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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음악 심볼.jpg 음악 | ||
입성날짜 | 2024년 3월 19일 | ||
위치 | 6840 Hollywood Blv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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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C0C0><colcolor=#000> 닥터 드레 Dr. Dre[4][5] | |||
본명 | 안드레 로멜 영 (Andre Romelle Young) | ||
출생 | 1965년 2월 18일 ([age(1965-02-18)]세) | ||
캘리포니아 주 콤프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래퍼, 프로듀서, 배우, 기업인 | ||
서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0C0C0 30%, #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C0C0C0><colcolor=#000> 부모 | 아버지 시어도어 영, 어머니 베르나 영 | |
자녀 | 커티스 영(1981~)[6] 라 타냐 다니엘 영(1983~) 안드레 영 주니어(1988~2008)[7] 마르셀 영(1991~) 트라위스 영 (1997~) 트룰리 영(2001~) 타이라 영 | ||
친인척 | 워런 G(의붓동생) | ||
학력 | 뱅가드 주니어 하이스쿨 센티니얼 하이 스쿨 프레몬트 하이 스쿨 | ||
신체 | 185cm, 108kg | ||
혈통 | 아프리카계 미국인 | ||
별명 | G-Funk의 아버지 | ||
종교 | 개신교 | ||
활동 | 1985년 ~ 현재 | ||
악기 | 보컬, 신디사이저, 드럼, 샘플러 | ||
장르 | 갱스터 랩, 지펑크 | ||
소속 그룹 | 월드클래스 레킹 크루(1985~1986) | ||
N.W.A(1987~1991)[8] | |||
소속사 | 애프터매스 | ||
재산 | 8억 2,000만 달러 (한화 약 9,257억 원 이상)[9]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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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미국 힙합의 황금기 시절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핵심 인물로서[10] N.W.A 멤버, The Chronic 발매, 스눕 독[11]과 투팍의 곡들 프로듀싱, G-funk[12] 장르의 부흥 등의 굵직한 업적을 남겼고, 이후로도 무명의 백인 래퍼 에미넴[13]을 비롯해 50 센트, 더 게임[14], 켄드릭 라마를 발굴해 메이저로 데뷔시키는 등 힙합 장르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에게는 Still D.R.E., The Next Episode의 비트와 헤드폰 Beats by Dr. Dre로 잘 알려져 있다.
2. 생애
월드클래스 레킹 크루 시절의 닥터 드레 |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고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LP판을 교체하는 일을 즐겨했던 드레는 1985년 월드 클래스 레킹 크루에 영입되어 데뷔하였고, 기가 막힌 디제잉과 잘생긴 외모로[15][16] 인기를 끌었다. 그룹 내 멤버 중 한명인 DJ 옐라와 친했으며 함께 작업한 레코드를 판매한 적도 있다.
그러다 이지 이의 루스리스 레코드로 DJ Yella와 함께 영입되었고, 사촌인 아이스 큐브와 아라비안 프린스가 합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그룹으로 악명을 떨치는 N.W.A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컴필레이션 1집 앨범이 흥행에 밀렸고 아라비안 프린스도 나가버렸으나, MC 렌[17]이 들어온 뒤 1988년 전설적인 1집 Straight Outta Compton이 발매되며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게 된다.[18]
그러나 프로듀서로서 여러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음에도 루스리스 레코드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지는 수익이 터무니 없이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드레는[19] 슈그 나이트와 함께 데스로우 레코드(Death Row Records)를 설립하고 1992년 The Chronic라는 앨범으로 솔로로 데뷔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어 스눕 독의 데뷔 앨범 Doggystyle의 전곡을 프로듀싱해서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투팍 샤커, 스눕 독과 함께 90년대 중반 웨스트 코스트의 최전성기를 열어갔다.[20][21][22]
1996년 동업자 슈그와의 갈등으로 데스 로우 레코드를 탈퇴하고는 애프터매스 레코드를 설립하는데, 이때 영입한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바로 에미넴. 이 때를 기점으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였고 1999년 2집인 2001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이어 50 센트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아 성공시키는 등 다시금 힙합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3집으로 일찌감치 예정했던 'Detox'는 수십년이 지나도 발표하지 않아 힙합계의 듀크 뉴켐 포에버로 통했다. 사실 1집과 2집 사이 텀도 7년 정도로 엄청 길었지만 그걸 능가했다.
