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8 12:03:21

본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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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계에서
2.1. 태생2.2. 형성2.3. 기준2.4. 영향2.5. 위기2.6. 사어화...그리고 부활2.7. 기타2.8. 관련 문서
3. 스포츠계의 본좌
3.1. 지역 또는 국가3.2. 축구에서의 본좌3.3. 야구의 타격 본좌
4. 대중매체의 본좌

1. 개요

本座

본좌라는 말은 원래는 1인칭이다.
본인을 지칭하는 말이거나, 무협소설이나 고전소설에 가끔 등장하는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 1980년 중반 즈음엔 교과서에 사용되는 표준어 채택규정에 의해 삭제되어 사라진 단어 취급되었다가 2000년대 초기에 아햏햏 코드를 타고 인터넷상에서 부활하게 되었으며, 디시인사이드에서 이른바 햏력이 높은 사람을 지칭할 때 본좌라 부르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좌(座)는 어떤 관가의 장(長)에 대한 경칭으로 예컨대 군좌(軍座)는 군단장을 가리키며, 상대에 대한 경칭으로 쓰여서 좌하(座下), 좌전(座前) 같은 표현이 있다. 여기에 자신을 가리키는 본(本)을 붙여 스스로 높여 부르는 칭호가 된 것.

참고로 본좌라는 말이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 짤방이다.

파일:attachment/BonJwoa_Thoughtless_Words.jpg
중국 드라마 서유기의 짤. 방송사는 舊 ABO[1]. 짤방의 상황은 통비원후의 망상에 등장하는 석가여래[2].

요즘에도 '감히 본좌 앞에서 ~'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거기에 2006년 말에 터진 김본좌 사건으로 인해 더욱 널리 펴졌다.

남이 써주는 경우와, 자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용법은 자기보다 아랫사람 앞에서 자신을 가리키는 '이 몸'이나 '본인' 같은 1인칭이나[3], 웹상에서의 용법은 상대의 이름 뒤에 ~본좌라고 붙여서 상대를 칭송하는 경우(예:김본좌, 허본좌, ㅍㅖㄱㅍ본좌(...) 등)와, 자기 입으로 본좌라고 칭하여 스스로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경우(예:본좌 수햏10년에 득햏하였소)가 있다. 또한 어떤 분야나 직업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기도 한다.

무협지에서는 본좌의 여성판으로 '본녀(本女)'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딱히 본좌라는 1인칭이 남성 한정 인칭 명사인 것은 아니므로 여성이 써도 문제는 없다. 인칭의 사용자가 여성임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 하다. 사료 등에 비추어 역사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므로[4]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다면 고증 면에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본좌를 더 축약해 'ㅇㅇ좌'라고 칭하기도 했는데(예:명민좌) 2010년대 이후로는 유사한 대체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잘 안 쓰이는 편이다. [5]

대부분의 개념을 갖춘 본좌들은 본인이 본좌로 불리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경우에는 억지로 본좌라고 부르지 말자...

연세가 50세 이상인 분들의 경우 문서나 일기에 본좌라는 표현을 간간히 쓰는 걸 볼 수 있다.

본좌떡밥은 죽었어도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선 아직도 XX좌란 표현을 많이 쓴다. 햇반광고를 보고 햇반좌, 스갤 댓글광고를 보고 광고좌 이런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후 이 표현은 디시 여러 군데로 퍼져나가 간간히 쓰이는중.

종종 일본쪽 캐릭터의 1인칭이 본좌인 경우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중에서 셋샤(拙者) 라는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말도 안되게 정반대로 오역해버린 경우가 많다. 대개 '소인' 정도로 번역되어야 옳은, 신분이 높지 않은 캐릭터가 쓰거나 겸양으로 자신을 낮출때 쓰는 표현인데 처참할 정도로 정반대의 뜻인 본좌로 오역되는 경우가 제법 많아서 주의를 요한다. 한자로 봐도 옹졸할 졸(拙) 자로서 겸양하고 자신을 극히 낮출 때나 쓰는 표현이기에 본좌와는 거리가 멀고 셋샤를 쓰는 캐릭터들이 쓰는 문장을 봐도 본좌라는 자존망대한 표현을 쓸 만큼 나르시스트적이거나 고압적인 경우는 없다시피한데 왜 이런 오역이 넘쳐나게 되었는지는 불명.

2.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계에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라인
갓라인 = 본좌 어카게 콩라인
짝지라인 락라인 강라인 염라인
투명라인 역적라인 SAB라인 스막라인
잉여라인 패왕라인 0승 클럽 레기라인


파일:attachment/본좌/콩까지마엉어어어ㅓ엉ㅇ.jpg

꼼짝마, 이상한 놈이 하나 더 있다.[6]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 중에서 일정 기간 동안 아무런 적수가 없었던 사람들을(흔히 '본좌로드를 걸었다'라고 표현한다.) 뜻했던 말.
당연히 어원은 1번이다. 본좌의 계보는 임이최며, 그 이외에 준본좌가 있다.

