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1 13:35:33

닥터 드레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명
55위 56위 57위
에릭 클랩튼 닥터 드레 그레이트풀 데드
파일:external/www.waxpoetics.jp/dre.jpg
이름Dr. Dre (닥터 드레)
본명Andre Romelle Young
안드레 로멜레 영
국적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US_flag_48_stars.svg.png 미국
출생1965년 2월 18일 (만 [age(1965-02-18)]세)
출생지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US_flag_48_stars.svg.png 캘리포니아콤프턴

신체184cm, 108kg
배우자니콜 영 (1996~)
자녀4남 1녀 [1]
직업래퍼, 프로듀서, 사업가
데뷔그룹 : 1987년 N.W.A : N.W.A and the Posse
솔로 : 1992년 The Chronic
소속인터스코프
링크 파일:external/www.blackpressusa.com/BeatsByDreSoloLogo.jp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1. 개요2. 생애와 활동3. 디스코그래피4. 평가5. 여담6. 비판?

1. 개요

'I'm representing for them gangstas all across the world'
난 전세계의 갱스터들을 대표해
"Still hitting them corners in them low low's girl'
여전히 길거리에 로우라이더를 타고 다니지
"Still taking my time to perfect the beat'
아직도 충분한 여유를 가지며 비트를 완벽하게 하지
'And I still got love for the streets, it's the D-R-E'
아직도 거리에 대한 사랑이 있어, 나는 D-R-E
-Dr.Dre - Still D.R.E feat. Snoop Dogg 中-

Dr. Dre[2][3].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콤프턴 출신의 래퍼이며 힙합 프로듀서. 이복동생은 워런 G.

G-펑크의 선구자로 불리며[4] 전형적인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스타일을 정립한 프로듀서이다. 국내의 힙합 비애호가들에게는 어떤 헤드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한 백인 래퍼를 발굴해 낸 안목의 소유자이다.[5]

2. 생애와 활동

캘리포니아 주 콤프턴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드레를 낳았을 때 16살 이였으며, 친아버지는 술과 마약을 하고 다니고 걸핏하면 가정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는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재혼한 새아버지도 가정폭력을 휘둘렀다.

드레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고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LP판을 교체하는 일을 즐겨했으며, 그래서 글보다도 LP판을 먼저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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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월드 클래스 렉킹 크루에 영입되어 데뷔하였으며, 기가 막힌 디제잉과 잘생긴 외모로[6][7]인기를 끌었다. 그룹 내 멤버 중 한명인 DJ 옐라와 친했으며 함께 작업한 레코드를 판매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이지-E의 루슬레스 레코드로 옐라와 함께 영입되고, 사촌인 아이스 큐브와 아라비안 프린스가 합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그룹으로 악명을 떨치는 N.W.A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컴필레이션 1집 앨범이 흥행에 밀렸고 아라비안 프린스도 나가버렸으나, MC 렌[8]이 들어온 뒤 1988년 전설적인 1집 Straight Outta Compton이 발매되며 드레는 순식간에 멤버들과 함께 전설이 된다.

이지의 횡령에 빡친 뒤[9] 그룹을 나간 후엔 슈그 나이트와 함께 데스로우 레코드(Death Row Records)를 설립하고 솔로로 데뷔해서 1992년 'The Chronic' 라는 앨범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스눕 독의 데뷔 앨범의 전곡을 프로듀싱해서 스눕독을 슈퍼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데스로우 레코드에서 투팍 샤커스눕 독과 함께 90년대 중반 웨스트 코스트의 최전성기를 열어갔다. 다만 드레와 수많은 협업을 한 스눕 독과는 달리 투팍과 드레는 같은 소속사에 있었을 때 협업한 곡이 "California Love," "Can't C Me" 두 곡밖에 없다.[10] [11] 1996년 동업자 슈그와의 갈등으로 데스 로우 레코드를 탈퇴하고는 애프터매스 레코드를 설립하는데, 영입한 대표 아티스트가 바로 다름아닌 에미넴. 이 때를 기점으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2집인 2001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50 센트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는 등 힙합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오르게 된다.

