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01:23:49

하비에르 클레멘테

하비에르 클레멘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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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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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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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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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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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대, 56대, 6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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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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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5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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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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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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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축구감독
파일:Javier Clement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하비에르 클레멘테
Javier Clemente
본명 하비에르 클레멘테 라사로
Javier Clemente Lázaro
출생 1950년 3월 12일 ([age(1950-03-12)]세)
스페인국 비스카야주 바라칼도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신체 169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바라칼도 CF (미상 / 유스)
아틀레틱 클루브 (1966~1968 / 유스)
아틀레틱 클루브 (1968~1973)
빌바오 아틀레틱 (1973~1974)
감독 아레나스 클루브 데 헤초 (1975~1976)
CD 바스코니아 (1976~1978)
빌바오 아틀레틱 (1980~1981)
아틀레틱 클루브 (1981~1986)
RCD 에스파뇰 (1986-198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89~1990)
아틀레틱 클루브 (1990~1991)
RCD 에스파뇰 (1991~1992)
스페인 U-21 대표팀 (1992~1996)
스페인 대표팀 (1992~1998)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1998~1999)
레알 소시에다드 (1999~2000)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0-2001)
CD 테네리페 (2001~2002)
RCD 에스파뇰 (2002~2003)
아틀레틱 클루브 (2005~2006)
세르비아 대표팀 (2006~2007)
레알 무르시아 CF (2008)
레알 바야돌리드 CF (2010)
카메룬 대표팀 (2010~2011)
스포르팅 히혼 (2012)
리비아 대표팀 (2013~2016)
바스크 대표팀 (2019~2021)
리비아 대표팀 (2021~2022)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아틀레틱 빌바오 1기3.2. 에스파뇰 1기3.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3.4. 아틀레틱 빌바오 2기/에스파뇰 2기3.5. 스페인 대표팀3.6. 방랑기3.7. 세르비아 대표팀3.8. 레알 무르시아/레알 바야돌리드3.9. 카메룬 대표팀3.10. 스포르팅 히혼3.11. 리비아 대표팀3.12. 바스크 대표팀3.13. 리비아 대표팀 2기
4. 수상
4.1. 선수4.2. 감독4.3. 개인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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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클라멘테는 선수 시절 아틀레틱 빌바오 선수로 활동했으나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20대부터 일찌감치 감독 인생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아틀레틱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끌어내 세간의 주목을 이끌었다. 또한 스페인 국가대표팀을 맡아서 장차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 미래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잘 길러내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2000년대 전성기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축구 클럽들을 전전하며 감독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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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테는 1950년 3월 12일 스페인 비스카야주 바라칼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유소년 클럽인 바라칼도 CF에 입단해 몇년간 활동하다가 16살때 아틀레틱 빌바오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후 그는 1968년 18살의 나이로 1군에 올라와 인터-시티 피어스 컵대회 리버풀과의 경기 때 데뷔전을 치렀다. 그후 그는 1969-70 시즌에 18경기에 출전하며 미래에 뛰어난 미드필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1969년 11월 23일 CE 사바델과의 경기 때 종아리뼈정강뼈가 부러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클레멘테는 4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완쾌하지 못했고 겨우 24살에 선수 인생을 은퇴해야 했다.

3. 지도자 경력

3.1. 아틀레틱 빌바오 1기

파일:external/www.manquepierda.com/Clemente-1981.jpg

선수 인생을 정리한 후, 클레멘테는 1975년 25살의 나이로 지역 축구 클럽인 아레나스 헤초를 맡아 한 시즌 동안 감독을 맡았고 이후 바스코니아에 부임해 1978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그후 아틀레틱 빌바오 코치진에 들어가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던 그는 1980년 빌바오 아틀레틱 감독으로 부임해 한 시즌 동안 B팀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러던 1981년, 클레멘테는 이나키 산즈 감독이 물러나면서 그 뒤를 이어 빌바오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후 클레멘테는 잠재력이 충만한 젊은 선수들과 노련한 베테랑 선수들을 절묘하게 조합시켜 아틀레틱 빌바오를 빌바오 지역 축구 클럽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육성시켰다. 그는 첫 시즌인 1981-82 시즌을 리그 4위로 마감했고 다음 시즌엔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1983-84 시즌엔 리그를 다시 한번 우승해 리그 2연패를 기록했으며 코파 델레이 또한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그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라 리가 최고의 감독에게 수여되는 돈 발롱을 수여받았다. 이후 빌바오는 클레멘테의 지휘하에서 2연속 3위를 기록했고 1985년엔 코파 델레이 대회에서 준우승했다.[1]