1996년 5월 25일에 니콜 플리츠커와 결혼하였지만 2021년 11월 18일 이혼을 하였다.
2010년 10월 Kush, 2011년 2월 I Need A Doctor[23] 싱글을 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론 3집을 반드시 내겠다고 했지만, 이전에도 2~3년 주기로 똑같은 말을 번복했기 때문에 팬들은 '웃기지 마'라는 반응. 역시나 또다시 음악적 휴식을 가진다며 버로우 타버렸다.
2012년 신인 래퍼 켄드릭 라마를 애프터매스에 영입한 이후 발매한 정규 2집, good kid, m.A.A.d city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로 인하여 그의 3집 앨범 발매 가능성은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더 게임은 'Detox'를 예수에 빗대면서 아무도 예수를 본 적이 없듯이 그의 3집 앨범도 마찬가지라고 디스를 날렸다.
그리고 애프터매스 레코드의 프로듀서가 말하길 Detox는 이미 폐기처분되었다고 한다.
2014년 5월 28일에 Apple이 비츠를 인수하면서 Apple의 직원이 되었다. 직책은 따로 없고 그냥 "드레"[24]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하였다. 스눕 독, 에미넴, 켄드릭 라마를 지목.
새 앨범 소식을 발표했다. 이름은 'Compton : A Soundtrack By Dr.Dre' 라고 한다. 이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는 N.W.A의 전기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제작하는 동안 영감과 감명을 받아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Detox는 열심히 만들었지만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앞으로 나오지 않을 앨범이라 본인이 직접 못박았으며, 이번 3집이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늘 그랬듯 믿기지 않았지만 앨범아트, 트랙리스트도 전부 공개되었다.
2015년 8월 7일, 마침내 3집 Compton이 발매되었다. 평가도 좋은 편이고 판매량에서도 골드를 찍었다. 드레의 전작인 The Chronic과 2001이 워낙에 명반이다보니 예전만 못하다는 평도 없지 않지만 분명히 잘 만든 앨범이라는 평이 많다.
2020년, 21년에는 게임 GTA 온라인에 본인이 직접 모델, 성우로 출연하였다. 2020년 카요 페리코 습격 DLC에서는 맛보기로 잠깐 출연 했었는데, 2021년 청부 계약 DLC에서는 스토리의 핵심인물로 격상해서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2021년 1월 6일 뇌동맥류 판정을 받고 병원에 이송되며 팬들이 많이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미스터 포터가 "닥터 드레는 괜찮아 지고 있다." 라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이후 1월 17일 아이스 T가 "닥터 드레는 회복을 하고 퇴원했다." 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쇼 무대에 Snoop Dogg, 50 Cent, Mary J. Blige, Kendrick Lamar, Eminem과 함께 섰다.[25]
3. 음반
3.1. 정규
1992 | 1999 | 2015 |
The Chronic | 2001 | Compton[26] |
3.2. 싱글
3.2.1. 빌보드 핫 100 1위
- California Love[27] (1995)
- No Diggity[28] (1996)
- Crack A Bottle[29] (2009)
3.2.2. 빌보드 핫 100 2위
- Nuthin' but a ‘G’ Thang (Feat. Snoop Dogg) (1993)
3.2.3. 빌보드 핫 100 3위 ~ 10위
- Fuck wit Dre Day (And Everybody's Celebratin') (Feat. Snoop Dogg) (1993)
- Keep Their Heads Ringin' (From "Friday") (1995)
4. 프로듀싱 대표곡
- Eazy-E - Boyz-n-the-Hood (1987)
- J.J. Fad - Supersonic (1988), Way Out (1988), Is It Love (1988)
- The D.O.C. - It's Funky Enough (1989), The D.O.C. & The Doctor (1989)
- Michel'le - No More Lies (1989), Nicety (1990), Something In My Heart (1990)
- Above the Law - Murder Rap (1990), Untouchable (1990)
