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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191919><tablebgcolor=#ffffff,#191919> |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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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축구 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알리 다에이 علی دایی | Ali Daei | |
출생 | 1970년 3월 21일 ([age(1970-03-21)]세) | |
이란 제국 아르다빌 주 아르다빌[1] | ||
국적 | [[이란|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92cm | |
직업 | 축구 선수 (중앙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사업가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 에스테그랄 아르다빌 (1988~1989) |
선수 | 에스테그랄 아르다빌 (1988~1989) 타시라니 (1989~1990) 뱅크 테자라트 FC (1990~1994) 페르세폴리스 FC (1994~1996) 알 사드 SC (1997)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1997~1998) FC 바이에른 뮌헨 (1998~1999) 헤르타 BSC (1999~2002) 알 샤바브 알 아라비 (2002~2003) 페르세폴리스 FC (2003~2004) 사바 배터리 FC (2004~2006) 사이파 FC (2006~2007) | |
감독 | 사이파 FC (2006~2007) 이란 대표팀 (2008~2009) 페르세폴리스 FC (2009~2011) 라 아한 (2011~2013) 페르세폴리스 FC (2013~2014) 사바 쿰 FC (2015~2016) 나프트 테헤란 FC (2016~2017) 사이파 FC (2017~2019) | |
국가대표 | 148경기 109골[2] (이란 / 1993~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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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전 세계 A매치 득점 3위, 1994 월드컵 아시아 예선 득점왕, 1996 아시안컵 득점왕, 역대 아시안컵 통산 최다 득점자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다.
2000년에 이란 국대와 에콰도르 올림픽대표팀 간의 경기에 대해서 2021년 피파가 오피셜 A매치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1경기 1골이 공식 기록에서 빠지며 108골로 정정되었다.[3][4]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이란의 뱅크 테자랏 FC와 명문 구단 페르세폴리스 FC를 거쳐 카타르의 알 사드에서 16경기 10골이라는 좋은 활약을 보여 줬던 다에이는 1997년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로 이적한다. 그의 97-98 시즌 스탯은 26경기 7골이었다.
빌레펠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랑리스테에도 카림 바게리, 호다다드 아지지와 나란히 들어갔었는데 이 세명은 이란 축구 사상 최초로 랑리스테에 들어간 기록이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8년 독일 최고의 명문 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기도 했지만, 독일 국가대표 공격수 카르스텐 얀커에 밀려 주로 백업 요원으로 활약했다. 유연함과 힘을 갖춘 장신 타겟맨이라는 평가였지만 얀커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98/99시즌 스탯은 43경기 7골.[5] 그래도 분데스리가 우승, DFB-리가포칼[6]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키커 5라운드 이주의 팀#이라는 기록을 남기긴 했다.
결국 1999년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한다. 하지만 앞선 팀들에서의 활약만도 못한 퍼포먼스로 일관하며 실망스러운 시즌들을 보낸다. 다만, 99-00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1999년 9월 22일 32강 첼시전에서 혼자 2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7]하고 밀란 원정에서도 선제골을 넣으며 1:1 무승부를 이끄는 등 유럽 대항전 무대에서는 13경기 4골이라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한다. 리그에서는 28경기 3골로 명성에 한참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00-01 시즌도 30경기 5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했으며 01-02시즌에는 주전 자리마저 빼앗겨 시즌 12경기 0골로 씁쓸한 분데스리가 마지막 시즌을 보낸다.
유럽 커리어 통산 스탯은 142경기 25골[8]. 공격수로서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빅리그 커리어이다. 중동 리그를 휩쓸고 28살의 나이인 1997년에 분데스리가로 진출하여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그에게 빅리그의 벽은 높았다.[9]
결국 2002년 UAE의 알 샤밥으로 이적했다. 알 샤밥에서는 25경기 11골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년 후 친정 팀인 페르세폴리스 FC로 돌아가 26경기 16골을 기록하며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활약을 했으며 이후 사바 배터리, 사이파 등 이란 자국 리그에서 매 시즌 두 자릿 수 득점을 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21년 호날두가 갱신하기 이전까지 A매치 최다 득점자였으며, 이란 대표팀의 최다 출장, 최다 득점 기록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특히나 한국 입장에서는 96년 두바이에 강림한 저승사자.