1999년에 2집을 낸 뒤 무려 16년 동안 새 앨범을 발표하지 않아 3집인 Detox는 힙합계의 듀크 뉴켐 포에버로 통했었다. 사실 1집과 2집 사이 텀도 7년 정도로 엄청 길었다.

2011년에 Kush와 I Need A Doctor 싱글을 내며 올해 안으론 반드시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2~3년 주기로 똑같은 말을 번복했기 때문에 팬들은 '웃기지 마'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 Kush, 2011년 2월 I Need A Doctor[12] 를 발표함으로써 팬들의 기대를(?) 깨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음악적 휴식을 가진다며 버로우 타버렸다.

2012년에 신인 래퍼 켄드릭 라마를 발굴하고 데뷔시켜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로 인하여 그의 3집 앨범 발매 가능성은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더 게임은 그의 3집 앨범 'Detox'를 예수에 빗대면서 아무도 예수를 본 적이 없듯이 그의 3집 앨범도 마찬가지라고 디스를 날렸다.

그리고 애프터매스 레코드의 프로듀서가 말하길 Detox는 이미 폐기처분되었다고 한다.

2014년 5월 28일애플이 비츠를 인수하면서 애플의 직원이 되었다. 직책은 따로 없고 그냥 "드레."[13]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하였다. 스눕 독, 에미넴, 켄드릭 라마를 지목.

앞서 말했듯이 Detox는 폐기처분된 앨범이고 새 앨범은 Compton : A Soundtrack By Dr.Dre. 이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는 N.W.A의 전기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제작하는 동안 그 영화에 감명을 받아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드레 역시 Detox는 열심히 만들었지만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앞으로 나오지 않을 앨범이라 못박았으며, 이번 3집이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늘 그랬듯이(...) 믿기지 않았지만 앨범아트, 트랙리스트도 전부 공개되었다.

2015년 8월 7일, 마침내 3집이 발매되었으며 평가도 좋은 편이다. 거기다 판매량에서 골드를 찍었다. 드레의 전작인 The Chronic과 2001이 워낙에 명반이다보니 예전만 못하다라는 평도 없지 않지만 분명히 잘 만든 앨범이라는 평이 많다.

3. 디스코그래피

1992 1999 2015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71ECwnk1jqL._SL1432_.jpg 파일:0dUIwig.jpg 파일:external/assets.rollingstone.com/1035x1035-dre-compton-soundtrack.jpg
The Chronic 2001 Compton

4. 평가

Who you think brought you the oldies
Eazy-E's, Ice Cube's, and D.O.C's
The Snoop D-O-double-G's
And the group that said motherfuck the police
Gave you a tape full of dope beats
To bump when you stroll through in your hood

누가 그 명작들을 만들었지?
Eazy-E, 아이스 큐브, D.O.C
스눕 D-O-G-G
그리고 경찰 ㅈ까라고 외쳤던 그룹을
누가 그 쩌는 비트가 넘치는 테잎을 선보였지?
너네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틀었던것 말이야.

- Forgot About Dre

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대략 30년간 만들어 온 그만의 비트 메이킹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꾸준히 본인이 잘 하는 G-펑크 스타일의 비트를 만들다가, 2000년대 들어서 G-펑크를 조금씩 현대화시킨 스타일을 추구하더니 최근 나온 싱글들이나 (Kush, I Need A Doctor) 켄드릭 라마 등에게 프로듀싱해준 곡들은 최신 트렌드에도 잘 적응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속한 N.W.A의 두 정규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과 "Niggaz4Life"를 N.W.A의 멤버인 DJ 옐라와 함께 전곡을 프로듀싱해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아 갱스터 랩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N.W.A의 척추 역할을 했다. 또한 N.W.A를 나가서 1992년 솔로로 낸 1집 "The Chronic"은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평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클래식을 계속 만들어내는 위용을 보인다. 1999년 2집 앨범 "2001"[14] 역시 프로듀싱은 완벽의 경지이며 "Still D.R.E"와 같이 싱글로도 성공한 킬링트랙이 다수 실려있음은 물론 앨범 전체적으로도 미친 고퀄을 자랑한다. 16년만에 나온 3집 앨범 "Compton"은 전작처럼 획기적으로 새롭다거나 씬의 흐름을 바꿀 장르적 개척은 아니지만 앨범 전체의 구성이나 비트와 사운드의 퀄러티가 과연 드레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은 공통된 의견인 듯.