- Snoop Doggy Dogg - Who Am I (What's My Name)? (1993), Gin and Juice (1994)
- The Lady of Rage featuring Snoop Doggy Dogg - Afro Puffs (1994)
- 2Pac featuring Dr. Dre and Roger Troutman - California Love (1995)
- Eminem - My Name Is (1999), The Real Slim Shady (2000), Just Lose It (2004), Ass Like That (2005), We Made You (2009), 3 a.m. (2009)
- Snoop Dogg featuring Xzibit and Nate Dogg - Bitch Please (1999)
- Xzibit - X (2000)
- Snoop Dogg featuring Master P, Nate Dogg, Butch Cassidy and Tha Eastsidaz - Lay Low (2001)
- Eve featuring Gwen Stefani - Let Me Blow Ya Mind (2001)
- Mary J. Blige - Family Affair (2001)
- Busta Rhymes - Break Ya Neck (2001)
- Knoc-turn'al featuring Dr. Dre and Missy "Misdemeanor" Elliott - The Knoc (2002)
- 50 Cent - In Da Club (2003), Straight to the Bank (2007), I Get It In (2009)
- Eve - Satisfaction (2003)
- Obie Trice featuring Nate Dogg - The Set Up (You Don't Know) (2004)
- Mary J. Blige featuring Eve - Not Today (2004)
- The Game featuring 50 Cent - Westside Story (2004), How We Do (2004)
- Gwen Stefani featuring Eve - Rich Girl (2004)
- 50 Cent feat. Mobb Deep - Outta Control (Remix) (2005)
- JAY-Z featuring Chrisette Michele - Lost One (2006)
- Eminem, Dr. Dre, 50 Cent - Crack a Bottle (2009)
- Eminem (feat. Dr. Dre) - Old Time's Sake (2009)
- 50 Cent featuring Dr. Dre and Alicia Keys - New Day (2012)
5. 평가
Who you think taught you to smoke trees?
Who you think brought you the oldies?
Eazy-E's, Ice Cube's, and D.O.C.'s
The Snoop D-O-double-G's
and the group that said mother-"Fuck Tha Police"
Gave you a tape full of dope beats
to bump when you stroll through in your hood
누가 마리화나 피우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해?
누가 그 명작들을 만들었지?
Eazy-E, 아이스 큐브, D.O.C.
스눕 D-O-G-G
그리고 경찰 좆까라고 외쳤던 그룹을
누가 그 쩌는 비트가 넘치는 테잎을 선보였지?
너네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틀었던것 말이야.
Forgot About Dre 중
자신이 속한 N.W.A의 두 정규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과 "Niggaz4Life"를 N.W.A의 멤버인 DJ 옐라와 함께 전곡을 프로듀싱해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아 갱스터 랩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N.W.A의 척추 역할을 했다. 또한 N.W.A를 나가서 1992년 솔로로 낸 1집 "The Chronic"은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평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클래식을 계속 만들어내는 위용을 보인다. 1999년 2집 앨범 "2001"[30]도 "Still D.R.E."와 같이 싱글로도 성공한 킬링 트랙이 다수 실려있음은 물론 앨범 전체적으로도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16년 만에 나온 3집 앨범 "Compton"은 전작처럼 획기적으로 새롭다거나 씬의 흐름을 바꿀 장르적 개척은 아니지만, 앨범 전체의 구성이나 사운드의 퀄리티는 과연 드레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인 듯.
