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14:51:54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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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das AG
파일:아디다스로고.jpg
정식명칭 Adidas AG
한글명칭 아디다스 주식회사
설립일 1924년 7월
설립자 아돌프 다슬러
본사 소재지 독일 바이에른 주 헤르초게나우라흐
업종 의류, 스포츠 장비
홈페이지 영어

1. 개요2. 역사3. 라인과 활동
3.1. 국내 마케팅3.2. 해외에서의 마케팅
3.2.1. 유럽3.2.2. 미국3.2.3. 일본
4. 스폰서 목록
4.1. 스포츠
4.1.1. 축구
4.1.1.1. 대회4.1.1.2. 국가대표팀4.1.1.3. 클럽4.1.1.4. 개인
4.1.2. 농구
4.1.2.1. 대회4.1.2.2. 국가대표팀4.1.2.3. 클럽4.1.2.4. 개인
4.2. 기타4.3. 방송
5. 논란
5.1. 한일 축구 대표팀 관련5.2. 욱일기 사용 논란
6. 트리비아7. 관련 문서

1. 개요

Create the Answer – adidas
Create the Answer
독일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나 악세사리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트레이드 마크는 특유의 3선. 2013년에도 러닝 라인으로 부스트를 내놓는 등 새로운 기술과 신발 개발에도 열을 내고 있다.

참고로 ADIDAS의 뜻이 국내에선 'All day I Dream About Sports'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로 실제 의미는 창립자 아돌프 다슬러 별명인 “Adi(Adolf)”와 성인 Dassler의 앞글자 “Das”의 6글자를 합친 것이다. 미국의 유명 뉴메탈 밴드 Korn의 대표곡 중 'A.D.I.D.A.S.(All Day I Dream About Sex)'가 있어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브랜드명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아디다스는 독일 기업인데 영어로 약어를 지었을 리가 없다.

2. 역사

파일:2GIYxz6.jpg
창립자인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

설립자인 아돌프 다슬러(이하 아디)는 루돌프 다슬러(이하 루디)와 함께 1924년, 뉘른베르크 인근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위치한 자택에서 축구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디는 뛰어난 손재주를 이용해 질 좋은 축구화를 만들어냈고, 외향적인 성격의 루디는 그런 동생이 만든 축구화를 팔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구화 생산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1933년에 형제가 나치 당원이 되면서 사업은 더욱 번창했다.[1]

다슬러 형제의 나치 경력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루디가 나치의 사상에 공감하고 있던 반면, 신발 밖에 모르던(?) 아디는 그저 신발장사의 수단으로 나치당에 가입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어쨌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다슬러 형제의 회사는 독일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서 아돌프 히틀러를 엿먹인 흑인인 제시 오언스에게 자신의 신발을 제공함으로서 그 우승에 일조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이 길어지자 형제의 사업 여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형제는 회사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디는 아디의 아내가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루디는 군대에 끌려갔지만 아디는 징집되지 않았기에 루디는 아디랑 제수가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를 썼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1945년 7월에 루디는 미군에게 잡혀 SS로 오해 받아 포로수용소에 1년 동안 감금된다. 루디의 소속 부대가 패전에 즈음하여 재편성되면서 SS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루디는 독일의 패전을 직감하고 탈영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 때문에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다하우 수용소(...)에 끌려가던 중 독일의 패전을 맞이하게 되고, SS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해 총살당할 뻔 하였지만 독일군 트럭 운전사의 기지로 미군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미군에게 다시 체포된다. 루디는 이 모든 일이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석방되자마자 아디를 나치 협력자로 밀고했지만 아디는 유대인계 시장(市長)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다.[2]

결국 루디는 집에서 나와 강건너의 다슬러 공장을 차지했고, 그를 따르는 사원들을 데리고 독립했다. 아디는 자신의 이름과 성에서 글자를 따서 아디다스를 만들었고, 루디는 푸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다슬러는 아디다스와 푸마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회사간의 화해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이루어지게 되었다.[3][4] 여담으로 둘 다 본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던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있다.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루디와 달리, 아디는 기술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디다스 설립 후 아디의 부인인 캐테 다슬러가 아디다스의 경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멜버른 올림픽에서 수완을 발휘한 이후 아디다스 프랑스의 매니저를 맡게 되는데 그는 야심가로서 보수적인 경영을 추구하던 부모와 충돌이 잦았고 독일의 아디다스 본사와 프랑스의 지사는 독립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하여 사업상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5]

아직 루돌프 형제 신발 회사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미국의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에게 자사의 육상화를 신겨 우승하게 한 것이 스포츠 마케팅의 효시로 일컬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아디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멜버른 올림픽에서 참가 선수들에게 자신들의 신발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포츠 마케팅의 1인자가 되었다.[6]

또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농구화[7] 슈퍼스타[8]는 농구선수들의 대호평을 받으며 아디다스는 미국 시장까지 석권했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은 어렸을 때 나이키보다 오히려 아디다스 농구화를 선호하였다고 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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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최고의 히트작, '영원한 스테디셀러' 슈퍼스타

그러나, 새로운 유행에 둔감한 채 전문적인 스포츠 용품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점[10] 결국 아디다스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은 호르스트가 무리하여 미국 총판의 영업권을 구입해버린 점 등으로 인해 회사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진 점 등으로 인하여 결국 아디다스는 혜성같이 등장한 나이키에 그 지위를 빼앗기고 아디다스는 마당의 잔디를 깎을 때 아저씨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될 정도로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디다스는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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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디다스는 본업인 스포츠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명성을 쌓는다. 바로 패션. 힙합의 시조격인 전설적인 그룹 Run DMC가 아디다스의 파이어버드 져지를 입고 슈퍼스타, 캠퍼스 등의 스니커즈를 신고 활동하면서 아디다스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된다. Run DMC는 아디다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My Adidas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당연히 아디다스는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고 이 노래는 화면과 라디오를 타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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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Run DMC의 콘서트에서 팬들이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들고 열광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이에 힘입어 차후 스트릿 패션에 주력하는 Adidas Originals 라인을 생산하게 되고, 많은 셀러브리티와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폴 매카트니의 딸인 여성복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라인이 특히나 유명하며, 2010년대에는 제레미 스캇이 내놓은 라인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오리지널스 라인은 대개 복고풍의 트렌디한 패션을 주도했고, 덕분에 아디다스는 패션 분야에서만큼은 점유율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이키를 이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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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의 주력모델 데이비드 베컴.

