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9 01:04:30

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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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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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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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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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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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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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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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올해의 감독상
2003년 2004년 2005년
차경복
(성남 일화 천마)
차범근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장외룡
(인천 유나이티드)
2007년 2008년 2009년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스틸러스)
차범근
(수원 삼성 블루윙즈)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파일:아시아축구연맹 로고.png 올해의 감독상
1996년 1997년 1998년
마유아난
(중국 여자 국가대표팀)
차범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구와하라 다카시
(주빌로 이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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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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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레전드 네트워크 앰버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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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차범근
車範根 | Cha Bum-kun
출생 1953년 5월 22일 ([age(1953-05-22)]세)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송산리[1]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학력 고려대학교
신체 179cm[2]체중 78kg[3]
직업 축구선수(공격수[4] / 은퇴)
축구감독
해설위원
소속 선수 서울 신탁은행(1976)
공군 축구단 (1976~1979 / 군 복무)
SV 다름슈타트(1978~1979)[5]
E. 프랑크푸르트(1979~1983)
바이어 04 레버쿠젠(1983~1989)
감독 현대 호랑이(1991~1994)
대한민국 대표팀(1997~1998)
선전 핑안(1998~1999)
수원 삼성 블루윙즈(2004~2010)
기타 MBC (2001~2003, 2006 / 해설위원)
SBS (2010~2014 / 해설위원)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2016~2017 / 부위원장)
국가대표 136경기 58골(대한민국 / 1972~1986)[6]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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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화산초등학교(1960~1966)
안용중학교(1966)
경신중학교(1966~1969)
경신고등학교(1969~1972)
고려대학교(1972~1976)
종교 개신교(예장통합)[7]
애칭 차붐(Tscha Bum)[8][9]
가족 배우자 오은미
장녀 차하나
장남 차두리
차남 차세찌
며느리 한채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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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인 신상3. 축구인 경력
3.1. 선수 경력3.2. 지도자 경력3.3. 해설자 경력3.4. 행정가 경력3.5. 차범근 축구교실3.6. 평가
4. 사건사고/논란
4.1. 차범근 축구교실 비리 논란
4.1.1. 노 코치의 퇴직금 청구 소송 일부 승소
5. 차범근에 대한 말말말6. 여담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해설자, 행정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맡았다. 차두리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 고려대학교,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공군 축구단에서 활약한 뒤 26세의 나이에[11]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축구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04 레버쿠젠 소속으로 활약했다.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11에 2회 선정되고[12] 11년 간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득점 타이틀을 보유하는 등[13] 한 때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었다.[14]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IFFHS)과 ESPN이 선정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기도 하다.[15]

정작 모국 대한민국에선 추앙과 무시가 공존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이는 당시 열악했던 언론사의 사정으로 인해 1986년 이전의 한국 축구 영상, 문서 자료들이 유실되면서 특히 국가대표 차범근에 대한 기록과 영상들은 대부분이 남아있지 않다.[16] 그렇게 긴 공백으로 선수시절 차범근의 실력과 위상이 박지성 이후 유럽축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17]

2. 개인 신상

본관은 연안(延安, 현재 황해도 연안군)이며,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서 삼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은 배우자 오은미와 그 사이에 딸 1명(차하나)과 아들 2명(차두리, 차세찌)이 있다. 그 중 장남인 차두리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돌격대장으로 활약했었다. 차남 차세찌가 2018년 배우 한채아와 결혼하여 배우 며느리를 맞이하게 됐다.

3. 축구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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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130경기 출장, 56골 기록, 한국인 선수 최초의 센추리 클럽에 가입, 한국인 선수 중 역대 최다 A매치 출장 및 득점 기록,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24년 139일),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서 12년간 총 308경기 출장(외국인 선수 중 역대 3위), 98골(외국인 선수 중 역대 6위) 기록. 참고로 분데스리가 98골 중 페널티 킥 득점은 0골이다.[18][19] DFB-포칼이나 UEFA 컵 기록까지 포함하면 372경기 121골. 차범근은 인터뷰에서 멀티골은 20번이나 해 봤지만, "해트트릭은 한 번도 못해봤다."고 말했었다.[20]

1976년, 아시아에서 큰 국제대회이던 박스컵에서 말레이시아[21]를 상대로 7분 남기고 1:4로 뒤진 상황에 차범근이 혼자 세 골을 몰아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무승부를 만드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방송국도 그 경기의 테이프가 없다고 했고[22] 차범근도 두 골은 기억이 나지만, 나머지 한 골은 어떻게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박스컵도 그렇지만, 이 시기의 국대 축구는 영상이나 문자 매체 등의 상당수가 유실된 상태라서 차범근의 육체적 전성기인 20대 초반의 활약상은 직접 본 사람 외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현역 시절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발생한 것이 바로 포지션 논란. 중앙 공격수였는지 아니면 윙어였는지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차범근 본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어, 분데스리가에서는 최전방 투톱으로 뛰었다고 한다. 최전방엔 최순호가 있었을 테니 아마 윙어로 뛰셨을듯 윙어로 뛰었던 경험 덕분에 클럽에서는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드리블과 측면 활용 능력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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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현역 시절의 모습[23] 독일의 축구 잡지, 키커(Kicker)의 표지 모델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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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시절 인맥대장, 차붐(Tscha Bum)![24][25]

3.1.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차범근의 선수 생활에 대한 내용은 차범근/선수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3.2. 지도자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차범근의 감독 생활에 대한 내용은 차범근/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3.3. 해설자 경력

1998년의 실패 이후 K리그 감독으로 복귀하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중국 프로축구 선전 핑안[26]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1년 6개월만인 1999년 12월 재계약이 불발되었고 이후로 국내외를 오가며 눈에 띄지 않는 야인 생활을 거듭했다. 하지만 차범근 축구교실만큼은 직접 챙기면서 유소년 육성에 대한 의지만큼은 뜨거웠는데, 2001년 초에 한 어린이 선수가 "우리들이 다치는 걸 걱정해 직접 얼음을 깨고 있는 저 분이 바로 전설적인 축구선수 차범근 감독님이다."라는 글을 Daum의 차범근 팬 카페에 올린 사연도 있다.[27]

그러다가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1998년 내려졌던 자격정지 5년에 대해 사면조치를 취하면서 차범근의 국내 활동이 자유로워졌고 신문선을 SBS에 빼앗긴 MBC가 2000년 12월부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28] 2001년 2월 2일 2억원에 MBC 해설위원으로 계약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해 5월 개막된 컨페더레이션스컵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을 맡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축구 해설은 여러 분석을 내놓는 신문선과 이를 재치 있는 입담으로 포장하는 송재익 콤비를 내세운 SBS가 대세였고 차범근 본인이 딱히 말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허정무를 해설위원으로 내세운 KBS에 오히려 시청률이 뒤지는 상황까지 있었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에 또박또박한 말투, 그리고 수십 년간 쌓였던 선수시절 내공 덕에 경기를 한 수 앞 먼저 읽는 해설로 차츰 호평이 많아졌고, 2002년 월드컵 본선 때는 오히려 SBS의 신문선-송재익 콤비를 누르고 MBC가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정타가 된 것이 월드컵 개막 직전인 2002년 5월 26일 프랑스와의 평가전. 이 때도 SBS와 동시 중계로 해설을 했는데 당시 김남일의 태클로 지네딘 지단이 부상을 당한 뒤 허공으로 손을 돌리자 신문선은 판정불만에 대한 항의하는 거라고 했지만 차범근은 표정을 보고 지단이 부상으로 뛸 수 없다고 해설했으며 벤치에서 얼음찜질을 받고 알약 먹는 장면이 잡히자 신문선-송재익은 영양제를 먹으며 컨디션을 관리한다고 언급했지만 차범근은 "지금 진통제를 먹고 있네요."라는 언급을 했다. 실제로 지단이 이 날 부상으로 인해 본선에서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범근의 해설은 저 멀리서 선수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매의 눈을 가진 예언자급 해설. 이후 신문선 해설위원의 삽질이 거듭되면서 시청자들도 MBC로 눈길을 돌리고 월드컵 기간 내내 MBC가 일방적인 1위를 달렸고 왕년의 시청률 제조기였던 신문선-송재익 콤비를 야심차게 영입한 SBS는 2위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때 이후 신문선은 다시는 메인스트림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한편 2002년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 감독인 루디 푈러와 소소하게 티격태격한 적도 있다. 차범근이 독일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을 중계하던 중 '오늘 독일은 지금까지의 경기 중 가장 나쁘고 준비도 덜 된 경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중계 멘트를 그대로 옮겨 적자면 "이런 경기는 한강 고수부지 가면 볼 수 있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루디 푈러는 '레버쿠젠에 있을 때 아스피린[29]을 너무 먹은 것 같다'고 맞디스를 했다. 말만 들으면 살벌한 독설 배틀 같지만, 차범근의 선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사이이다.애당초 저 아스피린 드립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그냥 친한 친구끼리 틱틱거린 수준. 당시 독일의 국내 여론은 차범근보다 푈러에 대한 비판이 더 강했는데, 그만큼 당시 독일 팀의 경기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푈러와 차범근이 따로 만나서 화해는 했다고.[30]

