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베르나르트 디츠 (1979~1981) | ▶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81~1986) | ▶ | 토니 슈마허 (1984~1986) |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 ||||
파울 브라이트너 (1980~1983) | →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83~1984) | → |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1984~1991)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1980 · 1981 | |||
| 1980 · 1981 | |||
| 1979-80 · 1980-81 · 1983-84 | |||
| 1982 FIFA 월드컵 브론즈볼 | 1982 FIFA 월드컵 실버슈 | ||
베스트팀 | ||||
| 1982 · 1983 · 1984 · 1985 | |||
| 1977-78 · 1978-79 · 1979-80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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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Ballond'or | ||
수상 케빈 키건 | 2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3위 뤼트 크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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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Year 1982 | ||
수상 파올로 로시 | 2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3위 호베르투 파우캉 |
1983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미셸 플라티니 | 호베르투 파우캉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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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Year 1981 | ||
수상 지쿠 | 2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디에고 마라도나 | 3위 - |
1980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 ||||
베르티 포크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FC 바이에른 뮌헨) | → | 파울 브라이트너 (FC 바이에른 뮌헨)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
1980 |
발롱도르 다회 수상자 | |||
<rowcolor=#c18e33> ★★★★★★★★ | ★★★★★ | ||
| | ||
<rowcolor=#c18e33> ★★★ | ★★★ | ★★★ | ★★ |
| | | |
<rowcolor=#c18e33>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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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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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前 축구 행정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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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Karl-Heinz Rummenigge | ||||
본명 | 카를하인츠 "칼레" 루메니게 Karl-Heinz "Kalle" Rummenigge[1] | ||||
출생 | 1955년 9월 25일 ([age(1955-09-25)]세) | ||||
서독 립슈타트 | |||||
국적 |
| ||||
신체 | 키 182cm|체중 74kg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2] / 은퇴) 축구 행정가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FC 바이에른 뮌헨 (1974~1984) 인테르나치오날레 (1984~1987) 세르베트 FC (1987~1989) | |||
경영 | FC 바이에른 뮌헨 (1991~2001 / 부회장) FC 바이에른 뮌헨 (2002~2021[3] / 의장) | ||||
국가대표 | 95경기 45골[4] (서독 / 1976~1986) | ||||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등번호 | FC 바이에른 뮌헨 - 11번, 7번, 10번, 13번, 14번 인테르나치오날레 - 11번 세르베트 FC - 11번 독일 대표팀 - 11번, 8번 | |||
가족 | 볼프강 루메니게[5] (형) 미하엘 루메니게[6] (동생) 마르코 루메니게[7] (조카) |
1. 개요
독일의 축구 선수 출신 행정가.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8]
현역 시절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유러피언컵 2연패를 포함해 총 7개의 우승컵[9]을 들어올렸고,[10] 서독 대표팀에서는 유로 1980 우승과 두 번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아울러 당시 바이에른 뮌헨과 서독 대표팀에서 파울 브라이트너와 이뤘던 브라이트니게 듀오도 상당히 유명하다.
또한 발롱도르 2회, 옹즈도르 2회, 유러피언컵 득점왕 1회, 분데스리가 득점왕 3회, 1982 월드컵 브론즈볼 · 실버슈 등을 수상하였다.