그러나 한동안 아디다스는 본업인 스포츠 분야에선 여전히 심각한 부진을 겪는다. 적어도 축구에서는 1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뒤늦게 축구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 나이키가 'R9' 호나우두를 내세워 축구산업에 전념하면서 야금야금 점유율을 내주더니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축구에서도 2인자로 밀리게 됐다가, 2010년대 들어와서 다시 1인자로 올라섰다. 아디다스가 신경을 쓰지 않던 골프 분야를 나이키타이거 우즈를 내세워 대박을 터트리면서 아디다스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에 절치부심하던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Just Do It 캠페인을 구상한 인재들을 영입하여, Equipment[11] 브랜드를 런칭하고 로고를 기존 불꽃 모양의 트레포일에서 삼각형의 로고(바로 이 페이지 맨 위의 로고, 트레포일은 패션라인인 오리지널스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제한.)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써먹는 Impossible is Nothing도 이때 나온 것.

결국 아디다스는 몰락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거대한 미국 시장을 홈그라운드로 하는 나이키에게 밀려서 어쨌든 스포츠용품 업계의 콩라인.[12] 아디다스가 나이키를 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2014년 미국 매출액만 보더라도 나이키 118억달러, 언더 아머 26억달러, 아디다스 16억 달러로 아주 처참하게 발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1996년생 꼬꼬마 브랜드인 언더 아머한테도 밀리는 3인자 신세 이처럼 미국 점유율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보였으나, 아디다스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2015년 등장한 울트라부스트를 시작으로 이지 부스트, NMD 등 부스트 중창을 장착한 신발들이 나오고 튜블라 라인도 히트를 치면서 2016년 3분기에는 언더아머를 다시 제쳤다.

사실 북미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발려서 그렇지 아디다스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아직도 우세한 편이다. 아디다스는 나이키를 넘기 위해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영입으로 패션 분야의 지분을 점차 늘려가며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고, 축구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올림피아코스 FC와의 대형계약을 맺어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최정상 클럽을 모두 스폰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만들었던, All in or nothing 캠페인에서 마침내 나이키를 이기면서 꿈도 희망도 없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미래가 긍정적인 상태이다.

2001년부터 CEO를 맡고 있던 헤르베르트 하이너가 물러난 이후, 2016년 카스퍼 로스테드가 CEO로 부임한 이래 업계 1위 탈환을 목표로 아디다스는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고, 다시금 상승세를 타고 있다. 로스테드는 공장을 독일로 옮겨 전자동화를 도입, 인건비를 대폭 낮추었다. 브랜드 이미지 재고를 위해 스폰서십을 대폭 손보았으며, 셀러브리티와의 스폰서십을 강화하여 애슬레저 시장을 선점하였다.#

그 결과 아디다스는 북미 지역의 점유율을 빠르게 회복했으며, 2017년에는 중국 시장에서 29% 성장, 북미 지역에는 27%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 아디다스의 영업이익은 무려 219% 증가하는 등 경쟁사 나이키를 다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여전히 나이키의 어패럴 브랜드 순위가 1위지만, 나이키의 평가 가치가 몇몇 악재로 2018년 -12%를 기록한 반면, 아디다스는 무려 41%가 성장하여 4위를 기록한 상태이다.#

3. 라인과 활동

오리지널스 라인의 신발들이 2010년대 들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중 80~90년대 스타들이 신고 다니던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한 '슈퍼스타', '가젤', '스탠스미스', '캠퍼스', 'EQT', 'ZX' 시리즈 같은 모델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튜블라 라인도 복각해서 역시 인기를 끈 이후,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내놓고 있다. 'Y-3'와 '이지' 라인의 디자인을 적절히 차용한 점이 주효한듯 하다. 부스트 폼을 전격적으로 사용한 신설 NMD(노마드) 라인업도 대박을 치면서,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퍼포먼스 라인에서도 특유의 가벼움, 편안함을 가지는 부스트폼을 내세운 '울트라부스트', '퓨어부스트' 등이 대박을 치면서 런닝화 시장을 재편하고 있고, 농구화야구화, 축구화 등의 신발에도 점차 부스트폼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나이키에 맨날 밀린다고 평가받던 기술력이 한이었는지 부스트폼에 사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7년 기준 아디다스를 하드캐리하는 것은 부스트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13] 서브캐리는 나이키의 플라이니트 격인 프라임니트 정도.