2003년까지도 계속해서 MBC 해설을 맡았으나 계약기간이 만료된데다 마침 수원 삼성 감독직 제의가 들어오면서 해설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2006 독일월드컵 기간에 한해 MBC 해설을 또 맡기로 이면합의가 되어 있었고 여기에 엔트리에서 탈락한 차두리까지 가세하면서 부자(父子) 해설위원이라는 진풍경으로 또 다시 MBC가 시청률 1위를 기록. 물론 '우승 경쟁 하는 마당에' 월드컵 해설하러 가신다고 서운해 하는 목소리가 그랑블루 안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을 정도인데 다른 팀 서포터들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왔는지는 차범근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모 스포츠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 '미안하다'고 답한 바 있다. 다만 후반기 앞두고 이관우와 백지훈을 영입해 반등에 성공, 준우승을 차지했기에 서포터즈의 우려와 달리 책임은 다했다.

2010년과 2014년 SBS 해설위원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경기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경기를 해설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그의 인기는 여전했으나 브라질 월드컵에선 나이가 들어서 인지 순발력이 좀 느려지고 말을 버벅대는 부분이 많아지고 다른 방송사의 해설위원들이 선전하면서 그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 해설가가 아니라 방송인으로써도 달변가가 아니기 때문에 해설자로써 한계는 있다. 특히 순발력이 떨어져 머릿속에서 상황은 읽지만 말로 옮겨내지 못해 버퍼링이 걸리기도 한다. 이게 빠른 시간 내에 적당한 말로 옮겨지면 여지없이 명해설이 터지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도 많다. 또한, 특유의 사람 좋은 면 때문에 선수단에게 나쁜 말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하거나[31] 직접 해결책을 지시하지 않는 해설 스타일은[32]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해설까지 집중할 코어 시청자의 대부분은 공격적이며 직설적인 해설을 더 선호하나 한국에 말주변 좋고 직설적이면서 경기를 읽는 눈까지 갖춘 해설자는 없기 때문에[33] 호불호의 문제다.

축구 중계 시 카메라에 잡힌 축구계 유명 인사들을 잘 소개하지 못하기도 한다. 장지현, 한준희 등이 축구계 인사는 물론 때로는 정재계 인사들마저 귀신 같이 소개하는 반면 차범근은 잘 소개하지 못한다. 요아힘 뢰프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버벅거리거나[34] 올리버 비어호프가 카메라에 몇 차례나 잡혔음에도 캐스터와 함께 침묵을 지켰던 사례가 있다. 물론 축구해설자의 본분은 잡학 자랑이나 선수 프로필 읊어주는 게 아니라 경기를 풀어주는 것인만큼 큰 단점은 아니나[35] 어쨌든 중계 카메라가 이들을 잡아주는 건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중계 특성상 멘트가 중간에 끊어지는 걸 시청자들은 매우 어색해하기 때문에 이 점이 축빠들에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미네이랑의 비극에서 전반에만 독일이 5:0으로 브라질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자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셀프디스를 시전했다.[36]

독일 대표 팀의 중계를 맡으면 중립을 지키다가도 은연중에 독일 쪽으로 편파해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37] 하지만 프로야구의 편파중계 정도의 완전하게 치우친 모습은 당연히 아니고 잘 들어봐야 알아차릴 그런 정도다.[38] 그랬다면 공중파 해설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차범근 본인의 독일에 대한 애정에 비하면 꽤 중립을 잘 지키는 편이라고 봐야 한다.[39] 단, 독일이 브라질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가장 고전한 16강전 알제리와의 경기에서는 외질이 두 번째 골을 넣자 기쁨을 감추진 못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마친 후 SBS와 계약이 만료됐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다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때 SBS의 객원 해설로 마이크를 잡은 적은 있다.[40] 계약이 끝난 현재까지도 SBS 직원들과의 친분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3.4. 행정가 경력

2016년 4월2017년 FIFA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지금껏 축구인 생활을 하면서) 감투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는 감독이나 해설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밝혔다. #

3.5. 차범근 축구교실

축구인 차범근 최대의 업적을 꼽는다면 차범근 유·소년 축구 교실로 대표되는 한국의 축구 유·소년 인재 발굴·육성의 토대를 잡은 것이다. 1990년 독일 생활을 마무리 하고 나서 국내에서 시작한 이 차범근 축구 교실은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서, 아니 대한민국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학원 스포츠 밖에서 유·소년 양성을 시도한 최초의 사례이다. 오래 전부터 학원 축구의 폐해를 지적하고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많았으나, 이를 실천에 옮긴 이는 차범근이 처음이었다(그것도 사재를 털어가며). 2002년 월드컵을 성공리에 마치고 토토 수익금으로 자금력을 확보한 대한축구협회가 비로소 유·소년 육성 정책을 시작했고, 이들 2002 키즈가 바로 훗날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 되었으니 차범근의 선구자적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차범근축구상을 제정해 이동국, 박지성, 기성용 등 축구 꿈나무를 지원하기도 했다.

유·소년 육성과 지도자 교육이라는 부분에, 유럽 축구를 먼저 경험한 차범근이 그 터를 닦았고 이는 한국 축구계의 크나큰 자산이 되었다.

날아라 슛돌이에도 등장했으며 첫 화에 21 대 0 으로 대승을 거뒀다.. 이강인이 있던 슛돌이 3기를 위협했던 거의 유일한 팀. 이상윤이 당시 감독으로 등장했으나 승부욕에 선수들을 크게 질책해 댓글에 악플이 달리기도.

3.6. 평가

선수로서 유럽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점과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미적지근했다는 점은 제쳐두고서도, 축구인으로서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는 실로 엄청나다.

차범근은 독일에서 은퇴한 후 체계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고 코치 자격증을 따 왔는데, 이는 당시 한국 축구계에서 몹시 희귀한 케이스였다. 물론 외국에서도 얼렁뚱땅 자격증만 따서 감독하는 야메들은 얼마든지 있다. 핵심은 제도권 스쿨을 거쳤느냐 하는 점이다. 차범근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라이선스를 따오면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선진적인 모델을 보여줬고, 차범근 이후 코치 방법을 몰라 외국 감독이 하는 걸 어깨 너머로 훔쳐 배우고, 그저 가오 잡기만 하던 기존의 지도 관행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업적은 공과가 크게 갈린다.