2.1. 태생

최초로 스타판에서 본좌란 말은 박성준에게서 나왔다. Gillette 스타리그 2004로 스타리그에 데뷔한 그는 충격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로열로드 등극에 성공한 이후,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도 dlqudals 이병민을 꺾고 최초의 저그 2회 우승자로 우뚝서게 되었다. 이를 본 박성준의 팬들은 박성준을 ‘박본좌’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후 박성준이 알 포인트, 네오 포르테로 대표되는 3해처리 강제맵을 선보이며 2해처리 위주의 저그였던 그를 너프시켰고, 테란들의 기량 향상 및 스타일 파악으로 슬럼프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사라지는 말이 되었다.

2.2. 형성

이후 본좌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마씨의 전성기에 이르러서다.

우주닷컴 MSL에서 이윤열, 박정석 등 걸출한 선수들을 이기며 우승을 시작으로 CYON MSL에서 최연성을 5:0[7]으로 완파했으나 조용호에게 패해 준우승, 프링글스 MSL 시즌1 다전제에서 조용호, 전상욱, 강민을 꺾고 우승, 프링글스 MSL 시즌2에서 심소명을 꺾고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자 '현재 최강 게이머가 누구냐'라고 하면 단연 마서스를 꼽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MSL에선 3회 우승 1회 준우승이라는 걸출한 커리어를 가졌지만 반대쪽 스타리그에서는 듀얼 토너먼트조차 뚫어본 적이 없었던 전형적인 온막이었다.

여기서 거든 것은 CJ 엔투스를 창단하면서 e-sports에 발을 내딛은 CJ였다. 2006년 최강의 프로게이머를 임요환 정도로만 알고 있던 대중들에게 CJ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열리는 슈퍼파이트에서 임요환을 포함한 주요 강자들을 떡실신시키는 마재윤의 모습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이후 마레기의 스타성을 발견한 CJ는 2회 슈퍼파이트에서 골든마우스를 획득한 이윤열을 초청했고 마재윤는 이윤열마저 3:1로 꺾어버린다.
여기서부터 마주작이 신화로 등극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시작은 12월 케스파 랭킹에서 이윤열이 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이윤열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우승했고 프로리그 다승순위 2위에 에결 5전 전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마레기는 프로리그 개인전은 다승순위 4위로 밀렸지만 프링글스 MSL 시즌1, 시즌2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해 개인리그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팬덤은 관계자들이 마레기를 탄압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다음 시즌 MBC게임온게임넷에서 나란히 롱기누스 2리버스 템플을 공통맵으로 선정하며 이러한 심적인 의심은 확신이 되간다. 여기에 MBC게임에서는 데저트 폭스가, 온게임넷에서는 네오 알카노이드가 추가로 선정되며 거들었다. 이렇게 되자 이전에는 없던, 격한 반응이 일어난다.

다만 맵의 경우에는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닌게, MSL에서는 박태민부터 시작해서 조용호, 마레기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5회 연속으로 저그가 우승했다. 게다가 저저전 결승만 두 번이었다. 이 정도로 한 종족이 득세하면 맵을 이용한 견제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실제로 그동안은 견제를 해 왔다.

라그나로크라는 말도 안되는 맵에서 테란을 상대해야했던 홍진호의 시기나, 우승하자마자 다음 시즌에 3해처리 강제 맵이 깔리던 박성준도 있었지만, 홍진호의 시기에는 맵에 대한 논의 이전에 테란맵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테란 최약종족설 참조. 애초에 라그나로크 떡밥 자체가 임요환을 까기 위해서 후대에 발굴된 것이다.), 박성준은 그를 대놓고 까지는 않지만 그의 우승을 반기지는 않았던 팬들, 말하자면 소극적 안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라...
그리고 마레기는 이 상황에서 강민을 이긴 뒤 롱기누스, 리버스 템플, 데저트 폭스, 네오 알카노이드 같이 극암울한 맵에서 전상욱, dlwogh 이재호, 원종서 ,진영수, 변형태, 등 당대 최고의 저그킬러 테란들을 연파하며 양대리그 결승에 올랐고, 급기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결승에서도 1, 5경기에서 맵이 롱기누스 걸리는 등 맵이 매우 암울한 수준이었지만 이윤열을 3:1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때 마레기임요환을 계승한다. 실력과 커리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e-sports의 아이콘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 임요환이 테란 최약종족설하에서 테란을 구원한 구세주이자 황제로써 센세이션을 일으켰듯이, 마레기는 저그의 구원자이자 그 누구도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자가 되었다. 이 엄청난 드라마 속에서 마레기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고, 드디어 역사를 재편하기에 이른다. 일주일 천하였지만(...)[8]
이전의 스타판 역사는 사대천왕으로 대표되는 '임요환 유니버스'였다. 강민이나 조용호, 박성준 같은 게이머들이 그 업적과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스, 저그의 대표자는 박정석홍진호가 된 것은 박정석, 홍진호가 임요환과 연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층도 압도적이기도 했고 이윤열이 탄압받은 것은 이윤열이 저 셋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임요환 유니버스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던 게이머였기 때문이며, 최종적으로 이윤열 역시 임요환 유니버스, 즉 사대천왕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최연성은 처음부터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요환의 세계에 편입될 수 있었다.