당시 클레멘테가 이끄는 아틀레틱 빌바오는 강력한 수비력과 탁월한 역습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몸싸움과 거친 태클을 서슴지 않아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83년 9월 23일 캄프 누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 빌바오간의 경기에서 빌바오의 안도니 고이코에체아가 바르셀로나의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심한 태클을 가해 무릎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혔다. 두 팀은 1984년 7월 5일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고 빌바오 선수들은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된 마라도나에게 심한 태클을 가했다. 이에 격노한 마라도나는 주먹을 휘둘렸고 곧 두 팀 선수들간의 격렬한 패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는 경기가 끝난 뒤 클레멘테의 수비적 전술, 거친 경기 운영 방식과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심하다며 "이건 축구가 아니다. 빌바오 선수들은 마치 깡패처럼 플레이했다."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에 클레멘테는 메노티를 '노망난 히피', '오입쟁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맞받아쳤다.

그러던 1985-86 시즌 중반, 클레멘테는 당시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마누엘 사라비아와 극심한 불화를 겪었다. 클레멘테는 이 선수를 즉각 팀에서 내쫓기로 결심하고 그를 선발 명단에서 배제시킨 뒤 프로 의식이 없다며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위는 사라비아와 가까운 팀동료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그들은 보드진에게 사라비아를 부당하게 대하는 클레멘테를 경질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보드진은 클레멘테에게 사라비아와 화해할 것을 요청했지만 클레멘테는 끝까지 거부했다. 결국 그는 1986년 1월 25일 경질 통보를 받았다.

3.2. 에스파뇰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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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여름, 클레멘테는 에스파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후 첫 시즌인 1986-87 시즌에서는 리그 3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에스파뇰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였다. 그는 이 공적으로 다시 한번 돈 발롱을 수상했다. 1987-88 시즌엔 리그와 유로파 대회를 병행하느라 리그에선 15위로 지지부진했지만 유로파 컵에선 AC 밀란인터 밀란을 격파하며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성공을 거뒀다. 다만 결승전에선 아쉽게도 레버쿠젠에게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2] 그러나 1988-89 시즌, 클레멘테는 주전 선수들이 여러 빅클럽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생긴 전력의 누수를 극복하지 못하고 에스파뇰이 25라운드에서 겨우 승점 17점만 챙기며 18위로 추락하는 걸 허용하고 말았다. 계다가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 몇몇 선수들의 재능이 형편없다고 비난했다가 선수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클레멘테는 에스파뇰 보드진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았다.

3.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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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여름, 클레멘테는 이번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1989-90 시즌이 한창이던 1990년 2월 27일, 그는 또다시 경질되고 말았다.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을 한창 벌이고 있던지라 그의 경질은 상당히 뜬금없는 것이었다. 보드진이 그를 경질한 까닭은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헤수스 길이 그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길 회장은 득점이 너무 저조하다며 "골은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며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클레멘테를 경질한 뒤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져 4위에 그쳤다.

3.4. 아틀레틱 빌바오 2기/에스파뇰 2기

1990년 6월, 클레멘테는 아틀레틱 빌바오로 복귀했다. 당시 그는 빌바오와 1년 계약을 체결했는데 시즌 결과에 따라 계약이 연장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빌바오는 1990-91 시즌에서 부진했고 결국 그는 26라운드만에 빌바오에서 물러났다. 그후 클레멘트는 1991-92 시즌 도중에 하위권에 처져 있던 에스파뇰에 복귀했다. 그는 잔여 20경기를 치러 10승 4무 6패를 거두어 팀 성적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에스파뇰 측은 클레멘트와 제계약하기를 희망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1992년 6월 스페인 축구 협회의 제의를 승낙하고 스페인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3.5. 스페인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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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클레멘테는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잉글랜드를 1:0으로 제압했다. 이후 그가 이끄는 스페인 대표팀은 A매치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다. 그러나 그는 요한 크루이프가 길러낸 선수들을 홀대하고 바스크 출신 선수들 위주로만 기용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의 지휘 아래 스페인 축구 대표팀은 1994 미국 월드컵 24강 본선에 순탄하게 진출한 뒤 한국에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헌납, 볼리비아에 3:1 승리하며 볼리비아에게 첫 골을 허용했으나, 8강까지 진출했지만 8강전에서 이탈리아에 패배 대회 8위로 탈락했다. 그 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1996 16개국 본선에서도 8강에 진출했지만 8강전에서 잉글랜드에 패배로 대회 6위를 기록했다. 그후 1998 프랑스 월드컵 32개국 본선에서는 초장부터 나이지리아에 2:3으로 패한 게 결정타가 되면서 1승 1무 1패 대회 17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 조기 탈락은 그의 대표팀 감독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었고 결국 1998년 9월 5일, UEFA 유로 2000 예선전 첫 경기인 키프로스에 2:3로 패한 직후 경질되었다.