가장 먼저 지적할 부분은 세계 축구의 유행과 발전상에 뒤처졌다는 점이다. 차범근의 축구철학이 1970년대 분데스리가 스타일을 숭상하기 때문에, 감독을 맡았던 수원도 이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재임기간 동안 꼬박꼬박 트로피는 따줬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사실 이 시기 수원 팀 자체는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차범근 해임 이후 K리그의 빅5 추세를 본다면 귀네슈-빙가다-최용수로 이어지는 무공해 서울, 김정남-김호곤으로 이어지는 철퇴 울산, 최강희가 구축한 닥공 전북, 파리아스-황선홍으로 이어지는 스틸타카 포항은 모두 고유한 팀 컬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원은 뻥축구라는 조롱을 길게 받았다.[41] 과거 김호 감독 시절의 수원발레리 니폼니시부천SK와 더불어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를 운용하며 포백 시스템과 존 디펜스 도입 등 선진축구로 팬들의 찬사를 샀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명백한 퇴보다.

또한 프런트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사주면 그만큼 성적을 내줬기 때문에 정작 팀의 근간이 되는 유스가 황폐화 되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그렇게 성적내면 좋은거 아닌가?. 짧게 성적 내고 축구 그만둘 생각이면 좋겠지 서울과 포항 두 팀에서 유스 출신들이 하나 둘 주전을 꿰차며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고, 2012~13년 포항의 유스 출신 영건들이 패스축구로 수원을 털어버리며 '승점자판기'라 조롱하는 광경을 거듭 목격한 수원 팬들 입장에선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때문에 'K리그 수원 감독 맡지 말고 유소년 축구만 몰입하셨더라면 두고두고 존경받으며 욕 먹을 일이 없으실텐데' 하고 탄식하는 축구 팬들이 많다. 차범근과 앙숙인 허정무도 감독이나 해설 말고 스카우트를 했으면 좋았을 거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프로팀, 대표팀 감독으로 상당히 앞서가는 면모를 보인 것도 있다.
  • 첫째, 국가대표팀에서 처음으로 4백 수비를 시도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K리그에서 김호 감독과 조광래 코치[42]가 이끄는 수원 삼성발레리 니폼니시부천 유공 등이 4백을 시도해 가고 있었지만 아직 한국 축구계는 내려앉은 스위퍼가 자리잡는 3백이 주류였다. 특히 대표팀에서 3백을 놓기 어려웠던 것은 '홍명보' 때문이다. 홍명보는 3백에 최적화된 선수로, 4백 시스템의 센터백으론 대단히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문에 히딩크도 부임 초기 4백을 실험하다가 결국 3백으로 돌아갔으며, 결국 한국 국대에 4백이 정착된 건 홍명보가 은퇴한 이후이다.[43] 이는 단순히 수비수의 숫자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포메이션 전체의 압축 정도를 좌우한다.
  • 둘째, 일찌감치 체력 집중 트레이닝을 강조했다.
  • 셋째, 선·후배 관계는 중요하지만 경기장에서는 형&선배 호칭을 빼라 했고, 기자회견 시간을 정해놓고 언론의 무차별 인터뷰를 차단하는 등 여러모로 서구형에 가까운 팀 운영을 보였다.
  • 넷째, 대표팀 감독으로 지원파트를 중요시해서 비디오감독관[44]을 포함한 대규모 지원스탭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잘 살펴보면 위의 4가지 모두 차범근 이전부터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감독들이 일찌감치 지적한 문제들이다. 다만 국내 축구인들이 한국 실정을 모르는 외국인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K리그 대우의 비츠케이나 올림픽 팀 비쇼베츠는 항상 피지컬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체력에서 기술과 정신력이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비디오감독관을 포함한 대규모 지원스탭도 모두 대한축구협회에서 예산낭비라는 이유로 거부해버렸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여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며, 위의 사항등이 개선되었고 그것은 4강이라는 성적으로 증명되었다. 즉, 비디오 감독관, 피지컬 트레이닝, 평등한 선·후배 관계 등 히딩크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던 요소들 대부분이 차범근이 먼저 이야기한 것인데, 2002년 전까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2002년 이전까지 한국 축구계가 그만큼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이야기다.

4. 사건사고/논란

4.1. 차범근 축구교실 비리 논란

차범근 축구교실의 비리에 대한 전 직원의 폭로로 논란이 생겼다.

2016년 7월 17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의 보도에 따르면 차범근 축구교실은 서울시로부터 한강 부지를 싼값에 임대하여 운영 중임에도 서울시에서 정한 기준보다 높은 수강료를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으며, 적발 이후에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유소년 선수 후원용으로 무료로 제공받은 축구용품을 수강생들에게 유료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7월 19일 사단법인 차범근 축구교실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대호(담당변호사 박동균)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 보도한 것이다. 제보자(노 코치)와 방송국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보도자료 전문을 올린 기사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 직원은 공금횡령으로 인해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폭로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고 한다.
이후 여론은 '차범근이 그럴리 없다. 횡령하고 잘린 사람말을 믿을 수 없다' 쪽으로 흘러갔다. MBC에 대한 비난도 상당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차범근을 공격할 한국 축구계 관련 증언은 어디다 두고 저 인물의 말만 나온다.
퇴직금 문제가 아닌 교실 내 비리도 주장하는데 저런 기회 놓칠 한국축구계란 소리가 된다. 밑에서 보면 판결문에서 빠진 것을 보면 의도적인 흠집내기를 방송사에서 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데, 이에 따른 고발은 없으니 오히려 방송사 말이 맞는 것인지 분분한 처지가 되었다.

다른 언론사들이 제보자의 진술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그냥 무시한걸 MBC 혼자 덥석 문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질 때 언론사들이 앗싸 월척이다 싶어서 관련소식을 우수수 보도한 것에 비해 이쪽은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걸로 봐서 허세맨한테 낚인 것이 아냐냐는 의견도 나왔다.

2016년 7월 기준 이명박 - 박근혜 정부에 휘둘리던 MBC가 친 민주당 - 친 문재인 성향의 차범근을 조사도 제대로 안하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방송을 만들어 망신주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4.1.1. 노 코치의 퇴직금 청구 소송 일부 승소


법원 "차범근축구교실, 미지급 퇴직금 3300만원 줘야"
2018년 11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박종택)는 차범근 축구교실 전 코치 노모씨가 축구교실과 차범근 등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노씨에게 33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또 축구교실 측이 노씨에 대해 "수강료 3억원을 횡령했다"며 제기한 맞소송에 대해선 "횡령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노씨가 차범근 가족이 소유한 건물 3곳의 관리를 맡은 것에 대한 보수 1억원을 청구한 것에 대해선 "월 30만원씩 상가관리비 명목으로 지급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앞에서는 모든 주장이 사실로 제목을 달고, 여론과 달리 재판에서 차붐이 패소했다는 이야기가 끝마쳤다.
그러나 일부 사항만 증거로서 인정되어 이행되고, 고발인의 신뢰가 의심되는 핵심이 된 교실 비리에 관한 것은 아예 없다. 그저 건물 관리비나 운운할 따름이다.

만일 3억원 횡령이 아닌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면 오히려 고발인이 패소되었겠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만일 저 기사가 왜곡되지 않은 사실인 경우, 교실 내 문제를 가리기 위한 법정으로 가기 전 합의가 있었다는 뜻도 된다.