이 시절까지는 본좌, 누가 가장 강하냐가 화두에 오른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포스트 임요환'에 적합한가였다. 그런데 마재윤은 임요환과의 연결고리 없이 독보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임요환과 마재윤 사이를 이을 연결고리를 스타 팬덤들은 그 이전의 이윤열과 최연성에게서 찾았다. 임요환을 시초로 두고, 이윤열-최연성-마재윤의 커리어상의 공통점을 기준으로 '임이최'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지금은 마레기 대신 마루가 있다 카더라

2.3. 기준

  • 1년간 개인리그 3회 우승 이상 (양대리그 우승 필수)
  • 1년간 총 승률 70%이상
  • 본좌 후보의 빠나 까들 모두가 인정해야 함

원래부터 본좌라는 말은 박성준과 마모씨 개인의 별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 같은 것들은 사실 없었다. 이는 본좌가 사실상 시대의 최강자라는 의미로 바뀐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본좌라는 말은 사실상 마재윤을 칭송하기 위한 마서스 팬들이 만들어낸 단어였고, 이 과정에서 아무리 폄하해도 그 영향력을 부정하기 힘든(그리고 부정했을 경우 팬덤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은) 임요환을 넣고, 그 임요환에게 커리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이윤열, 최연성 역시 최강자의 계보에서 배제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들의 커리어에서 마재윤의 커리어와의 유사성을 억지로 찾아내서 끼워맞춘 것이다.

본좌론 이후 갑자기 치솟은 MSL의 위상[9], 임요환과 이윤열의 KPGA투어 논란, 본좌론의 기준이라고 일컬어지는 게 전부 마재윤의 커리어와 일치한다는점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본좌론은 태생부터가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했고, 결국 택뱅리쌍 시대가 열리면서 본좌론은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2.4. 영향

본좌론은 스타판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먼저 MSL이 진정한 의미에서 스타리그와 동급의 리그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4차 KPGA 투어시점부터 MBC게임은 스타리그 다음가는 리그로 꼽혔으며, 다른 방송국의 폐지와 맞물려 2004년 센게임 MSL을 기점으로는 MSL 역시 스타리그와 같은 양대리그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인지도의 문제이든, 연출력의 문제이든 사람들에게 스타리그>MSL이라는 인식은 여전했다. 대표적으로 최연성은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게임 내적으로는 거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임요환이나 마재윤이 그랬던 것처럼 스타판을 재편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이는 MSL의 마이너리티함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10]

그런데 본좌론의 관점에서 프로게이머를 평가하는 것의 가장 큰 구성요소는 양대리그의 우승 커리어였고, 이로 인해 MSL은 드디어 스타리그와 동등한[11] 위치의 리그로 올라갔다.[12] 물론 이는 본좌론을 만들어낸 마빡이들의 입장에서, 마재윤의 커리어가 MSL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우승 기록마저도 잊혀져가며 프링글스 MSL S2에서 한 번 부정당한 KPGA 투어가 다시 부활한 것은 임요환을 마재윤과 엮기 위해서 KPGA 투어가 반드시 MSL의 역사로 편입되어 인정받아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이 가진 3회 MSL 우승 커리어는 과거 "테란크래프트" "맵이 너무 무난해서 힘싸움만 나온다" "우승하는 이 계속 우승해서 재미없다"라는 식으로 MSL에 가해지던 비판은 MSL은 실력있는 자만이 우승한다는 프리미엄으로 돌아왔다. 다시 말해 실력의 MSL, 당대 최강 MSL이라는 슬로건은 이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13]

또한 게이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스타일이나 매너와 같은 외적 요인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오로지 승률과 커리어만으로 프로게이머를 평가하게 되었다. 예컨대 과거 본좌와 같은 커리어를 남기지 않았음에도 그 스타일이나 업적을 인정받던 조용호, 한동욱, 오영종 같은 게이머들은 '본좌로드에 실패한 자들'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는 뛰어난 기본기를 가진 드래프트 세대들의 유입으로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 스타일리스트들을 찾기 어려워지고 오로지 누가 잘하느냐만 남아버린 게임 양상도 한 몫을 거들었다. 리그 브레이커라는 말은 이러한 팬덤들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쌩신인들이 로얄로더라는 포장을 받던 것에 비해, 본좌론이 부상한 이후의 스타팬들은 오로지 5대 본좌가 누구냐에 집착했고, 본좌 후보로 여겨지는 게이머들의 길을 가로막는 게이머들의 실력에 대한 칭찬보다는 '리그의 흥행을 망친다'는 식의 비난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2.5. 위기

그러나 결국 2008년 이후 택뱅리쌍 시대가 오자 본좌론은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택뱅리쌍의 시대에는 이들이 걸핏하면 결승에 진출하고 또 우승하며 수많은 기록들을 갈아 엎었고, 3.3 혁명 이후 2007년 초중반은 김택용이, 2009년에는 이제동이, 그리고 2010년에는 이영호가 차례로 스타판의 패권을 쥐었다. 송병구는 커리어로는 다소 부족하나, 꾸준히 이들과 맞서며 라이벌 구도를 구축했다.