또한 신인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안목도 훌륭하다. 소위 말하는 닥터 드레 사단으로 분류되는 스눕 독, 에미넴, 50 센트, 켄드릭 라마[31]는 모두 힙합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래퍼 중 하나로 꼽힌다. 자신의 앨범 "The Chronic"에서는 당시 신인이었던 스눕 독을 앨범의 주인공으로 밀어줬고 성공했으며, 후에 스눕 독의 앨범도 프로듀싱해 성공시킨다. 에미넴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전전하고 있는 것을 드레가 듣고 스카웃해왔는데 다이아몬드 앨범(천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을 일컫는 말)이 세 장[32]이나 있는, 힙합에서는 유일무이한 거물로 성장시켰다. 지금도 백인 래퍼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고, 이런 시선이 더 극심했던 당시에는 드레가 프로듀싱한다면 수많은 래퍼들이 줄을 설 텐데 그 많고 많은 래퍼 중에 백인 래퍼인 에미넴을 선택하자 그의 지인과 회사 사람들이 모두 드레를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드레는 "내가 모든 커리어를 걸겠다. 반드시 얘를 성공시킬 것이다."라고 강단 있게 말하며 주변 사람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최선을 다해 프로듀싱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힙합 뮤지션 에미넴으로 완성되며 드레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최정점으로 이끌었다. 그에 이어 50 센트, 켄드릭 라마를 메인스트림으로 처음 진출시키는 등 그가 발굴해내는 래퍼들도 나중에는 업계의 거물이 되며 그의 평가를 더더욱 끌어올렸다.[33]
래퍼로서의 드레는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가 곡을 안정적으로 이끌지만 주요 곡들 대부분이 다른 래퍼가 작사한 곡이기에 래퍼로서의 평가는 프로듀서로 받는 평가만큼 좋지 못하다. 랩은 자기가 작사한다는 힙합의 불문율을 어긴 것인데 이는 드레 본인이 자신을 진지한 래퍼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이 랩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랩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많으니 가끔 하는 것이고 자신은 곡을 프로듀싱하고 다른 래퍼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가사를 본인이 작사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래퍼로서의 평가는 높지 않지만 실력을 보면 평균 이상으로 해내기에 실력이 떨어지는 래퍼는 아니다.[34] Detox 앨범 작업 당시에는 루다크리스가 가사를 쓴 'OG's theme"이라는 곡이 유출되기도 했다. 일종의 가이드 버전인데 루다크리스가 드레의 스타일로 랩을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루다크리스는 본인의 트위터로 "닥터 드레 스타일로 랩하는 건 재밌는 일이었지."라고 쿨하게 인정했다.
드레의 실력은 1990년대를 기준으로 보면 평균이고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은 상위권이다. 최근의 힙합은 래퍼의 실력 이상으로 다른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듀서이자 제작자로서는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물이다. 프로듀서보다는 래퍼가 주목받기 쉬운 점이 힙합의 섭리인데 프로듀서로 인기 래퍼 못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드레의 능력을 입증하는 확실한 지표이다.
6. 매체
- 2024 파리 올림픽: 폐회식의 차기 개최국 공연에 스눕 독과 함께 출연해 Drop It Like It's Hot과 The Next Episode를 불렀다.
- Grand Theft Auto Online: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7. 오해
보통 드레는 G-Funk의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지 펑크는 이전에 해왔던 (혹은 해왔다던) 아티스트들이 여럿 존재한다.[35] 드레의 명성의 시작은 물론 N.W.A지만 그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커나간게 G-Funk를 선보인 대작 The Chronic인 걸 볼때 몇몇 래퍼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드레가 G-funk의 '창시자'는 아닐지라도 G-Funk의 부흥과 유행을 선도한 '선구자'라고 하기엔 충분하다.그리고 또 하나는 작곡자 표기에 관한 일인데 그의 첫 정규 앨범인 크로닉과 자신이 프로듀스한 명작 Snoop Doggy Dogg(지금은 그냥 스눕 독)의 Doggystyle 역시 전 곡 프로듀스가 닥터 드레로 돼있지만 실제론 데쓰로우 소속 아티스트인 Daz Dillinger[36]가 만든 곡들이 표기가 드레로 되어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들은 Daz가 만든 트랙들이 있다고 (혹은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1999년 발매작 2001 역시 많은 프로듀서들이 곡을 만들었지만[37] 모든 곡이 드레 프로듀스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는 '프로듀서=작곡가'라는 잘못된 정의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기에 생긴 일이다. 드레는 사운드를 조율하고, 가장 최상의 퀄리티로 끌어올리는 프로듀서의 일을 잘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제작으로 비유하자면 드레는 감독과 연출을 맡는 것이다. 수많은 래퍼들이 말 했듯이 드레의 사운드에 대한 감각은 천부적이며 다른 작곡가가 써온 곡도 드레의 손과 귀를 거치고 나면 아예 다른 수준의 곡이 되어있다고 할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38] 또, 우리나라가 곡의 주인을 작곡가, 작사가 + 가수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경우 프로듀서를 곡의 진짜 주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작곡, 작사를 안하는 프로듀서를 전면으로 내새우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있다.