5. 차범근에 대한 말말말

차범근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막을 수 없었다 .
알렉스 퍼거슨
결승전 당시 차붐은 최고의 선수였다.
로타어 마테우스
차범근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건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줬다.
로타어 마테우스
나는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알려져 있지만 차붐 정도는 아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뛰던 시절 한국인 선수가 한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붐근차였다.
요아힘 뢰브
이곳이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미하엘 발락
당신에게 싸인받고 싶습니다. 제겐 큰 영광입니다.
올리버 칸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인이라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싶다.
프란츠 베켄바워
나는 차붐을 존경한다 어릴 때부터 차붐을 보고 자랐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마이클 오언
내가 그런 공격수랑 붙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파올로 말디니
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펠레
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이다.
루이스 피구
승부차기까지 가서 이겨 더욱 기뻤죠 차붐은 매우 중요한 선수였어요.
에리히 리벡

6. 여담

  • 현역 때도 유명했지만, 차범근의 허벅지 둘레는 무려 31인치.[45] 웬만한 남자 허리둘레 수준으로, 차범근의 엄청난 주력과 힘은 여기서 나왔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축구계에서 역대급 피지컬을 자랑하는 아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국가대표 선수가 될 때까지도 어떤 신체능력으로도 차범근을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46] 심지어 2014년에도 매일 2시간씩 러닝과 웨이트를 거르지 않고 소화 중이며, 한 번은 차두리가 같이 운동하다가 먼저 손들고 올라온 일이 있었다고(...). 현역 당시 그의 허벅지 모음 그야말로 펄떡거리는 역동적이고 생생한 허벅지 근육을 볼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차범근은 2019년 기준으로 만 [age(1953-05-22)]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손자 손녀들 재롱 보며 환갑잔치할 연세인데 실로 후덜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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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현재 허벅지 상태를 보면 차두리의 말이 진담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제는 차두리가 나보다 더 허벅지 굵음'이라고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차범근에게 물어 보세요'에 대한 대답으로 하신 바 있다.
  • 여타 운동선수와는 달리 일찌감치 광고 출연이 많았다. 이미 독일 진출 전이었던 1970년대 후반 남양유업의 요구르트 광고에 나왔던 것을 비롯해, 1980년대에는 레버쿠젠의 모기업인 바이엘 제약의 광고에도 자주 나왔다. 2000년대 들어 SK텔링크 00700 CF에 고정 출연하며 김선아와 함께 포스를 뿜어내었다. 원래 파트너였던 싸이병역비리에 걸려서 하차. 명언은 "국제전화 비싼 줄 알았지? 아니야!!"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한창일 땐 신문선과 나란히 해설계의 거성으로 활동했다.[47][48] 2006 FIFA 월드컵 독일 때는 차두리도 같이 해설을 하면서 부자가 같이 해설을 하기도 했다. 이때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조별 예선에서 스위스가 2번째 골을 넣자 차두리가 "이건 사기입니다."라고 말하자 차범근이 차두리를 노려보면서 입단속을 시킨 것이 밝혀져 잔잔한 웃음을 주기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 감독이라고 비난받을 무렵, 그를 지지한 몇 안 되는 축구인이기도 하다. 다만, 수원의 성적이 부진할 땐 감독 때려치우고 해설이나 하라고 욕을 먹었다.
  •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차하나(1978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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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후반 찍었던 공익광고. 그때는 삼천리금수강산 초만원 하던 시절이니...
그리고 아들 둘을 더 낳았다. 이것이 애국이다 장남 차두리(1980년~), 차남 차세찌(1985년~). 장녀는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막내아들은 해병대를 전역 후(2009년 입대. 병1103기로 1사단 7연대 3대대에 입대했으며 7연대 1대대 현관에도 차범근의 싸인볼이 있었다.) 형과 아버지와 함께 간때문이야 광고에 출연 중. 딸은 결혼해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이[49]가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차범근으로선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차두리가 결혼할 때 기자회견에서 손자가 태어나면 자신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축구선수로 키워보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이 바빠서 아들 두리를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고. 2010년 11월 29일 차범근의 소셜 네트워크에 내년 5월에 태어날 차두리의 둘째가 아들이라는 소식이 올라왔다. 링크 네티즌들이 예상하는 아이 이름은 차바인, 차쯔바(독일어로 2는 zwei(쯔바이)) 등등이었는데, 정작 한 달 늦은 6월 말에 태어난 둘째 아이의 실제 이름은 '차아일(Ail)'. 독일어가 아닌 웨일즈어로 '2'라는 뜻의 이름으로, 많은 네티즌들의 허를 찔렀다.[50] 어쨌거나 많은 이들은 벌써부터 "2030년 월드컵 국대 원톱"으로 단정짓는 중. 자녀 이름을 하나, 둘(두리), 셋(세찌)으로 짓는 비범함을 보였다.
  • 베타맥스 VCR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영상(51~55초 부분)을 보면 차범근이 화질이 정말 좋다는 것을 알리는 명대사("화질이 정말 깨끗하군요")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 여담으로, 기자기레기들과 악연이 많다. 1980년대 초반에는 기레기 기자들이 독일까지 가서 "양주를 내놓으라, 대접 잘해라." 이딴 무개념 쓰레기 짓거리를 해서 정나미가 떨어진 차범근은 문전박대를 해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한국에서 신문으로 "차범근 독일에서 무개념으로 군다." 이렇게 왜곡을 하는 기사를 써재꼈다. 이런 일로 아버지가 속상해하던 걸 보던 아들 차두리도 커서 기레기기자들을 꺼리며 갈등이 많았다. (원래 차두리는 축구 전문 언론인을 꿈꾸었었다.) 덕분에 김병현을 옹호하다가 그런 기자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
  • 동년배의 다른 스타들과 비교했을 때 겸손한 사람이다. 인터뷰를 해도 옛날 얘기를 한두 문장 이상으로 이어서 하는 일이 없고, 해설할 때도 그 흔한 현역 시절 에피소드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이런 자기 자랑을 자제하는 것에는 아쉬운 측면도 있는데 당장 선수 경력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의 분데스리가 커리어에 대한 문서화 작업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에서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구술사도 전무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축구팬들이 그의 과거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축구팬들도 차붐, 차붐하고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유명했다더라 하는 정도만 알지, 어떤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어떤 선수인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니 젊은 축구팬들에게도 해외에 나가 있는 수많은 현역 축구선수들의 선조뻘로만 다가오지, 예컨대 박찬호박지성처럼 차범근을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통 이쯤 되면 야구의 선동열 같은 사례처럼 전성기 시절의 커리어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나올 법도 하지만, 이미 여러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아들의 스코틀랜드 리그 활동에 관련한 행정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친구한테 추천서를 부탁했는데 그 친구란 분이 무려 프란츠 베켄바워였다던가, 남아공 월드컵 때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있던 아르센 벵거가 차범근 쳐다보며 엄지손가락 치켜든다던가, 수원 삼성과 첼시의 친선 경기 때 주제 무리뉴가 와서 악수하고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프랑크푸르트 100년 역사의 레전드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루디 푈러와 서로 약 먹었냐며 시시덕거리는데, 아무도 이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1970년대 독일의 선수 출신 축구인들이 전 세계의 주요 축구 지도자로 나선 이후,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대회에 해설자로 한번 나갔다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과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사실관계 뿐이다. 대단한 과거가 있다고 짐작만 할 뿐, 디테일을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주전 수비수로 출전 중인 아들 차두리에 대해서 해설 중에는 말을 아꼈지만 경기 종료 뒤에는 우리 두리 잘하잖아~~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셨다고 한다. 링크
