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3:57:12

Eazy-E


파일:NWA-Logo.png

MC Ren
Eazy-E
DJ Yella

{{{-2 {{{#!folding [ 전 멤버 ]
<colbgcolor=#000,#010101><colcolor=#D9533E,#dddddd> Eazy-E
이지 이
파일:Eazy-e.jpg
본명 에릭 린 라이트
Eric Lynn Wright
출생 1963년 9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콤프턴
사망 1995년 3월 26일 (향년 31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59cm
가족 배우자 토미카 우즈라이트
자녀 11명
레이블 Ruthless Records
소속 그룹 N.W.A
장르 서부 힙합, 갱스터 랩
데뷔 1988년 솔로 1집 앨범 'Eazy-Duz-It'

1. 개요2. 생애
2.1. 데뷔와 성공2.2. N.W.A의 해체와 닥터 드레와의 디스전2.3. 사망2.4. 사후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3.2. EP3.3. 컴필리케이션
4. 기타


[clearfix]

1. 개요

갱스터 랩의 대부(Godfather of Gangsta rap)#
My days ain't long I'm comin' strong and fast
내 삶은 그리 길지 않아. 나는 강하고 빨라.
Lock up 8 niggs, kill up 10 pigs Innocent fuckers are also dying too.
흑인 8명을 가두고 경찰 10명을 죽이고 무고한 놈들도 죽어가고 있지.
Now what else can I do? Fuck, fuck, fuck and plant my seeds.
이제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XX, XX, XX하며 내 씨앗을 심지.
Leavin' kids in this world like me.
이 세상에 나 같은 아이들을 남기지.
The lunatic psycho mutherfucka Eazy-E.
미치광이 싸이코 개자식 Eazy-E.
24 Hours To Live 中

캘리포니아서부 힙합 래퍼이다. N.W.A의 리더이며 루슬리스 레코드 설립자. 90년대 힙합 골든 에라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한 명으로 갱스터 랩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2.1. 데뷔와 성공

데뷔 전엔 Kelly Park Compton Crips[1] 소속으로 마약거래를 하며 갱스터로 활동했고, 심지어는 포주 짓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더 큰 사업을 원한 그는 자기 갱단에서 번 돈을 전부 쏟아 루스리스 레코드(Ruthless Record)를 세워 최고경영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가 아라비안 프린스,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DJ 옐라, MC 렌을 영입하며 1987년 힙합 그룹 N.W.A를 결성한다.

사실 이지 이는 래퍼가 아니었기 때문에 본인은 그냥 레이블의 CEO로써 돈만 대주고 비즈니스를 할 계획이었지, 직접 그룹의 래퍼로 활동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닥터 드레는 그런 이지 이의 깐족대는 듯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를 알아보고 랩을 할 것을 권유했다. 이지 이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연이은 설득에 마지못해 결국 수락했고 드레의 코칭을 거쳐 아이스 큐브가 작사한 Boyz-N-The-Hood의 녹음 작업을 완성했다.[2][3] 이 곡은 N.W.A의 EP 앨범에 수록되었다가[4] 1988년에 발매된 이지 이의 1집 앨범 Eazy-Duz-It에 리믹스 버전으로 올라갔고 이 앨범이 대히트를 치며 래퍼로 거듭난 이지 이를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놓게 됐다.

이 시기 즈음에 아라비안 프린스는 수익 분배의 불공정함을 문제로 팀을 탈퇴했으나 Eazy-Duz-It의 성공으로 이미 탄력을 받은 N.W.A.는 연이어 그룹의 1집 앨범인 Straight Outta Compton을 발매했고, 이들은 거대한 사회적 이슈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특히 Fuck Tha Police는 미국 경찰과 법에 대한 강렬한 욕 다발을 날려서 보수주의자들과 교사들, 학부모, 경찰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으며, 언론에게도 두고두고 까여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방송국에서도 외면받을 뿐더러 몇몇 도시는 이들의 공연을 막았다. 이 때문에 멤버들과 함께 경찰서 정모까지도 간 적이 있으며, FBI의 감시도 받고 영국에서도 수출 금지가 되었다.