또한 신인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안목도 훌륭하다. 자신의 앨범 "The Chronic"에서는 당시 신인이었던 Snoop Dogg을 앨범의 주인공으로 밀어줬고, 성공했으며, 후에 스눕 독의 앨범도 프로듀싱해 성공시킨다. 에미넴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전전하고 있는 것을 드레가 듣고 스카웃해왔는데 다이아몬드 앨범(천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을 일컫는 말.)이 두 장이나 있는, 힙합에서는 유이한[15] 거물 래퍼로 탄생시켰다. 그에 이어 50 센트, 켄드릭 라마 등 엄선해서 발굴해내는 래퍼들도 하이 퀄리티를 자랑한다.

래퍼로서의 닥터 드레는 특유의 목소리와 플로우가 랩을 상당히 안정감 있게 끌어간다고 평가받지만, 본인의 주요 곡들 거의 대부분을 다른 랩퍼가 가사를 써준다. 랩은 자기가 작사한다는 힙합계의 불문율을 어긴 것인데, 이는 애초에 드레가 스스로도 진지한 래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랩하는 걸 듣고 싶어하는 팬들이 있어서 하는 것뿐이고, 자신은 비트를 프로듀싱하고 다른 래퍼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랩퍼로서의 실력은 떨어질진 몰라도 랩자체로만 보면 평균이상으로 해내기 때문에 실력이 떨어진다곤 할순없다 아이스 큐브한테 랩하지 말고 프로듀싱이나 하라고 까였다[16]Detox 앨범 작업 당시에는 루다크리스가 가사를 쓴 'OG's theme"이라는 곡이 유출되기도 했다. 일종의 가이드 버전인데 루다크리스가 닥터 드레의 스타일로 랩을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루다크리스는 본인의 트위터로 "닥터드레 스타일로 랩하는 건 재밌는 일이었어."라고 쿨하게 인정했다.
즉 MC만으로서의 역량은 보통이지만, 프로듀서이자 소속사 사장으로서는 거물 중 거물. 애초에 힙합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할 정도다. 애초에 프로듀서보다는 래퍼가 훨씬 주목받기 쉬운 것이 당연한데, 프로듀서로 이 정도 존재감을 자랑한다는 것이...

5. 여담

  • 이복형은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N.W.A 활동 도중 이복동생 타이리가 싸움에 휘말렸다가 목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타이리는 형을 상당히 존경했고 평소에 형처럼 래퍼가 되겠다고 하며 투어에 데려가 달라 했는데, 드레는 데려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꺼라면서 투어 버스 안에서 울었다고 한다.[17]
  • 암살자의 저격을 다리에 4방이나 맞고 살아남았다. 허벅지에 박힌 한 발은 10년 뒤에 제거하였다.#
  • 2000년도 냅스터 사태때 미국음반협회, 메탈리카와 이어서 3번째로 고소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가 중심에 섰기 때문에 비판도 메탈리카가 대부분 받아냈다.
  • 2011년에 찍은 I Need A Doctor 뮤비를 보면 몸을 정말 미친 듯이 만들었다. 현재 5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돈이 많다곤 하지만[18]) 계속 회춘하는 중.
  • 2012년 에미넴의 내한 콘서트에서 깜짝 출연해 The Next Episode를 불렀다. 아쉽게도 스눕 독은 같이 오지 않았다.
  • 각종 스니커를 신고 다니는 다른 랩퍼들에 비해 나이키 에어포스 원 로우 화이트만 고집한다. 2013년에 더 게임의 인터뷰를 빌자면 한번 신으면 버린다고 한다. 거의 양말 수준이라고. 매일 새삥만 신는데 본인은 이 신발을 진짜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DJ 퀵에 의하면 소속사 아티스트들을 노예처럼 다루는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더 게임의 인생사를 다룬 다큐에 의하면 프로듀싱 땐 무진장 늦은 시간이 돼서야 스튜디오에 온다고 한다.
  • 2014년 1년 동안 가장 돈을 많이 번 아티스트로 기록상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원래도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였지만 비츠를 애플이 인수하면서 준 돈 (3조원 본인한테 6400억) 때문에 압도적 1위가 된 것. 현금자산은 8000~9000억대라고 한다. 허나 부동산,레이블,사업 등 으로 총재산은 1조원을 훌쩍넘긴다.
  • 이희호 여사가 닥터 드레와 결혼한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70대 블로거가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19] 사실 2016년 말부터 그 뜬금없음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던 가짜 뉴스였다.
  • 이 뉴스를 보면 드레가 detox를 완전 폐기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6. 비판?