    또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자, K리그 구단들에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선수들을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감사 코멘트를 했다고 한다.
  • 독실한 개신교 장로회 신자이고[51], 여러 번 자신의 신앙에 대해 간증을 했는데, 종교 문제 때문에 구설이 오른 적이 있다. 1997년 월드컵 예선 때 한국 국가대표팀이 골을 넣으면 기도를 드려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도올 김용옥이 신문 기고로 이를 비판했고, 이후에 차범근도 반박 기고를 하여 키배가 벌어진 적이 있다. 그리고 부적을 사용하는 고정운을 잘 기용하지 않는 것도 이런 종교 문제 때문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원수라 할 수 있는 통일교 계열의 K리그 구단 천안 일화 천마성남으로 연고를 옮기려 할때 성남 기독교계가 항의를 하자 차범근은 신문기고로 "축구와 종교는 상관없다."고 한 적이 있다.
  • 2010년에 나온 차두리 로봇설과 관련하여, 차두리 로봇 설계도를 알려달라는 팬들의 장난스런 요청에 로보트...그거 일급비밀이야. 많이 알면 다친다고!!! 로보트 아빠는 상관없지만 로보트 엄마는 비밀로 부치고 싶어해. 이해해줘. 로보트 가족 중에는 엄마 힘이 젤 세다고!!!라고 답하며 축구 실력뿐 아니라 유머감각도 레전드급임을 과시했다. 그보다 며칠 전, 차두리가 로봇설에 대해 한 말을 보면 부자가 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듯하다.
  • 감독직 사임 후, SBS에서 배성재 아나운서[52]와 함께 국가대표 축구 경기 해설자로 활동 중이며, 평가는 굉장히 좋다. 선수 출신답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기 내적인 내용들을 잘 짚어주며, 감정적인 애국 해설을 자제하고, 경기의 흐름과 풀어나갈 방향을 거론하는 방식. 보다 보면 후배이며, 제자들인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게 보인다.[53] 2011년 2월 1일, 박지성이 은퇴한 것에 대해, 축구 유망주들이 유년기에 훈련을 너무 많이 하는 관행을 고치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며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린 게 화제가 되었다. 기사
  • 선수로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 선수들 중 가장 명예로운 커리어를 보냈지만, 지도자로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대회 도중 경질된 사건과 그 이후 승부조작 드립을 쳤다가 5년간 자격정지 (이후 3년으로 하향)를 먹은 뒤 중국 리그를 전전했던 아픔이 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차범근이 경질당하게 된 네덜란드 전에서 상대팀의 수장은 다름 아닌 그 거스 히딩크였다. 그러나 차범근은 오히려 히딩크를 개인적으로 매우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신이 불명예스럽게 경질되고 자격정지까지 먹으면서 사실상 한국 축구계에서 매장당한 상황에서 고려대학교 축구 선수였던 아들 차두리마저 세간의 눈총을 사지 않을까 우려하던 와중 히딩크가 차두리를 전격적으로 발탁하고 월드컵 본선에서까지 기용하면서 신경써줬기 때문이라고. 이를 반영해서인지 2014 브라질 월드컵 직전의 SBS 특집 방송에서 차범근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히딩크를 직접 만났는데, 모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54] 히딩크의 첫 네덜란드 감독 시절 얘기가 나오자마자 "저를 참 힘들게하셨죠."라고 한 방을 날렸다. (...). 물론 이 말을 들은 히딩크는 어쩔줄 몰라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중에는 서로 그 때를 얘기하면서 쩔쩔매기도. 어째 차범근이 히딩크를 장난스럽게 툭 친게 너무 센거 같았는데.....
  • 반면 국가대표 커리어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FIFA 월드컵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하나뿐인데 그조차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등 유례없는 초강력한 팀들[55]을 연달아 만난 탓에 그렇게 된 것이고 당시의 대한민국팀이나 차범근 개인이나 이 커리어에 걸맞을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들 잊기 쉽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 피파 시리즈에서 전설의 팀(팀명은 '클래식 XI') 멤버 중 한명인데, 유일한 아시아인이기도 하다. 흠좀무. # 스탯은 전설의 선수 아니랄까봐 메시와 거의 동급인 90.
  • 피파 온라인 3에도 등장했다. 유럽리그 레전드(팀명은 'EL') 멤버 중 한 명이다. 다른 선수들은 울리 슈틸리케, 히바우두 같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초기 오픈빨을 빼고 거품이라고 가격이 폭락한 선수들이 많음에도 차범근은 만인이 인정받는 성능으로 초기 고가격대를 그대로 유지[56]하며 우뚝 서고있다. 일명 개떡같이 줘도 찰떡같이 골을 넣는다고 할 정도로 성능이 아주 출중하다.
  • 2013년 10월 17일부터 다음에서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독자들의 평도 상당히 좋은 칼럼으로 유명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로는 비정기적으로 기고한다. 링크
  • 한때 딸 차하나의 독일인 친구 아버지를 마중하러 김포공항에 나갔다가 당시 김포공항 경찰대의 불심검문을 받게 되었는데,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와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차범근이 1997~1998년 중 날짜 미상의 '전경'지에 기고한 글 중에서) 당시 국민적 스타인 차범근을 그 전경대원이 몰랐을 리는 없고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 한국 선수로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레전드라는 점에서 현 시대의 레전드인 박지성과 같이 언급되거나 비교되는 일이 잦은 편이다. 물론 둘 다 월드클래스의 실력을 지닌 선수였지만, 현역 시절 남긴 실적과 역량을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차범근이 우위. 유럽 정상급 리그에서 중위권 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로 통산 98골을 넣으며 UEFA컵 우승을 이끈 차범근과, 세계 정상권 명문 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에이스라기에는 다소 모자란 주전급 선수 박지성은 약간의 클래스 차이가 있다. 굳이 말하면 팀을 이끄는 에이스와 팀에 기여하는 좋은 선수의 차이.[57] 또한 박지성은 '차범근 유소년 교실' 세대의 첫 주자이자 '차범근 축구상'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 1998년 국가대표 감독일 때는 서정원의 벤피카 진출에 대해서도 불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경향신문에는 "입단을 구걸하러 가서 무엇 하겠습니까?"고 서정원이 속고 있다고 인터뷰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 이적동의서를 발급하지 않아서 벤피카로 가서 연습경기까지 뛰던 서정원은 해외 진출이 무산되었다. 이외 수원 시절 국내로 유턴했던 안정환, 이천수와 불화가 있었는데 이 둘은 본인들 탓이 더 컸던지라 차범근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다. 선수 시절 얽힌 일 때문에 최강희 감독과는 지금도 사이가 별로 안 좋다.[58] 하지만 서정원의 경우에는 차범근 감독과 같이 월드컵 본선에 갔으며 수원 삼성 시절에도 2004년에 함께 리그 우승을 일궈냈으며 서정원이 감독되고 처음으로 우승컵을 얻었던 2016년 FA컵 우승 시상식에서도 서정원을 꼬옥 안아주었다. 거기다 서정원은 차두리와도 웃으면서 잘 지낸다. 아마 서정원이 아니라 다른 선수에게 벤피카 오퍼가 왔더라도 똑같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더군다나 서정원은 프로 의식이 높은 선수. 세 명 모두 고려대 축구부의 선후배다. 결론은 아주 잠깐 있었던 해프닝. 실제로 서로 사이도 좋다.
  • 이임생은 김호 감독 시절 대표팀에 소집돼서 훈련 중에 연고전/고연전이 열려서 무단이탈한 탓에 그 후 국가대표에 소집되지 않았는데 차범근이 국가대표 감독일 때 다시 발탁했다. 이때 같은 고려대 선, 후배라서 다시 기용한 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는데 이임생은 부천 르네상스의 핵심 수비수였으며 벨기에전 붕대 투혼과 수원 삼성에서의 수석코치로 우승까지 함께 한 실적이 있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쓸 만해서 썼다. 그리고 차범근은 국가대표 감독일 때 장대일도 발탁해 홍명보 대타라는 중임까지 맡겼는데 장대일은 고려대 출신이 아니다.