이 중에서 2009년 이제동이 브루드 워 역대 저그 최고 커리어인 양대 리그 5회 우승을 달성하며 마재윤의 커리어 마저 뛰어 넘게 되었지만, '마재윤보다 더 강한 저그' 혹은 '마재윤보다 이룬 게 많은 저그'가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은 마빠들에게 탄압을 받았다. 이처럼 이제동의 안티들은 "빠나 까 모두가 인정해야 본좌"란 말도 안되는 극히 주관적인 기준을 근거로 그를 본좌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동의 커리어가 임이최 중 이윤열를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을 월등히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본좌로 인정받지 못한 것만 봐도 본좌는 그냥 폐기에 가까운 사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객관적인 커리어로 전성기를 판단해봐도 이제동이 임요환, 최연성, 마재윤에 부족할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포스가 어쩌니, 2009년도는 저그판 아니었냐는 말도 안 되는 트집 등 몇몇 안티들 때문에 본좌론은 이 시점부터 사실상 사어화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이후 2010년부터 이영호가 갓모드의 미친 활약을 펼치면서 스타판을 지배하게 되자 이영호 본좌론이 등장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제동이 어처구니없는 안티들의 트집으로 본좌로 인정받지 못했듯이, 이영호 본좌론 또한 안티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안티들은 이영호를 본좌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프로리그 우승해야 본좌, 양대리그 동시 우승해야 본좌, 스타리그 연속 우승해야 본좌' 처럼 말도 안되는 본좌의 조건들을 새롭게 붙여나갔으나, 이영호는 새로운 조건이 추가될 때마다 그 조건들을 실제로 달성해버리며 논란을 잠재우고 역대 최강의 선수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이제동에게 가해졌던 탄압처럼 SKT T1 팬들을 주축으로 이영호를 본좌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억지논리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에 이영호 팬들이 '이영호는 본좌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다'라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게 갓라인이다. 강조하지만 갓라인의 탄생은 애초에 이영호의 압도적인 포스와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본좌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각자의 주관성에 의해 본좌 주장이 횡행하는 코미디스러운 상황을 낳고 말았고, 택뱅리쌍은 한 경기 한 경기 이기고 질 때마다 찬양과 까임이 폭발적으로 등락하는 스갤 식의 분위기가 널리 퍼져 나갔다. 그리고 더 이상 이영호를 본좌로 인정하지 않을 명분이 사라진 다른 선수의 팬들이, 이영호가 본좌로 인정받는 프레임을 전환하기 위해서 본좌론 자체가 스타판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했다.(스갤문학 5번째 본좌 등) 이미 본좌에 대한 논쟁 자체에 염증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이 전략은 효과적으로 먹혀들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본좌론은 회의에 휩싸여 이영호 본좌론 또한 종지부를 찍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었다. 그리고 홍진호가 스타판의 키워드가 된 이후로는 '홍진호와 같이 본좌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이름을 빛내지 않았느냐'는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영호 본좌론이 사라지자 그 이후로 본좌론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경우는 사라졌다. 실제로 본좌론을 가장 많이 써먹었던 스갤에서도 마레기가 조작질을 한 이후로 '야. 이젠 XX가 본좌 아니냐?'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 다만 본좌론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몇년간 스타판을 지배해왔던 강한 화두였기 때문에 일종의 밈이나 문화로서 사용되는 경우는 아직도 제법 많이 보이는 상태. 이를테면 스갤에서는 xx좌라는 말을 야갤의 갑에 해당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한다. 처음에는 사람에게만 붙이던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에도 쓰이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시간 등의 개념이나 바람 같은 자연 현상, 심지어 가족들에도 XX좌를 붙이면서 놀게 된다.[14]

이후 어처구니 없게도 본좌론과 본좌라는 표현은 전혀 다른 곳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바로 디시인사이드 기타프로그램 갤러리 등지에서 ~좌 식으로 서로를 지칭하기 시작한 것. 이후 국내야구 갤러리가 아이돌 갤러리, 코갤화 되가며 이 표현을 수입해왔고 갤 내 중계나 좆목질 등에서 간간히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2.6. 사어화...그리고 부활

마조작의 제명 이후, 본좌라는 표현은 사장되기에 이르렀다.