2.2. N.W.A의 해체와 닥터 드레와의 디스전

하지만 N.W.A 활동 중 분쟁이 일어났는데, 아이스 큐브가 먼저 수익 분배에 대한 부당함을 표출하며 정식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루스리스를 뛰쳐나갔고 이후 큐브는 솔로로 전향하여 최고의 주가를 달리게 된다. N.W.A는 그럼에도 4인 체제로 활동을 계속하며 2집 앨범을 성공시키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나[5] 아이스 큐브의 부재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닥터 드레 역시 계약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당시 루스리스의 보디가드로 있던 슈그 나이트와 손을 잡고 데스 로우 레코드를 세우더니 이내 팀을 탈퇴한다.[6] 닥터 드레는 이지 이에게 따로 얘기하자며 이지 이를 불러냈으나 정작 그곳에는 드레가 아닌 슈그 나이트가 갱 멤버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럼에도 이지 이가 전혀 주눅들지 않자 결국 슈그 나이트는 당시 이지 이의 어머니가 살고 있던 집 주소를 갖고서 이지 이를 위협했고, 결국 이지 이는 닥터 드레를 보내주는 데에 동의한다고 서명하였다.[7] 그런데 이지 이는 이 때 계약서에 자신의 정식 싸인이 아닌 가짜 싸인을 했고 이후 루스리스 측은 강압적으로 이뤄진 이 가짜 서명은 무효라며 데스 로우를 고소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스 로우와 손을 잡은 상태이던 인터스코프의 CEO 지미 아이오빈(Jimmy Iovine)이 루스리스의 매니저 제리 헬러와 협상 끝에 데스 로우가 닥터 드레의 음악으로 버는 수익의 20%를 6년간 루스리스에게 넘긴다는 조건으로 딜을 체결하였다. 어쨌든 닥터 드레의 탈퇴로 인해 결국 자연스럽게 N.W.A.는 해체되었다. 이지 이는 사업의 경제적인 부분을 제리 헬러에게 위임했었으나 제리 헬러는 일처리와는 별개로 상당한 돈을 횡령하고 있었다. 결국 나중가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지 이는 끝내 제리 헬러를 해고하기도 했다.

이후 닥터 드레가 1집 앨범 The ChronicDre Day를 비롯한 여러 트랙에서 이지 이를 디스하자 결국 이지 이는 1993년 It’s On (Dr. Dre) 187um Killa에서 폭풍 욕 다발 디스를 날렸다. 특히 Real Muthaphuckkin G's는 지금까지도 힙합 역사상 제일 위대한 디스곡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된다.[8] 애초에 Knocc Out을 비롯한 당시 이지 이의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정작 이지 이는 닥터 드레의 디스에 대해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지 이의 루스리스는 데스 로우가 드레의 음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분을 가져오고 있었기 때문. 즉, 이지 이는 드레의 이지 이 디스곡으로 돈을 벌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Real Muthaphuckkin G’s에서 이지 이는 “드레 데이는 이지의 페이 데이일 뿐이잖아!”(“But Dre Day only meant Eazy’s pay day!”)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편 이지 이는 N.W.A.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Bone Thugs-N-Harmony의 흥행과 루스리스의 각종 투어 등으로 여전히 잘 나가는 회사의 CEO 및 래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2.3. 사망

이지 이는 수많은 그루피[9]과 성관계를 가지면서 쾌락적인 삶을 살았고 많은 자식을 두고 있었다.[10] 결국 계속되는 성관계로 인해 에이즈에 걸렸고 에이즈가 악화되어 Cedars-Sinai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 안가 1995년 3월 26일에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래는 그의 유언.
내가 설교 같은 것을 할만한 인간 같지는 않아 보일 거야. 그러나 나는 지금이 내가 회개할 시간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나에 대해 상관하고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 난 컴튼의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여러 가지 했어. 하지만 역시 충분히 할만했어. 그 뒤에는 LAPD와 FBI가 재수 없어할만한 래핑을 시작했지. 그러나 우리의 메시지는 미국 전역이 우리 말을 듣게 할 정도로 유명해졌어. 곧 우리의 분노와 희망이 모두를 흥분시켰지. 내 성격에도 아주 좋은 보답이 많았지. 비싼 자동차와 빵빵한 여자와 좋은 삶, 거의 멈추지 않는 흥분상태였지.