소리나오는 머리띠를 만들었다

드레는 물론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건 사실이지만 몇가지 비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걸 꼽자면 G-Funk의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지 펑크는 이전에 해왔던 (혹은 해왔다던) 아티스트들이 여럿 존재한다. 드레의 명성의 시작은 물론 N.W.A 지만 그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커나간게 지펑크를 선보인 대작 The Chronic 인걸 볼때 몇몇 래퍼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

그리고 또 하나는 작곡자 표기에 관한 일인데 그의 첫 정규 앨범인 크로닉과 자신이 프로듀스한 명작 Snoop Doggy Dogg (지금은 그냥 스눕독) 의 Doggystyle 역시 전 곡 프로듀스가 닥터 드레로 되있지만 실제론 데쓰로우 소속 아티스트인 Daz [20] 가 만든 곡들이 표기가 드레로 되어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들은 Daz가 만든 트랙들이 있다고 (혹은 전부) 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99년도 발매작 2001 역시 많은 프로듀서 들이 곡을 만들었지만 [21] 모든 곡이 드레 프로듀스로 되어있다.

그러나 프로듀서=작곡가라는 잘못된 정의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어서 그렇지, 드레는 사운드를 조율하고, 가장 최상의 퀄리티로 끌어올리는 프로듀서의 일을 잘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수많은 래퍼들이 말 했듯이 드레의 사운드에 대한 감각은 천부적이며 다른 작곡가가 써온 곡도 드레의 손과 귀를 거치고 나면 아예 다른 수준의 곡이 되어있다고 할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22] 또, 우리나라가 곡의 주인을 작곡가, 작사가 + 가수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경우 프로듀서를 곡의 진짜 주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작곡, 작사를 안하는 프로듀서를 전면으로 내새우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있다.

프로듀서라는 이름이 작곡가 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책임자 혹은 편곡자로 여겨진다면 표기 자체가 아예 틀렸다곤 할 수 없다.