임요환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했다가 SKT T1의 코치로 이적했었다가 감독이 되었고 이후 프로 포커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윤열스타크래프트 2 전향 후 활동하다가 2012년 6월 19일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했다.
최연성은 군에 입대했으며, 이후 SKT T1으로 돌아와 스타2팀의 감독을 역임 했다가 스타2 프로리그가 종료되고 LOL팀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누군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스스로 몰락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죽음을 먹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환호를 즐기다 스타판이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한 선수들, 아프리카TV 중심으로 재편되며 완전히 몰락하였고, 그저 주작송 소리나 듣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타1 공식리그 종료 이후 마조작이 제명된 지 8년 후, 그리고 후속작으로 넘어오고 개조작이 제명된지 3년 뒤, 스타2에서 새로운 본좌가 탄생했다! 2018년에 개최된 모든 GSL을 싹쓸이하며, 춘추전국시대라는 말까지 있었던 스타2판을 평정했다. 그리고 올해 핀란드의 요나 소탈라서킷 4연속 우승에 블리즈컨까지 우승을 거두며 블리즈컨 거의 올해 모든 리그를 평정해버리면서, 해외 선수 최초의 본좌에 오르며 마모씨의 자리를 대체하는 데 성공한다!!!

2.7. 기타

  • 일본 위키피디아 스타크래프트 문서에도 본좌의 계보라는 타이틀로 작성되어 있었다. 흠좀무. (2009년 8월 19일판을 끝으로 삭제되었다.)
  • 외국 스덕들도 본좌 뜻을 알고 있다. 구글에 bonjwa라고 검색해보면 팀리퀴드 위키 문서가 나오고 누가 본좌인지 외국스덕들이 토론하는 글이 꽤 나온다.
  • 해외 위키사이트나 스타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이영호를 본좌의 일원으로 넣는 사람이 많다. 스타위키를 봐도 명단에 이영호가 포함되어있다. 가끔 특성선수의 빠들이 반달해서 명단에 본인이 좋아하는 선수를 넣어놓기도 한다. 주로 이영호를 제외한 택뱅리쌍선수들이 많이 들어간다.
  • 승부조작 사건 이전에는 임이최라는 말이 입에 잘 붙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뒤에 다른 글자를 붙여서 부르는 말이 굉장히 유행했다(예: 임이최동, 임이최택, 임이최엄, 임이최창, 임이최꼼, 임이최율희, 임이최온 등등등). 그러나 승부조작 명단 공개 이후 설사 쓰더라도 는 빼고 그냥 임이최, 3대 테란 라인으로 부른다.
    가끔 임이최베(팅)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깔 때도 쓰인다. 또 마를 마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현재로써는 임이최마루가 통용될 수 있을 듯.
  • 최강자가 빠르게 물갈이되는 스타크래프트2에서도 그런 구도를 보기 어렵다. 그나마 그에 비견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가 2018년 9월 시점의 조성주인데, 만약 그가 올해 GSL을 모두 장악한다면 금단의 말에 가까웠던 본좌라는 표현이 부활할 가능성이 아주 컸고... 결국 조성주가 전태양을 꺾으며 2018년의 본좌로 거듭났다.

2.8. 관련 문서

3. 스포츠계의 본좌


스포츠계의 본좌급 선수들을 일컫는 통칭. 다만 구기종목의 경우 선수들의 플레이스타일과 성향이 매우 다양하여 본좌급이라는 칭호는 자주 쓰이지 않는다. 다만, 선수들이 쓰는 기술[15] 등에서 본좌 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기종목에선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의 본좌급 팀도 존재한다. 본좌라는 의미가 좋은 의미에서의 본좌 이전에 여러 방향으로의 본좌라는 칭호가 형성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전세계적으로 본좌급 칭호를 받는 선수나 팀은 아래와 같은데, 황제/여제, 제왕/여왕, 신/여신, 살아있는 전설 같은 칭호가 보통 딸려 다닌다.

본좌급 칭호를 받는 선수/팀은 이러하다.

등이 있다.

3.1. 지역 또는 국가

3.2. 축구에서의 본좌

수많은 레전드들이 명멸했던 축구계지만, 가장 위대한 선수 10명을 꼽을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선수 5명이 있다.

시기 순으로

이 다섯 명은 선수들의 업적도 후덜덜 그 자체인데다 국가 밸런스도 적절해서 누가 뽑든 거의 빠지지 않고 첫손 꼽히는 선수들이다.
  • 디 스테파노: 챔피언스 리그 5연패의 주역. 태생은 아르헨티나지만 스페인으로 귀화했으며, 특히 클럽에서 빛나는 업적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쌓아 올렸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 요한 크루이프: 발롱도르 3회 수상자이자 축구계의 혁명이라 불린 토탈 사커의 지휘자. 네덜란드아약스를 월드컵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 프란츠 베켄바워: 최고의 리베로이자 수비수. 요한 크루이프의 라이벌로, 그를 꺾고 월드컵을 손에 든 독일바이에른 뮌헨의 황제. 인기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수비수였음에도 첫손 꼽히는 것부터 그의 위엄을 짐작할 수 있다.
  • 펠레, 마라도나: 이들은 FIFA 월드컵에서의 독보적인 활약과 더불어 여러 대회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며 역대 최고의 레전드 1위와 2위를 다투는 선수들이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이들 못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레전드로 대우받는 선수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페렌츠 푸스카스, 조지 베스트, 에우제비우, 미셸 플라티니, 레프 야신, 가린샤, 지쿠,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등도 가장 위대한 선수를 꼽으라면 함께 꼽히는 선수들이지만 위 다섯 명은 넷상에서 "펠마크베디"라는 용어가 관용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커리어로나 상징성으로나 이 다섯명은 축구계의 본좌 대우를 받기에 충분한 선수들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 시대를 지배했던 이들의 상징적인 위상이 그렇다는 것이지 가장 위대한 선수를 투표한다면 펠마크베디가 5위까지 꼭 채운다는건 아니고, 위에 언급된 다른 선수들도 자주 언급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메시, 호날두와 같은 선수들이 나타나면서, 앞으로 순위가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가 없다. 펠레마저도 소망으로 "2070년까지 역대 no.1으로 언급되고 싶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리고 베켄바워 같은 경우 최근 들어서 평가가 조금씩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마라도나는 가끔씩 약쟁이라는 이유로 아예 역대급에서 제외해버리는 팬들도 극소수로나마 존재한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뛰어난 선수가 나오는 건 둘째치고 본인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3.3. 야구의 타격 본좌