무종교지만, 나쁘거나 착하거나 그게 나야. 난 천국 가기 위해 이딴 말 하는게 아니야. 그냥 몇천, 몇만의 어린 팬들이 에이즈에 대해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나 이전의 다른 이들처럼 나의 문제들이 좋은 행실로도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를 생각해주는 모든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 왜냐면 너무 늦기 전에 도와주고 싶거든···[11]


난 이것도 전부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저번 몇 주 동안 이것이 현실이고 아무것도 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 내 여친 토미카와 나는 4년 동안 같이 있다가 최근에 결혼했어. 그녀는 좋아, 착하고 멋진 엄마지. 우리는 한살된 남자아이가 있어. 토미카 이전에 난 다른 여자를 많이 범했지. 6명의 엄마 밑에 7명의 아이를 가지고 있어. 성공이 나한테는 너무 컸던 것 같아. 난 내 아이들을 전부 사랑하고 항상 돌봤지. 이제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싸움에 있고 쉽지 않아.

하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친 모두에게 사랑을 보내고 싶어. 모든 도움 고마워. 그냥 기억해: "너의 진짜 시간이고 너의 진짜 인생이야 ."

2.4. 사후

그의 Ruthless Record는 그의 아내 토미카 라이트(Tomica Wright)가 차지했으나, 운영 능력이 개판이라서 계약기간이 남아있던 본 석스 엔 하모니를 제외한 나머지 아티스트들을 다 내보냈다. 특히 MC 렌의 인터뷰를 보면 대락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WWC : WorldWideConnected.com: Ren, how do you feel about Tomika Wright today?(렌, 토미카 라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MC 렌 : I think she don’t know nothing about running no record company! She a cool person, but I don’t feel she know how to run a record company. I don’t see how you can let a mothaf**kin' record company that powerful just go down the drain. I mean damn... That’s what I don’t understand. And that she’s not keeping his legacy alive.(그 여자 레코드 회사 어떻게 운영하는지 몰라! 그래, 그녀는 멋진 여자야, 하지만 레코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가는 잘 모르는 것 같아. 난 그 영향력 있는 X나 쩌는 회사를 어떻게 시궁창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야. 내 말은 젠장... 나 정말 이해가 안 가. 그녀는 그의 전설을 이어가지 못했어.

하지만 아들인 릴 이지 이가 그의 다큐를 만들고, 본 석스 엔 하모니도 Crossroads라는 추모곡을 내 빌보드 차트 1위를 먹는 등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적들이 대박이 나기도 했다.

2011년 닥터 드레의 수제자 에미넴이 피처링한 I Need A Doctor 뮤비에서는[12] 드레의 회상씬에서 인터뷰 영상, N.W.A 시절 뮤비 중 한 장면과 사진으로 나오고 뮤비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레가 이지의 무덤을 방문하는데, 뭔가 쓸쓸하면서도 묘한 여운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

2013년 투팍[13]올 더티 바스타드[14]에 이어 홀로그램으로 등장하여 공연을 펼쳤다. #

2016년 N.W.A.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멤버들 모두가 이지 이에 대한 애틋한 메세지를 전했다. #[15]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3.2. EP

3.3. 컴필리케이션

  • Eternal E (1995)[18]
  • Featuring...Eazy-E (2007)[19]
  • Tri-Pack (2010)[20]
  • Merry Muthafuckin' X-Mas (2015)[21]

4. 기타

  • 랩할 때 헬륨 가스를 마신 듯한 하이톤으로, 수많은 하이톤 갱스터 래퍼에게 영향을 줬다. 다만, 이지 이의 생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평소 목소리는 오히려 저음에 가까운 편이다.
  •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 깡이 대단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으면 어느샌가 무기를 들고 있었다고. 슈그 나이트닥터 드레 탈퇴 건으로 자신을 위협하여 서명을 받아낸 일이 있고 난 후 이지 이는 슈그 나이트를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으나 이를 루스리스의 매니저 제리 헬러가 만류해서 겨우 그만뒀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다.[22]
  •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는 매니저 제리 헬러의 횡령으로 인해 돈이 계속 빠져나가자 화려한 대저택에서 살던 이지 이가 말년에는 그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 듯한 묘사가 있는데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이지 이는 말년에 돈 걱정 따위 전혀 없이 윤택한 삶을 누렸다.
  • 랩 실력뿐만 아니라 프로듀싱 능력도 뛰어난데, 본 석스 엔 하모니나 타이리 B, 브라운사이드 같은 후에 널리 유명세를 떨치던 래퍼도 이지의 작품이다.