무려 108골이라는 엄청난 스탯 덕분에 은퇴한 지금도 종종 언급이 되곤 한다. 보통 공격수들이 은퇴 이전까지 100골은 커녕 70골을 넘는 경우도 흔치 않으니 절륜한 기록을 세운 셈이다. 이러한 기록을 남긴 것은 알리 다에이 본인의 실력도 있지만, 잡대회가 많고 약체들이 몰려 있던 아시아의 특성 및 올림픽 및 아시안 게임에 아직 나이가 제한되기 전이었던 당시 사정 등 여러가지 제반 조건이 겹친 덕이기도 하다. 실제로 알리 다에이가 넣은 108골 중 절대 다수인 95골이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10]
1993년 3월 25일에 있었던 대만과의 1994 FIFA 월드컵 미국 예선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다에이는 이후 해트트릭만 8번이나 기록하는 등 경이로운 득점 기록을 이어가며 이란 대표팀의 주력 득점원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2003년 11월 28일에 있었던 레바논과의 2004년 AFC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85번째 골을 기록하면서 종전 A매치 최다득점자였던 헝가리의 페렌츠 푸스카스의 84골을 넘어선 다에이는 2004년 11월 17일 라오스와의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에서 A매치 100골이라는 금자탑을 쌓았고, 2006년 3월 1일 코스타리카와의 친선 경기에서 108번째 골이자 자신의 A매치 마지막 골을 성공시켰다. 참고로 이 네 경기는 모두 이란 축구의 성지인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1996 아시안컵 8강 한국전 한 경기에만 내리 4골을 넣으며 한국을 6:2로 뭉개며 토너먼트에서 탈락시키며 한국인에게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겼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알리 다에이가 한국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던 경기가 이 경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것이다.
축구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아시아의 팀들을 상대로 친선 경기와 예선에서 양학하면서 쌓은 스탯이므로 당연히 월드컵 본선에 나갈 정도의 국가들과의 경기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참가하여 조별리그 1차전에서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0:1로 패배했으나, 2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하미드 에스틸리와 메흐디 마다비키아가 골을 넣고 브라이언 맥브라이드가 1골을 넣는데 그치며 2:1 승리를 하여 이란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를 맛본다. 하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올리버 비어호프와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골을 허용하며 0:2 패배, 16강 진출이 좌절된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8골[11]을 넣으며 이란의 금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웠다.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에 참가하였으나, 8강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후반 45분까지 1:0으로 앞서 승리가 확실시 되던 그 때, 크로스를 걷어낸다는 것이 그만 헛발질을 해버렸고 그것을 김상식이 그대로 골로 연결해 동점을 허용하였다. 결국 연장에서 이동국에게 골든 골을 허용하여 1:2로 패배한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3골을 득점해서 이란의 금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우며 아시안 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2006년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멕시코에게는 3:1 패배, 포르투갈에게는 63분 데쿠에게 골을 먹혔고, 80분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페널티킥 실점을 하며 2:0으로 패했다. 이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앙골라와의 경기에서는 1:1 무승부로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를 마쳤고, 이 대회가 끝난 뒤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이후에 축구 지도자를 거쳐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이 와중에 이란 축구계에서 말이 많았다. FIFA 위원이 되면서 이란 축구계에서 상당수 힘을 가지면서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퇴하기 전에는 후배 공격수들에게 자리를 안 내줘 세대교체 실패의 원인이 되었고, 은퇴하고 나선 감독이 되어 알리 카리미 같은 에이스들과 불화를 일으켜 성적 하락의 원인까지 되었다.더불어서, 이란축구협회 중요한 요직도 차지해 놓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도 알리 다에이 본인이 직접 만든 회사 유니폼을 쓰게 했으며, 선수 선발에도 자신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선수들은 철저히 배제했고, 다른 이란 축구계 인사들이 한국에도 친숙한 이란계 미국인이자 당시 이란 리그를 제패했던 페르세폴리스 감독이었던 압신 고트비를 감독으로 올리자 자신이 직접 압력을 넣어 고트비를 자르고 감독을 역임했다.
그러나 국대가 부진하면서 결국 2009년 봄, 국대 감독에서 해임당했고, 후임엔 고트비가 국대감독이 되었으며,[12] 이 뒤로 이란 국대 축구계에서는 퇴출되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축구팬들 지지가 많아서인지 프로리그에서는 여전히 꽤 입지를 다지고 있는 편. 2013년 12월까지 페르세폴리스를 리그 1위로 이끌며 우승 가능성을 보였으나 막판에 역전당해 풀라드에게 승점 2점차로 리그 우승을 넘기며 무관으로 시즌을 끝냈고 감독에서 물러났다.