프로듀서라는 이름이 작곡가 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책임자 혹은 편곡자로 여겨진다면 표기 자체가 아예 틀렸다곤 할 수 없다. 실제로 힙합의 유행을 비롯해서 비트 중심의 음악이 대세가 되면서 작곡과 편곡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고, 작사-작곡-편곡이라는 전통적인 저작표기에서 작곡자에 다수의 이름이 올라가더라도 편곡자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로듀서가 이름을 올린다.
8. 여담
- 이복형은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N.W.A 활동 도중 이복동생 타이리가 싸움에 휘말렸다가 목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타이리는 형을 상당히 존경했고 평소에 형처럼 래퍼가 되겠다고 하며 투어에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드레는 투어에 데려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면서 투어 버스 안에서 오열했다.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왔다.
- 괴한의 총격으로 다리에 총알 4발을 맞았지만 살아남았다. 슈그 나이트의 소행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괴한의 정체와 누가 그랬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허벅지에 박힌 한 발은 10년 뒤에 제거하였다.#
- 2011년에 찍은 I Need A Doctor 뮤비를 보면 몸을 정말 미친 듯이 만들었다. 현재 5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춘하는 중.
- 2012년 에미넴의 내한 콘서트에서 깜짝 출연해 The Next Episode를 불렀다. 아쉽게도 스눕 독은 같이 오지 않았다.
- 각종 스니커즈를 신고 다니는 다른 랩퍼들에 비해 나이키 에어 포스 1 로우 화이트만 고집한다.[39] 2013년에 더 게임의 인터뷰에서는 한번 신으면 버린다고 한다. 거의 양말 수준이라고... 당연히 아무리 드레가 부자여도 허풍일 가능성이 높다. 매일 새 상품만 신는데 본인은 이 신발이 진짜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2014년 1년 동안 가장 돈을 많이 번 아티스트로 기록상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원래도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였지만 비츠를 애플이 인수하면서 준 돈(3조원 본인한테 6400억) 때문에 압도적 1위가 된 것이다. 현금자산은 8000~9000억대라고 한다. 허나 부동산, 레이블, 사업 등으로 총재산은 1조원을 훌쩍넘긴다.
