena MSL 2008. 이 중 아레나 MSL에서는 16강에도 가봤다.[19] 그마저도 1차전에서 진XX에게 패해 광탈하였다.[20] 정윤종, 김택용, 도재욱이 토스1, 토스2, 토스3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 형태.[21] 무려 데뷔 시즌이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에서 신인왕에 올랐다.[22] 스타1, 스타2 1티어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박지수, 신동원이 있지만, 양대리그는 아니다.[23] 심지어 이적하기 고작 수개월 이전에 MSL 8강에서 한상봉이 김명운을 셧아웃 시킨 경험도 있었다.[24] 이것도 상당히 높은 성적이지만, 이영호는 김명운을 "현역 시절 긴장만 덜 했다면 우승 몇번을 했을 선수"라고 평했을만큼 잠재력이 워낙 뛰어난 선수였기에 아쉬운 성적인 것이다.[25] 이제동한테는 최초의 유일하게 프로토스에게 패한 5판 3선승제이다.[26] 애초 개인전보다는 팀플레이에서 많이 활동했던 선수였다. 그리고 소속팀의 테란 라인이 부실해서 그런지 한때는 테란 에이스이기도 했다.[27] 당시 다 망해가던 게임TV에서 주관했기 때문에 iTV 신인왕전보단 권위가 낮다. iTV도 이미 망조에 들었던 상황이었지만. 참고로 iTV 신인왕전에도 나왔었는데, 여기서는 주영달, 오영종에게 발리고 탈락했다.[28] 16번째 승리는 당시 최정상급 게이머인 이제동을 상대로 한 것이라 더 임팩트가 컸다.[29] 염보성 역시 18번째 승리를 본인의 천적이었던 송병구를 상대로 한 것이라 임팩트가 굉장히 컸다.[30] 심지어 여기에는 이제동을 꺾은 전적도 있고, 8전 8승 무패였다.[31] 10회 연속 본선 진출한 선수도 MSL 역사 내 고작 10명 밖에 없다.[32] 기존의 듀얼 토너먼트를 본선에 편입하였다.[33] 유독 토너먼트 대진운이 레전드급(...)으로 안 좋은 것도 한몫했다.[34] 스타 1 역사상 3회 이상 5전제를 치른 선수 중에서 전패한 몇 안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4전 4패.[35] 현역 시절에도 개인리그 최고 기록이 피디팝 MSL 8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