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23:33:37

스티브 알비니

파일:NME.png 선정 가장 위대한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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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음악 잡지 NME가 2012년 "50 Of The Greatest Producers Ever"를 선정한 순위다.
<rowcolor=#fff,#000> 1위 2위 3위 4위 5위
조 믹 조지 마틴 퀸시 존스 나일 로저스 필 스펙터
<rowcolor=#fff,#000> 6위 7위 8위 9위 10위
릭 루빈 브라이언 이노 브라이언 윌슨 부치 빅 닥터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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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000>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리 스크레치 페리 아리프 말딘 팀버랜드 나이젤 고드리치 티 본 버닛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넵튠스 스티픈 스트리트 토드 런그렌 다니엘 라누아 앤드루 웨더럴
<rowcolor=#fff,#000>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크리스 토마스 베이비페이스 짐 스타인먼 DJ 프리미어 존 레키
<rowcolor=#fff,#000>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테오 마세로 로버트 존 머트 랭 J Dilla 베리 골디 샘 필립스
<rowcolor=#fff,#000>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톰 다우드 지미 로바인 데인저 마우스 비두 제프 린
<rowcolor=#fff,#000>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맥스 마틴 마크 론슨 프린스 트렌트 레즈너 스티비 릴리화이트
<rowcolor=#fff,#000>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트레버 혼 스티브 알비니 지미 밀러 제리 웩슬러 로이 토마스 베이커
<rowcolor=#fff,#000>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RZA 피트 록 조지 클린턴 폴 에버스 DJ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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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NME 선정 500대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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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스티브 알비니
Steve Albini
파일:stevealbini.jpg
이름 스티브 알비니
Steve Albini
출생 1961년 7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헬게이트 고등학교[1]
노스웨스턴 대학교
직업 기타리스트[2], 보컬, 프로듀서
장르 펑크 록, 하드코어 펑크, 익스페리멘탈 록, 얼터너티브 록, 매스 록, 노이즈 록
데뷔 1982년 빅 블랙 1집 EP 'Lungs'
활동 1981년 –
배우자 헤더 위너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소개2. 상세3. 참여 밴드4. 직접 제작한 음반5. 대표 참여 음반6. 여담
[clearfix]

1. 소개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음악가/프로듀서/엔지니어.

2. 상세

빅 블랙(Big Black) 등 여러 노이즈 록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하였고, 여러 유명한 록 음악 앨범의 마스터링/프로듀싱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밴드 혹은 자신이 프로듀싱하는 음반의 음향적 특징이 뚜렷하여 인디 록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만으로 레코딩과 프로듀싱, 믹싱 작업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지털 방식의 음반 제작을 상당히 혐오하며, 이는 여러 인터뷰나 그의 밴드 음반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3] 이는 자신이 운영하는 일렉트리컬 오디오의 웹사이트에도 명시되어있다.[4] 그가 작업한 음반들은 라이브 사운드에 가까운 레코딩이 특징이며, 특히 드럼 레코딩을 알아주는 편이다.[5]

정치적 성향은 레딧 AMA에서 진보라고 밝혔는데, 그는 레코드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자신이 프로듀싱한 음반의 판매에 따른 인세를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단지 자신이 뮤지션을 위해 일한 시간만큼만 뮤지션에게 비용을 청구할 뿐이라고 한다.[6] 그는 너바나픽시즈, PJ 하비 등 거물급 뮤지션들의 명반을 프로듀싱하기도 하였는데, 해당 음반의 판매대금으로부터 그가 받은 금액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그가 포기한 금액은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자신은 그러한 자신만의 룰을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며, 자신의 룰 때문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포기하고 있음에도 후회를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대신 자신의 아내 Heather는 [7] 그의 이러한 철학을 상당히 못마땅해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성향 때문에 마이너 레코드 회사들은 소속 뮤지션들이 스티브 알비니와 작업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전해진다.[8] 너바나의 In Utero 앨범을 제작할 때는 메이저 레코드 회사인 Geffen과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Geffen 임원들이 In Utero의 첫 버전을 듣고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으니 믹싱부터 다시하라고 지시한 것. 그러나 스티브 알비니는 믹싱 작업을 다시하는 것에 대해 완강히 거부[9]하였는데, 이 때문에 Geffen은 너바나의 동의 없이 R.E.M.의 프로듀서 스캇 리트를 고용하여 몇몇 곡을 리믹스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알비니는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3. 참여 밴드