- 대한민국에서는 닥터 드레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결혼한다는 말도 안되는 가짜 뉴스가 돈 적이 있다. 후술하듯이 이희호와 닥터 드레의 나이 차이는 무려 43살로 이희호의 아들 김홍걸보다도 어린데다, 인간적으로도 전혀 연관점이 없는데 오히려 그 뜬금없음으로 인해 2016년 말부터 유명세를 탔다. 최초 유포자는 일베 내의 한 유저로 정확히 누군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40] JTBC의 정치부회의와 차이나는 클라스 52화에서 다룬 내용인데, 언론사 명칭이 메갈리아+데일리안을 합성한 것이기도 하며 아예 기사에 MC무현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가짜 뉴스스러운 분위기를 많이 풍기지만 네이버 연관검색어에 올라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진짜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듯 하다. 이 가짜 뉴스를 퍼트린 70대 유포자는 명예훼손죄로 500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결혼 같아요 냄새가 솔솔 납니다!(생략)'라는 등 허위 내용이 기재된 글을 위 블로그 자유게시판에 게시하여 불특정 다수의 회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해자 E과 유족인 피해자 G가 관리하는 비자금이 없고, 피해자 G가 위 미국가수와 결혼할 예정이다는 등의 내용도 전혀 사실이 아님을 피고인이 잘 알고 있었다. 이로써 피고인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인 피해자 E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피해자 G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2017고단1580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령의 영부인인 이희호와 해외 유명 뮤지션 닥터 드레가 재혼한다는 상황부터가 어처구니가 없는데, 거기에 루머 유포자가 70대의 고령자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베를 포함한 전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집어놓았다.[41] 닥터 드레가 에미넴의 스승격이기 때문에 축가는 에미넴이 부르고, 또 닥터 드레는 헤드폰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혼수는 헤드폰이냐고 사람들이 댓글로 비아냥거렸다. 한 기사도 닥터 드레가 이희호가 아닌 어머니와 투샷을 찍었다고 제목으로 간접적으로 비아냥거렸다. 미국 유명 연예인과 연관된 사건이다 보니 해외 힙합 뉴스 사이트에 소개되었고, 코리아 타임즈같은 영자신문을 통해 CNBC와 BBC에까지 보도되었다. CNBC와 BBC 둘 다, 한국인들이 비아냥거린 것에 한술 더 떠서 이희호가 닥터 드레의 팬인지는 알 수 없다는 식으로 기사 하단에 적었다. 미국의 음악 잡지 빌보드도 둘이 춤출 때 댄스곡으로 닥터 드레의 곡 중 'Let's Get High'나 'Still DRE'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적었다.
사실 70대 노인이 닥터 드레를 알고 있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기에, 처음에는 손자나 아들이 올린 걸 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한집에 사는 할아버지(아버지)가 덤터기 쓴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였다. 할아버지(아버지) 입장에서는 살만큼 살았고 또 살 날도 얼마 안 남은 자신과 달리,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손자(아들)가 이 일로 전과라도 생기면 여생에 발목이 잡힐 테니, 주소가 같은 것을 악용하여 스스로 덤터기를 쓴 게 아니겠냐는 것. 하지만 뜻밖에도 실제로 70대 노인이 유포한 것이 맞았는데, 다른 젊은 유저가 일베에 올린 장난글에 제대로 낚여서[42] 앞뒤 확인도 없이 그대로 퍼뜨린 것이였다. 실소가 절로 나올 정도로 황당한 스캔들 상대와 루머 유포자가 70대 고령이라는 점에서 가짜 뉴스계의 레전드로 유머 사이트 등에서 종종 회자된다. 닥터 드레는 이희호에게는 완전히 자식뻘이다. 이희호의 삼남 김홍걸이 1963년 생이고, 닥터 드레가 1965년 생이니 실제로 아들보다도 2살 어리다.
- 이 뉴스를 보면 드레가 detox를 완전 폐기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 칸예 웨스트의 발매 취소 앨범 Jesus Is King: The Dr. Dre Version의 작업에 참여한걸로 알려졌다! 둘의 만남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기에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주목을 받았으나 풀 앨범이 유출된 현재는 JIK보다는 낫지만 대체로 애매하다는 평을 받고있다.