다만 부스트폼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편안함, 쿠션감은 대체로 호평하고 있으나 이런 편안함이 장기적으론 오히려 발에 무리를 주는 것 아니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침대나 모래사장에 서있을때 처음엔 편안하지만 장시간 서있을 경우 도리어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장거리보단 단거리 보행용에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부스트 몇년간 잘만 신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개인차는 있을듯. 또 같은 이름의 신발이라도 개선된 버젼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디다스는 운동화 뿐만 아니라 패션 라인에서도 꽤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힙합 문화와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래퍼들이 아디다스의 옷이나 신발을 애용한다거나,[14] 국내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 아디다스가 협찬을 때리는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옷 스타일들이 꽤나 힙합스럽다. 스트리트 패션에서 아디다스가 한가닥 하는 이유. 아예 오리지널스 라인은 이런 스트릿 위주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렇게 오리지널스 라인에서 선전하다가 대박을 친 예 중 하나가 바로 카녜 웨스트와의 협업인데, 나이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아디다스로 초대형 이적 후 출시한 이지 부스트라인은 아디다스 협업의 레전드로 남으며,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카녜가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지 부스트를 신을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재판매는 소량에 그쳤다. 이지 부스트 시리즈가 성공하게 되면서 비슷한 색상들을 마구 찍어 내고 있지만, 나오는 족족 품절된다.

덕분에 비록 스포츠 분야에서는 콩라인 확정이지만, 패션 부문에서는 2010년대 기준 나이키보다 매출이 앞서고 있다. 미씨 엘리엇은 2000년대 중반쯤 대박을 쳤고, 2010년부터 2~3년간은 제레미 스캇과의 콜라보레이션이 핫했으며, 이후는 상기했다시피 카녜 웨스트와의 협업이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다.

이 외에 가장 유명한건 역시 1년마다 바뀌는 축구공. 해가 바뀌면 지난 축구공을 단종시키고 새 모델을 내놓는다. 세계 1, 2위 축구리그인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의 공인구 스폰은 나이키가 하지만, 이 리그들의 상위팀 경쟁, 별들의 잔치인 챔피언스리그의 공인구와 남/녀 월드컵, 또 지나면 올림픽과 유로, 해 바뀌면 컨페더레이션스컵 순으로 피파 파트너인 아디다스의 스폰이 붙는 국제대회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나이키가 파고들기 쉽지 않다.

3.1. 국내 마케팅

아디다스가 1977년 국내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로 처음 선정된 스포츠용품사란 것은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다만 지금처럼 거액을 축구협회에 주고 독점 스폰서십을 맺은 것은 아니고, 유니폼을 비롯한 용품들 협찬 수준으로 대략 1984년까지 당시 아식스, 위크엔드, 코오롱스포츠, 프로스펙스 등과 함께 마구잡이 협찬을 하였다.

대한축구협회나이키에게 국대 유니폼으로 아디다스를 고를까 말까 떡밥을 던져 유리한 국대 스폰서 계약 연장을 이끈 것도 알려진 사실.[15]그렇지만 아디다스는 나이키랑 다르게 K리그 뿐만 아니라, 역도, 핸드볼, 유도, 태권도, 테니스, 양궁 등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대표팀들의 후원사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편이다. 나이키가 2018년 3월 a매치부터 계약 종료일인 2019년 12월31일까지 입을 유니폼을 발표했는데, 아무 디자인도 없는 무디자인에다가 소재도 한단계 낮은 드라이핏 소재로 유니폼을 만들어줘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이키와 계약이 끝나면 아디다스로 당장 갈아타야 한다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K리그의 경우, 2019년 현재 리그 차원의 스폰서십 계약을 맺고 있지만 구단에 대한 공식 유니폼 및 용품 스폰서에서는 발을 뺀 상태이다. 부산 아이파크가 2019시즌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공식 스폰서십이 아니라 사서 입는 형태이다. 그 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 천안 일화 천마, 안양 LG 치타스, 부천 SK,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등이 아디다스와 공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던 역사가 있다.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12년부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B레벨로 승격하여[16] 아디다스가 스폰서를 하고있는 유명 유럽 축구팀과 동급으로 되어 유니폼 제작을 본사에서 직접 제작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2012년 아디다스 본사의 첫 작품인 블루 피버 유니폼이 출시 하루만에 매출 1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나이키를 제치고 K리그 공식 스폰서로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상술한 대로, 2017년를 마지막으로 수익성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K리그 팀 스폰서를 전부 끝냈다.

야구에선 2010~13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 및 용품 스폰서를 한 경험이 있다. 그 전에는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LG 트윈스와 스폰서 계약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유니폼 상의에 아디다스 로고가 들어간 것은 롯데 자이언츠가 처음이다. 아디다스용품을 사용하는 선수들을 보면 오재원, 허경민, 강경학, 이진영, 김선빈, 손아섭 김용의, 진갑용, 최경철, 야마이코 나바로, 김재호, 에릭 테임즈, SK이재원, 적토마 이병규, 서건창[17]이 있고, 2015년 이전시기를 보면, 이대호[18], 이승엽[19], 이재학[20]이 대표적이었다. 참고로 2015년 현재는 용품계약된 한국프로야구팀 2013년의 롯데자이언츠 이후 없다.[21][22] 2017년을 끝으로 축구도 철수하면서 여름 프로 스포츠와는 완전히 이별. 참고로, 많은 브랜드 들이 그렇지만 아디다스 역시 미국식 야구 제품 라인과 일본식 야구 제품 라인이 별도로 전개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스폰 선수들은 일본식 라인의 배팅장갑을 사용하는 듯. 야구화의 경우도 역시 일본식 라인[23]이 강세였으나, 2015년도에는 부스트폼을 사용한 미국식 야구화를 착용하는 선수들도 많다. 암가드는 국내의 NINE 스포츠를 통해 OEM 방식으로 제작, 선수들에게 공급한다고 한다.[24]