현역 은퇴 후에는 행정가로 활동하면서 30년 동안 바이에른 뮌헨 부회장[11]과 의장[12]을 지냈고,[13]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 클럽 협회 의장도 역임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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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메니게는 1974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했는데, 당시 뮌헨은 프란츠 베켄바워 - 게르트 뮐러 - 제프 마이어를 앞세워 유럽을 제패하던 클럽이었고 루메니게 역시 두 번째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팀의 유러피언컵 3연패에 공헌한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뮌헨은 적자에 허덕였고 주축이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가 이적, 제프 마이어와 울리 회네스가 교통사고와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리그에서 10위 밖으로 추락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1978-79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외유를 마치고 분데스리가에 돌아와 있던 파울 브라이트너가 다시 바이에른에 합류하면서 '브라이트니게' 듀오가 결성된다.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는 수많은 골을 합작해냈고, 1979-80 시즌에 루메니게는 리그에서 26골을 넣으면서 득점왕을 차지한다. 이듬해에도 29골을 넣으면서 다시 한 번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끌었다. 유러피언컵에서도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아스톤 빌라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루메니게는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1984-85 시즌 인테르로 이적한 루메니게는 30대 초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18골을 득점하면서 팀의 주 득점원으로 자리잡게 된다.[14]
다만 1986-87 시즌에는 노쇠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폼이 많이 떨어졌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적을 감행했다. 이후 스위스 리그의 세르베트에서 두 시즌을 뛰고 한 차례 득점왕을 차지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1976년에 국가대표로 데뷔한 루메니게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팀은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루메니게는 유로 1980에 출전해 서독의 우승을 이끌었다.
루메니게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경미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루메니게는 득점에 성공했지만 알제리에게 1:2로 패하면서 팀 전체가 부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루메니게는 칠레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작렬하며 승리로 이끌었고, 히혼의 수치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경기는 서독의 1:0 승리로 끝나며 2차 조별 리그에 진출한다.
2차 조별 리그에서 스페인을 2:1로 격파하고 잉글랜드와는 비기며 1승 1무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는 미셸 플라티니 - 알랭 지레스 - 장 티가나 - 루이스 페르난데스의 매직 스퀘어가 버티는 우승후보 프랑스를 만났는데 루메니게는 부상으로 연장전에 교체 출전하였다. 프랑스가 연장전에서 먼저 2골을 넣어 3:1이 된 상황에 루메니게가 만회골, 클라우스 피셔가 동점골을 넣어 3:3 무승부로 승부차기까지 갔으며[15] 루메니게는 네 번째 키커로 나와 슛을 성공시키면서 서독이 승부차기 스코어 5:4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만나 파올로 로시, 마르코 타르델리,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에게 연속골을 내주고 3:1 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무른다. 그나마 루메니게는 브론즈볼과 실버슈를 수상하였다.
유로 1984에도 출전했지만 팀은 조 3위로 조별 리그 탈락하는 수모를 당한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서독은 기복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4강전에서 프랑스와 다시 만나 2:0으로 승리한 후 결승에 진출한다.
3. 은퇴 후
은퇴 후 1990년에서 1994년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의 TV 해설을 맡았고 동시에 1991년부터는 프란츠 베켄바워와 울리 회네스의 러브콜을 받고 바이에른 뮌헨의 부사장 직을 2001년까지 역임했다. 그 후 2002년부터 2021년까지 바이에른 뮌헨 구단의 이사장직을 역임하면서 울리 회네스의 옆에서 구단의 중책을 맡아오고 은퇴했다가, 2023년 칸, 브라쪼가 무수한 실책으로 물러난 후 이적위원회에 임시로 복귀했다.회네스가 공격적인 언행이나 오만한 인터뷰로 대외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관심을 끌고 압박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루메니게는 조용히 선수와 에이전트에게 물밑작업을 한다던가 구단 수뇌부들과의 친분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적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인터뷰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둘의 사이는 아주 좋은 편이고 그동안 회네스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파울 브라이트너, 로타어 마테우스[16] 등과 다르게 루메니게와 회네스의 친분은 흔들림이 없었으며 이 사람들의 사이에는 언제나 화해를 주선하는 루메니게가 있었다. 게다가 유일하게 회네스를 억제할수 있는 인물이 루메니게였다. 루메니게가 수뇌부에서 나간 이후로 회네스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인해 팬들의 민심이 들끓었고 결국 회네스가 은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17]
또한 G-14를 주도해서 창설한 이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 클럽 협회의 회장으로 일했으며, 2021년 현재 유럽 클럽 협회의 명예 회장직을 맡고 있다. 아이러니한것은 G-14가 슈퍼 리그의 모태라는 의심을 받고있는 것과 다르게 바이에른 뮌헨은 슈퍼 리그에 반대하는 클럽중 하나이며 루메니게와 회네스 모두 슈퍼 리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있다.