[1] 이 중 엔지니어나 프로듀서로서 받은 상은 4개[2] 엔지니어 자격으로 받은 상[3] 퍼포머로서 수상.[4] 닥터(Dr)는 이름 Andre의 애칭인 Dre를 이용한 말장난이지, 박사나 의사 자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물론 본인도 월드 클래스 렉킹 크루 시절 이래로(자신의 이름을 알린 이 시절 곡인 Surgery가 수술이란 뜻이다.) 가끔씩 자신을 의사로 비유하는 언급을 집어넣곤 한다. 초기에는 수술복을 입고 디제잉을 하기도 했다.[5] 참고로 'Doctor Dre'라고 쓰는 경우가 가끔 있으나, 전직 MTV VJ이자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안드레 브라운'이 Doctor Dré라는 예명을 쓰기 때문에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6] 아버지 처럼 래퍼로 활동 중이다.[7]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인해 2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8] 재결성 1999년~2002년, 2015년, 2016년[9] 출처. 2014년 Apple에 Beats를 30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재산 대부분을 축적했다.[10] 당시 소속사는 데스 로우 레코즈로 스눕 독, 투팍을 배출하고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힙합 레이블 중 하나로 꼽힌다.[11] 스눕 독의 데뷔 앨범 'Doggystyle'의 전 곡을 드레가 프로듀싱했다.[12] 다만 현재는 G-funk를 관뒀다. 본인의 말로는 시대착오적이고 용도폐기된 음악이라서 그렇다고 한다.[13] 실제로 에미넴이 자신의 곡 'Rap God'의 가사에서 자신을 키운 사람 중 한명을 닥터 드레라고 언급한다. 닥터 드레 뿐만이 아니라 라킴, 투팍, N.W.A 등도 언급이 된다. 물론 에미넴 곡 중에서 닥터 드레를 언급한 곡은 Rap God 말고도 많다.[14] 더 게임의 데뷔 앨범 'The Documentary'의 대부분의 곡을 드레가 프로듀싱했다.[15] 드레의 옛날사진을 보면 지금처럼 주름도 없고 얼굴형태도 지금보다는 갸름했다.[16] 이때 렉킹 크루의 유일한 LP에 담긴 드레의 흰 옷을 입은 사진은 본의 아니게 후술할 이지 이와의 디스전에서 놀림거리로 활용된 흑역사가 있다.[17]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The D.O.C.는 N.W.A의 멤버가 아니다.[18]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앨범의 타이틀인 Straight Outta Compton에서 드레는 래핑을 하지 않았다. 이 당시만 해도 DJ Yella와 같이 프로듀싱을 주로 도맡아 했기 때문. 사실 라인이 아예 없는게 아닌데, 후렴구에서 "City of Compton"이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드레다.[19] 매니저이던 제리 헬러의 횡령이 있었다.[20] 다만 수많은 협업을 한 스눕 독과는 달리 투팍은 같은 소속사에 있었음에도 협업한 곡이 "California Love", "Can't C Me" 두 곡밖에 없다. 여기에는 드레가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데스로우 레코즈를 나갔기 때문도 있다. 실제로 드레가 데스로우 레코즈를 탈퇴한 후에 나온 투팍의 곡 "To live and die in L.A."를 들어보면 "California love pt. 2 without gay ass Dre"("병신새끼 드레가 빠진 California love 후속곡이라구")라고 아웃트로에서 깨알같이 드레를 디스하기도 했고, 같은 앨범의 명곡인 Toss it up 에서는 드레를 데스로우를 배반한 호모새끼라고 부르며 더 강렬하게 디스하기도 했다.[21] 사실 이 둘은 애초에 사적으로 그다지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고 하며, 드레가 스눕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길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서로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졌다고 한다.[22] 물론 이 둘이 워낙에 명곡이어서 사람들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도 있다. 특히 California Love는 아직도 캘리포니아 라디오에서 심심하면 나올 정도로 사랑받는 노래. 아무래도 드레와 투팍이 각각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프로듀서와 래퍼다 보니 연상작용이 더 강한 것도 있을 테고.[23] 스카일라 그레이, 에미넴이 피처링.[24] OS X Yosemite의 iPhone 연동 통화 기능을 드레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연했다.[25] Anderson Paak이 드럼세션으로 깜짝 출연.[26] Grand Theft Auto V 트레일러에서도 로고가 나오는 장면이 앨범 커버와 비슷하다.[27] 2Pac의 싱글을 Roger Troutman과 함께 피쳐링.[28] Blackstreet의 싱글을 Queen Pen과 함께 피쳐링.[29] 에미넴의 싱글을 50 Cent와 함께 피쳐링.