  • 부자가 함께 대표팀에 발탁되어서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사례인 것은 맞지만 최초는 아니다. 최초의 부자 국가대표는 김찬기 - 김석원 부자로 김찬기는 1960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던 멤버 중 한 명이었고 김석원은 1979년과 1981년에 U-20 월드컵에 출전했고 이후에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던 인물. 다만 워낙 옛날 일이고 차범근 - 차두리 부자의 무게감이 엄청난지라 현재의 젊은 세대는 차범근 부자가 최초의 사례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 당대를 같이 보낸 선수들 중에서 차붐이 존경을 표했던 선수는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파울 브라이트너. 2013년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선수 생활을 결산하면서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분데스리가 베스트 11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한 단계, 즉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등이 서있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욱이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정열과 패기였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던 곳에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습니다.[59]
  • 여담으로 상당한 공처가이기도 하다. 늘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아내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다만 이렇게 공처가가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독일 진출 당시 차범근은 도착 직후 제대로 된 환대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프랑크푸르트의 슐테 조 감독은 상당히 냉담한 반응만을 보였었고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대우가 형편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아내인 오은미는 상당히 곱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억척같이 뒷바라지하면서 차범근의 영양 관리를 도왔기 때문.[60] 또한 아내인 오은미는 남편인 차범근이 축구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도록 축구 이외의 모든 것을 전담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차범근이 버는 모든 수입의 관리 뿐만 아니라 대외 활동의 매니지먼트, 심지어는 차범근이 쓰는 글 대부분의 대필까지도 해주고 있다는 건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이다.[61]
  • 하리보를 굉장히 좋아한다. 독일 시절 접한 뒤로 계속해서 좋아한다고. 선수들 사이에서는 차범근 감독에게 하리보를 얻어먹는 게 이쁨받는 상징이라고.[62]
  • 차두리와 재미난 언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디에고 마라도나지네딘 지단 둘 중 누가 더 축구를 잘하냐는 것. 마지막에 서로 주고 받는 말이 압권이다. "아버지, 지단이랑 뛰어봤어요?" "너 마라도나랑 뛰어봤어?" ㅎㄷㄷ
누구도 막지 못한 단 한명의 공격수에게
*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소유 중인데 했었다. 현재는 단종된 숏바디 모델이다. GE230 모델로 무려 구형 초록번호판[64]이다! 최근 벤츠사에서 리스토어를 해주었다. 영상 차범근 감독은 해당 차량을 받지 않고 기증했다. 다만 후에 밝혀졌지만 복원된 차량은 본인이 보유중인차가 아니라 동일한 모델로 연출된 것이다. 이는 위의 복원영상 1:01에서 자막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실제 차감독의 차량은 중고로 매각이 되어 국내에서 다른 사람이 보유 중이다.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 한 해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의 협회장이 바뀌고 내부 임원이 대대적으로 갈리면서 그동안 대한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던 차범근이 한 자리 맡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어떤 구체적인 자리에 선임된 것은 없었지만, 브라질 월드컵 예선 바레인전에 신임 축협회장 정몽규와 나란히 경기를 관전하는 것이 TV에 잡혔다. 축구협회 임원진을 태운 전용기에 같이 동석하여 관람을 하고 왔다고 한다. 이로서 소문은 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에서 그에게 어떤 직책을 내릴지 주목된다. 하지만 2014년 10월이 지나도록 차범근에게 어떤 직책이 주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그냥 축구협회가 그간 껄끄러웠던 차범근과 화해만 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 그러나 이후 2017년 FIFA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이는 차범근 역사상 축구 관련 행정가로 처음 맡은 자리.
  • 2014년런닝맨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박지성 자선경기에 교체 출전하여 25년 만의 경기 출전을 했다! 그의 라이브 경기를 본 올드팬들도, 라이브 경기를 보지 못한 현 세대의 팬들, 그리고 수많은 축빠들이 한 마음이 되어 차붐의 활약을 기대하며 동점골을 넣기를 바랐으나 눈치 없는(...) 인도네시아 올스타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어서 그다지 많은 기회를 받지는 못했다. 애당초 뛴 시간이 10여 분 남짓이었고 기대한 슈팅은 나오지 못했지만, 좌우 사이드를 가리지 않고 뛰고 중앙에서 킬 패스도 뿌리는 등 현역 시절 말기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며 클래스는 영원한 것을 보여주었다. 중간에 백 힐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해서 웃음을 주기도 하였다.
  • 차두리의 은퇴식에서 전반 42분 차두리가 교체되어 나올 때 라커룸에서 차두리를 맞이하며 "이제 차범근 아들로 태어난 거 후회 안 하지?"라는 말을 했다. '차붐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에 평생을 짓눌려 살아온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지는 말이다.
  • 유럽에서 뛰면서 골대 바로 앞에서의 결정력 문제로 고생하셨다고 말했고 네?? 그래서 98골????, 어릴 때부터 축구를 경험해야 이러한 유럽과의 차이를 극복할수 있다며 이 때문에 차범근 축구교실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종특이였던 골대 앞에서 걷어내던 슈팅이 국대나 K리그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 차붐은 별명을 넘어 칭호처럼 불리웠는데, 일단은 그의 이름 때문이다. 차범근의 로마자 표기는 'BUM KUN CHA'인데, 독일 사람들이 CHA가 성씨인 것은 알았지만 BUM KUN을 이어서 이름이라 생각하지는 못하고 KUN 을 middle name으로 생각해서 생략해 버렸다. 한국처럼 성씨를 앞에 두니 CHA BUM이기에 독일식으로 읽으면 '차붐'이 된다.영어로는 bum이 엉덩이를 뜻하는 속어라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독일어의 bum은 대포 소리등이 쾅! 하는 의성어이기 때문에 골을 뻥뻥 터트리면서 활약을 하자 널리 쓰이게 되었다.
  • 2017년 8월 7일 분데스리가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 원투펀치 282회 3부 마지막에 Q: 차범근과 비교 대상이 될 현역 선수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받고 왠지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했다. 계속 포지션이 달라서 누구를 특정할 수 없다며 말을 피하다가, 현역 시절 같은 포지션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케빈 키건을 비교하면서 당시 분데스리가에서는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공격수라는 점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루메니게만큼은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장지현 해설위원의 의견으로 종합하면 "득점력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화려한 플레이를 하면서도 팬들을 즐겁게 해준 최고 레벨의 선수"라고 평가했고 한준희 해설위원은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루메니게, 케빈 키건에 비견되는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 친문 성향이신 듯하다. 18대 대선 당시, 책 <운명>과 함께 찍힌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문재인, 손석희, 이창동을 좋아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또한 2017년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칼럼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65], 평창동에 거주하고 계신다고 밝혔다. 배성재 아나운서와는 아버지와 아들과 비슷한 관계고[66], 박찬호와도 골프 치고 같이 집에서 장어구이 구워먹는 사이이신 듯. 칼럼[67]
  • 여담으로 차범근의 별명인 차붐이라는 랩네임을 가진 래퍼가 있다. 똑같이 성이 차 씨인데 중학생 시절 별명이라서 차붐이라고 지었다고.
  • 자신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을 때, 월드컵 중도 경질에, 두고두고 가족 전체의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비난을 받은 경력 때문인지, 신태용 감독 및 일부 선수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평소에 화를 잘 안내는 성격임에도 언론사에서 분노라고 표현할 정도.[68][69] 손석희 사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고, 착잡해하면서 신태용 감독의 유임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70]
  • 2018년 11월 3일 전 소속팀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해외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함께 임명된 5명의 레전드들 중에는 제이 제이 오코차도 있는데, 이 다섯 명이 함께 셀카를 찍은 사진 또한 공개되었다. (중국의 양첸은 먼저 잡힌 일정 때문에 불참).