4. 플레이 스타일
당시 독일의 축구 언론 키커에서 평가한 루메니게의 시즌 별 공격수 평점 순위[18]로, 루메니게가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자료다.1974-75 시즌: 3.24 - 44위 / 26경기 8골
1975-76 시즌: 2.78 - 16위 / 48경기 13골
1976-77 시즌: 2.81 - 22위 / 42경기 15골
1977-78 시즌: 2.62 - 3위 / 38경기 14골 (키커 올해의 팀)
1978-79 시즌: 2.62 - 5위 / 36경기 14골 (키커 올해의 공격수 · 올해의 팀)
1979-80 시즌: 2.32 - 1위 (2위 키건은 2.42) / 47경기 36골 (득점왕, 키커 올해의 공격수 · 올해의 팀)
1980-81 시즌: 2.24 - 1위 (2위 푼켈은 2.74) / 45경기 39골 (득점왕, 키커 올해의 공격수 · 올해의 팀)
1981-82 시즌: 2.34 - 1위 (2위 벤젤은 2.53) / 48경기 27골 (키커 올해의 공격수 · 올해의 팀)
1982-83 시즌: 2.32 - 2위 (1위 푈러는 2.32) / 42경기 21골 (키커 올해의 공격수 · 올해의 팀)
1983-84 시즌: 2.31 - 1위 (2위 푈러는 2.55) / 42경기 32골 (득점왕, 키커 올해의 팀)
키커 랑리스테: Weltklasse 8회, Internationale Klasse 13회, Im weiteren Kreis 5회, Blickfeld 1회.[19]
정리하자면 7시즌 정도 분데스리가를 지배했던 본좌. 당시 분데스리가의 위상은 바이에른의 유러피언컵 3연패 이후 유럽 최고의 리그로 급부상하던 시기였고 루메니게는 그러한 분데스리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하였다
원래 오른쪽 윙이 주 포지션으로 페널티 박스 안에 주로 머물면서 동료 미드필더의 패스를 받아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에 주력하는 타겟형 스트라이커 스타일이 아니라[20], 그보다는 조금 내려간 세컨드 톱 위치에서 2선과 좌우 측면 침투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운동장을 폭넓게 사용하는, 단순한 득점 이외에 찬스메이킹에도 상당히 일가견이 있었던 최정상급 선수였다. 당대 탑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케빈 키건과 더불어 시대를 양분하며 유럽을 재패한 선수로 키건과 함께 메날두급 위상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다. 1978-79 시즌부터 루메니게-브라이트너의 브라이트니게 듀오가 팀을 캐리하다시피 했고 바이에른은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가 팀의 주역이 된 후 1979-80 시즌 다시 분데스리가 정상에 복귀하여 2연패를 달성했다.
5. 평가
미스터 유럽(Mr. Europe)이라는 별명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 서독과 유럽 최고의 공격수로 동시에 지쿠, 플라티니, 키건과 더불어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공격수로, 플라티니가 AS 생테티엔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키건과 함께 시대를 양분하던 선수였다.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의 일등공신으로 1980~1981년 발롱도르 2연속 수상이 이 위상을 증명한다.
비슷한 레벨의 선수로는 필연적으로 당대에 같이 경쟁하던 키건과 비교가 많이 되며 특히 발롱도르 2연속 수상 등 유사점이 많아 당대 분데스리가에서도 라이벌로 자주 조명됐다. 키건과 국대 커리어의 차이로 조금 앞서는 편이고,[21] 후대의 선수로는 호마리우, 루드 굴리트, 티에리 앙리 정도가 루메니게와 비슷한 위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축구 선수들 중에 루메니게와 비슷한 위상을 갖춘 선수로는 로타어 마테우스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독일 역대 축구 선수들을 줄세우면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가 자동적으로 1, 2위에 위치하고 그 다음 3위를 놓고 루메니게와 마테우스가 경합을 벌이는 편이다.