Big Black 시절의 대표곡 중 하나인 "Kerosene".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출신의 주인공이 무료함에 지친 나머지 마을을 전부 불태우고 싶어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해당 노래는 제리 리 루이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10]

빅 블랙(Big Black) (1981 ~ 1987) 빅 블랙 인터뷰
레이프맨(Rapeman)[11] (1987 ~ 1988)
셸락(Shellac) (1992 ~ )

빅 블랙은 노이즈 록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이며, 셸락은 매스 록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이다.

4. 직접 제작한 음반

5. 대표 참여 음반

6. 여담

2014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중음악 관련 컨퍼런스에서 인터넷 시대의 음악산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밝힌 적이 있다. 강연 내용[12]

소위 말하는 "메이저 레이블"을 극도로 혐오한다. 단적인 예로 소닉 유스가 메이저 레이블 산하의 Geffen과 계약했던 것을 그 당시에도, 몇십 년이 지난 이후에도 꾸준히 비난하고 있다. 참고 기사

"알비니가 뽑은 명작선" 이라고 불리는 앨범 리스트가 있다.

청소년기 때 Ramones의 음악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Depeche Mode로부터 음반 프로듀싱 의뢰를 받았으나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거절했다고 한다.

2018년 월드 시리즈 포커(World Series of Poker) 세븐 카드 스터드 부분에서 우승하여 $105,629 상당의 상금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 이후 4년 뒤인 2022년 다시 한 번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0년 밝히길 유튜브는 고양이 영상만 본다고 한다. 영화는 잘 안보는 모양.

한때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다. 상당한 요리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아내 Heather에게 차려준 저녁 식사 사진을 여러 번 올린 적이 있다. 또한 커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LP판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이는 그의 아내 Heather도 마찬가지인데 Heather가 사 모은 LP판이 알비니가 산 LP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모은 LP판은 어느 레코드 가계에 비교를 해봐도 훨씬 규모가 큰 수준일 정도라고 한다. 온갖 레어한 LP들도 많이 소지하고 있었다고 하나 너무 많아서 처치가 곤란해지자 결국 대다수의 LP를 중고로 청산했다고 한다.

예전에 피터 소토스(Peter Sotos)[13]의 Buyer's Market이라는 앨범을 공동제작한 경력이 있는데, 이 앨범은 다름아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들의 인터뷰를 짜집기한 앨범(!)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꽤 유명해지고 있으며, 유튜브에도 전체 앨범이 올라와 있지만 권장하진 않는다.

그의 시그니처 기타 사운드는 팬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그의 기타 사운드를 따라하기 위해 많은 팬들이 연구를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선 그의 시그니처인 날카로운 기타음의 원조는 사실 갱 오브 포(Gang of Four)의 앤디 길(Andy Gill)이다. 앤디 길이 이런 날카로운 기타음을 최초로 선보였으며 덕분에 노이즈 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스티브 알비니도 이 앤디 길의 기타 사운드를 따라하다가 스티브 알비니 본인 특유의 기타 사운드[14]를 찾아낸 것이다.[15]