  • 애플 제품을 애호하시는 듯 한데, 2014년 5월에 아들이 맥북을 선물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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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rea Republic KFA.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츄리 클럽 가입 선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순서 선수 이름 / 현재 소속팀 출전 횟수 데뷔 경기 은퇴 경기
1 홍명보 은퇴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1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4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5 차범근 은퇴 119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6 기성용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7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아랍 에미리트)
2004.07.19
(vs 요르단)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FC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
9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0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 ||
[1] 화성군의 시 승격은 2001년, 태안읍의 동 전환은 2006년. 현재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2] 프로필상으로는 179cm지만 나이가 환갑이 넘은 지금은 키가 줄어들어 이제는 이보다는 작다고한다,#. 키가 178인 배성재와 나란히 서있어도 키가 약간 작은게 보인다.허나 작은 키는 아니다.[3] 대한축구협회 기록. 링크[4] 스트라이커, 윙어[5] 리그 1경기만 치루고 병역 문제로 계약 파기[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골 기록#. 축구 기록과 통계 를 수집하는 전문 사이트인 RSSSF는 121경기 55골로 기록했으나, 2014년 11월 4일 축협이 데이터베이스 조사를 통해 누락된 기록들을 포함하면서 136경기 58골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FIFA에서 A매치로 인정하지 않는 올림픽 축구 지역 예선 경기 6경기(2골)를 포함한 기록이기 때문에 A매치 인정 여부 논란이 있고, 이 기록은 또 한 번 정정될 가능성이 있다.[7]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소재의 충신교회에서 안수집사를 맡고 있다.[8] 한때 "독일에서는 차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으며, 말해봤자 독일인들은 못 알아듣는다"라고 잘못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 틀 바로 옆에 있는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에서 일하는 독일인 여성이 차범근을 보고서는 "차붐(Tscha Bum)"이라고 호칭한다. 영상(해당 부분)[9] Cha가 아닌 Tscha인 이유는, 독일어에서 Ch가 단어의 맨 앞에 올 경우 ㅋ 또는 ㅅ(ʃ)발음으로 읽는데 이렇게 되면 카범근, 또는 샤범근이 되므로 맨 앞에 Ts(ㅊ)를 덧붙여 확실하게 '차'라고 읽을 수 있도록 변형시킨 것이다. (이때 Ts 뒤의 ch는 ㅎ 발음이 되어 사실상 묵음으로 처리된다.) 이런 형태는 주로 외래어를 독일어로 변환시킬 때 많이 쓰이는데, 예를 들어 독일어로 "안녕"을 뜻하는 인사말인 "Tschau(차우)"는 이탈리아어 인사말인 "Ciao(차오)"가 독일로 넘어오면서 Ts가 추가·변형된 것이다.[10] 셋째 차세찌와 결혼.[11] 정확한 분데스리가 데뷔 나이는 25세이나 당시 소속팀이었던 다름슈타트에서 그 데뷔 경기 밖에 못 뛰고 바로 한국으로 복귀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선수 경력 문서에 서술.[12] 독일의 대표적 축구 매체인 kicker선정. 키커 선정 베스트 11이 분데스리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그 선정 방식에 논란이 되기는 하나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의 베스트 11을 선정한 매체는 키커와 Bild였다. 키커는 또한 랑리스테에서 1979/80시즌 전반기에 차범근을 월드 클래스로 선정하기도 하였다.[13] 1987년부터 윌리 립펜스의 92골을 넘어서며 최다 득점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이후 차범근의 기록은 스테판 샤퓌자가 1998년에 99번째 골을 넣을 때까지 11년 간 깨지지 않았다. 현재는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과 공동 8위이다.[14] 21세기에 프랑크 리베리, 아르연 로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클라우디오 피사로, 지오반니 에우베르 등 월드 클래스 용병들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는 역대 최고로 거론되기 힘들어졌다.[15]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선수 순위 (1999년) ESPN 선정 역대 아시아 선수 순위 (2015년) 또한 차범근은 IFFHS 세기의 선수 시상식에서도 득표해 11포인트로 60위에 랭크되기도 했다.[16] 당시 테이프가 비싸 대부분의 방송사가 심심하면 영상을 덮어씌우면서 사용했기에 지금도 대부분의 고전 드라마는 볼 수 없다.[17]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같은 신(神)급 선수들이 경기당 1골 이상 수준의 골폭풍을 몰아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세대여서 상대적으로 차범근의 기록이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탓도 있다고 할 수 있다.[18] 페널티 킥을 모두 실축했다는 것이 아니라, 페널티 킥을 아예 차지 않았다는 의미다. 고교 시절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서 프로선수가 된 이후론 한 번도 페널티 킥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19] 국가대표 선수 시절에는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고 경기가 끝나고 중계 아나운서와 현장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다. 1977년 4월 3일에 벌어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조 예선 최종전인 일본과의 2차전이다. 경기 종료 6분을 남기고 차범근이 페널티 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이겼다. 기사[20] 대신 후배들이 해트트릭을 성공하면서 그의 한을 풀어줬다.[21] 과거 농구의 필리핀이 그러했듯이 이때의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의 축구 강호였다. 모든 과거의 강호가 그러하듯, 높으신 분들이 망쳐놔서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이다.[22] 당시에 비디오 테이프 가격이 비싸다고 재활용하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라 이런 식으로 방송자료가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인 여로도 1회분만 남아있을 지경이니 말 다한 셈이다.[23] 사진은 바이어 04 레버쿠젠 시절이다. 눈여겨봐야 할 곳은 대퇴 사두(오른쪽 전방)가 아니라 대퇴 이두(왼쪽 뒷부분) 부분이다. 보통은 운동선수라도 저렇게 대퇴 사두가 튀어나올 정도로 단련하기 힘든 부분이다.[24] 맨 위 사진은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생각하면서 보면 분위기가 좀 묘하다(...).[25] 현역 시절 뢰브는 차범근의 백업 선수였다. 하지만 차범근은 그에게 잘 대해줬었고 때문에 뢰브는 지금까지 차범근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26] 훗날 핑안은 보험회사에서 외연을 확장해 중국 최대의 금융회사 중 하나가 되며, 김판곤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아랫동네 팀을 감독으로서 이끌게 되었다.[27] 허정무가 이끌던 대표팀이 2000 시드니 올림픽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차범근에 대한 동정 여론이 많아지던 시기기도 했다.[28] 여담으로 이때 고려대 동기(72학번. 나이는 허구연이 2살 형이다.)인 허구연이 차범근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해설가는 선수출신이 잘 보는 거라고. 훗날 경남지역에서 있던 강연에서, 허구연 해설위원은 대학 시절 차범근 본인이 고려대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회고하며 역사상 최고의 프로선수를 차범근이라고 언급하였다. 당시 강연 내용 그와중에 까인 3시간 연습드립의 정수근[29] 레버쿠젠의 모기업인 바이엘이 바로 아스피린의 제조사이다.[30]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 서로 만나 얼싸안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중계방송 시작때 그대로 나왔다[31] 옳던 그르건 자기 맘에 안 들면 히딩크부터 시작해 죄다 깠던 조광래와는 성격이 정반대다. 수원 감독시절 굉장히 사이 나쁜 서울에서 뛴, 아스날에서의 부진과 명백히 자신의 잘못인 군문제로 한창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런던 올림픽에서도 일본전 이전까지 계속 부진한 박주영 조차 최대한 감싸고 기운을 북돋아주려 했고, 월드컵 전부터 졸전을 거듭하던 대표 팀에 대해서도 해설이나 칼럼에서 비판하는 것은 자제했다.