파일:external/img1.wikia.nocookie.net/Ryder.jpg
  • Grand Theft Auto: San Andreas의 등장인물인 랜스 '라이더' 윌슨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이지 이의 대표적 상징인 선글라스와 모자부터, 헬륨 가스를 마신 듯한 목소리에 입에 착착 붙은 걸걸한 욕이나 제리컬 헤어, 작은 키(...) 모델링 등 많은 면에서 그를 닮았다. 게다가 입고 다니는 초록색 바람막이는 문서 맨 위에도 나온 이지 이의 유명 사진과 일치한다.
  • 어반 딕셔너리에 따르면 이지 이의 노래 중 하나인 Boyz In The Hood의 한 구절인 It's all about making that G.T.A가 GTA(Grand Theft Auto)라는 말을 미국 사회 내에서 유행시켰다고 한다.
  • 게임이 존경하는 래퍼 중 하나다. 오른팔에 이지 이의 문신을 새길 정도.
  • N.W.A.를 만든 서부 힙합의 간판과 같은 존재 중 하나인데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한 비운의 거물이라는 점 때문인지 주로 투팍의 랩과 리믹스 되는 경우가 많다.
파일:이지이 슬래시.jpg* 생전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로 건즈 앤 로지스를 꼽았다. N.W.A의 곡 중에 Appetite for Destruction도 있으며, 실제로 건즈 앤 로지스를 만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23]
  • 컴튼 모자를 자주 써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지 이는 아프로 헤어다. 다만 항상 아프로였던 건 아니고 아이스 큐브와 더불어 80년대 유행한 '제리 컬' 스타일[24]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그 시절의 이미지가 가장 유명하다.

  • 갱스터 랩의 대부라는 점과 실제 갱 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과묵하고 무덤덤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는 유쾌하고 활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싸이커델릭 레코즈라는 음반점에 자주 드나들고 여사장은 이지 이를 아들처럼 대했다고 하며 이 가게의 한인 부부는 이지 이를 본명인 에릭으로 부를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 N.W.A. 시절에 Express Yourself 뮤직비디오에서 백악관을 접수하여 흑악관으로 바꾸고 Fuck Tha Police 가사 문제로 정부 기관에게 경고를 받은 것과는 별도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일명 아버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찬을 가진 적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인 자선 사업에 대한 노고의 치하 목적에서 연 거라고. 이 일은 아이스 큐브의 곡 'No Vaseline'에서 언급되었다.
  • 죽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지. 나는 백인이 내게 와서 "What's up, Nigga?"라고는 해도 괜찮아. 왜냐하면 그건 나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이거든. 그런데 만약 그 백인이 그냥 "Nigga"'라고 씨부리면, 나는 그 백인을 그 즉시 처리해 버릴꺼야."라고 발언했던 적이 있다. 투팍도 이러한 투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건 이 두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N-word를 마구 남발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키가 매우 작은 편이다. 이지 이의 생전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작은게 확실히 느껴질 정도. 그렇다고 아예 왜소한 체격은 아니었으며 작은 키와는 달리 어깨 넓이는 웬만한 성인 남성만큼은 벌어져 있던 편이었다. 오히려 당시 N.W.A의 단체 사진을 보면 아이스 큐브가 이지 이보다 더 어좁이었던 게 확연히 보인다.