한국 프로 농구에서는 조성민이 모델로 활약하고 있고, 이승현도 여기에 포함되어있다.[25] 아직까지 프로농구와 후원계약을 한 적은 없지만, 14-15시즌 초기에 경기장 바깥 라인에 있었던 바닥광고에 있었던,(그러니까 TV중계화면기준으로 왼쪽 윗 구석에 있었던) 나이키로고를 치우고 아디다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니폼의 경우에는 여러 팀들에게 후원을 하였거나 하는 중이다. 서울 삼성 썬더스는 2011년까지 후원하다 14-15시즌 다시 아스토레에서 아디다스 제품을 사용했고, 안양 KGC인삼공사는 2011년까지 후원. 부산 kt 소닉붐는 과거에 후원하다 계약종료 후 13-14시즌부터 15-16시즌까지 다시 계약. 고양 오리온스는 13-14 시즌부터 후원 중. 오리온스는 팀 특유의 색깔을 버리고 보라색으로 변신했는데 유니폼들의 퀄리티가 ...또한 과거에는 허재가 뛰었던 시절의 원주 TG 삼보 엑서스(현 원주 동부 프로미)가 아디다스 제품을 사용했었다. 따라서 한국 프로에서는 농구에서만 아디다스 유니폼을 볼 수 있다.

3.2. 해외에서의 마케팅

독일을 비롯하여 스페인, 러시아 , 일본 , 알제리, 스웨덴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스코틀랜드, 웨일스, 이집트, 벨기에,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모로코, 멕시코, 캐나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헝가리 등 국가의 축구대표팀이 아디다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아디다스의 지배력도 크다. 예를 들어 펜싱에서는 이탈리아의 남자 사브르 슈퍼 스타인 알도 몬타노나 플뢰레 여제인 발렌티나 베찰리를 후원한다.그러나 이탈리아 펜싱 대표팀 유니폼의 제조업체는 카파다. 그 외에도 독일, 프랑스, 중국, 그리스, 헝가리 등의 국가대표팀에는 선수 전원에게 용품을 제공한다.[26] 한국의 펜싱 국가대표팀도 아디다스가 용품 후원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나이키타이거 우즈를 후원하면서 나이키 골프를 런칭해 재미를 보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아디다스는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내세워 골프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아디다스의 로고가 붙은 제품을 내놨으나 2000년대 초반에 테일러 메이드를 인수하여 골프 시장에서 나름 입지를 굳히고 있다.

3.2.1.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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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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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후원사.

파일:ZQkKvtA.jpg
레알 마드리드 C.F. 후원사.[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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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시즌부터 올림피아코스 후원사가 되었다.

파일:wV2Jucm.jpg
2015년 7월1일부터 합류한 유벤투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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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1일부터 합류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 SV,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C.F., 발렌시아 CF, 유벤투스 , 올랭피크 리옹, 벤피카, AFC 아약스, RSC 안데를레흐트, FC 바젤 등의 유럽 명문구단들이 아디다스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아디다스의 본고장 1. 분데스리가의 경우 FC 바이에른 뮌헨한 팀 뿐이다. 2부리그에는 함부르크 SV , FC 잉골슈타트 04 2팀이 있다.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VfL 볼프스부르크, FC 샬케 04가 과거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었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는 풀럼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스터 시티 FC 등이 있다. 몇 년 전까지 리버풀 FC뉴캐슬 유나이티드도 오랫동안 아디다스를 입었으며, 80년대엔 맨유도 아디다스 유니폼을 채택하기도 했었다.

또한 2015-16시즌부터는 맨유와 10년간 약 1조 3000억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하여 나이키를 밀어내고 다시 킷 서플라이어로 나섰고, 이탈리아에서는 유벤투스와 6년간 2000억 계약을 맺으면서 15-16시즌부터 후원사로 나섰다. 정확한 계약기간과 금액은 나오지 않았지만, 올림피아코스 FC도 2015-16시즌부터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는다.# 그리고 19-20시즌부터 아스날 FC도 후원을 받는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인구도 제작하고 있다.

3.2.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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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디다스가 스폰서하는 미국대학교들의 농구팀 모습.

    미국에서 NFL, MLB 다음으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학스포츠계 NCAA에서도 아디다스가 여러 대학교들을 스폰서하며 확장하고 있다.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대학 스포츠팀의 장비를 후원하고 연간 수십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급한다. 이렇게 후원 받던 팀의 선수들이 프로로 진출할 경우, 장래 스타와의 개인 계약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나이키, 언더아머, 뉴발란스에 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많이 밀리는 듯 한 상황이지만 미국 내, 대학야구에서는 강세를 보이고있고, 메이저리그에도 나름 이름 있는 선수들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를로스 코레아, 크리스 세일, 안드렐톤 시몬스, J.D. 마르티네즈등이 있다. 특히 시카고 컵스의 슈퍼 루키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위시로 한 마케팅을 전개 해오고 있다. 2018년 3월부로 뉴욕 양키스의 차세대 슈퍼스타 애런 저지와 계약에 성공했다! 저지는 시즌시작부터 아디다스 용품들을 사용중. 그 외에도 아롤디스 채프먼이 나이키에서 아디다스로 갈아타고 글러브마저 아디다스 로고가 떡하니 박힌 제품을 쓰는 등, 북미시장 2인자 자리를 석권하면서 야구 쪽에 투자가 전보다 활발해지는 중이다.
  • MLSNHL의 경우에는 전구단이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

3.2.3. 일본

과거 데상트가 아디다스 본사로 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대리점을 운영했지만, 1998년부터 아디다스 재팬이 설립되고 일본내 아디다스 용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일본 스포츠 시장이 매우 커서 본사에서도 아디다스 재팬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상황인지라 독자적인 브랜드 라인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국대 유니폼이나 리그 유니폼등 아디다스 본사에서 디자인 및 제품 공급을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아디다스 재팬이 독자적으로 제작, 공급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J리그마츠모토 야마가, 츠에겐 가나자와, 베갈타 센다이,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알비렉스 니가타의 킷 스폰서를 맡고 있다.