[30] 앨범명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원래 앨범명은 'Chronic 2000' 이었지만, 적대 관계에 있던 전 소속사 CEO 슈그 나이트가 드레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그 앨범명으로 드레를 제외한 자사 아티스트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드레가 쓸 수 없게 'Chronic' 이라는 이름에 대한 판권도 같이 산 건 덤. 그럼에도 드레는 내 비트는 너네들보다 2년은 앞서있다는 드립을 치며 앨범명을 '2001'으로 발매했다. 'Chronic'에 미련이 남았는지 그대로 넣는 대신에 시각화를 시켜 대마초 문양을 넣는 센스를 발휘했다.[31] 이들은 또 다른 드레 사단의 인원이자 R&B 가수인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모두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연하여 훌륭한 공연을 선보였다.[32] The Marshall Mathers LP, The Eminem Show, Curtain Call: The Hits[33] 켄드릭 라마의 두 번째 앨범이자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온 뒤 첫 앨범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드레가 생각하기에 이미 켄드릭 라마는 래퍼는 완성에 가깝다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본인이 프로듀서로써 끌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켄드릭의 생각을 여과없이 완벽하게 앨범에 녹여낼 수 있도록 저스트 블레이즈, 힛보이, 퍼렐 윌리엄스 같은 업계의 거물들을 프로듀서로 이어주고 여러 아티스트를 피처링으로 섭외할 때나 음악 외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케팅 같은 것에만 도움을 줬을 뿐이지 음악적인 내용에는 조금도 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선택은 GKMC의 놀라운 성공으로 이어지며 그의 선구안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34] 물론 가끔 까이긴 한다. 대표적으로 아이스 큐브의 디스가 있는데, 아이스 큐브가 NWA를 탈퇴하고 드레와 디스전에 엮여있을 때였다. 정확히는 No Vaseline이라는 노래에서 "야 드레! 넌 입닫고 프로듀싱이나 해"라는 구절.[35] 대표적으로 힙합 그룹 Above the Law의 리더 Cold 187um과 G-funk의 명명자 Laylaw 등이 있다.[36] 그 역시 전설적인 웨스트 코스트 랩 그룹인 Dogg Pound의 멤버이며 랩과 프로듀싱에서 탁월한 감각을 뽐내기로 유명한 베테랑이다. 투팍과 스눕 독의 2 of Amerikkka's Most Wanted를 작곡하였다.[37] 대표적으로 Still D.R.E.의 피아노 스트링은 스캇 스토치의 작품이다. 다만 이 앨범엔 드레와 함께 Mel-Man 역시 표기되어있다.[38] 악보를 조금이라도 볼 줄 안다면 알겠지만 음악은 음정뿐만 아니라 빠르기, 박자, 강세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구성되며, 여러 곡이 결합되어 있을 경우 각각의 비중을 얼마나 분할하냐에 따라 곡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즉 드레의 능력은 음악의 구성 요소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이다.[39] 다만 다른 색상을 신기도 하는데 56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는 검은색을 착용했다. 아마도 코디를 올블랙으로 맞출 생각으로 신은 듯 하다.[40] 사실 거창하게 유포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일베저장소에서 돌았던 뜬금포 속보 드립의 일종이었다. 주 대상은 이국주나 배리나 등인데 어쩌다가 닥터 드레도 한번 나온 것.[41] 닥터 드레가 뭐 하는 양반인지도 몰랐을 것 같은 노인이 왜 저런 가짜 뉴스를 퍼뜨렸는지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다. 일베저장소 정게를 하다가 다른 게시판에서 우연히 접한 드립을 진짜로 착각해서 가짜 뉴스로 확대, 재생산 했을 가능성이 높다. 분석기사. 실제로 해당 블로거는 이 가짜 뉴스를 인용하면서 이희호가 김대중의 비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결혼했을 것이라는 식의 추측글을 써놓기도 했다.[42] 유포글을 보면 일베 내에서 절대적 입지를 자랑하는 MC무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황상 일베의 다른 문화들은 일절 모르고 정치 게시판만 쭉 들어가 온 정게할배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런 정게할배들을 비롯한 중년층 이상인 정치 성향이 확고한 보수들 중엔 단순히 일베 유저가 MC무현을 아예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 이외의 세상물정에는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