임이최 같은 식. 이들은 거의 250대 홈런을 넘었다.(!) 그 중 300홈런을 넘기지 못한것은 타격의 달인 장효조와 헐크 이만수, 마포 마해영 뿐(!) 사실은 삼성 라이온즈에도 가 있다. 저기다 합치면 00년대 이후 삼성을 우승시킨 본좌라인 완성. 왠지 투수도 끼워넣은것 같지만 넘어가자

삼성 라이온즈

전통적인 타격의 팀 답게 타격본좌가 가장 많다. 통합 우승 클린업이었던 장효조, 이만수[21] 현재까지도 최고의 클린업으로 불리는 이마양 등이 유명하다.
  • 장효조 - 야구계의 타격본좌 하면 4할 타율의 백인천을 제치고 가장 먼저 팬들에게도 언급되는 인물임에도 불구, 이 문단에 추가되지 않았다. 아래의 다른타자들과 달리 중장거리형 교타자지만 그 성적만큼은 홈런과 장타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저 양준혁의 상위호환 수준.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볼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구안이 뛰어났으며 단 한번도 두자릿수 병살타를 친 시즌이 없다. 거기에 타격기술까지 합쳐지면서 .331/.430/.459 라는 말도 안되는 통산 스탯을 남겼다. 타율은 단연 KBO 역대 통산 1위. 그 양준혁 조차도 통산 타율이 .316, 통산 출루율이 .420 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타격본좌였다. 덧붙여 장효조가 좌타자라는 점과 대두(...)라는 점 때문에 팬들사이에서는 장효조, 양준혁, 최형우를 엮어 좌타대두라인이라 불린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엮여서 부르는 말. 간혹 이 사이에 이승엽을 넣기도 하나 대두라기에는 머리사이즈가 애매해서인지(...) 이승엽은 이 라인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더 많다.
  • 이만수 - 삼성 라이온즈의 시작은 이만수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 최초의 트리플크라운 기록이라는 다양한 타이틀 등등 원년 멤버이자 97년도까지 삼성에서 활동했으며 16시즌동안 통산 타율 0.296, 홈런 252, OPS 0.907의 기록을 남겼다. 비록 말년에 삼성과 갈등을 빚고 떠밀리듯이 은퇴를 했지만아직도 대구팬들은 이만수를 잊지 못한다. 은퇴 후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다가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캐쳐 시절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획득하기도 했으며 2007년 SK 와이번스의 코치로 한국에 돌아왔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SK 감독직을 역임했다.
  • 양준혁 - 살아있는 전설이자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서도 3할대를 유지하는 타자. 93년도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처음으로 신인왕에 수상했고. 데뷔이후 한번도 놓치지 않고 100안타를 기록, 16년 연속 100안타라는 역사를 써나가고 있으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개인통산 2000안타를 이루어낸 선수다. 성구회에 2번째로 가입한 멤버이자 장종훈의 홈런 대기록을 넘어선 레전드급의 선수. 99년 임창용과 트레이드 과정으로 인해 삼성을 잠시 떠났지만 2002년부터 삼성에 복귀해 한국시리즈 3번 우승을 이루었다. 2010년 은퇴 후 현재는 해설가와 방송 활동 중.
  • 이승엽 - KBO 역대 최강의 타자, 1995년 데뷔하자마자 주전 1루수를 꿰차고 타율 .285에 홈런 13개라는 신인으로서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으며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타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데 97년 32개, 99년 54개, 2003년 56개로 왕정치(오 사다하루)의 기록을 넘어선 영원한 국민타자. 1997년, 1999년, 2001~2003년 모두 5차례나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으며, 2002년 팀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에 기여도를 했으며,[22]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동안 주축 타자로 활약하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 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요한 상황에서 한 방을 쳐주며 팀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기도 하다. 2004년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하며 일본 진출에 성공했고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겨서 2010년까지 활동했다가 2011년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2012년 시즌에 삼성 라이온즈로 다시 복귀해서 그 해 한-일 통산 500홈런과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노장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2013년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팀 선배 양준혁의 KBO 리그 통산 최다홈런 기록이었던 351개를 갱신했다. 2014년에는 리그 최고령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 2015년에는 KBO 리그 통산 400홈런 기록을? 2016년에는 KBO 리그 통산 2000안타, 한-일 통산 600홈런, 역대 통산 최다 타점 신기록을 갱신하는 등 여러 가지 신기록을 세우며 기록의 사나이로 불리고 있다. 통산 10회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23] 2017 시즌 후 은퇴했는데 자신의 은퇴경기에서마저 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흠좀무