[1] 참고로 2번째 아들은 약물과다 복용으로 2008년 사망(장남은 Curtis Young이라는 1981년생 랩퍼)[2] Doctor Dre라고 쓰는 경우가 가끔 있으나,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직 MTV VJ이자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안드레 브라운'이 Doctor Dré라는 예명을 쓰기 때문.[3] 여담으로 닥터 드레에서 닥터(Dr)는 자신의 이름이자 애칭인 Dre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박사나 의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근데 닥터 드레 본인도 이후 설명할 월드 클래스 렉킹 크루 시절 이래로(자신의 이름을 알린 이 시절 곡인 Surgery가 수술이란 뜻이다.) 가끔씩 자신을 의사로 비유하는 언급을 집어넣곤 한다. 초기에는 수술복을 입고 디제잉을 하기도 했다.[4] 다만 현재는 G-펑크를 관뒀다. 본인의 말로는 시대착오적이고 용도폐기된 음악이라서 그렇다고.[5] 실제로 에미넴이 자신의 곡 'Rap God'의 가사에서 자신을 키운 사람 중 한명을 닥터 드레라고 언급한다.여담으로, 닥터 드레 뿐만이 아니라 라킴, 투팍, N.W.A 등도 언급이 된다. 물론 에미넴 곡 중에서 닥터 드레를 언급한 곡은 Rap God 말고도 많다. 근데 닥터 드레가 에미넴 본인을 키운 사람이니 곡에서 자주 언급되는 게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6] 드레의 옛날사진을 보면 지금처럼 주름도 없고 얼굴형태도 지금보다는 갸름했다.[7] 이때 렉킹 크루의 유일한 LP에 담긴 드레의 흰 옷을 입은 사진은 본의 아니게 후술할 N.W.A 출신 멤버들과의 디스전에서 놀림거리로 활용된 흑역사가 있다.(...)[8]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The D.O.C.는 N.W.A의 멤버가 아니다.[9] 현재는 이지 이보다는 매니저인 제리 헬러가 횡령을 주도했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10] 여기에는 드레가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데스로우 레코즈를 나갔기 때문도 있다. 실제로 드레가 데스로우 레코즈를 탈퇴한 후에 나온 투팍의 곡 "To live and die in L.A."를 들어보면 "California love pt. 2 without gay ass Dre"("병신새끼 드레가 빠진 California love 후속곡이라구")라고 아웃트로에서 조그맣게 드레를 디스하기도 한다.[11] 물론 이 둘이 워낙에 명곡이여서 사람들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도 있다. 특히 California Love는 아직도 캘리포니아 라디오에서 심심하면 나올 정도로 사랑받는 노래. 아무래도 드레와 투팍이 각각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프로듀서와 래퍼다 보니 연상작용이 더 강한 것도 있을 테고.[12] 스카일라 그레이, 에미넴이 피처링[13] OS X 새 버전인 '요세미티'의 아이폰 연동 통화 기능을 드레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연했다.[14] 앨범명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원래 앨범명은 'Chronic 2000' 이었지만, 적대관계에 있던 전 소속사 CEO 슈그 나이트가 드레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그 앨범명으로 드레를 제외한 자사 아티스트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드레가 쓸 수 없게 'Chronic' 이라는 이름에 대한 판권도 같이 산 건 덤. CEO가 너무 찌질하다 그럼에도 드레는 "내 비트는 너네들 보다 2년은 앞서있다"고 드립을 치며 앨범을 '2001'으로 발매했다. 'Chronic'에 미련이 남았는지 그대로 넣는 대신에 시각화를 시켜 대마초 문양을 넣는 센스를 발휘한다.[15] 에미넴 말고 투팍도 다이아몬드 앨범이 2장이 있다.[16] 아이스 큐브가 NWA를 탈퇴하고 디스전에 엮여 있을 때였다. No Vaseline이라는 노래에서, "Ayo, Dre, stick to producin'!"이라는 구절.[17]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왔다.[18] 뮤비에서 페라리를 부숴먹었다.[19] 왜 힙합문화와 거리가 먼 노인이 닥터드레를 운운한건지 말이 되지 않을법하나, 일베저장소 정게를 하다가 다른 게시판에서 우연히 접한 드립을 응용하여 가짜뉴스로 확대재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분석기사.[20] 그 역시 전설적인 웨스트 코스트 랩 그룹인 Dogg Pound의 멤버이며 랩과 프로듀싱에서 탁월한 감각을 뽐내기로 유명한 베테랑이다[21] 대표적으로 Still D.R.E의 피아노 스트링은 스캇 스토치의 작품이다, 다만 이 앨범엔 드레와 함께 Mel-Man 역시 표기되어있다.[22] 악보를 조금이라도 볼 줄 안다면 알겠지만 음악은 음정뿐만 아니라 빠르기, 박자, 강세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구성되며, 여러 곡이 결합되어 있을 경우 각각의 비중을 얼마나 분할하냐에 따라 곡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즉 드레의 능력은 음악의 구성 요소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