6. 기록
6.1. 클럽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대륙 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74-75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1 | 5 | 3 | 1 | 4 | 0 |
1975-76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2 | 8 | 7 | 2 | 9 | 3 |
1976-77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1 | 12 | 5 | 2 | 6 | 1 |
1977-78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9 | 8 | 3 | 0 | 6 | 6 |
1978-79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4 | 14 | 2 | 0 | - | - |
1979-80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4 | 26 | 3 | 5 | 10 | 5 |
1980-81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4 | 29 | 3 | 4 | 8 | 6 |
1981-82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2 | 14 | 7 | 7 | 9 | 6 |
1982-83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4 | 20 | 2 | 0 | 6 | 1 |
1983-84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9 | 26 | 7 | 4 | 6 | 2 |
1984-85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 26 | 8 | 9 | 5 | 9 | 5 |
1985-86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 24 | 13 | 6 | 2 | 9 | 3 |
1986-87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 14 | 3 | 5 | 2 | 5 | 1 |
1987-88 | 세르베트 FC | 스위스 슈퍼 리그 | 28 | 10 | 0 | 0 | - | - |
1988-89 | 세르베트 FC | 스위스 슈퍼 리그 | 32 | 24 | 0 | 0 | 4 | 0 |
6.2. 대회 기록
- FC 바이에른 뮌헨 (1974~1984)
6.3. 개인 수상
- 발롱도르: 1980, 1981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LW 4위)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82
- FIFA 월드컵 실버슈: 1982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80
- 유러피언컵 득점왕: 1980-81
-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1980
- 분데스리가 득점왕: 1979-80, 1980-81, 1983-84
- 키커 올해의 공격수: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 키커 올해의 팀: 1977-78,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1983-84
- 스위스 슈퍼 리그 득점왕: 1988-89
- 스위스 슈퍼 리그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88-89
- DFB-포칼 득점왕: 1981-82
- 독일 올해의 골: 1980, 1981
- 독일 이달의 골: 1979년 10월, 1980년 3월 · 10월, 1981년 7월 · 9월, 1984년 11월
- 옹즈도르: 1980, 1981
- 옹즈 드 옹즈: 1980, 1981, 1983, 1984, 1985
- 월드 사커 월드 XI: 1982, 1983, 1984, 1985
-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 1980
- 구에린 스포르티보 베스트 XI: 1980, 1981, 1982, 1983, 1984
- Sport Ideal 유럽 XI: 1979, 1980
- 브라보 오토: 1980, 1981, 1982, 1983, 1984
- FIFA XI: 1982, 1983, 1984, 1985
- FIFA 100: 2004
- 골든풋: 2009
- 바이에른 뮌헨 올타임 XI: 2005
-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21
- 독일 축구 명예의 전당: 2022
- IFFHS 올타임 독일 드림팀: 2021
- 투토스포르트 최고의 유럽 매니저: 2020
- 투토스포르트 골든보이 커리어상: 2021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특별상: 2024
6.4. 수훈
- 독일 공로훈장 공로십자장: 1989
- 바이에른 공로훈장: 2007
7. 여담
별명으로는 킹 칼레 (King Kalle)와 미스터 유럽 (Mr. Europe)이 존재한다.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시절에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쳐 국내 올드팬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이름이다.[22]
초인축구만화의 원조격인 캡틴 츠바사의 최종보스격 인물인 칼 하인츠 슈나이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23] 다만 별명인 데 카이저는 프란츠 베켄바워에서 따왔다.
오락실계를 평정했었던 세이부 컵 축구 독일팀 모델로 알려져 있는데 루메니게가 아니고 루디 푈러 혹은 위르겐 클린스만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당시 독일팀이 선호되던 팀이기도 하고 골 세리머니도 인상적이어서 당시 아르헨티나 모델이었던 마라도나보다도 더 주목받기도 했다.
