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22:51:57

Z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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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Zapp.jpg
결성 1977년

[[미국|]][[틀:국기|]][[틀:국기|]] 오하이오 주 데이톤
멤버
레스터 트라우트먼
테리 "잽" 트라우트먼
그레고리 잭슨
바비 글로버
전 멤버
로저 트라우트먼
래리 트라우트먼
토마스 트라우트먼
로저 트라우트먼 주니어
마이클 "슬라이드" 제닝스
장르 펑크(Funk), P-펑크(Funk), 신스 펑크(Funk), 일렉트로, 컨템퍼러리 R&B
활동 기간 1977년 - 1999년, 2003년 - 현재
데뷔 1980년 앨범 'Z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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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디스코그래피
3.1. Zapp
3.1.1. 앨범3.1.2. 싱글
3.2. 로저 트라우트먼
3.2.1. 앨범3.2.2. 싱글
3.2.2.1. 빌보드 R&B 차트 1위 ~ 10위3.2.2.2. 빌보드 핫 100 1위 ~ 40위3.2.2.3. 빌보드 핫 100 41위 ~ 100위
4. 평가 및 영향력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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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잽(Zapp)은 1977년 결성된 미국 오하이오 출신의 펑크(Funk) 밴드이다. Zapp & Roger, Zapp Band로도 불린다.

2. 역사

어렸을 적부터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로저 트라우트먼은 13살 때, 동생 레스터 트라우트먼과 더 크루세이더즈(The Crusaders)[1]라는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을 시작했다. 더 크루세이더즈는 싱글 "Seminole"과 "Busted Surf Board"를 발매하며 신시내티에서 활동하였다. 비록 이들의 음악은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로저는 더 크루세이더즈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또 다른 형제 래리 트라우트먼, 테리 트라우트먼 등과 함께 잽의 전신이 되는 로저 앤 더 휴먼 바디(Roger & The Human Body)를 결성하며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로저 앤 더 휴먼 바디는 1975년, 첫 싱글 "Freedom"[2]을 발매하며 활동을 시작한다. 이듬해 밴드는 첫 앨범 Introducing Roger을 발매하고 미국의 여러 중소규모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며 자신들의 거점이었던 오하이오에서 인지도를 차츰 쌓게 된다. 1977년, 로저 앤 휴먼 바디는 밴드명을 바꾸게 되는데, 로저는 그의 형 테리 트라우트먼의 별명인 '잽(Zapp)'에서 따와 밴드 이름을 'Zapp'으로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한 공연장에서 펠프스 콜린스의 눈에 띄게 된다. 펠프스의 눈에 띈 잽은 그의 동생인 부치 콜린스에게도 소개를 받게 되는데, 부치는 그들의 음악에 큰 감명을 받아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의 리더 조지 클린턴과의 만남을 주선하게 된다. 조지 클린턴 또한 잽의 음악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곧이어 조지는 여러 음반사에 잽의 음악을 홍보해주며 밴드가 음반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도왔다. 또한 조지는 잽과 자신의 레이블 엉클 잼 레코드(Uncle Jam Records)간의 계약도 체결하며 밴드를 재정적/음악적으로 적극 지원하였다.

1980년에 발매된 잽의 데뷔 앨범 Zapp은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의 부치 콜린스와 조지 클린턴이 프로듀싱에 관여하며 멘토링한 앨범이다. 덕분에 잽의 첫 앨범은 팔리아멘트-펑카델릭 스타일 P-Funk 색채도 맛볼 수 있는 앨범이 되었다. 펑키 리듬과 토크박스를 활용한 로저의 감질나는 보컬이 훌륭하게 조화된 이 데뷔 앨범은 미국에서 50만장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빌보드 200 최고 19위란 성과를 남기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일렉트로 사운드가 인상적인 Zapp의 리드 싱글 "More Bounce to the Ounce"는 발매 당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인데, 후일 수많은 8-90년대 힙합 음악에 샘플링되며 다시 한 번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서부 힙합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일례로 서부 힙합의 전설 아이스 큐브는 '"More Bounce to the Ounce"가 나를 힙합의 길로 이끌었다'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

Zapp의 성공에 힘입어 로저는 1981년, 자신의 첫 솔로 앨범 The Many Facets of Roger를 발매한다. 에너제틱한 댄스 트랙들로 무장한 로저의 솔로 앨범은 히트곡 "So Ruff, So Tuff", "Do It Roger"를 낳으며, 빌보드 200 26위라는 좋은 성적과 함께 성공을 거둔다.

1982년에 발매된 잽의 두 번째 앨범 Zapp II은 잽과 로저 사운드의 완성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장장 11분의 대곡, "Dance Floor"로 포문을 여는 앨범은 하모니카와 기타 커팅, 묵직한 클랩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경쾌한 펑크 클래식 "Doo Wa Ditty (Blow That Thing)"를 비롯해 여러 댄스 음악들로 구성되었다. Zapp II는 발매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으며, 빌보드 200 25위를 기록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다.