스티브 알비니의 시그니처 기타 사운드의 비밀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우선 그는 80년대까지 Copper 스트링(순구리줄)[16]을 사용했다고 한다. 순수 구리는 일부 클래식 기타에 사용되기도 하는 재질이지만 일렉트릭 기타용 Copper 줄을 생산하는 회사는 더 이상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스테인리스 스틸 스트링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스티브 알비니는 금속 재질의 기타 피크를 사용한다. 또한 이 메탈 피크는 노치(notch) 형태를 하고 있어서 한 번에 두 번 스트러밍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준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특이한 스트러밍 사운드는 이 특수한 형태의 메탈 피크를 사용한 결과라고 한다. 또한 로우 아웃풋 앰프와 싱글 코일 기타를 선호한다. 로우 아웃풋 앰프와 싱글 코일 기타를 사용하여야 날카롭게 째지는 소리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한다. 스티브 알비니가 Shellac이라는 밴드로 활동할 때부터는 트래비스 빈(Travis Bean) 기타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이 트래비스 빈 기타는 알루미늄 재질의 넥으로 유명하다. 마지막이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가 사용하는 이펙트 페달이다. 우선 그는 Interfax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Harmonic Percolator(HP-1)라는 페달을 사용한다. 이 HP-1은 매우 특이한 퍼즈 페달이다. 원음을 사각파로 만들어 찌그러뜨리는 일반적인 퍼즈와 같지만 하모닉스 음 중에서 홀수배음을 걸러내고 짝수배음만을 남긴다는 특이한 성질이 있다. 그래서 HP-1 특유의 음색이 일품이다. 그런데 스티브 알비니는 이 HP-1과 하이패스 필터를 서로 맞물렸다. 그러면 스티브 알비니 특유의 그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기타 스트랩을 어깨가 아니라 허리에 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기타를 맬 경우 허리가 덜 아프다고 한다.

파일:Steve Albini.jpg

2020년 엘비스 코스텔로가 스티브 알비니를 대놓고 디스하는 인터뷰를 하여 화제가 됐었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과거 PJ 하비투나잇 쇼에 출연하여 Rid of Me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대단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바로 Rid of Me 앨범을 구해 들어봤는데 음반 퀄리티가 완전히 쓰레기였다면서, 프로듀서였던 스티브 알비니를 향해 "스티브 알비니는 프로듀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이며 "명반을 쓰레기로 만들어 완전히 망쳐놨다."며 혹평하였다. 이에 대한 스티브 알비니의 반응이 후속 기사로 얼마 후 올라왔는데, 스티브 알비니는 "타인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든 그 사람의 자유이며, 자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자신도 엘비스 코스텔로에 대하여 개인적인 의견[17]을 가지고 있으나 그걸 공개적으로 말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고 코스텔로 역시 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라며 할많하않의 자세를 취했다.