2021년 빅클럽들의 슈퍼 리그 파동때 슈퍼 리그 참가는 클럽의 가치에 반하는 행보라 칭하며, 바이에른 뮌헨의 슈퍼 리그 참가를 공식적으로 반대하였다.[24]
7.1. PES와 eFootball 시리즈의 전설
피파 온라인에 호날두와 호나우두와 같은 적폐 공격수가 있다면, PES와 이풋볼 시리즈에서는 루메니게가 있다고 할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0티어 공격수로 유저들에게 인기가 높다. 스트라이커에 필요한 모든 스탯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적절하게 분배된데다가 플레이 스타일도 공격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 라인 브레이커에, 양발잡이기까지 해서 단점이 거의 없는 완벽한 최전방 공격수이다. 과거 위닝의 전설과도 같았던 아드리아누 처럼 대놓고 치트키를 남발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워낙에 다재다능하다보니 작정하고 무과금을 할 게 아니라면 "루메니게만큼은 무조건 뽑으라"는 말이 나올 정도[25]. 특히 루메니게만큼은 이상하게 일종의 '아다리'가 잘 터져서 어떻게든 돌파를 해서 골을 만들어낸다는 악명이 자자하다.루메니게는 공통적으로 압도적인 스피드와 높은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한 라인 브레이커 유형이며, 여기에 대다수의 라인 브레이커들과 달리 드리블과 피지컬도 준수하다는 장점까지 지녔다. 여기에 키도 182로 준수해서 공중볼도 어느 정도 경합할 수 있고, 수비 사이로 들어가는 움직임도 뛰어나니 그야말로 만능. 다만 체력과 균형조절, 패스 능력치는 평균 정도 수준이나, 어디까지나 S급이 아니다 뿐 A급은 된다. 비슷하게 항상 0티어 공격수로 평가받는 킬리안 음바페와 비교하면, 음바페보다 약간 더 둔탁하고 균형조절 능력치 자체는 낮으나, 대신 더 뛰어난 피지컬과 양발잡이라는 차별성을 가졌다. 다만 에픽 치고는 확실히 체력은 낮은 편이라, 수시로 뒷공간을 파대면 체력이 빨리 방전되어 후반 중반쯤 되면 빨리 퍼지므로 오랜시간을 뛰지는 못한다는 점이 제작진의 밸런스 패치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
PES 2020에서는 아이코닉 버전이 출시되자마자 기존의 보날두와 보바페, 토레스, 반 바스텐조차 아래로 깔아버리는 희대의 개사기로 등극해버렸다. 기존의 스탠다드 레전드 버전도 밸런스가 아주 잘 잡힌 탑급 공격수로 호평받았으나[26], 아이코닉 버전은 진짜 단점이 아예 없기로 유명했다. 언급한 스트라이커들이 한두 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으나[27], 루메니게는 공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슈팅 스킬과 게임 내 최고의 개인기로 꼽히는 더블 터치를 보유한 선수라 손가락만 좀 되면 어떤 조합에서도 미친 파괴력을 자랑한다. 애매한 감아차기 스탯도 킥력과 결정력, 커브 컨트롤과 각종 슛 기술이 합쳐져서 커버가 되고도 남으며, 높은 드리블 및 볼 컨트롤, 속도와 순발력 스탯으로 인해 더블더치를 시전하면 순식간에 수비수 몇 명 쯤은 가뿐히 제끼고 골대로 질주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높은 공센과 빠른 속순으로 인해 침투도 강력한데, 드리블로 수비진을 유린할 수도 있고, 결정력도 확실하고, 강한 킥력과 슛 스킬들에 힘입어 거리에 상관없이 공만 있다면 언제든 골문을 노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격수다. 유일하게 패스 스탯이 세컨드 스트라이커 치곤 좀 낮은데, 어차피 득점력과 돌파가 너무 좋아서 무시해도 좋은 단점.[28] 코나미가 아이코닉 출시 기념으로 딱 한 번만 풀었다가 2020년 6월 18일에 2차로 한 번 더 아이코닉 뽑기가 나왔다. 덕분에 루메니게는 자신의 현역 시절을 본 적도 없는 잼민이들에게 개사기라고 푸짐하게 욕을 먹거나 찬양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 게임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루메니게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스트라이커 뿐만 아니라 윙어, 공미로도 굴릴 수 있을 정도로 범용성도 좋아서[29] 그 위상은 가히 피온의 굴리트와 맞먹는 수준이다.