2006년부터 오랫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폰서를 맡았었다. 그러나 2014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측이 언더 아머와 손을 잡는다.

4. 스폰서 목록

4.1. 스포츠

4.1.1. 축구

유니폼 시장보다는 개인과의 계약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워낙 큰 회사이다보니 계약을 맺고 있는 팀들이 많아서 본사에서 전부 관리해주지 않고 대형 클럽들을 제외하면 아디다스 EU나 아디다스 UK 등의 내수 회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본사에서 직접 관리해주며 따로 홍보를 해주는 팀들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이 있고 이 팀들의 유니폼과 트레이닝 킷들은 전세계에 발매되며 디자인 역시 따로 관리해준다.[33]

그러나 다른 팀들에겐 암담한데 본사에서 관리해주는 위의 몇팀을 제외하면 기본킷에 엠블럼과 스폰서만 붙혀서 판매한다. 팀 특유의 디자인도 없고 질도 보급형의 질 그대로 갖고있으며 트레이닝복 디자인들은 더욱 심각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대기업 제품이라 가격은 비싸다. 이러한 점때문에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레알 베티스는 공개적으로 아디다스를 저격했었고 둘은 각각 마크론과 카파로 킷 서플라이를 바꾸게 된다. 발렌시아 CF는 아디다스가 글로벌 라인업에 포함시키기로 약속해서 계약금이 더 높았던 JOMA와의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아디다스로 옮겼으나, 매번 기본킷으로 출시되었고 100주년 유니폼마저 기본킷으로 내줬다. 2019-20시즌부터 푸마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규모가 더 작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환영하고 있을 정도.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스는 창단 20주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다른 회사 디자인 킷을 아디다스가 구단과 합작하여 레트로 킷으로 발매해줬다.

그나마 이전에는 자국 클럽들인 함부르크 SV, FC 샬케04, VfL 볼푸스부르크, 1.FC 뉘른베르크,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등의 팀들에게는 바이에른 뮌헨 등의 상위 클럽들과 동일한 제품군을 만들어주고 디자인도 특색있게 해줬었으나 함부르크를 제외하면 죄다 재계약을 맺지 않았고 함부르크 역시 기본킷을 지급받고 있다.
빅리그가 아닌 유럽의 명문팀들 역시 기본킷 돌려막기를 시작했는데 희생자는 포르투갈의 벤피카,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 네덜란드의 아약스 등이 있다. 이들 역시 그전에는 따로 디자인된 킷이 있었지만 2018-2019시즌 유니폼은 모두 기본킷이다.

국가대표팀도 마찬가지인데, 2018월드컵에서 독일,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일본,[34] 콜롬비아, 벨기에, 러시아만이 고유의 디자인을 가진 유니폼을 받을 수 있었고 이들의 유니폼만 홍보자료에 쓰였다. 스웨덴이나 이집트같은 나라들은 그 해의 기본킷도 아니고 전 해에 사용하던 허리에 삼선이 달린 기본킷 유니폼을 지급받아서 더욱더 안습.나이키 역시 상위 몇팀들만 신경써준다고 욕을 먹지만 나이키는 적어도 상위 팀들과 동일한 신형 킷으로 내주긴 했다.그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금 유니폼 전버전인 2016~2018 버전을 보면 나이키 탑티어 국가랑 디자인이 달랐다
4.1.1.1. 대회
4.1.1.2. 국가대표팀
4.1.1.3. 클럽
4.1.1.4. 개인

4.1.2. 농구

4.1.2.1. 대회
4.1.2.2. 국가대표팀
4.1.2.3. 클럽
4.1.2.4. 개인

4.2. 기타

4.3. 방송

5. 논란

5.1. 한일 축구 대표팀 관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아디다스 재팬이 한 영상을 게재했는데(#) 이게 한국 축구대표팀을 비하하는 것 아니냔 시각이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링크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일본 축구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호랑이와 맞서는 모습이 묘사되고, 일본팀을 상징하는 푸른 유니폼과 한국팀을 상징하는 붉은 유니폼이 대비되는 모습이 나온다. 사족으로 한국팀에는 당시 대표팀 에이스 박지성의 등번호인 7번을 단 선수가 나온다. 그리고 일본팀이 이런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적수를 맞아 2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이어가지만 후반전에 연속 3골을 넣으며 역전한다는 내용.[37]

다만 처음부터 굳이 이런 논란을 부를 영상을 안 만들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또 이게 마냥 한국 대표팀을 비하한 것인가는 좀 고려해볼 요소가 있는게,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악마처럼 묘사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보면 알겠지만 딱히 뿔이 달린 것도 아니고 보기에 따라선 악마라기보단 걍 일본이 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적수(=강적)의 모습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초반부에 '아시아 최강의 적을 맞은 일본대표팀'이란 글귀까지 적어놓은걸 보면 '한국 축구=아시아 최강'이란걸 일본 스스로 인정한 꼴도 되고, 이런 강적 역시 일본은 이길 것이다라는 좀 국뽕스러운 오글 내용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라이벌 느낌을 강조한거지 한국 대표팀을 마냥 비하했다고 보긴 좀 나간 감도 있다. 사실 나이키 지원받던 당시 한국 대표팀에 대한 디스였다카더라

5.2. 욱일기 사용 논란


2018년 7월, 아디다스가 올린 1분 분량의 광고 영상 "Spain | Demand Greatness"에 욱일기가 등장하여 논란이 되었다.[38] 영상 19초경에 한 여성이 휴대 전화를 들면서 "나는 상상력이 없는 플레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I will not tolerate unimaginative play)"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여성이 있는 방 뒤에 걸린 액자로 선명하게 욱일기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지금은 한국에서의 항의로 해당 유튜브 영상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확인할 수가 있는 상태.