한화 이글스
  • 장종훈 - 연습생 신화, 1987년에 데뷔해 90년부터 92년까지 홈런, 타점 부문 타이틀을 3연패했으며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40홈런을 돌파, 통산 340호 홈런을 기록하는 등. 이글스의 4번타자로 자리잡았다. 비록 통산 홈런기록은 양준혁과 이승엽에게 넘기기는 했지만 그는 영원한 이글스의 대표적인 타자다.

쌍방울 레이더스 - 현대 유니콘스 - SK 와이번스
  • 박경완 - 90년대 말~2000년대 초중반 리그를 대표적인 포수이자 진갑용, 김동수와 함께 포수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던 박경완. 이만수가 못다한 포수 300홈런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한 경기 4연타석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포수 유일의 40홈런, 20-20 클럽 가입[24] 등 여러 가지 대기록을 남겼다.

현대 유니콘스 - SK 와이번스
  • 박재홍 - 호타준족의 선수로서 데뷔하자마자 30-30 클럽에 오르는 등 30-30을 3번이나 달성하고[25] 특히 2000년에는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인천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26] 부상 이후 장타력이 줄긴 했으나, 3할에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른 꾸준히 기록해 주었다. 이후 KIA 타이거즈를 거쳐 2005년부터 SK 와이번스에서 뛰게 되며 인천으로 되돌아왔고, 2005년에는 홈스틸도 시전했다. 때로는 빈볼 시비 등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천팬들에겐 미워 할수 없는 선수이다. 2012년 10월 3일 드디어 300홈런을 기록하고 시즌 후 은퇴했다. 현재는 해설가로 활동 중.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 심정수[27]-너무나도 뛰어난 성적[28]을 올렸던, 크보 역대 최고의 우타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 그러나 수술 후유증과 부상으로 33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은퇴해야했던[29] 비극적인 선수.

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
  • 이종범 - 90년대 한국야구계를 뒤흔들었던 레전드. 30-30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1994년 타율 .393 84도루는 지금도 수차례 회상되는 기록이다. 그놈의 생고기 2000년대 초반에도 3할에 4~50도루는 거뜬히 했다.

천조국의 수많은 본좌들은 야구 관련 인물(MLB) 문서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문서 참조.

4. 대중매체의 본좌

이 경우 반드시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는 아니다. 흔히 본좌급 작품이라고 부르며 단순히 완성도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대단한 경우로 이해하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는이렇게 있다.