이후로도 잽은 1983년에 "Heartbreaker", "I Can Make You Dance" 등의 히트 싱글이 수록된 3집 앨범 Zapp III를, 1985년에 일렉트로 펑크 클래식 "Computer Love"가 수록된 4집 앨범 The New Zapp IV U를 발매하며 앨범 발매를 이어나갔다. 한편, 잽이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와중에 로저는 1987년, 솔로 앨범 Unlimited!를 발매하게 되는데, 앨범의 싱글 "I Want to Be Your Man"은 빌보드 핫 100 3위와 1988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59위라는 순위를 기록하며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펑크(Funk)의 인기가 한 풀 꺾이기 시작하며, 80년대 펑크의 대표주자 중 하나였던 잽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결국 1989년에 발매한 다섯 번째 앨범 Zapp Vibe를 끝으로 잽의 앨범 발매는 중단됐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한 트라우트먼 형제들은 래리가 만든 건설회사에 들어가 공연과 사업을 병행했다. 그리고 이전부터 활발한 솔로 활동을 보여준 로저는 90년대에도 여러 음악가들의 곡을 프로듀싱 해주거나,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파일:Roger-Larry-Troutman-graf.jpg
로저 트라우트먼과 래리 트라우트먼의 무덤

그러나 꾸준한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던 로저는 1999년 4월 25일,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바로 자신의 친형 래리 트라우트먼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 것이다. 오하이오의 한 녹음 스튜디오 근처에서 여러 발의 총을 맞은 채로 쓰러진 로저는 곧바로 병원에 실려갔으나, 결국 사망하고 만다. 래리 또한 로저를 죽인 직후, 살인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차안에서 자살하였다. 래리가 로저를 죽인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전부터 있던 두 사람간의 불화와 래리가 세운 회사의 재정 악화가 사건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형제의 장례식에는 3000명 가까이 되는 인파가 몰렸으며, 오하이오 플레이어스, 더 갭 밴드, 부치 콜린스, 레이크사이드, 셜리 머독 등의 동료 뮤지션들도 함께 참석했다.

충격적인 살인 사건으로 혼란을 겪은 잽은 잠시 밴드가 해체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지만, 2003년, 로저를 기리는 앨범이자 여섯 번째 앨범 Zapp VI: Back by Popular Demand를 발매하며 다시 모여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잽은 미국의 전역을 순회하며 한동안 라이브에 집중했는데, 2018년,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앨범 Zapp VII: Roger & Friends를 발매하며 올드 팬들의 추억을 상기시켜 줬다.

3. 디스코그래피

3.1. Zapp

3.1.1. 앨범

  • Zapp (1980)
  • Zapp II (1982)
  • Zapp III (1983)
  • The New Zapp IV U (1985)
  • Zapp Vibe (1989)
  • Zapp VI: Back by Popular Demand (2003)
  • Zapp VII: Roger & Friends (2018)

3.1.2. 싱글

3.1.2.1. 빌보드 R&B 차트 1위 ~ 10위
  • More Bounce to the Ounce (1980) - 2위
  • Dance Floor (1982) - 1위
  • I Can Make You Dance (1983) - 4위
  • Computer Love (1986) - 8위
3.1.2.2. 빌보드 핫 100 1위 ~ 100위
  • More Bounce to the Ounce (1980) - 86위
  • Mega Medley (1993) - 54위
  • Slow and Easy (1993) - 43위

3.2. 로저 트라우트먼

3.2.1. 앨범

  • The Many Facets of Roger (1981)
  • The Saga Continues... (1984)
  • Unlimited! (1987)
  • Bridging the Gap (1991)

3.2.2. 싱글

3.2.2.1. 빌보드 R&B 차트 1위 ~ 10위
3.2.2.2. 빌보드 핫 100 1위 ~ 40위
3.2.2.3. 빌보드 핫 100 41위 ~ 100위

4. 평가 및 영향력

토크박스로 가득 찬 보컬과 묵직한 베이스, 강한 클랩 등으로 대표되는 잽과 로저 트라우트먼의 사운드는 80년대 당시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그리고 대중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토크박스 연주자로 추앙받는 로저 트라우트먼은 토크박스의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며, 현재 오토튠으로 이어지는 보컬 이펙터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9]

또한, 잽이 시도한 진보적인 음악들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계적인 토크박스와 전자 악기가 융합된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는 일렉트로-펑크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투팍 샤커, 노토리어스 B.I.G., LL Cool J, Wu-Tang Clan, 스눕 독, 아이스 큐브 등 수많은 8-90년대 거물 힙합 래퍼들은 잽의 음악을 샘플링하며 음악을 만들었다.

특히 미국 서부를 기점으로 발전한 힙합 장르, G-funk는 잽 특유의 전자 음악과 펑크가 결합된 독특한 사운드와 자유자재로 흐르는 토크박스 보컬 등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는데, 이들은 현재까지 G-funk를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잽은 90년대 서부 힙합 래퍼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며 힙합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팍 샤커닥터 드레의 명곡 "California Love"인데, "California Love"에서 토크박스를 맡은 인물이 바로 잽의 리더, 로저 트라우트먼이다. 덕분에 잽과 리더 로저는 서부 힙합 음악가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닥터 드레스눕 독은 로저가 죽고 1년 뒤에 열린 'Up in Smoke Tour' 콘서트에서 "More Bounce to The Ounce"를 연주하며 그를 기리기도 했다. 또 다른 G-funk의 전설, DJ Quik도 "Roger's Groove"라는 곡을 만들어 로저를 추모하였다.

5. 여담

  • 로저 트라우트먼의 아들, 로저 트라우트먼 주니어(Roger Troutman Jr.)도 아버지를 따라 음악가로 활동하였다. 안타깝게도 로저 트라우트먼 주니어 또한 2003년 1월 22일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1] 조 샘플, 윌튼 펠더 등이 있던 동명의 재즈 밴드와는 이름만 같은 다른 밴드이다.[2] 이후 잽의 데뷔 앨범에 리메이크 되어 수록된다.[3] 투팍 샤커의 싱글에 닥터 드레와 함께 피쳐링.[4] 투팍 샤커의 싱글에 닥터 드레와 함께 피쳐링.[5] 스크리티 폴리티의 싱글에 피쳐링.[6] 조니 길의 싱글에 피쳐링.[7] 누 플레이버의 싱글에 피쳐링.[8] 네스티보이 클릭의 싱글에 피쳐링.[9] 토크박스의 명칭 또한 로저가 정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