2020년 12월 10일자로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데, 킥력이 많이 올라가서 개떡같이 차도 찰떡같이 빨려들어가는 기적의 슈팅을 보여주며 주가가 더욱 올랐다. 위에 루메니게에 대해 써있는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공격수라는 평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소개 이런 루메니게의 대항마로 아이코닉 토레스, 맨유 시절 포를란, 아이코닉 래시포드, 이주의 음바페, 아이코닉 호날두와 메시, 아이코닉 크루이프 등 어마어마한 스탯의 공격수들이 나왔음에도 단 한 명도 루메니게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2021년 3월 25일에 무려 만렙 오버롤 101을 자랑하는 아이코닉 래쉬포드가 등장해 드디어 루메니게 이상의 사기 유닛이 등장하나 싶었으나 그 조차도 연구 결과 스킬과 양발 스탯의 차이로 루메니게의 밑이라고 결론났다.
efootball 체제로 변경된 뒤에도 기존 아이코닉들 대부분이 철퇴를 맞는 와중에도[30] 루메니게는 마켈렐레, 비에이라와 같은 몇몇 소수의 선수들과 함께 살아남아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수많은 공격수들과 새로운 얼굴들이 루메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루메니게는 나오는 족족 단 한번도 0티어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여전히 이풋볼이 사랑하는 공격수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중이다. 오히려 새로 나오는 에픽 버전마다 최고급의 평가를 받으며 루메니게가 들어간 익클은 뽑아놓으면 본전은 뽑는단 소리까지 듣고 있다.
부스터 체제가 자리잡은 2024년부터는 같은 팀 레전드인 울리 회네스도 이 라인에 합류해 뮌헨 공격수 듀오가 게임 내 1티어를 석권하고 있다.
8. 같이 보기
1 슈마허 · 2 브리겔 · 3 브레메 · 4 푀르스터 · 5 헤르게트 · 6 에더 · 7 리트바르스키 · 8 마테우스 · 9 푈러 10 마가트 · 11 루메니게 ⓒ · 12 슈타인 · 13 알괴버 · 14 베르톨트 · 15 아우겐탈러 · 16 톤 · 17 야콥스 18 란 · 19 알로프스 · 20 회네스 · 21 롤프 · 22 임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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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ˌkaɐ̯lˈhaɪnts ˈkalə ˈʁʊmənɪɡə, '카얼하인츠 칼러 후머니거'라고 발음한다. 표준 독일어에서는 한 형태소 안에서 철자상으로 중복되어 쓰는 자음이라 하더라도 따로 구별해서 발음하지 않는다.[2] 센터 포워드, 세컨드 스트라이커, 윙어[3] 본래 2022년부터 올리버 칸이 부임 하기로 했으나, 구단과 협의 끝에 2021년 06월 30일부로 사임하기로 결정했다.[4]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득점 6위.[5] 두 동생과는 달리 선수로서 성공하지는 못했다.[6] FC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각각 150경기 이상을 뛴 선수다.[7] 미하엘 루메니게의 아들로 도르트문트 유스였고, 독일 U19 대표팀에도 소집되었으나, 무릎 문제로 22세 은퇴하였다.[8] 프리롤로 공격 진영 전역을 커버하는 스타일로 보통 정통 스트라이커보단 포워드로 분류된다.[9] 유러피언컵 2회, 분데스리가 2회, DFB-포칼 2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10] 2005년 팬들이 선정한 구단 올타임 XI에도 이름을 올렸으나 최근에는 걸출한 후배의 등장으로 밀려나기도 한다.#[11] 1991~2002[12] 2002~2021[13] 이후 올리버 칸이 의장을 이어받있다.[14] 당시 세리에 A는 우승팀의 시즌 총 득점이 40골 정도로 경기당 득점률이 2.1 내외였던 시기였다. 