6. 트리비아

  • 과거 아디다스 코리아가 출범하기 전 아디다스 제품의 유통/라이센스 제작은 아디다스 코리아의 전신인 제우교역이 도맡아 하고 있었던 듯 하다.
  • 트레이드 마크인 3선에 매우 집착한다. 아디다스 제품 중에 삼선 붙지 않은것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 매우 개성적이지만 매우 단순하여 유사품이 등장하기 쉽다. 예를 들자면 2선이라든지 4선이라든지 말이다. 그런 이유로 아디다스는 삼선을 지키기 위해서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법정투쟁을 벌이곤 한다. 이 때문에 동일한 시그네쳐인 3선을 선택했던 톰 브라운과도 법정 분쟁을 했었다. 아디다스가 승소해서 톰 브라운은 3선을 사용하지 않거나 선을 하나 추가해서 4선을 쓰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국민 쓰레빠라 불릴만한 삼선슬리퍼는 아직도 없어질 생각을 안한다. 게다가 얘내들은 4선도 아니요 2선도 아닌 3선을 대놓고 쓴다. 이것은 아디다스의 adilette의 마이너카피다. 자세한 것은 삼선슬리퍼 항목 참조. 문구점 따위에서 팔리는 다운그레이드 버전은 1년이 채 못가는 반면 이것은 5년이 넘어도 가수분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담으로 삼디다스는 삼천원이며 원조인 adilette의 가격은 39000원으로 정품가격이면 짝퉁을 13켤래나 살 수 있다.
  • 아디다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치와도 관련이 깊다. 아디다스의 리즈시절 경영을 맡았던 호르스트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인연[39]으로 국제 스포츠계의 흑막이 되어 있었다.[40] 그는 서울의 한국은 나고야가 속한 일본의 아식스, 미즈노에 해당하는 유력한 자국산 스포츠 브랜드가 없다[41]는 점에 주목하여, 서울의 올림픽 유치를 위해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총동원하였다. 아디다스가 서울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 위치를 손쉽게 확보하고 스포츠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 쓰레빠 말고 추리닝(저지 혹은 트랙탑)도 유명하다. 특히 2010년대 중반 당시 일부 중고딩들은 가을~겨울철만 되면 노스페이스 리즈 시절 마냥 개나소나 아디다스 추리닝을 나이키아베크롬비 등과 함께 자주 입기도 했다.[42] 다만 아디다스 추리닝 자체가 유행을 별로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긴 하고 학생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편하게 걸치고 다닐 수는 있다. 하지만 잘못 매칭하면 동네형 패션 되기 십상이니 주의
  • 파일:attachment/c0026408_4cece85a97493_1.jpg
    완전 무장을 한 병사들 옆에 아디다스 활동복을 입고 있는 1명의 독일 연방군 사진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때의 제목은 독일군 말년병장.
  • 수영복으로 유명한 아레나와도 관련이 깊다. 아디 다슬러의 아들이자 그를 이어 아디다스를 경영하게 되는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디다스에서도 수영복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아디 다슬러는 아디다스는 신발 회사이고, 수영을 할 때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호르스트는 부모님 몰래(...) 아레나를 설립하여 수영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 오리지널스 라인은 스포티브 캐쥬얼 라인으로, 평상복과 운동복을 넘나들고 있다. 굳이 비교하면 나이키의 Nike Sportswear 라인과 컨셉이 유사하다. 각종 컬래버레이션이 몹시 활발하여, 카녜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리타 오라와 같은 유명인들과의 협업이 히트를 치고 있으며 BAPE, 마스터마인드, 베드윈, 네이버후드 등 전세계의 스트릿 브랜드들과 협력한 라인들도 꽤 호응을 얻고 있다.
  • 디자이너 브랜드 등과의 컬래버레이션도 굉장히 활발한데, 스텔라 매카트니와의 아디다스 by 스텔라 매카트니, 요지 야마모토와의 Y-3 등이 이에 속한다. 오리지널 라인에서 제레미 스캇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유명했다. 오리지널스의 공식 모델인 2NE1이 제레미 스캇의 뮤즈 중 하나라서 특별취급을 받았다.
  • 유독 러시아에서 인기있는 브랜드이다. 고프닉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상징이 아디다스 츄리닝이 됐을 정도. 영상은 고프닉 컨셉 채널 Life of Bori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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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델 카스트로가 생전에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의 매니아로 유명했다. 피델이 아디다스 빠라서 그런지 쿠바의 거의 전종목 국가대표팀의 키트 스폰서가 아디다스다.
  • 지네딘 지단차범근 전 감독이 여기 제품만 고집하기로 유명했다. 역시 독일산을 애용하는 차붐 여기서 더 나아가 차범근 전 감독은 나이키를 디스한 적도 있었는데, 그의 지론에 따르면 나이키는 부상당하기 쉬운 운동화라고. 수원 감독 시절, 선수단에게 머큐리얼 베이퍼의 갑피가 너무 얇아 시합 도중에 상대팀 축구화에 밟히면 통증이 심하다고 다른 축구화를 신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아디다스도 아디제로 축구화가 머큐리얼 못지 않게 얇은 갑피로 나오긴 했다.
  • 일본의 아이돌 HKT48의 멤버 무라카와 비비안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밝혔다. 그래서, 쇼룸 개인방송에서도 자주 아디다스 브랜드의 옷을 입고 나온다.
  • 2005년, 스포츠 업계 1위인 나이키와 경쟁하기 위해 영국의 유명 스포츠 업체인 리복[43]측에 합병 요구를 하게 되고, (한화로) 4조원에 리복을 인수해 서브 브랜드로 보유하고 있다. 한때, 매각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디다스 경영진이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나이키는 영국의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를 인수해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스폰을 넘겨받고, 다시 매각했다.
  • 스마트폰 케이스도 만든다. 오리지널스 라인으로 나오며 갤럭시 메인모델과 애플 모델이 주류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파는 모델이 아니라면 브랜드 도용이다. 몬스터, 젠하이저 등과 연계하여 이어폰과 헤드폰도 만들기도 한다.
  • 한국내 물류센터는 경기도 평택시 송탄IC 바로 앞 평택종합물류단지에 위치해 있다. 요금소 바로 옆에 보이는 긴 회색 건물이 그것이다. 한국 아디다스, 리복, 아디다스골프 제품 등을 취급하는 매장의 반품, 출고, AS 등을 담당한다.
  • 한국의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기용 트레이닝복이 인기다. 주로 돌 즈음의 아기 사이즈가 많이 팔리는 편.
  • 한국 축구 팬들이 원하는 스폰서이다. 이유는 나이키가 대놓고 푸대접을 하기 때문.
  • 2018년 9월 30일, 11월 23일 발매 예정이였던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 350 V2 참깨가 2달 정도 먼저 아디다스 광주 용봉 대리점에서 선발매되는 해프닝이 발생, 아디다스코리아의 물류 시스템 오류 혹은 실수로 대리점에 발송되었고 대리점은 매장 이벤트라며 300여 족을 판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허나 이 이슈의 당사자인 아디다스코리아는 본사에 욕먹기 싫었는지 어떠한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묻어가는 모양새. 허나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 350 V2 참깨 선발매에 정리되어 있으며, 해외 스니커즈 웹진과 커뮤니티와 팟캐스트 스니커월드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졌다.