하지만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6년간 길게 활동하며 많은 업적을 일구었다. 그는 A매치 62경기를 지휘해 36승 20무 6패를 기록했다. 또한 1994년 9월 7일부터 1998년 2월 28일까지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는 후임자들인 루이스 아라고네스, 비센테 델 보스케에 이은 역대 대표팀 감독들 중 최다 연속 무패 기록이다. 그리고 클레멘테는 성인 대표팀을 맡으면서 이와 동시에 U-21 대표팀 감독도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맡으며 여러 젊은 선수들을 육성해냈다. 그가 육성한 선수들은 훗날 2000년대 스페인 국대의 전성시대를 이끌어내는 기반이 되어줬다는 점에서 그가 큰 일을 해냈다고 할 수 있겠다.

3.6. 방랑기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클레멘테는 몇달 뒤 레알 베티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베티스는 시즌이 시작된 뒤 석달 동안 루이스 아라고네스, 안토니오 올리베이라, 그리고 비센테 칸타토레를 차례로 감독으로 선임하는 등 혼란에 빠지며 강등 위기에 놓여 있었다. 클레멘테는 4번째로 베티스 감독을 맡아 리그 꼴찌에 있던 팀을 리그 11위로 극적으로 끌어올려 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클레멘테는 베티스를 떠나 1999-00 시즌 초반 17위를 찍으며 역시나 강등될 위기에 직면하던 레알 소시에다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번에도 최종 순위 13위를 기록, 소시에다드를 구했다. 그러나 소시에다드가 2000-01 시즌 개막후 6경기에서 1승 2무 3패를 기록해 또다시 밑바닥에 놓이면서 결국 경질되고 말았다. 그후 클레멘테는 2000년 11월 올랭피크 마르세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감독 인생 최초로 스페인을 벗어나 해외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30라운드까지 리그 13위에 그쳤다는 이유로 2001년 4월 경질되었다.

2001-02 시즌, 클레멘테는 리그 26라운드까지 치르며 강등권에 놓여 있던 CD 테네리페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잔류시킬 임무를 떠맡았다. 그러나 그는 잔여 리그 12경기에서 4승 2무 6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테네리페는 최종 순위 19위를 기록하며 세군다 리가로 강등되었다. 그는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2002-03 시즌, 클레멘테는 이번엔 에스파뇰에 3번째로 부임해 14라운드에서 승점을 달랑 5점을 거두며 강등 위기에 놓여 있던 팀을 구하는 임무를 도맡았다. 그는 이번엔 잔여 시즌 24경기를 지휘해 7승 12무 5패를 거두며 17위를 기록해 간신히 에스파뇰을 구해냈다. 그러나 2003-04 시즌, 에스파뇰은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한 여파를 이기지 못해 또다시 시즌 초반 영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며 꼴찌로 추락하고 말았고 결국 클레멘테는 또다시 경질되었다.