4. 이후
축구 관련 방송에서 진행을 맡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에 초청받아 추첨식에 참여하기도 했다.2022년 이란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길거리에서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 아내와 식구들과 같이 초청받았지만 11월 15일(한국시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 대부분이 좋지 않은 요즘, FIFA와 카타르축구협회가 나와 아내, 딸들을 월드컵에 공식 초청했다. 하지만 조국에서 당신과 함께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모든 가족에게 애도를 표해야 한다고 말해 거절했다"고 밝혔다.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 사바 배터리 FC (2004~2006)
- 하즈피컵: 2005
- 사이파 FC (2006~2007)
-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 2006-07
-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 WAFF 챔피언십: 2004
5.1.2. 개인 수상
- FIFA 올해의 선수 후보: 1997 (53위), 2001 (29위) [13]
- lFFHS 세계 최고 득점자: 1996, 2004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20세기 아시아팀 (1901~2000)
- AFC 아시안컵 토너먼트의 팀: 1996
- AFC 아시안컵 득점왕: 1996
- AFC 아시안컵 올타임 XI: 2018
- AFC 아시안컵 올타임 드림 XI: 2023[14]
- AFC 올해의 선수: 1999
- AFC 이달의 선수: 1997년 08월
- AFC 명예의 전당: 2014
- WAFF 챔피언십 득점왕: 2004
5.2. 감독
5.2.1. 대회 기록
- 사이파 FC (2006~2007, 2017~2019)
-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 2006-07
- 피루지FC (2009~2011, 2013~2014)
- 하즈피컵: 2010, 2011
5.3. 수훈
- 용맹의 훈장: 2005
6. 알리 다에이에 대한 언사
바이에른 뮌헨과 1999-00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카르스텐 얀커는 에우베르와 함께 최전방에 있었는데 에우베르가 물러나고 이란의 6'4" 센터 포워드가 나를 상대했다.
개리 네빌[15]
개리 네빌[15]
7. 여담
-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1] 주로 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들이 사는 곳이고 다에이 역시 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이다.[2]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A매치 역대 득점 순위 3위.[3] 하지만 108골인지 109골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4] 하지만 메시가 112골을 넣으면서 이젠 108골인지 109골인지와 상관없이 3위이다.[5] 사실 출전 시간을 고려한다면 부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스탯이다. 같은 시즌 주전 공격수였던 카르스텐 얀커는 26경기 13골을 기록했다.[6] 독일의 EFL컵이라고 보면 된다.[7] 다만 첼시 원정은 0-2로 패했다. 첼시는 조 1위, 헤르타가 2위로 16강에 올랐으며 갈라타사라이가 3위로 유로파리그 전신인 UEFA컵에 나가 우승까지 차지한다. 반대로 밀란은 4위 꼴찌로 탈락했다.[8] 분데스리가 107경기 19골[9] 사실 그 당시에는 아시아의 국대급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는거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고 그 시절 관점에서 비추어 봤을때는 그리 나쁘지 않은 커리어였다.[10] 그 외에는 유럽 팀을 상대로 5골, 북중미 팀을 상대로 4골,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3골, 남미 팀을 상대로 2골씩 득점. 이 중 3골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 득점했고 그 외에는 우크라이나, 북마케도니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캐나다, 파나마, 이집트, 리비아, 토고, 에콰도르, 파라과이 등을 상대로 1골씩 기록했다.[11] 득점 2위의 기록이다.[12] 하지만 그 영향으로 인해 사실상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선 진출은 물 건너가게 되었다.[13] 1997 2001[14] 팬 투표[15] 현역 시절 누가 제일 무서웠냐는 질문에서 #
분류
- 1969년 출생
- 아르다빌 주 출신 인물
- 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
- 이란의 남자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1988년 데뷔
- 2007년 은퇴
- 페르세폴리스 FC/은퇴, 이적
- 알 사드 SC/은퇴, 이적
-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은퇴, 이적
- FC 바이에른 뮌헨/은퇴, 이적
- 헤르타 BSC/은퇴, 이적
- 사바 쿰 FC/은퇴, 이적
- 사이파 FC/은퇴, 이적
- 이란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이란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
-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선수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선수
- 이란의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
- 이란의 남자 축구 감독
- 사이파 FC/역대 감독
- 선수 겸 감독/축구
-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페르세폴리스 FC/역대 감독
- 사바 쿰 FC/역대 감독
- 나프트 테헤란 FC/역대 감독
- 아시아의 남성 기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