7. 관련 문서



[1] 나치는 유럽 정복을 위한 병역 자원을 마련하고자 젊은이들의 체력 및 협동심을 기를 스포츠를 장려했고, 스포츠 용품 업자인 다슬러 형제는 그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다.[2] 아디는 전쟁 말기 자신의 직원들을 향토방위군 훈련에서 열외시키기 위해 훈련시간마다 초과근무를 시켰다는 일화도 있다.[3] 1974년 루디의 사망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아디가 형을 용서하겠다고 하며 형제간의 화해가 있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루디의 장례식 당시 아디 본인은 참석하지 않고 딸 한 명이 가족 대표로 참석하였다고 한다.[4] 어차피 지금은 두 회사 모두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역사적으론 같은 가문이다.[5] 물론 가족회의를 통해 조정되고 최종적인 결정은 어머니 캐테를 거치긴 했다. 물론 호르스트는 겉으로는 따르는 척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캐테는 종종 아들 때문에 힘들어요하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6] 호르스트는 스포츠 상업화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7] 당시 미국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가 석권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만들던 농구화의 재질은 이었다. 지금도 컨버스 매장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의 캔버스화 맞다.[8] 의외로 수퍼스타가 농구화로 출시된 모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슬램덩크에서 안선생님강백호와 점프슛 대결을 할때 착용한 모델도 수퍼스타 하이탑 제품인 Adidas Pro Model이다. 이는 훗날 2015년 2월에 퓨쳐스타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판이 나왔다.[9] 때문에 컨버스도 가죽으로 농구화를 만들어야 했다. 매직 존슨줄리어스 어빙의 시그네쳐화는 컨버스에서 제작되었다.[10] 조깅이 미국에서 유행이던 시절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아디다스가 조깅화의 출시를 망설이는 사이, 후발 주자 나이키는 조깅 열풍에 편승하여 아디다스를 추월하고 에어 조던을 출시해 농구화 시장을 평정한다. 이후의 경쟁 구도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11] 지금의 퍼포먼스.[12] 아디다스 그룹이 리복을 인수한 것도, 미국 시장에서 비교적 경쟁력을 가진 브랜드인 리복을 통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보려는 시도였다.[13] 참고로 러닝화도 부스트폼 비율에 따라 당연히 서열(?)이 나뉜다. 2017년 기준 (매니아용 말고) 대중화 라인에선 울트라부스트가 가장 부스트폼 함량율이 많고, 그 다음 퓨어부스트, 에너지부스트 이런 순. 문제는 울트라부스트의 경우 동네 아디다스 매장에선 구경하기가 상당히 힘들고, 사려면 보통 큰 매장으로 가야 되지만 여기도 가격이 20만원대 초반으로 꽤나 비싸다.[14] 물론 다른 브랜드를 애용하는 래퍼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키에어포스원 매니아인 닥터 드레.[15] 아디다스는 지금도 국대 유니폼 스폰서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나이키와의 스폰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예정대로 2019년 12월 31일 계약이 종료된다. 이로써 새 스폰서 후보로 예전부터 줄기차게 스폰서 계약을 시도해왔던 아디다스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16] 일본의 경우 아디다스 재팬에서 자체 제작한다. 국대 유니폼도 마찬가지.[17] 좀 더 자세하게보면 2014년 시즌까지는 아디다스를 신었다. 그 후 2015년 전지훈련을 보면 나이키 야구화를 신고있었지만, 이후의 실전경기에서는 '아디제로프로메탈'을 쭉 신고있다. 2015년 부상복귀 이후 몇 경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미출시된 에너지부스트 아이콘시리즈를 신었다가 다시 프로메탈로 돌아갔다.[18] 이 외에도, 롯데가 후원을 받던 시절에는 김사율, 최대성, 전준우등 대다수의 선수들이 신기도 했다.[19] 2014년 시즌에 신었던 야구화중에서 가장 많이 신었다. 아무래도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듯. 러닝화도 보면 2015년 초반까지는 에너지부스트를 신었지만, 언제 또 옮겼는지 나이키 러닝화를 신고있는 게 보였다.[20] 2015년 부터 미즈노로 옮김[21] 선수의 경우에는, 누가 계약을 했는지 추가바람[22] 참고로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에는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는데 일조하겠다며 아디다스와의 계약연장을 포기하고 부산 지역 스포츠 기업인 하드스포츠와 계약을 맺었다[23] 아디제로 등[24] 뉴발란스 스폰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25] 여담이지만 바로 전 시즌(13-14)과 다르게, 2014-15시즌부터 경기를 자세히 보면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3팀(서울 삼성, 부산 kt, 고양 오리온스)은 선수전원이 아디다스를,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팀 선수들은 거의 나이키를 신고있다.