[1] Eazy-E가 활동할 당시에는 아마도 Kelly Park Hustler일 듯 하다.[2] 아이스 큐브는 본래 HBO Duo라는 팀을 위해 Boyz-N-The-Hood의 가사를 썼었으나 HBO Duo는 가사의 폭력성을 이유로 녹음을 거부했다. 때문에 곡은 나왔는데 녹음을 할 래퍼가 없는 상황이 되자 궁여지책으로 드레가 이지 이에게 랩을 권유했던 것이다.[3] 아이스 큐브의 말에 따르면 드레와 이지 이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스튜디오를 떠났는데 그 날 밤에 자신이 다시 스튜디오를 방문했더니 아직 첫번째 벌스 녹음도 안 끝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낮에 방문했을 때는 두번째 벌스를 녹음하고 있었으며 그 날 밤에야 녹음이 다 끝나있었다고. 이렇게 이지 이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드레의 철저한 교정을 거쳐야 했다.[4] 이 EP는 Macola Record 소속으로 발매됐는데 이후 N.W.A 멤버들이 Priority Record로 둥지를 옮기자 Macola 측이 N.W.A.의 동의도 없이 무단으로 그들의 EP에 수록된 곡들을 다른 팀들의 곡들과 함께 N.W.A. And The Posse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앨범에 올라간 다른 팀들은 Fila Fresh Crew와 Rappinstine라는 팀으로, 이들은 당시 N.W.A와 친분이 있는 팀들이었다. 특히 Fila Fresh Crew의 곡에서는 The D.O.C.의 과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5] 이 때 N.W.A.가 아이스 큐브를 배신자라며 디스하자 아이스 큐브는 맞디스곡으로 'No Vaseline'을 들고 나와 N.W.A를 압살해버렸다.[6] 슈그 나이트와 닥터 드레 양쪽과 다 친하여 다리를 놓아준 The D.O.C.와 당시 드레와 사귀고 있던 Michel’le 역시 드레와 함께 루스리스를 탈퇴하고 데스 로우로 향하였다.[7] N.W.A.의 전기 영화인 스트레이트 아우터 컴튼에서는 슈그 나이트가 대동한 갱단 멤버들이 이지 이를 패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컴튼 크립스 출신인 이지 이에게 만에 하나 정말로 손을 댔다가는 슈그 나이트 본인의 생명이 노려질 것이었기 때문.[8] 이 시기에 이지 이와 친분을 쌓게 된 드레스타BG Knocc Out 형제가 피처링을 했는데, Real Muthaphuckkin G’s는 이 둘의 데뷔곡이었다. 원래는 곡 전체의 가사를 쓰고 있던 드레스타만이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중간 부분에 비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늘어나자 녹음 날 자신의 형을 따라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BG Knocc Out이 얼떨결에 투입되어 프리스타일 랩을 했다고 한다.[9] 대부분 어린 팬들이었다고 한다.[10] 수많은 그루피들을 몰고 다녔던 롤링 스톤스레드 제플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록밴드에게만 그루피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1960~1990년대 시절 그루피들은 록밴드뿐만 아니라 팝 아티스트, 힙합 아티스트들에게도 있었다.[11] 원래는 욕이 있었는데 변호사가 뺀 채 공개했다.[12] 뮤비의 전반적인 내용이 자동차 전복 사고로 죽다 살아나는 드레가 줄거리로 회복한 이후 본인 가족 포함 과거회상 장면도 나온다.[13] 1996년 사망.[14] 2004년 사망.[15] 이지 이의 아내 토미카 라이트와 위와 같은 내용으로 토미카 라이트를 비판한 MC 렌이 같이 무대에 섰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16] 이건 녹음이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발매만 하면 되는 거였다.[17] 이때 이지 이가 죽어서 사후앨범이 아니냐는 말이 있지만 원래 여기에 있는 트랙은 Str8 off tha Streetz of Muthaphukkin Compton에 있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이지 이가 죽어서라도 앨범을 내고 싶었는지 원래 22개로 녹음 되었던 곡에서 그 중 8개를 골라서 잘래내서 그 8곡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만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앨범은 8곡 이상이여만 앨범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죽기 직전 화해한 아이스 큐브한테 나중에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보이며 아이스 큐브는 그의 부탁대로 자신이 직접 홍보했다. 이것 역시 발매만 하면 되는 거였다. 즉 이게 그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것.[18] 이지 이가 죽은지 7개월 후에 발매되었으나 자신의 곡을 편집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녹음이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후 앨범이기에는 어렵다.[19] 그의 첫번째 사후 앨범. N.W.A에 실린 인기 곡을 포함해 자신이 출연 한 곡들을 모은 앨범이다. 또한 시대를 반영해서 Priority Records가 Starring...Eazy-E라는 제목으로 유사한 커버 아트와 유사한 트랙 목록이 포함 된 디지털로 다운로드용으로 출시 되기까지 한다.[20] 그의 두번째 사후 앨범.[21] 그의 세번째 사후 앨범. 여기 있는 트랙은 원래는 5150: Home 4 tha Sick에 실려 있어야한 곡이 있었어야 했으며 어떤 이유로 뻰 것 같으며 그 곡을 편집해서 만든 앨범이다.[22] 제리 헬러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냥 죽이게 놔뒀어야 했는데 후회된다고 말하기도 했다.[23]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도 N.W.A의 팬이기에 N.W.A 모자를 공연 때 자주 썼으며, 뮤직비디오에서도 쓰고 나왔다.[24] Thriller 활동 당시 마이클 잭슨으로 대표되는, 풍성한 파마를 넣은 흑인 헤어스타일.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