이렇듯 강등권 팀에 시즌 도중 부임해 팀을 구했으나 다음 시즌에 부진해 경질되기를 반복하던 그는 지칠대로 지쳤는지 에스파뇰에서 경질된 후 1년간 휴식했다. 그러던 2005년, 그는 이번엔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으로 재선임되었다. 클레멘테는 강등권에 위치해 있던 팀을 리그 12위로 끌어올리며 잔류를 확정지었다. 그러나 클레멘테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빌바오 축구 디렉터 페르난도 라미키즈와 갈등을 빛었다. 그는 고르카 이라이소스, 라울 가르시아 에스쿠데로, 이나키 뮤네즈, 조수 사리에기, 그리고 이고르 가빌론도 등을 영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라미키즈는 이 중 사리예기와 가빌론도만 데려왔고 나중에 클레멘테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하비 마르티네즈를 전격 영입했다. 이에 클레멘테는 "당신은 빵을 사달라는 요청에 유해한 것을 사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클레멘테는 감독직에서 경질된 후 "라미키즈가 영입을 형편없이 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졸지에 '유해한 것'으로 취급당한 하비 마르티네스는 정작 빌바오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미드필더가 된 걸 보면 그가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3.7. 세르비아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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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1일, 클레멘테는 세르비아 축구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그는 그해 8월 16일 체코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러 3:1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그는 유로 2008 대회 본선 진출을 노렸지만 폴란드와 포르투갈에게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래도 세르비아 축구 협회는 그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맡게 했다. 그런데 2007년 9월, 그는 그의 고향인 빌바오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비행기로 세르비아에 제때에 돌아가 A매치를 치루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자 그는 2320km나 떨어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차를 타고 질주해 가까스로 경기 날짜에 도착해 세르비아 팬들과 세르비아 축구협회장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달 뒤인 12월 6일, 그는 16경기를 치러서 7승 7무 2패를 찍은 와중에 사임했다.

3.8. 레알 무르시아/레알 바야돌리드

이후 이란 축구 대표팀 감독이 되어달라는 제의를 거부하고 휴식을 취하던 클레멘테는 2008년 3월 6일 레알 무르시아 감독으로 부임해 강등권에 놓인 팀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클레멘테는 끝내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무르시아가 세군다 리가로 강등되는 걸 허용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 시즌에도 계속 무르시아 감독직을 맡아 재승격을 노렸다. 그러나 무르시아는 정작 세군다 리가에서도 강등권에 놓여 3부리그로 강등될 위기에 놓이고 말았고 결국 클레멘테는 전격 경질되고 말았다.

2009-10 시즌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레알 바야돌리드 측은 클레멘테를 선임해 강등 위기에 직면한 팀을 구하게 했다. 클레멘테는 잔여 리그 8경기에서 3승 3무 2패를 기록해 승점 12점을 획득했는데, 그 전의 리그 30경기에서 고작 승점 7점밖에 획득하지 못한 것에 비하면 꽤나 선전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바야돌리드는 세군다 리가로 강등되고 말았다.

3.9. 카메룬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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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7일, 클레멘테는 카메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부임 이후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적도 기니·가봉에 진출시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카메룬 대표팀은 세네갈에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고, 이로 인해 2011년 10월 25일, 짤리고 말았다.

3.10. 스포르팅 히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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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3일, 그는 스포르팅 히혼 감독을 맡아 강등 위기에 몰린 팀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해 3월 17일, 그는 감독 경력을 시작한 이래 500번째 라리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경기에서 히혼은 그라나다에게 2:1로 패했다. 그후 클레멘테는 잔여 16경기에서 5승 3무 8패를 기록했고 히혼은 세군다 리가로 강등되었다. 이후 그는 상호 협의하에 스포르팅 히혼 감독 직에서 물러났다.

3.11. 리비아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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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4일, 클레멘테는 리비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4개월 뒤, 그가 이끄는 리비아 대표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 챔피언십[3]에 참여했고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클레멘테는 감독 경력 30여 년만에 처음으로 국제 대회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그러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진출이 좌절된 뒤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2016년 10월 9일에 콩고민주공화국에게 4:0으로 대패하는 바람에 해임당하고 말았다.

3.12. 바스크 대표팀

2019년 3월 바스크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3.13. 리비아 대표팀 2기

2021년 4월 다시 리비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1년만에 해임당했다.

4. 수상

4.1. 선수

4.2. 감독

4.3. 개인

  • 돈 발롱 수상: 1982-83, 1983-84, 1986-87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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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4–85 코파 델 레이에서 아틀레틱 클루브를 꺾고 우승한 팀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인데 이때 감독은 루이스 아라고네스이며 핵심 선수는 우고 산체스이다.[2] 이때 레버쿠젠에 우승을 안겨준 동점골을 넣은 선수가 차범근이다[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마이너 버전인 대회로 알기 쉬우나, 이 대회는 오로지 자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만 선발해야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른 아프리카 축구 연맹의 리그 소속도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