(서울SK의 경우 선수전원 나이키 착용.) 단, 전자랜드의 이현호와 울산모비스의 이대성은 각각 아디다스, 언더아머를 신고있다.[26]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남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전에서 최병철에 패한 일본의 오타 유키 선수의 팔쪽을 보면 아디다스 로고가 있기는 하나, 실제 일본 펜싱 국가대표팀은 아식스와 계약되어 있다.[27] 아디다스에서 가장 신경쓰는 클럽이라 봐도 무방하며 2019년 재계약을 맺어 2028년까지 스폰싱을 지속한다.[28]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팀에도 불구하고 아디다스와의 계약은 이번이 처음이다.[29] 이건 사실 저주라기 보다는 당연한 수순인데, 하워드와 로즈 두 선수 모두 부상 이전부터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뛰어다녔다.(플레이 타임이 긴 것은 물론 비교적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본인들 스스로 더 많이 뛰어다녔던 것이 시즌아웃의 원인이었다. 로즈의 경우 PG로는 준수한 키였지만 팀의 에이스인데다 사실상 듀얼 가드를 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뛰어야 했다.) 무게가 가벼우면 그만큼 발에 가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경량 농구화 최악의 단점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D 로즈5 부터 372g으로 다시 무거워졌다.[30] 릴라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공개전에 자신이 먼저 디자인을 공개했다.[31] 나머지 선수들은 일 터지기 전에 다른 회사로 도망갔는데, 그 중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있었다. 당장 현 대표 모델인 로즈와 하워드도 11-12 시즌 나란히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그 중에는 팀 던컨도 있는데, 아디다스에서 경량 농구화를 만들기 위해 마루타시켰다가 선수 생활 평생을 족저근막염에 시달려야 했다. 루키 시즌 던컨이 베이스라인에서 원핸드 엘리웁을 찍어대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안습[32] 데릭 로즈가 점차 인져리 프론이 되어감에 따라 시그니처가 없어진다는 소리도 나왔지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50득점도 기록하고 쏠쏠한 활약을 이어가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D로즈1.5의 디자인을 계승하는 듯 한 D로즈 10의 유출샷도 등장했고 실제로 신고 경기를 뛰기도 하였다.[33] 2019-20시즌부터 아디다스 킷을 착용하게 되는 아스날 FC 역시 계약규모나 팀의 세계적 인기를 고려한다면 이들 라인업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34] 위에 일본 마케팅 관련 문단에서 보이듯 일본은 아디다스 제팬에서 관리하지만 아디다스 제팬의 규모가 넘사벽이고 시장성이 큰지라 본사의 팀들과 함께 대우를 받으며 홍보를 받았다.[35] 부산같은 경우는 스폰서라 보기 애매한점이 있다. 그건 바로 아디다스가 부산을 후원하는 것이 아닌 부산이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사서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36] 한국선수들 중 유일하게 아디다스 본사에서 후원받는다. 또한 이 문서 상단에 걸린 광고에 무려 메시, 수아레즈(현재는 푸마로 스폰서 교체), 퍼렐 윌리엄스, 포그바, 무리뉴, 모하마드 살라, 제주스, 델리 알리, 데헤아, 베컴, 외질, 피르미누등 아디다스와 함께하는 거의 모든 유명인이 참여한 광고에 함께 출연했다.[37] 그런데 6년 뒤에 실제로 일어났다.[38] 사실 욱일기 항목에도 있지만, 서구권에선 욱일기 자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한 편이다.[39] 스포츠 마케팅의 초창기인 1950년대, 아디다스는 당시 젊은 선수들에게 무료로 고성능 운동화를 제공해주곤 했는데, 그 당시의 젊은 선수들이 각종 경기 단체의 임원으로 훌륭하게(?) 자라준 것이다.[40] 주앙 아벨란제의 FIFA 회장 당선,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IOC 위원장 당선, 현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의 FIFA 사무총장 취임,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 취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41] 물론 프로스펙스 등이 나름대로 있긴 했지만(...) 아디다스가 주목할 정도는 아니었다.[42] 가격도 주로 10만원 전후를 유지하기 때문에, 노스페이스 리즈 시절에 제일 싼 바람막이가 13만원이었던걸 생각하면 상대적으론 싼 편이다.[43] 1895년에 설립된, 현존하는 스포츠 용품 메이커들 중에서 매우 오래되고 유서깊은브랜드이다.[44] 하지만 독일연방군은 제외다. 독일연방군에선 소방화/안전화/전술화 메이커인 HAIX사의 제품을 사용한다. 그리고 2010년대 중순 이후 독일연방군 연방기관 대테러조직에서는 LOWA 사의 제품을 더 애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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