[32] 본인이 지도자로 오래 재임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게리 네빌이 해설자하며 벵거를 비롯한 감독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니 무리뉴가 현장의 축구는 화면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요지로 한 소리 했는데 같은 이치다.[33] 비선수 출신들은 잡다한 상식이 많고 말을 잘하나 경기 보는 눈이 떨어져서 해설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선수 출신들은 아는 건 많은데 말로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허정무나 이상윤처럼 아예 둘 다 안 되는 경우도 있고.그러나 이젠 선출이면서 언변도 찰진 안정환이 있다![34] 사실 뢰브를 모를 리가 없다. 선수시절 뢰브는 차범근의 후보선수였기 때문이다.[35] 이런류의 최악의 해설이 이상윤. 선수 프로필 읽고 잡스러운 얘기는 많이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경기 해설을 못한다.[36] 그러나 차범근보다는 브라질이 훨씬 더 참혹한 상황이었다. 차범근이 겪은 대패는 그래도 전반 40분 가까이 무실점이었다가 2골을 허용한 것이었다. 물론 김병지 덕을 많이 보긴 했다. 또한 브라질과 독일보다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실력차가 훨씬 더 컸다. 차범근이 잘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여론이 현실을 인정할 줄 몰랐다.[37]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전 독일vs아르헨티나 경기 해설 중 연장전에 접어들자, 우스갯소리로 본인 스스로가 해설자로서 그러면 안 되는데 마음이 자꾸 독일 쪽으로 기운다고 인증한 적도 있다. 당시 옆에 있던 캐스터는 김성주.[38] 독일이 골을 넣으면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다르다거나 상대방이 완벽한 찬스를 맞이했을 때 '위험해요!'라고 외친다던가.[39] 고국 축구협회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 차붐이 독일에서는 유명 인사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베켄바워라든가 마테우스, 클린스만, 뢰브 등...또 차붐은 한국 프로축구에서 뛴 적이 없어서 어느 클럽의 전설로 남진 못했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는 레전드로 대우해 준다. 거기다가 차붐은 독일어를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정도로 (말하기가 차두리만큼은 유창하게는 아니어도) 독일어 회화가 상당한 편이다.[40] 2018년 현재 SBS 의 해설위원은 박지성 에게 넘어갔다.[41] 최용수 이후 FC 서울도 욕먹고 있기 때문에 수원은 유일한 구단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김호곤이 사퇴한 후 조민국-윤정환으로 이어지는 울산도 이제... 2016년 들어서 포항도 스틸타카 같은건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42] 수원 코치 시절에는 '4-4-2 전도사'라고 불리기도 했다.[43] 과거 독일도 마찬가지였는데, '마테우스'라는 걸출한 수비수 때문에 4백 전환이 굉장히 늦었다.[44] 훗날 압신 고트비가 이 보직으로 감독 커리어까지 가게 된다.[45] 전성기 시절이 지난 지금은 조금 줄어들어서 27인치이다.[46] 보통 운동선수의 신체 능력은 20대 초중반이 전성기인데, 현역 운동선수인 20대의 차두리가 40대인 아버지에게 뒤졌다는 충격적인 말이다. 게다가 차두리가 한국 국가대표 역사상 톱 클래스에 속하는 신체 스펙과 체력을 자랑하는 선수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심히 흠좀무스럽다. 도대체 뭔 괴물이신 거지[47]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직전에 수원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지네딘 지단이 교체되는 것을 보고 그가 부상당했다고 해설했는데, 그 말이 정확했다.[48] 또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미하엘 발락이 결승골을 넣기 불과 몇 분 전에 "지금 상황은 절대로 조심해야 합니다. 단 한 방으로 경기가 끝날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했을 정도.[49] 태어났을 때, 뉴스 제목은 '차붐 할아버지 되다'였는데, 제목만 보고 상당수가 '차두리(당시 미혼)가 사고친 줄 알았다.'고 댓글을 남겼다.[50] 여자아이인 첫째의 이름은 '아인'이다. 독일어(Ein)로 1.[51] 이촌동 충신교회 안수집사이다. 차범근의 신앙생활은 국내 개신교계 내에서는 워낙 유명한 사실.[52]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배성재 아나운서는 사내 선발을 거쳐 중계를 처음 맡은 상황이었다.[53] 그리고 SBS는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에서도 이순철-정우영 콤비로 스포츠 중계의 세대교체에 성공했다.[54] 참고로 통역없이 독일어로 대화했다. 히딩크는 네덜란드인의 종특(?)이라 할 수 있는 다국어 구사가 가능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독일어였고, 차범근이야 분데리스가 시절에 독일어를 섭렵해놓은지라....[55] 이탈리아는 전기 대회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전전기 대회 챔피언이다. 그리고 이 대회 우승도 아르헨티나가 차지했다. 이쯤되면 세계 올스타와 맞붙은 셈이다.[56] 60억 야프 스탐의 뒤를 잇는 50억대의 가격대로 2위를 유지 중이다. 월드 레전드 선수를 포함하더라도 엄청난 상위권. 참고로 다른 유럽리그 전설 선수들은 스탐을 제외하고 20~30억대, 심하면 10억 이하로 폭락했다.[57] 물론 후자가 꼭 전자보다 못한 것은 아니며 박지성도 월드클래스의 선수들이 우글거리는 맨유가 아니라 국대에서처럼 자기가 팀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팀의 주역이자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였다.[58] 이 건에 대해선 자기관리 개판으로 유명했던 최강희 잘못이라는 게 축구계 중론.[59]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라는 이름만 듣고 감이 안 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둘 모두 뮌헨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전드다. 루메니게는 발롱도르 2회에 빛나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고 브라이트너는 수비수의 위치로 발롱도르 2위까지 오른 최고의 사이드백. 현 시대의 선수로 따지면 각각 호날두와 람 정도가 비견될 만 하다. 참고로 이 중 루메니게는 현 뮌헨 CEO를 맡고 있기도 하다.[60]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 출신으로, 차범근과는 미팅으로 처음 만나 결혼했다. 70년대에 여성이 대학을 다녔다는 건 상당히 좋은 집안이 아니었다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차범근 또한 곱게 자랐던 아내가 이 시기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61] 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이야기로는 차범근은 자동차를 상당히 좋아해서 만약 오은미 여사가 돈 관리 안 했으면 자긴 진작에 집안에다가 각종 차를 종류별로 모아놨을 거라고 한 이야기. 차범근이 오은미 여사랑 차를 사러갔다가 축구장 만들어준다는 이야기에 포기했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경기도 연천의 축구장이다.[62] 대표적으로 마인츠에서 뛸 당시의 박주호. 2014 브라질 월드컵 특집 다큐에서 차범근이 마인츠에서 뛰고있는 구자철과 박주호를 찾아갔는데 박주호가 발가락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있자 들고 간 것이 하리보. 병실에서 나가기 전 "꼭 먹어"하며 챙겨주는 부분에서 하리보 사랑을 엿볼 수(?) 있다.구자철이 아니라 하리보 사랑이다[63] 당시 승부차기 제도가 국제 축구 대회에 적용한 게 2년밖에 안된 상태고 그때 당시에 UEFA 유로, FIFA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국제 축구에서 시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36년 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결승 당시 남북전이 다시 성사되었는데 이번에는 대한민국이 120분간의 혈전 끝에 임창우 선수의 극적인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서 28년 만에 금메달을 얻었다.[64] 1973년 제정되어 1995년까지 쓰인 번호판으로, 이런 번호판이 달린 차는 못해도 20년이 넘은 차이다.[65]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에게도 기부금을 보내려 했으나 당시의 사회 사정상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후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지목받으셨다고.[66] 그래서 2016년 배성재의 TEN 방송 시작 때 전화출연을 하기도 했다.[67] 사진을 보면 장지현, 차두리도 보인다. 또한 SBS 스포츠국, 타 부서 구성원들과도 사이도 돈독해 PD와 잘 지내고 다른 사진에는 장예원 아나운서, 박현석 기자도 보인다.[68] 얼마나 격하게 반응했냐면, 칼럼이나 발언을 통해 축구팬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는데, 차범근이 누군가를 그것도 축구팬에 대해 이 정도로 격하게 반응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69] 결국 한국 대표팀이 독일을 꺾는 기적을 이뤄내자, 경기 후 라커룸으로 달려가 선수들과 펑펑 울었다고 한다. 경기 후 슛포러브 팀의 영상에 출연했는데,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차범근 본인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평소 점잖은 이미지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70] 실제로 차범근 전 감독과 신태용 전 감독 둘은 사적으로도 교류하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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