실제로 1984-85 시즌과 1985-86 시즌 인테르의 시즌 총 득점(세리에 A 외에 컵 대회 및 유럽 클럽 대항전)은 각각 74골, 72골이었다. 전형적인 스코어러도 아닌 30대 초입의 선수가 팀 득점의 25% 정도를 혼자 만들어 냈다는 점은 루메니게의 클래스를 잘 보여준다.[15]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승부차기였다.[16] 물론 이 두명도 성격이 둥근 사람은 아닌지라 일방적으로 회네스 잘못은 아니었다. 특히 브라이트너는 젊을때부터 회네스, 마테우스 이상으로 트러블 메이커였으니.[17] 물론 둘 다 2023년에 다시 복귀했다.[18] 이 시절의 키커지는 공격수에게 평점을 짜게 주는 걸로 유명했다. 심지어 게르트 뮐러는 공격수로 한정해도 14시즌 평균 17.7위에 그쳤을 정도.[19] 현재 기준으로는 Weltklasse 6회, Internationale Klasse 8회, Im weiteren Kreis 4회, Blickfeld 1회.[20] 게르트 뮐러를 이런 형태의 공격수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뮐러는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기에는 연계도 뛰어났던 완성형 스트라이커에 가깝다.[21] 루메니게가 유로에서 맹활약하며 우승 후 월드컵 2회 준우승을 달성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22] “우리 시대 최고의 공격수는 루메니게였다”라고 차범근이 직접 술회하기도 했다.[23] 이 때문에 슈나이더는 축구에서 흔히 에이스 넘버로 통하는 10번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에이스 넘버로 통하는 13번이 아니라 11번을 달고 있다. 루메니게는 대표팀에서는 11번을 달고 뛰었기 때문이다.[24] 정작 슈퍼 리그 태동의 근원이라 할수 있는 G-14 창립 멤버이자 수장이 루메니게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25] 보통 여기에 루드 굴리트, 페테르 슈마이켈,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같이 추가되는 편이다.[26] 게다가 기본 기술도 9개인지라 기술추가로 슈퍼조커를 달아주면 아이코닉 못지않게 매우 좋다.[27] 호날두의 무플스 및 아군 블로킹, 음바페의 약한 피지컬, 토레스의 긴 터치, 반바스텐의 느린 속도와 낮은 균형 조절.[28] 단, 연계 플레이를 하거나 실력이 낮은 플레이어라면 루메니게보다 토레스가 더 나을수도 있다. 연계와 침투는 토레스가 더 좋기 때문이다.[29] 플팩 아이코닉 메시 한정. 다른 버전은 공미나 윙어에서 쓰면 플레이 스타일 문제로 인해 실성능이 떨어진다.[30] 그 2008-09 UCL 결승전 리오넬 메시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래쉬포드도 못써먹을 수준으로 떡락했다. 다만 피를로는 역으로 폭풍버프를 받고 개떡상했다.
분류
- 1955년 출생
- 1974년 데뷔
- 1989년 은퇴
- 립슈타트 출신 인물
- 독일의 남자 축구 선수
- 공격수
- 축구 경영인
- FC 바이에른 뮌헨/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세르베트 FC/은퇴, 이적
-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참가 선수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자
- FIFA 월드컵 결승전 득점자
- 독일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0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4 참가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발롱도르 다회 수상자
- 옹즈도르 다회 수상자
-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수상자
- 스트라이커
- 세컨드 스트라이커
- 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