[1] 한때 중국 무협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방송했던 방송국이었지만 2011년에 중국어교육방송으로 장르가 바뀌면서 방송 비율이 대폭 축소되었다. 여기에서 방송했던 대표작은 양문호장, 신조협려2006, 철치동아 기효람 등.[2] 손오공 행세를 한 통비원후는 세상을 지배할 망상을 품는다. 통비원후는 석가여래를 흡수한 뒤,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생각을 하는데, 짤의 장면은 망상속에서 통비원후가 석가여래와 조우했을때의 상황이다.[3] 예전에 허경영이 "내가 바로 본좌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내가 바로 나다"랑 똑같은 뜻이다.[4] 국립국어원 측의 답변.[5] , 느님등등.[6] 임요환의 사진은 스타리그 100승 당시, 이윤열은 신한은행 마스터스 우승 당시, 최연성의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당시, 마재윤의 사진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우승 당시, 홍진호의 사진은 스니커즈 올스타 리그 우승 당시의 사진.[7] 승자 4강 2:0, 패자 결승 3:0[8] 당시 저프전은 토스가 승률 60%만 찍어도 전설적인 선수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저프전 최강이며 강민 정도나 상대가 가능하다던 마레기를 '님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듣보잡인가여? ㅋㅋㅋ'하면서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던 김택용이 3: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꺾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얼마 후에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마스터즈에서 얼마 전 커맨드까지 먹어가며 무너뜨렸던 이윤열에게도 1:3로 털렸으니[33] 그의 천하는 1주일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덧붙이자면 3.3 혁명 이후 2개월 동안(오프시즌 포함) 마레기는 그가 밥으로 여기던 강민, 임요환, 최연성 등에게 공식전, 비공식전 등 여러 경기에서 모조리 털렸다.(...) 마레기를 완전히 나락으로 떨궈버린 흑열사는 덤[9] 실제로 본좌들 중 마재윤의 스타리그 성적이 가장 초라하다. 임요환은 우승 2회, 준우승 4회, 3위 1회, 본선 진출 14회이고, 이윤열은 우승 3회, 준우승 1회, 본선 진출 14회이고, 최연성은 우승 2회, 3위 2회, 본선 진출 9회를 기록하였다. 반면 마재윤은 우승 1회에 본선 진출 5회에 불과해 다른 본좌 세 선수에 비해 스타리그 성적이 상대적으로 매우 저조하다. 심지어 2003년 입단 이래로 3년간 스타리그 본선 한번 뚫지 못했었던 온막이였다.[10] 최연성이 이후 2회의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이 시점에서 최연성은 상당부분 기량, 승률을 잃은 상태였고, 테란맵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다.[11] 동등하다고 하지만 2018년에도 관계자, 게이머,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스타리그 우승을 MSL 우승보다 좀 더 높게쳐주는 것은 사실이다. 연출력이나 인지도 면에서 스타리그>MSL이었음은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커리어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둘 사이의 차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 박성준vs김택용 논란 붙여보자(...).[12] 대신 전해지던 다른 리그, 예를 들어 WCG프리미어 리그 등은 그 정통성이나 수준을 의심받으며 듣보잡 대회로 전락하고 만다.[13] 우습게도 이후 MSL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가 되어버리지만...[14] 시간은 스2의 편이기 때문에 시간좌, 승원좌가 햇반 광고를 따라했으니 햇반좌, 태풍 무이파이가 스타 결승전을 쓸어버렸으니 태풍좌, 할머니가 용돈 잘 주신다고 할매좌 등등.[15] 예를 들어 축구의 프리킥이나 농구의 덩크슛[16] 김동성의 전성기 시절엔, 다른 선수들이 아예 이기고 싶단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김동성 문서 동영상 참조.[17] 위에 나와있듯이 구기종목에선 스타일이 각자 달라서 조던 이전까지 미국에선 최강논쟁이 분분했다. 무려 열한번이나 우승한 빌 러셀을 꼽자니 개인기량이 최강이었던 윌트 체임벌린이 걸리고, 카림 압둘자바도 만만치않고, "왜 빅맨만 언급하냐"며 줄리어스 어빙을 대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를 지배한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역시 커리어 최전성기에 역대 최고 떡밥이 돌았다. 그러나 동시대 라이벌들 전부보다 뚜렷히 우위를 점하고, 개인기량+우승을 종합한 지배력에서 역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마이클 조던이란 존재가 나옴에 따라 대다수 농구인들과 팬들은 이견없는 넘버원으로 조던을 꼽는다. 당연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라 백프로는 아니고 다른 선수를 꼽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인 여론이 그렇다는 것.[18] 장거리 부문 한정[19] 국내 및 아시아 축구 팬들에게는 공포의 알본좌라고 불리운다. 아시아 한정...이라고는 하지만 유벤투스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도 비겼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20] 물론 인구밀가 더 높은 나라도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도시국가미니국가 뿐이다.한국은 방글라데시의 이어 콩라인[21] 나머지 한명은 김성래인데 타격본좌에 끼지는 못한다. 이는 부상의 여파로 선수생활을 접을뻔한 위기를 겪으며 기록에서 상당히 쳐졌기 때문.[22] 6차전 이전까지는 2할대 초반 타율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9회 말 동점 3점홈런을 치며 역전의 발판을 쌓았고 이로 인해 이승엽이 큰 경기에서 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23] 1997~2003년 7시즌 연속 1루수 골든글러브를, 2012년과 2014~2015년 3차례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24] 특히 포수 20-20 클럽은 1999년 이반 로드리게스와 2001년 박경완 이 두 선수만 기록한기록이다.[25] 1996년, 1998년, 2000년.[26] 광주광역시가 고향이나 선수 본인이 인천은 제 2의 고향이다 라고 할 정도로 인천에 대한 애착이 엄청났다.[27] 타팀에서 개인 최다 홈런을 기록한 적도 있고 홈런왕을 차지한적도 있지만 일단 두산 쪽으로 분류한다.[28] 2003년엔 OPS가 1.198에 BB/K가 2에 육박했다. 이게 인간이야? 그런데도 아시아 홈런 신기록과 세계 최연소 최소경기 300홈런을 친 그 사람에게 MVP를 빼앗겼다. 12할에 육박하는 OPS를 기록하고도 MVP를 못 한 선수는 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정말 몇 명 없다. OPS 1.250찍고 4할을 치고도 MVP 못한 선수도 있다.[29] 은퇴 직전해인 07년엔 .258로 홈런왕을 했다! 진짜 장타력은 사기였다...[30] 심정수와 마찬가지. 다만 이 쪽은 홈런왕을 차지한 적은 없다.[31] 2011시즌까지의 기준으로 보다면 통산 홈런개수는 225개. 다만 타격 7관왕의 임팩트가 강해서 이쪽으로 넣는다.[32] 이 게임의 명성도 명성이거니와, 전문기술을 모두 만숙을 찍을 경우 얻는 업적이름이 '본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