2023년 2월 6일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스틸리 댄싫어한다는 트윗을 날려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작 타일러는 스티브 알비니 음악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1] 실제로 영문 교명이 Hellgate High School이라고 되어 있다. 몬태나주 미줄라에 위치.#[2] 밴드를 처음 결성했을 때는 베이스를 연주했다고 한다.[3] Big Black 시절에는 의도적으로 일부 앨범의 CD 부클릿을 상당히 부실하게 제작하였으며(LP 버전은 훨씬 공들였다.), Shellac의 데뷔 앨범인 At Action Park CD 버전 부클릿에는 CD 음원 제작 방식을 LP와 비교하여 상세히 적어놨는데, 알비니가 선호하는 LP 레코드 제작 방식인 Direct Metal Mastering(DMM)에 비해 CD 버전의 경우 어떤 것이 빠져있는지 써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CD 버전은 특별할 게 없다면서 냉소적인 말을 써놨다. 그리고 Shellac의 대표곡 중 하나이자 1000 Hurts 앨범의 첫 곡인 Prayer to God의 디지털 음원은 곡 시작과 동시에 CD 음반의 스펙을 읊어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 내레이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LP로 들으라는 간접 메시지인 셈이다.[4] "Sessions with Steve will need to purchase tape, sessions with any other engineer may choose tape or digital." 해석하면 "스티브와의 작업은 테이프가 필요합니다. 다른 엔지니어들과의 작업은 테이프와 디지털 방식 중 선택이 가능합니다."[5] 일례로 Nine Inch NailsThe Fragile 앨범을 레코딩할 때 수록곡 중 La Mer라는 곡의 드럼 파트 샘플을 스티브 알비니에게 레코딩 의뢰를 하였다.[6] 심지어 어떤 뮤지션과 작업을 하든 그가 받는 금액은 그가 들인 시간에만 비례할 뿐이며, 같은 시간을 들였더라면 누구의 음반 작업을 했든지 간에 동일한 금액을 받는다. 그가 이렇게 특이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상당히 합리적인데, 음반을 제작했다면 그 음악의 주인은 해당 앨범의 뮤지션이지 프로듀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프로듀서는 의뢰인이자 고객인 뮤지션이 원하는 음반을 레코딩해주면 그만이고 그에 대한 대가는 일한 만큼만 받으면 되며, 음반 판매금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프로듀서가 가져가는 것은 뮤지션에 대한 착취이며 도둑질이라고 스티브 알비니는 규정한다.[7] 영화감독이라고 한다.[8] 대신 스티브 알비니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인 일렉트리컬 오디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스티브 알비니의 시급을 찾아보면 알 수 있지만, 스티브 알비니의 시급은 엄청나게 비싸다.(웹사이트 기준으로 스튜디오 내 자체 프로듀싱은 1일 900$ - 약 백만원 -, 출장 프로듀싱은 1일 1100$ - 약 120만원 -, 참고로 같이 일하는 그렉 노먼은 350$, 스태프 엔지니어는 150$ 부르고 있다.) 여기다 스튜디오 비용도 있기에 (각각 600달러, 400달러) 음반 하나 레코딩하려면 수천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세 대신 시급을 통해 작업과 생활에 필요한 벌이를 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알비니 정도 명성이 되면 의뢰가 밀려들어오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문제가 없기도 하다.[9] 물론 데이브 그롤이 In Utero 20주년 기념 리믹스 앨범 제작을 의뢰하자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끝내 받아들였다. 그러나 Geffen이 1993년에 바랐던 리믹스와 2013년의 리믹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데, 1993년의 리믹스는 팝적으로 좀 더 듣기 쉽게 믹싱을 다시 하는 걸 의미했고, 2013년에 했던 리믹스는 커트 코베인을 포함하여 너바나의 멤버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음반을 구현하고자 믹싱 작업을 다시한 것이었다.[10] 또한 Big Black의 라이브에서 제리 리 루이스가 직접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은 적이 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던 제리 리 루이스의 다섯 번째 아내의 죽음에 관한 노래라는 귀띔을 해주기도 했다.[11] 밴드명은 THE 레이프맨에서 따왔다.[12] 강연 내용을 읽으면 알겠지만 팝 음악을 무지 싫어한다. 애들과 멍청이를 위한 장르라고.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재즈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고 개인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즈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즐길 수 없는 장르였다고 한다.[13] 미국의 작가이자 음악가.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학적인 성폭력이나, 폭력적인 음란물을 조사하는 책들을 썼다. 영국의 파워 일렉트로닉스 밴드인 화이트하우스의 멤버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14] 날카로운 기타음인 것은 앤디 길과 동일하나 스티브 알비니는 훨씬 지저분한 기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Shellac 결성 이후로는 기타 사운드를 매스 록에 더 가깝도록 약간 변경하였는데, 이는 Travis Bean으로 기타를 바꾼 것이 한 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Shellac에서의 스티브 알비니의 기타 사운드는 날카로운 기타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중후한 매력이 덧보인다.[15] 스티브 알비니는 Gang of Four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당연히 Andy Gill을 극찬한 바 있다.[16] 스티브 알비니의 말에 의하면 그 어떤 기타줄보다도 매력적인 사운드를 낸다고 한다. 음색이 밝으면서도 빈티지한 느낌이 난다고. 그러나 순구리줄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재질이 너무 약해서 금방 끊어지고 만다. 오래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에 사용할 경우 아웃풋도 지나치게 낮다. 덕분에 순구리줄을 생산하는 회사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17] 대단히 부정적인 뉘앙스였다.